제3장 악어 선생의 사랑
하아.......
난 게임에 접속하든 하지 않든 내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건 바로 상대방에게 이길 수 있는 기가 막힌 작전.
물론 소문만으로 대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거 가지고 전쟁을 이겼다고는 할 수가 없다.
그만큼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아직도 수백만 명이니까.
도대체 뭔 수로 이기라는 거냐!
그나마 희망이라면 지휘부들을 암살해서 사기를 떨어뜨리고 전략적인 손실을 가져오는 건데 우리에게는 암살자가 없다.
아니, 있기는 한데 잠입을 못하는 암살자다.
정말 실력 하나는 끝내 주는데 말이다.
그리고 덤으로 오히려 무척이나 유리한 저쪽에서 암살자들을 마구 보내는 형편이다.
이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약한 쪽이 치고 빠져야 하는데, 오히려 저쪽에서 그러면 어떡하자고.
물론 피해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는 지상 최강의 암살자 버스틴이 있다.
잠입은 못하지만 다른 암살 기술들은 만능인 버스틴.
그렇기에 적국의 암살자들은 암살을 시도하기도 전에 그대로 너무나도 손쉽게 죽어 버린다.
진짜 그것만 봐서는 정말 최고인데, 휴....... 잠입을 못하다니.
삐익!
"......?!"
그때 한숨을 내쉬던 나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집 문이 열리는 소리다.
이쯤 되면 누구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우리 집에 이렇게 손쉽게 들어오는 분은 은애 양밖에.......
"......!"
하지만 은애한테 인사를 하기 위해서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린 난 전혀 다른 인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저분이!
이제는 대놓고 아예 기습으로 문 따고 들어오시네!
이건 엄연히 범죄란 말이다!
난 갑자기 무단 침입한 악어 선생에게 어이가 없어서 그저 멍하니 있었다.
한데 그런 나를 더욱 멍 때리게 하는 그분의 행동이 있었다.
그건 바로.......
털썩.
"허얼!"
갑자기 내게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저, 저분 왜 저래?!
또 무슨 거대한 음모를 꾸미려고?!
한편 그 모습을 본 난 나도 모르게 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저분은 나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벌일 각오가 되어 있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와다오!"
"......?!"
갑자기 뜬금없이 내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그분.
지금 나보고 도와달라고?!
원수보다 더 싫어하는 나한테?!
이건 말이 안 된다. 듣고도 믿을 수 없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다. 확실해!!
반짝반짝.
하지만 분명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나에게 너무나도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분.
아악!
그,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진 말란 말이다.
왜 갑자기 이렇게......!
그것도 다른 존재도 아니고 나한테 부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헉!"
"......."
그 순간 나의 심장을 관통하는 그분의 말이 들려왔다.
사,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사랑하고는 안드로메다만큼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말도 안 된다.
이건 구라다. 분명 어떤 함정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왜 그런 걸 나한테 부탁하느냐고!
"......너의 소문은 듣고 있다."
"소, 소문?!"
"그래."
"......."
그때 나의 소문을 듣고 있다는 그분.
내 소문이라고 하면...... 그, 그 소문?
남자에게 채찍질을 하고 피 빨아먹는다는...... 그게 분명하다.
제길, 역시나 그걸로 나를 협박하려는 거구나!
이 나쁜 선생 같으니!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소문이 그분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여자 킬러 이성민!"
"......."
개뼈다귀가 곰탕으로 탈바꿈으로 하는 소리였다.
진심이었다.
그분은 진심으로 나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
사랑을 위해서, 원수보다 싫어하던 나에게.......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사랑의 힘에 감탄은 감탄이고 개인적으로 저분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소문 잘못 난 거.
내가 여자 킬러?
지나가던 케찹이가 비웃을 소리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여자와 사귄 적도 없고 심지어는 아는 여자도 거의 없다.
아는 여자라고 해 봤자 연희와 은애, 이리엘이 전부다.
물론 그런 분들과 알고 지낸다는 게 다른 여자 1억만 명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기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전혀 잘못된 소문이다.
확실히 말하자면 저분을 도와줄 수가 없다는 소리다.
그러니 더욱 오해가 깊어지기 전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만약에 안 도와주면 평생 널 따라다니겠다!"
"자, 잠시!!"
"물러날 수 없어!"
"아니요! 잠시만!!"
"절대 안 물러나!"
"......."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하기도 전 아예 이미 들이대는 그분.
아니! 지금 왜 혼자서 멋대로 밀고 들어오는 겁니까?!
그것보다 만약에 안 도와주면 평생 날 따라오겠다고?!
그건 차라리 날 죽이는 것보다 더욱 큰 고통이다.
그렇지만 나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입장이란 말입니다!
이글이글.
한데 내가 절대 잘못된 소문이라고 하더라도 믿을 것 같지 않은 저 눈빛.
이미 저분은 나를 여자 킬러로 알고 있고, 여기서 모른다고 해도 거짓말한다고 착각할 확률 100%라는 것이다.
아악! 갑자기 왜 나타나서 나에게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 거야!
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미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저 사랑을 이루어지도록 해 주겠다.
그리고 덤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나에게 집적대는(?) 그것도 사라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지만 문제는 저분이 알고 있는 대로 난 여자 킬러가 아니라는 거. 도대체 무슨 수로 저분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멋지게 들이댈 수 있게 협조를 할 것인가라는 게 문제다.
"윤현정이라......."
악어 선생이 좋아하는 여성의 이름.
나이 21세, 악 씨와는 10살쯤 차이가 난다.
완전 도둑 심보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보르 꽃집에서 일하고 있음.
자, 그러면 여기까지 파악했으면 다음에 할 일은 뭘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여자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가 이런 거?
그래서 이제는 꽃집으로 잠입 수사하러 갈 시간이다.
"이게 꽃집이냐?"
난 꽃집 앞에 줄줄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경악치 못했다.
오늘이 무슨 꽃 관련 날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더욱 신기한 건 다 남자들이다.
여자는 어디에도 없다는 거다.
이건 뭐지?
"이 집 알바생이 연희와 은애와 비등하게 예쁘대!"
"정말이지?!"
"그럼, 그럼!!"
"아아, 연희와 은애, 그리고 저 꽃집 여인까지! 이런 초미소녀들이 티브이에 안 나오고 다들 뭐 하고 있단 말인가!"
"......."
그때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두 남자의 이야기.
뭐? 연희와 은애랑 비등하게 예쁘다고?
웃기지도 않는다.
그런 여인이 이 세상에 또 있을 리는 없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연희와 은애는 인터넷으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대단한 미소녀!
그런 급의 미소녀가 또 있다니, 분명 착각일 테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유유자적 보르 꽃집을 탐문하기 위해 어슬렁거렸다.
물론 꽃을 살 생각은 아니고, 그저 조사할 목적이므로 줄을 설 필요는 없다.
"헉!!"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꽃집 주변을 얼쩡거리던 나를 놀라게 만드는 한 여인!
자, 장난 아니다!
검은색의 찰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에 완벽하다 못해 지나치게 완벽한 이목구비.
정말 다른 분들이 말한 대로 은애와 연희한테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자였다.
어떻게 저런 분이 이 시대에 또 있었단 말인가?!
저렇게 아리따운 여인이 또 있을 줄이야!
"어?"
근데 어디선가 저분 많이 본 느낌이 든다.
분명, 어디선가.......
번쩍!
그때 갑자기 내 머리에 반짝 누군가가 지나간다.
그리고 난 그분의 정체를 알고는 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왜 저분이 여, 여기에 있는 게냐!
아니, 그것도 직원용 앞치마를 두른 채.
그 말은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거?!
그나저나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믿고 싶지 않았다.
왜 진짜 저분이!
하필 이곳에서 만나다니!
"......?!"
"......."
그 순간 하필 그녀와 절묘하게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나의 게임 속 이름을 부른다.
"프레젠!!"
"......."
아악.
왜, 왜, 왜.
저분을 만나는 게냐.
난 악어 선생이 좋아하는 '윤현정'이라는 여성을 만나러 왔지, 저분을 만나러 온 게 아니란 말이다!
물론 만나기 싫다는 것보다 만나면 무지 곤란한 게 내 입장이어서 말이다.
"현정 언니 뭐 해?"
"......?!"
우리 둘 다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때, 20살 정도로 보이는 한 여자가 붉은 마녀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부른다.
현정, 확실하게 좋은 이름이다.
자, 잠시, 현정이라고?!
난 설마 했다.
아닐 거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하지만 악어 선생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니는 꽃집은 분명 이곳이고 악어 선생이 좋아하는 여자 이름도 현정이고 저 누나 이름도 현정이고(패닉 상태).
아아악!!
그녀의 게임 속에서의 모습을 살짝 이야기하자면 랭킹 유저다.
하지만 그냥 랭킹 유저는 절대 아니다.
살벌한 랭킹 유저.
그뿐 아니라 아주 멋진 별명도 있다, '붉은 마녀'라는 약간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는 좀 매치가 안 되는 특이한 별명이.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붉은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아니었다(처음에는 너무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천사강림'이라고 불렸다는).
그러나 붉은 마녀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한 길드와의 대팍 터지는 싸움 덕택.
그녀는 사실 아무 소속이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길드와 크게 싸웠다.
그리고 승리했다.
그녀가 워낙 강한 탓도 있지만, 진짜 그녀를 따르는 무수한 남성들에 의해서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남자들이 몰려온 이유도 있다.
참 이게 아니라, 그 이유로 그녀는 길드를 상대로 혼자 들이댄 결과로 '붉은 마녀'라는 호칭을 얻었다.
어찌 됐든 그렇게 그녀는 나름대로 정말 이름 있는 유저.
그런데 내가 왜 그녀 만난 걸 이렇게 경악하는 걸까?
그녀가 무서워서?
아니다.
그럼 뭐냐고?
그 이유는 한 거대한 사건 때문이다.
사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정말 친했다.
그렇지만 그 사건이 발생된 이후 난 그녀를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참고로 그 사건의 핵심은 케찹이.
하지만 즐긴(?) 본인은 나.
무슨 말이냐고?
그러니까 그게 상세하게 말하긴 좀 그렇고, 난 보고야 말았다. 그녀의 목욕 장면을.......
아니, 그러니까 그게 케찹이가 이상한 짓 하려는 걸 방지하려다가 내가 보는, 그리고 거기에서 끝났으면 행복했을 테지만, 그 사실을 그녀가 다 알아 버린 것이다.
제길, 그렇기에 난 순간적으로 변태로 몰렸고, 난 그녀를 피해 다녀야만 했다(물론 변명은 했지만 진짜 그저 변명으로 들렸을 뿐. 요정이 몰래 훔쳐보려는 걸 저지하려고 했다는 말이 웃기지도 않는 개소리였기에).
특히 무엇보다 나를 믿고 있던 그녀, 정확히 게임 아이디로는 샐리 누나는 내가 완전 변태라고 오해를 하셔서 더 이상 같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이네요, 프레젠 님."
싱긋.
"......."
그때 어느 커피숍에 앉은 채 나를 보고 해맑게 웃는 샐리 누나.
그리고 난 그런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 누나, 거듭 말하지만 오해라고......."
"......."
진짜 오해다.
웬 변태 요정 때문에 순식간에 그렇게 됐을 뿐인데.
한데 이런 나의 변명에도 계속해서 웃기만 하는 누나.
그 맑은 미소가 너무 무섭다.
그런데 갑자기 누나의 입이 열렸다.
"왜 도망갔어?"
"......?"
내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한다(난 당연히 그 훔쳐본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왜 도망을 갔기는, 당연히 얼굴 보기 쪽팔려서 도망갔지요.
그리고 그걸 왜 물어보는 거지?
그때 샐리 누나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처음에는 남자에게 처음 보여서 많이 당황하기는 했지만, 프레젠 너라면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갑자기 네가 사라져 버리더라고?"
"허억!"
그 말은 그 사건으로 인해서 엄청 화난 게 아니라는 소리?!
난 그 사건으로 더 이상 내가 죽도록 보기 싫은 줄 알고 슬픈 마음을 갖고 떠난 건데!
그럼 내가 한 짓이 삽질?
"그리고 네가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는데."
"......!"
그때 그 어느 소리보다 반가운 소리가 누나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나의 결백함이 증명되는 소리!
아, 그 어떤 말보다 더욱더 기뻐서 눈물이 나오겠다.
사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찜찜했는지 모른다.
너무 무안해서 누나의 얼굴을 못 보고는 있었지만 진짜 계속해서 그런 변태로 오해받고 산다는 건 너무나도 괴로운 일.
하지만 지금 누나는 나의 억울함을 알고 있단다.
그런데 어떻게?!
"소문 쫙 났어, 프레젠. 네가 다니는 요정이 변태 요정이라고."
"......."
헉! 아니, 그런 소문을 어떤 자식이!
케찹이가 얼마나 무안하겠는가!
제길, 그나저나 정말 나쁜 자식이다.
좀 더 일찍 소문내 줬으면 얼마나 좋아?
이런 나쁜 놈!
어찌 됐든 이제 나의 오해는 모두 풀렸다니 마음이 자연스럽게 놓이는구나.
저기,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건.
"나에 대한 오해가 풀렸는데 왜 말 안 해 준 거예요?"
그렇다.
나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고 내가 와서 한마디 했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내가 있는 장소를 지금까지는 몰랐을 수도 있으나. 지금은 페로 왕국에서 삽질하고 있다는 건 소문이 쫙 났는데.
"그게......."
그때 갑자기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는 누나.
어라? 또 어떤 문제라도?
"찾아가려고 했는데. 너에 대한 소문이 좀 그래서 좀 멈칫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
오해를 풀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에 오늘 만나지 못했더라면 다시 오해는 다른 오해로 붉어졌을 것이고, 다시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만나는 덕택에 내가 채찍질하고 피 빨아먹어야 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목적은 분명 악어 선생이 사랑하는 여인을 조사하는 거였지만, 오늘 부로 안 하련다.
괜히 또 이상한 남자 소개시켜 준 이유로 다시 만난 누나와 헤어지는 건 사절이니까.
물론 지금 당장은 만날 수 없단다.
하던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그 일이 끝난 뒤 찾아오겠다고 하니 기다려야지.
아, 물론 악 씨가 지랄 발작을 하시겠지만, 뭐 그때는 경찰 불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