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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그분이 미쳤다 (63/100)

제5장 그분이 미쳤다

"B등급."

"패스."

"하아?"

난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는 피엘을 보고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저 B등급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이미 이성을 잃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런 허접한(?) 히든 클래스 등급은 취급도 안 한다.

"배가 불렀군, 불렀어."

"노, 노. 그게 아니지. 어차피 그런 허접(?)한 히든 클래스로는 도움이 안 되거든."

"......."

이 이유 때문이다.

사실 B등급 히든 클래스라 하더라도 히든 클래스 중 중 상위권이 되는 히든 클래스. 하지만 지금 내가 상대해야 할 존재들은 그런 힘은 보탬도 안 된다.

SSS급의 전설의 히든 클래스와 전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그들을 상대로 그런 허접한 힘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건 지나가던 케찹이도 아는 사실.

그러니 그런 허접한 히든 클래스 찾으러 다니면서 시간 뺏기는 건 불필요하다는 거다.

내가 원하는 건 전설!!

전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것뿐.

아직도 세 개나 더 있는 걸로 추정되니 그것만 찾아서 냠냠, 아니, 관리(?)한다면 모든 게 만사 오케이다.

세계 평화를 지킬 수도 있고 나의 꿈이었던 히든 클래스를 그것도 전설 패키지로 얻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이런 허접한 정보는 넘기지 말도록."

"......."

그때 난 그 말과 함께 휘적휘적 피엘의 사무소를 빠져나간다.

내가 이래 봬도 얼마나 바쁜 몸인데 말이다.

난 일명 '조율자'여서 세계 평화를 지키러 다녀야 하는 거다.

"저기 엔딘 군."

"......?"

"그거 뭐 하는 거임?"

"쓰레기 줍는 거죠."

"......."

난 오늘 처음으로 조율자가 하는 일을 하러 엔딘을 찾아왔다.

그런데 엔딘 님은 그런 나를 쓰레기를 주우면서 반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쓰레기 줍는 건 아는데 지금 업무 시간 아님?"

분명 내가 듣기로 조율자의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쓰레기라니.

한편 이런 나의 질문에 엔딘은 여전히 쓰레기를 주우며 웃으면서 말했다.

"쓰레기 줍는 것도 조율자 일이거든요."

"......."

이건 아니다.

내가 꿈꾸던 조율자가 아니다.

세계 평화를 지키는 역할로만 알았지만 이런 쓰레기 줍고 미아 찾아 주고 청소하고 잡일을 하는 게 조율자라니!!

"이런 사소한 것부터 세상은 균형이 맞춰지기 시작하니까요."

그때 다소 어이없어 하던 나에게 엔딘이 그렇게 한마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율자인데 쓰레기 줍고 다니는 건.......

아니, 쓰레기를 줍는 것까지는 좋다!

근데.......

"출동 안 하냐?"

"일이 없나 보군요. 매일매일 평화로우면 좋죠."

"......."

출동도 안 하는 거.

하루 종일 잡일만 하다가 일이 끝난다.

물론 지금 나도 쓰레기를 줍고는 있고.

아아악!! 이건 아니야!!

내가 원하던 구도가 아니야!

최소 못해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출동해서 나쁜 놈들 무찔러야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이런 나의 의문에 엔딘은.

"무조건 나쁜 행동을 했다고 저희 조율자가 처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 균열의 문제가 생길 때만 출동하거든요. 물론 원하신다면 악당들을 처리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악당들이 너무 많아서 감당 안 되실 건데요."

"......."

이렇게 참으로 현실적으로 말해 준다.

그러니 결론은 균열의 문제가 생길 정도의 대악당만 때려잡는 거냐?

그리고 몬스터가 갑자기 많아지거나 그러면 일정량 줄이고?

뭔가 조율자라는 직업에서 슬픔이 많이 느껴진다.

"하아......."

난 오늘 하루 종일 쓰레기 줍다가 볼일 다 봤다.

어차피 나머지 전설의 히든 클래스의 단서를 피엘이 찾아 주기 전까지는 할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쓰레기 주우면서 게임을 하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

그 순간 갑자기 내 귀를 자극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손님이라고?

어? 여기 이사 와서 올 사람 없는데.

아니, 은애가 있기는 하지만 은애가 벨을 누를 리는 없고, 신문이나 우유 같은 건가?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모니터를 쳐다봤고, 거기에는 그분이 계셨다. 악어 선생이!

아악! 저 인간 왜 또 저기 있는 거냐?!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이 집을 안 거지?

그뿐 아니라.......

"벨을 눌렀어."

이런 미친!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집에 가면 당연히 벨을 누른다.

하지만 저분은 우리 집 올 때 문 따고 들어온다.

절대 벨하고는 인연이 없는 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사하면서 집 여는 방식을 바꾼 것도 아니다.

여전히 지문인식 방법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저번처럼 문 따고 들어온다.

한데 벨이라니!!

설마?!

"노망났나?"

아직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노망이라니.

나를 잡아먹지 못한 게 그렇게 정신적 충격을 줄 정도였다니!!

그래서 저렇게 미쳐 버린 건가?

"실례하네, 성민 군."

"헉!!"

난 저 인간이 완전히 미쳤다는 걸 증명할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건.

"시, 실례한대!!"

저 인간이 나한테 실례한다는 말을 한 거다.

아니, 어떻게 그런 착한 말을 저 인간이 할 수가 있는 거지?

절대 맨정신으로는 불가능할 텐데?!

그러니 완전히 미쳤다고 볼 수밖에.

어찌 됐든 난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지만 저런 미친 사람을(?) 밖에 내버려 두는 건 너무나도 잔혹한 일인 것 같아서 그대로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는 웃으며 물었다.

"건강하게 잘 지냈니?"

"......."

또 미친 소리 한다.

아! 선생님! 이 불제자(?)를 용서하소서!

얼마나 삶이 고달팠으면 이렇게 미치셨나요?

아니, 내가 나쁜 놈이다.

그저 한 번 잡아먹혀 줬으면 저 정도까지는 안 갔을 텐데.

젠장, 너무 죄인이 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너를 괴롭힌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려서 그걸 사과하러 왔단다."

그때 그분의 카운터 한 방이 날아왔다.

난 당장 울고만 싶어진다.

그가 완전히 미친 걸 보고 말이다.

"자, 그럼 화해의 뜻으로 한잔 땡기는 건 어떤가?"

"네?!"

그때 갑작스럽게 속으로 무척이나 슬퍼하던 나에게 한마디 하는 악어 선생.

아니, 갑자기 그건 무슨 이야기인고?

한잔 땡기다니?

물론 한잔이라는 말에 대충 한 가지가 떠오르기는 한다.

하지만 설마 저분이 그걸 생각하면서 말할 리는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아니, 확실하다.

선생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술 한잔 땡기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는데 왜 내 귀에는 환청이(?) 들리는 걸까.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

헛것도 보였다.

바로 악어 선생이 어느새 소주를 마구 꺼내 든 것이다.

그것도 한 박스로 말이다.

"저, 저기?!"

난 그제야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자각했다.

"지, 지금 이건 무슨?"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축하주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난 미성년자다.

그런 미성년자에게 술을 권하다니, 그것도 선생님이라는 분이 말이다.

물론 문 따는 거 봐서는 선생이라는 직책이 일단 많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알기로는 선생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학생에게 술을 권하고 있다.

"허허.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

"이렇게 고지식할 줄이야."

그때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오히려 고지식하다고 한마디 하는 악어 선생.

물론 요새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옛날처럼 고지식하지는 않다.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술의 습관을 배우게 해 주는 아버지도 많고, 적당한 술은 몸에도 좋다고 한다.

하지만!

왜, 왜, 왜 저분이?!

내가 다른 분이었다면 정말 이런 생각도 안 든다.

그렇지만 저분이 술을 권하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하나, 오싹함이 든다.

마치 무언가 알 수 없는 어둠이 느껴진다고 할까?

"자, 어서 한잔해라."

"......."

그때 어느새 술을 따른 잔을 내게 내미는 악어 선생.

그뿐 아니라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안주까지 바닥에 펼친 상태다.

전문용어로 본격적으로 들이마시라는 소리 같은데.

"저, 전 진짜 아직 학생인데......."

"적당한 술은 몸에 좋은 거지."

"......."

"그리고 이렇게 사제 간에 술을 마시는 게 얼마나 멋진지 모르지는 않겠지?"

저기요, 잘 모르겠는데요. 사제 간에 술을 먹는 게 언제부터 멋져졌는지 모르겠다.

물론 제자가 성인이 돼서 옛 추억을 되새기면서 선생님과 오붓하게 술 한잔 먹는 건 그렇다 치고 지금 난 엄연히 성인도 안 됐고 옛 추억을 되새길 것도 없다.

아니, 있기야 하지만 그건 매일 저분과 험악하게 싸웠던 아름다웠던 시절만이.......

"자, 자."

"......."

그때 이번에는 아예 내 손을 향해 술잔을 쥐어 주는 악어 선생.

그리고 나의 이성은 말하고 있다. 뭔가 있다고!

아니, 처음부터 난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저분이 미친 소리 했을 때부터 말이다.

"저기."

"......?"

"저 이거 마시게 해 놓고 술 먹었다고 학교에 말하려는 속셈 아닌가요?"

흠칫.

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심각하게 흠칫하는 그분.

확실하군.

주목적이 불량 학생 만들기라는 트랩이었다는 걸 말이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갑자기 자신의 본 목적이 밝혀지자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는 악어 선생.

그뿐 아니라 어느새 디카를 꺼내더니 그대로 나를 찍었다.

찰칵!

술잔을 들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하하하하. 끝났다, 이. 성. 민!!"

그 순간 내 사진 한 장 찍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외치는 악어 선생.

하지만 그 말에도 난 표정 하나도 안 변했다.

아까부터 유심하게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진을 찍을 때나 지금 도발할 때나 난 가만히 있었다.

왜 그러냐고?

"죄송하지만, 방금 전 모든 장면은 미리 촬영으로 저장해 놨습니다."

"......!!"

"한마디로 선생님이 술을 권하는 모습이 저에게 있네요."

"무, 무슨!"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이성민!!"

악어 선생은 나의 한마디에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한 마디 하지만, 난 그저 미소만 지어 줄 뿐이다.

저기, 미안하지만 제가 그렇게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이래 봬도 잔대가리는 정말 열심히 단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 요정 덕택에 더욱 말이죠. 훗!

그렇게 그날 악어 선생은 공갈 협박을 하러 왔다가 공갈 협박을 당한 채 가신다.

물론 그 조건은 일주일 뒤에 학교 나가야 하는 걸 후유증이 있을지 모른다고 더 쉬게 해야 한다고 직접 말해 주신다는 거다.

어머나, 선생님도 참!

나를 이렇게나 걱정(?)해 주다니, 참으로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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