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암살자
"아직 멀었어?"
난 피엘을 향해 따분한 얼굴을 한 채 물었다.
그러자 그런 내 말에 피엘은 머리 아프다는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진짜 내가 이 게임을 하고 나서 이렇게 시간 걸리는 일은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나도 처음 본다. 네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은 말이다.
사실 피엘은 무언가 한 가지를 정하면 막 물어뜯는(?) 스타일이어서 아무리 오랜 기간이라고 해도 일주일이면 정보가 뿅 하고 튀어나온다.
한마디로 정보계의 히든 클래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 덕택에 피엘은 어떤 길드라도 스카우트 제의가 쉴 새 없이 들어온다.
그것도 최고로 1년간 100억을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지 아마?
정말 친구라서가 아니라 보면 볼수록 대단한 놈이다.
물론 그렇게 정보력에서는 최고라고 불리는 이 길드가 왜 돈은 다른 정보 길드와 비교하면 상거지 수준인지는 개인적으로 묻고 싶다.
아니, 도대체 직원들 월급이나 제대로 챙겨 주는 거냐? 이때까지 아무런 불만이 없는 걸 봐서는 월급은 챙겨 주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저놈이 아니고 그 밑에 계신 부길마가 온갖 생고생 중이겠지만 말이다.
"뭐지, 진짜? 으윽!"
"......."
그때 피엘이 벽에 매달린 채 서류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
참고로 저건 '진드기의 해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나저나.......
"그 이상한 자세를 안 하면 더 집중이 될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이게 얼마나 집중이 되는 자세인데."
"......."
"이렇게 안 하면 난 작업 효율이 10배나 떨어진다고!"
그러신 거였나.
벽에 달라붙어서 서류를 보는 게 내 입장에서는 신기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으면 작업 효율이 10배나 떨어진단다.
정말 이상한 놈!
역시 전설의 히든 클래스님이 관련된 일이어서 평범하지는 않다.
피엘이 그만큼 시간이 걸리다니.
휴우.......
하지만 뭐 그만큼의 대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은 필수겠지.
그나저나 난 정말 히든 클래스 찾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나 보다.
뭐 남들은 레벨 업 한다고 하고 레어템 먹는다고 돈 번다고 난리치지만, 난 눈에 아무것도 안 들어온다.
일명 히든 클래스 후유증이라고, 이거 걸리는 순간 다른 건 다 귀찮아진다.
오직 내 눈에는 히든만이 보일 뿐이다.
아, 히든! 히든! 그러니 다시 히든의 행복이.......
과연 도대체 나에게 어떤 히든을 내려 주려고 이렇게 큰 고난을 주는 걸까?
이제는 충분하지 않나?
2년 동안 이렇게 초보자로 살게 했으면 말이다.
물론 신의 입장에서는 내게 엄청난 것을 주기 위해서 시련을 주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으니까.
근데 혼자서 이렇게 잡소리를 하는 내가 왠지 슬픈 이유는?
연희 팬클럽.
그들은 엄청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건 바로.......
"성민이 자식을 타도한다!!"
그렇다. 이성민, 감히 자신들의 여신을 상대로 집적거리는(?) 아메바 같은 자식.
참고로 자신들은 꿈에서도 그리지 못한 연희와 같이 다닌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말이다.
현실에서도 예상치 않게 둘의 만남 빈도가 높아서 완전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아예 대놓고 같이 다닌다는 소문이 자신들의 귀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이 퍼지는 순간, 지금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연희의 팬클럽이 그들에게 협력하고 있다.
물론 그 사실도 알고 있다. 성민이라는 인간이 이 게임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미친 초보자 프레젠'이라고 불리면서 정말 건들면 재앙이 닥치는 존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한 최후의 방법은 성금(?)을 모아서 그에게 암살자를 보내는 것이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하지 않았던 다크 샤도우 버스틴을 말이다.
참고로 버스틴의 고용 비용은 일반 암살자의 약 100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역시 연희의 힘은(?) 위대해서 그 성금은 단 한 시간 만에 모아졌다고 하니, 진짜 연희의 팬클럽이 얼마나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가 악마의 초보자 프레젠인가."
한 여자(?)가 웃고 있었다.
프레젠을 보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관찰해야 할 점은 과연 저분이 여자인가?
"우후."
"......."
"우후후."
"......."
난 최악의 무언가를 보고 말았다.
아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지우자. 지우는 거야!!
난 방금 전 아무것도 안 봤어!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선명해지는 그 장면.......
그것도 너무나도 생생해서 미칠 지경이다. 아니, 그뿐 아니라.......
"우우우."
"......."
바로 앞에 계신다.
그 장면을 재현한 분이 말이다.
대략 키는 180cm 정도의 붉은 나노 미니스커트를 입은 한 여자(?).
그리고 머리카락은 갈색에 긴 생머리의 소유자였다.
특히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저 나노 미니스커트의 밑으로 있는 허벅지와 다리, 그리고 울룩불룩한 근육과 털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변태.'
그것도 최종 변기의 변태다.
실제로 저런 변태가 있을 줄이야!
물론 저런 건 가끔씩 들어 본다. 여장을 즐겨 하는 남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진짜 실제로 있었을 줄은 꿈에서도 꾸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대략 여장을 하는 남자는 그래도 곧 죽어도 호리호리한 몸매라든가 여자랑 비슷한 이미지인데 이건 완전히 대충 봐도 100% 자연산 남자다.
그런 남자가 여장을!!
으아악!! 내 눈이, 내 눈이!
"저 어때요? 우우?"
"......."
"하악, 하악."
그때 갑자기 누군가에게 묻는다.
어떻기는!!
지금 당장 그 알 수 없는 변태 짓을 접으라고 권유하고 싶다.
사람은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취미를 막을 권리는 없다.
하지만 이건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 악몽을 선사해 주는 취미다.
그런 취미는 당장 중단되어야!!
그렇지만 괜히 끼어들어서 저 이상한 변태 남자와 엮이는 건 사절이다.
그냥 무시하자.
"거기 멋진 오빠아아."
"......."
"오빠아아아!"
"......."
"아이잉!"
도대체 누군지는 몰라도 죽고 싶을 것이다.
저런 이상 변태에게 오빠라고 불리다니, 진심으로 그 남자에게 명복을 빌어 준다.
그런데 은근히 저 변태 여장 남자의 마음을 뒤흔든 남자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이건 엄연히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호기심이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주변을 살피는데.......
"왜 아무도 없지?"
그렇다.
왜 아무도 없냐는 것이다.
열심히 앞뒤 좌우를 바라보아도 이곳 장소에는 나와 저 변태 인간밖에 안 보인다.
설마? 너무 충격적인 장면에 모두 도망이라도 간 건가?
하지만 너무나도 빠르다.
내가 눈치를 못 챌 정도로 빨리 달아나다니!
역시 인간은 초인적인 존재.......
턱!
짜릿!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고, 난 그 순간 짜릿한 전류를 느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느끼는 짜릿한 전류와는 뭔가 다르다는 걸 미리 말해 둔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기분 더럽고, 무섭고, 온몸을 케찹이가 날름날름 핥는 더러운 기분이라고나 할까.
지금의 짜릿함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때 난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그 미친 변태 남자가 나를 보고 윙크를 날리면서 말했다.
"오빠, 모른 척하기는, 귀엽잖아."
"......."
"헤헤(?)."
"아아악!!"
난 그대로 소리치면서 줄행랑을 쳤다.
"실패인가?"
자신의 미인계(?)를 견디다니 대단하다.
역시 악마의 프레젠이라고 불릴 만하다.
버스틴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회심의(?) 미인계를 파악해 내다니.......
물론 여기서 말하자면, 그 미인계의 성공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남자라면 그 쇼크에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져 버리고, 버스틴의 암살에 당해 버리는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미인계는(?) 엄청나다.
하지만 여기서 버스틴은 자기의 미인계에 너무나도 반해서 남자들이 굳어 버리는 줄 알지만, 남자들이 그런 의미로 굳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무섭고 공포감이 들고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굳어 버릴 뿐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군. 두 번째 작전이다!"
다크 샤도우 버스틴, 단 한 번의 실패도 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전설의 암살자.
하지만 약간 또라이 기질이 많은 암살자였다.
물론 성공률은 정말 100%다.
또라이의 미흡한 점은 엄청난 실력으로 커버하니까 말이다.
정말 어떤 면에서는 대단한 걸지도.......
부들부들.
"서, 선배?"
"주인님, 왜 그러세요?"
부들부들.
난 연희와 이리엘의 질문에도 그저 공포에 질려 있다.
오, 오빠!
온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생전 잘 듣지도 못하는 그 오빠라는 단어를 그런 이상 남자에게 듣다니.......
이건 있어서도 안 돼!!
으아악!
아니, 일단 귀를 맑게 해야 해!
그래, 귀를 맑게!!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나를 걱정하는 연희와 이리엘을 향해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정말 애절한 얼굴과 말투로 말했다.
"나, 나에게 오빠라고 해 줘!!"
"네?!"
"오, 오빠라니요?"
하지만 이런 내 급작스러운 제안에 연희와 이리엘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미안하게도 설명해 줄 시간이 없다.
설명하기에는 너무 쇼크가 큰 상황이고, 그걸 설명하는 와중 또 그 장면을 생각하면 난 정말 정신이 소멸될지도 모른다.
"그냥 이유는 묻지 말고 해 줘! 제발!! 플리즈!!"
"......."
"......."
나의 애타는 재요청에 그녀들은 당황하는 표정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들은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말했다.
"오빠."
"오, 오빠님......."
해 주셨다.
오오! 그, 그래!
바로 오빠라는 단어는 이런 느낌이야!!
막 제대로 된 오빠라는 소리에 내 썩었던 귀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초미소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빠라는 말에 빛이 난다.
찬란한 빛이 말이야.
아 참,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제는 2차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
참고로 그 작업이란.......
물끄러미.
"저기 제 얼굴에 뭐라도?"
"......."
열심히 그녀들 얼굴을 쳐다보는 거다.
그래, 저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척(?)을 하면 그 끔찍했던 변태 남자의 얼굴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효능도 보이는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편 이런 내 반응에 연희와 이리엘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돌리지만, 난 계속해서 눈 세척(?)에 들어갔다.
그런데 워낙 압박이어서 그런지 손쉽게 세척은 안 된다.
제길!
그렇게 모든 세척을 끝낸 나는 조금이지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습이 전체적으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어찌 됐든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렸기에 나의 이런 현상을 연희와 이리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런 내 설명을 들은 그녀들은 다소 충격적인 표정들이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저, 정말이에요, 선배? 실제로 그런 사람이?"
"나노 미니스커트."
그때 연희는 묻고, 이리엘은 나노 미니스커트에 충격 받았다.
세상에 그런 미니스커트가 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단다.
꽁꽁 드레스의 시초자인 그녀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패션 아이템인 것이다.
"연희야, 완전 사실이야."
"......."
"정말 말로 표현하면 한계이지만 실제로 보면...... 아악!"
"선배?!"
그때 나도 모르게 그 장면을 생각해 보고 비명을 질렀다.
이건 누가 생쇼한다고, 오버하지 말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본 적 없는 사람은 말할 자격이 없다.
이건 단순히 상상만으로 만들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물론 여기서 어떤 분들은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진짜 생 걸(?) 보지 않은 자,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아 참, 참고로 그 머리 위에 붉은색 왕 리본도 있었던 것 같기도.......
"휴우......."
난 명상의 시간에 잠겼다.
저번에 이리엘 효과 스페셜을 극복하기 위해서 케찹이와 함께 명상한 이후로 처음이다.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정말 지금 내 심정을 표현하자면, 히든 클래스보다 그 생각이 더 나는 희귀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히든 클래스에 대한 집념이 어느 한 변태 인간에 의해서 무너지다니.......
"......."
"......."
그 순간이었나?
명상에 잠겨 있던 나의 등 뒤로 누군가가 접근했다.
처음 느껴 보는 기운이다.
그뿐 아니라 별로 좋은 의도로 오신 분은 아니라고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미묘한 살기.......
간단히 말해 나의 목숨을 노리고 온 듯싶다.
난 서서히 그런 생각과 함께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한 남자가 복면과 검은색의 옷을 입은 채 단검 한 자루를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계신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한 가지 심각하게 의아한 게 있다.
분명 저 복장으로 봐서는 암살자인 것 같은데 왜 슬며시 다가와서 공격을 하지 않은 거지?
마치 내가 이렇게 자신을 봐주기를 원한 것처럼 말이다.
"난 암살자가 아니다."
"......."
그때 자신이 암살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암살자.
완벽하게 암살자의 표본인데 암살자가 아니라니, 이건 무슨 개뼈다귀 삼계탕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리고 무엇보다.......
"......."
이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다.
온몸을 케찹이가 핥아 대는 정말 더러운 기분.......
어디서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 목소리와 되게 비슷한 목소리를 들어 본 것 같다.
그게 어디였더라?
챙!
내가 생각을 하는 동안 갑자기 단검을 뽑아 드는 그 암살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암살자.
그러고는 거침없이 내게 달려왔다.
물론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으니.......
"난 암살자가 아니다! 우아한 암살자다!"
"......."
암살자는 아니고 우아한 암살자란다.
그건 뭔 의미이고 어떻게 해석 풀이해야 하지?
암살자가 자신은 암살자가 아니라 하고, 그 후에는 우아한 암살자란다.
그 말은 암살자인데 암살...... 아악!!
뭐야! 저 인간, 지금 나랑 말장난 치자는 거냐!
아니, 정확히는 지금 이렇게 삼류 개그로 나의 혼을 빼놓으려는 새로운 암살 계획일지도 모른다.
스르륵.
그 순간 갑자기 그분이 사라져 버렸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기척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마치 유령처럼!!
저 이상한 말장난이나 해 대는 암살자가 이 정도의 실력자라니! 제길!
스윽!
그때 갑자기 사라졌던 기척이 내 등 뒤에서 다시 나타났다.
분명 이동한 기척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는데,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말이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순간 이동 방법이 생각났다.
사실 전투에는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했지만 이 기회를 살려서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방금 전 그 암살자가 있던 자리로 순간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맞춰서 방금 등 뒤에 나타난 암살자의 단검이 허공을 가른다.
"......!!"
한편 내 순간 이동을 본 그 이상한 암살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더니 외쳤다.
"어, 어떻게 거기까지!!"
어떻게는, 내가 히든 클래스에 낚여서 배운 초능력의 일종이다. 왜?
아니, 그것보다.......
"자주 하기는 그러겠군."
살짝 어지럽다.
마구 남발할 기술은 아니라고 초능력 배운 지 한 달 만에 처음 알았다.
"헤이! 주인 뭐 하나?"
"......."
"......."
그때 케찹이가 저 멀리서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면서 한 마디 했다.
그리고 그 케찹이를 보고 살짝 당황하는 그 자칭 우아한 암살자.
그러더니 잠시 후 그는 외쳤다.
"나중을 기약하겠다!!"
"......."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휙 사라져 버렸다.
왜 요정 한 마리가 등장했을 뿐인데 그냥 가 버리는 걸까?
설마 케찹이가 미친 요정이라는 게 벌써 전 세계에 소문이라도 난 거냐.
그래도 저 정도의 실력자가 케찹이를 보고 도망가다니, 뭔가 되게 이상하다.
"어? 저거 뭐야?!"
그때 어느새 내 옆으로 도착한 케찹이가 갑자기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난 그곳을 바라보는데.......
"아임 유얼 빅 백?"
바닥에 글귀가 적혀 있다. 그것도 친절히 한글로 말이다.
분명 내가 봐도 영어인 게 분명한데 이렇게 한글로 적어 주니 정말 뭔가 색다른 기분. 아니, 그것보다.......
"저게 뭔 의미냐......."
아임 유얼 빅 백이라니, 사실 공부하고는 63빌딩 쌓은 나라고 하더라도 저런 미묘한 영어가 없다는 건 진짜 확실히 안다.
그런 단어는 없다고, 차라리 빅뱅이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아, 진짜 저 인간 뭐야!
경고도 남기고 왔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멋진(?) 경고를 말이다.
그나저나 정말 강적이다(?).
웬만하면 자신의 일격이면 다들 그대로 가 버리는데, 자신과 흡사한 기술을 사용해서 탈출하다니.......
이렇게 되면 최종 작전을 사용할 수밖에.......
개인적으로 난 암살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스타일인 건 알고 있다.
워낙 히든 클레스 일 때문에 사건 사고를 가끔씩(?) 생성시키다 보니 좀 그렇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그래도 그나마 꽤나 멀쩡한 암살자들이 오더니, 이번에는 정말 아니다. 완전히 미친놈이다.
그렇지만 단 하나, 실력 하나는 끝장나더라.
단 한 번의 공격이었지만 완전히 기척을 지우고 내 등 뒤로 접근하는 기술.......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만약에 그때 순간 이동이라는 초능력이 없었더라면 최소 못해도 스치기라도 했을 것 같다.
그럼 단검에 기본적으로 묻어 있는 맹독에 의해서 나는 순식간에 불리한 상황으로 돌변했을지도 모른다.
"골치 아프군......."
도대체 그런 엄청난 실력자를 누가 어디서 고용한 것일까.
분명 웬만한 금액으로는 터무니없을 게 분명하다. 확실히 나의 암살을 위해서 엄청난 금액을 투자했을 텐데. 과연 누가.......
번쩍.
그 순간 순간적으로 머리를 지나가는 모 분들.
그렇다! 그분들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테다.
아니, '그럴 게 분명하다'로 수정.
"저기 선배, 왜 그러세요?"
그때 난 나도 모르게 연희를 바라보았고, 연희는 그런 내 모습에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묻는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하기는 무리였기에 난 얼버무렸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리 미소녀랑 다니면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겪으니 참으로 미묘하다.
그뿐 아니라 약간 살짝 맛 간 암살자와의 결투라니.......
물론 실력 하나는 예사롭지 않기는 했지만 말이다.
"성냥 사세요."
"......."
"......."
"성냥 좀 사세요."
"......."
"성냥 좀 사세요. 제발....... 흐흑."
그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내용물(?)은 성냥 좀 사 달라는 내용이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성냥 타령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뭐 성냥은 팔라고 해라.
성냥을 팔든 라이터를 팔든 파이어 볼 스크롤을 팔든 그건 자기 취향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되게 중요한 건 그 성냥을 파는 사람의 외모와 목소리다.
성냥과 외모와 목소리가 뭔 관계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까 봐 말하는데, 대충 성냥 파는 분들은 연약하고 불쌍한 모습이 일단 기본적이다.
그런데 이건 뭐.
"......."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얼마나 튼튼한지 후드가 쫄티가 되는 황당 상황이 발생했다.
한마디로 노가다를 무한으로 뛰어도 문제가 없을 체격이다.
그뿐 아니라 저 목소리, 마치 케찹이가 달라붙어 온몸을 핥는 듯한 목소리다.
참고로 근 시일 내에 많이......!
"......!!"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머릿속을 무언가가 지나가고, 난 나도 모르게 외쳤다.
"그 이상한 암살자?!"
"......!!"
움찔.
내 한마디에 마치 정답이라는 듯 움찔하는 그 성냥팔이 후드 맨.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저 체격이라든가 저 목소리, 그러고 보니!
"그 변태 여장 남자?!"
"......."
모든 진실은 풀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남자의 정체는 나를 암살하러 파견된 암살자였던 것이다.
처음에 그 미친 여장 남자도 저놈이었고, 두 번째 나타나 우아한 암살자라고 하면서 나를 기가 막히게 한 것도 저 인간이었다.
아아악! 이렇게 단순한 걸 왜 이제야 깨닫다니!!
"엄청나군."
"......?"
그때 암살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깔면서 한마디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의 이 완벽한 분장술을 눈치 채다니."
"......."
미친 소리를 하신다.
뭐? 완벽한 분장술? 그냥 지나가면서 있는 나뭇잎을 대충 덮어써도 그 분장술보다는 정말 뛰어날 자신이 있다.
사실 내가 처음 그 변태 남장 여자 때문에 엄청난 쇼크만 받지 않았으면 두 번째로 날 암살하러 왔을 때 동일 인물이라고 파악을 하고도 남았다.
워낙 첫 번째 쇼크가 너무나도 커서 정리가 부족해 못 알아본 거지, 뛰어난 변장술 때문에 못 알아본 건 절대 아니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비처럼 날아 토네이도처럼 돌아서 멋지게 죽여 주지!!"
"......."
그때 그 암살자는 나는 완전히 무시한 채 자기 혼자서 주절거렸다.
사실 다른 암살자였으면 그냥 개소리로 치부했겠지만, 저번에 한 번 부딪친 후 절대 이 암살자는 미친 것과는 다르게 엄청난 실력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 한마디가 괜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스윽.
"헉! 연희야, 물러서!"
난 갑자기 또다시 순간적으로 내 주변에 나타나는 인기척에 연희를 향해 외쳤고, 연희는 그런 내 외침에 거의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미친 암살자는 어느새 나의 등 뒤로 모습을 나타냈다.
역시 전과 동일하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뿅 하고 나타나는 거 말이다.
하지만 그나마 저번에 한 번 겪은 탓에 대응하기로는 수월하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나의 희망과 찬란 파라다이스(?)를 담은 초보자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암살자가 휘두르는 단검과 정확히 부딪쳤다.
콰앙!
콰앙!!
주르륵.
주르륵.
"......!!"
"......!!"
그때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굳어 버렸다.
왜냐고?
단 한 번의 충돌이었다.
그것도 마법이나 기술의 충돌이 아닌 순수한(?) 단검끼리의 충돌.......
하지만 그 충돌로 인해 엄청난 폭발은 기본이고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우리는 거의 몇 미터 이상을 밀려났기 때문이다.
단검과 단검의 부딪침에 의해서.......
"재미있는 단검이군."
"내가 할 말."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부딪쳐서 튕긴 경우는 없었다.
어떤 무기든 일단 닿기만 하면 그 무기는 그냥 싹둑 잘리는 게 기본일 정도로 나의 이 무기는 정말 과학의(?) 집결체다.
그런데 이렇게 강력한 폭발과 함께 밀어내다니, 저 단검 뭐 하는 단검인지는 모르겠지만 칭찬을 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
암살자는 자신의 단검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어느새 살짝 금이 가 버렸기 때문이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한 두세 번이면 그 단검 부서질 것 같지 않아?"
"......."
"뭐 아쉽게도 내 쪽이 승리네."
"......."
오직 검에 모든 걸 바친 나다.
저게 최소 못해도 전설급 무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초보자 단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내가 여기에 투자한 금액만 해도 울트라 스페셜 급이거든.
"신급 아이템인가?!"
내 단검을 보고 암살자가 중얼거렸다.
난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초보자 무기."
"......."
"하지만 일반적인 무기는 아니고, 나의 정열이 담긴 무기지."
그렇다.
나의 뜨거운 정열이 담긴 무기라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미치도록 한 무기에 이렇게 다 발라 버리면 아무리 허접한 초보자 무기라도 신급 무기에 육박해진다는 게 확실하게 증명된 순간이다.
어찌 됐든 그런 내 말에 약간 당황한 그 미친 암살자는 잠시 후 다시 자세를 잡더니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무기가 한 개가 아니다......!"
"그러셔야지."
당연히 무기가 한 개만 있으면 되나, 암살자님이 말이다.
자, 덤비라고!!
오랜만에 강자와 붙는 기분은 꽤나 좋으니까 말이야.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최대한 전투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카오스 엔딘을 제외하고는 정말 저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남자는 처음이다. 그것도 암살자가 말이다.
만약에 저자가 좀 똑똑해서 진짜 암살자처럼 공격했다면 정말 아찔해질 정도니까.
"......!"
"......?"
그런데 그때 갑자기 금방이라도 치고 들어올 듯 모션을 취하던 그 암살자는 잠시 후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나중을 기약하겠다!!"
"......."
"마법 소녀 리에가 할 시간이다!! 아, 참고로 엄청 재밌으니 너도 보도록."
"......."
"그럼!!"
"......."
스윽!
그 말과 함께 그는 마치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이건 뭐냐?
지금 최고로 긴장감을 끌어올린 나는 뭐가 된 거냐?
아니, 그것보다 마법 소녀 리에라니, 설마 그걸 핑계로 도망가는 거야?
하지만 내가 봐서는 도망은 아닌 것 같다.
진짜 왠지 모르게 마법 소녀 리에 보러 가느라 암살 접은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