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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케찹이의 누나 (37/100)

제4장 케찹이의 누나

천만다행이었다.

불순 이성 교제로 체포 안 돼서 말이다.

근데 왜 거기서 불순 이성 교제가 성립되는지 참으로 모르겠다.

단지 집에서 키스했다고 불순 이성 교제가 성립이 되면, 아니 그 후의 일도 미리 계산에 넣는 건가?

하지만 진짜 은애는 그저 나를 위해서 그 첫 키스를 희생(?)했을 뿐이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왜 자꾸 은애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거지?

"저기 선배,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니. 아, 아무 일도 없어!!"

"......."

"절대로 없어. 네버, 네버!"

"......."

그때 난 갑작스럽게 다가와 묻는 연희에게 필사적으로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왠지 모르게 은애와 있었던 일들을 말하기는 정말 곤란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다 공통되겠지만 말이다.

"그, 그런가요?"

그런 내 반응을 보고 은희는 살짝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런 연희를 향해 무심결에 말했다.

"우, 우리 쇼, 쇼핑 갈까?"

"쇼핑이요?"

"응. 연희한테 제대로 선물도 못해 준 것 같아서 무기라도 하나 해 주려고."

"서, 선배......."

"......."

그 말에 연희는 무척이나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선물 하나에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나도 뿌듯하다.

개인적으로 돈만 많다면 마구 사 주고 싶지만, 내 재정 상태는 거의 거지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어서 말이다.

아니, 무기 강화하는 돈 아주 일부분만 아꼈어도 슈퍼 재벌이었을지도.

"비, 비상이야!!"

"......."

"......."

"비, 비상! 비상! 비상!"

그때 연희의 물건을 사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갑자기 한 마리의 요정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이름은 케찹이라는 전설의 요정이었다.

"뭔 소란이야."

"크, 큰일 났어!!"

"......."

"큰 재앙이 일어날 거야!!"

"......??"

갑자기 케찹이가 큰 재앙 타령을 했다.

뭐지? 큰 재앙이라니?

드래곤조차도 때려잡는 케찹이가 그런 엄청난 표현을 쓰다니! 설마 대마왕이라도 부활한 시추에이션인 거냐?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격한 표현은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내 예상과는 다른 말이 들려왔다.

"마녀가 떴어!!"

"마녀?"

"마녀요?"

마녀가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녀라는 말에 나와 연희는 한 마디씩 묻고는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마녀라니, 이건 뭔 맨땅에 헤딩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대충 뭐라도 설명해 주든가.

갑자기 와서 마녀 떴다고 하면 우리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리가 없잖니!

"서, 설명은 나중에 해 줄게!! 어서 피해야 돼! 마녀가 오는 순간 이 세상은 종말(?)을......."

"누가 마녀야?"

"......."

그때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케찹이 등 뒤를 점령한 한 요정이 있었다.

상당한 귀여운 여자 요정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여자 요정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한편 여자 요정의 목소리를 들은 케찹이는 서서히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누님!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정말 보고 싶었어요, 누님!!"

마구 절까지 하면서 반긴다(?).

아니, 저게 반기는 걸까? 내가 보기에는 전혀 반기는 모션은 아닌 듯싶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케찹이의 누나?"

저 귀여운 여자 요정이, 그 어떤 요정보다 귀여워 보이는 요정이 케찹이...... 누나?

그리고 저 불량 요정이 알아서 기다니, 이건 왠지 장난이 아니다.

무언가 있을 것 같은 저 케찹이 누나, 설마 케찹이처럼 엄청난 분이면 어떡하지?

난 여자랑은 부딪치는 게 별로 싫은데.......

하지만 이런 나의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항상 제 동생이 신세를 지고 있어서 송구스러운 마음뿐이었는데, 이제야 인사를 드리네요."

"......."

너무 멋진 요정이었다.

"주인님, 사랑해요!"

"......."

"주인님, 전 주인님 말이라면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

난 케찹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도 미친놈 바라보듯이 말이다.

저 자식 대낮에 술 처먹었나,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난리냐.

아니, 술 처먹어도 저런 짓은 안 하는데.......

갑자기 이런 이상한 행동은 나를 정말 당혹스럽게 했다.

"저기 혹시 케찹이가 속상하게 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나요?"

"......."

그때 갑자기 케찹이의 누나 사렌이 질문을 던졌다.

난 그 말에 당장 얘기하고 싶었다. 케찹이가 한 만행들을 말이다.

하지만 저 뒤에서 막 눈물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는 케찹이 때문에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간의 정도 있으니까 말이다.

"정말 착한 요정......."

"휴우, 다행이네요."

내 입에서 착한 요정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건 구라도 너무 큰 구라다. 전문 용어로 빅 핵 구라?

"근데 그건 왜 묻는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말을 놓은 내게 사렌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라도 민폐가 되었다면 다시는 민폐가 안 되도록 제가 사랑해 주려고요."

"......."

흠, 정말 말하고 싶군.

다시는 민폐가 안 되도록 사랑해 준다는 말이 이렇게 끌리기는 처음이다.

"아 참, 혹시 하나 물어도 될까요?"

"......??"

그때 갑자기 사렌은 나를 향해 말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뭘 묻는다는 거지?

어찌 됐든 뭐 별 상관은 없기에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내 모습에 사렌은 한마디 했다.

"혹시 욕하는 요정 아세요?"

"......."

"제가 듣기로는 어떤 한 요정이 주인한테 욕을 한다고 해서요."

"......."

저기 바로 뒤에, 당신의 바로 뒤에 있습니다. 그것도 동생 군이 말입니다.

하지만 차마 이것도 내가 말하기가 그렇다. 저 뒤에서 펑펑 울고 있는 케찹이를 보니 말이다.

"그런 건 왜 묻는 거야?"

"당연히......."

"당연히?"

"저희 요정들의 위신을 떨어뜨린 존재인 만큼 밟아 죽이려고요."

싱긋.

"......."

"......."

"......."

그 말과 함께 웃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케찹이의 경우 얼굴이 시퍼레졌다. 뭔 파래 친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저 귀여운 외모에서 저런 살벌한 포스의 말이 나오다니.......

밟아 죽인다니, 도대체 그건 어떻게 죽이려는 걸까?

왠지 생각만으로도 뭔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아. 제가 실례를 한 건지 모르겠네요. 괜히 나타나서......."

"아, 아니, 상관없어. 있고 싶으면 뭐 언제든지."

난 예의상 한마디 던졌다.

하지만 그 말에 사렌은 기쁜 듯 말했다.

"정말요?"

"......."

"정말로 있고 싶으면 있어도 되나요?"

"......."

사렌은 그 예의상 한 한마디를 그대로 받아 주었다.

너무 잘 받아 줘서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기서 저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귀여운 사렌에게 또 안 된다고 하기는 그렇고, 연희와 이리엘에게도 왠지 여자 요정이 있으면 괜찮을지도.......

"이 씹탱구!!"

"......."

"니가 주인이야! 그 마녀를!!"

"......."

"넌 인간도 아냐! 이 삐리삐리삐리(자체 모자이크)!!"

내가 사렌을 받아들이자마자 캐찹이는 완전 난리가 났다.

아니, 그것보다.......

"이 자식이 목숨을 살려 주니 이런 식으로 갚네."

"......."

"지금이라도 네 누님에게 진실을 말할까?"

덥석.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케찹이가 나에게 넙죽 절을 했다.

그러더니 웃으며 말했다.

"장난이었습니다."

"......."

"완전 장난이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도대체 그분 뭐 하는 분이면 이 건방지고 사악하고 악마보다 못된 케찹이가 이렇게 질질 끌려 다니며 그러는 걸까?

왠지 모르게 궁금해진다.

그리고 난 케찹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케찹이가 어렸을 때란다.

자기 말로는 순수하게 놀고 있었단다.

난 참고로 여기서 묻고 싶다. 그 순수하게 논 기준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아니, 당연한 말이지만 구라일 게 분명하다.

내가 생각하는 케찹이의 어렸을 때 모습은 착한 요정들 위에서 마구 군림하는 대악마의 포스이니까 말이다.

그때 케찹이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그냥 놀고 있던 날 갑자기 누나가 웃으면서 잡으러 왔어."

"......."

"난 영문을 몰랐지. 왜 가만히 있는 날 잡으러 온 건지 말이야."

"......."

진짜 가만히 있었냐? 진짜로?

이런, 개구라 치고 있네. 네놈이 분명 어떤 무지막지한 잘못을 했을 게 분명하다.

가만히 있는 너를 왜 끌고 가겠냐?

좀 거짓말을 하려면 좀 더 유익한(?) 거짓말을 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뭐 그래도 일단은 나머지를 들어 봐 줄까?

"난 정말 갑자기 뜬금없이 한 동굴에 끌려갔어. 그리고 거기서 난 엄청난 걸 당했지. 엄청난 걸......."

"그게 뭔데?"

"구타."

"......."

"누나는 날 사흘간 동굴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한 뒤 때렸어. 정말 연약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말이야."

"......."

"그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잠시 물 먹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어. 하지만 물 먹이고 또 팼어. 그렇게 사흘을 한숨도 안 자고 맞았지."

글썽.

그때 예전의 잔혹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케찹이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괜히 보는 내가 불쌍해 보일 정도다.

그나저나 사흘 동안 물만 먹이고 팰 정도면 정말 예사로운 실력이 아니다.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말이다.

이건 거의 전설에 육박하는 신선(?)들만이 할 수 있는 범위다.

사실 나도 그건 불가능하다.

어떻게 인간이, 아니 요정이 사흘 동안 구타를 할 수 있지?

그리고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저 케찹이가 저렇게 두려워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근데 진짜 여기서 궁금한데.......

"뭔 사고 친 거냐?"

"......?"

"진짜 아무 이유 없이 끌고 가서 너를 팬 거야? 네 누나가?"

"무, 물론."

"......."

"알잖아. 내가 얼마나 진실만을 사랑하는지."

"풋."

"......."

진실만을 사랑한단다.

난 네가 진실이를(?) 사랑한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고, 앞으로도 알 것 같지 않은데.......

정말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제발 거짓말도 좀 더 유익한 거짓말을 했으면 하는 게 나의 자그마한 바람이다.

그나마 케찹이에게는 행복한 소식이 들려왔다.

사렌이 급히 일이 있어서 금세 어디론가 가야 했던 것이다.

난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녀가 있는 동안은 정말 요정다운 요정의 케찹이였는데.

이제 사라지니 또 막 나가는 요정 되겠다.

아, 물론 한마디 하는 건 잊지 않았다.

"케찹이 주인님, 다시 올게요. 그리고 욕하는 요정을 발견하시거나 케찹이가 무례를 범하면 저에게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

케찹이에게 참으로 악몽 같은 한마디 던지고 가 버린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거면 어떤 거지?"

왠지 그게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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