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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술 (30/100)

제14장 술

이제 명상(?)의 시간도 끝났으니, 다음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할 듯싶다.

그건 바로.......

"무기 수리 겸 내구도."

내 단검에 관한 일이다.

이제 더 이상은 지겹다. 이런 허접한 내구도, 웃긴 내구도, 미친 내구도 말이다.

나도 좀 더 아름다운 내구도를 가진 무기를 사용하고 싶단 말이다!

아무리 무기가 좋으면 뭐 하냐? 몇 번 쓰면 그 모양인데.......

그러니 이번 목적은 무기 수리 겸 내구도 업데이트다.

"앗! 주인, 히든 클래스에 대한 정보가!"

"어디냐!! 고, 고, 고!!"

"......."

그때 갑자기 한마디 던지는 케찹이의 말에 난 당장 목적을 변경했다.

무기가 허접스러우면 어떠냐?!

히든 클래스다! 으악!

하지만 이런 내 격렬한 반응을 본 케찹이는 피식 웃었다.

"......."

그러고는 비웃음 띤 어조로 말했다.

"구란데, 구란데, 구란데. 멍청이 주인!!"

"......."

"푸헤헤헤!"

"......."

"다른 것은 잘 안 속아 넘어가도 히든 클래스 이야기만 나오면, 주인이 반 또라이......."

퍽!

"아아악!!"

그때 케찹이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미 익숙한 비명과 함께 저 멀리 천공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난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타격감이 좋은데?"

사실 드워프를 만났다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가뭄에 슈퍼맨(?)이 바닥에서 튀어나올 확률만큼은 있다.

간단하게 말해 아주 드문 확률이다.

어찌 됐든 이런 확률로 드워프를 만나는 걸 기다리느니, 차라리 명상에 잠긴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유익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마땅하게 드워프 씨를 찾는 방법도 없고,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하다.

뭐 드워프가 좋아하는 걸로 유혹하는.......

"술!!"

그때 갑자기 내 머리를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 드워프들은 술이라면 환장하지!!

그것도 완전 비싼 술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비싼 술이라.......

난 거지인데?

"물 타면 되지."

"......."

"돈 없으면 술에 물 타면 되지."

"......."

그때 케찹이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일명 '돈 없으면 물 타면 되지' 노래.

내가 원래 케찹이의 생각에는 별로 동조를 안 하지만, 이번에는 마구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 술에 물 타자!!

내가 구해 온 술은 베라타나카나.

일명 1억 금화(현금 1억)에 달한다는 전설의 술이다.

물론 난 이걸 엄청 싼 가격에 샀다.

그 비밀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케찹아, 물."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케찹이는 물을 가져온다.

그러고는 곧바로 술병에 물을 섞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난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 물을 탄 전설의 술 냄새를 맡기 위해 병 쪽으로 코를 다가갔다.

일단 물을 타더라도 상대방에게 진짜라고 믿게 할 수준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 맹물 냄새만 나지?"

"......."

물을 너무 많이 탔나?

술 냄새는커녕 완전 물 냄새만 난다. 그것도 맹물 냄새.

"저기, 주인 군."

"......?"

"물이 99.9% 들어갔으니 물 냄새만 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

"물을 타려면 비율이 있어야지. 이건 한 방울도 아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양을 들고 와서 물 타면 당연히 물 냄새만 나지."

헉! 그럴 수가?

물 타는 데에도 비법(?)이 있단 말인가?!

그냥 대략 물 타면 되지, 뭐 그런 고난이도의 방법을.......

하지만 난 그런 돈은 없단 말이다......!!

"걱정 마, 주인."

"......?"

그때 절망하던 나를 향해 케찹이가 싱긋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해맑다.

"내가 또 술 타는 데는 전설임."

"......."

"모든 술을 준비해 줘."

난 케찹이의 요청대로 모든 술을 준비했다.

소주, 맥주, 와인, 칵테일, 막걸리, 데킬라, 사케, 포도주, 청주, 위스키, 브랜디, 럼, 보드카, 진, 백주 등등 정말 내 힘이 닿는 대로 최대한 다양한 술을 구해 왔다.

추가로 조합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주 허름한 빈 건물을 아주 짧은 시간 빌렸다.

한편 그 엄청난 술을 본 케찹이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휴우....... 이제 조제에 들어갈게."

"......."

"자리를 비켜 줬으면 해. 나의 특수 제조법이어서."

케찹이는 자리까지 비켜 달라고 했다.

도대체 뭔 짓을 하려고 자리까지 비켜 달라는지 모르겠다만, 아까부터 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봐서는 확실히 뭔가 있다.

확실히.......

콰앙!!

"......?!"

난 갑자기 임시로 잠시 빌린 건물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자, 깜짝 놀랐다.

뭔 일이냐, 이건!

누가 습격한 거냐?!

누구지? 또 어떤 자식들이야!

나는 당장 습격한 범인을 찾기 위해서 그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그런데.......

"......."

습격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습격자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인다.

그저 검게 탄 요정 한 마리가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을 뿐이다.

난 그걸 보고 뭔가 느꼈다.

그리고 그건.......

"술 타다가 폭발...... 일어난 거?"

케찹이 따위에게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기대할 요정이 없어서 케찹이에게 기대하다니.......

이런 미친!

어찌 됐든 난 그 빌린 건물 값까지 다 배상해야 했고, 다양한 술을 사는 데 사용한 돈은 그냥 펄펄 증발해 버렸다.

한편 케찹이는 그런 자신의 중대한 잘못은 전혀 자각이 안 되는지, 죽고 싶어 환장할 소리만 하고 있다.

"원래 너무 완벽하면 그렇잖아?"

"......."

"이런 실수 정도는 이해해 줘야지."

케찹아, 케찹아.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니?

그렇게 원한다면 소원을 이루어 주마. 으하하하!

"아, 맞다!! 주인! 그, 그러고 보니 나 드워프 찾는 혁명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어!"

"......."

"완벽한 방법이야!!"

그때 서서히 심상치 않은 표정을 느꼈는지 케찹이는 얼른 말을 바꿨다.

드워프를 찾는 혁명적인 방법이라.......

혁명적이지 않으면 너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한편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케찹이는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드래곤을 찾는 거야!!"

"......."

"원래 드래곤과 드워프 사이가 끈적끈적하잖아."

드래곤을 찾자고 한다.

드래곤이라.......

흐음....... 확실히 케찹이 말대로 드래곤과 드워프는 끈적끈적한 사이다.

정말 끈적거리다 못해 눈물이 나올 정도지.

한데 여기서 문제점은, 드래곤님들도 잘 안 보이는데?

물론 드워프보다는 덩치가 커서 그런지, 아니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자주 보이기는 한다.

그렇다고 손쉽게 볼 수 있는 분들도 아니다.

추가로 잘못 만났다가 그대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고 말이다.

그래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드워프 찾는 확률보다 드래곤 찾는 확률이 더 높다면, 드래곤을 만나는 게 혁명할 것 같으니까.

난 그런 생각이 들자, 케찹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런 내 눈빛을 본 케찹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 나?"

"그럼."

"......."

"어서 갔다 오렴."

"저기, 요새 내가 좀 바쁜데......."

별로 안 바빠 보인다.

네놈처럼 한가한 요정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라.

한편 내가 그런 생각과 함께 지그시 바라보자, 케찹이는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아, 알았어! 가, 가면 되잖아!! 드래곤 찾으러 간다고!!"

그러면서 쌩 하고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난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란?

"왜 저렇게 손쉽게 가는 거지?"

바로 이거다.

왜 케찹 군은 오늘따라 아무 말 없이 순순히 가는 걸까?

평소 같았으면 지랄하고 욕하고 생 쇼를 할 분이 말이다.

간단하게 말해 케찹이가 안 하던 짓을 하니, 기분이 참 더럽다.

"후후후."

케찹이는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의 이유는 바로.......

"내가 미쳤다고 드래곤 찾고 다님?"

이거였다.

처음부터 케찹이는 드래곤을 찾는 마음은 쥐꼬리만큼도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자유 시간을 위해서 찾는다고 말했을 뿐인 것이다.

물론 저 악독 주인이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무슨 이상한 실을 자신에게 묶어 둔 걸 저번에 확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케찹이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그걸 피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멋진(?) 작전을 말이다.

"케, 케찹아, 왜, 왜 불렀어?"

케찹이가 불러서 거의 강제로 불려 나온 비운의 요정 파르텐.

파르텐은 케찹이가 정말 무서웠다.

케찹이의 명성은 요정계에서도 크게 알려져 있고, 그뿐 아니라 자신 역시 예전부터 케찹이가 너무 두려웠다.

한편 케찹이는 갑자기 그런 파르텐을 보더니 말했다.

"대타 좀 해."

"......?"

"나 대신 말이야."

"......."

하지만 파르텐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대타라니? 나 대신이라니?

도대체 케찹이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 순간 케찹이는 갑자기 자기 몸에서 뭔가 이상한 실을 꺼내더니, 그 실을 파르텐에게 묶어 버렸다.

한편 갑자기 케찹이가 자신의 몸에 뭘 묶어 버리자, 파르텐은 크게 당황했다.

그 모습을 케찹이는 참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지금부터 쉬지 말고 싸돌아다녀."

"에에?"

"절대 쉬면 안 됨. 왕복하지 말고, 새로운 곳으로 무조건 싸돌아다녀야 함."

"저, 저기 케찹아, 무슨 말이야?"

"그냥 닥치고 하세요."

"......."

"불만 있어?"

"어, 없어."

"후후."

"......."

불만이야 넘쳐흐르지만 그런 말 했다가는 오늘 요정 인생 종칠 것 같아서, 파르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간단히 말해, 케찹이는 오늘 자신을 대타로 파르텐에게 돌아다니게 해서 실을 풀게 한 뒤 자신은 그 시간에 열심히 놀려는 엄청난 술수를 부린 것이다.

정말 이런 쪽으로는 천재인 케찹이었다.

"......."

"......."

난 열심히 풀리고 있는 실을 주시했다.

실이 풀린다=케찹이가 열심히 정찰한다.

이게 지금 이 실의 원리이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하는데?"

기분 나쁠 정도로 열심히 한다. 실이 마구 풀릴 정도이니 말이다.

웬만큼 열심히 안 하면 이렇게 안 된다.

"주인님, 왜 그러세요?"

한편 실을 주시하고 있는 나를 향해 이리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연희 역시 이리엘과 마찬가지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그녀들을 향해 뭔가 이상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흠, 너무 열심히 정찰해서."

"......."

"......."

그래, 진짜 열심히 정찰하면 드디어 개과천선했다면서 좋아해야 할 나다.

하지만 그 케찹이 자식이 개과천선 따위는 죽어도 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 이렇게 열심히 하니까 뭔가 이상한 것이다.

"원래 케찹 님은 성실하니 당연한 거 아닌가요, 선배?"

"......."

그때 아직도 케찹이의 본성을 파악 못한 연희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정말 이런 쪽으로는 연희 양 눈치 없다.

어딜 봐서 그게 성실 범위 안에 들어가는 건지.......

성실이 다 얼어 죽어도 그건 아니다.

하지만 고자질하면 뭔가 없어 보이고, 무엇보다 케찹이 자식이 꾸준히 연희 앞에서는 연기를 하고 있으니.

제길, 언젠가는 꼭 연희가 진실을 보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아참, 이게 아니라 분명 뭔가 있다.

"조사해야겠어."

"......."

"......."

조사해야겠다.

너무 열심히 한다. 그것도 그 누구도 아닌 케찹이가.......

그래서 난 조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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