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요정계
난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서 이렇게 두렵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원인은 바로 요정계의 대장 케찹이 아빠.
내가 케찹이와 2년간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존재다. 아니, 사실은 있는지도 몰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두렵다(그래서 나와 케찹이만 왔다. 여자들이 보기에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 묘사될 확률이 높아서. 그리고 길쉬는 여자들의 보디가드로 버리...... 아니, 놔두고 왔다).
케찹이 아빠라니, 케찹이가 저 꼬라지인데 케찹이 아버지는......?
아니다. 꼭 닮는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케찹이 아빠는 근엄하고 멋진 요정일......지도 모른다고 기대가 안 된다.
척!
척!
그때 어느새 요정들이 사는 지역으로 입장하자마자 요정들이 우리를 반긴다.
아니 잠시, 저게 반기는 건가?
보통 요정들이 반기는 건 막 온 사람들 주변을 맴돌면서 반기는 그런 거 아냐?
근데 이건 어찌 조직 냄새가 날까?
무슨 말인고 하면, 우리를 중심으로 요정들이 각 맞춰서 두 줄로 쭉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고개를 90도로 푹 숙이고 있다.
원래 요정 인사법이...... 이랬나?
"야!!"
"......."
그때 케찹이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리고 난 케찹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케찹이는 한 요정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 자식, 자세가 틀렸잖아!"
"미, 미안해."
"어서 줄 잘 서!!"
"아, 알았어."
줄 흐트러진 요정을 탓하고 있다.
왜 네가 줄 잘못 선 요정을 핍박하냐?
아니, 네놈이 잘하면 내가 말도 안 한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리를 지나가는 한 가지 엄청난 사실이 있었다.
이들의 이상 행동, 그리고 케찹이의 저 뿌듯해 하는 얼굴.......
설마!
"이거 네가 시킨 거냐?"
"어."
"......."
"왠지 환영 인사가 감칠맛 나잖아. 그래서 개편했어."
"......."
개편이라.......
그래, 좀 색다른 건 필요하지. 색다른 건 말이다.
하지만.......
"요정한테 이 따위를 시키는 요정이 어디 있어!!"
퍽!
"으악!!"
난 파리채 블로킹으로 그대로 케찹이를 바닥으로 내려찍으면서 외쳤고, 그 모습에 케찹이는 비명을 지르고 갑자기 아래로 하락했다.
아, 저 자식 누굴 닮아서 저런 거야!!
어떻게 요정들한테 그런 저질적인 인사법을 시키는 거냐? 요정은 요정다워야 한다고! 이 빌어먹을 놈아!
난 케찹이의 만행에 정말 어이가 없어서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웅성웅성.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정들이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씩 던지는데.......
"아, 악마 케찹이를 때리다니!!"
"무, 무서워."
"케, 케찹이를...... 저렇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여, 역시 소문대로 케찹이의 주인님은 대악마?"
"그, 그런 것 같아."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하신다.
대악마라니, 케찹이가 원래 악마 요정이라는 건 대략 알고 있었지만 그의 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악마라니.......
아악! 이게 뭐야? 난 요정들한테 이런 이미지였던 거냐?!
그것도 그 주요 원인은 어떤 미친 요정 때문에?
오해를 풀어 주고 싶었지만, 믿지도 않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저 난 케찹이의 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요정들에게 대악마로 각인된 것이다.
흑흑, 이렇게 억울하기는 또 처음이다.
어찌 됐든 난 대악마라는 누명을 쓴 채 케찹이의 아버지를 만나러 움직였다.
"어서 오십시오."
"......?!"
그 순간 갑자기 요정 하나가 내 앞에 뿅 하고 나타났다.
그냥 나타난 것도 아니고 진짜 뿅 나타났다.
도대체 무슨 재주를 부리면 뿅 하고 나타나는 거지?!
참으로 신기한 재주이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그 요정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케찹이 아비 되는 요정입니다."
"......!!"
케찹이 아비? 한마디로 케찹이 아버지?!
저, 저분이?
난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케찹이 아버지라고 소개한 요정을 바라보았다.
케찹이와 다르게 완전히 카리스마와 매너, 예의까지 갖춘 반듯한 요정이다.
그런 요정이 저 불량 요정 케찹이 아버지?!
"헤이, 아비! 하이!"
"......."
"......."
"......."
그때 케찹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참으로 귀여운(?) 짓거리를 하신다.
'헤이, 아비! 하이!'가 도대체 뭔 말인지.......
참으로 해석하기 난해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참으로 싸가지 밥 말아먹은 인사법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퍽!
"아악!!"
"......."
"......."
갑자기 비명과 함께 케찹이가 무지막지하게 날아가고 있다.
난 그 모습에 갑자기 경직됐다.
왜냐고?
"이 버릇없는 자식이, 내가 너를 그리 키웠느냐!!"
"......."
역정을 내시는 케찹이 아버지 덕택이다.
아니, 저 케찹이 아버지 뭐지?
정말 왠지 모르게 내가 생각했던 케찹이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다.
분명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상한 아버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반대인 것이다.
한편 저기로 날아간 케찹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따졌다.
"내가 동네북이야?"
"......."
"왜 자꾸 때리고 난리야?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야!!"
참으로 버릇없게도 반항을 한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찹이 아버지는 너무나도 참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침체된 어조로 말했다.
"제가...... 자식을 잘못 키운 죄입니다."
"아, 아닙니다."
"아뇨. 제 죄입니다."
"......."
"죄송합니다."
그분은 아들을 대신해서 사과하신다.
크윽! 아들의 잘못을 대신해서 사과하는 저 아버지의 모습이라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하다.
아니, 그것보다 난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케찹이 아버지는 진짜 나름대로 열심히 케찹이를 키웠다. 하지만 케찹이 본성 자체가 악마성(?)이 가득해서 교화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말해 케찹이 아버지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풋! 생 쇼 하시네."
"......."
"......."
그때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하는 케찹이.......
생 쇼를 하신단다, 주인한테. 심지어는 아버지한테 생 쇼를 하신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역시 케찹이답다고 해야 하나?
그 순간 케찹이의 말이 이어졌다.
"어이! 주인탱구, 영감탱구! 작작 오버하쇼."
아, 이 통탄할 요정 한 마리가 이제 갈 때까지 갔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때 갑작스럽게 케찹이 아버지와 난 시선이 마주쳤다.
그와 함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느낀다.
잠시 후.
"크로스!!"
"크로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정말 공통된 마음으로 외쳤다.
뭐 누구 덕택에.......
"......."
케찹이는 이미 실신 상태다.
그저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만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어찌 됐든 우리는 서로 무언가 동질감을 느꼈다. 케찹이를 밟으면서 말이다.
그 순간 케찹이 아버지님은 나를 보더니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용건이 있으신 것 같은데."
"......."
딱 보면 견적이 나오는 건가?
아니, 내가 굳이 이곳에 찾아오는 이유가 뭔 용건이 없으면 찾아올 이유가 없으니까.
어찌 됐든 뭐 저쪽에서 저렇게 나온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저기, 암호에 관한 일 때문에......."
"아, 암호?!"
"네."
"......!"
암호라는 말에 갑자기 그분이 눈을 반짝였다.
케찹이 말대로 정말 암호라면 환장하시는 타입 같아 보인다. 저렇게 눈이 반짝거리는 건 진짜 웬만해서는 못하거든.
난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그분을 향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