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사신의 스케이트
"내가 여기에 온 거 오랜만이지?"
"......."
진짜 오랜만이다.
한 몇 달 만에 방문한 것 같으니 말이다.
요새 히든 클래스 찾는다고 하도 돌아다녀서 정말 이곳에 들를 기회가 무척이나 없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왔는데, 이 푸대접은......."
그렇다. 정말 오랜만에 왔는데 푸대접이다.
스케이트 씨는 자신의 집무실에 앉혀 놓고 말도 안 하고 자신의 일만 보고 있다.
참고로 연희와 이리엘, 에렐한테 눈길조차도 안 준다.
궁극의 미소녀들을 놔두고 이런 허접한(?) 반응을 보이는 스케이트,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난 정말 궁금하다.
한편 열심히 서류를 작성하고 있던 스케이트가 무뚝뚝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용건이지?"
"......."
진짜 너무하잖아? 나 정말 오랜만에 온 손님이라고! 그런데 이 찬밥 대우는 뭐냐!
물론 저 자식이 다른 사람 만나 주는 것만으로도 혁명에 가까운 일이다.
그만큼 저분은 융통성은 어디다 갖다 버렸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도 충분한 아름다운 대접이라고 생각......을 해야 된다. 쳇!
어찌 됐든 용건을 물었다면 말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난 셀프로 근처에 있던 차를 가져와서 여자들에게 타 주면서(뭔가 이상하다. 나 손님인데) 물었다.
"요새 길드마다 히든 클래스 정보 때문에 난리지?"
"그렇다."
"......."
참으로 깔끔한 설명이다.
난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그 히든 클래스 찾는 길드 중에서 유난히 난리 법석 떠는 대규모 길드 있어?"
이게 중요하다. 아무래도 대규모 길드인 건 거의 확실하니 꽤나 요란한 집부터 뒤지면 그 미친 꽃을 찾아간 범인 길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한편 그 말에 계속해서 서류를 뒤적이던 스케이트는 간단하게 말했다.
"모르탄 길드."
"엥? 모르탄 길드?"
난 생전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길드 소속이 아니어서 길드에는 관심을 끄고 산다지만, 최소한 못해도 대규모 길드는 알고 있다.
그런데 모르탄 길드는 정말 처음 듣는다.
"신생 길드다. 부잣집 도련님들이 만든 곳이지. 그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한다. 그래서 내가 주시하고 있지."
"호오?"
난 덧붙여서 말해 주는 스케이트의 말에 감 잡았다.
특히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는 것, 이 말이 확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아저씨(?)가 주시하고 있다는 건 이미 상당한 위험 수위를 넘어갔다는 거다.
저 아저씨는 웬만해서는 다른 데 주시를 안 하는 아저씨라 말이지.......
스윽.
그때 스케이트는 갑자기 책상 서랍을 열더니 무척이나 두꺼운, 한마디로 전화번호부 네다섯 배 이상의 굵기를 가진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러고는 말했다.
"찾아서 봐라."
저기, 너무 두꺼운데 좀 찾아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그렇게 물어봐도 저 아저씨는 묵묵부답이겠지.
여기는 원래 셀프 지역이거든.
10시간이 지났다.
연희는 이미 로그아웃을 한 상태다. 그리고 이리엘과 에렐은 피곤했는지 그대로 소파에서 잠들어 버렸다.
특히 이리엘은 과대망상증이 계신 분이어서 절대 아무 데서나 안 자는데, 요새 좀 피곤했나 보다.
길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슨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러 간다고 하던데.......
마지막으로 케찹...... 군은 관심 없다.
그나저나.......
"완전 독종이야."
난 거의 무념무상으로 종이를 넘기면서 어떻게 10시간 동안 서류 정리를 하는지 저분이 감탄스러웠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괴수다.
그리고 추가로 피엘이 보고 배우면 상당히 좋을 면모다.
그 순간 마지막 서류를 넘기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분, 정말 독종 중의 독종이다.
한편 그는 드디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스케이트는 차가운 표정에 꽤나 잘생긴 얼굴이 인상적인 남자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고 카리스마가 철철 흘러서 넘쳐흐르는 분위기까지, 역시 최고의 길드 길마답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모습이다.
그 순간 스케이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탄 놈에게 원하는 게 뭐지?"
"아......."
갑자기 모르탄 길드에게 원하는 걸 묻는다.
물론 그쪽 길드에서 한 것도 모르지만, 일단 물어봤으니 대답을 해야지.
"문 스라먼이라는 식물....... 그런데 모르탄인가 뭔가에서 한 게 확실한 건 아니니......."
"확실하다."
"......?"
그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케이트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며칠 전 엘프들을 전멸시킨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모르탄 길드에서."
"......!!"
"그리고 저 엘프를 보니 알 것 같군. 그때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걸......."
"......."
"간단하게 말해서 모르탄 길드는 어떤 물건을 노리고 엘프들을 말살했겠지. 아마도 그 물건은 지금 네가 찾고 있는 문 스라먼일 테고."
"헉!"
무슨 이런 놈이 다 있어?
저 인간, 이제는 귀신의 영역이냐?
완전히 간략하게 정리해 주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수긍이 갈 정도다.
원래 보통 무서운 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그 순간 스케이트는 입구의 문을 열더니 말했다.
"방문 선물로 문 스라먼이라는 식물을 갖다 주지."
"......!!"
"그럼."
그리고 저벅저벅 나가신다.
여기서 잠깐, 스케이트는 내게 문 스라먼을 선물해 준다고 말했다.
지금 문 스라먼은 모르탄 길드에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문 스라먼을 가져온다는 거지......?
"헉! 쓸어버릴 건가......."
아까 전에 주시하고 있다는 말을 생각해 내니, 그럴 확률 99.9% 아니 100%다.
지금 저분은 모르탄 길드로 원정 나가신다.
헉! 갑자기 길드 전쟁이 나는 거야?!
마치 꼭 내가 입질해서 생기는 것 같잖아?
아니, 이게 아니라.......
"그럼 내가 지금까지 한 건?"
10시간 동안 이 서류를 뒤진 건 뭐 한 거지?
그리고 이미 그렇게 다 알고 있었으면서, 날 이렇게 중노동 시킨 의미는?
지금 설마, 심심해서?
최고의 길드라고 불리는 제난 길드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모르탄 길드 사이에서의 전쟁.
사실 자금력은 어떻게 보면 모르탄 길드가 압도적일지 몰랐다.
하지만 지휘 체제나 전투력을 봐서는 제난 길드에게 너무나도 허무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제난 길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된 길드고, 모르탄 길드는 말 그대로 돈으로 움직이는 신생 길드였을 뿐이니까.
그렇게 모르탄 길드는 수많은 악행을 남긴 채 결국 사라져 버렸다.
물론 이상한 소문이 하나 났으니, 그건 바로 미친 초보자 프레젠이 뒤에서 조종했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프레젠이 듣기에는 황당 그 자체인 건 사실이다.
어찌 됐든 그 덕택에 프레젠의 명성(?)은 나날이 올라가고 있었다.
"넌가?"
스케이트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있다가 어느 한 기척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기척의 주인공은 놀란 듯 말했다.
"역시, 사신의 스케이트......이시군요."
"......."
칭찬과 비슷한 말을 해 보지만, 스케이트는 반응이 없다.
그러자 그는 어차피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되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는지 목적을 말했다.
"프레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만?"
"......."
"물론 선택 권한은 없습니다."
그 기척의 주인공인 검은 복면의 남자는 그렇게 말했고, 잠시 후 스케이트는 조용히 눈을 뜨면서 물었다.
"싫다면?"
"죽어야겠죠."
"그렇군."
"......."
"네가 하르텐을 죽인 그분이셨군."
"흠, 영광이군요."
"......."
그 순간 스케이트가 서서히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 무기인 낫을 소환했다. 그가 왜 사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려 주는 낫을 말이다.
한편 그걸 본 검은 복면의 남자가 말했다.
"거절입니까?"
"그렇다."
"어쩔 수 없군요."
콰앙!!
그 순간 스케이트의 집무실에서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역시나 강하시군요."
스케이트가 온몸에 생긴 많은 상처로 인해 말문조차도 열기가 힘든 반면, 그 복면의 남자는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랭킹 6위 사신의 스케이트를 상대로 말이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인지 이해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순간 스케이트는 약간 힘들어 하는 어조로 말했다.
"......강하군."
"칭찬은 고맙게 받죠."
"......."
"그나저나 아직도 프레젠 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마음은 없으신 겁니까."
"난 말을 번복하지 않는다."
"참으로 죽기 좋은 타입이시군요."
"......."
그러면서 검은 복면의 사나이는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푸직!
"......!"
어느새 스케이트의 심장을 무언가가 관통했다.
저번에 하르텐에게 선사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한편 그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강하기는 했지만 재미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롱과도 비슷한 말을 건넨 것이다.
한편 심장이 뚫려 버린 스케이트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그렇지만 그는 죽기 전에 그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말했다.
"강하......기는 하군. 하지만...... 넌 안 될 것 같군."
"......."
"프레젠......에게......."
털썩!
그 말을 끝으로 스케이트는 숨을 거두었다.
복면의 남자는 원래 같았으면 일을 끝내고 철수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건 바로.......
'도대체 무엇을 믿고 프레젠이라는 남자의...... 강함을 인정하는 거지? 물론 강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내 적수는 되지 못하는데...... 왜 이들은.......'
이런 의문점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