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식물의 하르텐
"진정해, 괜찮아."
난 다시 원래의 목적을 상기해 내고 그놈을 만나러 왔다.
하지만 그분을 만나러 이곳에 도착한 이후 연희와 이리엘은 연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들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고?
간단하게 말해 주변을 둘러싼 저 귀염둥이(?)들이 정말 부담되는 게 팍팍 느껴지니까 말이다.
츠으윽.
스으윽.
크르라으으.
그때 식인 식물들이 마구 입을 벌리면서 침을 흘렸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별 식인 식물들이 모여서 우리를 보고 군침을 삼킨다.
참고로 어떤 놈은 네 발 달린 식인 식물도 있는데, 금방이라도 움직여서 우리를 집어삼킬 모션을 취한다.
한마디로 개삐리리 같은 놈들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 식물 자식이 연희와 이리엘을 공격하는 순간 아가리를, 아니 입을 확 찢어 버릴 테니 말이다.
덥석!
"......."
"......."
"......."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 먹히는 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케찹 군은?"
"케, 케찹 님?"
"마스터......가?"
케찹이 사라졌다.
분명 방금 전까지 내 옆에서 날아다니던 케찹 군이다. 근데 언제 갑자기 사라진 거지?
그것도 어디로?
퍽!
꾸어억!!
"이 자식이 어딜! 이 개뼈다귀야!!"
"......."
"......."
"......."
그때 갑자기 어느 한 식인 식물이 확 찢어지면서 요정 한 마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요정은.......
퍽!
꾸어억!!
방금 전 자신을 먹었던 식물을 완전히 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본 난 무지 안타까웠다. 저 식물도 참 왜 하필 저런 악마 요정을 먹어서.......
쯧쯧!
난 연희와 이리엘을 보호한다는 의도 하에 그녀들과 심각하게 접촉을 하며 그 식인 식물 밭을 지나갔다.
참고로 미리 말하는데, 난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지는 않다.
절대 내 양옆으로 붙어 있는 그녀들의 향기를 느끼지도 않고, 그녀들의 풍만한 가슴을 느끼지도 않는다.
진짜다. 그것도 완전 진짜!
그런데 오늘 따라 정말 보기 싫었던 저 식물들이 귀여워 보이는 이유는 뭐지?
"눈 깔아, 씹탱구들아!!"
"......."
그때 케찹이가 연희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한 자그마한 목소리로 식인 식물들을 협박했다.
그리고 그런 케찹이의 협박에 신기하게도 식인 식물들이 버로우 타는 아주 신비의 현상이 나타난다.
식인 식물들도 본능적으로 아나 보다. 저 케찹이에게 걸리면 자기들이 어떻게 될지 하고 말이다.
정말이지 저 케찹이는 뭐 하는 요정인지 가면 갈수록 궁금증은 더해져만 가는구나. 허허허!
"아니, 프레젠!!"
"......."
내가 케찹이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참으로 반가워하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참고로 이런 이상한 식물 밭에서 나를 부를 분은 단 한 분뿐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보자면 꽤나 충격적이다.
한편 그걸 본 연희와 이리엘은 거의 주저앉다시피 비명을 질렀다.
"꺅!!"
"꺄아!!"
일반인이, 아니 그 누구라도 심히 볼 수 없는 완벽한 호러 장면.......
그건 바로.......
스멀스멀.
식인 식물의 입에서 한 인간이 나오고 있었다.
"하하하. 놀라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괘, 괜찮아요."
"......."
"이런 아름다운 분들을 놀라게 하다니, 제가 좀 무안해지는군요."
어찌 된 게 남자라는 동물은 이렇게 똑같은 건지.......
연희와 이리엘을 보자, 그분은 무척이나 안 어울리게 개폼을 잡았다.
평소에 저런 모습을 내게 단 한 번이라도 보여 주었다면 내가 이런 소리도 안 한다.
하지만 진짜 저런 모습 처음이다. 꿈에서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그, 그런데 주인님 친구 분들은 재미있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움찔!
그때 이리엘의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난 굳어 버렸다.
사실, 방금 이리엘이 말한 주인님 친구 분들은 재미있는 분들이 많다는 말이다.
난 바보가 아니다. 즉, 이리엘이 약간 돌려서 말한 것이겠지.
내 주변에는 왜 이리 이상한 사람들뿐이냐는 말일 테다.
솔직히 그건 나도 인정하기는 한다. 어떻게 된 게 주변에 계신 분들이 모두 이렇게들 이상한지 나도 심히 궁금하다.
그런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명 끼리끼리 논다죠?"
"......."
"......."
"간단하게 말해, 그 나물에 그 밥......은...... 아니죠."
그때 케찹이가 깝죽거리면서 한마디 하려다가 순식간에 인상이 구겨지는 나를 보고 황급히 말을 돌렸다.
오늘 만약에 그 이상의 발언이 나왔더라면 정말 케찹이의 미래가 없었을 텐데, 다행히도 미리 알아챘군,
그나저나 솔직하게 말해 케찹이의 말이 틀린 건 없다.
일명 끼리끼리 논다고, 다른 말로 하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구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은.......
"아악! 아니야!"
내가 이상하다는 말 아닌가?
꿈틀거리는 지렁이 예술을 하는 피엘이나 식인 식물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하르텐과 같은 수준이라는 소리다.
물론 내가 약간(?) 특이한 건 나도 인정한다. 부정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라고!!
"헤이, 뭔 생각을 그렇게 하나?"
그때 마구 절망하는 내게 하르텐이 다가와 한마디 건넸다.
그런데 하르텐에게서 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너, 옆구리 쪽에서 피난다?"
"아? 이 귀염둥이가 언제 물었나 봐. 하하하하."
"......."
"그런데 아까부터 피가 줄줄 흐른 건가?"
"......."
저기, 이런 말하기 그런데 상당한데요? 지금 당신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말입니다.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출혈로.......
털썩!
"......."
쓰러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미리 쓰러져 주신다.
이런 멋쟁이 같으니!
"서, 선배!"
그때 쓰러진 하르텐을 보고 연희가 심하게 당황했다.
난 그런 연희를 향해 걱정 말라는 어조로 말했다.
"자주 이러셔."
"......."
"거의 행사지."
"......."
그래, 행사다.
늘 이렇게 식인 식물의 입에서 놀다가 물려서 피 흐르는지 모르다 과다 출혈로 쓰러지는 행사 말이다.
"항상 고맙군."
"......."
하르텐은 어느새 능숙하게 지혈을 해 준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참으로 뭔가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여기서 이상한 상상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미리 말하는데, 절대 뭐 그런 이상한 건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미묘한 거다.
예를 들면.......
"너, 식인 식물의 입 안이 그렇게 좋니?"
"한번 들어가 보겠나?"
"사절."
이런 미묘함이다.
목숨을 걸고 식인 식물의 입 안에서 노는 저 모습, 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계속해서 같이 들어가 보자고 하는데, 식인 식물의 입 안에서 놀 바에는 차라리 피엘의 알 수 없는 예술을 하고 놀겠다.
그건 그래도 나름대로 목숨까지는 안 위험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저 미치도록 아리따운 분들은 누구인고?"
그때 하르텐이 은근슬쩍 연희와 이리엘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난 그런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신경 끄셈."
하지만 그렇다고 신경 끌 분도 아니고, 오히려 더 관심을 보인다.
"저분들이라면 나도 정말 소중하게 아끼는 베리타노아의 입속에서 같이 밀회를 나누고 싶을 정도야."
"저분들이 사양할걸."
"아니, 왜?"
"왜기는? 당연한 거잖아."
"아니, 베리타노아의 입속에서 노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건 네놈 기준이고."
"......."
여기서 언급된 베리타노아라는 식물, 간단하게 말하면 식인 식물 중 최고의 크기와 최고의 힘을 자랑한다고 알려진 초 레어 급 식인 식물이다.
식인 식물에도 레어(?) 급이 있는지 난 잘 몰랐는데, 저 자식이 그렇다 하니 뭐 어쩔 수 있나.
어찌 됐든 베리타노아라는 식인 식물은 농담 안 하고 한 번에 수천 명의 생물체를 삼킬 수 있는 소화력과 엄청난 크기의 몸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식인 식물 중 보스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 보니 저분이 제일 아끼는 분도 베리타노아라는 식인 식물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함께 놀고 싶다는 건 나름대로 엄청난 배려라는 것이지.
하지만 그런 배려를 받아들일 여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여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식인 식물 보스의 입속에서 노는 건 네놈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니까 말이다.
"지금 질투냐?!"
"......."
그때 하르텐이 뜬금없이 질투냐고 한마디 던졌다.
그리고 그의 말이 이어졌다.
"분명 베리타노아의 입속에서 놀자고 하면 저분들이 감동할 게 뻔한데! 나한테 그런 터무니없는 구라를 치다니!!"
"......."
"이런 나쁜 자식!"
진짜 골 때린다.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에 감동을 해? 미쳤어도 절대로 감동하지 않는데 말이다.
"날 말리지 마!!"
말릴 생각도 없는데, 하르텐은 말리지 말라면서 곧바로 연희와 이리엘을 향해 갔다.
저기요, 진짜 저분들이 그곳에서 놀자면 감동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장난 아니었어?
난 지금 하르텐이 좀 저질 장난을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저 모습을 보니 장난이 아닌, 무척이나 진지한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순간 어느새 하르텐이 연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그 말을 들은 연희는 얼굴이 노래졌다.
한마디로 순식간에 패닉에 빠진 분위기다.
그때 연희는 말을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저, 저기 감사하지만....... 저, 전 아, 아직......."
"사절 안 하셔도 됩니다."
"......."
"아주 특별한 분들에게만 이런 말씀을 드리거든요."
그의 끈질김에 연희와 이리엘은 더욱 무서워하는 모습이었다.
난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그대로 날아 그놈의 등을 가격했다.
퍽!
"꾸엑!"
그리고 그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물론 난 그에게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으니.......
"제발 방금 같은 미친 권유는 다른 사람한테는 하지 마라, 제발요!"
연희나 이리엘이어서 괜찮았지,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뭔 사건 일어났다.
예를 들어 변태 신고 같은 거?
난 물었다.
뭐를? 당연하게도 이곳에 온 주 목적에 대해서 말이다.
난 절대로 한 남자가 식인 식물 입 안에서 노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건 아니어서 말이다.
어찌 됐든 난 하르텐에게 물었다.
문 스라먼에 대해서 말이다.
"혹시, 문 스라먼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난 그 말과 함께 초롱초롱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단 식인 식물 전공이어서 약간 의심쩍기는 하지만, 그래도 곧 죽어도 식물을 다루시는 분이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뜻밖의 답이 들려왔다.
"문 스라먼이 뭔데?"
"......."
"그거 뭐 하는 애야?"
"......."
대가리에, 아니 머리에 천둥 번개가 1억 번 낙하하는 느낌이 나를 강타한다.
무, 문 스라먼이 뭐냐니? 그걸 몰라?
문 스라먼은 식물에 문외한이란 사람들도 알 정도로 유명한데!!
어떻게 식물을 다루는 놈이 문 스라먼을 몰라? 이 삐리리야!!
그 순간이었다.
하르텐은 갑자기 나를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잠시 후 그는 함박웃음과 함께 물었다.
"신종 식인 식물인 거지?!"
"......."
"어디 있는데? 어디 사는 분이야?!"
자기 혼자 착각의 늪을 펼쳤다.
제길, 내가 왜 이런 저질 동네에 왔는데!!
그나마 식물하고 친분이 있으셔서 온 건데.......
아아악! 기대한 내가 바보다.
"아, 그런 식물도 있었군. 세상이 참 신기해."
"......."
하르텐은 나에게서 문 스라먼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말해, 문 스라먼이 신기한 생물인 것은 맞다.
그런데 네놈이 가지고 있는 식인 식물 중에는 문 스라먼보다 더 엄청난 식물이 있잖니?
예를 들어 베리타노아 같은 것 말이다.
그걸 직접 포획한 노력의 약 100만 분의 1만 다른 식물에게 신경을 썼다면, 저 자식은 분명 식물계의 에디슨이 되었을 텐데.......
참 아쉬울 뿐이다.
그나저나 이제 용건은 사라졌다.
문 스라먼의 '문' 자도 모르는 놈과 대화해 봤자 남는 건 시간 낭비뿐이다.
이렇게 된 바에는 다른 데로 가서 뒤지는 수밖에.......
"문 스라먼이라면 제탄이 알 수도."
"......!!"
"......!!"
"......!!"
그때 갑자기 울려 퍼지는 한 목소리에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아니, 정확히는 하르텐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편 우리가 굳었든 말든 하르텐은 갑자기 난초와 많이 흡사하게 생긴, 아니 난초인가?
아무리 봐도 난초인데.......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찌 됐든 난초님(?)에게 다가간 하르텐은 물었다.
"메롱, 알고 있어?"
여기서 체크 포인트, 식물에게 말을 건다.
식물에게 말을 걸다니!!
"아악!!"
난 그 모습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소리를 질렀다.
저번에 만났을 때까지만 했어도 저렇게 미치지는 않았거늘 안 본 사이에 완전히 미쳐 버리셨다.
식물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말이다.
하르텐, 미안하다. 내가 널 너무 소홀히 대한 것 같다. 이 정도로 미칠 때까지 난 뭐 했단 말인가?!
갑자기 큰 죄책감(?)으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대략."
"......."
"......."
"......."
또다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의 목소리는 아니다. 인간의 목소리는 이렇게 울려 퍼지는 경향이 없으니까 말이다.
마치 공기의 진동을 이용한 듯한 목소리다.
그리고 그 순간, 하르텐은 갑자기 나를 보더니 그 난초님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고는 말했다.
"아, 소개가 늦었다. 여기는 메롱이라고 해."
"반갑군, 인간."
"......."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식물이 말하는 시대가 왔다.
그, 그래. 식물이...... 말하는 시대가.......
흠, 진정, 진정하자.
가만히 잘 생각해 보자.
식물이 말하는 게 어떤가? 요정이 욕하고 술 먹고 난동 피우는 시대인데 말이다.
그깟(?) 식물이 말하는 건 우습지도 않다.
미친 요정에 비해서는 말이다.
휴우.......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을 하자, 엄청난 속도로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었다.
초보자 요정이 저렇게 막가는 시대인데 말하는 식물 정도야 애교지, 뭐!
"헉! 시, 식물이 말을 하네?!"
그때 참으로 놀라면 안 되는 모 분이 놀라신다.
내가 그 누가 놀라도 이해는 한다. 그것도 100% 말이다.
하지만 케찹이 네놈이 놀라는 건 참으로 이해가 안 간다.
기존의 요정들의 순수했던 이미지를 혼자서 다 말아먹으신 분이 고작(?) 말하는 식물에게 놀라다니, 웃기지도 않는다.
한편 그 모습을 본 말하는 난초(?)는 케찹이를 향해 한마디 던졌다.
"내가 신기한가?"
"응! 엄청! 크하하!"
"......."
엄청 신기하단다.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네놈은 왜 자기 입장을 생각 안 하냔 말이다.
너도 엄청 신기하다고, 이 자식아!!
제발 네 자신을 알아줬으면 하는데, 그건 너무나도 큰 바람이니?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 말하는 난초님의 입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 난초님은 내가 참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을 말해 주는데.......
"이렇게 예의 없는 요정은 처음이군."
"......."
"나도 신기하지만, 너도 신기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군, 예의 없는 요정."
빠직!
그때 예의 없는 요정이라는 말에 케찹이의 이마에 혈관 자국이 생겼다.
사실 맞는 말이다. 저 난초님(?)이 말한 내용 중 틀린 건 하나도 없다.
예의 없는 요정, 요정계의 악마...... 케찹이.
완전히 정답이다.
"이 씹탱구가 죽고 싶어?!"
"......."
"뭐? 나처럼 예의바른 요정 보고 예의가 없어? 이 자식이!!"
움찔.
갑자기 돌변한 케찹이의 모습에 난초님이 움찔거렸다.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난초님(?)이 감당하기에는 케찹이가 너무 강하다.
솔직히 말해 요정이 보스 급 몬스터도 때려 부수는데 난초님이 상대하기에는 벅차겠지.
그것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뭔 대형사고 날지 모른다.
그래서 난 조용히 귓가에 대고 말했다.
"뒤에 연희 님이 계셔."
움찔!
그러자 그걸 자각하고 케찹이는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정말 역겨울 정도로 방금 전 1인을 목적으로 한 목소리를 전체에게 하는 목소리로 변신시켰다.
한마디로 작은 목소리에서 큰 목소리로 말한다.
"어머,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만한 소리를....... 호호호."
이런 가식으로 튀겨 먹을 자식 같으니, 정말 보는 사람 역겨울 정도다.
아니,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는 난초님도 역겨워하는 것 같다.
물론 식물 표정은 읽지 못하지만, 대략적으로 그런 느낌이랄까?
"우리 식물들의 현자라고 불리는 제탄이라면 알지도 모른다."
"......!!"
난 갑자기 할렐루야 분위기에 입성했다.
그 이유는 정말 예상치도 못한 난초님(?)의 최첨단 정보 덕택에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그 식물의 현자라는 분의 출처가?"
다른 거 다 필요 없다. 그분의 출처만이 궁금할 뿐이다.
한편 이런 내 질문에 그 난초님의 말이 이어졌다.
"이곳과 가까운 곳에 있다."
"......!"
번쩍!
이곳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에 내 눈이 번쩍거렸다.
난 혹시나 또 어디 괴상한 데 박혀(?) 있어서 생고생할 것 같은 느낌에 속으로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히든 클래스와 관련된 일이면 어떤 일이든 거의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던데.......
일명 '히든 클래스의 저주'라고 말이다.
어찌 됐든 이번에는 그 저주가 나를 비껴간 것 같다.
이렇게 손쉽게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니! 왠지 모르게 눈물까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난초님의 말문이 열렸다.
"베리타노아의 안에 있다."
"......."
베리타노아?
분명 어디서 들어 봤다.
그것도 별로 오래되지 않은 시간에 말이다.
그뿐 아니라 왠지 모르게 익숙하기까지 한 이름.......
베리 씨(?), 어디서 들어 봤더라?
어디서 말이지. 흐음.......
"오! 메롱, 베리타노아 입 속에 있는 거야?!"
"그렇다."
"호오!"
그때 그 난초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하르텐의 이야기를 듣고 난 깨달았다.
베리 씨(?)가 누군지 말이다.
히든 클래스의 저주는 여전히 지속된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더욱 악화된 느낌이.......
저번에는 이런 일까지는 경험해 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식인 식물의 입속 탐험이라는 것!
허....... 솔직하게 말해 진짜 하기 싫다.
아무리 히든 클래스가 좋다지만 식인 식물 입 안에서는 노는 건(?) 정말 싫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상태다.
제길, 이놈의 히든 클래스는 나를 왜 이렇게 즐겁게(?) 해 주는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것보다.......
"연희랑 이리엘 님은?"
"......."
"......."
그녀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그냥 이곳에 계시든가 아니면 나와 같이 저 식인 식물의 입속을 탐험하든가 두 가지 상황이 있다.
그리고 내가 예상하기로는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움찔.
움찔.
연희와 이리엘은 주변을 살펴보고는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주 원인은 온 사방팔방을 둘러싼 괴상망측한 식인 식물들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 하르텐과 악마 요정 케찹이가 있어서 그렇지, 만약에 그들이 사라지면 언제든지 이분들을 공격할 확률 99.9%다.
그렇다면.......
"차라리 같이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차라리 내가 옆에 있어서 지켜 주는 게 훨씬 안전할 것 같다.
어차피 여기도 위험 지대로 보이니까.
취르륵!!
취르륵!!
취르륵!!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몇 마리의 식물이 감히(?) 케찹이가 대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감행했다.
아니 공격인지는 모르겠고, 어찌 됐든 한 모 여인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 모 여인은.......
"꺄악!!"
"......."
이리엘이었다.
식인 식물들이 깡패 요정에 의해서 다 버로우 탔는데, 그런 걸 무시하고 달려드는 몇 마리의 식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션은 분명.......
'덮치는 모션인가?'
그런 것 같다.
잡아먹는다는 모션보다는 덮친다는 의미가 더욱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난 이해한다. 식인 식물들의 애틋한(?) 마음을.......
자기들도 하고 싶어서 이리엘을 덮치려는 건 아니다.
워낙 이리엘 효과가 강력하다 보니 식물이든 사령이든 인간이든 그냥 덮치려는 것이다.
한편 그 모습을 본 케찹이는 분노에 찬 얼굴을 했다.
감히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움직인 그들을 향해서.......
그와 함께 잠시 후 케찹이는 입에서 하얀 브레스를 뿜어냈다.
"으아아!!"
솔직히 크기가 워낙 작기야 하지만 일단은 브레스...... 계열 같아 보여서 브레스라고 해 준다.
그나저나 그 순간 케찹이의 브레스(?)에 닿은 식인 식물들은 그대로 넉 백 판정으로 한 방에 소멸되어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제는 요정이 브레스까지 뿜어 대는...... 시대가 된 건가?
도대체 이 세상 어찌 되려고 이런......!
허허허, 참으로 막장의 진수다.
요정이 브레스를 내뿜다니, 다음에는 지렁이가 브레스를 내뿜겠네?
"소개하지. 우리 귀염둥이 베리타노아네."
"......."
"......."
"......."
하르텐은 입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기의 귀염둥이라고 하면서, 베리타노아를 우리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귀염둥이라.......
난 내 앞에 있는 거대한 식인 식물 양(?)인지 군인지 알 수 없는 그분을 보고 '귀염둥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는다.
대략 크기는 거의 성체가 된 드래곤 수준이다.
특히 입은 얼마나 큰지 한 번 들이대면 진짜 수천 명은 기본으로 삼킬 정도다.
그리고 식물의 이파리인지 모르겠는데, 아름다울(?) 정도로 크다.
한마디로 이분이 지상 최강의 식인 식물이라고 불리는 베리타노아.
그림이나 사진으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한편 하르텐은 갑자기 두 팔을 쫙 벌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난 갑자기 심각하게 불안 상태로 돌입했다.
도대체 저 자식, 뭐 하려는 거지?
그 순간이었다.
"자, 우리를 삼켜라!!"
"자, 잠시......."
덥석!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론가 말이다.
"어떤가?"
"미묘하다."
"......?"
흐뭇해 하면서 질문하는 하르텐에게 나는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미묘하다는 말.
우리는 참으로 직설적으로(?) 베리타노아 님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다기보다는 삼켜 줬다고 하는 게 아무래도 정확한 표현이겠지.
어찌 됐든 결론은 식물이 삼켜 줘서 우리의 목적인 베리 씨의 배 속으로 기어 들어오는 건 성공했다.
그러니 여기서 그 식물의 현자 씨만 찾으면 되는데, 그것보다 지금 나를 집중시키는 요소가 있었으니.......
"예상 밖이네......."
식인 식물의 배 속이 이렇게 생겼다는 게 정말 예상 밖이라는 거다.
내가 대충 생각하던 그런 구도가 아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간단히 말해 일반적이라는 소리다.
예를 들어 손쉽게 볼 수 있는 일반 동굴과 완전 흡사한 느낌이랄까?
도무지 이곳이 식인 식물의 배 속인지 동굴인지 완전히 헷갈린다.
출렁, 출렁.
"서, 선배."
"주, 주인님!"
그때 연희와 이리엘이 갑작스럽게 출렁거리는 동굴(?), 아니 베리 씨의 배 속 때문에 당황해서 나를 붙잡았다.
도대체 갑자기 뭔 일이지?
갑자기 왜 이렇게 흔들거리는 거냐!
그 순간 하르텐이란 분이 꽤나 태평한 어조로 말했다.
"그것이 오는 것 같군."
"......?"
갑자기 이상한 개소리를 하신다.
그것이라니? 뭐가 오는 건데?!
도대체 표현 자체가 저러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그뿐 아니라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표현이라는 건 확실하다.
한편 그런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 하르텐 님의 말이 이어졌다.
"위액님이."
"......."
위액님(?)이라.......
흐음, 위액은 생물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명 먹은 걸 소화시키기 위해서 발사되는 그것.......
참고로 그 위액이 있어야지만 인간이든 뭐든 일단 그걸 녹여서 소화시킨다.
그만큼 위액은 멋진 분(?).
아, 아니 이게 아니라 그럼 지금 무슨 상황인 거지?
"그, 그 말은 지금 우리를 녹이러 온다는 게냐?!"
"그렇지."
"......."
이런 미친!!
지금 그런 상황이 그렇게 태평하게 말할 단계냐? 잘못하면 위액에 녹아서 그냥 죽어 버리는데!!
그런데 저런 반응은 무엇이냐!
"어차피 소용없다네."
"......?!"
"저 위액은 오리데오콘도 녹일 정도지."
"......."
"견딜 수가 없어."
"뭐?!"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이제 금방이라도 오실 위액이라는 분이 그 정도로 엄청나다고?
도대체 오리데오콘을 녹이려면 얼마만큼의 산성액이 분비돼야 되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잘 알면 탈출 방법이라도 있을 거 아냐?!"
"없는데."
"......."
"위액이 흘러나오면 그날은 그냥 죽는 거지, 뭐."
"......."
"그래서 참고로 나도 이곳은 좀 힘들어."
미쳤다. 그것도 고이는 안 미쳤다.
어떻게 여기서 그냥 뒤진다는 걸 알면서도 들어올 수 있는 거지?
이건 목숨을 건 모험이 아니라 목숨을 이미 걸고 온다는 소리잖아!
이 자식! 지금 당장 분노의 하이 킥이라도 선사해 주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
왜냐고?
출렁출렁.
내 주변이 더욱 흔들리기 시작하고, 어느새 그분의 모습이 보이니까.......
녹색의 물결(?)이 말이다.
"......."
"......."
"......."
한편 모두 그 모습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들도 들었을 것이다. 저 녹색 물결의 정체를.......
일명 오리데오콘도 녹여 버리는 하이 스테이션(?) 위액이라는 걸 말이다.
아악! 죽을 수는 없어!!
이런 데서 식인 식물의 일회용 밥이 되기 위해서 내가 살아온 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저 거대한 녹색의 물결을!!
난 방어용 스킬 따위는 없는데?!
"저에게 맡기십시오!!"
"......!!"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앞장서더니 엄청 멋진 대사 한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그분은 길쉬, 정확하게 영웅왕 길가메쉬라고 불리는 그분이다.
그리고 추가로 케찹이 소속이고 말이다.
어찌 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도대체 무얼 하려고?!
저 오리데오콘도 녹여 버리는 저 녹색 물결을 상대로 어떻게?
한편 그런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길쉬가 갑자기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그는 외쳤다.
"해피 해피 뉴 해피!!"
"......."
"......."
"......."
듣는 사람 참으로 무안한 주문(?)을 외운다.
아니, 주문인가? 주문이......겠지?
뭐 주문일 테다.
아니, 그게 뭔 상관이냐!
어쨌든 뭔가가 나오면 상관없다.
"우어억!!"
그때 길쉬의 소리와 함께 우리의 주변을 감싸는 푸른색의 방어막.
그리고 그 방어막은 믿을 수 없는 효과를 내게 보인다.
그 효과란.......
"위액이 흡수되고 있어?!"
그렇다.
그 푸른색의 방어막에 닿은 위액들이 말 그대로 흡수되고 있다.
참고로 그 방어막은 더욱더 단단해지고 있다.
이럴 수가! 이런 엄청난...... 기술이!!
상대방의 공격을 오히려 방어력으로 돌려 버린다는?
이렇게 된다면 아무리 공격해 봤자 그 힘이 방어막에 힘을 보태 주는 것이니, 절대 저 방어막을 뚫지 못한다는??
"......."
"......."
"......."
그리고 약 1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자 어느새 그 엄청난 위액들은 그대로 다 흡수되어 버려서 길쉬의 방어막은 더욱 튼튼하게 되어 있는 상태다.
멋지다! 이게 진정한 영웅왕 길가메쉬?!
왠지 모르게 갑자기 케찹이에게 넘겨준 게 아쉽.......
"......지는 않군."
아쉽다고 하려고 했으나, 그 계약 조건이 떠오르자 별로다.
사실 저 엄청난 기술이 탐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대가로 내 입술을 바치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어찌 됐든 정말 기대도 하지 않았던 길쉬에게 엄청난 능력이 있다는 걸 확인하니, 조금이지만 감격스럽다.
그런데.......
"이제 끝났는데......."
끝났다. 그것도 완전히.
이미 정말 미친 듯이 나온 그 위액들은 조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한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아무래도 여전히 그 알 수 없는 방어막을 설치하고 계신 길쉬 덕택이다.
저분 땀을 삐질 흘리면서 보는 사람 눈물이 날 정도로 계속해서 방어막을 치고 있는데,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그 순간 길쉬는 내 이런 말에 착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저기, 이 방어막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흡수한 힘이 다 빠져나가야 되거든요."
"......."
"......."
"......."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흡수된 그 힘이 다 사라져야지만 없어진다는 소리입니다."
저 엄청난 기술의 허점이라는 거냐?
아니, 허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크다.
한번 방어막 설치한 이후는 흡수한 힘이 다 빠져나가기 전에는 계속해서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에서는 괜찮을지도.
차라리 이 절대 무적 방어막에서 있게 하고 난 이 틈을 타 그 식물의 현자라는 분을 만나면 되니까 말이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가볍게 그 방어막을 통과해서 나가려는데.......
쿵!
"......."
무언가와 박았다. 아주 강렬하게.......
좀 더 상세하게 표현하자면 내 앞에 있는 '방어막'과 함께 말이다.
뭐지? 이 기괴한 느낌은?
"저기, 참고로 이 방어막은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거든요."
"......."
"그러니 나가시려면 기다려야 합니다."
"......."
그거 참 눈물 나게 멋진 방어막이군.
한 시간이 지났다.
솔직하게 말해 저기서 힘들게 방어막을 강제로 치고 있는 분보다야 덜 힘든 게 확실하다. 그냥 우리는 앉아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추가로 주변에 어떤 위험도 없을 거라는 안정성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한 식인 식물의 배 안에서 가만히 있다고 즐거운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 어서 떠나고 싶다, 여기를.......
하지만 저 방어막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다.
출렁출렁.
"......."
"......."
"......."
출렁출렁.
그때 우리 모두에게 공포스러운(?)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그 이름 하여 '출렁출렁'.
사실 방금 전에 한 번 경험해 봤으니 별로 놀랍지도 않다.
그럼 왜 다들 이런 반응일까?
그건 아무래도 저 출렁출렁 이후로 오시는 분들 덕택이겠지.
"아아악!!"
그때 길쉬가 또다시 흘러내리는 귀여운(?) 위액을 보고 비명을 질렀고, 나도 그걸 보고 비명을 지르고만 싶었다.
'꺄악'이라고.......
일곱 시간이 초과되었다.
난 여기서 하나의 물리 법칙(?)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걸 모두에게 알려준다면.......
"위액은 한 시간 만에 온다."
너무나도 위대한 물리 법칙(?)이다.
그리고 추가로 일곱 시간 동안 죽치고 있어서 알아낸 법칙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그런데.......
"처음 당시보다 10배 이상 커졌구나."
계속해서 오는 위액이 흡수되다 보니 어느새 방어막이 처음보다 10배 이상 커졌다.
한마디로 우리 전체를 덮고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다.
그게 자세하게 얼마만큼이냐 하면, 예전에는(?) 위액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는데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거다.
이미 위액이 흘러내리는 지점까지 이 방어막이 침투했다는 뜻이겠지.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할 말이 없다. 그저 간단하게 말해 저 위액이 올인(?)하거나, 이 방어막이 이 거대 식인 식물의 크기를 넘어서 터져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하지만 솔직히 두 방법 모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
참고로 여기서 로그아웃하기도 참으로 미묘하고 말이다.
흐음.......
"저기 길쉬 군."
"으윽! 네!"
그때 내 부름에 길쉬는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했다.
솔직히 무척 힘들기도 하겠다.
일곱 시간 동안 방어막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저분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얼른 이 방어막을 없애 버리고 싶다지만 흡수된 힘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정말 눈물을 머금고 강제로 개기시고 있는 거다.
솔직히 방어막의 능력은 탐스럽지만(?), 권유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건 확실하다.
"혹시, 이 방어막은 안 부서지는 거야?"
난 길쉬에게 혹시라도 이 방어막은 안 부서지는 거냐고 질문을 했다.
한편 그런 내 질문에 길쉬는 힘들게 대답했다.
"누, 누적된 힘을 넘어서는 파괴력이 가해지면 부서지기는 하지만, 그건 이론적으로도 절대...... 불가능......."
콰앙!!
"......."
뒤에 길쉬가 뭔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단 한 방에 방어막을 부수는 것을 보고 그냥 입을 멈춘다.
에이, 일단 부서진다는 거잖아!!
괜히 삽질했어!!
"......."
길가메쉬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의 방어막을, 그것도 무척이나 누적되어서 측정이 불가능한 힘이 담긴 방어막을 단 한 방에 부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길가메쉬의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원래 기존의 개념은 갈아엎는 게 좋아."
"......."
"그게 맘 편하거든."
그때 케찹이가 참으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이럴 때는 나름대로 친절한 케찹이었다.
"아아악!!"
"......."
"나, 나의......!!"
"......."
"귀염둥이가."
"......."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아니라, 정말 실수였다.
난 너무 짜증나 있는 상태여서 나도 모르게 힘 조절을 못하고 하이 스페셜 단검을 던졌는데, 그게 순간적으로 두 번째 데미지가 들어가 버렸다.
간단하게 말해, 길쉬의 방어막을 부수고 베리 씨의 몸도 완전히 관통해 버린 거다.
그리고 관통되는 순간, 게임 오버다.
알다시피 내 단검에 소속된(?) 옵션들이 좀 사기적으로 강해서 말이다.
"흑흑."
"......."
"나의 귀염둥이!!"
그때 하르텐은 아예 절규를 해 댔다.
그 모습을 보니 살짝 미안해진다.
"아, 잡초다!"
"......?"
그때 갑자기 크게 외치는 케찹이의 한마디에 난 불쌍한 하르텐에게서 관심을 꺼 버렸다.
왠지 하르텐에게 관심을 주는 것보다 케찹이가 말한 잡초에 더 끌렸다고나 할까?
어찌 됐든 케찹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난 엄청나게 무서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냥 무서운 것도 아니고 엄청 말이다.
잡초가...... 기, 기어...... 다니고 있어.
잡초 한 마리...... 아니 한 송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잡초 한 개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말하는 난초에 이어서 기어 다니는 잡초라니, 이 세상이 갑자기 무척이나 두려워진다.
"에구구. 잠자고 있는데 무슨 일이야?"
"......."
그 순간 그 기어 다니던(?) 잡초에게서 한마디가 들려온다.
예전 같으면 믿을 수 없는 광경이지만 이미 말하는 건 미리 본 것이어서 놀랍지는 않다. 그저 잡초가 기어 다니는 게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 갑자기 기어 다니는 잡초님이 있을까?
"설마, 제탄?!"
그때 내 머릿속에 무언가 단어가 하나 지나가고,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외쳤다.
한편 그런 나의 외침에 그 잡초님은 놀란 듯 물었다.
"어? 내 이름을 알고 있으셈?"
왠지 약간은 독창적인 말투다.
참으로 특이하신 잡초님이시군.
아니, 그것보다 제탄을 찾은 것이니 어서!
"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
난 재빨리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잡초님은 궁금해 하는 듯한(그냥 느낌) 모습을 취하고, 난 그런 잡초님에게 말을 건넨다.
"문 스라먼이라고......."
"하아......."
하르텐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프레젠이 온 이후 완전 개판 1분 전...... 아니 개판 10초 전이 되었다.
그만큼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 주범은 날름 정보를 가지고 그냥 가 버리신다.
물론 자신에게 미안하다고는 했다.
하지만 자신의 귀염둥이가 고작 '미안'이라는 말과 교환이 될 정도는 아니다.
얼마나 깜찍스러운 귀염둥이였는데.......
"프레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지?"
"좋은 말로 할 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어떤 이야기였지?"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하르텐의 주변을 둘러싸는 사람들이 마구 생겨나더니 한마디씩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전부 프레젠과의 대화에 관심을 가졌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하르텐이 모를 리가 없다.
프레젠 이분이 아주 큰 걸 물었다고 말이다.
사실 프레젠을 상대로 정보를 얻어낼 확률은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프레젠을 제외한 자신을 노린 것일 테다.
하지만 자신도 그렇게 심심풀이 땅콩은 아니다.
프레젠에 비해서는 허약(?)할지는 모르지만, 저렇게 허접한(?) 애들한테 당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아서 말이다.
어찌 됐든 하르텐은 그들의 대답에 단 한마디만 던졌다.
"우리 귀염둥이 지금 당장 살려 내면 가르쳐 드리죠."
"......."
"......."
"......."
"......."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신다.
한마디로 말해 거절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 후드를 쓴 남자가 나타나더니 말했다.
"그 약속을 지켜 주시면 고맙겠군요."
"......!!"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츠르륵.
츠르륵.
분명 죽었던 베리타노아가 살아나고 있었다.
확실하게 죽었던 베리타노아가......!
"어떻습니까? 말 그대로 살렸습니다만 이제 그쪽에서 약속을 지킬 차례인 것 같은데요."
"......."
한편 그 모습을 본 하르텐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완전히 장난삼아 이야기한 걸 실행하는 저놈은 누구란 말인가?
어떻게 죽어 버린 베리타노아를 단숨에 살려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다. 네크로맨서들이 일시적으로 어둠의 힘을 이용해서 살려 내는 방법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저건 일시적인 어둠의 힘이 아닌 진짜로 살려 낸 것이다.
생기가 파릇파릇 느껴지니까 말이다.
이건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걸 지금 저 남자가 해낸 것이다.
한편 꽤나 큰 충격에 멍하니 있던 하르텐은 잠시 후 억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후후, 농담이었거든."
"......."
"그리고 무엇보다 알려주면 프레젠 씨가 나 씹어 먹으러 올 것 같아서 절대 싫거든."
그러자 그 모습에 그 검은 후드의 남자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한마디 했다.
"전 개인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싫습니다."
푸욱!
그런데 어느새 하르텐의 심장에 무언가가 관통해 버렸다.
어떤 물건이었다면 그 형태라도 남았어야 하거늘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한편 순식간에 가슴이 뚫려 버린 하르텐은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웃으면서 한마디를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프레젠하고 놀 생각인 것 같은......데 몸 조......심하라고. 그분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기준을 훨......씬 넘은 분이라고....... 쿨럭!"
"......."
"......."
이 한마디였다.
그렇게 하르텐은 목숨을 잃었고, 그걸 본 검은 후드의 남자는 잠시 동안 죽어 버린 하르텐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 충고는 감사히 듣겠지만, 별 실용성은 없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