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강제 계약
"저기, 만일 구라를 치신다면 저 갑자기 성격 변할지도 몰라요."
"지, 진짜입니다."
"......."
"물론 저희도 그렇게 찾고 있지만, 워낙 그곳이 범위가 넓어서 찾기가......."
"......."
"그리고 도망가는 게 예술이다 보니, 그곳에서 벌써 놓친 것만 해도 세 번째입니다."
그는 내게 진실을 말했다고 계속 강조했다.
그래, 진실이란다.
하지만 이걸 진짜 믿으라고?
믿으면 바보가 되는 건 순식간인 것 같은데, 이걸 믿으라니!
정말...... 으아악!!
그때 잠시 후 케찹이가 이런 내 심정을 대변하는 한마디를 날렸다.
"용암굴에서 아이스크림 장사 중?"
"......."
바로 그거다.
베란 용암굴.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화산 지대로 화염 계열 몬스터가 잔뜩 있는 곳이다.
그래서 빙 계열 마법사들에게 특히 환호를 받으며, 아이템과 공격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들이 자주 나오다 보니 선호하는 사냥터가 되었다.
그런 곳에서 한 남자가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이름은 영웅왕 길가메쉬, 줄여서 '길쉬'라고 불리는 분이다.
참고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히든 클래스가 그분이다.
어찌 됐든 그분은 이 용암굴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고 계신다.
사채업자에게 사기를 친 이후 말이다.
놀랍다, 놀라워.
아니, 이건 놀랍다는 표현 자체가 우습다.
아이스크림 파는 영웅왕이라니.......
아,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뿐 아니라 그것도 용암굴에서 팔 생각을 하다니!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곳이기에 시원한 것이 불티나게 팔릴 것을 알아챈 기가 막힌 아이디어다.
그리고 돈도 꽤나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업종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분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아까 전에 포란드라는 분이 말했다시피 워낙 이곳이 넓다 보니 정말 찾기가 장난 아니다.
게다가 그분은 계속 움직인다고 하니, 찾으러 다니면 다닐수록 찾기는 더 힘들어질 확률도 높고 말이다.
그렇다고 계속 이 더운 곳에 있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아......."
그때 갑자기 연희의 자그마한 탄성이 들리고, 난 당장 연희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왜, 왜 그래?"
"아, 아뇨. 약간 더워서."
"......."
허! 이럴 수가.......
우리(?) 연희가 더워 하면 안 되는데!!
사실 나도 미치도록 더운데, 연희라면 말할 것도 없지.
그리고 무엇보다.......
"저기 이리엘......."
"네?"
"너무 더워 보여."
"......."
이리엘이 연희보다 훨씬 더워 보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리엘은 항상 어디서든지 꽁꽁 드레스 차림이다.
목까지도 커버하는 꽁꽁 드레스다.
오히려 덥지 않다면 더 이상한 거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리엘은 땀을 비 흐르듯 흘리면서 말했다.
"괘, 괜찮아요."
"......."
"저는......."
진짜 안 괜찮아 보인다.
얼마나 더울까. 보는 사람까지 안타까워질 정도로 더워 보인다.
난 지금 당장이라도 저 엄청나게 두꺼운 꽁꽁 드레스 대신 다른 것을 입으라고 권유하고 싶지만 이리엘 성격상 그건 무리다.
그렇다면.......
"이걸로 땀이나 일단 닦아."
"주, 주인님......."
"......."
내가 내민 은색의 손수건을 보고 감동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리엘.
그리고 추가적으로 말하는데 옛날 같으면 저 눈빛 미사일에 난 고통스러워 했을 것이다.
왜?
유혹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움찔거릴 뿐이다.
저 정도 난이도는 이제 나름 견딜 만하다.
단지 더 심해지면 그때는 정말 고통스럽지만.......
어찌 됐든 난 이리엘에게 손수건을 챙겨 주었고, 그다음으로.
"연희도 더운데 이걸로 닦아."
"선배......."
연희에게도 손수건 하나를 건넨다.
그러자 연희도 너무나도 고마워하신다.
크크! 이걸로 지속적인 이미지 급상승이다.
혹시나 해서 두 개 준비한 게 장땡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주인 사마, 저는요?"
"......."
일단 연희와 이리엘로 인해 가식 케찹이로 변신된 케찹이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연히 없다.
내가 요정 손수건 챙길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아서 말이다.
"저, 저기 이거라도....... 무, 물론 조금 더럽긴 하겠지만."
"......!!"
그때 갑자기 연희가 그 모습을 보더니 자신이 쓰던 걸 내민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더럽다는 말.
아니, 손수건이 반짝이고 있는데 더럽다니!!
연희의 땀이 젖어 있는 손수건이 빛이 나는데!!
그나저나 뭐지? 이 변태적인 말투는......!
잠시지만 실례.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뭐 연희 님이 쓰던 거라면!!"
"......."
변태 요정 한 마리가 감격 어린 말투로 얘기하더니만 연희가 내민 손수건으로 돌격하고 있다.
저 자식이 감히 어디다가!!
난 당장 그 모습을 보고 케찹이의 루트를 차단.
그러자 내 몸에 툭 받고 쓰러진다.
그리고 난 그런 케찹이를 향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이거 써."
"......."
"괜찮지?"
하지만 전혀 괜찮아 하는 얼굴이 아니다.
내가 내민 건 저번에 남은 종이, 일명 메모지였다.
그것도 쓰던 거다.
그러니 전혀 괜찮아 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절대 네놈이 연희가 쓰던 손수건을 쓰는 명장면은(?) 죽어도 볼 수 없다는 거다.
"아이스크림이 왔어요, 왔어요."
"......."
"......."
"싱싱하고 파릇파릇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
"......."
"아이스크림 사세요!"
그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하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이 험악한 용암굴에서 누가 아이스크림 장사를 한단 말인가?
누가......!
"길쉬!!"
그때 난 이곳에 왜 왔는지를 재빠르게 떠올리고, 지금 저 아이스크림 파는 사람의 이름을 외쳤다.
차, 찾았다!!
도대체 무슨 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넓은 용암굴에서 찾았다고!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아이스크림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돌격했다.
그러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선 채 아이스크림을 사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아이스크림 파는 분이 중요하다.
그리고 난 그 남자를 보는데.......
키는 대략 184 정도로 보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탄탄해 보이는 몸을 가진 남자다.
얼굴도 꽤나 미남이다.
그뿐 아니라 무언가 감춰진 힘이 엄청난 것 같은 존재다.
사실 이런 데서 아이스크림하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보와 지금 저 남자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봐서는 길가메쉬다.
영웅왕 길가메쉬 말이다.
"아이스크림 드릴까요, 손님?"
그때 어느새 길쉬로 추정되는 그분이 내게 다가오더니 한 마디 했다.
하지만 지금 아이스크림이 중요하겠는가?
난 당장 그 길쉬로 추정되는 분을 향해 한마디 했다.
"계약합시다."
"......."
그러자 갑자기 진지해지는 그분은 나를 보고 말했다.
"저의 마스터......가 되고 싶으신 겁니까?"
"......!!"
확실하다.
저분이다. 저분이야!!
막 감동의 눈물이 나온다.
특히 방금 전 저분이 한 말, 왠지 모르게 엄청나게 멋있었다.
역시 사람은 말로만 들어서는 모르는 거다.
사채업자에게 사기 치고 이런 곳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는 게 뭐가 중요한가?
지금 저 모습은 완벽한데 말이다.
특히 '저의 마스터가 되고 싶으신 거십니까?'라는 말에 전율까지 흐른다.
그런데 그런 전율의 감동도 약 10초도 안 된다.
왜냐고?
"전 주급 5,000만 골드입니다(현금으로 5,000만 원)."
......이런 개소리를 하시니까.
주급, 일명 주 단위로 지급하는 액수다.
한마디로 누군가를 고용을 하고 난 뒤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한데 언제부터 히든 클래스라는 직업을 하는데, 이런 주급이라는 게 생겼나?
그리고 월 2억에 달하는 돈을 내놓아야 하는 저 금액은.......
"그게 만족되지 않으면 저 계약 안 합니다. 그럼!"
"......."
그때 당황하는 날 보고 그분은 그대로 다시 아이스크림 팔러 가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눈물을 흘리면서 찾았고, 그뿐 아니라 그토록 실망을 하면서 찾은 사람이 바로 저분이다.
그런데 돈 없다고 계약을 안 한다고 하면, 내가 물러날 것 같으냐?
절대 아니다.
"케찹아."
"......?"
난 조용히 케찹이를 불렀다.
그러고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분 잡아."
"......."
"개인적으로 면담을 하고 싶네."
그냥 면담도 아니고 아름다운 면담.......
<『히든 클래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