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특별 훈련
도대체 성이 얼마나 큰지 그 보스님은 진짜 못 찾겠다.
대충 봐서는 어디 비밀적인 요소가 가득한 대장.
한마디로 어떤 조건이나 어떤 장소를 찾아야지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난 피렌에게 정보를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피렌조차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면서 버로우 타란다.
한마디로 정말 귀찮다 못해 정말 귀찮은 영웅왕 길가메쉬 찾기 퀘스트다.
그나저나.
"비상사태......."
지금은 비상사태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일명 '이리엘 효과'라는 공포를 견뎌야 한다는 거다.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미치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리엘이 거의 진짜 나를 너무 믿어서 완전 무방비인데 그때 작동되는(?) 이리엘 효과.
그것이 발동되는 순간 이미 게임 종료다.
물론 난 아직까지 견디고 있지만 다른 존재는 그 누구도 견디지 못할 만큼 정말 최고다.
심지어는 케찹이를 만나러 온 그 착하고 착한 케찹이 친구 블레이지, 그분도 가 버렸다.
물론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한 이후 자괴감을 마구 느끼고 있지만.......
근데 왜 케찹이는 물론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라고 하더라도 어째 반성하는 꼬라지나 좌절하는 꼬라지가 안 보이는 거지?
그걸 봐서는 그 효과를 즐기는 거?
충분히 그럴 만한 놈이다.
어찌 됐든 피렌이 보스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난 어떻게 해서든 이 이리엘 효과를 이겨 내야 한다.
난 일단 인터넷 사이트에 질문을 올렸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자의 유혹을 견디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참으로 직설적이고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딴 질문하는 것 자체가 짜증날 것이다.
감히 유혹을 받으면서 이런 개소리나 하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유혹의 난이도가 심각하다.
그냥 일반적인 유혹이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나, 울트라 유혹?
어찌 됐든 정말 나에게는 절실한 질문이다.
한편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답변들이 오는데.......
[즐 처먹어라!!]
[내공 냠냠.]
[이 더러운 자식!!]
[도를 닦으세요!!]
등등, 어디 거지 같은 답변만 달린다.
물론 저분들이 나의 이 심정을 알 리 없으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불성실한 답변이 오다니.
흑. 도대체 나보고 어찌하란 말이오!!
"진짜 도 한번 닦아 봐?"
얼마나 절실했으면 내 입에서 이런 소리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건 도 닦는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이리엘 효과는 죽어 있는 존재까지도 끌어들이는 무서운 유혹 기술.
고작 도 닦는 것만으로 해결 방안이 날 리가 없다.
악!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번쩍.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머리를 강타하는 한 가지 방법.
그래! 그 방법이라면!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즉 더운 날에 뜨거운 걸로 이겨 낸다는 속담.
한마디로 그 말을 인용해서 말해 보자면 여자의 유혹은 여자의 유혹으로 단련한다?!
내가 생각했지만 참 기똥찬 방법이다.
그리고 이 방법이라면 충분히 효과 만점?!
베리 굿!
방법은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날 유혹해 주는......?"
전에도 말했지만 난 아는 여자가 없다.
아니, 있기야 하지. 연희 말이다.
하지만 연희가 잘도 유혹......을 하시겠다.
절대 연희 성격상 불가능한 미션이고 아무리 설정이라고 해도 전혀 안 될 게 안 봐도 뻔하다.
그럼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단 말이오?
누가 나에게 유혹을 해 주는.......
"아! 은애 님이 계시는구나......."
쿵!
"어머나, 웬일이야?"
그때 유일하게 우리 집 식구를 제외하고는 지문 인식이 필요 없는 분이신 그분이 들이닥치신다.
일명 채은애.
키는 170cm 정도로 여자치고는 꽤나 큰 키이다. 그리고 나이는 나랑 동갑인 18살이다.
그뿐 아니라 18살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 쭉쭉빵빵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연희와 이리엘의 미모에 견줄 수 있는 하이레벨 급 미소녀이고,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닌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게 뭔 말이냐고 하면.......
워낙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난 은애가 연희만큼이나 초특급 인기인인지는 정말 몰랐다.
물론 무지 예쁘다고는 느끼고 있었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연희만큼 막 팬클럽 있고 남자들 줄줄 서 있는지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참고로 연예인 캐스팅만 해도 수백 건이란다).
하지만 있더라. 소꿉친구라고 자각을 못했을 뿐이지.
어찌 됐든 그녀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겠지.
물론 상대방에게 부탁을 하기 전 필수 코스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상대방 칭찬하기.
그래야지만 상대방은 기분이 좋아지고 좀 무리한 부탁이라도 들어주기 수월해진다.
물론 은애와 나 사이에 뭐 그런 건 없을지 몰라도 일단은 한다는 소리.
난 활기발랄하게 웃고 있는 은애에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따라 무지 예쁘게 보인다."
"......."
여자라면 무조건 좋아한다는 말이다.
물론 내가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런 건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일단 여자라면 그런 말은 정말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사실 진짜 무지 예뻐 보이고 말이다.
그러니 입 발린 소리가 아닌 진실이라는 거다.
한편 이런 나의 발언에 은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감동했을 게 분명하다.
원래 칭찬은 사람을 덩실덩실 춤추게 만든다고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잠시 후 은애는 아무 말 없이 터벅터벅 다가온다.
"......."
"......."
헉!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왜 분위기를 잡고!
서, 설마 내가 칭찬해 줬다고 감사의 인사로 뽀뽀 같은 걸로 보답을?
아악! 은애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이가 너무 급격히 진전되는 건.......
지금 나 혼자 뭔 개소리 해 대는 걸까.
요새 이리엘과 한참을 다니더니 나도 망상증 걸렸나 보다.
한편 은애는 어느새 내 앞에 오더니 갑자기 내 이마를 오른손으로 만진다.
그리고 나머지 손은 자기 이마에 대더니 말했다.
"열은 없는데."
"......."
"이상하다."
뭔가 이상한 반응이다.
이건 뭐지? 갑자기 왜 열을 체크하는 거야?
그 순간 마치 이런 내 의문을 읽었다는 듯 은애는 웃으며 말했다.
"난 많이 아파서 이상한 줄 알고."
"......."
"그런데 열이 없으니 이상해서."
"......."
그, 그럼 나의 칭찬을 이상한 말로 들었다는 거?
흑! 너무해. 남의 칭찬을 그런 식으로 듣다니.......
물론 내가 유치원 때부터 은애를 안 뒤 처음으로 칭찬을 하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놈이 갑자기 칭찬을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한편 은애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이 누나가 이제 보살펴 줄게요!"
"전 멀쩡하거든요."
"비정상 같아 보이는데."
"정상이야."
"칭찬했잖아."
"......."
내가 칭찬한 거 가지고 비정상이 되어 버리다니.
이제는 칭찬 안 하고 만다.
그래, 원래 인간은 자기가 살던 대로 살아야 되는 게 현명한 것이다.
어찌 됐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다.
말꼬가 트였으니 말이다.
난 다시 진지한 얼굴로 은애를 바라본다.
움찔!
한편 이런 나의 독창적인(?) 눈빛에 은애는 약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뭐 이해한다. 내가 원래 이런 눈빛 안 짓거든.
하지만 진짜 이번에는 이런 눈빛을 지어야 할 만큼 중요한 상황이다.
변태가 되느냐 성자가 되느냐가 달린 문제니까 말이다.
난 당황하고 있는 은애를 향해 직설적으로 말했다.
"날 유혹해 줘!!"
"......."
원래 굳이 돌릴 필요도 없고 은애한테는 돌려서 말하는 건 시간 낭비다.
어차피 돌려 봤자 말한 내용 다 꿰차고 있으니까.
한편 이런 나의 부탁에 은애는 무척이나 굳어 있다.
그리고 그걸 본 난 순간 당황했다.
'오, 오해한 건가?!'
말이 오해할 수 있는 대사이기는 하다.
하지만 절대 그런 의미는 아니고, '이리엘 효과'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난 그런 생각으로 어서 설명에 들어가려는데.......
"......!!"
"......."
갑자기 내게 다가오더니 휠체어에 앉은 내 다리에 앉는다.
그러고는 내 귀에 속삭였다.
"사랑해......."
"헉!!"
난 그 말에 온몸이 굳어 버렸다.
뭐지? 이 자극적인 모션은!!
내가 아무리 유혹해 달라고 했지만, 이렇게 분위기까지 변신하면서 자극적으로 나오면 나보고 어찌하라는 게냐!
"원한다면...... 난 너에게 모든 걸 줄 수 있어."
"으, 은애야......."
"몇 십 년을 너를 짝사랑해 왔어. 그런 너라면......."
"자, 잠시......."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갑자기 내 입술로 다가왔다.
뭐, 뭐지?
이거 실제 상황이야?!
뭐냐!!
난 분명 은애에게 아무 설명도 안 하고 '유혹해 줘'라는 말만 했다.
한마디로 은애는 내가 그 말을 한 이유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건...... 으악!!
그뿐 아니라 연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나다. 무슨 오스칸가 뭔가 하는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여할 정도로 말이다.
그때 어느새 은애의 입술이 점점 다가오고, 은애는 눈을 감아 버린 상태다.
난 그대로
"아악! 스톱!!"
"......."
스톱시켰다.
아무리 훈련이라고 해도 자극적이다.
은애같이 하이레벨 급 미소녀가 이런 자극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분들보다 훨씬 엄청나다.
그뿐 아니라 몸매까지도 예술인데 이런 행동은......!
한편 이런 내 절규에 은애는 다시 내 다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바보."
"......."
"유혹하라더니 1분도 못 견디잖아?"
"......."
그 말은 서, 설정이었다는 거야?
하지만 설정치고는 너무나도 실감났다고!
물론 원래 훈련이라는 게 실제같이 해야 한다지만, 이건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없을 정도니 말이다.
어찌 됐든 일단 내가 그런 말을 한 이유는 들려줘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서큐버스라는 여자가 네 옆에 있는데, 어찌할 줄 모르겠다고?"
"흑흑. 응."
"......."
"정말 미치겠어. 이건 악몽이야!!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뭐라고 해야 하나, 완전 미쳐 버리겠어."
"......."
내 말에 어이없어 하던 은애는 잠시 후 살짝 웃더니 말했다.
"그런데, 안 본 사이에 그런 미녀들과 오붓한 여행을 하고 있었던 거야? 성민 군."
"......."
그런 미녀들이라니, 설마 연희와 이리엘을 상대로 말하는 건가?
그런데 왜 저 웃음이 무섭지?
뭐라고 해야 하나, 뭔가 알 수 없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착각을 하는데, 절대 오붓한 여행은 아니다.
웬 미친 요정 한 마리 뒤처리한다고 힘들고, 이리엘 효과를 견디기 위해 내 몸이 하루도 성할 날이 없다.
솔직히 당한 자만이 알지 안 당한 자는 모른다, 이 기분.
한편 그렇게 살짝 웃던 은애는 잠시 후 진지해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내가 방법을 제시해 줄게."
"......!!"
난 은애의 그 한마디에 너무나도 감격했다.
여, 역시 은애밖에 없다.
은애를 부르길 잘했어!!
그렇게 난 은애의 한마디에 구원의 빛을 받았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은애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은애는 냉담하게 말했다.
"그냥 계속 나무에 머리 박는 거야."
"......."
"그럼."
"저, 저기......."
그때 은애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가 버렸다.
분명 나의 감각 센스가 틀리지 않았다.
화났다.
왜 화났지?
내가 뭘 잘못했나?
설마 유혹해 달라는 게 사실은 짜증났던 거야?
헉!
"은애야!! 자, 잠시......."
"......."
난 다급히 은애를 불렀지만, 은애는 그냥 문밖을 나서려고 했다.
난 할 수 없이 휠체어에서 몸을 분리해서 곧바로 은애를 붙잡았다.
그런데 은애는 갑자기 자신의 손을 누군가가 붙잡자 흠칫하더니 고개를 돌렸고, 어느새 멀쩡하게 깁스한 채 싸돌아다니는 날 보더니 굳었다.
"......."
물론 나도 굳었다.
그리고 난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헬로우?"
"으, 은애 님......."
"......."
"호호호."
"......."
난 애써 갑자기 굳어 버린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풀린다.
아악! 내가 왜 은애에게 이 사실을 말하는 건 잊어버렸단 말인가!
이놈의 건망증 같으니.
사실 은애에게 숨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기분이 중요하다.
항상 거짓말은 안 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생 구라를 치다니 정말 나란 놈도......!!
"걱정했어."
"......."
"너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할까 봐 걱정했어."
"......."
"하지만 휴식에 방해될까 봐 연락도 안 하고 집에도 안 왔는데, 근데 그런 내 걱정이 웃긴 거네?"
"저, 저기 잠시 뭔가 큰 오해가 있습니다."
"......."
은애가 큰 오해를 하는 것 같자 난 당장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잘 생각해 보면 요새 연락이 안 돼서 제가 말할 기회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
"......."
그러고 보니 그러네.
어찌 됐든 내가 잘못한 건 맞다.
이렇게 나를 걱정해 주는 은애에게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다니.......
그래서 특별히 오늘 은애를 위해서 슈퍼 울트라 스페셜 김치 볶음밥을 해 주기로 했다.
물론 맛은 보장 못하고, 그저 성의다.
그렇게 난 깁스를 한 채 자유자재로 주방을 싸돌아다니면서 그녀에게 사과의 의미로 음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덜컹!
"......!"
"......!"
갑자기 현관문이 열렸다.
나와 은애는 주방에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건 뭐냐?!
갑자기 무슨 봉변?!
지금 부모님은 해외에 계셔서 올 수도 없고, 유일한 통과자인 은애는 바로 내 옆에 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분?
그래, 그분이라면 가능하다.
지문 인식 문을 따고 들어오는 거 말이다.
그리고 경력도 계시고...... 확실해!
"하하하! 이성민, 죽었어!!"
"......."
"......."
그때 악어 선생이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아무래도 우리 집에 웬 아리따운 미소녀가 건너오는 걸 누가 제보한 모양이다.
일명 불량 교제라고 딱지 붙이고 잡아먹으려고 친히 찾아온 거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난 휠체어까지 버린 상태다.
한마디로, 지금 걸리면 개판이다.
좀 더 격렬하게 설명하자면, 걸리면...... 난 세이 굿바이?
"저기......."
"응?"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
"집에 왜 이런 게 있어?"
"......."
난 은애의 질문에 말문을 열 수가 없다.
나도 왜 집에 이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랑 은애는 특별히 내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주방에 특수 제작한 벽 속의 방에 있는 상태다.
사실 이걸 만들 때는 정말 비상용으로 만들어서 1인 승차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나와 은애는 완전히 겹쳐져 있는 상태다.
잘못 보면 19세 찍히겠다.
아니, 그리고 도대체 무슨 얘는 이렇게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이런 향긋한 냄새가.......
아악! 내가 변태도 아니고 자꾸 무슨 냄새 이야기를 하는 거냐!
어찌 됐든 나도 집에 왜 이런 걸 만들어야 하는지 회의감마저 든다.
"이성민! 모든 게 드러났다!! 튀어나와라!!"
"......."
"......."
그때 집 안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그분의 목소리.......
막 희열에 찬 게 완전히 즐겁다.
날 그렇게 물어뜯는 게 좋았던 걸까?
저분은 평소에는 저런 목소리 안 내면서 나를 물어뜯으려고 할 때는 저 목소리를 내시더라.
한편 그런 악어 선생의 발언에 은애는.
"참으로 인생이 판타스틱하게 사는 것 같아, 성민 군은."
"흠....... 나도 그런 것 같아."
나처럼 판타스틱하게 사는 사람도 드물지.
집에 비상용 벽 뚫어서 공간 만드는 사람 나밖에 없을 거거든.
저기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 거냐?!
그리고 왜 이렇게 거의 껴안다시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우어억!
요새 왠지 모르게 누군가가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싶다.
"성민 군!"
"......."
그때 악어 선생의 사랑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무섭다. 너무 섬뜩해서 땀이 날 정도다.
그때 어느새 악어 선생의 인기척은 주방을 건너왔고, 잠시 후 소리가 멈췄다.
그러고는 씩 웃는 소리가 나더니 그가 말했다.
"이건 방금 전 요리를 하던 상태?!"
"......."
"......."
"흐흐흐. 드디어 끝났다. 그뿐 아니라 이건 여자 냄새! 나의 센스가 반응한다!!"
"......."
"......."
진짜 미쳤다.
이건 아니다. 무슨 여자 냄새를 맡고 자기가 탐정이라도 된 듯하는 모션이라니, 정말 아니야!
그때 악어 선생은 다시 한 번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불순 이성 교제도 당첨."
"......."
"......."
어느새 은애와 난 불순 이성 교제로 낙찰됐다.
너무나도 감동적이기까지.......
그저 은애가 우리 집에 왔다가 불순 이성 교제 성립이라니, 이 무슨 망나니 계산법이란 말인가?
물론 남녀가 한 집에 있는 게 약간 이상할 수도 있지만 그건 편협한 시선이다.
나와 은애는 그저 이야기만 나누었을 뿐이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 불순 이성 교제가 되어 버리다니, 너무 판타스틱하다.
샤샤샥!
한편 악어 선생이 어딘가를 마구 뒤집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나와 은애를 찾고 있는 모양.
하지만 그래 봤자 우리는 그곳에 없다.
벽 뚫고 들어왔거든.
그렇게 악어 선생은 한참을 마구 찾더니 잠시 후 킁킁거리며 말했다.
"냄새가 나는데......."
"......."
"......."
뭔 냄새가 나는지 참으로 궁금한 소리를 하신다.
지금 하던 요리 냄새?
그건 워낙 강해서 당연한 것일 텐데. 왜 그런 소리를.
하지만 그분이 말한 냄새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건 여자들이 즐겨 쓰는 에리레라는 샴푸 냄새가....... 어서 나와!"
"......."
"......."
헉!
난 그의 발언에 심하게 놀랐다.
아니, 저분 개코인가?
지문 인식 따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개코 모드로?
그리고 은애랑 이렇게 근접해 있어야지만 나는 머리 샴푸 냄새를 맡을 뿐만 아니라 그 샴푸 이름까지!
한편 은애는 그대로 굳어 버린 채 물었다.
"저, 저분 뭐 하시는 분?"
"......."
"어떻게 내가 쓰는 샴푸 이름까지......."
"글쎄......."
"......."
저건 선생이 아니다.
그럼 뭐냐고? 나도 모른다.
정말 뭐 하는 분인지.......
킁킁.
"......."
"......."
심지어는 개 전용 소리인 '킁킁'을 모방하신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이 개처럼 냄새가 맡아지지는......!
"반경 30미터 안에 냄새가 난다."
개처럼 맡아지나?
진짜 킁킁거리면 정말 정말로?
왠지 모르게 해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할 단계가 아니지.
"저기......."
"......?"
그때 갑작스럽게 은애가 떨리는 어조로 내게 말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소, 손 좀......."
"......?"
"지금 네 손......."
"......?"
난 그 말에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손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난 놀라 외쳤다.
"헉! 미, 미안!!"
내 손이 있는 곳을 보고 경악했다.
왜 하필 내 손이 은애의 가슴에 얹혀 있는 거냐!
어쩐지 뭔가 뭉클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다.
너무나도 긴장을 하다 보니 말이다.
"뭐지?!"
"......!"
"......!"
그때 분명 최대한 속삭였음에도 불구하고, 악어 선생이 우리의 말을 잡아냈다.
저 인간, 뭐 하는 인간인지 진짜 궁금하다.
저 말도 안 되는 후각과 청각....... 이미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사실 혹시나 해서 이 비밀 장소에 방음 처리(?)도 한 나다.
그런데 그걸 듣다니, 놀랍다 못해 경악스럽다.
7시간 후.
그는 사라졌다.
정확하게도 약 8시간 동안 집에 죽치고 갔다는 거다.
정말 이 정도면 끈질기다 못해 공포가 느껴질 정도다.
도대체 날 얼마나 잡아드시고 싶었으면, 이렇게 끈질기다니.
어찌 됐든 이제 그의 기척이 사라졌다.
한마디로 우린 그 비좁은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나와 은애는 당장 그곳에서 나왔고, 둘 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땀에 흠뻑 젖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당연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저 좁은 공간에 둘이 있었으니. 그리고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에 생긴 땀이었다.
한편 은애는 나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물었다.
"너 항상 이렇게 살아?"
"그, 글쎄."
"......."
"뭐, 가끔씩?"
"......."
가끔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약간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때 은애는 정말 감탄 어린 어조로 말한다.
"아까 그 이상한 선생님도 엄청나지만, 그런 선생의 손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네가 더 대단한 것 같아."
"하하하. 가, 갑작스러운 그런 칭찬은......."
난 은애의 칭찬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런 내 모습에 은애는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말했다.
"칭찬 아닌데."
"......."
그렇군, 칭찬 아니었군.
그렇게 은애는 정말 지친 얼굴로 돌아갔다.
물론 나에게 이런 한마디를 남겼으니, '이렇게 힘든 하루는 처음이었어'라는 말이었다.
충분히 수긍하고 또 수긍한다.
그나저나 난 오늘 힘들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푸욱."
은애와의 화려했던 시간(나도 남자이다 보니).
그러니 어떻게 보면 그분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난 그런 생각이 들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열심히 누군가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으윽!"
악어 선생은 절망했다.
분명 오늘이면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추가로 불순 이성 교제도 낚을 수 있다고 단정 지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숨은 건지 아니면 밖으로 나간 건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이성민......."
뿌드득.
유일하게 물었지만 아직 뜯어먹지(?) 못한 놈이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이성민이라는 놈에 대한 추적에 투자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못 잡고 있다.
정말 독하디독한 놈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띠링.
"......?"
그때 갑자기 그의 귀를 자극하는 문자 메시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문자를 열었는데.......
선생님 고맙습니다. 후후후.
"......."
누군가가 자신에게 고맙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그 고맙다는 인간이.......
"이성민!!"
그 누구도 아니고 이성민이다.
왜 이놈이 자신에게 고맙다고 하지?
"뭐, 뭐지? 뭐가 고맙다는 거지?!"
순간적으로 악어 선생은 패닉 상태에 돌입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저놈이 자신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한 자체가 너무 기분 나쁘다.
도대체 무엇이 자신에게 그리 고마워서 문자까지......!
"아아악!!"
악어 선생은 절규했다.
왠지 모르게 심한 패배감까지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