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하루를 넘겼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긴 것처럼 하루를 견디면 또 다른 하루가 펼쳐질 뿐이다. 고통은 어떠한 관성이 있는 것처럼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닥쳐왔다. 그렇게 쉽게 떨쳐낼 수 있을 만한 게 아닌 데에서부터 우리의 악몽은 단지 초입이었을 뿐이다.
잠드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밤을 지새우는 날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낮에는 생활 소음에 묻혀 그나마 뒤로할 수 있는 것들은 밤이 되면 서슴지 않고 경계선을 넘어 나에게로 침투했다.
지난날, 기어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 버린 순간 이후로 밤의 침실 문은 굳건히 닫혔다. 아무리 돌려도 덜컥, 거리며 걸쇠가 부딪히는 소리만 내는 문손잡이를 거머쥐고 씨름을 벌이다가 통창 앞으로 다가가 서늘한 유리창에 온몸을 기대는 시간이 늘어났다. 꾸벅꾸벅 조는 것도, 그렇다고 정신을 차린 것도 아닌 상태로 하늘을 장악한 달과 함께 칠흑 같은 밤을 흘려보냈다.
속수무책으로 심해지는 불면 아래 낮의 시간 또한 온전하지 못했다. 기면증처럼 꾸벅꾸벅 조는 일이 늘어났다. 차무겸은 이제 굳이 식사를 함께하기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내가 졸고 있는 걸 발견하면 그저 안아서 침대로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잠들어도 얼마 안 있으면 깨어나 멍하니 시간을 죽였다.
하루는 해가 쨍쨍한 백주 대낮을 허무하게 날리는 내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게 다가와서 억지로 책을 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첫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분명 활자를 읽고 있는데, 단어가 만들어내는 문장과 문장이 형성해내는 문단을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하나도 없었다.
“…모르겠어.”
무슨 말이지, 이게?
영어도 아닌 한글인데 왜 읽히지가 않지. 발음까지 하며 읽어도 뇌에 억지로 새겨 넣은 글자는 물속에 푼 물감처럼 얼기설기 올이 풀리다가 끝내 부옇게 흐려져 버렸다. 오히려 귓전을 끈질기게 맴도는 소리가 혼돈에 섞여 더욱 몸집을 부풀렸다.
괜한 짓이었다. 사고회로가 기어이 녹슬었다는 걸 확인받은 느낌이라 마음이 더 뭉그러졌다.
그런 와중에도 은근한 잠을 부추기는 수면 장애가 원망스러웠다. 그래, 푹 잠들지 못해서 그런 거야. 잠이 부족해서 그래. 나는 정신병자처럼 그 말만 중얼중얼 읊조리며 거실을 빙글빙글 배회하다가 부엌으로 향했다. 잠을 자면 괜찮을 것이다. 요즈음 제대로 눈을 붙여본 기억이 없어서 그런 걸 테다.
그 마음 하나로 비틀비틀 걸어 부엌 찬장을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무얼 목적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움직이던 손이 멈칫했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하얀 통 하나를 발견했다. 수면제였다. 이제 와 신중하게 굴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캄캄하기만 하던 눈앞에 빛줄기가 쓱 들이밀어진 것처럼 허겁지겁 약을 목 뒤로 넘겼다. 한우현의 집에서 지낼 무렵, 한 알로는 금방금방 깨어났던 기억이 있어서 한 번에 몇 알을 삼켰다. 알약을 물도 없이 까득까득 씹어 삼키던 중 굼뜨게 움직이던 시야에 고급스러운 와인 셀러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왜 한 번도 술 마실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술에 취하면 이 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취기에 잠이 솔솔 올 수도 있고. 이번 역시 신중하지 않게 문을 열고 와인병을 꺼냈다. 옆에 놓인 따개로 코르크를 따고 시큼한 와인을 물처럼 꿀꺽꿀꺽 들이켰다. 혀끝에 약과 뒤섞인 독한 맛이 지저분하게 번졌다.
“…흡.”
열기처럼 후끈한 액체가 식도를 긁으며 지나갔다.
와인병 주둥이에서 입술을 떼고 숨을 들이마셨다. 너무 급히 마신 탓일까, 호흡이 불편했다. 와인병을 쥔 채 거실로 가기 위해 발을 틀었다. 부엌을 막 나서는데, 별안간 폐가 터질 것처럼 조여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이 바닥으로 추락해 산산조각 났다. 날카로운 파열음에도 정신이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콜록.
갑자기 호흡에 방해를 받은 것처럼 기침이 터져 나왔다.
“욱….”
누가 머리를 잡고 마구 흔드는 것만 같은 어지럼증과 구역질이 일며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시야가 금세 뒤집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아, 숨이… 잘…. 간신히 그러쥔 주먹으로 가슴팍을 두드리다가 그마저도 힘에 부쳐 팔을 늘어뜨렸다.
누가 억지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의식이 농몽하게 풀어졌다. 시야가 두 겹, 세 겹으로 오버랩됐다. 잠인 듯 잠이 아닌 듯 긴가민가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그대로 까무룩 기절했다.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손길에 정신이 들었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눈을 깜박거리는데 이상하게 비위가 상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쥐어짜이는 듯한 배를 감싸 쥐고서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눈꺼풀을 들었다.
“아파?”
어룽진 눈앞으로 상이 어렴풋이 잡혔다. 익숙한 목소리, 차무겸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그가 일어나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아프겠지.”
“…….”
“네가 분별도 없이 술이랑 처먹은 약을 긁어내느라 위세척까지 해야 했으니.”
싸한 소독약 냄새가 은은하게 스치길래 병원인가 했는데, 이미 병원에 갔다가 돌아온 건지 펼쳐지는 배경은 잘 아는 침실이었다. 그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느리게 뻗어지는 팔을 향해 눈알이 힘없이 굴러갔다. 길고 가는 링거줄이 보였다.
“가정부가 너를 발견하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호흡 마비로 정말 위험해졌을 거라고 하더라.”
“…….”
“네 몸이 워낙 약해서 이번 일로 간도 망가졌다고 그러고….”
차무겸은 내가 잘 아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나를 이렇게 속상하게 하느냐며 이 모든 결과가 오직 나로부터 기인한 것처럼, 잔악하게 책임을 전가하는 바로 그 낯짝이었다.
“또 죽으려고 그랬어?”
심상한 표정과 달리 혓바닥은 신랄하게 움직였다.
“아니….”
“그럼.”
“자고 싶어서….”
“…….”
“자꾸 못 자고 깨니까.”
웅얼웅얼, 변명에는 힘이 없었으나 이번만큼은 사실이었다.
물론 아깝기는 했다. 그가 꺼낸 말대로 가정부가 나를 찾는 게 조금만 늦어졌더라면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 역시 실패로 돌아갔고 나는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크게 사무치는 감정은 없었다. 애초에 마음먹고 계획한 짓도 아니었고 한두 번 접하는 실패도 아니었으니. 이미 무가치한 삶, 어그러진 생활이다. 더 무너질 것도 남아 있지 않은 형국에 번번이 마음이 주저앉을 이유는 없었다.
그날 차무겸은 더 이상 따지지도, 파고들지도 않았다.
속내를 간파하려는 것처럼 지긋한 눈길을 보내다가 침실을 빠져나간 게 전부였다.
그날의 기억은 몸이 망가졌다는 치명적인 결과로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했다.
위세척을 하고 간에 손상이 갔을지언정 며칠 만에 이루게 된 단잠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실상은 기절한 것에 가까웠지만, 신경줄이 습자지처럼 얇아져 오만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나에게 그 차이는 감당할 수 있는 무언가로만 다가왔다.
그리하여 또다시 혼자 남은 집에서 수면제와 술을 찾았지만 기대와 달리 코빼기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약통은 물론이거니와 부엌 한 칸을 차지하던 와인 셀러 역시 아예 없어진 채였다.
하긴, 가만히 놔뒀을 리가 없지….
나는 이명이 이는 머리통을 익숙하게 손으로 두드리며 발을 돌렸다.
술과 수면제를 함께 복용한 이후로 의식보다 무의식이 앞서는 날이 많아지며, 기억 역시 누가 가위로 군데군데를 자른 것처럼 영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쨍그랑!
날 선 파열음이 으슥한 어딘가로 침전된 양 시종일관 먹먹한 정신을 깨웠다. 눈을 스르르 떨구자 발 바로 앞으로 깨진 유리 조각들이 보였다. 날카로운 단면을 서슴없이 드러낸 그것들은 조명의 빛살에 부딪쳐 은비늘처럼 반짝거렸다.
아, 이게 왜…. 잠시간 아뜩해졌다. 느닷없이 낯선 오지에 떨어진 것처럼 앞뒤를 잇는 상황을 떠올릴 수 없었다. 물을 마시러 부엌에 왔었나? 그러다가 실수로 떨어뜨렸나?
무엇보다 뾰족뾰족하게 솟아오른 잔해를 보니 저걸 가득 그러쥐고 싶은 충동이 일어 손이 저절로 뻗어졌다. 마침내 유리 조각에 손을 대기 전, 팔이 붙잡혔다.
“건들지 마.”
차무겸이 수그린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무릎 아래로 팔뚝을 밀어 넣어 안아 들었다. 부엌을 나서는 그의 어깨 너머로 한 상 가득 차려진 식탁이 보였다. 그제야 그와 식사를 하던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잠깐 물을 마시려고 일어났다가….
처음 있는 일이라면 놀라 말을 잃었을지도 모르지만, 작금 들어 숱하게 이어지던 망각인지라 별일 아닌 일로 치부하는 무덤덤함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다.
차무겸은 매번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구는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 벌어진 일을 간단히 수습하면서도 한 번씩 뜻 모를 시선을 던지고는 했다. 무언가가 우글우글 들끓고 있는 눈빛을 내 얼굴 여기저기에 흩뿌리면서도 이상하게 입은 무겁게 걸어 잠근 채였다. 무슨 말을 꺼냈다면 나 역시도 그에 걸맞은 반응을 했겠지만 언제나 침묵을 지키다 보니 덩달아 입을 다물게 됐다.
그런 그가 웬일로 입을 연 날이 있었다.
“내일 집에 올 사람이 있어.”
“…누구?”
“내가 아는 사람.”
“왜 오는데?”
“널 소개해주고 싶어서.”
불꽃을 흉내 내듯 은은하게 일렁이는 조명등의 주홍빛이 머리카락을 밝게 물들였다. 차무겸은 금사처럼 늘어진 내 머리칼을 느긋한 손길로 어루만져주었다. 암영의 코딱지만 한 집구석 안, 악몽을 꾸고 일어나 울던 나를 달래주던 엄마의 손길을 연상시켰다.
잠이 오지 않아도 눈을 깜박거리게 된다. 가물거리는 시야 속으로 비치는 차무겸의 얼굴은 단정한 듯 보이지만 피로가 여실하게 배어 있었다. 밤마다 홍역을 치르는 나를 따라 차무겸 역시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마치 샴쌍둥이처럼 나의 고난과 시름은 그의 몫이 되기도 했다.
후회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고작 한 텀 만에 생각은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후회해도 어쩔 텐가. 떠나려는 나를 잡은 건 본인인데. 제 의지에 따라 사서 하는 고생이었다. 한 번 붙잡았으니 그 뒤의 상황도 한결같이 이어질 뿐이다. 어딘가로 추락할 것처럼 휘청거리기 바쁜 나를 붙잡는 건 그가 스스로 선택한 멍에였다.
“지금도 소리 들려?”
“응….”
짧게 대답하자 차무겸은 그럴 리가 없다는 말 대신 묵묵히 손을 움직여 내 눈가를 덮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이런 행동을 곧잘 했다.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고난을 제힘으로 차단시키듯이. 그건 지난날 내게 떨어졌던 부정이 상기된 까닭이었다. 이상해 보이냐는 질문에 대해 아니라고 딱 잘라내던 대답이….
캄캄한 암흑 속에서 가늠되지 않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차무겸이 말한 대로 누군가 집에 방문했다.
처음 보는 여자는 철두철미한 느낌을 내는 은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반가워요, 사은 씨.’ 하고 사근대며 악수를 청하는 모습에서 사람을 능숙하게 대하는 태도가 얼핏 엿보였다. 깊이 휘어지는 눈꼬리 속에 짐작하고 싶지 않은 꿍꿍이가 내포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증거처럼, 악수를 마치고 거둬들이는 손에 이상하게 땀이 맺혔다.
나도 모르게 손을 감추듯이 뒤로 보내며 차무겸을 응시하자 그는 저녁을 먹었느냐는 여상한 질문을 던지며 내 뺨을 쓸었다. 아직, 하고 작게 대꾸하며 고개를 숙였다.
평소 2인분의 몫으로만 꾸며지던 식탁 위, 그릇의 개수와 음식의 가짓수가 조금 더 늘었다. 무엇보다 명확하게 한쪽에 커트러리 세트가 하나 더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난데없는 손님과 식사를 함께 할 것이라는 명명백백한 증거였다.
지난번의 소동 후, 하루에 한 끼는 주식 대신 먹도록 권유받은 유동식을 깨작깨작 섭취하는 동안이었다.
“사은 씨는 나이가 어떻게 돼요?”
“아아, 그럼 취미는 있나요?”
“없으면 어떤가요.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요즘 날씨가 굉장히 좋죠? 벌써 벚꽃도 피고 말이에요. 눈 오던 겨울이 엊그제 같은데.”
여자는 시큰둥, 더 나아가 무성의하기까지 한 내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말을 걸었다. 차무겸의 손님이라는 명목이 무색하게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까다로운 질문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표출되는 호기심인지라 대답을 피할 길이 없었다.
예민하게 굴기에는 소탈했고, 그래서 선뜻 분위기를 깰 수 없는 답답함이 혀끝을 억지로 움직이게 했다. 그러면서도 얇은 안경알을 투과하는 두 눈과 마주칠 때마다 지레 겁을 먹는 것처럼 손끝이 움츠러드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유리알의 서느런 냉기가 덧씌워진 채로 쏟아지는 시선은 마냥 나를 탐색하는 것처럼 비쳤다. 아무런 이상도 없는 자리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한 건 오직 저 눈길 하나 때문이었다. 차무겸과 이 집은 이제 익숙한데, 오직 저 눈빛이 내게 닿는 것만으로 두 발을 디딘 공간이 모조리 일그러진 것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어느 밤, 맘속을 불쑥 침입했던 두려움으로부터 기인한 박동이 다시금 전신을 울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불쾌함과 그에 상응하는 불편함이 잔뜩 뒤엉켜 목을 턱 막아버렸다. 아주 길고 굵직한 가시 하나가 기도에 쑤셔 박힌 것만 같았다.
왜? 왜 나를 저렇게 보는 걸까. 나를 꼭 진찰대 위의 환자라도 되는 양 주시하고, 관찰하고, 훑어보는 게 못내 거북했다. 세상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짜여진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데에 반하여, 나 혼자만 거꾸로 돌아가는 비정상의 낙인을 찍는 것만 같아서.
이곳에는 사람이 셋이나 있는데 홀로 외로이 동떨어진 낙오자가 된 느낌이었다. 살갗에 점액질처럼 달라붙는 고독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게 어디든 좋으니 당장 달아나고 싶은 욕구가 또다시 솟구쳐 올랐다. 그에 못 이겨 내가 몸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무언가 종알종알 말하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을 무렵이었다.
“사은 씨?”
“아, 저… 잠시 화장실 좀.”
지금만큼은 진득이 이어지는 차무겸의 이목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조금만 힘을 풀면 곧장 비틀거릴 듯 불안정한 걸음에 오기를 더하여 간신히 내디뎠다. 부러 부엌과 멀리 위치한 화장실을 찾았다. 대리석 세면대 앞에 서서 수도꼭지를 들어 올렸다. 쏴아아.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아래로 포갠 손을 밀어 넣었다. 손끝으로 닿는 차가움이 불쾌하고 끈적거리는 땀을 앗아갔다. 수도꼭지를 닫자 시원하게 낙하하던 물소리가 멎었다. 또옥, 똑. 물줄기가 단번에 자취를 감추어 미처 함께하지 못한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귀를 울렸다.
의사… 겠지.
그 여자는 아무리 봐도 의사였다. 나처럼 경계심을 풀지 못하는 환자를 대하는 게 업임을 증명하듯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노련한 면을 선보이던 사람. 평범하고 소탈한 듯 대화를 이끌어가면서도 이따금 던지던 탐색적인 눈빛.
내가 대답을, 뭐라고 했더라.
그 사람에게 의심을 꽂을 만한 건지가 있었던가. 모르겠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제대로 대답을 한 것도 같고 엉뚱한 대답을 한 것도 같고…. 습관 같은 망각이 또다시 기억의 일정 부분을 부옇게 표백시켜버렸다.
만약 그랬으면?
두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주절주절 좋을 대로 지껄이기라도 했다면 어떡하지? 그래서 그 의사처럼 보이는 여자가 나를 정신병자로 판단하고, 차무겸에게 그 소견을 곧이곧대로 전한다면? 혹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 거 아닐까? 설마. 하지만…. 아니야, 그래도 차무겸이…. 아니, 걘 예전부터 날 가두고 싶어 하기는 했잖아.
물이 마르지 않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끈지끈. 눈자위를 쑤시는 편두통이 엄습했다. 이런 와중에도 안개처럼 밑바닥에 그윽이 깔려 쉬이 가시지 않는 울음소리의 잔음이 나를 조금 더 벼랑으로 내몰아댔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적어도 여자가 가기 전까지는 이성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수도꼭지를 다시 틀어 쏟아지는 물을 가득 담아 얼굴에 끼얹었다. 얼음장 같은 냉수가 머릿속을 억지로 깨우는 듯했다. 몇 번이고 세수를 반복한 후에야 상체를 들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정하기 그지없던 얼굴이 지금은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다. 선반에 놓인 수건을 꺼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닦았다.
금세 축축해진 수건을 수건걸이에 걸어두고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한 문 앞에는 팔짱을 낀 차무겸이 서 있었다. 예기치 못한 조우에 흠칫, 놀랐다. 차무겸은 이런 내 모습을 짐작한 것처럼 감정의 기복이 크게 없는 낯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태연자약한 모습이 이상하게 배알을 뒤틀었다.
거짓말. 거짓말이었어, 역시.
나를 이상하지 않게 여긴다고 답한 건 분명한 기만이었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했노라면 이런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의사를 불렀을 리 없으니까. 수도 없이 갈라졌다가 간신히 붙여져 금이 쩍쩍 간 상태의 믿음은 손쓸 틈도 없이 재차 쪼개어졌다. 그 틈 사이로 배신감이 급격하게 차올랐다.
“저 사람… 의사지?”
까끌하게 말라붙은 목소리가 지금 나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대변했다. 차무겸이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미세한 움직임을 담는 눈동자가, 물수제비가 뜨는 호수의 표면처럼 잘고 길게 요동쳤다. 그는 야속하게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지못해 꺼내놓을 바에는 차라리 비겁하게 굴겠다는 듯 침묵을 택한다. 그 태도에 더욱 이가 갈렸다.
“왜 데리고 왔어?”
그런 그의 비겁함을 모조리 까발리려고 안달이 난 것처럼 답이 뻔히 보이는 질문을 내밀었다. 차무겸을 대면하는 이목구비 곳곳으로 깃드는 모멸과 분노를 참아낼 수가 없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지금, 다 닦이지 않은 물기로 젖은 얼굴이 엉망이라는 걸 능히 짐작 가능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
“근데 왜 데리고 왔어.”
“…….”
“왜, 왜! 왜…!”
엉킨 심정을 그러쥐기라도 한 것처럼 동그랗게 만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거세게 두들겼다. 잠시간 나에게로 몰아친 고충과 형극에 잊고 있던 붉은 기운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했다. 벌겋고 축축한 무언가. 질척하고 선연한 예리함. 날붙이만 보면 모락거리는 신랄한 광기. 날카로운 무언가로 살갗을 비집어 피를 쏟게 만들고 싶은 그 광폭적인 충동이 마구 날뛰었다.
수면 밑으로 간신히 재워둔 살기가 얇은 막을 깨고서 고개를 불쑥 든 건 이번만큼은 용납할 수 없는 안정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무겸을, 내가 대체 차무겸의 무얼 믿고 그에게….
“왜 거짓말을 했어? 왜!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했으면 됐잖아. 나, 내가 이상해 보인다고!”
“진정해.”
다른 세상 속 사람처럼 한참은 동떨어진 이 차분함마저도 이를 갈게 만들었다. 나와는 판이한, 지나치게 담담한 태도가 어떠한 응어리가 되어 목구멍을 치받았다. 지금조차도 내 행동을 훤히 예상한 것처럼 구는 차무겸의 꼴은 내게 견딜 수 없는 멸시감을 일으켰다.
내 팔뚝을 그러쥐는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몸을 마구 뒤틀었다. 격렬한 몸짓으로 말미암아 화장실 앞에 걸린 액자와 그 아래 장식용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도자기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는 귓구멍에 담기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것까지 끼기에는, 지금 내 고막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에.
차무겸은 발악이라도 하는 것처럼 난동을 부리는 내 몸을 꽉 붙들었다.
“진정하라고!”
코앞에서 마주하는 동공은 이런 나의 모습을 농락한다기에는 너무도 진중해 보였다. 늘 나를 희롱하거나 기만하는 데에만 주력하는 그 시선이 기이한 무게감으로 빛을 내는 게 어색하다 못해 오소소한 소름을 돋아냈다. 너는, 너는 그런 눈을 하면 안 되잖아.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되잖아.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내가 이 지경,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누구 때문인데….
차무겸의 큰 손이 넋을 잃은 내 뺨을 덮었다.
“사은 씨.”
자박. 화장실 바로 앞을 넘어 여기저기로 튄 유리 조각이 누군가의 걸음에 짓밟혔다. 파열음이 공백에 금을 가게 만들었다. 텅 빈 눈동자로 그쪽을 돌아보자 우리를 제외하고 식사 자리를 지키던 여자가 어느새 근처까지 와 있었다. 주시하는 눈빛은 여전히 종잡을 수가 없어서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토할 것만 같았다.
“지금도 뭐가 들려?”
차무겸이 물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너무도 또렷하게 들리고 있었으니까.
아기의 울음소리는 분명히 존재했다. 어디선가 구슬프게 울었다. 수술실 안이 아니라 내 배 속에서, 죽어버린 것에 대한 비통을 토하듯이 서럽게도 울어댔다. 어쩌면 벌을 받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 멋대로 지우려고 한 것에 대하여 이리도 고된 형벌이….
눈알이 데굴 굴렀다.
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흔들림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걸 체감할 때마다 발밑이 푹푹 꺼져갔다.
“이상해….”
“…….”
“나 이상해. 이상하다고. 자꾸, 자꾸 들리는데… 왜, 윽, 왜 아무도 못 듣지. 왜, 나만, 나만 들리지. 왜….”
양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귓구멍을 파고드는 잡음이 없도록 꼭꼭 막아 봐도 소용이 없었다.
“사은 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의사는 나의 혼란을 잠재워주고 싶은 것처럼 다소 급하게 뇌까렸다. 그러나 저 여지없는 판단과 주지가 지금의 내게는 독이었다.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처럼 더듬더듬 뒷걸음질을 쳤다. 차무겸이 곧장 발을 뻗어 거리를 좁히고 나를 붙들어도 그 손을 내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게 정말 안 들려?”
“김사은.”
“그럴 리가 없다고. 자꾸 저기서, 흐윽, 울고, 또 저기서….”
내가 보기에도 나의 말에는 신빙성을 느낄 만한 구간이 없었다. 그러나 그게 통감하는 나의 현실이기도 했다. 사방팔방에서 들리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이리도 생생한데 왜 모두 귀가 먹은 것처럼 구는 걸까. 큰 소음 때문인지 여자의 뒤편으로 가정부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가면이라도 쓴 양 똑같은 눈이다. 나는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처럼 굽이치는 상황 속에서 조금 더 외로운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게 견딜 수 없는 패닉을 일으켰다.
고개를 도리질 치는 속도가 빨라지고 겨우 마른 얼굴이 다시 흠뻑 젖어갔다. 나중에 가서는 내 손으로 귓바퀴를 후려치기를 반복했다. 저번에 이렇게 했을 때 소리가 멎은 것도 같아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뭐든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아니, 이렇게? 아니….
마침내 차무겸이 자학하듯 움직이는 양손을 움켜쥐었을 때.
“아니면.”
모두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음에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내가 미친 건가…?”
스스로 시인한 그것은 어찌나 꼭꼭 담아둔 가정이었던 건지 의도치 않게 뱉어내고는 일말의 후련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부정할 여지가 없는 일임을 입증시키는 증거가 되어 나를 한층 더 구슬프게 만들었다.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축축한 물줄기가 줄줄 터져 나왔다.
내가 개미만 한 목소리로 꺼내 든 가정에 분위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그건 또 하나의 대답이 되었다. 오히려 기정사실이 되니 공기를 짓이겨뜨리는 패닉이 조금은 걷어졌다. 정확히는 그나마 속을 채우던 한 줌의 감정마저도 온갖 구멍을 통해 빠져나간 것 같았다. 허하고 텅텅 비어 그럴듯한 껍데기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아니.”
손목을 꾹 움켜쥐는 힘이 정도를 모르고 추락하는 의식을 간신히 붙들었다.
“나도 들려.”
차무겸이었다. 차무겸이 그렇게 말했다.
또다시 기만이다.
이미 된통 당한 본능이 속으면 안 된다는 적신호를 강렬하게 울려댔다. 물기로 뭉그러져 엉망이 된 이목구비 속, 눈동자만큼은 칼심을 박은 것처럼 꼿꼿이 홉떠 그를 노려보았다.
“거짓말….”
“진짜야.”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한 번으로 모자라 쐐기를 박으려는 것처럼 되풀이했다.
“진짜라고, 사은아. 나도 들려. 저쪽에서 들리지?”
차무겸은 시야를 좁아들게 한 눈물을 닦아주고는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가 맥없이 돌아갔다. 어…. 침음이 샜다. 뭔가 정말 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봐, 차무겸이 달큰하게 속삭였다. 그의 손끝이 스친 곳을 가만 응시하고 있자 차무겸이 그런 내 양 뺨을 감싸 쥐고서 머뭇거림 없이 입을 맞춰왔다.
“네가 들린다면 들리는 거야, 그렇지?”
그 확언이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증명처럼 들려서 또다시 무언의 조종을 당하는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차무겸이 기분 좋은 듯이 웃으며 나를 안아 올렸다. 얼굴이 그의 어깨에 묻어졌다.
“됐으니 이만 가 봐.”
그 상태로 그가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얌전히 그 품속에서 숨을 죽였다. 다 나를 정신병자처럼 여기는 지금은 적어도 이 품에서나마 아가미를 되찾은 잉어처럼 간신히 호흡할 수가 있었다.
그는 나를 고이 안은 채 침실로 향했다. 손님이 와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 손님과 식사를 하던 중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조금의 망설이는 기색조차 발견할 수 없는 태도였다.
성마른 호흡을 간신히 뱉는 나를 침대에 내려준 차무겸이 자연스레 위로 올라탔다. 검은 음영이 그늘막처럼 나를 틈 없이 뒤덮었다.
그 뒤로도 생각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방만하게 풀어 헤쳐지길 반복했다. 따듯한 실내인지라 단출하게 차려입은 옷자락이 침대 아래로 허물처럼 툭툭 떨어졌고, 차무겸이 잔뜩 뭉친 뜨거운 숨결로 내 살갗을 간지럽혔다.
큼지막한 손에 붙잡힌 다리가 벌어지고 아래가 흐물흐물해질 만큼 빨렸다. 느슨해진 구멍이 흥건하게 젖은 채 벌름대고 있자 차무겸의 손가락 두 개가 우선적으로 파고들었다. 선보이는 탐욕스러움에 비해 과도하게 좁진 내부가 여기저기를 문지르는 손가락을 관능적으로 흡입했다. 차무겸은 추삽질하듯 안을 들쑤시며 아래를 깊고 넓게 휘저었다. 찔꺽거리며 맺히기 시작한 물기는 질척한 애액으로 변하여 구멍 주름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하읏, 하….”
차무겸은 평상시처럼 음탕한 언어를 쉼 없이 지껄여 나를 수치심의 호수로 밀어뜨리는 대신 다소 급한 태세로 밀려 들어왔다. 오금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허리가 곡선으로 굽어지며 그의 성기를 조금 더 착실히 조여 물었다.
“아흐으…!”
발기한 성기의 겉면을 둘러싼 혈관이 내벽 살을 떠밀듯 긁어냈다. 허벅지가 조금 더 벌어지며 차무겸의 단단한 복근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우악스럽게 파고들어 안을 넓히는 좆이 마찰열을 일으키며 유연하게 치고 빠졌다. 방아질이 이어질수록 매끄럽게 비벼지는 부분에 뽀얀 포말이 걸쭉하게 일었다.
“사은아, 하아….”
“윽, 흐… 으읏…!”
차무겸이 쾌락에 짓눌려 본능적으로 저를 밀어내는 내 팔을 목에 두르게 만들고서 상체를 가깝게 기울였다. 그의 가슴팍 위로 자리를 잡은 젖꼭지가 내 것과 스치며 저릿저릿한 성감을 더했다. 아랫배가 꽉 조여드는 감각을 견디기가 버거워 턱을 치들자 차무겸이 기회를 노리고서 먹잇감을 잡아채는 뱀처럼 날렵하게 파고들었다.
도드라진 턱선을 혀로 핥고 그 아래를 입술로 베어 물었다가 놓은 그가 숨결에 가라앉은 탁성을 섞어 흘려보냈다.
“우리 아기 다시 가질까?”
얼굴의 위치가 밀접해지며 무심코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현실성을 찾아볼 수 없는 말이 사고회로를 핑그르르 돌렸다. 아래를 계속해서 헤쳐 들어오는 자맥질에 온몸의 신경이 펄펄 끓고 있었음에도 그 한마디에 피가 차게 식는 듯했다. 그는 대답을 채근하는 것처럼 ‘응?’ 하고 되물으며 허리를 야릇하게 쳐올렸다.
“아, 흑, 아, 아기…?”
“응.”
“나, 나 아기 못, 흐, 못 가지는데…. 아…!”
자연임신이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는 의사의 독언이 메아리처럼 귓구멍을 맴맴 돌았다. 차무겸이 내 이마에 제 이마를 기대며 가벼운 버드키스를 여러 번 남겼다. 그러다가 완전히 입술을 겹쳐 진한 딥키스를 퍼부어댔다. 땀으로 젖은 어깨와 목덜미 부근을 끈질기게 어루만지던 차무겸의 손이 몸선을 따라 차츰차츰 내려가 허리춤을 받쳤다. 그 상태로 힘을 주어 엉덩이가 허공으로 뜰 만큼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샅의 교접을 깊이 맞물리게 만들었다.
“으, 흐읏…!”
“못 가지는 게 어딨어.”
“하으, 응, 깊… 아…!”
“자궁에 넘치도록 싸주면 안 생기고 배겨?”
확신에 찬 어조가 머릿속을 진탕 휘저어댔다. 기시감을 부추기는 말이었다. 조금 전, 나를 이상하게 응시하는 이들 사이에서 오직 차무겸만이 나의 반응에 동조해줄 때. 내가 들린다면 들리는 게 맞는 거라고, 조금의 여지도 없이 확언해주는 그 태도를 상기시켰다. 정말 의사조차 안 된다고 한 일을 능히 해내고도 남을 듯한 그 태도가….
“아아, 흑… 응…!”
그의 손에 의해 붕 뜬 허리 밑으로 푹신한 베개가 굴러들어왔다. 차무겸이 무릎 뒤편을 잡아 눌러 몸을 반으로 접을 것처럼 내리눌렀다. 압박당하는 자세 그대로 받는 성기는 정말 짐작할 수 없이 내밀한 곳까지 떠밀려 들어와 얇은 막을 뭉근하게 건드리는 듯했다. 사지육체가 뜨끈하고 어찔한 성감에 흠뻑 젖어 발발 떨렸다.
“생길 때까지 안에다 싸줄게, 내가.”
퍽! 퍽, 퍽, 퍽! 샅과 샅이 쫀득하게 맞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침실 내를 음탕한 소음으로 채워 넣었다. 차무겸은 완전히 회까닥한 짐승처럼 무지막지하게 쑤셔 박아댔다. 그 집요함은 평소보다 수 배는 길게 이어진 정사로 증명되었다. 올이 하나하나 풀린 것처럼 잔뜩 헤벌어진 정신으로 그를 끌어안거나 붙잡던 내가 제발 그만하라고 울며불며 악을 쓸 지경에 이를 때까지 섹스는 진행되었다.
“아흣, 아… 그만…응…!”
울음에 젖어 헐떡대며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어찌나 쏟아부었는지 그가 두툼하게 차오른 귀두를 구멍에 대고 밀어 넣기만 해도 정액이 오줌발처럼 줄줄 샐 지경이었다. 주름마저 팽팽하게 벌리는 페니스의 둘레를 타고 백탁액이 질금질금 새는 그 감각이 못 견디게 소름 끼쳤다. 덕지덕지 묻은 거품으로 매끈한 침입이었으나 잇따른 마찰열로 퉁퉁 부은 음부는 견딜 수 없이 쓰라렸다.
그러자 차무겸은 끝의 끝까지 미련을 놓지 못하는 사람처럼 허릿짓은 하지 않은 채 제 손으로 반쯤 들이밀고 남은 기둥을 주무르고 고환을 살살 문지르며 사정을 유도했다. 하도 싸질러대서 이제는 묽은 농도가 됐을 게 뻔한 정액이 좁은 질 안에 울컥울컥 터져 나왔다.
한참 동안 노련하게 움직이던 차무겸은 머지않아 내 위로 쏟아져 내렸다. 가시지 않은 땀으로 끈적하게 젖은 나신이 하나처럼 달라붙었다. 그의 입술이 맥박을 은은하게 울리는 목덜미 부근에 비벼졌다. 그걸로 모자라 슬금 혀를 내밀어 핥고 입술을 오므려 깊이 빨아들였다. 피부가 빨리는 느낌이 꼭, 간신히 이어가는 숨마저 다 잡아먹히는 것만 같았다.
멍하니 돌린 시야에 매끄러운 윤기를 내는 통창이 보였다.
광대한 배경으로 하얀 무언가가 아스라이 흩날렸다. 일순 눈보라가 이나 했다. 이미 계절은 겨울을 밟고 지나와 봄에 안착했는데. 모든 게 뒤틀린 나를 따라 시간과 공간마저 일그러진 게 아닌가 하는 흉측한 의심이 들었다. 다음 순간 나풀나풀 흔들리는 그 움직임이 겨울 아닌 봄에 어울릴 법한 동작임을 깨닫고서야 그 정체마저 눈치챘다.
벚꽃 잎이었다.
“왜 내 주변에서는 너를 놓아주는 게 답인 것처럼 말을 할까?”
귓불 근처에서 맴돌던 그의 입술이 움직이며, 아리송한 의문이 고막을 긁었다.
“너와 내가 헤어지는 게 옳은 일인 것처럼.”
“…….”
“난 그러고 싶지가 않은데.”
해끗한 벚꽃 잎이 아른아른 휘날리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몸을 틀어 내 뒤로 자리를 잡은 차무겸의 음성은 꿈결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그의 주변은 눈치를 챈 게 분명했다. 우리는 함께하면 함께할수록 서로를 파손시키고 부서뜨리게 된다는 걸. 어쩌면 그게 범인들이 보는 보통의 시각일지 모르겠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여운에 잘게 떨리는 알몸 위로 차무겸의 손이 그물처럼 얹어졌다.
“너도 그걸 원해?”
고작 저 질문 하나에 우리가 그간 겪었던 많은 인고와 고난, 격정과 혼란이 형형색색으로 물밀듯이 차올랐다. 차무겸은 시험지의 가장 마지막 문제처럼 난해하고 어려웠다. 잡다한 기억이 선한 나와 달리 그 모든 걸 지난밤의 악몽처럼 가벼이 흘려보낸 양, 그렇게 해달라고 하면 그래 줄 것만 같은 온화함을 겉포장한 채 물어오는 걸 보면 그런 감상밖에 들지 않았다.
이미 숱하게 겪어온 많은 잔상들이 머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무지근하게 이는 두통을 삼켜내며 간신히 답했다.
“…그렇게 해주지 않을 거잖아.”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내가 놓으면, 너 갈 거야?”
이제는 눈에 빤히 보이는 희망 고문이라도 할 셈인가. 나를 어르고 내 편이라도 된 듯 행동을 한 게 언제였느냐는 것처럼 또다시 덫을 놓는다. 문제는 지금의 나에겐 그것을 능히 알아채고 빠져나갈 여력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한참 전에 바닥을 친 기력은 더 이상의 소모를 무의미하게만 여겼다.
그리하여 그가 바라는 어느 쪽의 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차무겸의 손바닥이 내 배를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의 등과 그의 가슴팍이 조금의 틈도 없이 달라붙었다.
“안 그럴걸. 너는 나 못 떠나.”
“…왜?”
목소리가 절로 비뚜름해졌다.
근거 없는 믿음이 묘연한 오기를 부추긴 까닭이었다.
아니, 그건 오기가 아니라 악연에 가까운 과거로부터 첩첩이 쌓인 부정에 가까운데.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부리는 오기처럼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차무겸의 확신 어린 반응에 대항하고자 하는 한 줌의 객기이기 때문일지도.
“너는 날 사랑하니까.”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끊어질 듯 가냘프게 이어지던 숨이 뚝 멎었다. 그야말로 숨통을 틀어막는 전언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는… 너 안 사랑해.”
아주 조금은 의지를 되찾은 목소리를 가까스로 내보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들려오는 차무겸의 웃음소리가 그 의지를 조소하듯 퍼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말하네.”
“…….”
“근데 아니야. 너는 나 사랑해.”
대체 우리의 악연 그 어느 구간이 저런 망상을 낳았는가 알 길이 없다. 고작 가정인데 곱씹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나의 마음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타인에 의해 재단되고 재조립되는 것만 같은 꺼림칙함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신경도 쓰지 않으며, 차무겸은 내 마음을 제 식으로 주장하는 욕망에 조금도 틀림이 없다는 듯 뒷덜미에 얼굴을 태연하게 비벼댔다.
“아니야.”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거겠지.”
간신히 성대를 비집어 벌려 더욱이 용기를 내밀었으나 차무겸의 태연한 고약함 아래에서 그것은 버틸 재간 없이 싹둑 잘렸다. 시트를 움켜쥔 손에 힘이 빠졌다.
한 박자 늦게야 차무겸이 제 입맛대로 내 감정을 가지고 노는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이 고백을 뱉는 걸로 모자라 이제는 착취까지 하고 싶은 것이었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그걸 잇따른 부정으로 막아버리면서까지, 그러니까 나의 의지를 모두 배제시킨 채 꾸며진 감정을 앗아가려고 안달 난 그 악랄함에 기가 질릴 대로 질렸다.
예의 독선적이고 고집적인 태도는 자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니 나 역시 그에 맞춰야 한다는 데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뭘 그렇게 봐.”
나의 짐작에 힘을 싣듯, 그는 시선 한 줌 보내는 것조차 검열을 서슴지 않았다. 내 뒤로 누워 있던 차무섬이 상체를 살짝 세워 내 눈동자가 직선으로 닿는 곳을 힐끗거렸다.
“벚꽃이네.”
벚꽃 잎이 먹빛의 풍경을 뒤로한 채 흩날렸다.
어느새 도래한 봄, 그러나 눈발처럼 나부끼는 벚꽃으로 말미암아 나는 아직도 냉하고 건조한 겨울 그 한가운데에 심겨 있는 것만 같았다.
* * *
일정한 무언가가 틀어지거나 혹은 교묘하게 꺾인 채로도 시간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흘러갔다. 나의 일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퉁이가 휘어지고, 혹은 어딘가에 쩌적 금이 간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덜걱덜걱거리며 어떻게든 흘러갔다.
차무겸은 더 이상 나를 주의 깊게 보거나 누군가를 데려오지 않았으며 내가 공황과도 같은 상태에 잠길 때마다 저만의 방식으로 나를 진정시켰다. 이제는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차무겸 역시 듣는다는 데에 의심이나 회의감도 들지 않았다.
그도 들리나 보지. 차무겸도 나 못지않게 미쳤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동일한 소리를 듣는 건지도 몰라.
합리화에 가까운 생각을 위안으로 삼을 때마다 이런 내 자신이 기괴하게만 느껴졌다.
“우리 벚꽃 보러 갈까?”
어느 날이었다.
벚꽃 나무가 전국적으로 만개하여 세상이 온통 연분홍빛으로 번졌을 때. 낮이고 밤이고 하염없이 흩날리는 홑잎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아름답게 더럽혀지고 있을 때. 창을 통한 관찰인지라 내게는 단지 눈송이처럼만 보이는 그 잔상을 하염없이 담을 때.
평소보다 이르게 집으로 돌아온 차무겸이 내게 그리 물었다.
벚꽃을 보러 가자고.
“자꾸 밖을 내다보길래.”
“…….”
“지금 축제 한다나 봐. 같이 가볼래?”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투명한 눈동자 속에서 내가 두려워하는 악의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를테면 약간의 천진함이 엿보이는 것도 같았다. 정말로 놀러 나가자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증명하는 것처럼.
눈길이 다시 창밖으로 돌아갔다.
보지 않고 그릴 수 있을 만큼 보아온 풍경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큰 의미가 있던 건 아니었다. 단지 나에게는 차디찬 눈가루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직접 만져보고 싶었던 것뿐. 지금이 봄이 오긴 한 건지, 내가 온갖 것을 꽁꽁 얼려버린 그 계절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한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간 활동 없이 집에만 있었는데도 잘 챙겨 먹질 않아 살이 빠질 대로 빠졌는지 차무겸이 진작 사둔 옷이 죄다 컸다. 결국 입기만 하면 훌렁 벗겨지는 바지 대신 단출한 원피스를 입어야만 했다. 흡사 야밤의 데이트라도 가는 것처럼 그에게 붙잡혀 바깥으로 이끌어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눈알을 어색하게 굴렸다. 제정신이 아닐 때만 쏘다니던 복도에 맨정신으로 우두커니 서 있자니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한쪽에 주차된 차에 올라탔다.
매끄러운 대시보드 위에 봄의 색깔인 다채로운 분홍빛으로 꾸며진 전단지가 놓여 있었다. 끌고 와 대강 훑어보니 이 근방에서 한참 진행 중인 벚꽃 축제를 선전하는 전단지였다. 갑자기 왜 느닷없이 축제를 가자고 하나 싶더라니, 이것의 영향이었던 모양이다.
야밤의 축제는 정말이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크고 넓적한 호수를 끼고 이루어지는 행사는 근방 시민 모두가 참여한 것처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람의 말소리, 기척, 부딪치는 접촉.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된 외출은 모든 것을 생경하게 인식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머릿수가 빼곡했기에 적당한 곳에 주차한 우리는 몇 걸음 만에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차무겸은 자연스레 내 손을 잡아다 깍지를 꼈다. 나는 무리가 이루어낸 물결 사이를 헤엄치듯 느릿느릿 거닐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길옆을 빽빽하게 채우는 벚꽃 잎의 향연은 그야말로 봄이 주는 선물이었다. 그에게 이끌려 터벅터벅 걷다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무수히 아른거리는 꽃잎 사이로 한 겹의 홑잎이 내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 감촉은 눈을 떠올린 게 무색할 만큼 조금도 차갑지 않았다. 외려 이대로 손가락을 오므려 거머쥐면 홀홀히 짓이겨질 듯 부드럽고 연약했다.
겨울이 아니고, 시간은 흘렀고, 지금은 봄이었다.
바짝 메마른 골짜기처럼 허함으로 일궈진 속이 그 깨달음으로 텅텅 울리고 있을 무렵, 백조처럼 우아하게 발을 내디디던 차무겸이 돌연 멈춰 섰다. 그를 따라 나 역시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제동에 ‘뭐야.’ 하고 미약한 짜증을 냈다.
“우리 그만할까?”
그러나 나는 인파가 양산해내는 혼란한 소음 속, 차무겸이 홀연히 꺼낸 그 한마디에 얼어붙었다. 단조로운 동공으로 나와 같은 풍경을 쓱 훑은 차무겸이 이윽고 내게로 시선을 내렸다.
“놓아줄까?”
내게 묻는 건지 본인의 속내를 저울질하는 건지 판가름할 수 없는 말이었다. 명화 같은 풍경을 지고 선 사내가 의식을 저 아래까지 낙하시키는 아뜩함을 부추겼다. 아니, 그의 존재감이 그러는 건지 희망 고문과도 같은 그 말이 그러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차무겸이 찬찬히 내 쪽으로 돌아섰다.
우리는 꼭 일정한 경계라도 친 것처럼, 가쁘게 걸음을 내디디는 사람들 틈에 단둘이 고정되어 있었다. 길목이 막히자 주변에서 무어라 불만을 터뜨렸으나 그건 귓바퀴를 간지럽히기만 할 뿐, 안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그도 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강물처럼 뒤섞여 아찔한 급류가 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오직 서로만을 눈에 담았다.
벚나무의 꽃 조각이 오붓하고 아름답게 흩날리는 풍경이다. 풍경이었다. 분명히 조금 전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고작 한순간에 우리를 감싸던 기류가 뒤집혔다. 잡히지 않는 분위기는 무거웠고, 짐작할 수 없는 전언은 사고회로를 무능하게 만들었다. 내가 발을 디딘 이 땅만 시공간의 균열을 흐트러뜨리는 소용돌이가 들이닥친 것 같았다. 그걸 어떠한 신호로 받아들인 건지, 꺼멓게 병들어 제 기능을 하는지도 몰랐던 심장이 거세게 박동했다.
경직된 나를 내려다보던 차무겸이 곧 입꼬리를 찢어 웃었다.
“내가 졌어, 사은아.”
서로를 마주 보는 상황 가운데서도 놓지 않았던 손이 떨어졌다. 겨우 하나 우리를 잇던 연결고리는 그렇게 허무하게 끊어졌다. 차무겸은 조금 전만 해도 나를 사슬처럼 옭아매던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자신의 고뇌를 기어이 끄집어낸 듯한 태도가 망막에 깊숙이 처박혔다.
이후 아, 하고 착잡하게 터뜨리는 숨이 이상하게도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네가 바라던 대로 됐다는 거야.”
“…….”
“이제 너한테 휘둘리는 거 질린 것 같아.”
며칠 전 나에게서 사랑을 억지로 착취해갈 때와 다를 바가 없이 천연덕스러웠다. 그렇게나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그는 지금 여느 때처럼 제멋대로의 종지부를 찍고 있었다.
“처음엔 신선했는데, 가면 갈수록 재미가 없더라고. 난 내가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지, 이렇게 일일이 휘둘리는 건 귀찮아.”
“…….”
“그니까 그만하자.”
관계의 끝을 고하는 어투가 그리 여상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조금 더 절제된 느낌이 있었다. 그건 지금껏 내가 무수히 목격해온 그의 광증 어린 태도 속에 답이 존재했다.
온전히 그만을 담는 눈동자가 요동쳤다. 차무겸은 나를 나른하게 훑어보고는 그대로 발을 내디뎠다. 꼭 품에 한가득 껴안기라도 할 것처럼 밀접하게 다가왔으나 그 대신 가벼이 비껴갔다. 이곳에 도착한 이래 가장 많이 목격한, 타인을 대하는 태도처럼.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어느 한 구간에 고정된 것처럼 멈추어 움직이지 않는 듯하던 시간이 제대로 흘렀다. 흑백으로 덧칠되었던 뭇사람이 각자의 색을 품은 채 움직였고, 그 사이로 차무겸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너른 등판은 일견 보였다가 무리 사이로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그건 고작 눈을 한 번 깜박거리는 찰나의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 내 앞에 있었는데, 이제는 없었다.
‘그만하자.’
아….
막연하던 한 가지를 깨달았다.
차무겸이 나를 두고 먼저 떠난 건 우리의 관계 속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늘 내가 떠나고 그가 나를 찾아왔으니까. 우리의 관계는 숱한 변화를 겪는 척하면서도 기본적으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동시에 다른 자각에 부딪치게 만들었다. 이전과는 다른 흐름, 그건 정말로 마음에 인 격동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차무겸이 정말로 내게 질린 걸지도 모른다고….
한쪽 발이 뒤로 직 끌렸다.
차무겸이 자취를 감춘 방향의 반대편이었다. 내 이름이 타국어의 문신으로 곱게 새겨진 등판은 이제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멀어졌다. 그가 나를 이곳에 두고 떠나는 이 상황은 현실성을 갖추지 못한 실재였다.
다른 쪽 발마저도 뒤로 물러났다.
호흡이 일순간 가팔라졌다. 폐부가 쥐어짜이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일종의 희열과도 같았다. 온몸의 솜털이 수직으로 설 정도로 강렬하고 진했다. 허공중에 떠돌아다니는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는 순간 나는 뒤를 돌았다.
그대로 내가 조금 전까지 향하던 것과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틈에서, 이단아처럼 역류해갔다. 정상인인 척 사람들의 틈에 숨은 차무겸과 멀어지기 위하여 택한 행로였다.
갑자기 뒤를 돌아 뛰는 바람에 대열을 흩트리는 나와 어깨 혹은 몸 여기저기가 부딪치는 사람들이 눈치를 주듯 한 소리를 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오래간만에 나를 적시는 이 짜릿한 기쁨에 취해 조금도 귀에 담지 않았다.
해방이야.
드디어!
드디어 끝이야.
이젠 정말로…!
질렸으니까. 세상에서 지겨운 걸 가장 싫어하는 그가 내게 질렸다고 했으니까.
단지 나의 어림짐작이 아니었다. 차무겸이 제 입으로 내뱉은 그 무엇보다도 확고하고 명백한 시인이었다. 부정할 여지조차 없었다. 차무겸은 내게 질렸고, 망가질 대로 망가져 이젠 보잘것없기만 한 내 삶에서 빠지겠노라고 선언했다. 더 이상 나의 이름 옆에 차무겸의 이름이 덧대어 쓰일 일은 없었다.
쾌재를 부르듯 예상치도 못하게 주어진 자유를 오감으로 만끽하며 바지런히 거닐었다.
가자.
차무겸이 없는 곳으로.
나를 못살게 굴고 괴롭히던 그가 부재한 곳으로.
내가 바라던 곳으로….
나래를 단 것처럼 생각이 끝을 모르고 뻗어가던 찰나, 별안간 눈앞에 드리워진 무언의 벽에 부딪혀 우뚝 멈춰 서야만 했다.
‘…어디로?’
생각의 벽은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갈림길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지금 이렇게 한숨 돌릴 틈 없이 발을 내디딘다고 한들 마땅히 향할 행선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전 기세 좋게 달리던 게 어디의 누구였느냐는 듯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뇌리는 백지였다.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간 자의든, 타의든 많은 요인에 의해 짓뭉개진 과거가 너무도 선명했다.
내 손으로 친구고 가족이고, 주어진 인연이란 인연은 죄다 잘라냈다. 나로 하여금 가연이가 해를 입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 도망을 쳤고, 엄마가 차무겸의 손에 인질처럼 잡힐까 무서워 상처를 주고 외면했다. 그들이 나를 내친 게 아니라 내가 지레 겁을 먹고 그들을 끊어낸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제 남은 사람이 누가 있던가?
대체 누가….
한순간 현실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거리낌 없이 내디디던 걸음은 그 자리에 결박당한 것처럼 고정됐다. 나아갈 수가 없었다. 고작 한 덩이, 한 덩이 떼어낸 게 전부라고 여기던 인연의 땅은 어느새 내 두 발만 간신히 디딜 수 있는 외딴섬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설령 차무겸이 나를 놓아준다고 한들, 더 이상 내가 향할 수 있는 보금자리 따위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되찾은 자유를 기리는 축복의 통로 같던 길이 금세 황폐하게 갈라진 허허벌판으로 변모했다. 불안에 젖어 요동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보아도 이정표 따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단지 소름 끼치도록 아름답기만 한 이 미로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아, 아….”
누가 머리통을 납작하게 짓뭉개는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나침반을 잃고 오지에 떨어져 버린 사람처럼 모든 감각을 이리도 허무하게 상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지나가던 누군가가 나의 어깨에 툭 부딪쳤다. 몸이 절로 움츠러들며 위축된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뭐야.”
“…이래?”
“몰라. 왜 가만히 서 있….”
누군가가 의식적으로 터뜨린 작은 불평이 나를 갈가리 찢어발길 공격처럼 다가왔다. 왜소한 어깨가 동그랗게 말렸다.
다음으로 반대편 어깨가 툭 부딪쳤다. 용기를 냈다기보다는 놀라 반사적으로 들린 시선에 나를 이상하게 보는 표정들이 배어 있었다.
왜, 왜 다 나를 저렇게 보지. 어째서 저런 눈으로….
아. 발성의 법을 잊은 사람처럼 토막 난 탄성만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길을 잃어버린 미로 속,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군중은 나의 사고를 헤집어뜨리기에 충분했다.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눈길 속에 놓여 있자니 동떨어진 고립자처럼 사무치는 고독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허한 마음에 얼룩덜룩한 곰팡이가 번져가는 것처럼. 속 어딘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게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전에도 이랬다.
‘사은 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안경을 쓴 의사가 내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을 때.
확실하게 잔재하는 소음을 오직 나만 들을 때 타인은 나를 저렇게 응시했다. 지금 아무렇지 않은 시선의 행방조차 내게는 예민하게 곤두선 살점을 포 뜨듯 베어가는 난도질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윽. 누구에게 명치를 얻어맞은 것만 같은 신음이 터졌다. 누군가 나와 부딪치며 터뜨리는 소리가 여러 갈래로 분산됐다. 그것은 언젠가 들은 시계의 잔혹한 똑딱거림 같기도 했고, 나를 비웃듯 킬킬대는 포악한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비틀대는 나를 위아래로 훑는 거북한 눈초리 역시 그 무자비한 공격에 힘을 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경에 가려졌던 울음소리가 다시 너울너울 발목께로 차올랐다.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소리는 멎지 않았다. 이것이 단순히 청각으로 인지하는 게 아님을 깨우치게 하려는 듯이….
사실은.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듣는 소리는 실존하지 않으며 그건 모두 내가 만들어낸 환청일 뿐이라는 걸.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아 부단히 부정했다. 그걸 인정해버리면 내가 정말 미쳐버렸다는 걸 시인하는 꼴이 되니까. 자존심은 이상하게 무너지고 또 무너져도 한 폭의 여분 정도로는 꿋꿋이 남겨진 채였다. 부디 타인에게 정신병자로 비쳐지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자존심을 유일하게 지켜준 사람이 있었다.
‘나도 들려.’
‘진짜라고, 사은아. 나도 들려.’
‘네가 들린다면 들리는 거야.’
실재가 어떠한들 그걸 모조리 덮고 오직 나의 의견에 동조해준 사람은 단 하나였다. 비정상적인 나를 정상으로 교정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기꺼이 함께 비정상의 늪으로 뛰어든 이가 단 하나 있었다.
“어디….”
고개가 더듬더듬 뒤로 돌아갔다. 그에게서 드디어 떨어져 나와 되찾은 자유를 만끽하며 밟아온 행로는 인산인해로 모조리 지워졌다. 그래서인지 그를 놓친 방향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디 갔, 어디 갔지.”
마음을 낱낱이 흐트러뜨리는 공황은 예고도 없이 엄습했다. 어물어물 걸음을 옮겨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내가 잘 아는 인물, 그의 외피, 몸선, 동선, 태도, 행동. 그 어떤 것도 군중 속에서 발견할 수가 없었다.
헉. 허으. 폐 끝이 새까맣게 썩어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숨을 내쉬기가 어려워졌다. 지금 당장 나에게 이런 공황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해줄 누군가가 필요한데, 애석하게도 동아줄은 좀처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어디로….”
나는 마치 꼭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놓친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경황없이 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시야에 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혹시나 이 사람인가 싶어 주의 깊게 살피다가 진짜 찾는 사람을 놓칠까 봐 두려워 정신이 너덜너덜해졌다. 다급함이 신물의 형태로 목구멍을 찌르고 올라섰다.
“안, 안 보여.”
얼음을 문 것처럼 퍼렇게 질렸을 게 뻔한 입술이 발발 떨렸다.
“안 보여. 왜, 윽, 왜…!”
어딜 돌아봐도 아찔한 벼랑이었다. 끝나지 않는 낭떠러지가 어서 다가오라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이제는 우애앵, 하고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덧입혀졌다. 배 속이 텅 비어 사무치는 외로움은 여전히도 지독하게 안을 잠식했다.
온갖 것이 아우성치는 그 속에서 끝내 다리에 힘이 풀리고 주저앉으려는 순간.
방향성을 상실한 몸뚱어리가 누군가에게 잡혀 끌려갔다. 반항할 새도 없이 결박당하고, 직후 웃음기로 젖은 저음이 들렸다.
“나 찾아?”
고작 그 질문 한 번에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맥이 탁 풀렸다. 복잡한 만인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던 나를 손쉽게 건져 올린 차무겸의 품은 무더울 정도로 뜨거웠다. 나의 전신을 뒤덮던 오한을 모조리 죽이고도 남을 만큼. 닿아오는 너른 가슴팍과 손을 길게 둘러도 남는 등은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것이 맞았다.
분명 보이지 않았는데.
향한 방향조차 찾지 못할 만큼 까마득한 미로 속을 헤매던 중이었는데 차무겸은 꼭 그 미로를 모두 녹여버리고 말 태양처럼 짙고 분명하게 등장했다.
그게 결코 오답이 아니라는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우리를 힐끔힐끔 이상하게 본다고 한들 차무겸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꽉 붙들어 매는 데에만 사력을 다했다. 그 역시도 이 수많은 사람 중에 나밖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잘했어, 사은아. 거기서 몇 발짝만 더 갔으면… 진짜 다리 잘라버리려고 했거든.”
그의 팔이 잔 경련을 멈추지 못하는 나의 몸을 틈 없이 끌어안았다. 깜박이는 눈꺼풀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부드럽게 넘겨준 그가 드러난 귓가에 대고 밀어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실은 거짓말이야.”
“……”
“한 번도 너 질린 적 없어.”
목 끝에 걸린 한 자락의 숨결이 성토처럼 터져 나왔다. 그게 안도일지, 아니면 질색인지는 이제 나조차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젠 알겠지.”
“…….”
“넌 나를 사랑하는 게 맞아.”
차무겸은 안락한 환희에 젖어 있었다. 내가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모른 체하던 진실을 드디어 맞닥뜨렸다고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쩐지 그 얼굴이 상상이 갔다. 초봄을 알리는 동백꽃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을 테다.
나는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아주 미약하고 소소하여 단지 꿈틀거리는 정도에 국한됐다. 이 와중에도 그가 또다시 나를 버리고 가지는 않을지 은연중 두려워하는 것이다. 새카맣게 변색된 심장이 갈비뼈 안에서 쾅쾅 맥동했다.
이게 어떻게 사랑일 수가 있지?
사랑이… 이런 건가?
이런 거라고?
아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건 사랑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 손 가득 거머쥔 그의 옷자락을 놓지 못하는 나는 지독히 모순적이었다. 분명한 건 하나. 나의 발악은 영원히 차무겸의 안에서 고이지도, 썩지도 않을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자각하고 있었기에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뺨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감당하기 벅찰 때는 외면부터 하고 보는 버릇이 다시금 표출됐다. 더 이상 생각을 하기가 버거웠다. 나를 삼켜버릴 정도로 무더운 품속에서 고통과 안온을 함께 거머쥐듯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
그러기 전 시야로, 눈발처럼 하얀 잎이 검푸른 봄밤을 화려하게 휘젓고 있었다.
바야흐로 겨울을 모방한 봄이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完
에필로그.
들숨 한 번에 불씨가 다닥다닥 퍼져 나가며 붉은 기운을 앗아간 재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차무겸은 입에 아슬아슬하게 문 담배 몸통을 엄지와 검지로 고정시키며 퍼진 연기에 흐릿한 전방을 응시했다. 야, 야. 이 새끼 쫄았나 봐. 찌질이 새끼. 이러다가 오줌이라도 지리는 거 아니야? 삼삼오오 모여든 남자애들의 짓궂은, 더 나아가 악랄하기까지 한 음성이 옥상을 떠들썩하게 울렸다.
곧 그 혼자 앉기에도 벅찬 낡은 책상에 꾸역꾸역 엉덩이를 들이민 여자애가 ‘무겸아, 그거 들었어?’ 하며 친근하게 말을 붙여왔다. 은밀하게 호기심을 부추기는 어조를 타고 학생답지 않은 독한 향수 내음이 잔뜩 풍겼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느낌을 자아내고 싶었다기보다는 흡연의 증거를 가리기 위한 방편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게 은근한 두통을 자아내서 차무겸은 책상을 짚고 있던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매만졌다.
허벅지가 다 드러날 만큼 교복 치마를 짧게 줄인 여자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을 거두지 못한 채로 차무겸의 귓가에 소곤소곤댔다. 차무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서 전방만을 응시했다. 길쭉한 손가락이 잔뜩 위축된 누군가의 머리통을 툭툭 건드렸다. 척 보기에도 시비를 거는 것에 가까운 손길이었다.
동그랗게 모여든 무리 중 홀로 이방인처럼 덜덜 떨며 서 있는 그것은 명백한 약자였다. 차무겸은 숨을 한 번 더 깊숙이 삼켰다. 폐부까지 고이는 니코틴의 향이 내부를 씁쓸하게 장악했다. 저런 걸 보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게 바로 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저 녀석들의 눈에 걸렸을까. 그것은 저 약자가 비운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저런 약자가 되지 않고 이렇게 방관자의 모습으로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것은 차무겸이 가진 행운이었다. 돈과 권력, 태어났을 때부터 양손 가득 쥐고 있던 그것으로 말미암은 출생의 운.
“야.”
따분한 시간을 보내는 이처럼 책상에 걸터앉아 담배만 태우던 차무겸이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옥상 가운데에서 학생 한 명을 먹이 삼듯 질기게 괴롭히던 이들의 이목이 온통 그에게로 쏟아졌다. 살얼음처럼 몰아치는 난폭한 행위 속에 빠진 약자도 마찬가지였다.
동그란 뿔테 안경 너머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어수룩한 남자애와 눈이 딱 마주쳤다.
“너희 아버지 수술받아야 하는데 돈 없다며.”
작고 왜소한 어깨가 움찔 말려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길쭉길쭉한 아이들 사이에 있는 남자애는 누가 바닥을 향해 꾹 누른 것처럼 조금 더 작아졌다.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울리는 떨림 역시 심해졌다. 지난날 차무겸이 우연히 취득하게 된 정보 하나가 그를 이보다 더 시커먼 곤궁으로 밀어 넣은 것처럼.
차무겸은 제가 건넨 정보 하나를 물고서 시끌벅적하게 늘어지는 이들을 무심히 둘러보다가 툭 말했다.
“내가 줄까?”
울멍대는 탓에 흐리멍덩해진 눈동자가 휘둥그렇게 변하는 게 선연히 보였다. 예기치도 못한 방식으로 맞닥뜨린 행운을 좀처럼 믿지 못해 얼떨떨해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면서도 차무겸은 그 사이로 굴러다니는 아주 얇고 가느다란 이채를 놓치지 않았다. 알든 모르든,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일 테니까. 아마 부모의 문제는 저 남자애가 이렇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생 속의 역경이리라.
차무겸은 그 희망을 손에 쥐고 달달 흔들 것처럼 매끄럽게 웃었다. 가림막 없이 내리쬐는 햇살 한 줄기가 유난히 그 미소를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만큼 한 폭의 명화를 연상시키는 미모였다. 의아함, 기대감, 황당함, 회의감. 많은 감정들이 질서정연하지 못하게 뒤엉킨 사위 속에서 차무겸은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럼 저-기서 뛰어내려 봐.”
손끝이 향한 곳 위로 드넓은 하늘이 펼쳐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난간의 밖은 명백한 추락을 의미하고 있었다. 잠깐의 적막이 옥상을 에워쌌다. 잠시 후 차무겸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방적으로 들러붙는 무리가 배를 붙잡고 킥킥 웃어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되지도 않는 적선을 부리나 했더니 그것 역시 괴롭힘의 일환임을 눈치챈 것처럼. 그러나 차무겸의 입장에서 그건 괴롭힘이 아니었다.
그는 남들의 반응이 어떠한들 신경 쓰지 않고, 난간 아래를 강조하듯 손가락으로 허공을 콕콕 찔렀다.
“그럼 돈 부르는 대로 줄게.”
한참을 웃어대던 남자애가 아서라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야야, 적당히 해라. 그러다가 진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가만 보면 저 새끼가 제일 독하다니까? 사람 피 말리는 데에는 뭐가 있어.”
“그래, 무겸아. 장난이 너무 심하다.”
남자애로 모자라 책상을 공유하듯 함께 걸터앉은 여자애가 그의 팔뚝을 툭 치며 말했다. 다들 좋을 대로 한마디씩을 얹으면서도 은연중에 차무겸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러나저러나 말 한마디 잘못하여 그의 영역 속에서 갈려 나가고 싶지는 않다는 은밀한 절박함이었다. 차무겸은 여전히 저를 둘러싼 상황에서 동떨어져 있었다. 그는 반 정도 남은 담배를 느릿느릿 빨며 제가 제안을 건넨 남자애만을 응시했다. 생각지도 못한 조건에 허옇게 질린 낯빛이 볼만했다. 그 창백한 안색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차무겸은 머릿속에서 몇 가지의 가정을 세웠다.
세상의 군데군데가 바짝 언 겨울. 그에 걸맞은 차디찬 바람이 불었다.
“무겸아. 얼른 농담이었다고 해. 이 새끼 겁 많아서 절대 못 해.”
“맞아. 우리 무서워서 떨기만 하는 쫄보 새끼가 그걸… 아!”
소란은 불시에 재개됐다. 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별안간 어깨가 치인 남학생의 입에서 단발성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뭐야. 이, 씹!”
불평 어린 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모두의 고개가 한곳으로 돌아갔다.
“어….”
“야… 야!”
짧고 비루한 존재감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타닥거리며 발이 바닥을 디뎠다가 떨어지는 소리, 낡은 난간이 몸통을 붙잡는 아귀힘에 끼긱대며 비틀리는 소리, 그 아래 뿌연 바람을 일으키며 추락한 몸뚱어리까지.
모두가 육안으로 똑똑히 목격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건 현실성을 찾아보기에는 지나치게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누군가 퍼뜩 깨어난 건 저 아래 까마득한 바닥으로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후였다.
모여든 남학생들은 사색이 된 채 더듬더듬 물러났으며, 차무겸의 곁에 있던 여학생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미친!”
“지, 진짜 뛰어내렸어.”
“어떡해?”
고작 한 사람의 행동으로 삽시간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누군가 옥상 난간을 향해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가 떨어진 학생 주변으로 이미 바글바글 모여든 인파를 발견하고 성마르게 이를 전했다. 지금 이 혼돈의 상황에서는 썩 도움이 되지 않는 소식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풍경 속에서 차분한 이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차무겸은 반으로 뚝 잘린 담배를 책상 위에 대강 지져 끈 뒤 고개를 홱 젖혔다. 하늘을 헤엄치는 뭉게구름이 짙은 흑빛 동공 위로 물감처럼 퍼졌다. 제법 크게 부풀었던 호기심이 얇은 바늘에 찔린 양 가감 없이 쪼그라들었다. 아아, 김이 팍 식은 것처럼 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존나 재미없다.”
차라리 나한테 달려들었으면 더 볼만했을 것을.
시야에 드리우는 시시한 풍경만치나 단조로운 평가였다.
* * *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어.”
비서팀장이 앞에 고급스러운 찻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질문이 돌아왔다. 차무겸은 찻잔으로 손을 뻗다 말고 집무용 책상을 돌아보았다. 두 눈은 복잡한 글자가 빼곡하게 나열된 서류에 꽂혀 있는 와중에 잘도 묻고 있었다.
“그냥요.”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러고 나서야 대령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새콤하고 달콤한 게 첫맛은 별로인데 뒷맛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그는 찻잔을 기울여 몇 입을 더 삼킨 뒤 간결하게 덧붙였다.
“선의로 그런 거예요.”
“그런 놈이 옥상에서 뛰어내리라고 시켜?”
“시킨 거 아니라니까….”
차무겸은 투덜거리며 가죽 소파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아버지의 한 소리를 듣고 있는 와중에도 큰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이번 일 역시 유야무야,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미 학교를 빠져나올 때 전달된 할아버지와의 전화로 그를 진즉 눈치챈 바였다.
그의 조부는 어릴 적 당한 해괴한 사건으로 인해 손자를 금이야 옥이야 대했다. 특히나 그 사건으로 하나 있던 형까지 죽어 명명백백한 삼대독자가 되었으니 애지중지의 정도가 다른 어떤 면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또한 아버지 역시도 저를 진심으로 꾸짖고자 함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차씨 집안은 모두 다 그에게 약했다. 차무겸은 이것 역시 제 행운이라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진심으로 걔를 도와주고 싶었다니까요. 돈이 없어서 아버지가 수술을 못 하고 계신다는데 얼마나 가엾어요.”
가엾다고 표현하는 것치고는 목소리가 다소 무미건조했다. 그는 음성과 결이 비슷한 눈동자로, 손안에서 굴리던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진한 빛깔의 찻물이 넘칠 듯 말 듯 출렁거렸다. 그것을 한참 굴리다가 잠시 후 내려놓았다. 달칵, 하고 차탁에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서느렇게 들렸다.
“근데 제가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줄 수는 없잖아요. 걘 남자고, 나도 남잔데.”
그가 팔걸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어느새 서류를 내려놓고 제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버지와 눈을 딱 마주쳤다.
“혹시나 게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
“그러니까 제 딴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차무겸은 저를 지극히 오냐오냐하는 조부와 친부가 어떠한 부분에 있어서 예민하게 구는지를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모두 기억이 없는 줄 알지만 납치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는 그는 가증스럽게도 그것을 곧잘 무기로 사용하고는 했다.
이런 식으로 들먹이면 한바탕 꾸지람을 할 것처럼 무게를 잡던 아버지마저도 흠, 하고 고개를 돌리게 된다. 조부의 경우 행여나 손자가 기억의 회복으로 잘못되기라도 할까 싶은 걱정이 크다면, 친부인 그의 경우에는 미안함이 컸다. 그도 자신이 잠깐 한눈을 팔아 가정을 소홀히 한 실수가 모든 불운의 시작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제가 바람을 피우는 일만 없었더라면 아이가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을 필요조차 없었다는 걸 누구보다 인지하고 있을 테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사죄의 다른 방식으로 침묵과 묵인을 택하는 것이었다. 비뚤어진 방식이라 할지라도 그 역시 본질은 애정이라면 애정이었다.
다만 이대로 별일 아닌 양 넘기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었다.
하필이면 현재 해운그룹의 상황이 그리 썩 형통치 않다는 것이다. 정치권을 통해 여기저기 퍼진 거미줄 같은 게이트 하나가 끌어 올려지며 덩달아 기업과 관련된 비리 역시 우수수 터졌다. 금품 수수 및 특혜와 부정채용 등으로 요즈음 사회경제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끄러웠다. 해운그룹 역시 그 거미줄 같은 망에 은밀하게 걸쳐진 신세다 보니 하루 또 하루가 몸을 사려야 할 살얼음판이었다.
이런 와중에 유일한 해운그룹의 후계자가 학교 폭력이나 다름없는 일에 엮었다는 건 부정적이면 부정적이지, 결코 긍정적인 반향을 부르지는 못할 것임을 익히 알았다.
하여 차혁수 사장은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외국이라도 나가 있으면 어떠하냐 권유했다. 어느새 길쭉한 소파 위에 눕듯이 앉은 차무겸은 주머니에서 꺼내 든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다가 아버지의 책상을 힐끗 보았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머니, 그리고 차진겸까지 동반된 가족사진이 소형 액자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개중에서도 귀여운 신사복을 차려입은 형에게로 신경이 가 닿았다.
‘어디 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어두컴컴한 옷장 속이었다. 정신과 의사였던 납치범은 새하얗게 질린 낯짝으로 저와 제 형을 향해 말했었다. 가만히만 있으면 살려줄 테니 나오지 말라고. 납치를 당한 기간 동안 충분히 학습된 바 아닌가. 그럼에도 형은 그 규율을 깨뜨리고 아득바득 옷장을 나서려고 했다.
‘무겸아, 여기 있어. 형이 데리러 올게.’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아까부터 바깥이 조용해.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운 걸지도 몰라.’
저보다 몇 살 많은 차진겸은 어둠 속에서도 결연하게 빛나는 눈을 한 채, 지난날 얻어맞아 팅팅 부은 눈가의 멍이 아직 빠지지 않은 얼굴로 제 손을 꾹 잡았다가 놓았다. 그러고는 조심조심 옷장 문을 열어 바깥으로 나갔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더라.
총성이 두 번 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내부로 들이닥쳤다. 콕 박혀 움직이지 않던 옷장 문이 벌컥 열리고, 시야를 가득 채운 건 경찰복이었다. 마침내 납치 소동에 온점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이후 병원에서 듣기로는, 자신이 저지른 실책과 제가 처한 현실로 비관에 빠진 납치범이 자수와 함께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한다. 차진겸은 괜히 옷장 밖을 나갔다가 그 눈에 띄어 함께 개죽음을 당하게 된 꼴이었다.
‘거봐.’
그 소식을 어렴풋이나마 전해 들으며 차무겸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게, 나가지 말라니까.’
회상을 고이 접은 그는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사무실의 벽면 하나를 죄다 차지한 통유리창 너머로 지난날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청청한 하늘이 펼쳐졌다. 누군가는 저 드넓은 하늘을 보면 막혔던 숨이 탁 트이는 것 같다고 하지만 차무겸은 아니었다. 저 아래에 놓이면 제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기분이었다.
‘거긴 엄마가 어릴 적 가본 곳 중에 제일 좋아하던 장소였어.’
‘그곳 옥상에서 하늘을 보면 꼭 세상에 엄마와 너희 아빠만 남은 기분이라서….’
‘우리 무겸이를 데리고 가지 못해서 아쉽네.’
하늘이라는 빈약한 연관성 하나 가지고 저 아래 사장된 기억의 무덤 하나가 불시에 파헤쳐졌다. 어머니는 그곳만 떠올리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소녀처럼 상기된 낯을 하고는 했다.
“외국은 됐고요.”
무슨 문제만 생기면 후유증 치료를 위한 요양이라는 명목으로 외국으로 보내져 한두 달, 혹은 그 이상을 머무르는 것도 이제는 지겨웠다. 대신 차무겸은 오래간만에 어머니를 회상하게 하는 기억 속으로 뛰어들어보고 싶었다.
“아버지, 혹시 어머니가 좋아했던 곳이 어딘지 알아요? 어디 깊은 시골… 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시골? 아, 암영에 있는 사택을 말하나 보구나. 거긴 네 외조부의 사유지인데.”
“외국 말고 거기서 지내고 싶어요. 허락받아주실 수 있죠?”
차무겸이 등받이에 한쪽 팔을 올리고는 입꼬리를 유려하게 휘었다. 얼핏 듣기엔 질문의 형태였으나 실은 통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번 역시 모든 건 제가 바라는 대로 될 테니까. 그건 아주 흡족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넌더리가 날 만큼 지겨울 게 뻔한 일이었다.
* * *
“와… 나 이런 거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데.”
-응?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놀람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한 표정을 대강 갈무리하며 차무겸이 담배 끄트머리를 혀로 동그랗게 굴렸다. 씁쓰름한 맛이 혓몸을 알싸하게 물들였다.
-뭐야, 싱겁게. 잘 도착한 거지?
수화기 맞은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응, 하고 들릴 듯 말 듯 대답한 차무겸은 고도가 낮은 허름한 동네를 쓱 훑어보았다.
괜히 여기로 온다고 했나? 설마 이렇게나 지독한 깡촌일 줄이야. 듣자 하니 장을 보기 위해 마트를 가려거든 차를 타고 한 시간은 족히 가야 한다고 한다. 그도 대형 마트가 아니라 필요한 것 정도만 갖추어진 수준의 마트라고 했고. 서울에서는 눈만 한 번 굴려도 속속들이 들어오는 카페나 음식점 같은 건 여기서 기대조차 하기 힘들어 보였다.
막 도착한 외조부의 사택은 그리 넓고 화려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저 아래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낙후된 집들을 보자마자 산산이 조각났다. 지금 보니 제가 선 이 사택은 으리으리한 궁전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대체 여기서 무슨 특별함을 느꼈던 걸까?
이제는 이곳을 사용하라고 선뜻 허락해준 외조부마저도 원망스러워졌다. 허락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친가에서 그렇듯 외가 역시 차무겸에 한해서라면 관대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특히나 외가 쪽에서는 그의 납치가 오직 어머니의 내연남에 의해 벌어진 일인지라 조금 더 죄인처럼 굴고는 했다. 그런 입장이기에 차무겸과 관련된 명목을 내세운다면 뭔들 허용되지 않는 게 없었다.
그래도 이런 촌구석인 거 알면 재고를 좀 권해보지….
짜증스러운 상념에 잠겨 있는데 옥상 문이 끽,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무겸아.”
차무겸이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뒤를 쓱 돌아보았다. 함께 이곳으로 내려온 박승원이 서 있었다. 차무겸은 전화를 끊고 그를 향해 완전히 몸을 돌렸다.
“방은 확인했어?”
“응. 형, 나 여기 세 달만 있으면 된다고 했지?”
박승원은 이미 그의 질색을 짐작한 것처럼 픽 웃었다.
“그래. 뭐, 더 있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나 엿 먹이고 싶으면 그냥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너 싫어할 거라니까.”
이곳으로 오는 게 결정되고 박승원은 진작 차무겸에게 경고한 바였다. 어렸을 적부터 한국이든 외국이든 도심의 풍경만 곧잘 보고 자라온 차무겸이 갑자기 시골을 간다니. 척 보기에도 견디지 못할 것이 빤히 예측됐다. 경험이 많은 것처럼 보여도 그는 결국 반짝거리는 금칠을 한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었으니.
“교복은 내일 도착할 거야.”
“학교는 어디야?”
“아마도 저기?”
박승원이 언덕 아래 어딘가를 콕 가리켰다.
굽이굽이 골목길로 이루어진 동네의 왼편으로 일정한 공간을 장악한 교육 시설이 보였다. 저마저도 구차함이 선연히 드러나는 탓에 헛웃음이 터졌다.
“그냥 뻗대지 말고 외국이나 갈걸….”
“세 달만 버텨. 너 때문에 나도 이게 뭐냐.”
박승원이 위로 겸 동질감 표시 겸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이만 옥상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겨진 차무겸은 피우다 만 담배를 입술로 베어 문 채 난간 앞으로 향했다.
‘대체 왜 이렇게 다 빨갛게 칠해놓은 거야.’
차를 타고 달려오며 보았던 붉은빛 벽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미치광이 집도 아니고…. 그는 이마저도 빨간색인 난간을 탁탁 두드리고는 그 위에 교차한 두 팔을 얹었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담배를 태우고 있자니 가시지 않은 겨울바람이 머리칼을 미미하게 간지럽혔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쓱 쓸어 넘기던 차였다.
“…….”
언덕 아래로 지나가는 인영 하나가 눈에 쓱 들었다.
긴 머리칼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끝 무렵에 다다른 겨울을 다시 불러일으키듯 뽀얀 눈을 연상시키는 피부가 그 아래로 드러났다. 그것을 쓱 넘기고는 이쪽을 바라본다. 차무겸은 순간 멈칫하여 담배를 빨아 물던 것도 잊었다.
여자는 이쪽을 보는 게 맞지만, 정확히 그를 보는 건 아니었다. 시야각이 교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이를테면 그가 있는 옥상이 아니라 이 집의 대문 쪽을 응시하는 듯했다.
저길 왜 보지, 뭐 특별한 게 있나.
지긋한 눈길을 따라 막 얼굴을 수그리는데 여자는 그사이 볼일을 마친 사람처럼 고개를 정면으로 한 뒤 잠시 멈춰둔 발을 내디뎠다. 부드럽게 날리는 갈색 머리칼을 대충 그러쥐어 묶는다. 그에 드러난 뺨이 가시지 않은 추위로 발그랗게 물들어 있었다.
거리가 꽤나 먼데, 이상하게도 그게 유독 시야를 꽉 채웠다.
온통 붉은색 천지네. 그런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며 차무겸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아직은 차디찬 숨이 속에 한가득 고여 들었다.
그 후로도 차무겸은 종종 그 여자를 보았다.
의도치 않게 옥상에 올라가 한가한 시간을 죽일 즈음이었다. 여자의 행동 양상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언덕 밑을 지나가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집의 대문을 올려다본다. 이유 모를 잠깐의 탐색 후 언제 관심을 내비쳤느냐는 듯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사라지고는 했다. 희한한 여자였다.
그리고 차무겸이 그 행동의 이유를 깨닫게 된 건 마침내 도래한 겨울의 끝자락에서였다.
“진짜 징글맞네.”
계절이 겨울과 봄 그 중간에 꽂히고서야 대문을 빼곡히 두르는 나무가 동백나무라는 걸 깨달았다. 큼지막한 건조물을 이루는 벽돌과 군데군데의 페인트칠로 모자라 조경을 이루는 꽃마저 이리도 강렬한 붉은색이라니.
그나마 빨간색의 대명사로 알려져 지극히 식상한 장미가 아니라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에 눈에 보이는 빨간 꽃은 죄다 뽑아버리라고 할까 하다가 관뒀다. 어머니는 자신의 유약한 인상을 거부하듯 다소 강렬하고 독한 것을 좋아했다. 저 동백꽃 역시 그 부산물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문득 들었던 마음도 불 꺼진 잿더미처럼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날.
언덕 아래로 지나가던 여자가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동백꽃을 발견했다. 매끄럽고 고요한 눈길만 주던 때와 달리 옅은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꼭 기다려 마지않은 순간을 목격한 사람 같은 낯이었다. 차무겸은 그 아득한 호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침내 사라진 후에야 여자가 기다려온 것이 이 붉디붉은 동백꽃임을 깨달았다.
* * *
그나마 서울과 비슷한 게 있다면 바로 학우들의 태도였다.
조금 더 예리하게 말하자면 어떻게든 제 관심을 사고, 눈에 띄려고 아등바등하는 이들의 가상한 노력이 훤히 보였다. 학생들의 작은 사회이기도 한 이곳, 가끔씩 달라지는 시계나 핸드폰을 보며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는 건 정말이지 못 본 척하기 힘들 만큼 노골적이라 그저 실소만 났다. 제가 지내던 곳이나 이곳이나 부를 향한 갈망은 숨겨지지 않는 본심이었다.
나름의 유희랍시고 그 어설픈 치근덕에 그럭저럭 장단을 맞춰주었다. 어차피 보내야 하는 3개월, 좋게 말하자면 시간을 죽이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이곳과 그곳의 닮은 점은 여러 군데서 포착됐다. 특정 몇몇의 일탈 기질은 이런 곳에서도 빛을 냈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부터 과도하게 친한 척하며 달라붙던 문태욱이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하며 이끌었다. 왠지 오늘은 당기지 않아 그것 대신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서 소각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차였다.
“어? 노름쟁이 딸이네.”
신경이 한곳으로 쏠린 건 문태욱이 빈정대듯 말한 순간이었다.
툭툭 두들기던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자 거기엔 웬 여학생이 한 명 서 있었다. 저와 같은 교복, 길게 흘러내리는 단정한 머리칼, 잡티 하나 없이 뽀얀 피부.
고작 눈길 한 번에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구석에 저장되어 있던 생각의 조각은 불시에 범람했다.
그 여자애다.
화사하게 만개한 동백꽃을 풍경처럼 보던 여자애.
문태욱은 흡사 돈을 왕창 떼어먹히기라도 한 사람처럼 여자애를 들들 볶았다. 손에 쥐고 있던 쓰레기통을 세게 걷어차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발로 신체를 밟을 듯 위협적인 행동을 곧잘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실실 쪼개며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차무겸은 입 안에 감도는 단맛을 혀로 느릿하게 굴리며 여자애를 가만 주시했다. 이렇게 여러 명이 한 사람을 기죽이는 구도는 적어도 그에겐 낯설지 않았다. 이곳으로 오게 된 계기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껄끄럽게 느껴져서 차무겸은 한마디를 던졌다.
“태욱아, 여자애한테 왜 그래.”
“야, 무겸아. 네가 얘를 몰라서 그래.”
그러나 모든 게 똑같지는 않았다.
차무겸은 노름쟁이 딸이라는 신랄한 호칭으로 일컬어진 여자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날, 옥상에서, 제가 꺼낸 제안에 응해 몸을 바깥으로 던진 그 약자와는 달랐다. 저를 둘러싼 이들의 구박과 경멸에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그 심약한 성정과는 판이했다.
눈빛이 총명한 기운을 내는 것부터가 그랬다. 꼭 바짝 돋아난 새싹을 떠올리게 하는 눈빛이었다. 아무리 밟아도 제 식대로 다시 불쑥 고개를 세울 것 같은 자신감. 더불어 움츠러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에서 당당하게 문태욱의 다리를 밀어버리는 행동 역시.
나설 생각이 없었는데도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 역시 그래서였다.
“안녕.”
가까이서 마주한 얼굴이 멀리서 볼 때보다 선명해졌다. 흑백의 재질에 컬러를 덧입힌 것처럼 망막에 깊숙이 아로새겨졌다. 옆에서 문태욱이 왠지 모를 불만처럼 발을 구르는 게 보였으나 차무겸은 무시하고 쓰레기를 몇 개 주워주었다. 그러면서 저와 눈높이를 나란히 하는 여자애의 명찰을 힐끗 보았다.
「김 사 은」
특별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이름인데 머릿속 어딘가에 한 자 한 자 진하게 박혔다.
“…고마워.”
소곤대듯 작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얼굴과 잘 어울렸다. 여린 미성. 가느다랗고 그러면서도 제법 또렷했다.
내도록 불만스럽게 서 있던 문태욱은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다리를 굽혀 앉은 차무겸을 이끌었다. 친한 척 어깨동무를 한 채 쏟아내는 소리는 여자애에 대한 빈곤한 가정사였다. 사실, 비방에 가까운 그 넋두리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자꾸만 시선이 뒤로 돌아가려는 걸 막느라 혼나서였다.
“어쨌든 쟤랑 엮이지 마. 별 볼 일 없는 주제에 자존심은 존나게 높아서는….”
“왜, 예쁘게 생겼는데.”
그건 단지 장단 맞추기에 바빠 맥락 없이 흘려보낸 농지거리 속 유일한 진심이었다.
* * *
김사은은 마치 바닥 위로 톡 튀어나온 모난 돌 같았다.
그러니까… 지나가는 이들 모두가 그 돌을 발견하면 괜스레 한 번씩 툭툭 건드려보게 만드는. 누구보다도 문태욱이 그를 입증했다. 김사은만 보이면 시비를 털지 못해 안달이 난 양 굴었다.
그날 소각장에서의 조우 이후로 차무겸은 종종 그녀를 보았다. 지난번과 같이 특별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게 다였다. 차무겸은 자신이 그녀를 너무 곧잘 발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나칠 때마다 김사은은 제게 조금도 관심이 없던 까닭이었다. 시선의 행방이 일방적으로 이어지는 데다가 그 주체가 저이다 보니 꼭 제가 그녀에게 지대한 관심이라도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이상하게 기분을 불유쾌하게 만들었다. 감정의 추적은 제법 쉬웠다. 제가 예상한 대로 행동하지 않아서였다. 지난날 그렇게 도와줬으면 모르는 척 인사를 건네올 법도 한데. 김사은은 저와 엮이는 게 극도로 싫은 것처럼 시선 한 줌 허락하지 않은 채 투명인간 대하듯 지나치길 반복했다. 망설임조차 느껴지지 않는 단호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차무겸 역시 먼저 반응을 보인다거나 하는 것 없이 비껴가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끝끝내 참지 못하고 뒤를 한 번 돌아보는 본인의 행동에 그는 누누이 기분이 상했다. 미련은 누가 흘리고 있는지 모를 태도라서였다.
그리고 그즈음이었다.
문태욱의 은밀한 개짓거리를 목격한 것은.
지루하여 잠이 솔솔 오는 수업을 화장실 핑계로 내뺀 차무겸은 일렬로 늘어진 교실들을 쭉쭉 지나가다가 멈칫했다. 체육 시간인지 텅텅 비어 있는 한 교실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서였다. 눈에 익은 뒤태는 조금 전 담배나 한 대 태우러 간다며 저보다 앞서 교실을 나섰던 문태욱이었다.
자기 반도 아닌 곳에서 무얼 하나 싶어 잠자코 지켜보는데, 문태욱은 이내 가관인 행동을 했다. 의자에 가지런히 놓인 누군가의 교복을 들어 얼굴을 묻은 것이었다. 옷자락에 밴 향기를 게걸스레 삼키는 것처럼 집요하게도 코를 비벼댔다. 문태욱이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아 할 그 은밀한 행위를 목격한 순간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이 발목을 잡아챘다. 그래서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수 있음에도 굳이 발을 돌려 문가로 향했다.
“야.”
인기척을 드러내자 문태욱의 뒤태가 크게 움찔했다. 손에 쥐고 있던 것을 황급히 내리며 뒤를 도는 행색은, 크나큰 죄악을 짓다 들킨 신자처럼 과도하게 허둥지둥하는 기색이 있었다.
“뭐 해?”
문태욱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어렸다. 그는 그런 장면을 봤다기에는 다소 무심한 낯의 차무겸을 훑어보고는 들키지 않았다고 여긴 건지 평소처럼 유들거렸다.
“아, 이거 떨어져 있길래.”
“착하네, 태욱이.”
모르는 척 맞장구를 쳐주자 문태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제 변명에 어색하고 빈약한 구석이 있단 게 느껴졌는지 다소간 부자연스럽게 굴었다. 문태욱은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양 평소 지나치게 하던 감이 있던 어깨동무도 시도하지 않고 반을 빠져나갔다. 자칫 보기에는 도망이라도 치나 싶을 만큼 성급했다.
혼자 남겨진 차무겸은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가지런히 놓인 교복 와이셔츠의 소매를 만지작거리다가 책상 아래 서랍에 정리된 교과서를 꺼내 들었다. 김사은. 검은 펜으로 정갈하게 써진 이름이 보인다.
짐작대로 문태욱은 김사은의 향을 훔치고 있었다.
“하.”
어처구니가 없는 심경에 헛웃음이 제멋대로 샜다. 지난번 김사은을 있는 대로 비방하며 괴롭힐 땐 언제고. 이거 알고 보니 존나 유치한 새끼네. 앞으로는 그녀를 신랄하게 까내리며 뒤로는 이렇게 추잡하게 향을 훔치기나 하는 그 모순적인 행동은 어린아이의 철없는 것처럼 우습기만 했다.
일순 어이가 없다가도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사은은 마냥 길가에 널린 모난 돌로 치부하기에는 좀 예쁜 게 아니었으니.
그보다도 차무겸은 손끝이 간질거리는 감각에 주먹을 그러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왠지, 김사은의 향을 담아낸 그의 코를 부러뜨리고 싶다는 충동이 뾰족하게 솟아올랐다.
* * *
집안 행사는 예전부터 고리타분한 면이 있었다. 그리하여 될 수 있으면 빠지고 싶었으나 그 경중에 따라 불참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자리도 존재했다. 이를테면 어머니의 기일이 그러했다. 그 때문에 차무겸은 당일 학교를 결석까지 하며 서울로 올라와야만 했다.
자신의 실책으로 한 아이를 잃고 또 한 아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책감에 그의 어머니는 차무겸의 유년 시절 내내 시름시름 앓았다. 그러다가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대외적으로는 극심한 마음의 골병이 몸까지 전이된 것이라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달랐다. 그의 어머니는 누구라도 한 번쯤 살아보고 싶어지는 화려한 침실에서 목을 매달고 죽었다. 한 줄로 적힌 유서는 간결했다. 내 배 아파 낳은 첫째 진겸이를 혼자 보낼 수 없으니 따라간다는 게 전부였다.
어머니의 기일은 유일하게 해운그룹과 어머니의 친정인 한주그룹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슬슬 돌아와야지.”
고루한 자리에서 바닥을 치는 식욕을 대강 채우는데, 차혁수 사장이 넌지시 말했다.
“박 실장에게 들었다. 3개월만 머무를 생각이었다고.”
박승원이 그새 아버지에게 가 주절주절 읊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입 싼 개 같으니. 차무겸은 손안에 쥔 나이프를 우아하게 움직여 고기를 한입 크기로 잘랐다. 그것을 입에 넣어 씹은 뒤 꿀꺽 삼켰다. 그 사소한 과정 동안 떠오른 누군가의 얼굴이 잔상처럼 어른거렸다.
“그랬는데, 조금 더 있으려고요.”
“왜?”
“거기 생각보다 좋던걸요. 승원이 형한테는 제가 뭣 모를 때 말한 거고요.”
차혁수 사장은 그딴 촌구석에 좋을 게 무어가 있느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단지 그뿐.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정재계 간의 소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 문제였기에 무작정 불러들여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죽음을 빌미로 모여든 기괴한 자리는 마지막까지 고상하게 끝을 맺었다.
“차무겸.”
차를 가지러 간 박승원을 기다리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사촌, 한우현이었다.
“그러네.”
“거기 지낼 만하냐?”
넌지시 건넨 질문 뒤로 무언가 쓱 내밀어졌다. 담배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사탕이었다. 의대를 준비하는 녀석답게 건강 하나는 끔찍이 생각하는지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 철두철미한 성격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게 사탕을 건네는 태도와 너무도 잘 어울려서 차무겸은 픽 웃고는 그것을 건네받았다. 봉지를 까 입에 넣기 직전 뇌까렸다.
“그냥.”
심드렁한 답변이었다.
한우현이 흘끗, 제 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저 멀리서 박승원이 모는 세단이 코너를 도는 게 보였다. 차무겸은 주머니에 찔러놓은 한쪽 손을 빼 휘적거리다가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거기에 존-나 예쁘게 생긴 애 한 명 있다.”
“…….”
“궁금하면 보러 오든지.”
“그 얼굴 보자고 거기까지 내려오라고?”
“싫음 말고.”
황당해하는 한우현을 우두커니 세워둔 채로 바로 앞까지 미끄러지듯 굴러온 차에 올라탔다. 캄캄한 야경 위로, 암영에서 조금 더 머물 생각이라고 아버지에게 전언을 건넨 것이 떠올랐다. 기실 서울로 오는 와중에는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던 일이었다. 그러나 온갖 좆같은 요소로 가득 찬 암영 속, 고작 그 여자애 하나 보고 변덕 부리듯 마음이 쉽게 뒤집혀버렸다. 그리고 그건 명백히 차무겸이 그려놓은 궤도를 이탈한 일이었다.
“왜 그렇게 웃어?”
룸 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힐끔거린 박승원이 물었다. 차무겸은 그제야 자신이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아, 그냥.”
이상하게 신이 났다. 김사은이 그려내는 변주가 염증 날 만큼 지겹던 일상을 좀 색다르게 꾸미는 것만 같았다.
* * *
다시 보니 김사은은 모난 돌 같은 게 아니라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새끼 고양이였다. 적당히 관심을 보여주면 당장 달려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 거라는 예상과 달리 밀접하게 다가올 듯하다가도 손을 뻗으면 냉큼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그건 기분을 더럽게 오염시키는 동시에 묘한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일종의 오기와도 같은 충동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타인에게 무심하고, 더 나아가 제게 호감을 표하는 상대방이라면 누구든 가릴 것 없이 벌레처럼 취급하는 김사은의 태도였다. 오직 차무겸, 그에 한해서만 날을 세우는 건 아니었다.
외려 문태욱 같은 것과 비교를 해보자면,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월등히 나은 축에 속했다. 언제부턴가 김사은의 영역 속에서 타인과 저를 저울질해보는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김사은은 별종이었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난제, 라고 명명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이 상황 속에서 이렇게 할 것이라 싶은 예측을 보기 좋게 빗나갈 때도 있고 얼떨결에 들어맞는 때도 있었다. 그게 속에서 피어난 호기심의 불길에 자꾸만 장작을 집어넣었다. 사그라들 일도 없이 자꾸만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도 타인보다는 낫다는 혼자만의 자위가 와장창 깨졌다.
“너랑 엮이기 싫어.”
그 말은 지금껏 호기심만으로 간신히 유지시키던 자존심을 와락 짓뭉개고도 남았다. 왜? 너를 괴롭히던 그 병신들과 달리 잘해주려고 노력했는데 왜 엮이기가 싫어. 그저 자각할 수 있게끔 속을 긁는 정도이던 불쾌감의 농도가 훅 짙어졌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함께 있으면 곧잘 갈무리하던 난폭한 면모를 일순 숨기지 못했다.
그날 이후 차무겸은 김사은이 제 실수를 깨닫고 다가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건 온전히 그만의 바람이었다. 이대로 그가 무심해지면 두 사람의 사이는 똑 끊어질 것처럼 그녀 쪽에서 먼저 손을 뻗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게 이미 예쁘지 않게 탈바꿈된 자존심을 짓이겨뜨렸다. 정말로 그의 일방적인 노력하에서 유지되는 관계였다는 게 또렷하게 증명된 셈이라서.
어느 쪽이 안달을 내고 있는지는 한순간의 균열로 훤히 까발려졌다.
그건 적어도 지금껏 가지고자 하는 건 별 노력하지 않아도 손쉽게 거머쥔 차무겸에게 일생일대의 굴욕과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 계획이 모두 비틀리는 것에 있어서 기괴한 희열을 느꼈다. 왜냐하면 지루하지가 않았기 때문에. 김사은은 별종이었고, 제 예측대로 굴기도 하고 엇나가기도 하며 저를 이따금 신이 나게 해주었다. 아주 삿되기 그지없는 양가감정이었다.
그 가운데서 또렷한 것 하나는 김사은을 거머쥐고자 하는 갈망이 아직 완전히 소실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도리어 반골 기질처럼 더욱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도 같았다. 그리하여 김사은의 주변까지 개입을 해보았다. 과연 문태욱의 비난대로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가정사는 은밀하게 건드릴 것 천지였다. 혼인신고는 되어 있지도 않은 데다가, 이 마을 속에서 ‘김씨댁’이나 ‘사은 엄마’라는 명칭으로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의 정보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으나 아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노름쟁이라는 전언대로 비닐하우스 도박판을 전전하며 사는 중이었다. 한심한 인간. 그러나 그 한심함 덕분에 김사은을 흔들 수 있게 되었으니 저로서는 고마운 일일 따름이었다.
예상대로 김사은은 찔러온 그대로 휘청거렸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해야….
제가 조성한 혼돈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김사은이 오매불망 저만을 찾는 건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나랑 엮이고 싶다고 해 봐.”
그래서 비비 꼬인 속내를 조금쯤 풀어주며, 그녀의 입으로 직접 정정할 기회를 줬다.
-…뭐?
“나랑 엮이고 싶다고 말해보라고.”
과연 이 상황에서도 있는 자존심 없는 자존심 부리며 버티는지 보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제안하듯 말했으나 차무겸은 한발 앞서 짐작한 바였다. 김사은은 이런 자신의 관용에 넙죽 엎드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 위기감을 완벽하게 꾸리기 위해 부러 질이 안 좋은 것들을 접근시켰으니까.
-엮이고 싶어!
“…….”
-너랑 엮이고 싶다고….
이윽고 그 어여쁜 입술로 원하는 말을 뱉었을 때.
애가 절절 끓는 듯 저와의 관계에 대한 정립을 바라는 목소리는 정수리를 쭈뼛하게 세울 만큼 황홀했다. 막연히 기대하던 예상치를 훌쩍 넘어섰다. 지금까지 그녀를 두고 쳐진 무수한 마음의 빗장이 줏대도 없이 헤실헤실 풀어졌다.
“우는 거… 한 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는데.”
열린 대문으로 들어와 울먹이는 얼굴로 헐떡이는 김사은은 너무 예뻐서 목을 조르고 싶을 정도였다. 다른 그 누구도 이 몰골을 보지 못하게, 나만이 머릿속에 저장해둘 수 있도록.
동그란 머리통을 휘어잡아 막무가내로 입술을 맞추고 싶은 음험한 충동이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기포처럼 일었다. 그건 지금껏 김사은에게서 느낀 호기심과는 질 자체가 다른 욕구였다. 호기심은 선하고 맑은 색이었다면 이쪽은… 아주 짙고 어두운 쪽에 가까웠다.
“안녕, 사은아.”
제멋대로 뻗어 나가려는 손을 안간힘을 다해 참았다.
제가 시킨 것이나 어쨌든 김사은이 꺼낸 말에 모든 빗장을 풀어버린 저와 달리 그녀는 아직도 경계심이 가득할 테다. 이제 겨우 제게로 앞발을 내밀 용기가 난 것 같은데, 괜한 짓으로 이 모든 걸 수포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참고 기다리기. 이를테면 인내라는 건 그의 삶에 주어지지 않은 부산물이었다. 영 좆같았으나 그럼에도 김사은 내면의 영역 속에서 저를 넓힐 수만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이것도 나름 뒷맛 떫은 유희가 되어주었다.
아찔한 위기는 몇 번이고 찾아왔다.
김사은은 고슴도치처럼 이따금 경계의 가시를 세우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순진했다. 민망해서라도 뒤를 뺄 게 분명하다고 여긴 맞담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순응했다. 차무겸은 아주 느리게 숨을 내뱉으며 코앞에서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눈꺼풀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가까워진 입술 사이로 두 개의 막대기가 선연하게 놓여 있는데도 입술이 맞닿은 것만 같았다.
만약 그녀가 첫입의 쓴맛을 견디지 못해 콜록거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분위기를 깨지 않았다면 담배고 뭐고 내던진 뒤 그녀의 입술을 원 없이 탐했을 것이다. 그녀의 어수룩함이 막아 세운 본능이었다.
김사은은 야밤에 들이닥친 소요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웅얼웅얼 토로하다가도 지치고 피로한 기색을 여실히 내비쳤다. 차무겸은 그런 그녀를 끌어다가 2층의 한 방에 데려다주었다. 역시나 고단함이 만만치 않았는지 김사은은 머리를 베개에 대기 무섭게 잠들었다. 그 무방비한 모습을 내려다보며 차무겸은 어느 때보다도 짙은 골몰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눈길이 흐트러진 옷차림, 그 사이로 드러나는 뽀얀 피부에서 떨어지질 못했다.
“아….”
성대를 울려 만들어내는 미성처럼 얇고 매끄러운 숨소리를 들으며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손짓 한 번 한 번에 애써 낯을 채우던 감내가 한 꺼풀씩 벗겨져 갔다. 씨발, 왜 참아야 하지. 인내는 금세 벽에 부딪쳤다. 잘 여며둔 치열한 음욕은 정신을 못 차리고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는 실핏줄이 터진 것처럼 벌게진 눈빛으로 침대에 누운 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존나….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따먹고 싶다.
“씨발.”
그 자리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침실을 박차고 뛰쳐나와 향한 곳은 욕실이었다. 처음에는 차가운 물이었다가 점차 미온수로 바뀌었다. 쏟아진 물길 속에서 차무겸은 몇 번이고 뜨거운 숨결을 삼켜야만 했다. 자신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표하는 사내들을 벌레 취급하던 김사은의 태도가 머릿속에서 짙게 어른거렸다. 그걸 뻔히 기억하는데도 이따위 꼴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은 처음이었다. 온몸이 한여름의 찜통 같은 열기에 욱신욱신 절어 폐까지 흠씬 조여드는, 이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이.
그 아득한 감각이 차무겸의 인내를 다른 방식으로 쪼개놓았다.
더 이상 김사은을 머저리 같은 것들의 시야에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저건 내 것이고 그러니 나만 봐야 했다. 다른 놈들에게 지저분한 시선 한 톨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이 구질구질하고 구닥다리 같은 곳에 둘 생각도 없었다. 제가 서울로 돌아갈 때 반드시 김사은을 데리고 갈 것이다.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확고한 욕구가 마음 깊숙이 꽂히는 순간이었다.
* * *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암영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곁에 김사은이 있다는 걸 의심해본 적조차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사은의 조금은 변한 모습을 이따금 발견했다. 이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하더니, 서울에 있는 여자친구와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는 걸 알릴 때마다 보인 그 표정이… 이를테면 제게 보여주는 확신이 되었다.
더 이어갈 필요도 없는 연을 붙잡고 무의미하게 늘어진 것 역시도 다 그것 때문이었다. 이전 날 저를 타인과 동일한 선상에 두고 취급하던 그녀의 모습에 있는 대로 상한 자존심이 보상을 받는 듯해서. 제가 가끔 여자친구를 입에 올리면 예민한 빗금이 드리우는 김사은의 안색은 차무겸을 매번 정도 이상으로 유쾌하게 만들었다. 꼭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지긋한 눈길을 건네면서도 끝내 꺼내지 못하고 등을 돌리는 모습에서 무수한 미련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로 말미암아 차무겸은 그녀와 주어진 길을 나란히 걷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실 그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 후였다. 번거로운 알바 자리 대신 필요도 없는 과외를 운운하며 물질을 충당해주고, 원하는 만큼 제게 빌붙으라고까지 했다. 제대로 된 표현의 방식을 알지 못하는 차무겸에게 있어서는 그게 최고였고 최선이었다.
그래서….
“내가 저번에 말했었잖아. 너랑 엮이면 피곤해진다고.”
“…….”
“이런 것 때문이야. 우리가 아니라 주변이… 시끄러워져. 문태욱도 그렇고, 전예슬도 그렇고. 난 걔네와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은데 너와 있으면 이렇게 계속 얽히게 돼.”
누가 눈치도 못 채는 사이 다가와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친 심정이었다. 혹은 믿지 못할 배신을 당했다거나. 적어도 그 정도의 비유가 걸맞을 법한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게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믿었던 상황 속에서 김사은은 언제든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 저와의 이별 역시 내포되어 있었다. 지금의 김사은이라면 자신이 당장 서울로 돌아간다고 해도 ‘잘 가.’ 하고 배웅의 인사를 건넬 법했다. 어떠한 결연함과 일말의 초연함까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저와 얽히는 점에 있어 꺼리는 구석이 있다는 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해줄 수 있는 걸 다 해준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그것은 또 다른 오기로 똘똘 결집되어 가슴속을 차게 식혔다.
“문태욱 코 말이야.”
“…….”
“왜 부러뜨렸는지 알아?”
가끔은 한 번의 혼돈이 물렁하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충격 요법처럼 말이다.
“마음에 안 들어서.”
문태욱을 후두려 팬 건 역시 잘한 일이었다.
이전부터 거슬리던 그 새끼를 치웠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전예슬. 쓸데없이 가증스러운 주둥이를 놀려서 김사은에게 애먼 불안과 망설임을 심은 계집애. 제가 세운 계획을 보기 좋게 어그러뜨리려고 안달 난 모든 장애물을 다 처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사은이 저와 얽히고 싶지 않은 명목으로 댈 이유는 없어질 테니까.
자신과 김사은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들 가리지 않고 망가뜨려버릴 셈이었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속을 시뻘겋게 장악한 광증은 진즉 시작된 후였으니.
에필로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