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23화 (23/24)

23장.

아빠는 폭군이었다.

그가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엄마와 내가 있던 오붓하고 애처로운 공간은 한바탕 드잡이질이라도 한 싸움터로 변질된다. 그 안에서 본능밖에 없는 짐승처럼 날뛰는 건 아빠 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명백한 약자였고, 생쥐였고, 피해자였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나부터 숨기기에 급급했다. 화장실은 안 된다. 아빠의 눈길과 손길이 뻔히 닿는 곳들이었다. 고로 엄마가 찾은 도피처는 살짝만 건드려도 삐걱대는 낡은 옷장이었다.

어린아이가 몸을 구기면 간신히 피닉할 수 있는 공간.

‘엄마아.’

‘응. 괜찮아.’

우리 아기, 착하지.

엄마는 공포심과 울음기로 젖은 내 눈가에 다정히 입을 맞추고는 품에 안기려 들려는 나를 떼어놓았다. 애써 짓는 웃음이 가녀린 바람 한 번에 바스러질 듯 연약했다. 나를 꾸역꾸역 밀어 넣은 엄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옷장 문을 닫았다.

암전이 어수룩하게 내려앉은 그 공간은 나를 빨아들이고 삼킬 어두컴컴한 굴 같았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으면 낡을 대로 낡아 이음새가 잘 맞지 않는 문틈으로 집 안의 몰골이 훤히 보였다.

흑백 비디오의 한 구간을 반복 재생하는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펼쳐지는 똑같은 세상.

아빠의 고함과 엄마의 비명,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나는 악몽 속에서 두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빨리 가기를, 믿지도 않는 신에게 빌었다. 엄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릴 때쯤에는 악몽이 종지부를 맺었다. 아빠가 방으로 들어가서 자거나 혹은 다시 나가거나.

잠시 잠깐 당도한 지옥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물러가면 남는 건 확연한 상처뿐이었다. 옷장 문을 열면 깨진 유리 조각이나 부서진 잔해물을 치우는 엄마의 가녀린 뒷모습이 보였다. 늘어질 대로 늘어난 티셔츠로 감싸인 몸은 앙상한 검불을 연상시켰다.

‘엄마.’

기어들어 가는 음성으로 불러보는 확인.

엄마는 아무런 반응 없이 엉망이 된 방바닥을 쓸다가 한참 후에야 나를 돌아보고는 했다. 뺨과 이마, 혹은 목덜미에 전에 없던 시퍼런 멍을 달고서. 빛바랜 낯이 내게로 돌아올 때마다 가슴 어딘가가 마모되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인상을 찌푸렸다. 아빠에게 맞은 팔다리가 아픈지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운 몸으로 나를 향해 두 팔을 뻗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짧은 두 팔로 그런 엄마를 마주 안는 것이 전부였다.

‘미안해.’

그 작은 행동에 잔뜩 뭉친 응어리 한 겹이 저도 모르게 까발려진 것처럼 엄마는 눅눅하게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나를 숨겨주어 폭군으로부터 은닉하게 해준 엄마가 되레 내게 사과를 했다. 늘 그랬다. 우리는 피해자인데, 우리를 괴롭힌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 마치 잉태하여 이 세상에 나게 한 일 자체를 사과하는 것만 같았다. 이 괴롭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처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흠칫.

망령의 그것처럼 잇따라 귀를 뜯어먹는 사과가 온점을 찍는 것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부릅떠진 눈앞이 먹구름 속처럼 시커멨다. 온몸이 끈적했다. 베개를 그러쥔 손을 움직여 이마를 쓸자 진땀이 번드르르 묻어났다. 잠시간 현실과 꿈을 혼동했다. 엄마의 상처와 절망에도 그 무엇 하나 할 수 없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만 같은 감각이 고요한 몸서리를 치게 만들었다.

얼추 정신이 들자 목이 바짝 말랐다. 상체만 세워 침대 옆 협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득 차 있어 주길 바란 물잔이 텅 비었다. 금방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문제가 벽에 턱 가로막히자 이상하게도 그저 조금 타는 듯하던 갈증이 극심한 기갈증처럼 변질됐다.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허리를 감싸고 있던 무언가가 나를 뒤로 확 잡아당겼다.

“어디 가.”

잠기운에 반쯤 잡아먹힌 목소리가 뒤통수를 톡 건드렸다. 언제 왔지. 집에 돌아온 걸 보지 못하고 잠이 들어서 그런지 차무겸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부엌….”

“왜.”

“목말라서.”

“물 있잖아, 저기.”

“다 떨어졌어.”

그는 나의 기척에 깬 건지 목 안쪽으로 숨을 삼켜내는 소리를 내고는 벗어나려고 하는 나를 조금 더 강하게 옥죄었다. 아무리 봐도 풀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기세에 숨이 막혔다. 별것 아닌 갈증이었는데, 목구멍이 뜨거운 불씨라도 들러붙은 것처럼 홧홧해졌다.

“목마르다고….”

“…….”

“왜 물도 못 마시게 해, 왜….”

제지를 받으면 설득을 하든, 다른 방법을 구하든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졌다. 잡을 새도 없이 이루어져서, 모든 게 금세 단념에 부딪치며 의지를 부옇게 상실하고야 말았다. 감정의 곡선이 깎아지른 절벽처럼 가팔랐다.

그게 이상하게 억울하고 서글퍼서 눈물샘은 쉽사리 고장이 나버렸다. 울 일도 아닌데 눈앞은 불수의적인 물기로 젖어 들었다. 이런 내가 이상한 걸 아는데도 손쓸 도리 없이 이루어지는 일종의 관성이었다.

차무겸은 어딘가에 숨고 싶은 것처럼 웅크린 채 헐떡이는 나를 알아채고는 길게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돌아와 씻자마자 누웠는지 편안한 홈웨어 바지만 챙겨입은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문득 돌이켜보자니, 이 고층 아파트로 돌아온 이래 침실 바깥에서는 두 발로 걸어 다닌 기억이 별로 없었다. 차무겸은 내 두 발이 바닥에 닿는 즉시 내가 까마득한 어디론가 추락할 거라는 심각한 불안증이라도 겪는 사람처럼 나를 이렇게 곧잘 안고 다녔다. 이러는 걸 볼 때마다, 내 발목을 자른 뒤 자신이 안고 다니겠다는 말이 마냥 허황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고는 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울고 난리야.”

잠기운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목소리로 그가 작게 읊조렸다.

부엌으로 향해 나를 깔끔한 아일랜드 홈바에 내려놓은 차무겸은 타박 어린 목소리와 달리 종이라도 되는 양 바지런히 움직여 물을 한 잔 떠 왔다. 눈을 내리깐 채 들이밀어진 잔에 얌전히 입술을 가져다 붙였다. 적당히 시원한 물을 걸신이라도 들린 양 들이켜는데 서늘한 감각이 뺨에 달라붙었다. 어느새 내 무릎 양옆을 짚고서 내가 물을 마시는 걸 빤히 지켜보던 차무겸의 손이었다.

“아직도 안 가라앉았네.”

거울을 보지 않아도 그가 감싸 쥔 뺨이 퍼렇게 부어 있을 것이 훤히 보였다. 차가운 컵을 만져서 그런지 온기보다는 냉기가 확연히 스민 손가락등은 찜질이라도 해주듯이 그 부위를 살살 어루만졌다. 스치는 길을 따라 지끈거림이 번졌다. 지난날 비 오던 옥상에서 차무겸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내 뺨을 세게 올려붙였을 때 생긴 멍이었다.

나는 그가 푸릇푸릇하게 물든 자국을 만지든 말든 목을 축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차무겸은 사막에 동떨어져 있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정신없이 물을 들이켜는 걸 보고 조용히 한 잔을 더 따라주었다.

꿀꺽. 꽉 조였다가 풀어지는 식도로 액체를 삼켜낼 때마다 ‘미안해.’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귓전을 메아리처럼 떠돌았다. 잔뜩 뒤엉킨 넝쿨처럼 그것은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미안해, 뭐가?

나를 태어나게 한 것이?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가 타의에 의해 끌어 올려진 채라서인지 이제는 그런 가정을 떠올려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다. 타격을 받는다기보다는 나를 얽매던 것들로부터 멀어지고자 선택한 회피가 실패로 끝나며 잠시 가라앉아 있던 상실감이 스멀스멀, 물안개처럼 다시 차올랐다.

액체가 찰랑이는 물잔 속의 시선이 조금 더 미끄러졌다. 밋밋한 뱃가죽. 이제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그 속이….

“…….”

멈칫했다.

고작 한 순간 만에 귀를 건드리는 소리가 갈음됐다.

“아기….”

“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주방 저 너머 어둠에 먹혀 잘 보이지도 않는 공간을 가늠하듯 응시하며 웅얼거렸다. 저기서, 방금, 들린 것 같은데…. 비우다 만 잔을 든 채로 맥없이 굴고 있자니 차무겸이 턱을 그러쥐어 제 쪽으로 돌렸다.

“아무 소리도 안 나.”

가시지 않은 잠기가 질척하게 떨어지는 어조는 두고 볼 것도 없다는 듯 나의 추론을 싹둑 잘랐다. 그 단호한 태도에 쑥 내민 주장이 단전 아래로 기어들어 갈 무렵, 다시금 귓가로 그 소리가 침범했다. 고개가 불가항력적으로 돌아갔다.

“아냐. 잘 들어 봐.”

저기서, 들리는데.

지금 것은 손으로 가리킬 수 있을 만큼 명확했다. 그런데 출처는 몰라도 소리 그 자체는 아주 희미하고 가늘었다. 몹시 가느다란 실처럼 끊어질 듯 말 듯 한 아기의 울음소리. 엄마의 사죄에 덧대어 들려오는 이 소리는 분명히….

“사은아.”

허락 없이는 시선 한 줌 떼지 말라는 것처럼 차무겸이 다시 눈길을 제게로 고정시켰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가볍게 스치고 멀어졌다. 마치 부드러운 방식으로 입을 틀어막는 느낌이었다.

“안 들린다고.”

“…응.”

“가자, 자러.”

그는 내 손에 들린 잔을 아무 곳에나 내려놓고서 아까처럼 나를 침실로 데려갔다. 나를 침대 위에 내려두고는 협탁에 놓인 물병을 들고 잠시 방 밖을 나갔다 돌아왔다. 손에 든 물병은 조금 전과 달리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행여나 다시금 깨는 순간이 있더라도 홀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뜻이 전해져왔다.

2주 전, 옥상과 병실에서의 소요는 나와 차무겸의 속에 생생히 살아 있는 과거의 파편이었다. 그 후로 경호원들에게 실려 나간 문태욱은 어떻게 됐는지 듣지 못했다.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던 걸 생각해보면 부상은 심각할 테다. 아마, 다시는 경호 일을 못 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차무겸의 집안은 부상에 대한 합의 겸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내밀었을 테고….

이불을 덮어준 그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허리에 감기는 팔, 등 뒤로 닿아오는 가슴팍, 그 모든 게 거대한 새장을 이루는 쇠창살 같았다. 아닌 척해도 피곤했는지 뒤편의 숨소리는 금세 얌전해졌다. 침실을 떠도는 차무겸의 맥박을 그 누구보다도 진득이 느끼며 나는 눈을 가물거렸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있었다.

* * *

모서리가 잘게 부서진 마음의 형태는 온전하지 못했다. 그 볼품없고 초라한 모양새대로 홀로 서 있지도 못하여 비척대고 휘청거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설령 그 계기가 부재하더라도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을 침습한 아기의 울음소리는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밤잠을 시도 때도 없이 깨우는 하나의 발작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홀연히 침대에서 일어나 그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겠다고 집 안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일이 늘었다.

기억은 모래알처럼 쥐려 할수록 줄줄 새어 나갔다. 인지도 못 하는 사이에 이미 침실 문 앞이고, 또 정신을 차려보면 부엌이었다. 밤새도록 목적도 없이 너른 집 안을 활보했다. 예전엔 무서워서 발도 뻗지 못하던, 불 하나 켜지 않은 어두침침한 그곳을 몽유병 환자처럼 헤매고 또 헤맸다.

차무겸은 옅게 잠이 들어 있을 때는 늘 깨어나서 나를 붙잡았다. 깊은 잠에 빠졌다고 한들 내가 없는 걸 알아채면 쏜살같이 일어나 나를 찾아다녔다. 밤중에 벌이는 기괴한 술래잡기처럼 우리는 세상이 고요하게 잠든 그때 누구보다도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어쩌면 이건 그가 온전히 자유로워지려는 나를 붙잡은 때부터 예견된 폐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청각의 흔적은 미묘했다.

어느 날은 주방에서 들리는 것 같고, 또 어느 날은 거실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어둠이 너무 무서워서 숨기 바쁘던 내가 눈을 뒤집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할 만큼 그것은 꾸준히 신경줄을 긁어 먹었다. 공포감을 압도하는 어떠한 간절함과 절박함이 나를 칭칭 옭아맸다.

그러다가도 그 소리가 나를 공격할 것처럼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내릴 때가 있었다. 가랑비가 내 몸과 옷을 속수무책으로 적시던 그날처럼. 폭우 아래에 혈혈단신으로 놓여버린 외톨이처럼. 그때는 유일하게 공포심이 모든 감정을 억눌렀다. 그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난날에도 한 번 이런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꾹 누르면 그대로 튀어 오르는 고무공처럼 어디로든지 달음박질했다. 이 공간이 싫었다. 뛰어다녀도 충분할 만큼 광활한 이 집이 끔찍했다. 아프고, 서럽고, 외롭고, 분노하게 만들었던 이 공간이….

하루는 진저리를 치며 현관문까지 다다랐지만 도어 록을 풀기도 전에 차무겸에게 붙잡혀 침실로 질질 끌려갔다. 파도 앞 모래성처럼 연약해진 마음이 아슬아슬하게 기울다 끝내 와르르 무너지려고만 하면, 차무겸이 두 손으로 무너진 모래를 곱게 감싸 형태만 유지시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숨 쉬고 있었다. 의미 없이, 형편없이.

그리고 오늘도.

번쩍 정신이 들었을 때는 침실 문의 문고리를 감싸 쥔 채였다.

어디선가 구슬픈 곡소리가 들렸다. 빽빽하게 곤두선 서러움이 허한 속을 비집었다. 흔적의 출처를 더듬으러 가기 위해 벌컥 문을 여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온갖 울음소리가 달려들어 나를 좀먹었다.

헉, 숨통이 틀어막혔다.

꼭꼭 닫아도 어딘가의 틈을 헤집어 들어차는 서글픈 울음소리가 폐부를 찢어발기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내달렸다. 현관문으로 뛰어가 도어 록을 해체했다.

내 발작이 지속되며 24시간 문 앞을 지키기 시작한 경호원이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맨발로 달려나갔다. 화들짝 놀란 사내의 탄성이 땅을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허겁지겁 달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최고층에 위치해 있는 까닭에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속도는 너무나 느리게만 느껴졌다. 기다리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비상계단을 발견했다. 누가 발목에 실을 걸어 끌어당기는 것처럼 홀린 듯이 그리로 향했다. 뒤편에서 벌어지는 소란이 나를 조금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신발은커녕 양말 하나 신지 않은 맨발로 계단을 내디디려는 찰나, 커다란 손이 나를 움켜쥐었다. 안 됩니다. 가시면…. …께서 절대로…. 경호원의 엄중하고 여지없는 음성은 제대로 담기지 못하고 흩어지기만 했다.

“놔주세요, 난, 난 가야 해, 놔줘.”

피멍이 빠지지 않은 뺨을 타고 이슬이 방울방울 터졌다. 뭐가 이리 무서운지 모르겠는데 무섭고, 뭐가 이리 두려운지 모르겠으나 두려웠다. 범접할 수 없는 공포감이 손과 발끝을 차게 식히고 발바닥을 통해 피를 전부 다 빼가는 것만 같았다. 견딜 수가 없는 오한이 신경을 멋대로 침범해 사지를 탈탈 흔들었다.

좀체 이성을 찾지 못하고 나를 결박하는 팔뚝을 떼어내려고 아등바등했다. 손톱을 세워 찌르고 내려쳐도 그것은 풀리지 않았다. 무서워. 무언가가 다가오는데. 잡아먹힐 것만 같은데….

“아!”

한순간 정신이 돌아온 건 아귀힘의 정도가 달라진 찰나였다. 번쩍 뜨인 눈앞에 차무겸의 얼굴이 놓여 있었다.

자다 막 일어났는지 흐트러진 채인 그가 내 엉덩이 아래 팔뚝을 밀어 넣어 나를 가벼이 들어 올렸다. 상반신이 자연히 굽어지며 그의 어깨에 짐짝처럼 얹혔다. 야밤의 소요는 차무겸이 그런 나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며 마침표가 찍혔다.

아니, 마침표는 아니었다.

“놔!”

“김사은.”

“놔, 놔줘. 무겸아. 놔, 나 좀, 놔줘, 나, 좀….”

그가 발버둥 치는 나를 침대로 내려놓으며 들썩이는 어깨를 꽉 잡아 내리눌렀다.

“정신 안 차려?”

압도적인 힘 아래에서 발광이라도 하는 양 팔다리를 쉼 없이 휘적거렸다. 차무겸은 내 손톱에 뺨을 긁히든, 퍽 소리가 날 만큼 세게 가슴팍이 후려 맞든 신경 쓰지 않고 나를 껴안았다. 우리는 다른 의미로 절박하게 굴고 있었다.

유리 조각이 박힌 것처럼 이상하게 아린 숨이 껄떡껄떡 넘어갔다. 그는 쉽사리 진정하지 못하는 내 턱을 붙잡고서 입술을 겹쳤다. 희미하게 헤벌어진 입술을 타고 공기와 미끈한 혀가 함께 넘어왔다. 축축한 살덩이는 내 정신을 아예 쏙 빼놓을 요량처럼 입 안 구석을 거칠게 누볐다. 잇몸의 예민한 부분을 핥고 입 천장을 쑤시듯이 문질러댔다.

그러고는 달리는 호흡으로 경직된 혀를 감싸 물어 쭙 빨아올렸다. 혀뿌리가 알알하게 흡입되는 감각에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그가 턱을 슬금 비틀었다. 코와 코가 맞물리듯이 스치며 입맞춤을 한층 더 검질기게 만들었다.

어깨를 으스러뜨릴 듯이 감싸 쥐고 있던 손이 천천히 내려와 허리춤을 어루만졌다.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한 손길이다. 끈끈하게 마찰하는 혀를 따라 타액이 방탕한 모양새로 섞여들었다.

차무겸은 끊임없이 키스를 쏟아붓는 와중에도 조금의 힘든 기색 없이 내게로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마치 네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내 것으로라도 호흡하라는 것처럼. 기꺼이 아가미가 되어주겠다는 태도가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그는 어느새 아랫입술을 감쳐 물고 쭉쭉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아, 희미한 신음이 샜다. 일정하게 거리를 벌리고 누워 있던 몸은 입술을 맞대는 걸 기점으로 맞닿은 지 오래였다. 아직도 고막을 뜯어먹는 소음은 여기저기 흩뿌려진 채였다.

나에게 이리 오라 손을 흔드는 것만 같은 울음소리는 어렴풋하게 잔재했다. 곡조는 원망의 집약체처럼 구슬펐다. 어쩌면 차가운 기계로 싹싹 긁어진 잔해물 중 내 배 속에 잔류한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울음소리가 그래서 나는 거라면, 지금 애통을 삶아 먹은 듯한 소음의 출처가 다름 아닌 나라면.

오한을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주의를 돌릴 게 필요했다. 필사적으로 신경을 분산시켜야만 했다. 그런 내게 주어진 건 안타깝게도 차무겸이 전부였다. 붙잡고 싶지 않지만 붙잡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옷자락을 거머쥐었다.

“무, 무겸아. 흐윽….”

그가 이전보다는 색이 옅어진 멍 위를 혀로 핥으며 나의 애걸에 집중했다. 커다란 몸 아래에 깔려 움찔대며 가까스로 입술을 움직거렸다.

“안아줘, 나 안아줘….”

정신을 놓을 수 없다면 최대한 그에 근접할 수 있는 행위라도 해야 했다. 달팽이관을 살살 갉아 먹는 이 청각의 잔상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 할 것이 없는 심정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와의 섹스는 적어도 임하는 가운데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진하게 부추겨지는 원초적인 본능 아래에 이성을 놓고 헐떡이기 바쁜 시간이니까.

“어떻게든 해줘, 제발….”

와 닿는 차무겸의 눈동자가 빽빽하게 느껴질 만큼 짙었다. 단순히 포옹을 의미하는 말이 아님을 충분히 인지한 동공이었다. 이 관계에 있어서 흔들리고 휘두르는 요동을 자아내는 건 자신이 아니라 나라고 주장하던 때와 결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눈발이기도 했다.

그는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홀린 듯이 손을 움직였다.

파자마 형식의 윗옷 단추가 무성의하게 풀리고 그 안으로 크고 길쭉한 손이 서슴없이 파고들었다. 다른 데는 두고 볼 것도 없다는 양 봉긋하게 부푼 둔덕을 덮어 주무르는 태도에서 후덥지근한 열기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손가락 두 개가 합심하듯 움직여 맨들맨들한 젖무덤을 짓누르듯이 비볐다. 톡 불거진 알갱이가 그 아래에 깔려 살그미 뭉개졌다. 아,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거품 방울처럼 터졌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그의 흑안이 나의 모든 걸 집어삼킬 것처럼 강렬하게 드리웠다. 신경을 장악하는 그 눈빛 아래에서 호흡은 불가항력으로 거칠어졌다. 손가락 사이에 젖꼭지를 끼워 주무르듯이 비비는 행동이 야릇했다. 끝내 단추가 모두 풀어지고 앞섶이 활짝 벌어지자 차무겸은 주저 없이 고개를 기울여 젖가슴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흡착하는 힘에 살덩이가 출렁, 요동쳤다.

“아…!”

허리가 활대처럼 굽어지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조금 전까지 입 안에서 활개를 치던 미끈미끈한 혀가 손길 한 번에 힘을 받기 시작한 유두를 부드러이 궁굴렸다. 붉은빛으로 달아오른 젖꼭지가 까끌한 미뢰에 비벼지자 견딜 수 없는 간지러움이 척추뼈 사이사이를 가로질렀다. 흑, 신음하며 허리를 휘었지만 그럴수록 그의 입에 젖가슴을 더 밀어 넣는 행색만 될 뿐이었다.

쪼옥, 그가 사탕이라도 핥아 먹는 것처럼 야살스러운 소리를 냈다. 침칠하듯 샅샅이 발라먹는 느낌이 유두로 모자라 그 주변 젖꽃판의 우둘투둘한 살갗까지 곤두서게 만들었다. 허리 아래를 받쳐주던 손이 헐렁한 하의 안으로 들어와 엉덩이를 가득 쥐고 치대듯이 주물렀다.

한 번씩 둔부 한 짝을 그러쥐어 옆으로 당기면서 아래에 자극을 주었다. 달큰한 디저트라도 되는 양 놓아줄 생각을 않던 젖꼭지가 쭉 늘어날 만큼 빨렸다. 그의 입에서 빠져나올 때는 점막과 살덩이가 뭉근하게 흡착했다가 떨어지며 뻑, 하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타액으로 번드르르 젖은 돌기를 손으로 살살 문질렀다. 아흣, 나도 모르게 골반을 뒤틀자 그가 결박하듯 그 부분을 내리누르며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다시 말해 봐.”

“흑….”

“안아줘? 응?”

육욕에 담갔다가 빼낸 듯 질척한 감각의 여운이 그대로 툭툭 떨어지는 채근이었다. 생전 처음 있는 나의 보챔에 차무겸은 나사 하나가 빠진 놈처럼 굴었다.

“흐, 해줘, 얼른… 아…!”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애욕 어린 태도가 환영일 따름이었다. 그를 더욱이 자극하여 한시라도 빨리 이 망령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몸으로 부딪쳐오는 열기에, 예리하게 곤두선 신경을 다른 방식으로 변질시키는 성감에 귓전을 떠돌던 소리는 차츰 옅어졌다.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른 눈자위를 가쁘게 깜빡이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호응하듯 엉덩이 한쪽을 감싸 쥐고 살집이 튀어나올 만큼 강하게 조몰락대던 그가 피부에 찰 달라붙은 팬티 사이로 손가락을 하나 밀어 넣었다. 미끄러지듯이 골 사이로 파고든 그것이 음모로 까끌까끌한 질구를 스쳐 지나갔다.

흐, 뭉친 신음이 혀끝을 맴돌았다. 그는 내 목덜미를 핥고 턱 아래 연한 살을 깨물었다가 놓으며 가늠이라도 하는 양 그 부위를 연신 매만졌다. 뭉툭한 손끝이 구멍을 벌릴 듯 말 듯 그 위에서 문질러졌다. 손가락의 한 마디 정도가 질 안으로 아주 살짝 파고들었다가 날숨을 내쉬기도 전에 빠져나가는 아슬아슬한 자극이 반복되자 절로 애가 끓었다.

“얼른, 얼른….”

이 엉망으로 난도질된 정신을 아예 부스러기로 만들어버릴 행위가 코앞에 있는데 닥쳐올 듯 닥쳐오지 않으니 조급했다. 헐떡이며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자 차무겸이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가 놓으며 쉬지근하게 타박했다.

“별로 젖지도 않아놓고.”

“흑….”

“다리나 제대로 벌려.”

짧게 퉁을 놓은 그가 질구를 매만지던 손을 거두고서 아래로 내려갔다. 얇은 하의와 팬티가 손가락에 걸려 한 번에 끌어 내려졌다. 살갗이 공기 중에 노출되자 온기가 충만한 데에 반하여 알 수 없는 소름이 오소소 일었다. 차무겸이 습관처럼 오므라드는 오금을 잡아 벌어지게 한 채로 하체를 내리눌렀다. 두 다리가 엠 자 모양으로 고정되며 음부가 가릴 것 없이 그의 시야에 드러났다. 차무겸의 보드라운 머릿결이 허벅지 안쪽을 은밀하게 간지럽혔다. 곧이어 눅진한 숨결이 미약하게 젖은 구멍에 닿아 애무하듯이 퍼졌다.

“흑…!”

요사스러운 혓바닥이 넓게 펴진 상태에서 회음부부터 클리토리스까지를 길게 핥아 올렸다. 끈적한 감촉으로부터 기인한 타액이 고작 한 번의 혀 놀림에도 질척하게 배어났다. 보들보들한 살점을 갈라 그 가운데를 누비는 움직임은 오직 구멍을 젖게 하겠다는 천박한 의도 말고는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끄덩한 혓몸이 발갛게 물든 음순 사이를 비집으며 끈적하게 타액을 남기는 행위는 가시처럼 돋아난 성감을 빠르게 부추겼다. 이윽고 차무겸이 이를 세워 살짝 부푼 클리토리스를 깨물었을 때 허벅지 안쪽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허리가 허공으로 떠 파들거렸다. 그는 내 반응을 보고서 혀끝을 뾰족하게 세워 음핵을 집중적으로 괴롭혔다. 물기가 새어 나와 조금씩 습해지던 구멍이 오줌발을 지린 것처럼 대번 척척해졌다.

“얼른 쑤셔달라고 이렇게 젖는 거야?”

차무겸이 혀를 분주하게 돌리느라 약간 어눌해진 발음으로 뇌까린 후 구멍에 아예 입술을 접붙여 힘차게 쭙쭙 빨아올렸다.

“하으…!”

공기라도 머금듯 뻐끔뻐끔 개폐하기 바쁘던 질 안으로 혀가 슬금슬금 진입했다. 별안간의 침습에 나도 모르게 아래를 꽉 조이자 다리를 그러쥔 차무겸의 손아귀에도 힘이 바싹 들어갔다.

그는 피스톤질이라도 하듯 내밀한 굴 안쪽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가 빼내며 점성 있게 흘러나오는 애액을 잘도 꿀꺽꿀꺽 삼켰다. 어찌나 탐욕스럽게 달라붙어 빠는지 누가 보면 단물이라도 마시는 게 아닐까,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음부가 척척한 감각으로 헤집어지는 느낌에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헐떡거렸다. 그의 혀가 상상 이상으로 깊이 밀려들어 와 안을 긁을 때마다 의도치 않은 신음이 엉망으로 구부러지는 혀를 타고 흘러나왔다. 살갗을 긁는 전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게 반복되자 소음은 조금 더 강하게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매달리게 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차무겸의 머리칼만 동아줄처럼 붙잡고서 할딱거리기를 한참, 그가 걸신들린 양 휘젓던 혀를 쓱 거둬들이며 상반신을 바로 세웠다. 미려한 입가에 묻어나는 액체를 혀로 쓱 핥아 먹은 그는 바지로 손을 내렸다.

흥분감이 그대로 어린 듯 다소 급한 손짓 너머로 거대한 성기가 위용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한차례의 애무로 그 역시 만만찮게 자극을 받았는지 귀두관이 핏줄을 벌겋게 세운 채 맥동하며 허연 액을 질금질금 뱉고 있었다. 그것을 매끄럽게 살기둥에 펴 바른 그는 능숙히 자리를 잡고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아으…!”

“하, 좁아….”

입술이 마르는지 혀로 한 번 축인 그가 양 발목을 잡아 브이 자가 되도록 활짝 벌렸다. 앞선 전희로 흐물렁하게 녹아내린 몸은 의지 없이 그가 움직이는 대로 따랐다. 뜨겁게 일렁이는 차무겸의 눈동자가 연결된 결합부에 지그시 꽂혀 들었다.

“빨아 먹는 거 봐. 진짜 야해서는….”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몸을 맞춰왔으니 한두 번 보는 풍경도 아닐 텐데 그는 언제 봐도 감회가 새로운 양 굴었다. 내 발목을 그러쥔 채 매끄럽게 허리를 돌리는 허릿심이 아래를 속수무책으로 파헤쳤다. 우둘두툴한 성기가 질 안을 무참하게 긁어대는 감각은 짜릿하다 못해 오싹하기까지 했다.

“흑! 아…!”

“후, 좋아? 사은아?”

“읏, 응, 으…!”

“네가 이렇게 박아달라며. 아래에 내 좆 꽂고 싶어서 안달 낸 건 너잖아.”

“응, 응…!”

퍽, 퍽! 속도는 처음부터 고지만을 보고 달리듯 격정적이었다. 다리를 일정하게 벌리게 한 후 골반을 바투 끌어 쥐고서 좁고 구불구불한 안으로 짓쳐 들어오는 힘은 빨간 천을 보고 달려드는 들소의 그것처럼 감당하기가 여간 벅찬 게 아니었다. 동그랗게 부푼 고환이 채신머리없이 벌어진 회음을 차지게 후려쳤다. 벌건 자국을 그려낼 정도로 거센 타격이 골수마저 요란하게 흔드는 듯했다.

“아… 아! 읏, 응…!”

조붓한 질 안은 혀를 받아먹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할 때를 깡그리 잊은 것처럼 쑥 들이박히는 성기를 악착같이 조여 물었다. 그건 양쪽 모두에게 농후한 전율이 되었다. 엉망으로 짓뭉개지는 건 내벽 안인데 꼭 머릿속이 찍어 눌리는 것처럼 뇌가 극열하게 타올랐다. 먹물을 푼 것처럼 새까만 차무겸의 홍채 위로 사납게 달뜬 성감이 너울거렸다.

“윽, 하… 아, 아응!”

그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신음하는 나에게로 상체를 기울여 헤벌어진 입 속으로 혀를 맘껏 쑤셔 박았다. 달뜬 숨으로 눅눅하게 젖어 든 점막을 살점 발라먹듯 이리저리 감빨던 그가 민감한 혓바닥 아래를 훑어주고 물러나며 읊조렸다.

“어디 가려고 했어….”

격렬한 몸싸움과 직후 이어진 섹스로 감쪽같이 미뤄둔 핍박과 추궁이 뒤늦게 발아했다.

“으응, 으, 흑… 흐으!”

“말해 봐. 나가서 어디로, 하아, 가려고 했냐고.”

“모, 흐, 몰라… 아!”

“몰라? 왜 몰라? 그걸 네가 모르면 누가 아는데.”

“읏, 하…! 아, 무, 겸, 으, 으응!”

차무겸은 내가 그의 곁에서 벗어나는 것에 있어서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게 어딘들 내가 향할 도피처가 있다면 부서뜨리고 망가뜨려 버리겠다는 의도로 묻는 것일 게 뻔했다. 허옇게 변한 머리는 생각을 거부했다. 그래서 도리질을 했으나 기어이 대답을 들으려는 듯 그는 바동거리는 내 상체를 양손으로 틀어쥐고 아래로 철퍽철퍽 꽂아 넣었다.

마찰열로 후끈해진 구멍이 주름 하나하나 펴질 만큼 팽만하게 벌어지고 굵직한 거근이 꾸역꾸역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주먹만큼 커다란 귀두가 소름 끼칠 정도로 깊은 안쪽에 콱 들이박혀 깔짝대듯 움직거렸다. 저릿저릿한 열기가 신경을 버틸 수 없을 만큼 녹였다.

“으, 몰… 아으흣…!”

습기로 추근추근하게 젖어 든 질 안을 슬쩍 휘젓자 팽팽하게 벌어진 사이로 투명한 음액이 질금질금 터져 나왔다. 차무겸의 양손이 말랑말랑하게 젖어 든 소음순을 양쪽으로 꾹 벌렸다. 개기름처럼 번들대는 눈동자가 구멍 안쪽, 옴찔대며 성기를 버겁게 삼키고 있을 내부 살을 음험하게 응시했다.

“왜 이렇게 물을 질질 싸? 오줌 마려워?”

“으, 싫, 응…!”

차무겸은 상스러운 말을 천연덕스럽게 지껄이며 배꼽 부근 어딘가를 지그시 눌렀다. 핫, 거부감을 표하듯 몸이 무의식적으로 뒤틀렸다. 배가 압박당하자 구불구불한 길을 뚫어 들어온 뜨겁고 육중한 살덩이의 존재감이 도드라진 까닭이었다. 그의 손은 꼭 비좁고 내밀한 그곳을 알아보는 것처럼 배 여기저기를 만지다가 천천히 멈춰둔 방아질을 재개했다.

그의 손바닥에 복부가 눌리는 상태로 당하는 추삽질은 아뜩하게 전율을 부추기던 행위를 조금 더 날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건 적어도 내게만 해당하는 자극은 아니었다.

“하, 씨발… 손바닥 위로 느껴지는 거 같은데….”

“흑, 응, 아아…!”

“이거 내 좆이지?”

“읏, 아, 제발, 제… 으흐읏…!”

“내가 네 보지에 씹질 하고 있는 거 느껴져?”

부러 피스톤질을 느리게 재개하여 제가 짐작하는 게 맞는지를 확인하는 태도가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내부의 살점이 들러붙어 딸려 나갈 듯 찬찬히 후퇴했다가 다시금 자궁구를 들이박을 만큼 세게 밀어 넣을 때마다 아랫배 어딘가가 요동을 쳤다. 뱃전을 압박하는 차무겸의 손을 떨쳐내려고 해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보다도 이제껏 텅 빈 것처럼 상실감만 느껴지던 배 속에 무언가가 때려 박히는 게 선연히 느껴지자 견딜 수 없는 위화감이 몰아쳤다. 소름 끼치고 불편했다. 배 속에서 자리를 트고 알을 까던 벌레들의 소굴이 파손돼 속을 징그럽게 헤집는 것만 같았다.

차무겸의 가슴팍을 있는 힘껏 밀쳤다.

“하지, 아, 하지 마…! 우, 흑…!”

밀리지 않아도 죽을 둥 살 둥 발버둥을 쳤다. 그는 행위를 이어나가는 데에 무리가 없던 조금 전과는 판이해진 몸부림을 알아챈 듯 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옭아맸다. 상실의 자각이 밀려올 때마다 발작은 동반되는 현상이었다.

“싫, 시, 싫어… 아, 놔! 놔줘…!”

차무겸이 지옥문 앞까지 당도한 이처럼 시트를 박박 긁는 내 팔을 거머쥔 채로 하반신을 격렬하게 처박았다. 철퍽, 철퍽! 그의 단단한 장골과 부딪친 허연 볼깃살이 요란하게 출렁대는 게 느껴졌다. 사타구니가 맞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걸쭉하게 뭉친 거품이 후두둑 떨어져 시트를 더럽혔다. 강진모의 집에서 그에게 억지로 당했던 첫 번의 기억이 엉망으로 되살아났다.

“싫어, 싫, 아! 아악, 싫어!”

의식이 댕강 갈려 나가며, 그 자리에는 해충 같은 거부감만이 꿈틀거렸다. 질구를 무작스럽게 벌리며 파고드는 거대한 성기의 기세가 배 속을 짜릿한 쾌락과 그에 버금가는 불쾌로 한가득 채웠다. 속이 울렁거리고 폐부가 아플 정도로 조여들었다. 아무렇게나 짓씹다가 찢어진 입술을 타고 빨간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그는 이제 신음이 아닌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발악하는 내 허리를 잡아 누르며 물을 찍찍 싸대는 안에 잘게 박아넣었다.

“으, 싫, 윽, 흑, 아, 아아…!”

숨결의 박자가 짧아지고 호흡이 더욱 간결한 토막으로 끊겼다. 침실에 떠돌아다니는 여자의 날카로운 교성은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다가왔다. 악몽은 전조가 없고 패닉은 익숙해질 일이 없었다. 잠시나마 잊혀진 소리가 다시 고막을 괴롭혀왔다. 이 어둑한 실타래는 출구 없는 미로였다. 아무리 헤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또다. 또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장막 같은 두려움이 마음을 거뭇거뭇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적신호가 속에서 깜박거리기를 반복했다. 완전히 정신을 놓기 직전인 사람처럼 서럽게 오열하며 침대 위를 굴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몸이 번쩍 들렸다.

“김사은.”

땀에 젖은 차무겸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흐리멍덩하게 풀린 내 것과 달리 선명한, 그를 넘어서서 명료하게까지 보이는 눈동자가 나를 꼼짝 못 하게 사로잡았다. 물밑으로 처박힌 정신을 억지로라도 끌어 올려 현실에 메다꽂는 그 인정머리 없는 시선.

“사은아.”

“읏, 흐으… 아아….”

숨이 어설프게 끊어졌다. 허릿짓은 멎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비릿하게 적신 피를 닦아준 그가 계속해서 성기를 힘 있게 꽂아 올렸다. 어찌나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지 내부가 그의 성기 모양으로 변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덜컥 들 정도였다. 유두가 퉁퉁 부어터진 젖가슴이 아플 정도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흐윽…!”

그의 것이 뿌리 끝까지 파고들어 자궁구 부근에 살살 비벼질 때마다 소름과 유사한 희열이 무수한 단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간지러워서 긁고 싶어지고, 뜨거워서 어떻게든 식히고 싶어지는 어찔한 쾌락.

숨결에서는 여전히 피 맛이 났다. 그는 짠 내 나는 물기와 격한 호흡에 의한 상기로 범벅됐을 게 뻔한 내 뺨을 양손으로 감싸 쓸어내렸다. 어르듯이 적당히 눈물을 닦아준 그는 나에게서 조금도 눈을 돌리지 않은 채 고지를 향해 성큼성큼 달려나갔다.

마지막에 가서는 자궁부를 찍을 정도로 퍽! 하고 격렬하게 쳐올리며, 손가락으로 붉게 충혈된 클리토리스를 빠르게 비벼주었다. 시트를 짚고 선 무릎이 바르르 떨릴 정도로 아찔한 감각에 하지 말라 고개를 저어도 그는 음핵을 짓궂게 희롱하며 나를 절정의 벼락으로 내몰았다.

잡다한 온갖 것이 꼬이고 꼬여 엉망으로 낙서된 머릿속이 함몰되듯 깨부숴지고, 짓이겨질 대로 짓이겨진 속내 안짝으로 쾌감의 물살이 격렬하게 차올랐다. 예민하게 달아오른 신경은 형체를 잡을 수 없던 두려움이나 공포감 따위를 체감할 틈이 없었다.

“으흐으… 아…!”

정신없이 맞부딪치던 사타구니가 하나처럼 맞물린 채 멈추었다. 다가올 것이라 익히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등줄기가 뻣뻣하게 굳고 땀이 송골송골 맺힌 턱이 훅 치들렸다.

민감하게 곤두서 있던 신경 하나하나를 뒤틀고 쥐어짜는 독한 쾌락이 뒷골을 깨뜨릴 것처럼 들쑤셨다. 정도 이상으로 높아진 안압 때문인지 눈앞이 흐릿흐릿했다. 희부옇게 휘발된 머릿속은 바라던 대로 모든 소음을 꺼트린 후였다. 그 어떤 감각도 제대로 작용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를 못살게 굴던 환청 역시 모두 소실됐다. 그렇게 되니 차무겸이라도 잡은 게 다행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멋대로 솟아올랐다.

“하아, 흑….”

사나운 마찰과 상스러운 자극으로 펄펄 끓는 것처럼 달아오른 질 안은 정액을 받아마시고 싶은 것처럼 성기를 쭉쭉 빨아댔다. 내 상반신에 얼굴을 묻은 차무겸은 가슴골을 나른하게 핥으며 파정에 임했다. 피부를 장악한 오한은 가라앉을 듯 가라앉지 않았다.

허리 힘이 탁 풀리며 상체가 무너졌다. 차무겸은 뒤로 넘어갈 것처럼 휘청거리는 나를 받치듯이 껴안아 제 쪽으로 당겼다. 땀으로 젖은 사내의 가슴팍은 정도 이상의 열기로 인해 뜨뜻했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 쥐어 완전히 품에 기대게 만들었다.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차무겸이 손을 뻗었다. 눈을 몇 번 가물거리고 나니 그의 손에는 길쭉한 담배가 들려 있었다. 꽁지를 입에 물고 간결한 손짓으로 불을 붙인 그가 연기로 감싸인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과민이 가라앉은 몸은 금세 나른한 감각의 파도에 뒤덮였다. 고작 한 번으로 진이 쭉 빠졌지만 그 덕에 뇌리는 새하얀 백지가 되었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차무겸은 나를 품에 안은 채로 유유자적 줄담배를 태웠다.

착잡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야경에 젖은 낯이 다소 무심했다. 담배를 뻑뻑 피우는 와중에도 내 머리통을 쓰다듬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달빛을 머금어 창백한 윤기를 흘려보내는 머리칼이 그의 길고 곧은 손가락 사이를 칭칭 감았다.

밤의 경치를 고스란히 담는 통창으로 나의 눈길 역시 미끄러졌다. 고개를 슬금 드는 기척 때문인지 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담배의 몸대를 감싼 손가락이 찬찬히 움직였다. 불씨를 품은 하얀 막대기가 내 입술 앞으로 다가왔다. 살짝만 벌려 끄트머리를 물었다가 놓았다. 입 안에 톡 쏘는 듯 매캐한 향이 담뿍 퍼졌다.

쓰디쓴 숨을 반은 뱉고 반은 삼키는 사이, 차무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병원 가볼래?”

불 하나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침실, 가시지 않은 정사의 열기와 은은하게 풍기는 밤꽃내, 그 사이에 뱀처럼 달라붙은 두 인영. 그는 헝클어진 내 머리칼을 계속해서 쓸어 넘기며 단지 그렇게 물었다.

뺨을 기댄 그의 가슴팍에서 박자감 있고 차분한 박동이 느껴졌다. 지난날 터질 듯이 빠르게 울리던 때를 비웃는 것처럼 잔잔하고 얌전했다. 그걸 느끼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얘는 다시 정상적인 척하는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난 왜 그게 안 되지. 나는 왜 매일….

무언가를 털어내고 싶은 것처럼 눈을 연달아 깜박거리다가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아들였다. 목 끝에서 기어 올라오던 신물이 쓴맛에 잠겨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왜?”

침묵을 기어이 가르는 우리의 대화는 그 증거처럼 불편했다.

“내가 이상해 보여?”

여운에 잠긴 채로도 목소리는 뾰족한 심지를 꽂아놓은 것처럼 까끌한 면이 있었다.

“아니.”

“거짓말….”

처음으로 그의 대답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뚜렷하게 구분이 갔다. 그러나 그건 누구보다도 내가 부정하고 싶은 쪽인지라 이번엔 거짓임에도 기꺼이 모른 체하고 싶었다. 언제나 나를 가지고 놀기에 여념이 없던 요사스러운 혓바닥이지만 오늘만큼은 그 요사스러움이 나의 속내를 가릴 방편이 되어주길 바랐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둔 손끝이 발악의 여진처럼 둥글게 말려들었다. 그런 나의 마음이 위축되는 걸 알아챈 양 차무겸이 간결하게 속삭였다.

“아니라니까.”

차무겸은 나에게 물려준 담배를 다시 가져가 한 입 깊게 물었다가 뱉으며, 짙은 연기와 함께 단언했다.

“싫으면 거부해. 강요할 생각 없어.”

한 번 아닌 일은 죽어도 아닌 성격. 빈말을 하느니 독을 품고 상대방을 짓이겨버리는 성격. 그만큼이나 단호하고 더 나아가 잔혹한 그를 잘 알기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 어쭙잖게 안심을 시킨답시고 없는 말을 지어내는 성정은 절대로 아니니까.

적어도 이번 일에 있어서는 내 의사를 존중해주는 태도가, 다 으깨져 조각으로밖에 남지 않은 자존심 정도는 챙기게 해주었다. 맞아, 아니야. 나는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지 않아…. 세뇌에 가까운 문장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곱씹었다.

애초에 온전한 나를 바란 적이 없다는 차무겸의 태도는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울적함과 고작 숨을 한 번 내쉬는 것 정도는 되는 안도감을 동시에 맘속에 심었다.

그의 품에서 맞이하는 안정은 그토록 징그럽고 기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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