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20화 (20/24)

20장.

한우현은 확실히 성숙한 면이 있었다.

노골적인 실망감과 허탈함을 드러내는 건 잠시였고, 이후로는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써주었다. 그의 도움하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엄마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간결한 주소가 적힌 포스트잇, 가장 첫 단어를 보자마자 삼킬 수 없는 실소가 터졌다.

강원도….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아빠를 두고 감쪽같이 사라진 엄마는 우리의 고향과 같은 팔도 땅을 밟고 있었다. 등잔 밑에 어둡다는 말을 이런 때에 쓰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가 계신지 몰랐어.”

빤히 보면 답이라도 나올 거라 믿는 것처럼 건네진 포스트잇을 가만 응시하던 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모를 만도 해. 나도 잊고 산 지 오래거든.”

“…….”

“이렇게 찾아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짧게 짓는 웃음에 씁쓰름이 한 꺼풀 묻어났다. 한우현은 내 가정사가 궁금한 듯 보였으나 혹 괜한 질문으로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까 봐 염려가 되었는지 애먼 무릎만 만지작거렸다. 그걸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무겁던 입이 제멋대로 벌어졌다.

“…우리 엄마 말이야. 대학생 때 나를 가졌대.”

꼼지락대던 손끝이 움찔, 말렸다.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어렸겠지….”

이제는 희끄무레하게 흐려진 기억.

한 번도 속 시원하게 듣지 못했지만 유년 시절의 눈치로나마 살펴본 바, 이것저것 조잡하게 끼워 맞춘 퍼즐의 조각이 여럿 있었다. 엄마가 아주 이른 나이에 나를 가진 것. 그리고 그건 계획이 아닌 실수에 가까웠다는 것.

그 외에도….

아빠와 엄마의 나이 차이가 꽤 난다는 것. 예상치 못하게 생긴 나라는 존재가 두 사람의 환경에 거센 파동을 그려냈다는 것.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아빠의 회사로 찾아가 난동을 부린 것. 그로 인하여 아빠가 회사 생활을 하기 힘들 만큼 추잡한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렸다는 것. 하여 결국은 축복이 아닌 질타 속에서 두 사람이 아빠의 고향인 암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는 것.

뭉친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알코올 중독자 아빠에게 맞아 푸르딩딩하게 불어터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사은이 너만….’

당시 엄마는 나를 붙잡고 울며 대상을 헤아릴 수 없는 원망의 집약체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쏟아냈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대상은 저를 구타하는 남편과 그 남편과의 연을 이토록 질기게 이어버린 나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음울한 회상을 적당히 접어두고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시간이 다다랐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였다. 한우현이 잠시 전화를 하러 간 사이 가방을 열어 미리 개켜둔 옷을 차곡차곡 밀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지퍼를 닫으려는데 무언가가 불쑥 디밀어졌다. 어느새 용건을 끝내고 돌아온 한우현이 내민 봉투였다.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그게 내가 부탁하여 빌린 돈이라는 걸 깨닫고서 받아 드는데, 그가 덧붙였다.

“피하기 급급할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오히려 내가 차무겸의 뒤를 캐보니 이상한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더라. 뭣보다 걔한테 딸린 운전기사 중 한 사람의 블랙박스에 이 근처 위치가 찍혀 있었다고 하더라고. 내가 멍청했어. 미행 붙은 거 알고 있었고 충분히 잘 따돌린 줄 알았는데, 애초에 붙여둔 놈이 한둘이 아니었던 건지….”

역시나 짐작대로였다.

“하여간… 진짜 또라이 같은 새끼.”

한우현은 답답한 숨을 터뜨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이내 머리칼을 쓱 쓸어 넘긴 그가 이전보다 조금 명료해진 눈길을 선보이며 말했다.

“택시가 조금 있다가 한 대, 그리고 한 시간 뒤에 한 대가 더 올 거야. 너는 한 시간 뒤에 올 택시를 타고 가면 돼. 그건 오피스텔 뒤편으로 불렀으니까 거기서 타면 되고…. 네가 부탁한 대로 혹시라도 차무겸 측 사람이 이 근처에 잠복 중일지 모르니 송 실장이 너처럼 행세하고 나가서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

안진권이 내게 몹쓸 짓을 하려는 찰나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등장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근방에 사람을 심어두고 시시각각 살펴보는 중이라고 판단하는 게 옳았다. 이번이라고 크게 다를까 싶어서 이와 같은 부탁을 건넨 참이었다. 이번 일로 차무겸이 나를 놓치게 된다면, 차후 날 잡겠다고 한우현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애먼 착각을 토대로 외려 책을 잡을 수도 있었다. 차라리 그편이 한우현에게는 나으리라.

“고마워. 돈은 꼭 갚을게.”

한우현의 이목구비가 엷게 일그러졌다. 그는 머리끝까지 차는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었는지 짧은 헛웃음을 내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돈은 됐으니까 혹시….”

그는 목이 메는 것처럼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혹시 연락할 일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해도 돼.”

온점을 콕 찍는 말미에 가득 엉긴 미련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신기했다.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그가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사랑의 정의를 새롭게 배우는 느낌이었다. 내게 그것은 아주 지독한 양면을 선사하는 감정이었다. 차무겸이 보이는, 사랑으로 둔갑시킨 집착처럼 검은색에 가까운 붉은색. 그리고 한우현에게서 배양되는, 내가 불편할까 봐 늘 노심초사하며 내 행동 하나하나에 전전긍긍해하는 아주 연한 붉은색.

무엇이 그 감정에 제대로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한우현은 내가 지금껏 보아오고, 알아 온 남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돌아오기를 바라며 내어주는 이해타산적인 치들과 달리 한우현은 마냥 내게 베풀기만 했다. 그도 아마 내 단호한 태도로, 제 희망을 이룰 수 없음을 익히 알고 있을 테다.

그럼에도 왜….

하지만 그것마저도 모르는 척하는 게 마땅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면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하니까. 한우현이 내게 이토록 잘해준다고 한들, 그것에 화답하여 내어줄 게 없는 나로서는 모든 걸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배려란 그랬다.

“가볼게.”

언제 다시 마주치게 될지 모를 한우현의 인사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 *

한우현이 말한 대로 약 한 시간 뒤에 오피스텔을 나섰다.

스스로를 고립시킨 동안 몸을 감싸는 계절은 그새 또 부쩍 추워졌다. 훅 부는 바람이 살갗을 엘 듯 강렬했다. 그가 건네준 돈봉투에서 지폐 몇 장을 빼낸 뒤, 입구를 잘 봉해 가방에 넣었다.

오피스텔 뒤편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디디는 길목에 추위로 비쩍 말라 몸을 떠는 나무가 보였다. 그걸 보다 보니 과거의 한 파편으로 자리 잡은 동백꽃이 떠올랐다.

왜 그게 그렇게나 서글프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동백꽃이 필 무렵에 간직하고 있던 기억이 다 아름답고 고귀하지만은 않은데, 이상하게도 한 줌으로나마 지니고 있던 모든 게 오염된 것만 같았다. 그것을 다시 뒤적거려 꺼내볼 용기조차 들지 않을 만큼. 서글픔이 물처럼 고여 든 아랫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밋밋한 아랫배를 의미 없이 쓸다가 잠시 멈춰둔 발을 움직였다. 바람은 여전히 차갑게 나를 할퀴었다.

예약한 택시에 올라타 가까이 위치한 대형 쇼핑몰을 먼저 입에 올렸다.

러시아워 전이라서인지 택시는 막힘없이 도착했다. 값을 치른 후 바로 쇼핑몰로 들어섰다. 화장실에 들러 칸막이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모자를 벗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갈퀴로 대충 쓱쓱 빗어 내린 후, 한우현의 집에서 챙겨 온 가위를 꺼내며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싹둑.

등을 덮을 만큼 길어진 모발을 어깨에 닿지 않게끔 짧게 잘랐다. 거울을 보지 않고 있는 데다가 영 솜씨가 없다 보니 층을 이루어야 할 끝부분이 들쑥날쑥, 삐죽빼죽했다. 그러나 나는 주저 없이 남은 부분을 모두 잘라냈다. 목 뒤가 휑하게 느껴질 때가 되어서야 가위를 든 손을 내렸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보다가 레버를 눌렀다.

몸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 들어선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나가 다시 택시를 잡아탔다. 근처,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만 골라 이 짓을 세 번 더 하자니 불현듯 실소가 터졌다.

‘정말….’

오만 애는 다 쓰고 있구나.

짙게 일렁이는 자괴감과 더불어 가연이의 집으로 향하기 전과 다를 바가 없는 꼬락서니에 입이 다 써졌다. 몸과 마음 모두가 더없이 급한데 그 자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내 배에 깃들어버렸을지 모를 존재만 떠올리면 모든 생각이 부옇게 흐려지고 그저 나의 자취를 끊는 데에 집중하게 됐다.

역마살이라도 낀 사람처럼 분주하게 발을 놀려 CCTV로 추적할 수 있는 동선을 요령껏 끊어낸 뒤에 택시에 올라탔다.

“양양으로 가주세요.”

그러고 나서야 최후의 목적지를 입에 올릴 수 있었다.

양양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숙소를 구할까 하다가 오늘은 그녀를 먼저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근처에 모텔이 적잖이 보이니 혹 변수가 생긴다면 돌아와 하루 묵으면 될 듯하다고 안일한 계획만 세워두었다.

한우현이 이전에 마련해준 핸드폰을 꺼내 주소를 입력했다. 행선지는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됐다. 나는 핸드폰과 도로변을 확인하며 걸음을 부지런히 내디뎠다. 시가 아닌 군임을 증명하듯 서울에서처럼 크고 높은 건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있더라도 겨우 4, 5층 정도 되는 건조물이 가장 높은 편이었다.

깜빡이는 좌표를 따라 시멘트가 벗겨진 담벼락 사이 골목길로 진입했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길에 절로 미심쩍음이 피어올랐다. 아무리 봐도 가정집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닌데…. 그럼에도 핸드폰 속 위치는 내가 내디디는 구간을 따라 점차 가까워짐을 알리고 있었다.

‘번호를 이용해서 위치를 추적한 거라 아마 최근에 가장 많이 통화를 한 장소가 찍힐 거야.’

한우현이 포스트잇을 건네주며 했던 말을 곱씹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곧 도착할 장소에서 엄마가 자주 전화를 사용했다는 거니까.

마침 나타난 모퉁이를 도는 순간이었다.

“아…!”

별안간 반대편에서 튀어나온 누군가와 몸이 부딪쳤다. 바로 발을 뒤로 물려 중심을 잡은 덕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아연해진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썅, 뭐야.”

진한 스모키 화장, 피처럼 붉게 칠한 입술 사이에 담배를 문 여자가 나를 위아래로 매섭게 흘겨보고는 쓱 지나갔다.

여자가 눈앞에서 사라졌음에도 콧속을 맴도는 향수 냄새 때문인지 아직도 내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 건 마주친 순간 목격한, 외투 안으로 걸친 옷차림 때문이었다. 가을로 접어든 계절 속 날씨는 상당히 쌀쌀해진 상태였다. 그런 싸늘함 속에서 여자는 가슴골로 모자라 유륜이 드러날 만큼 아슬아슬한 차림이었고 외투 아래로 하얗고 마른 허벅지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벙쪄 있기를 잠시, 시야각을 서서히 물들이는 요란한 색채감에 움찔했다.

더듬더듬, 고개가 다시 정면을 향해 돌아갔다.

“…….”

내가 조금 전 돈 코너를 기준으로 골목길이 확 좁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 좁아진 사이는 마치 외딴 세상에 떨어진 것처럼 홍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이 진득한 핏빛으로 떡칠된 양 온통 붉었다. 나의 눈동자마저도 그렇게 쨍한 혈색으로 물들었을 게 자명할 만큼.

눈알이 당혹스레 굴러갔다. 그러나 보이는 간판이라고는 읽을 수 없는 글씨가 화려하게 새겨진 네온사인과 허름하고 촌스러운 이름의 여관뿐. 그 사이를 오가는 남자들과, 조금 전 나와 부딪친 여자처럼 아슬아슬하게 노출을 한….

그러니까, 현란한 유흥업소와 허름한 여관이 다닥다닥 밀집되어 있는 여긴 아무리 봐도 집창촌이었다.

“뭐, 뭐야….”

당혹스러운 마음에 얼른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출발 전 찍은 좌표는 분명히 여기가 맞다고 깜빡거리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잘못된 게 분명했다. 그 생각이 지금껏 주저하던 마음을 가르고 불쑥 용기를 드러내게 했다. 액정 위에서 맴돌기만 할 뿐, 전화를 걸 용기가 없어 좀처럼 건들지 못하던 번호를 꾹 눌렀다.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는 동시에, 한쪽 가게에서 빠져나온 여자 서넛이 내가 가로막고 서 있는 골목길 쪽으로 다가왔다. 독한 향이 다시금 나를 맹렬하게 덮쳐왔다. 덫을 앞에 둔 생쥐처럼 몸을 움츠리며 벽으로 달라붙었다.

무심코 그들에게 시선을 쓱 던지는데, 나도 모르게 입이 헤벌어졌다. 동공을 하릴없이 요동치게 하는 낯익은 구석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뚜루루.

통화를 거는 연결음이 고막을 우레처럼 뚫었다. 본래의 이목구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짙은 화장, 침실에서 입을 법한 슬립처럼 야시시한 옷자락에, 솜이 죽고 여기저기 보풀이 일어난 외투를 걸친 그네들은 함께 모여 가고 있지만 시체가 나열된 것처럼 다소 삭막한 분위기를 내풍겼다.

나는 개중 오른쪽에 선 여자의 뒷모습을 가만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서영 씨.”

뾰족한 힐이 바닥을 찍어누르는 소리가 멈췄다. 저 날카로운 구두 굽에 내가 짓밟히는 것만 같았다. 아니야. 절대 돌아보면 안 돼. 그저, 잠시 멈춰 선 거라고 해줘. 날 돌아보지 말고 그냥 이대로, 다시….

“누구?”

“…….”

“누군데 그 이름을….”

아직 나를 알아보지 못한 두 눈이 무력하면서도 공허했다. 그녀를 똑바로 마주하는 눈두덩이가 시큰하게 달아올랐다.

뚜루루.

연결되지 않은 통화음이 여전히 귀를 괴롭혔으나 이제는 무의미했다. 또각. 뒤를 돌아본 그녀가 내게로 다가왔다. 다가오다가, 머릿속 깊숙이 집어넣은 채 꺼둔 등 하나가 탁 켜진 것처럼 우뚝 멈춰 섰다. 남루한 외투에 감싸인 여리고 마른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뚜루루. 뚜루루. 뚜루….

손이 아래로 추락함에 따라 귓가를 아우르던 소음 역시 점점이 멀어져갔다. 시뻘건 불빛으로 활활 탄 동공이 이윽고 잿가루처럼 거뭇하게 가라앉았다.

첨벙, 마음에 묵직하고 감사나운 파란이 일었다.

“…엄마.”

이제는 나의 기구함이 과연 어디까지 예견된 것인지 궁금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 * *

상상에는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이란 부자와 빈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산물이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엄마가 떠난 뒤로 그녀만 떠올리면 수많은 상상이 머릿속에 뭉게뭉게 퍼지고는 했다. 처음에는 안개에 둘러싸인 것처럼 막연한 수준에 그쳤지만 머리가 커지며 상상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모했다.

나의 상상 속에서 엄마는 어땠더라?

적어도 구질구질한 집구석을 탈피했으니 사람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그럭저럭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경지에서 저만의 삶을 새로이 꾸렸으리라고 여겼다. 새벽마다 내게 걸려오던 전화도 그래서인 줄 알았다. 제 자신을 충분히 보살피는 게 가능한 환경 속에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혐오하는 남편 아래에 놔두고 온 하나뿐인 딸이 걱정이 돼 자꾸만 연락을 하는 거라고….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은 몰라서….”

그리고 그 상상이란, 나 역시도 얼추 바라던 바였다.

이왕 매정하게 떠났으면 암영 마을처럼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탁 트여 여러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살기를 원했다. 암영이라는 좁은 우물에서 빠져나간 것이 결코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이기를 바랐다.

그 희망찬 가정 속에는 많은 갈림길이 존재했다.

가장 이상적인 유형으로는 재혼이 있었다. 아빠처럼 술만 처먹으면 손찌검을 해대는 쓸모없는 남편은 버려두고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화목한 가정을 한번 꾸려봤으면 했다.

“그래도 지내는 데에 큰 불편함은 없을 거야.”

그리고 현재.

나는 내 상상은커녕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재의 엄마를 멀거니 응시했다. 화장을 지우고 옷을 급하게 갈아입었으나, 단번에 지워낼 수 없는 향수내는 여전히 독하게 콧등을 스쳤다.

그곳, 세상이 온통 핏빛으로 칠해져 있던 사창가에서의 재회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했다.

엄마와 함께 있던 무리는 내가 뱉은 호칭에 대번 토끼눈이 되어 다가왔고, 한차례의 소란 후 나는 엄마에게 붙잡혀 그곳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 뒤로 엄마는 윤 실장이라는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 날카롭게 묻고 답하더니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척 봐도 지은 지 오래된 3층짜리 연립 주택이었다. 내부는 암영에서 살던 집을 떠올리게 할 만큼 작고 소소했다. 그래도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으리란 말처럼 어지간한 것들은 갖추어진 상태였다.

엄마는 냉장고에 있던 오렌지 주스를 컵에 따라 내게 내밀었다.

“어, 그러니까… 잘 지냈니?”

거리를 벌리고 마주 섰을 때부터 체감한 시간의 공백이 그 한마디에 실체를 가지고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나는 유리잔에 입술을 댄 채로 주스를 홀짝였다. 엄마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칼을 넘겼다. 화장을 지우자 온전히 드러난 이목구비에는 내가 알던 앳된 면모가 구석구석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조금 전의 충격이 희석화되지는 않았다.

“그냥….”

“…….”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해.”

“아냐, 아니야.”

내 사과에 엄마는 급히 손을 가로저었다. 곧 그 손이 뚝 떨궈졌을 때 엄마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 번호 알고 있었구나.”

“…새벽마다 전화를 그렇게 했는데 어떻게 몰라.”

내가 쓱 퉁을 놓자 엄마는 우는 듯 웃는 듯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탄식처럼 읊조렸다.

“한동안 전화를 안 받길래 걱정했어.”

그렇지 않아도 암영에서 떠나 서울로 향하며 그 부분에 관해 자주 생각했었다. 새벽만 되면 울리던 엄마의 그리움. 아, 그러고 보니 왜 매번 새벽에만 전화를 하나 했더니…. 나는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런’ 일을 해서일 테지. 그리고 그건 정말로 엄마와 재회했음을 실감 나게 하는 장치가 되었다. 묘하게 애잔하면서도 깔깔한 마음을 숨기며 담담한 척 뇌까렸다.

“암영 떠난 지가 언젠데…. 서울에 있었어. 엄마가 그랬잖아.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라고. 그래도… 서울에서 괜찮은 대학교 다녔어.”

엄마는 내 소식이 뜻밖이었는지 놀란 낯이 되었다. 그게 정말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인지라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었다. 끝맺음을 제대로 짓지 못했을 뿐, 괜찮은 학교를 다닌 건 사실이니까.

나의 말을 끝으로 좁은 실내의 분위기가 부자연스럽게 굳었다. 우리의 대화는 누가 토막을 내는 것처럼 어색하게 끊기기를 반복했다. 보이지 않는 세월의 공백은 이런 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반쯤 비운 유리잔을 바닥에 내려놓고 이마를 매만졌다.

혀끝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택시를 타고 양양으로 달려오는 동안 무수히도 많은 상념이 나를 에워쌌었다. 갑자기 찾아온 만큼 그 행동을 뒷받침할 설명과 설득이 필요했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있는 엄마를 보니, 내가 두 눈으로 목도한 엄마의 환경을 되새기니 입을 떼는 법을 잊은 것처럼 굴게 됐다.

나는 엄마를 피해 시선을 미끄러뜨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여기, 누구 집이야?”

“여기는….”

엄마는 어쩐지 말하기를 꺼려 했다.

“엄마 아는 사람 집이야. 이 방은 어차피 쓰지 않는 방이니까 한동안은 편히 지내도 돼.”

“…엄마도 여기서 지내?”

“아니. 엄마는 따로 지내는 곳이 있어.”

거기가 어딘데? 혹시 아까 그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던 저급함의 소굴?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의문이 뱀처럼 혀끝을 꽉 옭아맸다. 이 집의 주인이라는 아는 사람은 또 누구고. 엄마의 동료? 동료라면, 엄마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일 테고….

덩이진 무언가가 기도를 콱 틀어막는 기분. 어쩐지 피로해졌다. 생각해보니 꽤 오랫동안 집에만 콕 박혀 지내던 내가 이토록 활동적으로 움직인 건 간만인 일이었다.

“나 좀… 자고 싶은데.”

함께한 세월보다 어느새 함께하지 못한 세월이 더 길어졌기에, 피가 섞인 가족보다도 남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에게 부려보는 어색한 투정이었다. 마냥 거짓말은 아니었다. 피로감이 한번 고개를 드니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축축 늘어졌다. 엄마는 검은색 바탕에 흰 양각이 새겨진 장롱에서 이불과 베개를 꺼내 주었다.

“내일 다시 올 테니까….”

그때 다시 얘기하잔 뜻 같았다.

내부를 밝히는 조잡한 형광등 불이 탁 꺼졌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너머로 엄마의 조심스러운 기척이 느껴졌다. 현관까지는 주저 없이 향한 엄마는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집을 나섰다.

좁다란 집에 홀로 남아 벽을 지그시 응시하던 나는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끝까지 덮었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 * *

집은 협소할 뿐, 대체로 단정하고 깔끔했다. 어둠에 공포를 느낄 새도 없이 기절하듯 잠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내부를 제대로 둘러볼 수 있었다. 어제는 거의 넋이 빠져서 도착하자마자 벽에 주저앉아 엄마만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조잡한 자석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냉장고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텅텅 비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갖가지 음식들로 채워져 있었다. 더불어 말라붙은 기름때가 덕지덕지 낀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는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콩나물국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자는 사이 엄마가 한 번 더 다녀갔음을 알아챘다.

수저를 하나 꺼내 국을 떠먹어 보고서 더욱이 확신했다. 간이 잘 맞지 않는 밍밍한 맛. 엄마는 예전부터 요리에 소질이 없었다. 그보다 한 입 떠먹자마자 비리게 색칠되는 속에 혀끝을 꾹 깨물었다. 놀람과 피로에 미뤄둔, 가장 중요한 일이 퍼뜩 떠올랐다.

수저를 대강 내려두고서 어제 챙겨 온 가방을 뒤적거렸다. 밑바닥에 쑤셔놓은 검은 봉지를 꺼내 안에 담긴 것을 그러쥐고서 화장실로 직행했다. 이미 전적이 있어 행하는 데에 조금도 헤매는 법이 없는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을 예쁘지 않은 모양으로 움푹 팠다.

“…….”

침묵이 욕실을 켜켜이 에워쌌다.

얼마간 기다리고 있자니, 두 눈동자에 선명한 빗금이 그어졌다. 속이 움푹 파여 그대로 수몰되는 듯한 아찔함이 눈앞을 덮쳐왔다. 손에 쥐고 있던 임신 테스트기를 변기 옆 쓰레기통에 처박듯이 내던졌다. 딱딱한 막대기가 쓰레기통 벽면에 부딪쳐 텅텅 울리는 소리가 단전을 붙잡고 탈탈 뒤흔드는 소음 같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구역질은 예고도 없이 엄습했다. 변기를 부여잡고 그 안에 머리를 쑤셔 박을 듯 속을 게워내면서도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눈동자 위에 확실히 그어진 두 개의 줄은 지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입을 헹구고 곧장 화장실을 나온 내가 한 일은 핸드폰을 붙잡는 것이었다. 급히 인터넷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산부인과를 검색했다. 가까운 산부인과들을 훑다가 검색창을 지우고 다시 낙태와 중절을 번갈아 가며 검색하다가 끝내는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기의 생명, 불법, 각자의 인권. 눈가를 훑고 지나간 많은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맥없이 올려다보는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서 두 손으로 눈가를 꾹 가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기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증이 신경을 갉아 먹을 때는 생각이 넘쳐서 곤혹스럽더니. 막상 현실이 되니까 내 세상과 동떨어진 일처럼 망연하기만 했다. 어쩌면 두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여전히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남은 걸지도.

빙글, 옆으로 굼뜨게 돌아누워 벽을 쳐다보았다.

암영에서 처박혀 지내던 집과 비슷한 크기의 방에서 나는 과거를 곱씹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모든 게 허무맹랑하고 덧없이만 느껴졌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 엄마가 이곳으로 찾아왔을 때였다.

“사은아.”

다정한 어조가 물속 깊숙이 처박힌 것처럼 멍멍한 정신을 두드렸다. 암영에서 유일하게 내 이름의 의미를 갖게 해주던 그 목소리가 다 큰 지금에서 들리는 게 어색하고 낯설었다.

“지금까지 잤어? 밥은.”

엄마는 어젯밤 잠이 든 내가 여태껏 늘어져 있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꾸물꾸물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엄마는 두어 걸음이면 닿는 조리대 앞에서 냄비 뚜껑을 젖혀 안을 확인했다. 그 뒷모습에 대고 답했다.

“별로 생각이 없어서 안 먹었어.”

“그래도 먹어야지. 어제 저녁도 제대로 못 먹은 거 같던데.”

부족한 솜씨임에도 엄마는 내 입에 무어라도 넣어주고 싶었는지 조리대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8살의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내 앞에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커서, 저 뒤에 숨으면 세상 풍파를 전부 피해갈 수 있을 것만 같던 순진무구하던 시절.

나는 엄마의 환경을 떠올렸다.

나로서는 모든 게 어렵고 버겁게만 느껴지던 길이, 엄마의 세상에서는 일상과도 같은 일일지 모른다는 마음에 무심결에 입이 열렸다.

“왜 안 물어봐?”

도마를 꺼내던 엄마가 멈칫하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왜 갑자기 엄마를 찾아온 건지 궁금하지 않아?”

그만, 그만.

속에서는 거부했으나 입이 제멋대로 움직여 되는대로 지껄였다.

“나 임신해서 온 거야.”

“…….”

“도망 온 거야, 엄마한테….”

분명 내 입으로 뱉는 실토이건만, 나의 마음이 저 바닥으로 나뒹굴어졌다.

엄마는 불시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두 줄이 그어진 임신 테스트기를 보는 내 얼굴도 저랬을까? 애매한 각도로 세워져 있던 도마가 허름한 조리대 위로 미끄러지며 쾅, 하는 소음을 냈다. 느리게 깜박이는 눈꺼풀에 갖은 생각이 겹겹이 달라붙는 것이 빤히 느껴졌다. 황망하게 뜨인 눈초리가 내 배로 미끄러졌다가 다시 얼굴께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잠시 후, 엄마는 곧장 벽에 기대앉은 채인 내게로 다가왔다. 군데군데 흉터 자국이 있는 얇은 팔이 거센 악력으로 내 어깨를 붙들었다.

“지울 거지?”

이것 말고는 답이 없는 사람처럼 구는 다급함에 순간 숨이 막혔다.

“사은아, 지워야지.”

엄마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몰랐던 건 맞다. 그러나 이토록,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다그치는 모습을 보니 속 어딘가가 못 견디게 뭉그러졌다. 엄마에게 붙잡힌 어깨가 거부감을 표하듯 움츠러들었다.

“너 아직 어리잖아. 아직 이렇게 어린데….”

엄마는 흡사 지난했던 트라우마를 다시금 겪는 이처럼 부릅뜬 눈을 부산스럽게 굴렸다. 이런 반응에 속이 못 견디게 상하는 건, 그게 지금껏 속 시원하게 듣지 못했던 그녀의 내면 한 폭을 제대로 들춘 기분이라서였다.

어릴 적 내게로 폭언처럼 쏟아졌던 말들이 떠올랐다. 너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너만 없었어도. 그때 너를 지우기만 했어도. 아빠에게 폭행을 당하고 팅팅 부은 얼굴로 나를 끌어안은 엄마는 내 귓가에 그리 지독한 감정의 발로를 덩어리째 쏟아냈었다.

그때를 반추하니 찬물을 한가득 삼킨 것처럼 가슴속이 매섭게 식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엄마를 무미건조하게 응시하며 나를 꽉 붙든 손을 풀어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했어?”

“뭐?”

“어린 나이에 날 가져서, 날 지워야겠다고 생각했어?”

전혀 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닌데, 쓰디쓴 웃음이 속에서부터 괴어올랐다.

“그럼 지우지, 왜 낳았어?”

엄마는 지금 내게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배 속에 들었던 것이 저를 그렇게나 불행하게 만든 것처럼, 나 역시도 불행의 우물로 빠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건 결국은 하나의 결론만을 도출했다. 내 존재가, 그녀에게 불행이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판가름이 났다.

상처가 터지는 바람에 진물이 새는 사람처럼 구는 그 태도가, 내 존재성 자체에 대한 비참함을 불러일으켰다.

폭력으로 나를 내리누르던 아빠와, 나의 존재 자체를 무익하다고 판단하는 엄마는 내게 하나의 사형 선고 같았다. 기를 쓰고, 애를 써서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사형 선고. 나를 만든 이들이 나서서 나를 부정하는데 이 세상 누가 나의 존재를 의미 있다고 여길까.

내부를 밝히는 형광등의 빛살은 지나치게 선명한데, 가늘게 뜨인 눈동자로 처박히는 건 어둠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시커멓게 물든 건지, 눈앞이 새까매진 건지 분간하지 못하겠다. 빛이 이렇게 또렷한데도 다시금 밀실에 처박혀버린 듯한 이 황량감과 공허함이….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을, 뭐 그리 번거롭게 돌려서 해….”

나 자신의 감정인데도 내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고장이 난 건 이미 오래였다. 그래서 입으로는 웃으며 눈으로는 물을 흘리는 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야가 물기를 빨아먹은 것처럼 흐릿하게 뭉개졌다.

절대 이런 대화를 바랐던 게 아닌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이 그야말로 난장판이라 어디서부터 정정하고 손을 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 세상을 지탱하는 바닥이 없어지고 있었다. 갈피를 잃은 추락이 끝이 없었다.

“왜, 왜 그런….”

엄마는 봇물 터지듯 눈물을 쏟아내는 나를 당혹스레 바라보았다. 쨍한 빛깔의 매니큐어가 꼼꼼히 발린 손이 나의 뺨을 닦아주었다.

“사은아, 안 그래. 왜 그런 말을 해.”

눈앞이 흐릿흐릿 젖어 엉망이 됐는데도 엄마가 속상해하고 있는 표정이 절로 덧그려졌다.

“엄마는 너 낳은 거 후회한 적 없어.”

짠 내로 젖은 입술 사이를 비집고 실소가 튀어나왔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속으로만 생각한 그 말이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부정을 못 해 애끓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런 나의 부정에 억울함을 표하듯 엄마가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아니, 어쩌면, 나처럼 울고 있는 건가?

“떠난 후에 한 번도, 너를 잊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

“네가 힘들 걸 알아서 그래. 그 길을 아니까….”

멀쩡하던 귓가에 갑자기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고등학교 시절, 애틋한 마음마저도 내게는 곤혹스러운 괴롭힘으로 갈음되었던 엄마의 행동이. 귓가가 멀어버릴 것처럼 띠리리 울어대는 소리에 엄마의 목소리가 혼란스레 덧입혀졌다.

“너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 말 들어. 엄마가 아는 병원 있으니까….”

누가 주먹 쥔 손으로 쾅 내려친 것처럼 짓이겨진 마음이 조금 더 흉하게 뭉그러졌다. 나는 폐부가 쥐어짜지는 듯한 웃음을 터뜨리며 엄마를 밀어냈다.

“병원… 하.”

“…….”

“무슨 그런 일 한다고 자랑이라도 해?”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다. 엄마를 탓하고 싶지도 않았고, 탓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게 나였다. 그럼에도 완전히 어긋나고 비틀린 마음이 이성을 잠재우고 속에 우글우글 끓고 있는 못된 말만 툭툭 내뱉게 했다.

“조금이라도 정상적이면 안 되는 거야?”

“…….”

“내가 왜 도망을 왔겠어. 엄마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온 거였어. 그럼 적어도 내가 의지할 수 있을 만큼은 제대로 살고 있었어야지! 왜, 이렇게 살고 있어. 왜, 왜 이렇게….”

재회 당시, 가슴속으로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처박히는 듯 서느레졌던 심정이 재차 복기됐다. 시체가 지나가는 것처럼 혈색을 찾아보기 힘든 얼굴과, 암영에서 지낼 적보다 더욱 살이 내려 가늘어진 몸뚱어리.

“나랑 아빠를 두고, 그렇게 떠났으면 좀, 좀 행복하게라도 살고 있든지….”

지금까지 겪어온 그 어떤 순간을 가져다 댄다고 해도, 엄마와의 재회를 이길 것은 없었다.

심장이 시커먼 멍으로 물드는 것만 같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을 조우하게 된 그 참혹하고 처절한 현실을, 어떻게든 외면하고 싶어질 지경이지 않았던가.

꾹꾹 눌러 삼키던 비리디비린 감정이 의지를 배반하고 죄다 역류하고 있었다. 암영이라는 지옥을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짙은 그늘이 드리운 그 얼굴이 나를 속수무책으로 무너뜨렸다. 엄마의 이런 모습이 왜 내게 더없이 깊은 상처가 되는지 모르겠다. 말로 못 할 만큼 치우쳐진 현실의 파편이 나의 속을 아릿하게 찔러왔다.

내가 엄마의 불행이었다고 했으니 나를 그렇게 뒤로하고 떠났으면 이제는 좀 그럴듯한 행운을 거머쥘 만도 한데, 왜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처연한 현실에 속에서 피눈물이 나는 심정이었다.

엄마는 오열을 그치지 못하는 나를 끌어안고서 자꾸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미안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런 원망을 토해내려고 온 게 아닌데. 어린 날의 실책을 다시금 되살려내 현실로 메다꽂으려고 온 게 아닌데.

껴안은 두 개의 몸이 덜그럭거렸다. 손상되고 파훼된 두 개의 마음이 부딪치며 내는 불협화음이었다.

세상이 짠 내로 뒤덮였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오늘만큼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날이 없었다.

* * *

일주일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일주일간 엄마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집에 꾸준히 들르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났을 때에 없었던 음식이 생겨나 있는 경우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맛은 하나같이 밍밍하거나, 짜거나. 극단적으로 요리에 소질이 없음을 엿보여주는 그것들은 엄마의 가여운 애정이었다.

머리가 띵하니 아파 올 정도로 운 건 처음이었다. 지금껏 꾹꾹 억누르던 감정의 둑이 결국엔 나 자신을 부정시키는 좌절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터져버렸다. 피멍처럼 검푸르게 얼룩진 빛깔의 감정 덩어리를 죄다 쏟아내고 나니 기력이 쭉 빠졌다. 그래서인지 일주일간 곤죽처럼 늘어져 지냈다. 의식이 깨어 있는 걸 거부하듯 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감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가 꾸준히 들르는 데에 반하여 한 번도 목격하지 못한 데에는 이러한 나의 생활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당장 며칠 전 서울에서 지낼 때의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수면제를 까득까득 씹어 넘겨야지만 잠이 들고, 그러면서도 숱하게 악몽을 꾸느라 벌떡벌떡 깨어나기 일쑤던 오피스텔에서와 달리 단칸방처럼 좁은 여기에서는 그런 고역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한우현의 부재가 아무래도 큰 효과를 보인 듯했다.

하루 이틀 악몽에 놀라 깨어날 때는 있었어도 혹 마음을 달리 먹어 나를 어떻게 할 한우현이 없었고, 반대로 차무겸에게 붙잡혀 나를 옭아맬 도구로 쓰일 한우현이 없으니 이전보다 심리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건 당연했다.

물론, 사위가 깜깜해지면 여전히 귓가에 소리가 들리기는 했다. 그럴 때면 불을 켜고 다시 이부자리로 기어들어 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불이 꺼져 있는 것으로 보건대 아무래도 나를 챙기러 들른 엄마가 꼬박꼬박 끄는 듯했다.

깨어 있는 상태로 엄마를 대면한 건 일주일하고도 이틀이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애틋함을 품은 손길이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기척에 잠이 깼다.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시큼한 술 냄새였다.

“…엄마?”

해의 반대편에 위치한 집은 불을 켜지 않으면 화창한 오전이라고 할지라도 동굴 입구처럼 어두컴컴했다. 그 어둠 속으로, 하얀 얼굴 하나가 둥둥 떠다녔다. 짙게 덧바른 색조 화장에도 불구하고 볼가에 불그스름하게 뜬 홍조가 여실하게 보였다. 사은아, 하고 부르는 음성에마저 술 내음이 빼곡히 어려 있었다.

나는 부스스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술 마셨어?”

“으응.”

흐트러진 자세가 내 눈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정확히는 그런 꼴에 더더욱 도드라지는 안쓰러운 차림새가. 평소라면 나에게 보이는 게 싫어서 최대한 단정하게 입고 화장을 지우던 엄마가 지금은 재회를 했던 그날, 그 뒷골목에 어울릴 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술에 취해 제 모습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온 듯했다. 그게 당혹스럽고 겸연쩍다기보다는 안쓰럽게만 느껴져서 엄마를 가만 응시했다.

잠시 후, 겨울철의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두 팔이 나를 끌어당겼다.

“미안해.”

“…….”

“엄마가 미안해….”

두서없는 사과였다.

“그때는, 너무, 정말 너무 지쳐 있었고. 네 아빠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로든지 도망가고 싶었어. 널 낳은 걸 내내 후회했고, 그래서, 네가 싫어서, 두고 간 게 아니야…. 내가 너를 데려가 봤자 고생을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적어도 네 아빠가 너한테는 손을 대지 않았으니까….”

취기에 저린 목소리가 웅얼웅얼, 느리지만 분명한 뜻을 품은 채로 흘러나왔다. 머리를 기댄 엄마의 가슴팍에서 옅은 고동 소리가 들렸다. 바짝 마른 몸은 그 연약한 면모와 달리 따스했고, 생명력이 있었다. 어릴 때 내가 안겼던 그것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품이었다.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사은아. 엄마는….”

누수처럼 왈칵 샌 이전 날의 오열에 이제 속에 진 덩어리는 다 말라붙어버린 줄 알았는데,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니 또다시 목이 메었다.

“내가 너를 대했던 마음으로 애를 지우라고 말한 게 아니야. 네가 힘든 길일 게 뻔하니까… 그래서….”

이전엔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면 오늘은 엄마가 그러고 있었다. 속을 꽉 채우던 너울이 다 빠진 상태로 마주했기 때문인지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느껴졌다. 온기가 있고 활력이 있음에도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옛날보다 작았다. 나를 가졌던 시절의 엄마만큼이나 훌쩍 큰 나이기에 느낄 수 있는 변화였다.

사실은 알고 있다.

엄마가 낙태를 권한 건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였으리라는 걸.

엄마는 이미 내게서 많은 것을 보았다. 임신을 막 입에 올렸을 때 지었던 복잡한 표정에서 그게 드러났다. 임신을 했다는데 애 아빠도 없이 홀로 이곳까지 왔다는 것만으로 엄마는 나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그럼에도 비참한 감정에 좀먹힌 내가 스스로 두 눈을 가리고 멋대로 단정 지었다.

달리 말하자면 땅굴을 파고 기어들어 가는 나의 자괴감이 결국 또다시 엄마를 상처 입게 했다는 것이다.

물기가 여실하게 찬 눈으로 변색된 벽지를 느릿하게 훑었다. 엄마가 나를 끌어안는 힘이 강해졌다. 지난날에는 이 악력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안정적으로 고정이 됐다.

“엄마가 그렇게 버리고 가서 미안해….”

눈물을 삼켜내지 못한 사죄가 내 속의 골짜기로 스며들어온다. 아물 일이 없던 속살까지, 기어이 비집어 파고 들어온다.

나는 가만히 손을 들어 엄마를 마주 안았다.

“걱정하지 마. 아기는… 지울 거야.”

“…….”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손바닥에 닿는 마른 등이 입 안을 씁쓸하게 물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만 버린 게 아니니까 사과할 필요 없어.”

“…….”

“아빠가 먼저 우리 둘을 버렸고, 나 역시도 다 버리고 서울로 떠났고….”

힘겨운 현실에 원색적인 원망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 너무 슬퍼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린 날이 많았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아무리 힘든 기억도 언젠가는 연해지고 희끄무레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되어야지만 비로소 누군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린 그냥… 각자 선택한 삶을 산 거야.”

나에게 기댄 엄마의 얼굴이 울음으로 흠뻑 젖어갔다. 축축해지는 옷자락을 느끼며 나는 허공을 공허하게 바라보았다. 어릴 적 수두룩하게 안겼던 품을, 이제는 내가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엄마는 한참 동안 눈물을 그치지 못하다가 이불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정오의 햇살이 가느다랗게 파고드는 집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로 그런 엄마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 말을 하는 데에.

이제는 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과거의 파편을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을까. 잠이 든 상태에서도 가시지 않는 볼의 홍조가 못내 마음이 쓰였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부엌을 서성였다. 그러나 재료가 마땅치 않았다. 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옷걸이에 걸어둔 모자와 남방을 걸쳤다. 가방에 넣어둔 돈을 꺼내 주머니에 욱여넣은 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빛줄기가 사선으로 길게 내리쬐었다. 그게 왠지 현실성이 없었다. 그제야 밤중 이 집에 들어온 뒤로, 첫 외출이라는 걸 깨달았다.

“……?”

한 발 내디디기 무섭게, 계단에 떡하니 앉아 있는 웬 남자를 발견했다. 장초를 입에 문 사나운 인상의 남자는 정확히 내가 나온 집을 보고 있었다. 곧 나를 위아래로 훑는 눈길에 움찔했다. 뭐지…? 함부로 엮이고 싶지 않은 험악한 인상에 나는 얼른 발을 옮겼다.

“야.”

그러나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남자의 부름으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네가 이서영 딸이야?”

연관이 없길 바란 사내의 입에서 엄마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의 눈에 어린 경계심을 읽은 건지 아닌 건지,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휘적휘적 내 앞으로 다가왔다. 흐음,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닮은 구석이 있긴 하네.”

“…누구세요?”

“나 누군지 몰라? 네 엄마랑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정체를 모르지만 그럼에도 피하고 싶단 생각이 든 건 이 사내에게서 풍기는 느낌이 위험한 편에 가까워서였다. 기시감이 들었다. 그 언젠가, 어두운 암영, 검은 차, 아빠를 운운하며 나를 데리고 가겠다던 깡패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인상이었다.

“엄마는 안에서 주무세요.”

“그래? 확실해?”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쓸데없는 미련이 남았나. 술 처먹고 꽐라 되면 꼭 이 일 관둘 거라면서 튀려는 잡년들이 생기거든.”

“…….”

“그거 못 하도록 지키는 게 내 일이라서.”

흑지처럼 까만 와이셔츠 안으로 보이는 살갗에 검은 문신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짐작이 맞았다. 엄마와 같이 일을 하면서 예전에 날 찾아왔던 남자들과 아주 유사한 느낌을 풍기는 게…. 진짜 깡패인가? 아니, 도망치지 못하도록 지킨다는 건…. 포주… 그런 건가 보다.

나는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대강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발을 돌렸다. 그러나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장초를 꼬나문 남자가 설렁설렁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엄마가 잠들었다는 말에 그 역시 이만 이곳을 나서려는 것일 뿐이겠지. 그리 생각하면서도 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하지만 남자는 내가 연립 주택을 나와 골목길을 나서는데도 꾸준히 내 뒤를 따랐다.

“왜 따라오세요?”

뒤를 돌았을 때는 이미 남자가 나를 따라잡은 후였다. 조금 전까지 담배를 쥐고 있던 커다란 손이 내 턱을 홱 그러쥐었다.

“야, 얼굴 좀 자세히 봐봐.”

그는 방해가 된다는 듯 깊숙이 눌러쓰고 있던 모자까지 벗겨냈다. 아연해진 마음에 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주세요!”

“오… 생각보다 더….”

“모자 달라고요.”

“너 이름이 뭐야?”

“알 거 없잖아요.”

“왜 알 게 없어. 내가 궁금한데.”

남자는 마치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내 모자를 왁스 바른 제 머리에 얹으며 킥킥 웃었다. 기분을 불쾌하게 만드는 대화 방식에 나는 그를 힘껏 노려보았다. 남자는 그 상태로 상체를 숙여 나와 시선을 맞췄다. 부는 바람에 조금 옅어진 담배 냄새 뒤로 진한 스킨 향이 코를 콕 찔렀다.

“너 우리 가게에서 일 안 해볼래?”

헛웃음조차 나지 않는 제안이었다.

“비켜요.”

나는 그의 머리에 얹어진 모자를 가로챈 뒤 남자를 피해가려고 발을 뻗었다. 그러나 넓은 가슴팍은 내가 발을 내디디는 족족 앞을 가로막았다.

“돈 안 필요해? 너 정도 얼굴이면 꽤 짭짤하게 벌 수 있는데.”

“…그 돈 좀 벌겠다고 몸을 팔라고요?”

한낮임에도 시커먼 남자의 동공이 음험하게 번들댔다.

“아직 어린 거 같은데 사고방식은 너무 구식이네. 야, 요즘은 2차 안 나가는 아가씨도 많아. 너처럼 반반하게 생기면 술 따라주면서 분위기만 맞춰도 쉽게 용돈 벌이하는 세상인데.”

사내와 대화를 이어갈수록 기분이 저조해졌다. 남은 진마저도 탈탈 털어가는 입씨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어서, 되찾은 모자를 다시 꾹 눌러쓰고 남자를 무시한 채 몸을 틀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내 앞을 막는다거나, 뒤따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완연히 가시지 않는 불안에 슬쩍 뒤를 돌아보자 남자는 조금 전의 그 자리에 서서 새로운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다.

지포라이터를 켜다가 저를 돌아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속 편하게 손 인사를 건넨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심경을 쉽사리 지우지 못하며 고개를 얼른 정면으로 했다.

골목 너머 도로변으로 빠지는 걸음이 흡사 도망을 가는 것처럼 다급했다.

* * *

“부대시설 점검 막 마치고 이제 서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네, 잘 끝났어요. 아버지도 기분 좋아 보이셨고요. 아버지께서는 내일 오전에 회동이 있으셔서 일정 마치고 올라오실 건가 봐요. 네, 바로 집으로 갈게요. 네, 네.”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친 강진모는 신호가 걸린 틈을 타 목 뒤를 감싸 주물렀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뻐근함에 한숨을 푹 내쉰 그는 팔을 핸들에 교차하여 걸치며 유리창 너머를 쓱 훑어보았다.

“이딴 곳에 오성급 호텔이라니….”

아무리 봐도 너무 빨리 진입한 거 아닌가. 사람도 몇 없을 텐데. 강진모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이런 제 속내를 아버지가 알았다면 네놈이 그리 사업 보는 눈이 없어서 문제라고 한차례 타박을 놨을 것이다. 듣자 하니 이곳에 관한 신도시 개발 사업 추진의 통과가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하여 깡촌이나 다름없던 땅이 조만간 금싸라기가 될 것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 때문에 여기저기서 기회만 된다면 발을 걸치려고 아주 야단이었다. 국내 호텔권을 꽉 잡고 있는 강진모의 집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의 욕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이런 호출의 유일한 낙이라 함은, 당연하게도 그나마 아는 얼굴들과의 대면이었다. 사람은 대체로 태어나면서부터 위치가 정해지기 마련이었다. 남 부럽지 않은 핏줄을 쥐고 태어난 덕택에, 강진모는 개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모임이라는 건 급이 맞는 이들끼리의 결합과도 같았다. 강진모가 어릴 적부터 보아 친분을 형성해온 무리 역시 대다수 재벌 2세, 3세들이었다.

‘느낌이 이상하네.’

한때는 클럽에서 만나 시시덕거리면서 술을 퍼먹고, 담배나 뻑뻑 피워대던 이들을 고상하고 품격 있는 자리에서 만난다는 건 실로 그러했다. 양옆에 여자를 끼고서 망나니처럼 굴던 놈이 멀끔하게 머리를 올리고 슈트를 차려입은 걸 보니 어찌나 어색하던지. 물론 그건 강진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격식을 위해 딱 맞게 조인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어색하고 겸연쩍지만,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는 길이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논다고 한들 저와 그들 앞에 주어지는 건 윤기가 흐르는 탄탄대로였다.

‘그중에서도….’

그놈이 가장 그렇지.

강진모는 오늘 모임에 불참한 인사를 떠올렸다.

차무겸. 해운그룹 삼대독자. 같은 물에서 놀지만 그럼에도 저와 다른 급임이 여실히 느껴지던 녀석.

여타의 재벌 모두 이따금 이목을 끌고는 하지만 차무겸은 그 정도가 달랐다. 타고난 위치에 앉아 손가락 하나 까닥거리는 걸로 남을 종처럼 부려먹는 데에 이골이 나는 치였다. 어릴 적부터 오냐오냐 떠받들어진 그 성정이 머리 좀 자랐다고 어디 가겠는가. 그는 여전히 오만하고 거만한 지배자였다.

그런 독존적인 성격에 치를 떨면서도 모두가 차무겸의 곁에 붙어 있으려고 그렇게나 알랑방귀를 뀌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강진모 역시 그러한 아첨꾼 중 하나였다. 차무겸의 몹쓸 성정을 감내할 만큼의 목적이 바로 그의 배경에 있었으니까.

무슨 사업인들 해운그룹의 막대한 투자가 개입되면 성사율 자체가 달라졌다. 그들과 친분이 있다고 하면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졌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후원이 되어주는 격이었다.

“하도 성격이 지랄 맞은 새끼라서 그렇지….”

강진모는 평소엔 정상인인 척하지만 제 수가 틀리면 살벌한 폭력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차무겸을 떠올리고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여태껏 모종의 사건으로 눈 밖에 나서 그 비정상적인 면모에 휩쓸린 치들이 적잖았다. 정말이지, 침 나오게 만드는 배경만 아니었으면 엮일 일조차 만들지 않았을 또라이였다.

‘그러고 보니, 걔는 뭐 하려나?’

핸들 위에 교차한 손을 톡톡 두드리고 있자니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안 본 지 꽤 됐네.’

무리 사이에서 차무겸을 떠올리면 부록처럼 딸려오는 존재가 있었다.

김사은.

차무겸의 변덕으로 잠시 암영이라는 시골에 내려갔다가 데려온 애. 표현이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대체어가 없었다. 그는 정말로 김사은을 ‘데리고 왔다’. 그 증거가 되는 건 언제나 차무겸의 부름 한 번에 잘 훈련받은 똥개처럼 쫄래쫄래 찾아오는 김사은의 태도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무리 속에 아주 커다란 물음표를 그려냈다. 차무겸의 여자친구가 수두룩하게 바뀌는 가운데 김사은은 굳건히 그의 곁을 지켰다. 과거에는 그런 둘을 두고 내기를 한 이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차무겸이 과연 얼마 만에 김사은에게 질릴지.

어릴 적부터 보아온 만큼 그들은 차무겸의 변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뻔한 걸 싫어하고 쉬운 것에 금방 지겨워한다. 언제 관심을 보였느냐는 듯 싫증을 내던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에게 그건 하나의 소소한 유희거리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를 우습게 만들 만큼 김사은은 오랜 시간 차무겸의 곁에 있었다.

단지 그것뿐인가?

‘사귀는데.’

어느 날의 모임, 누군가가 대수롭지 않게 건넨 질문에 차무겸은 그리 답했다.

‘어?’

‘사귄다고, 사은이랑.’

모두가 놀라워하던 기억이 여실했다. 질리면 버리고 그게 아니라 한들 곁에 장난감처럼 끼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건 결코 무리의 예상에 속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창백하게 질린 건 당연하게도 그간 김사은의 기분을 언짢게 만든 이들이었다. 차무겸의 몸종이니, 하인이니 하며 말이다. 단순히 심부름을 하며 곁에 붙어 있는,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를 ‘존재’와 교제하는 ‘여자친구’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모두의 내기를 우습게 만들 만큼 질기고 오래도록 차무겸의 곁에 붙어 있던 건 김사은 하나뿐이었다. 지금껏 애인을 심심할 때마다 갈아치우던 차무겸이지만 이번엔 그리 간단한 의미의 교제가 아님을, 그 자리의 모두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니까 관심 좀 가지지 마.’

‘…….’

‘관심 가지는 새끼는 내가 죽여버릴 거야.’

차무겸이 술잔을 돌리며 장난처럼 덧붙이는 말이 등줄기에 한기를 맺히게 했다. 가벼운 어투였지만 모두 그게 농담이 아님을 익히 눈치챘다. 이미 김형준이라는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눈알을 굴리면서도 속으로는 별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그 경고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걔 진짜 예뻤으니까….”

김사은과 차무겸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닌 시절, 그녀에게 괜히 시비를 걸던 남자 대다수의 행동은 관심과 호감 표시에 상응했다. 물론 김사은에게는 그게 죄다 고약한 장난질처럼 보였을 테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차무겸이 두려워서 대놓고 찝쩍대지 못한 게 크기도 했다. 여하튼 차무겸은 당시 아무런 말도 안 했지만, 대다수의 음침한 속내쯤은 죄다 간파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맥없이 늘어지는 생각을 접고서, 신호가 언제쯤 바뀌려나 하던 찰나였다.

“응?”

강진모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의 고개가 창문에 바짝 붙었다.

‘저거… 김사은 아닌가?’

막 떠올리던 대상이 제 눈앞에 있으니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와 마주 보고 선 김사은은 얼굴을 빳빳이 들고서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얼떨떨함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쟤가 왜 여기 있지? 서울도 아닌 양양에.

혼란에 빠진 강진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와 대치 상태인 남자에게로 꽂혔다.

‘…깡패?’

풍채가 좋은 남자는 장례식에 온 사람처럼 온통 까만 차림새였다. 옷차림보다 눈에 띄는 건 소매 아래 팔목, 그리고 굵직한 목에 또렷이 새겨진 문신이었다. 아무리 봐도 질 나쁜 불량배를 연상시키는 외양이었다. 신경질을 부리는 듯한 김사은과 대비되는 히죽거리는 태도 역시도 그 짐작에 힘을 실었다. 멀리서 보면 남자가 김사은을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으니.

처음부터 그녀의 것이었는지 김사은이 모자를 앙칼진 손길로 채갔다. 그것을 꾹 눌러쓴 그녀는 강진모의 차가 정차해 있던 도로변으로 나왔다. 혹시 제가 착각을 했나 했지만 가까워지는 얼굴은 분명 김사은이 맞았다. 확실했다.

강진모는 그녀가 제 차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얼굴을 바로 했다.

“허어….”

아니, 진짜 쟤가 왜 여기에 있지?

강진모는 핸들 위에 둔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차무겸은 알고 있나?’

차무겸을 떠올렸을 때 잇따라 그녀를 떠올린 것처럼, 반대 역시 매한가지였다. 그녀를 보니 자연스럽게 차무겸의 생각이 꼬리처럼 달라붙었다. 뭣보다 도망자처럼 모자를 푹 눌러쓰고서 비척비척 걸어가는 김사은의 뒷모습은 묘하게 애잔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길목을 걸으면서도 주변을 정도 이상으로 살피는 행동 역시.

쟤가 원래 저렇게 말랐었나?

아니… 마른 건 둘째 치고, 왜 저렇게 위축돼서….

그 꼴을 빠짐없이 지켜보던 강진모는 홀린 듯 안주머니를 뒤적거려 핸드폰을 꺼냈다. 아는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는 데에 긴 고민은 없었다. 마침 신호가 바뀌어서 그는 천천히 차를 몰며 통화 연결음에 집중했다. 생각 이상으로 길어지는 연결음에 이상하게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러다가 잠시 후 달칵, 하고 전화가 연결됐다.

“어, 무겸아.”

강진모는 부러 활달하게 입을 열었다.

잘 지내냐?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해봤어. 이번에 서울에 있던 모임… 너희 집안… 얘기도 나오… 저번에 안 왔길래….

평소 수다스러운 성격이 아님에도, 답지 않게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이렇듯 차무겸은 어렸을 적부터 자주 보았음에도 고작 전화 한 통을 거는 일조차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특히나 지금 하려는 짓이 제게 과연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기에 조금 더 맘이 성마르게 울렁거리는 감이 있었다.

-그래서, 왜 전화했는데.

간단히 안부를 주고받던 차무겸이 이내 본론을 물었다.

혹시 오늘 기분이 안 좋나?

평소의 장난스러운 기색은 물론이거니와 기운이 없는 것처럼 마냥 차분하게만 들리는 목소리에 강진모는 절로 기가 죽었다.

저 역시도 꿀리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나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예전엔 이런 문제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그랬지만, 오히려 머리가 자라고 나니 깨달았다. 그깟 사소한 일로 견제를 하며 시답잖게 굴다가 그에게 미운털이 박히느니, 좋게좋게 굽히고 가는 게 훨씬 더 이득이라는 것을 말이다.

강진모는 정신을 차릴 겸 눈자위를 꾹 눌렀다. 이내 결심한 것처럼 소리 없이 목을 가다듬은 뒤 대수롭지 않은 양 물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네 여자친구 있잖아. 김사은?”

-…….

“너 걔랑 헤어졌댔나?”

-그건 왜?

짙게 깔리는 목소리에서 쉬이 짐작할 수 없는 음험함이 은근하게 풍겼다. 그러나 유선상이라서, 또 눈으로 멀어진 김사은의 뒤를 좇느라 강진모는 거기까지 헤아릴 새가 없었다.

“내가 걔를 양양에서 본 것 같아서.”

-…양양?

“어.”

맞은편에서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서울이 아니라 양양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오는 음성이 이전보다 몇 도는 떨어진 것처럼 사느랗게 식어 있었다.

“그렇다니까.”

제가 짐작한 것과 퍽 다른 반응이지만 강진모는 일단 확답했다. 곧 건너편에서 웃음소리가 넘어왔다. 왠지 등줄기를 선득하게 긁어내리는 웃음이었다.

-진모야.

“어?”

-거기 정확한 위치 좀 말해 봐.

어라? 뭔가….

기실 혹여나 이번에 점수 좀 딸 수 있으려나 싶은 마음으로 한 가벼운 행동인데도, 정체 모를 큰 실수를 저지른 것만 같은 오한이 어깨를 짓눌렀다. 알 수 없는 감각에 강진모는 목 뒤를 만지작거리면서도 고분고분 그가 원하는 정보를 내놓았다.

통화는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뚝 끊겼다. 강진모는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허망하게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주 제멋대로인 새끼가 따로 없었다. 전화에 집중하는 사이, 김사은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클럽에서 종종 보았던 때와 달리 큰 사건이라도 겪은 양 기가 죽어 있던 뒷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 됐어.”

더 이상 생각하는 게 귀찮아진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 핸들을 크게 돌렸다.

뭐, 큰일이라도 있으려고.

밀고자가 떠나는 자리에는 그런 안일한 생각만이 부산물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4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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