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밤은 또다시 속절없이 기울었다.
우려하던 기말고사는 예상했던 대로 형편없이 치렀고, 나는 여느 때처럼 시험이 끝나자마자 차무겸의 집에 처박혀서 짐승처럼 침대 위를 굴렀다. 가끔씩 내가 대체 무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 짙은 회의감이 들었다.
나의 인생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따듯하고 안온한 히터의 온기 아래에서 공부를 할 때와 차무겸과 섹스를 할 때의 기분은 완전히 판이한 궤도를 걷고 있었다. 암영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도 못한 존재로 야금야금 정신력을 축내던 그때와 지금이 다를 바가 뭐 있을까.
크게 다른가? 모르겠다.
나는 정말로….
어둠이 너울처럼 드리운 하늘에는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칠흑같이 까만 장막 아래 나와 차무겸이 있는 침실에는 정사 후의 밤꽃향이 진하게 퍼졌다. 모로 누운 채 침대를 벗어나는 차무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의 광배근이 희미한 등불에 음밀하고도 탄탄한 윤곽을 드러냈다.
“차무겸.”
탁자에 마련된 물을 마시던 차무겸이 고개를 돌렸다. 기회를 노릴 수 있는 때는 지금밖에 없었다. 차무겸의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좋은 이때. 베갯머리송사와 다를 바가 없다는 현실에 문득 입 안이 써졌다. 나는 정사가 끝날 때마다 허하게 비는 속을 메꾸려는 것처럼 이불을 조금 더 끌어당겨 덮었다.
“이번 방학 동안 가연이가 스터디를 한다고 하는데… 나도 해도 돼?”
“스터디?”
“응. 임용 준비도 하고, 방학이니까 같이 모여서 공부할 겸….”
단지 나의 스케줄 중 하나를 정하는 과정을 거닐고 있을 뿐인데, 떳떳하지 못한 일에 대하여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가면 갈수록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차무겸의 저 심드렁한 표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호기로이 꺼낸 용기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서서히 삭아졌다.
나는 저 표정이 행여나 언짢은 각도로 비틀리기 전에 서둘러 덧붙였다.
“여자밖에 없어.”
“…….”
“학교 아니고 카페에서 할 거라 딱히 사람도 많이 마주칠 일 없고….”
“카페에는 사람이 없나?”
잘만 벙긋대던 입술이 딱 다물렸다. 차무겸이 잔에 물을 따라서 침대로 다가왔다. 그가 이불을 걷어가자 땀이 식은 몸으로 한기가 내려앉아 소름이 돋았다. 녹초가 되어 일어날 힘도 없는 내 몸을 가벼이 안아 든 차무겸이 물잔을 입에 가져다 대주었다. 나는 두 손으로 잔을 붙잡고서 미지근한 생수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하고 싶어?”
물잔이 바닥을 보일 즈음 차무겸이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가증스럽다. 불쑥 치미는 감정을 드러나지 않도록 조절하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차무겸이 나의 턱을 그러쥐고서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가 떼어냈다. 물기가 밴 입술 위로 젖은 마찰음이 울렸다.
“글쎄…. 썩 내키지는 않는데.”
“…….”
“네가 좆이라도 한번 빨아주면 모를까.”
이불을 말아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하얀 이불 위로 예쁘지 않은 주름이 졌다. 노을이 질 즈음부터 쉬지 않고 뒹군 것 같은데 아직도 부족한가.
이렇게, 차무겸이 성적인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속 어딘가가 미미하게 바스락거렸다. 차무겸은 천박한 제안을 거둘 생각이 없다는 양 내 입술을 끈질기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마치 손장난을 치듯 벌어진 사이로 엄지를 슬슬 밀어 넣었다가 빼기도 했다.
“진짜로… 해주면, 허락할 거야?”
“이런 걸로 왜 거짓말을 해?”
황당하다는 어투였다. 호흡이 깊어졌다. 폐부에 열이 고여 오르는 감각이 다시금 나를 덮쳐왔다. 그러나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지금 차무겸은 내게 거래를 제시한 거다. 평소처럼 일방적으로 깔아뭉개고 짓누르고 압박하는 게 아니라, 대가에 상응하는 조건에 임하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제안.
“…할게.”
지금, 차무겸의 허벅지 사이를 퉁퉁 때리는 거대한 물건을 제대로 눈에 담지도 못하는 주제에 실로 당찬 발언이었다. 그러나 기말고사가 막 끝난 직후라서 나의 위기감은 목 아래까지 치달은 상태였다.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차무겸에게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도 짐작하지 못할 저 절망의 저변에 도달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이 시시각각 목 뒤를 서늘하게 식혔다.
차무겸이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고서 손을 뗐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자주 해 봐서 알지?”
“…….”
“나 마구잡이로 처박는 거 좋아해.”
본능적인 거부감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할 수 있을까. 아래로 받기도 버거운 저걸, 입으로, 품는다고….
그 과정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았다. 벌써부터 입 안이 얼얼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더 이상 낭떠러지로 향해서는 안 된다. 매 때마다 주어진 선택의 갈래. 나는 지금 내가 차무겸의 좆을 빠는 게 최악이 아닌 차악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감싸 쥐었다.
손안에 담기는 무게감이 너무나 생생해서 순간 혀를 깨물 뻔했다. 차라리 그럴까도 생각해봤다. 혀를 깨물어서 피가 철철 나면… 그럼 이거, 안 머금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차무겸이 기껏 베풀어준 관용도 끝이겠지. 오히려 이런 내 속을 간파하고서 괘씸하다며 또다시 나에게 폐쇄성이라는 깊고 잔혹한 감옥을 선사할지 모른다. 나의 희망은 어느 순간부터 회색빛이었다. 밝은 색깔 따위 가져본 적 없이 침체하기만 했다.
용기를 내어 힘줄이 도드라진 것을 감싸 쥐자 삿갓형의 선단이 손바닥의 온기에 반응하듯 움찔거렸다. 그 포악한 기색에 등허리가 얕게 움찔거렸다. 조금 전만 해도 사정을 마쳐 약간은 수그러든 그것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벌떡 일어나 몸을 키웠다. 손안에서 꼼지락대는 부푼 살덩이가 괴생물체처럼 징그럽게만 느껴졌다.
“아, 해야지.”
차무겸은 미적거리는 태도가 영 시원찮았는지 내 턱을 잡아 부드럽게 짓눌렀다. 입술이 자연히 벌어졌다. 그 위로 비린내가 묻어나는 선단이 매끄럽게 비벼졌다. 입술에 상처가 새겨지는 것처럼 아릿한 감각이 퍼졌다.
당장 입을 다물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간신히 얻어낸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갈 것을 알았다. 숟가락 하나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좁았던 틈새가 조금 더 벌어졌다. 그 사이로 쿠퍼액에 녹신녹신하게 젖은 귀두관이 조금씩 파고들었다.
“우… 웁.”
고작 귀두 하나 머금은 건데도 벌써 입 안이 가득 찼다. 그로도 모자라 정액 특유의 비린 맛이 점막을 불쾌하게 자극하는 바람에 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는 미각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아래로 그의 것을 받을 때도 이따금 토기를 체감했다. 그러니 지금, 구강으로 행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차무겸은 늘 그랬듯 무자비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유독 성적인 욕구에 있어서는 한 점 물러섬이 없는 놈이었다. 받아 물 요량이거든 더 벌리라는 것처럼 턱을 사르르 긁으며 좁은 점막에 성기를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하읍, 음, 웃…!”
억눌린 신음이 벌어진 잇새로 타액과 함께 줄줄 샜다. 불현듯 올려다본 시야 속 차무겸은 기분 좋게 눈가를 휘고 있었다. 기분이, 적어도 나빠 보이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새삼 나의 처지가 언제 이렇게까지 바닥을 쳤는지를 한탄하며 입술을 오므렸다. 입 안쪽 살이 바짝 수축하며 안에 담긴 것을 자극했다.
“후, 씨이발….”
차무겸의 입술에서 억눌린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좋아하는 것 같아서 한 번 더 해주자 헝클어진 머리채가 꽉 붙잡혔다. 입 안에 고인 타액을 나도 모르게 삼켰다. 입 안이 확 좁아지며 안에 든 것이 사납게 맥동했다.
“사은아… 더 힘줘 봐. 사탕 빨아 먹듯이.”
“음, 우읍….”
“사탕 안 먹어봤어? 혀 이리저리 돌리고 고개 앞뒤로 흔들어서 빨아 먹잖아.”
사탕을 대체 누가 그렇게 음탕하게 먹느냐 따져 묻고 싶었으나 그럴 새도, 그럴 용기도 없었다. 나는 식도를 빠듯하게 자극하는 귀두를 볼 안쪽에 비비려고 애쓰며 헉헉댔다. 차무겸은 그런 나를 애완견 대하듯이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씁쓰름한 자괴감에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존나 못한다, 진짜.”
퉁을 놓는 어조와 달리 차무겸은 기분이 유쾌해 보였다.
“근데 환장하게 좋아…. 내 자지밖에 안 물어본 거 티 나서.”
“으읍, 응… 훗.”
“그리고 뜨끈뜨끈해서… 진짜 아래에 박는 거 같잖아.”
차무겸의 음담패설이 오늘도 내 마음속에 곰팡이처럼 퍼졌다. 나는 저런 말에 맥을 못 출 때마다 나 자신이 어딘가로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사은’이라는 인물을 꼿꼿하게 세우는 어떠한 존립성에 얇은 실금이 가는 느낌과 유사했다.
“느려터졌다…. 그렇게 빨아서 언제 싸게 할래?”
차무겸의 손짓이 예고도 없이 거세진 건 잠시 후였다.
“아, 읍!”
곰살맞게 머리통을 쓸어주던 게 어디의 누구였느냐는 듯 거칠기 짝이 없는 악력이 나를 끌어당겼다. 간신히 머금던 살덩이가 우악스럽게 입 속을 점령했다. 숨이 꽉 막혀와 잠시간 눈앞이 깜박깜박 점멸했다. 코에 까슬까슬한 무언가가 닿았다. 차무겸의 음모였다. 분명 사람의 체모인 만큼 부드러워야 하는 그것은, 주인의 성정만큼 강성한 면모가 있어 가시에 긁히는 것과 비슷한 촉각을 자아냈다.
나는 어지러워져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차무겸이 내 머리통을 부여잡고 함부로 구강을 들쑤시기 시작한 이후부터 극대화되었다.
“웁, 응, 읏, 하, 그, 으…!”
신음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뜨문뜨문 끊기기를 반복했다. 벌어진 잇새와 말문의 공백 속에 비리디비린 점액질의 무언가가 괴어올랐다. 점막에 비벼질 때마다 연신 꿈틀대던 선단에서 스며 나온 물이었다. 굵은 기둥이 처박힌 입 속에서 혀가 살고 싶다며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는 그럴수록 더 흥분할 뿐이었다.
차무겸의 허릿짓이 점점 거칠어졌다. 정말로 내 샅을 일정한 박자로 쳐올리듯 행위를 날것 그 자체로 즐기는 추삽질이었다. 잇새로 페니스가 긁혀 나올 때마다 차무겸의 입에서 바람 빠진 실소가 샜다. 그게 나의 등골을 이따금 오싹하게 긁었다.
“물러터져 가지고. 제대로 물지도 못하네.”
“으응, 흑, 그만, 아, 웁!”
“더 세게 물어 봐. 응? 아주 피 나도록 꽉꽉 깨물어 봐.”
차무겸은 내 머리통을 제 손아귀에 쥔 채 마구 뒤흔들며 종용했다. 그의 허벅지를 때리고, 밀치고, 하다못해 손톱을 세워 긁어도 인정사정없는 펠라티오는 여전했다. 앞뒤로 정신없이 요동치는 시야가 온전하지 못했다. 바로 세워지기도 전에 점점이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입 안에 쑥 처박혀서 목구멍 안쪽을 쿡쿡 건들기 시작하는 기둥이 요란하게 꿈틀거렸다.
잠시 후 차무겸이 이를 가는 듯, 사나운 어조로 읊조렸다.
“누워.”
정신이 혼미하여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차무겸의 명령은 매끄럽게 이행되었다. 그가 나의 어깨를 밀어 침대 위로 넘어뜨린 것이다. 함부로 벌어진 다리를 제대로 추스르기도 전에 가랑이가 열렸다. 그리고 손을 내려 막을 새도 없이 무언가 디밀어졌다.
“으, 흑!”
반쯤 세운 상체가 무너져 내리며 침대 매트리스가 요동쳤다. 차무겸은 이미 제 씨물로 가득 적셔 촉촉한 내부에 또 한차례 체액을 흩뿌렸다. 언제 느껴도 소름이 돋는 감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내가 한 행동이라고는 고작 입술을 움직여 무얼 빤 게 단데, 꼭 백 미터 질주라도 한 것처럼 숨이 벅찼다. 폐부가 욱신욱신 조여대고, 입 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꼬챙이로 여기저기를 쑤신 양 얼얼하고 쓰라렸다. 입꼬리는 기어이 찢어졌는지 입술을 벌릴 때마다 가시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차무겸은 내 안에 끈적한 사정액을 양껏 싸지르고서 뺨에 입술을 슬슬 비볐다.
“해, 스터디.”
“하으, 흐….”
“대신 연락 잘 받고.”
“…….”
“남자 없이 여자끼리만 하는 거라서 허락해주는 거야.”
본인이 베푸는 너그러운 마음씨를 똑똑히 인지하고 있으라는 것처럼, 글자가 뇌하수체에 하나하나 문신처럼 박혀 들었다.
“혹시라도 거짓말인 거면 혼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컴컴하게 물드는 시야 속, 문득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 * *
가연이에게 스터디에 참여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가연이는 음성 지원되는 발랄한 메시지와 함께 시간과 장소를 보내주었다. 주에 세 번씩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스터디 진행이 학교 바깥에서 진행된다는 건 사실이었다. 스터디원 중 한 명의 가족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서 안쪽의 대형 테이블을 내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도서관의 팀플 전용 테이블은 매주 세 번씩이나 잡기가 힘들었고 그렇다고 강의실에서 하기에는 환경이 썩 여의치 않은 차에 잘된 일이었다.
우려 속에서 나의 방학은 스터디와 함께 그럭저럭 무난하게 흘러갔다. 이 무난한 생활을 뒤받쳐주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차무겸의 일정이었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그는 눈에 띄게 바빠졌다. 어느 정도 짐작하던 바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4학년이 끝날 무렵 이전부터 틈틈이 받아온 경영후계자 수업을 토대로 회사에 들어갈 준비를 할 거라고 언뜻 전해 들었다. 그 증거처럼 요새 들어 전보다 집안과 관련된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인생을 그렇게나 막살아도 차무겸의 눈앞에 펼쳐지는 건 매끄러운 탄탄대로뿐이었다. 이래서 세상에 날 때 가장 중요한 건 핏줄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유리잔에 꽂힌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 먹을 즈음, 동기 하나가 말했다. 그 말에 다들 후우, 하고 숨을 몰아쉬는 데에 진이 빠진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은 인강 여기까지 예습해오고…. 각자 문법 5개, 단어 20개씩 문제 만들어오자.”
“그래.”
내 옆에 앉은 가연이가 뻐근한 목 뒤를 만지며 필기구를 챙겼다.
“그나저나 다음 학기부터 교생 시작이구나.”
“다들 어디 갈지 정했어?”
“난 내 모교로 갈까 봐.”
“방학 끝나면 노는 것도 끝이다.”
“개강 이 주밖에 안 남았다는 게 더 소름이야.”
노트와 필기구가 가지런히 정리된 자리는 하나둘씩 털어놓는 고충으로 차올랐다. 4학년을 맞이하는 이들 사이에서 으레 있는 교생 실습에 관한 고민이었다.
한참 대화가 이어지던 도중, 이번 스터디에 낀 진아가 전화를 받으며 테이블을 나섰다. 나는 차무겸에게 보고 겸 [스터디 끝났어] 하고 문자를 보냈다. 읽었다는 표시가 뜨지 않았다. 바쁜 모양이지. 요즈음 자주 있는 일이었다.
“애들아. 혹시 내 친구 좀 들어와도 돼?”
그러던 중 진아가 다인용 테이블이 있는 룸의 문가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다들 개의치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몸을 바로 세운 진아를 따라 들어선 사람은 스포츠 모자를 쓴 웬 남자였다. 쭈뼛대며 들어서는 남자의 눈길은 테이블을 빙 돌아 내게 꽂혔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아니… 나 타과에 친척인 남자애가 한 명 있는데, 언니랑 같은 교양 듣는다고 했거든. 언니 소개해달라고 난리여서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언젠가 진심으로 아쉬워하던 진아의 표정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하필이면 오늘 앉은 자리도 진아가 내 맞은편이었다. 진아의 뒤를 따라선 남자가 내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내 친척이고 우리랑 같은 학교야. 사은 언니, 언니랑 같이 교양 들었던 앤데, 아예 처음 보는 거야?”
다들 그 말을 듣고서 눈치챘는지 이런저런 눈빛들을 교환했다. 옆에 앉은 가연이는 아예 나를 힐끗 보기까지 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에 손에 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혹시라도 거짓말인 거면 혼나.’
살벌한 경고가 귓전을 이명처럼 때려서 미처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안녕.”
그러자 남자가 직접 입을 열었다.
나는 미묘하게 흠칫거렸다. 마주하는 시야가 부담스러워서 눈이 저절로 내리깔렸다. “응.” 하고 간결하게 마무리를 지어버리는 인사에는 대화를 더 이어갈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진아는 예상보다 더 시큰둥한 내 반응에 당황스러웠는지 서둘러 덧붙였다.
“아, 언니. 그런 의도로 데려온 거 아니야! 얘 진짜 괜찮은 애라서, 친구로라도 지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어.”
진아의 변명이 이어지는 타이밍에 핸드폰이 징 울렸다.
[공부 잘했어?]
나는 진아에게 대답하기 전 답장부터 보냈다. 차무겸의 연락 꼬박꼬박 받기. 그게 내가 스터디를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이니까.
[응]
[커피 마셨어?]
[응]
[오늘도 케이크 먹었고?]
[응]
[거기 따뜻해?]
[응]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평소 같았으면 전화를 걸거나 집으로 가라는 말만 하던 애가. 오늘따라 말문을 죽죽 붙잡고 늘어졌다.
[나 보고 싶어?]
거리낌이 없던 답장에 제동이 걸렸다.
주저함이 손끝으로 물씬 드러났다.
[응]
아마도 실제 입 밖으로 꺼낸 대답이었다면 기나긴 침묵이 붙었을, 그러나 다행히 문자인지라 망설임과 떨떠름을 그럭저럭 숨길 수 있는 답장을 보냈다.
[나도]
[집으로 와]
연달아 문자 두 개가 도착했다.
나는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아둔 필기구와 노트를 챙겨 들었다. 그제야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진아와 남자를 인지했다.
“나 이만 가 봐야 할 거 같은데….”
진아는 내가 어색한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러는 줄 알았는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 쪽은 부러 보지 않았다. 시선 한 줌마저 미련의 여지를 줄 것만 같아서였다. 그보다도,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조심히 들어가!”
“다음에 보자.”
애들에게 대강 인사를 전하고서 먼저 카페를 빠져나왔다. 카페 근처에서 택시를 잡았다. 목적지를 말하고 창밖을 보는데 문득, 오피스텔로 돌아가지 않은 지 무척이나 오래됐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꼬박꼬박 돌아가는 곳은 차무겸의 집이 되었다. 이전에는 반 동거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거의 완전히 함께 산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차피 오피스텔로 가도 차무겸이 찾아와 나를 데려가기 일쑤라서, 괜히 힘 빼느니 애초에 그 집으로 가는 게 나았다.
도로변을 달리던 택시가 부촌에 진입했다. 껑충껑충 뛰어도 안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담벼락을 숱하게 지나쳤다. 이윽고 멈춰 선 차에서 내려 대문을 들어섰다.
이곳의 정원은 암영의 붉은 동백나무 저택보다 드넓었다. 그러면서도 약간은 황량한 느낌이 감돌았다. 수영장부터 시작하여 뭐가 이것저것 있던 암영의 저택과 달리 이곳은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 백색의 분수대가 놓인 게 전부였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자연미가 일품이기도 한 광경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줄 알았는데, 차무겸은 슈트 차림 그대로 거실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핸드폰을 두드리던 차무겸이 나를 보고 상체를 바로 세웠다. 넥타이가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언제 왔어?”
“조금 전에.”
차무겸이 내게 손을 까닥거렸다. 나는 두꺼운 외투와 함께 가방을 한쪽에 내려두고서 조심스레 그에게로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에 고역스러운 심경이 두려움의 형태로 배어났다. 반사적으로 소파를 힐끔거리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차무겸의 부름은 곧 섹스와 연결된 까닭이었다.
불건전한 생각을 애써 털어내기도 전에 허리에 팔이 둘리고 질질 끌려갔다. 양말을 신은 상태라서 대리석 바닥이 끈적하게 느껴질 리가 없는데도 진흙밭에 발을 들여 철퍽철퍽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차무겸이 코앞에 있었다. 너른 허벅지에 걸터앉은 나를 그가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종잡을 수 없는 눈빛이다.
“추웠어?”
자연스럽게 사타구니로 파고들어 허벅지 안쪽을 지분대던 손이 잠시 후 두툼한 니트를 파고들었다. 갈비뼈 부근의 맨살을 스치는 손길이 온기에 절여진 양 뜨끈했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얼음이 닿은 것처럼 서늘하게 다가오기만 했다.
“소름 돋았는데.”
“아냐. 그냥….”
살갗을 누비던 손가락이 금세 뒤로 돌아갔다. 척추뼈 하나하나를 쓰다듬듯 서서히 올라가는 기척이 신경을 바짝 세웠다. 어떠한 제지도 통하지 않을 것처럼 매끄럽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브래지어 후크를 툭 풀었다. 묵직한 살덩이를 옥죄던 와이어가 풀어졌음에도 가슴은 여전히 답답했다. 그래, 이 답답함은, 이를테면 외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근데, 사은아.”
차무겸의 손은 내 니트 아래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눈 깜짝할 새에 젖가슴이 잡혀 주물러졌다. 엄지손가락으로 유두를 살살 돌리는 느낌이 오싹하면서도 간질거렸다. 허공에서 뜬 발끝이 굽어졌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슬슬 임신할 때 되지 않았어?”
농축된 긴장감을, 발끝을 쥐락펴락하는 식으로라도 풀기 바쁘던 나의 움직임이 경직됐다.
얼어붙은 눈동자가 그에게로 미끄러졌다. 아주 진지한 사항에 대해 확인하는 것처럼 그의 얼굴에서는 한 점의 흐트러짐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손가락 사이에 젖꼭지를 끼워 꼬집던 그가 판판한 아랫배를 문지르듯이 쓸었다.
“내가 여기에 싸지른 게 얼만데… 왜 아직도 애가 안 생기지?”
“…….”
“너 혹시 약이라도 먹어?”
차무겸의 입가에 조소가 스몄다. 제가 말을 하면서도 결코 그럴 리가 없다는 듯한 반응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거실 한편, 외투와 함께 덮어놓은 가방 쪽을 돌아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했다. 일전에 약국에서 구입한 피임약은 가방의 깊숙한 안쪽에 존재했다.
“약은 무슨 약이야….”
예의 선득한 눈길이 나를 찢어발길 듯 응시한다. 거짓말은 단 한마디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치밀한 눈빛. 나는 내 표정이 예사롭기를 신께 빌며 그를 마주했다.
곧 차무겸이 피식 웃었다.
“아니면 몸에 이상이라도 있나?”
“…….”
“병원 가서 검사 한번 받아볼래?”
“아냐… 나 병원 싫어하는 거 알잖아.”
차무겸이 암영에서 서울로 나를 데리고 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병원으로 데려간 것이었다. 아빠한테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얻어맞은 직후였기에 나의 상태는 겉으로만 봐도 엉망진창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정밀 검사라는 것을 받아보았다. 티브이 속에서나 보았던 휘황찬란한 의료기구들이 나의 몸을 통과하고 여기저기를 휩쓸었다. 그때 나는 부담스럽고 무서운 마음에 구역질까지 했다. 고작 목에 두른 청진기나 얇은 바늘 같은 것이 전부였던 마을의 진료소와는 차원이 다른 화려함에 기가 죽은 탓이었다.
다행히 질병과 같은 특별한 이상은 발견할 수 없었고 -물론 약간의 영양실조와 아빠에게 맞아 생긴 상처에 대한 세심한 케어와 치료는 필요했다- 차무겸은 그날 이후로 어지간하면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위장을 쑤실 정도의 거부감을 알아챈 것이다. 대신 매 때마다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좋은 음식을 먹이려고 했다.
“그치, 알지.”
“…….”
“근데 이제 친해져야 해. 아기 생기면 자주 가야 하니까.”
“…무겸아.”
“출산하고 나면 여기서 모유도 나올 텐데.”
니트 속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아래로 묵직하게 떨어지는 살덩이를 어루만지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심상하고도 당연한 정보였다. 애를 출산하면 그 입에 물릴 모유가 나온다는 건. 그러나 지금 번뜩거리는 차무겸의 동공을 보면 아기를 위해 준비될 게 분명한 양식을 제가 탐내려고 작정한 낯에 가까웠다. 어떠한 비정상적인 꿈결 속을 헤매는 얼굴과도 유사했다.
“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게 애써 부정하던 어느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질문은 머릿속이 아닌 가슴에서부터 스며 나왔다. 허리를 감싸 쥔 차무겸의 팔뚝이 나를 옭아매는 밧줄 같았다. 그래서 무심코 발버둥 치듯 몸을 비틀었다.
“그럼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
바보 같은 짓이었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차무겸은 나를 더 옥죄려는 경향이 있는데.
“나 학교 다니는 거 알면서 왜 그래.”
“…….”
“다음 학기에는 교생 실습도 나가야 하고, 졸업하면 임고도 봐야 해….”
차무겸이 유려하게 웃었다. 가끔씩 그의 미소는 나를 새까만 흙탕물에 처박으려는 것처럼 악독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리 사은이는 아직도 나를 이렇게 몰라….”
차무겸은 자조에 가까운 실소를 내짓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서, 스터디는 잘했다고?”
그는 나를 오리무중의 상태에 빠뜨려놓고 홀로 빠져나갔다. 주제가 눈 깜짝할 새에 바뀌었다. 평소 같았으면 화제를 조금 더 진득하게 잡아채어 그를 설득하려 낑낑댔겠지만, 문제는 차무겸의 입에서 나온 다음 화제였다.
하필이면 오늘 웬 남자가 스터디 자리에 끼어들어서.
“…응.”
미지근한 어조로 대답하자 차무겸은 나를 가늠하듯 들여다보았다. 뭔가 켕기는 구석을 알아챘다기엔, 차무겸은 사람을 곧잘 이렇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뭣보다 이미 알고 있다면 이렇게 태연하게 굴 리가 없었다.
아주 잠깐 고민을 했다. 오늘 일, 솔직하게 말할까. 하지만 어차피 남자는 오늘을 제외하고는 스터디에 나타나는 일이 없을 테고, 또 그와 단둘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결단코 차무겸이 껄끄럽게 여길 만한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비굴한 거짓말쟁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차무겸은 더 묻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콩알만 하게 졸아붙었던 간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완연한 모양새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배고프니 밥이나 먹자’며 주방으로 향하는 차무겸을 보다가 나는 옆을 힐끔거렸다.
피임약이 든 가방이 바닥에 초라하게 놓여져 있었다.
* * *
내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는 걸 인지한 건, 돌아온 다음 스터디 시간이었다.
카페에 도착하여 음료를 주문하고 안으로 들어서던 나는 평소보다 하나 더 많은 머릿수에 멈칫했다. 동기들 사이에 청일점처럼 끼어서 웃던 진아의 친척이 나를 발견했다. 당황스러운 마음과 함께 외투의 왼쪽 주머니가 무거워졌다. 차무겸이 사준 핸드폰이 들어 있는 쪽이었다.
“사은아, 왔어?”
나는 내게 인사하는 가연이의 옆으로 앉으며 남자 쪽을 힐끔댔다.
“쟤가 왜 저기 있어?”
“아, 여기 진아가 소개해준 카페잖아. 알고 보니까 저 남자애네 가게래.”
낭패였다.
“근데 쟤 진아 말대로 성격 진짜 괜찮더라. 매너도 좋고 재치도 있고…. 그때 너 먼저 가고 우리끼리 얘기 나눴었거든.”
“아….”
“사은이 너 부담스러운 것도 이해해. 우리는 사심 없이 편하게 대하기는 하던데… 딱 보니 너한테 관심 엄청 많아 보이더라. 보니까 진아가 저번에 자리에 불쑥 데려온 것도 엄청 닦달해서 그런 것 같아.”
가연이는 내가 남자를 껄끄럽게 여기는 이유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했다. 내게 분명한 호감을 보이는 것도 불편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차무겸이 가장 두려웠다. 선을 넘은 관계임에도 우리의 아슬아슬한 일상이 이어지는 건 단지 나의 노력이 그 아래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리 애를 써도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이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이 멋대로 개입하여 상황이 만들어질 때.
허탈하고, 동시에 무력하고, 그러면서 불안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쟤 계속 여기 있는대?”
“모르겠네. 스터디 시작하면 가지 않을까?”
가연이의 짐작대로 다행히 스터디가 시작되자 남자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었다. 자꾸만 머리를 들이밀고서 간식거리를 하나둘씩 내왔다. 조각 케이크일 때도 있고, 마카롱일 때도 있었다.
시종일관 거북한 마음에 나는 내밀어진 디저트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남자는 오히려 그런 내 태도에 계속해서 내오는 듯했지만…. 외려 그 행동이 두통만 유발해서 나는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파우치를 꺼내 두통약을 하나 집어삼켰다. 이마저도 혹 괜한 화젯거리가 될까 봐 파우치의 지퍼를 제대로 잠그지도 않고 가방에 쑤셔 넣었다.
스터디는 나 홀로 살갗을 저미는 긴장감을 떠안은 상태에서 끝이 났다. 남자는 그때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스터디가 끝나자마자 냉큼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새 그와 친해진 동기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오지에 떨어진 외톨이처럼 입을 꾹 다물고 가방만 챙겼다. 이제 차무겸에게 스터디가 끝났다는 보고를 해야 할 차례였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한발 앞서 지잉, 진동이 울렸다.
[무겸이]
고등학생 시절 차무겸이 제 손으로 등록해둔 저장명이 번쩍번쩍거렸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떠안고서 통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끝났어?
“응. 안 그래도 마침 연락하려던 차였어.”
-그래?
바깥인지 연결된 유선 너머로 바람 소리가 강하게 몰아쳤다.
“어디야? 밖이야?”
-응. 오늘도 커피랑 케이크 먹었어?
“그렇긴 한데… 그건 왜 자꾸 묻는 거야?”
의뭉스럽기 그지없는 행색을 처음으로 꼬집었을 때였다. 딸랑, 저 멀리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이상하게, 공포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것처럼 섬찟하게 다가왔다.
건너편에서는 대답 대신 안타깝다는 한숨이 먼저 흘러나왔다.
-나름대로 기회를 준 건데.
“어?”
-내가 거짓말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거, 거짓말이라니.”
-거짓말 아니라고?
“내가 무슨….”
-남자 없다며, 사은아.
“…….”
-그럼 지금 네 앞에 있는 씹새는 누구야.
음성의 온도가 대번 달라졌다. 오른쪽 귀와 왼쪽 귀를 스치는 목소리가 오버랩처럼 덧대어 들렸다. 공간이 어그러지는 듯 기묘한 감촉이 뒤를 덮쳤다. 오한, 이라고 명명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댄 채로, 우리가 있는 공간의 문가를 더듬더듬 돌아보았다. 조금 전만 해도 없던 긴 음영이 바닥에 드리운 채였다.
“어?”
동기들 중 누군가가 의아한 소리를 냈다. 모여든 이들의 이목이 모조리, 문가에 기대선 차무겸에게로 가닿았다. 나는 절대로 들키면 안 되는 장면을 들킨 사람처럼 정수리까지 쭈뼛 섰다.
“나와.”
사납고 진득한 눈빛을 한 차무겸은 지난번 술자리에서처럼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그저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 통화를 종료하고서 짧게 말했다. 그가 형성해낸 묘한 분위기를 인지했는지 모두가 입을 딱 다물고 나와 차무겸만 번갈아 보았다.
“안 나와? 내가 끌고 가야 해?”
분위기는 풀릴 일 없이 꼬이기만 했다. 뚜둑, 끊겼던 사고회로가 어느 정도 복구되자마자 나는 가방에 물건을 쑤셔 넣었다. 주변에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여유가 없었다.
“사은아.”
바로 차무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려는데 팔목이 붙잡혔다. 가연이었다. 그녀는 나의 행동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듯 조심스레 입술을 달싹거렸다. ‘괜찮아?’ 하고 묻는 태도에서 그녀의 상냥하고 고운 심성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나를 향해 이와 똑같은 질문을 건넸던 한우현이 떠오른다.
모두가 내게 괜찮냐고 묻는다.
괜찮아야만 하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질문.
오히려 불필요한 질문으로 나의 세뇌를 깨는 그 질문이….
나는 울고 싶어지는 기분을 참으며 괴이한 미소를 그려냈다. 그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다. 가연이에게 어떠한 설명을 하기엔 한시가 급했다.
태연하게 인사를 전하지도 못했다. 차무겸의 팔목을 붙잡아 서둘러 카페에서 나서는 데 급급했다. 차무겸은 때때로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했다. 그런 연유로 이미 내 앞에서 사람을 팬 전적이 수두룩했다. 당장 돌이켜만 봐도 문태욱, 김형준…. 요컨대 그는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반질거리는 유리의 표면처럼 매끄러운 척하는 나의 일상에 해를 입히기에 충분했다.
열렸다가 닫히는 문 너머로 들리는 종소리가 터무니없이 청아해서, 조금 더 울고 싶어졌다.
분명 카페에서는 내가 그를 끌고 나가고 있었는데, 카페를 나오자마자 그 위치는 역전되었다. 손목을 감싸 쥔 악력이 떨쳐낼 수 없을 만큼 굳건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숨 막히는 정적이 나의 신경을 일일이 쪼개놓았다. 차라리 윽박이라도 지른다면 그의 감정을 가늠할 수 있을 텐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된 마당에조차 그에게 비굴하게 굴며 눈치를 살피는 내 자신이 싫었다. 닳아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고 여긴 자존심은 의외로 부스러기처럼 남아서 가끔씩 툭툭 치고 올라오고는 했다. 그래 봤자 부스러기일 뿐이다. 표출하나 마나 한 것이라는 말이다.
차무겸이 차분한 상태가 아니라는 건 사뭇 거친 운전으로 증명이 되었다. 평소보다 더 이르게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나를 예상한 것처럼 차무겸이 손목을 강하게 붙잡아 끌고 갔다. 너른 보폭에 넘어질 것처럼 휘청대자 그는 아예 나를 어깨에 들쳐 멨다.
“차, 차무겸! 놔, 이거 놔 봐…!”
계단을 오르는 묵직한 걸음의 타격이 어깨에 매달린 내게로까지 전해져왔다. 아래로 쏠린 머리에 피가 몰려 시야가 어지러웠다.
“그 남자애는 스터디원 아니야!”
차무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처럼, 그래, 차라리 욕설이라도 지껄였으면 좋겠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가 지금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아!”
2층에 막 올라섰을 무렵 어깨에 아슬하게 걸려 있던 가방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지퍼를 제대로 닫지도 못한 가방에서 이것저것이 쏟아져 나왔다. 퉁 튕겨 나간 것이 그대로 벽에 맞아 터벅터벅 걷는 차무겸의 발치로 밀려났다.
귀가 먹은 것처럼 굴던 차무겸이 우뚝 멈춰 섰다.
그는 천천히 상체를 굽혔다. 그 덕분에 바닥에 발이 닿은 나는 다급히 그의 어깨를 밀었다. 차무겸은 웬일로 내가 바동거리는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신경은 벌어진 파우치에서 쏟아져 나온 것에 꽂혀 있어서….
“처음 보는 약인데.”
“…….”
“이거 뭐야?”
분포지 그대로 오늘치와 내일치만 뜯어놓은 피임약이 그의 손안에서 절그럭거렸다. 망연자실함이 뇌리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두통약이나 그 밖에 다른 약이라고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약을 손에 쥔 차무겸의 기세가 여간 흉흉한 게 아니라 절로 혓바닥이 굳었다.
내가 발버둥 치던 것도 잊고 입을 딱 다물자 차무겸의 얼굴 위로 예리한 빛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아하.”
“…….”
“이래서 임신을 안 한 거네. 저번엔 설마 하고 말해본 건데.”
나의 얼굴에 ‘절망’이라는 정의가 떡 써져 붙여진 건가. 그게 아니라면 단번에 피임약임을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
“나한테 한 거짓말만 몇 개야?”
“무, 무겸아.”
“이러면 봐주고 싶어도 봐줄 수가 없잖아.”
차무겸은 손안에 쥔 약을 와작 일그러뜨렸다. 나는 하얀 약이 가루가 되어 그의 손에서 부스스 떨어지는 환상을 잠시 잠깐 보았다. 곧 깨어난 현실 속에서 나는 어느새 질질 끌려가 침실에 도달해 있었다.
“말하려고 했어! 말하려고 했는데…!”
차무겸이 나를 침대에 앉힌 상태로 넥타이를 풀었다. 한 손으로는 그것을 고쳐 쥐고, 다른 손으로는 내 양 손목을 가벼이 틀어쥐었다. 차무겸의 손은 내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서 내 양쪽 손목을 죄다 감싸기에 무리가 없었다.
“했는데.”
그가 무미건조하게 따라 읊었다.
내가 움찔하자 양 손목에 넥타이를 빙글빙글 감싸던 그가 눈을 들었다.
“했는데 왜 안 했어.”
“…….”
“내가 기회를 몇 번이나 줬게?”
기회라고? 그제야 나는 농담 따먹기처럼 이어지던 문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게 차무겸이 내게 보이던 일종의 관용이었던 것이다. 그 기회 안에만 말했다면… 아마도 조금 전 복도에서 말한 것처럼 봐주든가 했겠지. 그러나 나는 아둔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그 기회를 발로 걷어찼다.
그 순간, 이 뼈아픈 현실이 난데없이 맹렬하게 부딪쳐왔다.
왜?
내가 왜 차무겸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데?
차무겸이 내게 뭐라고, 그가 뭐라고.
나는 왜 매 순간마다 이리도 눈치를 보고 억눌려야만….
“네가 이렇게 화를 내잖아….”
“…….”
“내 말 듣지도 않으면서 다짜고짜 화부터 내잖아!”
“…….”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 아는데, 어떻게 말을 해, 어떻게!”
숨이 거칠어졌다. 감정이 그렇게 들쑥날쑥하는 걸지도. 강간에 가까운 행위를 당한 이후부터 억누르기 바빴던 모든 감정의 부산물들이 울분에 찬 음성 아래로 불시에 딸려 올라왔다. 밉고, 원망스럽고, 짜증 나고, 무섭고, 혼돈스럽고, 서러우며, 돌아버리겠는 그 알갱이와 같은 것들.
울지 않았으나 내 음성은 물기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차무겸은 그런 나를 직시하다가 얼굴을 숙였다. 입술을 꽉 깨무는 힘에 고개를 비틀려고 했으나 기어이 살점을 물어뜯어서 피를 비쳤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피비린내가 혀를 아릿하게 적셨다.
“내가 네 말을 안 들으려고 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
“너는 틈을 주면 내 곁에서 벗어날 생각밖에 안 하거든.”
알쏭달쏭한 전언이다. 차무겸이 상체를 바로 세우며 내 팔목을 묶는 손을 능숙하게 놀렸다. 나는 입꼬리가 핏빛으로 벌겋게 칠해진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교생, 졸업, 임고….”
“…….”
“어쩌지, 사은아.”
한때이며 동시에 현재이기도 한 나의 바람들을 차분하게 뇌까린 차무겸이 부드러이 웃었다. 분노와는 이질적인 그 미소는 이 상황 속에서 아스스한 소름만 자아냈다. 더하여 나는 그때가 돼서야 내 손이 그의 넥타이로 칭칭 감겨 있음을 인지했다. 사슬로 칭칭 묶인 것처럼 양손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거 되게 하고 싶어 한 거 같은데… 못 하겠다.”
“뭐…?”
“너 오늘부터 여기서 못 나가.”
심장이 알싸하게 조여들었다.
“…차무겸.”
“…….”
“무겸아, 차무겸.”
“응, 나 여기 있는데.”
“우리, 우리 대화로 풀자. 너 지금, 나한테 화난 거잖아… 그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가끔씩 감정이 파악조차 되지 않는 차무겸의 침착함은 지독하게 다가왔다. 실로 지독하여 진절머리가 났다. 그러나 그 지독함에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나의 처지가 무엇보다 가장 끔찍했다.
“나 걔랑 한마디도 안 섞었어. 친구가 억지로 데려와서 어쩔 수 없이 만난 것뿐이야.”
“그렇게 말하면 나한테 거짓말한 게 없던 일이 돼?”
“…….”
“서운하다, 사은아.”
너는 고작 서운하다 정도로 그치지. 나는 지금 미치도록 무섭고 절망스러운데. 저 밑바닥에 머리가 쾅쾅 처박히는 느낌인데. 내가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세운 모든 마지노선을 아주 가볍게 부숴버리는 네가….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었다.
나는 두 손을 간절하게 맞붙였다.
“미안해. 나 진짜 거짓말 안 할게. 절대, 다시는.”
기도를 올리듯 두 손을 맞대는 것. 어렸을 적 성당에 가봤을 때 말고는 해본 적이 없는 행동이었다. 신에게 자비를 구할 때에 취하는 행동을, 지금 차무겸에게 바치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차무겸은 나의 삶의 뿌리를 쥐고 뒤흔들 수 있는 신이며 동시에 악마였다.
그가 불시에 내 턱을 쥐어 올렸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
“근데 이제는 안 되겠어. 너를 계속 밖에 나다니게 했다가는 내가 제명에 못 살 것 같거든.”
“…….”
“왜 쓸데없이 이렇게 예쁘게 생긴 거지?”
저당 잡힌 나의 삶을 자근자근 부서뜨리겠다는 포부를 태연자약하게 꺼낸 놈이 나의 입술을 빨았다. 피 맛이 날 텐데도 개의치 않고 쭉쭉 빨아들이는 힘이 억셌다. 따가운 고통이 느껴졌으나 반쯤 정신이 나간 나는 그 고통을 제대로 표출할 새도 없었다. 지금은 통각을 포함한 온 신경이 차무겸의 반응에만 꽂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맘에 안 들던 차였어. 나가기만 하면 더러운 벌레들이 꼬이잖아.”
“무겸아….”
“뭐, 나도 좋다고 홀리기는 했지만…. 이제 그만하자, 사은아. 5년이면 오래 했잖아.”
그의 입에서는 번복의 여지를 찾아볼 수 없는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무릎까지 꿇을 심정으로 절박했던 속이 단번에 뒤집혔다. 나는 내 턱을 움켜쥔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바둥거렸다.
“뭘 오래 해. 내가 뭘 오래 하냐고…!”
“…….”
“싫어. 나 학교 갈 거야. 가야 해!”
눈물이 불시에 터졌다. 시야가 점차 흐릿하게 짓뭉개졌다.
“내가 너, 너랑 이러려고 서울에 온 줄 알아? 이렇게, 흑, 이러려고, 이러려고 온 거 아니야…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야. 나는. 나 좀, 무겸아, 제발….”
냉정하게 떨어진 선고가 그간 꾹꾹 참아내던 모든 감정의 불순물을 모조리 까발렸다.
우리의 관계는 실타래였다.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꼬여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작이 어디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뒤엉킨 지점을 알아야지만 이 실타래를 풀 수 있을 듯한데. 그 시작점을 모르겠다.
그리고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시작점을 찾지 못한 실타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꼬여갈 것이라는.
엉엉 울면서 나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 한탄을 늘어놓는데 차무겸이 불시에 내게 달려들었다. 겹쳐진 두 개의 몸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매트리스가 격렬하게 출렁거렸다.
차무겸은 아까보다 더 거칠고 격렬하게 입술을 흠빨았다. 혀를 쑤셔 넣어 안에서 마구 휘젓는 바람에 숨통이 턱턱 막혔다. 심상한 모습 뒤에 감춘 분노가 뒤늦게 표출되는 것만 같았다.
몸 여기저기를 만지는 손길에서 분노와 역겨움이 치밀었다.
“하지 마! 싫어!”
언제나와 같이 나의 의지는 담겨 있지 않은 행위였다. 단지 사내의 배출된 파정액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루 말할 수 없이 껄끄럽고도 비참한 모습.
차무겸은 반항하는 나를 간단히 제압하며 혀를 끈적하게 뒤섞었다. 이제는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읍읍대며 눈물만 주륵주륵 흘리고 있는데 별안간 진동 소리가 울렸다. 차무겸이 거칠게 긁고 유린하던 입 안에서 혀를 빼냈다.
씨근덕대는 숨이 연신 터졌다. 입고 있던 슈트 재킷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인을 확인한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나가.”
얼룩진 시야로 불안감이 스며 올랐다. 차무겸은 핸드폰을 탁자로 던지고서 다시 내게로 상체를 숙였다. 다가오는 숨에 질겁을 표출하듯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5년이면 오래 버틴 게 맞아.”
헐떡거리며 핏발이 섰을 게 분명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난 널 여기로 데리고 오자마자 가둬버리고 싶었거든.”
오로지 진실밖에 말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처럼 유려하고 매끄러운 혀 놀림이 섬뜩했다.
“다녀와서 섹스할 거야.”
짭짜름한 눈물기로 젖어 든 뺨에 그의 입술이 문질러졌다.
“이거, 풀어….”
“근데 그때까지 화가 안 풀리면 거칠 수도 있어.”
“차, 차무겸.”
“그니까 알아서 손가락 넣어서 풀어놓든지 해. 난 오자마자 박을 거야.”
경고하듯 뇌까린 그가 가분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헝클어진 채 누운 나는 차무겸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내가 보는 앞에서 흐트러진 차림새를 손으로 정리한 그가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시야를 가득 메운 너른 등판이 현실을 인지하게 했다.
침실 문이 쿵 닫혔다. 나는 늘어진 몸을 벌떡 일으켰다. 황급히 달려가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데 덜컥, 하고 기이한 소리가 났다. 마치 바깥에서 잠긴 것처럼.
나는 허옇게 질린 낯으로 문고리를 흔들었다.
“차, 차무겸…! 무겸아!”
오늘부터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 거라는 말이 환청처럼 귓전을 울렸다. 나는 대롱대롱 매달린 물줄기를 뺨 위로 줄줄 흘려보내며 전에 없이 급한 태세로 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러나 굳건히 닫힌 문 저 너머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 잘못했어….”
그 은은한 적막이 나의 손과 발끝을 돌덩이처럼 굳게 만들었다.
“거짓말해서 미안해. 안 그럴게. 다신 안 할게. 스터디도 그만둘게….”
나밖에 없는 공간에 궤궤한 고해가 떠돌아다녔다.
“열어줘! 이것 좀, 열어달라니까!”
그렇게 나의 고독한 외침은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물론,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