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10화 (10/24)

10장.

타닥타닥.

멈추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의 적막을 깨뜨렸다. 나는 한쪽에 띄워놓은 빽빽한 영문 원서를 들여다보다가 일정 구간에서 잘라 한글 프로그램에 번역을 옮겨적고 있었다. 기말을 코앞에 둔 이번 학기 과제 중 하나였다. 예전이면, 하루 날 잡고 했으면 진즉 끝냈을 과제인데 벌써 일주일째 붙들고 있었다. 집중이 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고 실제로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강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바다로 유입되어…」

키보드를 두드리던 나의 손이 멈칫했다.

눈동자가 모니터 위 어느 단어에 콕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흐른다. 고작 단어 하나에 균열이 새겨지듯 집중력에 흠집이 났다. 키보드에 양손을 고이 올려둔 채로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종종 나와 차무겸의 관계가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맹세컨대, 우리는 단 한 번도 어딘가에 걸려 고정된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불안정하고 기우뚱거렸다. 입 밖으로 자주 ‘친구’라는 말을 입에 올렸지만, 나는 우리가 그렇게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관계에 놓인 적이 한 번도 없음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차무겸의 여자친구들이 하는 견제가 일견 타당하다 생각될 만큼.

그럼에도 모르는 체했다.

차무겸을 모르겠고, 그가 나를 챙겨주는 이유는 더더욱 모르겠지만, 차무겸을 필요로 하는 나의 생이라면 그래야만 했었다. 그 묘한 관계로 파고드는 즉시, 바다 위에 뜬 조각배처럼 잔바람에도 휘청대기 바쁜 관계가 뒤집어질 것만 같았으므로. 그럼 땅에 처박히는 건 애석하게도 나뿐이었다.

차무겸 없이, 제대로 가진 거 하나 없는 구질구질한 나 하나뿐.

불확실한 관계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당장의 앞가림을 해내기에 급급했으므로 먼 미래까지 넘겨볼 새가 없었다. 삶에 여유가 없으니만큼 멀리 꾸는 미래는 사치일 따름이었다. 그 고질적인 습관은 서울로 올라오고서도 매한가지였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입시가 우선적이었고, 대학생이 된 지금은 적어도 임용고시만 잘 치르자는 마음으로 공부에 몰두했다.

그러나 차무겸과 나의 관계에 최근 큰 변동이 생겼다.

그가 내어준 오피스텔로 가지 않은 지 벌써 몇 주가 되었다. 정확히는 가지 ‘못한’ 것이지만. 차무겸에게서 오는 연락을 늦지 않게 꼬박꼬박 받았고, 만나면 바로 그의 집으로 와야 했다.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는 지금의 장소 역시 차무겸의 서재였다.

하루면 끝낼 과제를 못 한 이유?

차무겸이 그걸 두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둘이 있을 때면 가장 적게 시간을 보내던 침실이 이젠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나는 키보드에 올려둔 두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희망이란 불명료한 것이므로 나는 언제나 마음 한편에, ‘언제까지고 이렇게 차무겸에게 기대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 경계선으로 세운 게 임용고시였다. 내가 간신히 내다볼 수 있는 미래의 마지노선. 무사히 졸업을 하고, 무사히 시험에서 합격하게 되면 차무겸의 그늘 아래에서도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부지런한 생활로 그에게 받은 걸 갚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작금의 행태를 보라.

과제는 물론이고 공부조차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요즘은, 그날의 강의가 끝나면 단과대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처박혀 살던 기억이 희미해질 만큼 칼같이 하교했다. 오죽했으면 가연이가 ‘집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하고 조심스레 물어볼 정도였다.

하루 종일 들고 다니던 영어 단어장은 가방 깊숙한 구석에 처박힌 지 오래였고 자율학습실에서 볼펜으로 이것저것 체크하던 전공책은 뒷면으로 갈수록 깨끗해졌다. 내가 공부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또렷한 증거였다.

이래서 대체 어떻게 시험을 잘 보고 합격을 하겠는가.

‘졸업을 우선적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양심을 토대로 세워놓은 마지노선이 나의 현실적인 위치와 멀어졌다. 이제는 시험 합격이 아니라 졸업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판국이었다. 하지만 그게 상책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요즈음 차무겸의 태도를 보면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될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질릴 때까지 하면 관두겠지.’

나는 회의적인 낯이 되어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나 그 속도는 점차 느려졌다.

‘…질리지 않으면?’

차무겸은 무엇이든 쉽게 흥미를 가지고, 주전자에 담긴 물이 끓는 것보다 더 빠르게 식었다. 5년을 곁에서 봐오는 동안 예외 없이 그랬다. 뭐든 다 가져본 인생답게 손에 쥐어봤다면 큰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벌써 두 달 가까이 이어진 그의 집요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 두 번, 이제는 세는 의미가 없을 만큼 몸을 섞었는데도 차무겸은 여전히 나만 보면 발정 난 개처럼 굴었다. 혹시나 싶었는데 정말로 윤다정을 포함하여 그간 알게 모르게 유지하던 이성적인 교류 관계를 죄다 정리한 듯했다. 그게 나의 속을 바짝 태웠다.

차무겸이 이 짓에 질리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언제 끝나.”

키보드에 놓여 있던 손가락이 움찔 말려들었다. 정수리에 무게가 실렸다. 나는 급히 돌아보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차무겸이 내가 앉은 의자 뒤편에 서 있었다.

“멀었어?”

“거의 끝났어. 심심하면 먼저 보고 있어.”

“싫어. 너랑 같이 볼래.”

지금 하고 있는 과제를 끝내면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참이었다. 물론 의향을 구하는 제안 같은 게 아니라, 그러자는 차무겸의 일방적인 지시였다.

차무겸에게 있어 질리지 않는 얼마 안 되는 취미 중 하나가 영화 감상이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을 매우 싫어하는 성격답게 그는 어지간하여 집에서 관람을 즐기는 편이었다. 블라인드를 내리면 영화를 보기에 알맞은 조도가 형성되고, 또 영화관 스크린과 비슷한 크기의 티브이다 보니 확실히 집에서 봐도 그 느낌을 충분히 낼 수 있었다.

“번역 과제야?”

“응.”

차무겸은 흐응, 하고 심드렁하게 반응하고는 키보드를 치는 내 손목을 붙잡아 떼어냈다. 그리고 내 뒤에 선 불편한 자세로 몇 줄 남지 않은 번역을 대신 했다.

가벼운 손길로 썼다가 다른 식의 해석이 더 알맞다고 생각하는지 지우기 버튼을 눌러 쭉 지우고 다시 작성하기도 했다. 나는 나의 리포트가 그의 해석으로 채워지는 걸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차무겸은 어려서부터 해외를 여행 다닌 경험이 잦아서 그런지 영어에 능통했다. 수능에서 유일하게 외국어 영역이 만점이었다. 회화로 치자면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끝.”

마지막에 end. 까지 깔끔하게 치고 엔터를 누른 차무겸이 귓불을 꽉 깨물었다. 나는 번역 파일을 저장하고 잘 저장이 됐나 점검까지 한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차무겸은 1층으로 향하며 조금 전 번역을 하느라 읽은 영어 구절을 따라 읊었다. 부드러이 굴러가는 발음이 원어민의 것처럼 유창했다. 나지막한 음성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는 내가 영어교육과로 진로를 정한 이유를 떠올렸다.

처음 차무겸의 강요에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펼쳐진 신세계 때문이었다.

귓전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언어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의사소통에 능숙한 차무겸은 무척이나 자유로워 보였다. 입을 열기는커녕 들리는 말의 뜻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굳건히 닫힌 새장 속에 갇힌 새라면, 그는 활짝 열린 문 너머로 크게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새 같았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자유를 조금 동경했던 것도 같다.

그래서 영어를 배워보고 싶었다. 물론 입시는 그런 낭만적인 꿈에 빗댈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치열했다. 그리하여 나 스스로 정하기를 영어교육과로 타협을 보았다. 동경하는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모방할 수 있는 영어도 배우고, 이곳 한국에서 삶의 터전을 구할 수도 있는 방도가 될.

학과를 정한 것에도 결국은 차무겸이 개입되어 있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막 들이찼을 때 1층에 도착했다. 재생 버튼만 누르면 바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준비는 모두 마쳐져 있었다. 차무겸이 푹신한 가죽 소파 한가운데에 앉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팔걸이에 가까운 쪽에 앉았다.

“왜 거기 앉아.”

그러자 차무겸이 팔을 뻗어 내 허리를 감싸 안아 잡아당겼다. 결국 나는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차무겸이 정지해둔 영화를 재생시켰다. 불꽃이 터지고 웅장한 소리로 채워진 오프닝 화면이 망막을 다채롭게 물들였다. 나는 숨을 내쉬며 자세를 조금 편안히 잡았다.

“마셔.”

그런 내 앞으로 무언가 뻗어졌다. 평소에 좋아해서 자주 마시고는 하는 이온 음료였다. 호불호가 뚜렷한 만큼 밍밍한 맛을 싫어하는 차무겸이 내밀기에는 다소 생경한 것이었다. 얼떨결에 받아 든 나는 더듬더듬 말했다.

“목 안 마른데….”

“그래도 마셔.”

하는 수 없이 나는 뚜껑을 따 한 입을 축였다. 아직까지 허리춤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은 손이 상의 부근으로 파고들어 살갗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바람에 두 입을 더 삼켜야만 했다. 꿀꺽꿀꺽 삼키고 바라보니 차무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 안에 남은 액체의 맛이 순간 께름칙하게 다가왔다.

단순히 나의 기우인 건지 차무겸은 손을 떼고서 영화에 집중했다. 나 역시도 고개를 정면으로 고정시켰다.

영화는 개봉한 지 꽤 지났음에도 보기 드문 명작으로 회자되어 인기가 꾸준히 유지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명작은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하기 위해서 가끔 지루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없잖아 있었다. 오늘 보게 된 것이 그랬다.

나는 숨길 수 없는 무료함과,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중간 음료수를 마시라는 차무겸의 종용 속에 시간을 죽였다.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다가 결국 이온 음료 페트병이 텅 비었다. 나는 그것을 소파 밑에 내려두고서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하지만 역시나, 한번 물꼬를 튼 따분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지루하지.”

그때 마치 내 속내를 까뒤집어 읽은 것처럼 차무겸이 나른하게 속삭였다. 너도 그러느냐고 되묻기엔 녀석의 눈동자가 너무나 또렷하게 반짝였다. 꿍꿍이가 있는 듯한 동공에 마음이 속절없이 요동쳤다. 나는 이제 개기름이 둥둥 떠다니듯 번들거리는 저 눈의 의미를 모르지 않기에.

“내려가서 누워 봐.”

차무겸이 꼬아 앉은 다리를 까딱거리며 소파 밑을 가리켰다. 버텨 봤자 놈의 요새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도망칠 길은 없었다. 이 굴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들 그게 내게 있어서 이로운 결과가 도출될지도 미지수였다.

나는 차무겸이 내 인생에 끼어들기 전 맛본 구질구질함을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해두고 살아갔다. 그건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기억의 파편이었다. 그러니만큼 최대한 바짝 엎드려 하란 대로 하고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상책이었다.

굼뜬 속도로 꾸물꾸물 소파 아래로 내려갔다. 영화에서 나오는 혼잡한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고막을 쓱쓱 긁어대고 멀어졌다.

다리를 풀고 따라붙은 차무겸이 천장을 보도록 나를 눕혔다. 자연스럽게 허벅지를 가르고 육중한 체구를 그 사이에 끼웠다. ‘그 짓’을 하기 위한 본격적인 자세였다. 엉덩이를 부드럽게 주물럭거리던 손이 고무줄로 이루어진 편한 바지와 팬티를 한 번에 벗겨냈다.

“으….”

내게 입힌 자신의 반팔 티셔츠를 가볍게 들춘 차무겸이 아랫배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뭐 하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전 그가 준 음료수를 다 마신 까닭인지 배 속에 든 액체가 꿀렁꿀렁대는 느낌이었다.

“오늘 너랑 해보고 싶은 거 있어.”

최근 들어 내가 차무겸에게서 가장 듣기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속된 말로 내게 아다를 떼였다고 주장하는 차무겸은 바깥에서 듣고 온 섹스 정보로 나와 뒹구는 걸 지나치게 좋아했다. 정말 동정을 깨자마자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 하는, 음험한 탐구욕을 불태우는 사내처럼.

차무겸은 모아든 내 무릎을 활짝 벌렸다. 손바닥으로 건조하게 마른 질구를 위아래로 쓸던 그가 이내 상체를 숙였다.

“흣, 차, 차무겸!”

나는 깜짝 놀라 늘어뜨려 놓은 상체를 번쩍 일으켰다. 하지만 차무겸이 나의 엉덩이를 그러쥐어 제 입 쪽으로 끌어당기는 탓에 다시 풀썩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그렇게나 칭찬이 자자하던 오뚝한 콧날이 동그랗게 솟아오른 음핵을 부드러이 문질렀다. 따끈한 사내의 숨결이 옅은 소름을 돋아내기 전, 물컹하고 축축한 혓바닥이 질구를 야릇하게 갈랐다.

“하읍…!”

생경하고 농도 짙은 행위에 턱이 치들렸다. 끈적한 쿠퍼액으로 젖어 늘 아래를 쑤셔발길 듯 닿아 문질러지던 귀두와는 달랐다. 그것보다 조금 더 농밀하고 진득했다.

첫 행위 땐 전희 한 번 없이 페니스부터 쑤셔 박았고, 그 이후로도 그런 강압적인 방식으로 관계가 진행되곤 했다. 그러니 내게는 지금 이 상황이 낯설기 짝이 없었다. 예민하면서도 타인에게 내보이기에는 수치스러운 부위를 혀에 농락당하며 쭙쭙 빨린다는 게 돌이킬 수 없이 민망했다. 공중에 뜬 발뒤꿈치가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힘이 들어간 엉덩이가 허공으로 살짝 떠 놓아달라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그러나 오히려 그럴수록 음순 사이를 집요하게 헤집어 할짝대는 혓몸과 더 밀착되어 문질러졌다. 벌어진 아래가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물과 그의 타액으로 젖어 들었다.

“으응, 응, 아…!”

차무겸은 자꾸 다리를 오므리려고 끙끙대는 내 행동이 마뜩잖았는지 아예 양쪽 오금을 그러쥐고서 바닥에 고정시켰다. 엠 자에 가까운 다리 모양을 취한 채로 그에게 속수무책 드러난 아래를 쪽쪽 빨렸다. 붉은 혀가 대음순 사이를 이리저리 쑤석거리며 신명 나게 질구를 헤집어댔다. 나는 바닥을 박박 긁다가 결국에는 차무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우응, 흑, 핫, 아아…!”

나의 신음이 한층 더 간드러지게 휘어진 건 혀끝이 음핵을 집중적으로 굴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치아로 가볍게 긁어 자극의 포문을 연 차무겸은 혓바닥을 넓게 펴 그 부위 전체를 음미하듯 빨아 먹었다. 매일 밤마다 자극을 받아 훈련이라도 된 것처럼 돌기는 금세 예민하게 제 몸을 세웠다. 차무겸은 단단히 선 그 모양새가 맘에 든 것처럼 도톰한 혀로 그 부위를 더 진득하게 비볐다.

“읏, 안… 아!”

음핵이 발갛게 살쪄 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낼 즈음 축축한 혀가 떨어져 나갔다. 차무겸이 상체를 세우며 음액으로 젖어 든 제 입술을 할짝거렸다. 물 묻은 흑요석처럼 번들대는 그의 눈동자는 가랑이 사이를 끈질기게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휘젓다가 스친 단단하고도 묵직한 위협에 움찔했다. 차무겸의 트레이닝 바지춤이었다.

“느낌 좀 와?”

“흐… 뭐…?”

그의 손바닥이 다시금 내 배꼽 부근을 부드럽게 짓눌렀다. 애무로 자극을 받은 배 안쪽이 꽉 조여들자 물기로 번드르르하게 젖은 구멍 역시 뻐끔뻐끔 수축했다. 차무겸은 조금 전까지 먹이를 찾아 헤매는 수캐처럼 게걸스레 혀를 굴리던 질구로 손가락을 쑥 밀어 넣었다.

“저번에 못 본 거 오늘 보려고.”

“읏, 뭐를….”

“여자 사정.”

신음하면서도 불 꺼진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던 내 눈이 당혹으로 휘둥그레졌다. 당황하여 아래에 손가락이 꽂힌 것도 잊은 얼굴로 더듬더듬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자 차무겸은 조금의 웃음기도 없는 진지한 얼굴로 뇌까렸다.

“너 싸는 거 볼 거야.”

“시, 싫어. 그런 걸 왜 해! 놔!”

차무겸은 본능적인 거부감에 발버둥을 치는 나를 가볍게 제압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강압적인 첫 행위가 떠올랐다. 우리의 섹스 방식이 어떻게 바뀐다고 한들 기본적인 틀은 여전했다. 여전히 나는 나의 의사를 표출하지 못한 채로 차무겸에게 억눌려야만 하는 것이다.

“슬슬 쌀 때 된 거 같은데….”

차무겸의 왼손이 아까부터 집요하게 배 위를 머물렀다. 나는 그제야 녀석이 아까부터 음료수를 마시라 종용한 이유를 알아챘다. 전부 다 이 괴이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를 위해서였구나. 오싹함이 등골을 까득까득 긁었다.

“기다려 봐. 한번 해보자.”

“무겸아. 그냥, 그냥 넣어….”

어차피 섹스를 피할 수 없다면 정석적인 방식으로 해치우고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싶었다. 이건 내게 사랑이나 감정의 교감 같은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차무겸의 변덕과 이기심에 바짝 기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아래로 그의 정액을 받아내야 한다면 오로지 그를 위한 최종적인 행위로만 이 짓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나는 집어넣은 손가락으로 내벽을 부드럽게 긁는 그의 행동에 눈가를 떨면서도 스스로 오금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을 쭙쭙 빨아먹는 밑구멍이 훤히 노출되도록 말이다.

“응? 그냥… 해. 바로 넣어줘.”

어둠에 반쯤 먹힌 차무겸의 눈동자가 요란하게 비틀렸다. 눈빛의 변화에는 소리가 따를 리가 없는데도 나는 유리가 미약하게 부서지는 듯한 환청을 들었다.

“당장 처박고 싶게 하지 마.”

차무겸은 내가 수치심을 무릅쓰고 만든 자세를 손쉽게 무너뜨렸다. 조금 전까지 천장을 보던 나의 고개가 휙 돌아 바닥으로 향했다. 나를 엎드려 눕힌 차무겸이 오른쪽 둔부를 찰싹 내려쳤다. 흣! 내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샜다.

“이거 여자가 기분 좋은 거래. 너도 이왕 하는 김에 즐기면 좋잖아.”

“아냐, 나, 흑, 괘, 괜찮은데… 아흣!”

내 상체를 누르는 힘에 나는 엉덩이만 허공으로 치켜든 자세가 되었다. 차무겸의 손가락이 하나 더 꽂혀왔다. 평소처럼 누워서 받는 게 아니다 보니 손끝이 늘 찌르고 들어오는 부분이 아니라 다른 부분을 할퀴었다.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른 배 속이 잘게 요동을 쳤다.

차무겸은 완전히 내 위로 자리를 잡고서 한쪽 손으로는 질구 안을 휘휘 젓고, 다른 손으로는 배를 감싸 여기저기 주물렀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눅진하게 젖어 든 안을 헤치는 손가락이 어딘가를 꾸욱 누를 때면 무심코 구멍을 꽉 조였다.

그리고, 정말 무섭게도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만 같은 요의가 아랫배를 경련으로 물들였다.

“흑, 무겸, 무겸아…!”

“응.”

휘청대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차무겸은 아예 내 한쪽 다리를 고쳐잡고서 질 안을 마구잡이로 찔러 올렸다.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난 손가락이 빠끔히 조여드는 입구를 포악하게 벌렸다. 차무겸은 안쪽 깊숙이 처박아서는 가위질하듯 손가락을 벌렸다. 안쪽 살점이 아슬아슬하게 벌어지는 감각에 입이 헤벌어졌다. 내부에 가득 고인 애액이 손가락을 타고 바깥으로 찍찍 흘러넘쳤다.

“난리 났네. 나 손목까지 젖어서 끈적해.”

“흐, 으, 으응…!”

그가 아래에 손가락 세 마디를 쑤셔 넣고서 손바닥으로 음핵을 짓이길 때면 쩌덕쩌덕, 찔꺽거리는 소리가 끝없이 났다. 나는 뇌를 조여들게 하는 방출의 욕구에 입을 벌린 채로 덜덜 떨었다. 평소라면 참아볼 텐데 하필이면 아까 차무겸이 먹인 음료수가 문제였다. 누가 망치로 연신 두드리는 것처럼 오금에 힘이 풀렸다. 몰아치는 요의가 배 안쪽을 장악하여 자릿자릿하게 진동시킬 때였다.

“하으으응…!”

이윽고 차무겸의 덧댄 손가락이 깊직한 안쪽 어딘가를 후려치듯이 두드리고 나간 순간이었다.

머리끝까지 달아오른 맥이 탁 풀린 건 찰나의 일이었다. 흠뻑 젖은 채로 빠지는 손가락 너머,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많은 양의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얼굴을 러그에 처박아둔 상태라 보진 않았지만 쉬이이,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지금 이 상황을 똑똑히 인지하게끔 했다. 머릿속에 지저분한 낙서 자국을 새기는 것처럼 정신이 혼몽하게 어그러졌다. 어떻게든 벌어진 다리를 오므리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었고, 뭣보다 차무겸이 그 광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발목을 단단히 그러쥐고 있어서 무리였다. 내가 아래로 소변 같은 것을 주륵주륵 싸대는 동안 물끄러미 지켜보던 차무겸이 곧 축축이 젖어 든 러그를 보며 음탕하게 웃었다.

그는 허벅지까지 쏟아진 물기를 쓱 쓸어올려 내 음부에 처덕처덕 문질러 발랐다.

“야해.”

“흑, 흐읍….”

“기분 좋았어? 사정하니까 좋아?”

나는 러그를 구명줄처럼 그러쥔 채 헐떡거리기만 했다. 타인 앞에서 아랫도리를 훤히 내놓은 채 방뇨했다는 창피함이 온몸을 벌겋게 물들이는 심정이었다. 그게 어딘들 숨을 곳이 있다면 숨고 싶을 만큼.

그러나 차무겸은 내가 제 시선이나 말을 피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옆으로 엎어진 내 몸을 끌고 와 다시 정상위의 자세를 잡았다. 발목이 잡혀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 오한이 되어 뇌리를 날카롭게 쑤셨다.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이 또다시 예민하게 움찔댄 건, 차무겸이 내내 바지춤에 옥죄어 있던 페니스를 끄집어내 벌름대는 구멍으로 주저 없이 밀어 넣었을 때였다. 내 위로 올라탄 차무겸이 등줄기를 뻣뻣하게 굳히며 아득하게 탄성했다.

“와….”

“흐응…! 하으….”

“앞으로는 밑에 좀 풀어주고 박을까? 젖은 채로 감싸주는 거… 흣, 돌아버리게 좋다.”

차무겸은 제가 입고 있던 티셔츠와 배까지 말려 올라간 나의 윗옷을 차례대로 벗겼다. 나신의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은 그가 이제는 길이 든 아래에 유연하게 피스톤질을 했다. 첫 번만 해도 방향의 일관성이나 박자감 없이 무작스럽게 박아대더니, 이제 어느 정도 능란하게 허리를 돌릴 줄 알았다.

그럴수록 나는 배 속에 전류를 품은 구렁이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살기둥이 평소보다 더 달아오른 질 안을 벅벅 긁고 지나가는 감각에 우둘투둘한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름의 원인을 모르지 않아 더욱 암담했다. 차무겸은 때아닌 혼돈을 맞닥뜨린 것처럼 어찌할 줄 모르고 바동거리는 내 다리를 잡아 고정시키며 입아귀를 깊이 휘었다.

“너 기분 좋지, 지금.”

나도 모르게 튀어나갈 뻔한 신음을 씹어 삼키려는 것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서는 안 된다. 이 행위에 느껴서는 안 된다. 그럼 나도 차무겸의 몰상식한 파렴치함에 동조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럼에도 아래가 흐물흐물해질 만큼 빨아주고, 배 속이 비비 꼬일 만큼 격렬하게 쑤셔댄 다음, 발기한 거근으로 안을 홧홧하게 쑤셔주는 게….

“아흣!”

“빨아 먹는 게 달라. 보짓살 쫀득쫀득하게 들러붙잖아.”

차무겸은 박차를 가하려는 것처럼 아랫도리를 철썩철썩 부딪쳐오며 출렁대는 젖가슴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입술이 요사스럽게 움직이나 싶더라니 곧 젖꼭지가 제자리를 찾듯 쏙 빨려 들어갔다. 벌거스름하게 물든 유두를 우물우물 빨아주며 차무겸은 아래를 들소처럼 들이박았다. 내가 누운 러그가 통째로 밀려 올라갈 만큼 격렬하고 상스럽다. 나는 차무겸의 아래에 깔려 목구멍에서부터 꺾여 나오는 신음을 끝없이 토해냈다.

“하아, 후으, 흐…!”

엉덩이는 딱딱한 장골에 철썩철썩 부딪치고, 한 손으로는 젖가슴을 흠씬 틀어쥐고, 벌어진 아래에서는 계속해서 불꼬챙이 같은 것이 푹푹 파헤쳐 들어왔다.

옆으로 누운 나의 위로 영화 화면의 창백한 불빛이 비쳐왔다. 영화는 이미 두 번이나 상영을 마치고 세 번째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첫 번째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시작된 섹스는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중이었다.

나는 아래가 퉁퉁 불어 죄다 까진 듯한 쓰라림과 그럼에도 그 안쪽, 성기를 오물쪼물 조여 무는 안쪽에서 퍼지는 뭉근한 희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러는 게 비단 나뿐만도 아니었다. 이미 두 번이나 사정에 임한 차무겸은 내 엉덩이를 움켜쥐어 벌리며 성기를 깊숙이 꽂아 넣었다. 격렬한 마찰로 액끼리 비벼져 결합부에 거미줄 같은 크림이 쩍쩍 늘어날 때마다 차무겸은 저렇게 변태처럼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흣, 넣고 있으면 자지 불어터질 것 같아.”

“흐응, 아…!”

“계속 물 나와서, 하아, 미끌미끌하잖아. 그치?”

차무겸이 상체를 숙여 나의 뺨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얼마 안 가서는 애교라도 부리듯 쪽쪽 대며 입술을 맞췄다. 나는 기진한 심경에 평소처럼 소심한 반항을 할 생각도 못 하고 고분고분 차무겸의 목을 얼싸안았다. 맞닿은 차무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그때였다.

지이잉. 소파 위에서 진동 소리가 들렸다.

차무겸은 무시할 생각인지 내 혀를 게걸스레 빨며 피스톤질에 집중했다. 그러나 전화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다. 짐승처럼 섹스에 눈이 뒤집힌 와중에도 간과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 건지 차무겸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엉덩이를 매끄럽게 돌려 물기 찬 내벽을 휘젓는 걸 멈추지 않았다.

소파 구석에 처박힌 핸드폰을 들어 올린 그의 표정이 모호하게 변했다. 러그에 뺨을 비비적거리며 신음하던 나는 고개를 비틀다가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차무겸의 입꼬리가 의뭉스럽게 휘어졌다.

곧 그가 핸드폰을 내 머리맡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벼운 손길로 액정을 터치하여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온 호칭에 대번 아연해졌다. 시선이 다급히 돌아갔다. 어렴풋이나마 상이 잡히는 시야에는 정말로 ‘아버지’라는 저장명이 떠 있었다.

“읏…!”

차무겸이 버둥거리는 내 허리를 감싸 쥐고서 성기를 안쪽으로 진득하게 밀어 넣었다. 나는 급히 입술을 틀어막았다.

-받는 게 늦구나. 혹시 내가 곤란한 때에 전화라도 한 거냐?

“아니에요. 핸드폰을 안 보고 있어서.”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바로 스피커폰으로 전환한 까닭에 유선 너머로 차무겸 부친의 목소리가 또렷이 전해져왔다. 나는 손으로 입술을 막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차무겸은 여전히 얄궂게 웃으며 피스톤질하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걸쳐진 내 양다리가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그래. 다름이 아니고….

차무겸의 아버지가 그에게 무언가를 물었다.

그 차분하고 가지런한 음성과 달리 받는 쪽의 상황은 결코 여의치 않았다. 나는 차무겸을 향해 ‘끊어, 제발 끊어.’ 하고 입 모양만 간신히 벙긋거렸으나 그는 악마처럼 사악하게 웃고 말 뿐이었다. 통화 내용을 듣기는 하는 건지 차무겸은 발버둥을 치며 도망가려는 나를 깔아뭉개며 골반을 푹푹 쳐올렸다. 결합부가 찰싹, 맞물렸다가 떨어지는 사이로 걸쭉한 분비액이 뚝뚝 떨어졌다.

“응, 흡, 읏, 하으….”

죽을 각오로 참아내는 신음에 숨이 껄떡껄떡 넘어갔다. 차무겸이 손을 뻗었다. 무릎 위로 닿아 미끄러지듯이 흘러간 그것이 제 성기를 출납하는 음부에 닿아 음핵을 비비듯이 긁었다. 머지않아서는 아랫배를 스치고 지나가 젖가슴을 흠씬 틀어쥐어 주무르더니, 뾰족하게 치들린 젖꼭지를 살살 돌렸다. 등줄기를 쑤시듯이 울리는 전율에 나는 교성을 삼키며 허리를 둥글게 휘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맞추어 차무겸이 성기를 깊직이 찍어 올린 탓에 자궁구가 쿵 울릴 만큼 거센 희열이 전신을 삼켰다.

“아흐…!”

-…라는데 괜찮겠니?

머리가 혼몽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고 사지는 덜덜 떨렸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가운데서 혼돈을 겪고 있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차무겸은 바들바들 경련하는 나를 내리누르며 정사의 흥을 계속해서 유지해나갔다. 침착하게 건너편을 향해 대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요, 하아,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알겠다. 그런데 무얼 하길래 아까부터 숨이 이렇게 거칠어.

차무겸의 무자비한 허릿짓 아래에서 간신히 숨을 죽이던 나는 대번 쩍 굳었다. 초조함과 불안함의 안개에 반쯤 잠긴 심장이 거뭇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정물처럼 경직된 반면 차무겸은 계속해서 안쪽에 좆을 문질러대며 씩 웃었다. 그가 뼈가 불거진 내 무릎을 움켜쥐며 간결히 대꾸했다.

“아, 운동 중이라서요.”

-운동?

“네. 후, 조만간 뵐 거니 예쁘게 보여야죠.”

약간의 애교가 섞인 말에 건너편에서 중년 남성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차무겸은 이 조마조마한 상황을 들킬까 겁도 나지 않는지 태연하게 반응하고는 내 턱을 쭙 빨아들였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두 개의 나체가 러그 위에서 칭칭 감겼다. 정확히는 한쪽이 한쪽을 짓뭉개고 있는 거지만.

-그러고 보니 이번에 그 여자애와 동행할 생각이라 들었다.

내 목덜미를 아이스크림 핥아 먹듯 혀로 쓸어올리던 차무겸이 멈칫했다. 나는 차무겸의 부친이 일컫는 게 나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그러려고요.”

-아버지께서도 궁금해하시는 눈치던데… 이번에 데려오면 인사라도 시키지 그러니.

“생각해볼게요.”

대화의 흐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차무겸의 부친이 나를 일컫는 목소리가 생각보다 나긋나긋해서 당혹스러웠다.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차무겸의 곁에 빌붙어 사는 존재인데, 거슬리지도 않는 건가? 더하여 데려가? 어디를? 그리고 아버지? 인사라니?

그의 부친이 아버지라고 부를 만한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차무겸의 조부였다.

“그럼 그때 봬요, 아버지.”

차무겸은 다소 일방적으로 인사를 마치고는 내 다리를 제대로 얼싸안았다. 그에 불안감을 느끼기 무섭게 조금 잦아들었던 추삽질이 거세졌다. 미끄러지듯이 파고들어 안을 팡팡 쳐대는 게 신경 체계를 죄다 뒤틀었다. 너무나 깊숙한 안쪽, 자궁까지 두드려지는 듯한 원색적인 희열에 온몸의 솜털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아, 아아, 아…!”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교성을 내질렀다. 사타구니가 정신없이 맞부딪쳤다. 차무겸은 고삐가 풀린 것처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말뚝질을 하며 정수리까지 차오른 음탕한 욕구를 풀었다.

“다리 더 벌려.”

“으, 흐, 무겸아, 전화, 아, 읏…! 아앙!”

“이미 끊었어. 누가 그렇게 씹어 먹으래. 하마터면 쌀 뻔했잖아. 누구를 조루로 만들려고.”

“흐응, 응, 아, 아앗…!”

“평생 너랑 이러고 싶다. 이렇게 개처럼, 흘레붙고, 하아, 네 구멍 속에 내 정액 넘칠 만큼 가득 처발라서… 씨발!”

차무겸이 결국에는 한 줌 유지하던 이성을 잃고서 달려들었다. 나는 어디론가 추락할 것 같은 아찔하고 혼란한 느낌에 그를 간절하게 붙잡았다.

차무겸이 그런 내 턱을 단단히 쥐고서 게걸스레 키스를 했다. 우리는 위아래로 달라붙어 질척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영화는 마침내 세 번을 기점으로 꺼졌고, 집 안을 감도는 쾌적한 공기는 삿된 부유물이 달라붙은 양 혼탁하게 흐려진 지 오래였다. 나의 머릿속 역시 그렇게 난도질되어서, 그가 나를 데려가겠다고 한 곳이 어디인지 묻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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