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6화 (6/24)
  • 6장.

    한바탕 소란이 일고, 하루를 목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지내야만 했다. 아니, 내 목에 가시가 박힌 건지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그렇게 느껴진 건지.

    이후 문태욱은 곧바로 양호실로 갔다가 상태가 심각해 교외 병원으로 보내졌다. 차무겸은 곧장 학생부실로 끌려갔다. 난리가 났던 자리에는 문태욱이 흘린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쉬는 시간, 고작 10분은 될까 말까 한 사이에 벌어진 끔찍한 소란이었다.

    반 아이들은 나를 잡아먹을 군소리를 끝없이 발산했다. 그 현장을 목격한 누군가의 입을 통하여 얘기는 학교를 쏘다니는 쥐의 귓속까지 들어갈 정도로 빠르게, 또 질 낮게 번졌다. 하교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차무겸의 애를 밴 수준이 되어 있었고, 차무겸은 조폭의 자식일 수도 있다는 색다른 가설이 나왔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이리도 물밀듯이 쏟아진 건 처음이었다. 머리가 너무나 복잡해서 두통이 일 정도였다. 그 소요 이후로 차무겸은 내내 학생부실에 있었다. 내가 몸소 찾아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쉬는 시간 복도를 앞다투어 나선 아이들이 반으로 돌아올 때면 특보처럼 소식을 들고 온 까닭이었다.

    그렇게 방과 후가 되었고,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난 이후에야 못 박힌 듯 착석해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귓전을 찢을 듯 울리던 이명이 뚝 그친 학교는 흡사 폐허처럼 고요했다.

    조용히 발을 옮겨 차무겸의 반으로 향했다. 녀석의 자리에 가방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가방을 챙겨 학생부실로 향했다. 굳건히 닫힌 문 위쪽, 빼꼼히 난 창문을 살펴보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놀라 뒤로 두 발 물러난 코앞에 너른 가슴팍이 있었다.

    슬그머니 든 시야 속에 차무겸이 담겼다.

    “아직 안 갔어?”

    “너 손 괜찮아?”

    서로의 입에서 질문이 앞다투어 나왔다.

    나의 눈동자가 차무겸의 어깨 너머로 미끄러졌다. 학생부실에는 차무겸 혼자였다.

    “가자.”

    “가도 돼?”

    “응.”

    차무겸은 색채감을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나를 이끌었다. 사실 학생주임이 있기를 바랐다. 폭력의 정도가 지나쳤다지만 이 상황을 발발한 건 명백히 문태욱이었다. 그 새끼가 나에게 우유를 던지면서 저급한 조롱을 한 게 시작 아닌가. 나의 증언이 차무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말하려고 왔는데. 그러나 얼핏 보아하니 사태는 이미 얼추 끝난 듯 보였다.

    나는 내게로 가까이 다가와 서는 차무겸에게서 한 발 물러났다. 차무겸의 매끈한 눈가가 미세하게 비틀렸다.

    “왜 뒤로 가.”

    “나… 냄새날지도 몰라. 우유 묻은 거 제대로 못 씻어서….”

    화장실에 가서 씻었다면 나았겠지만, 쉬는 시간 동안 복도로 나설 자신이 없었다. 결국 교복 조끼를 벗어 대충이라도 닦아내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우유 특유의 비린내가 아직까지 남았을지 모른다. 차무겸은 떠듬떠듬 설명하는 나를 물끄럼 보다가 팔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괜찮으니까 이리 와.”

    아까 치밀었던 분개심이 미처 가라앉지 않은 듯 다소 싸늘하게 들리는 한마디였다. 입술을 말아 물었다가 놓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방황하던 시선을 한 곳으로 미끄러뜨렸다.

    “치료 안 했어?”

    차무겸의 손등은 여전히 발갛게 까진 상태였다. 후두려 맞은 문태욱에 비하면 별것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상처가 더욱 커 보였다. 차무겸의 행위가 잘못된 방식이라는 걸 알지만 솔직히 나를 그따위로 매도하는 문태욱이 그렇게 된 건 조금쯤 통쾌했다. 그 뒤로 이어졌던, 문태욱이 나를 좋아한다든가 어쩐다든가 하는 대화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말이다.

    “네가 해줘.”

    차무겸은 피곤한 것처럼 목 뒤를 주무르며 발을 옮겼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차무겸이 또다시 나의 팔을 잡아다 제 옆에 세웠다.

    학교 정문을 나서니 차 한 대가 보였다. 연락이라도 받은 건지 박승원이 웬일로 차에서 내려 차무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다가와 차무겸을 살폈다. 오래지 않아 손등이 까진 것 말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얼른 차에 타라고 종용했다.

    “회장님이 나한테 직접 전화하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할아버지 화나셨어?”

    “그럴 리가. 너 어디 다친 건 아닌지 걱정만 하셨어.”

    박승원이 룸 미러로 차무겸과 눈을 맞췄다.

    “그 피해 학생은 잘 해결했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문태욱에 관한 얘기였다.

    입 다물고 눈만 도르륵 굴리던 상황에서 나는 상당한 기이함을 느꼈다. 그 누구도 차무겸이 눈살 찌푸려질 만큼의 폭력성을 내보인 것에 관해서는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런 특성을 진작 알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관용하에 그저 묵인하고 넘어가는 건지….

    나는 모른다. 나는 저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치지 않는 빗줄기가 유난히 창문을 강하게 때렸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차는 금세 언덕을 타고 올라 저택에 도착했다. 차고에서 내린 차무겸은 치료를 해달라는 명분으로 나를 집에 끌어들였다. 박승원은 저택 뒤편에 딸린 별채로 향했다. 입주 가정부와 박승원은 거기서 지낸다고 했다.

    차무겸에게 양해를 구하여 1층 욕실에서 간단히 머리를 감고 나왔다. 상한 우유를 맞은 게 아직까지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화장실 내부에는 드라이기까지 구비가 되어 있어서 물에 푹 젖은 머리칼을 다 말리고 나갈 수 있었다. 전원을 켤 때마다 텅텅거리는 소리가 나는 우리 집 고철 덩어리와 달리 성능이 무척이나 좋았다. 버튼이 섬세하게 나누어져 바람의 온도부터 세기까지 조절할 수가 있었다.

    거실로 나오니 차무겸은 소파에 앉아 무료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구급상자가 놓인 채였다. 조용히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손 줘.”

    차무겸은 고분고분하게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를 패다가 상처가 나는 사람은 또 처음 본다. 아니, 사실은 그간 내가 알던 차무겸과는 조금 궤가 다른 듯 폭력적으로 구는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폭력은 싫었다.

    폭력이 익숙한 부친 아래에서 자란 자식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어떤 상황에서도 그건 정당화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 증거로 차무겸이 손을 휘두를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기 바쁘던 아이들처럼, 나 역시 주춤대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사태가 전부 끝난 지금, 기분이 말로 설명 못 할 만큼 미묘했다. 차무겸의 폭력을 합리화할 수는 없겠지만, 문태욱이 그렇게 된 건 솔직히 속 시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이유로 차무겸에게 한 소리를 하기엔 나를 빼놓고 아무도 그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고 더하여 이미 일이 처리됐다고 하니 굳이 다시 입 밖으로 꺼낼 필요가 없게끔 느껴졌다.

    구급상자를 막 열었을 때였다. 소파 한쪽에 놓인 차무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차무겸은 내게 내민 쪽의 반대 손으로 통화를 연결하고 귀로 가져다 댔다.

    “네, 아버지.”

    그의 입에서 나온 호칭에 연고를 꺼내던 내가 멈칫했다.

    “별일 아니었어요. 그냥 친구랑 좀 다퉈서.”

    정말로 사소한 소란을 다루는 것처럼 통상적인 태도였다. 나는 연고 뚜껑을 돌려 유백색의 약을 쭉 짠 뒤 잠자는 맹수처럼 곤하게 구는 손등 위 상처에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아뇨, 설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짜증 나게 하더라고요.”

    차무겸의 말투는 살가웠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꽤나 두터워 보였다. 조금 전 차 속에서 듣기로는 할아버지까지 걱정 어린 연락을 했다고 했지. 얘, 되게 사랑받고 자랐나 보구나. 나의 가족과는 완전히 딴판인 환경을 곱씹으며 약을 넓게 펴 발랐다. 상처가 정통으로 스치자 차무겸의 손끝이 미약하게 굽어졌다.

    “네. 알죠. 그러지 않아도 그럴까 생각하던 차예요. 여기 너무 음, 구질구질하달까.”

    약을 바르던 나의 손이 그대로 정지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찰나였고, 애초부터 움직임이 너무 조심스러워서 작정하고 관찰하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힘든 변화였다. 약을 꼼꼼히 발라준 후 연고 뚜껑을 닫을 즈음 ‘들어가세요.’ 하는 인사와 함께 차무겸은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랑 사이 좋은가 봐.”

    살아생전 아빠와 통화 한 번 해본 적 없는 나와 달리 차무겸은 그 일에 익숙해 보였다. 통화 연결 버튼을 누르는 그에게서 짜증이나 곤혹스러운 기색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아버지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너무 시도 때도 없이 유난이라 피곤해. 그럴 만한 일이 있긴 했지만.”

    “일?”

    “응. 그리고 나 삼대독자라서.”

    차무겸은 쓱 웃으며 내가 미처 닫지 못한 구급상자를 닫았다. 삼대독자라는, 굉장히 낯선 단어를 헤아리며 나와 녀석의 차이를 다시금 실감했다. 차무겸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면 걱정과 우려를 보내줄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를 가까이서 챙기는 박승원부터 일일이 전화를 거는 피붙이까지. 배경부터 낱낱 어린 부분마저 우리는 겹치는 것이 하나 없었다.

    솔직히, 부럽고 질투가 난 순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감정도 탁해졌다. 구름은 하늘을 시기할 수 있지만, 땅은 하늘을 시기할 수 없는 것처럼.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는 대상을 두고 잣대를 들이미는 멍청한 짓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 깨달음은 번번이 우리 사이의 거리를 벌렸다. 잊고 있던 현실과 조우할 때마다 나는 차무겸과 멀어졌다. 이 센티, 오 센티, 십 센티, 혹은 그 이상…. 이렇게,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 있지만 실상 우리는 아주 멀리 위치해 있었다. 어쩌면 함께 착석하는 것조차 우스운 수준으로.

    “무겸아.”

    차무겸의 무릎 위에서 빙그르르 돌아가던 핸드폰이 멈추었다.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드니 차무겸의 눈동자가 조금 커져 있었다. 자각하고 행한 건 아니었는데 그를 이름만으로 부르는 게 지금이 처음이라는 걸, 저 얼떨떨한 표정을 보고 알아차렸다.

    “내가 저번에 말했었잖아. 너랑 엮이면 피곤해진다고.”

    “…….”

    “이런 것 때문이야. 우리가 아니라 주변이 시끄러워져. 문태욱도 그렇고, 전예슬도 그렇고. 난 걔네와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은데 너와 있으면 이렇게 계속 얽히게 돼.”

    차무겸은 선망의 대상이고 나는 원망의 대상이다. 빛과 어둠이 뒤섞이는 공간에는 벌레가 득시글 꼬이기 마련이었다. 폭력을 썼다고 한들 문태욱을 저지해준 데에 고마움을 느꼈던 건, 지금까지 나를 위해 나서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껏 누군가로부터 보호를 받아본 적이 전무했으니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차무겸은 나의 곁에 머물 존재가 아니었다. 아름드리나무처럼 이곳 암영 땅에 뿌리를 박고 무럭무럭 자라날 인물이 아니라, 지금 바깥에서 내리는 겨울비처럼 잠시 잠깐 모습을 비쳤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인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 일에 나서지 마.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야박하기 그지없어서 입이 딱 다물렸다.

    더 이상 너에게 기대를 품고 싶지도 않고 네가 나와 엮여 필요 이상으로 피해를 보지도 않았으면 해. 어차피 너는 나를, 그리고 이곳을 떠날 거잖아.

    어쩌면 나의 우려대로 우린 처음부터 엮이면 안 됐을 사이였을지도 몰라.

    매 때 부닥친 갈등 가운데 택한 선택지가 미약한 후회를 낳았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후회를 쉬이 그칠 수가 없었다.

    빗소리가 우리의 발치에서 음울하게 넘실거렸다. 온 세상이 수분기에 젖어 든다. 눈을 내리깐 채 차무겸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떠한 행동 역시도. 나는 부르튼 입술을 말아 물었다가 빼내며 얼굴을 들었다.

    차무겸은, 그러니까….

    저게 무슨 표정이지?

    적어도 내가 녀석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윤기가 흐르는 보석에 미세한 균열이 인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쉽게 간과하고 넘긴 것을 뒤늦게야 알아채고 아차, 한 표정 같기도 했다. 적어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음은 분명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차무겸이 자신의 입술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그 입술이 열린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문태욱 코 말이야.”

    “…….”

    “왜 부러뜨렸는지 알아?”

    조급하게 울리는 심장의 박동까지 죽이려 애쓰며 기다린 대답치고 엉뚱하게 튄 경향이 없잖아 있었다. 차무겸이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꺼내는지 몰랐지만 일단은 듣고 있다는 신호로 눈을 맞추었다. 기름한 손가락에 문질러지던 차무겸의 입꼬리가 천천히 휘어졌다.

    “마음에 안 들어서.”

    문태욱의 콧대가 기괴하게 비틀린 장면을 떠올렸다. 그렇게 한 사람의 코를 무자비하게 뭉갠 이유치고는 영 사소했다. 왜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알 수 없어서 혹 부가 설명이 붙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차무겸은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은 낯으로 그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나의 시선이 맥없이 그 뒤를 좇았다.

    “가자, 데려다줄게.”

    “어?”

    “오늘은 일찍 집에 가.”

    어느 때는 세상 단순하게 보이다가도 어느 때는 아주 얇은 벽이 겹겹이 쌓여 있어 도무지 속을 헤아려볼 수 없는 동공이 나를 직시했다. 묘한 채근이 느껴지는 대화에 얼떨결에 몸을 일으켰다.

    대체로 박승원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지만 비가 오는 날은 예외였다. 우산을 써야 하는 날이면 차무겸은 늘 직접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소란도 있었으니 오늘은 혼자 가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차무겸은 요지부동이었다. 약을 발라 점성으로 번들거리는 손이 튼튼한 우산 손잡이를 감쌌다.

    집까지 오는 내내 차무겸은 말이 없었다. 평소에는 실없는 소리로 내 헛웃음을 자아내던 녀석이. 기분이 저조하다든가 그렇다기보다는 무언가를 깊이 고심하는 눈치였다. 생각에 골몰히 잠긴 듯하여 굳이 그 사색을 방해하지 않았다. 하나만 가지고 나온 우산 아래 어깨가 이따금 부딪쳤다가 떨어지기만을 반복한 시간이었다.

    차무겸은 늘 이랬다. 우산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나를 데려다줄 때에는 언제나 하나의 우산만 사용했다.

    땅바닥을 보고 걷던 내가 멈칫한 건 집 근처에 다다른 직후였다. 아마 평소였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우산으로 시야가 좁아졌고 더군다나 차무겸도 아무 말이 없어서, 나 역시도 바닥만 쳐다보며 걸어왔기 때문에.

    그리고 고개를 드니….

    “차무겸.”

    나는 우산 손잡이를 쥔 차무겸의 팔을 붙잡았다. 내도록 침묵을 지키던 차무겸이 나를 보았다.

    “이제 그만 가 봐도 돼.”

    평상시와 달리 이음새가 벌어진 대문에서 눈을 떼며 어렵사리 태연한 목소리를 냈다.

    “어서 가서 쉬어. 피곤하겠다.”

    차무겸의 눈길이 나의 어깨 너머로 미끄러졌다. 어느새 집 앞에 다 온 걸 알아챘는지 차무겸은 웃으며 ‘그래.’ 하고 답했다. 허술한 처마 아래에서 녀석을 배웅했다. 차무겸의 너른 등판이 점처럼 작아지다가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급히 발을 돌렸다.

    내 것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큰 발자국이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또렷이 찍혀 있었다.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대문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맞물려놓는 나와 달리 거칠게 열어젖혔다가 아무렇게나 밀쳤는지 이음새가 험상궂게 벌어져 있었다.

    대문 고리를 움켜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조심조심 열어도 귀를 불편하게 긁는 소음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오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가려질 수 있었다. 나는 대문 앞에서부터 집 앞까지 이어지는 진흙 발자국을 보고 미약한 침음을 흘렸다.

    퍼석한 흙이 깔려 있어 비가 오면 자연스레 생기는 크고 작은 웅덩이를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문을 열었을 때 언제나와 같이 적막을 공유하는 집이 아니라, 엉망으로 헤집어진 광경이 눈에 담겼다.

    그 가운데에 선 인물로 신경이 자연히 가닿았다.

    “…아빠.”

    거기에는 눈이 뒤집힌 채로 집 안을 들쑤시는 김규태가 있었다.

    척추를 간지럽히던 불안감은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안중에도 없이 물건을 뒤엎고 무얼 찾는 데에 혈안이 된 아빠를 망연히 응시했다. 역시나 이 쥐꼬리만 한 집은 늘 나의 꿈을 깨부순다. 그래, 이게 맞지. 차무겸과 보내는 아늑하면서도 편안한 삶이 아니라 이쪽이 나의 삶에 걸맞은 행색이었다. 차무겸이 꼬집었던, 구질구질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구정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

    그러던 중 내 정신이 돌아온 건 아빠가 옷장 문을 벌컥 열어젖힌 타이밍이었다.

    실직자가 되어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까닭에 투박해진 손이 남루한 이불 더미를 헤치고서 안을 마구잡이로 파헤쳤다. 그 아래에는 차무겸에게서 받은 돈과 내 통장이 있었다.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요!”

    내 돈은 둘째치고 차무겸에게서 받은 돈은 안 된다. 그건 차무겸에게 돌려주려고 액수 하나 비지 않게 보관하던 것 아닌가.

    “비켜!”

    아빠는 꼭 뭐에 씐 사람처럼 나를 거세게 밀쳤다. 그러나 나는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그를 만류했다. 이제 이 집에 눈이 뒤집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실로 음침한 미치광이의 소굴이었다. 몇 년 만에 본 김규태의 몸에서는 독한 알코올과 비에 젖은 흙냄새가 풍겼다. 속을 기어이 뒤집는 냄새였다.

    “안 된다고요…!”

    “이게!”

    아빠가 노성을 터뜨리며 나의 어깨를 잡아 확 밀쳤다. 옷장 쪽으로 넘어지며 젖혀진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뇌를 쪼개놓는 듯한 통증의 엄습에 눈앞이 핑글 돌았다. 시야가 흐릿하게 돌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나의 몸이 목각 인형처럼 옷장 앞으로 미끄러졌다. 세게 부딪친 충격에 옷장이 휘청거리고, 잘게 쌓인 이불 더미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 사이에서 무언가가 튕겨 나왔다. 눈살을 찌푸린 나와 그런 내 앞에 선 아빠의 시선이 동시에 그리로 향했다. 흰 봉투, 그리고 통장. 삐죽삐죽한 불안이 전신을 뒤덮었다. 황급히 손을 뻗으려고 했으나 그보다 앞서 아빠가 그것을 쥐어 들었다.

    아빠는 정신없이 달려드는 나를 떨쳐내며 흰 봉투를 펼쳤다. 이윽고 그 안에 든 수표 다발을 보고는 광대처럼 입꼬리를 귀에 가깝게 찢어 올려 웃었다.

    “안 돼요, 주세요! 그거 제 돈 아니에요!”

    “네 돈이 아닌데 왜 이게 집에 있어, 이년이 이제 아빠한테 거짓말까지 쳐?”

    아빠의 점퍼 속으로 들어가는 흰 봉투와 통장을 허망히 응시했다.

    통장에는 저 봉투보다 더 많은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다. 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에 이어 차무겸에게서 달마다 받는 월급까지. 그러나 그것보다도 흰 봉투가 더 절실했다. 통장에 든 것은 적어도 ‘내 값’을 하고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흰 봉투는 아니었다. 그래서 불편했고, 그래서 건드리지 않았고, 그래서 돌려주려고 한 거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후회가 짙푸른 파도처럼 괴어올랐다. 대체 나는 왜, 왜 저걸 진즉 돌려주지 않은 거야. 빨리 돌려줬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아빠는 원하는 걸 찾아 두둑해진 점퍼의 주머니를 흡족히 두드리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그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그가 나를 향해 손을 치켜들 때면 저 단전에서부터 넘실대던 살기가 지금 이 순간 정수리까지 치밀었다.

    “…개새끼.”

    김규태의 걸음이 멈추었다. 싸아아, 태풍이 치면 그대로 쓸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허름한 집 안에 기괴한 기류가 감돌았다. 나는 내게 보이는 저 등에서 조마조마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사람인가? 사채를 쓰고서 담보로 나를 넘긴 것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흔한 해명이나 허울 좋은 변명도 없다. 그저 미치광이처럼 돈만 탐낸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저건….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아빠가 뒤를 돌아보았다. 바깥처럼 수분기가 가득 차오른 얼굴로 그를 직시했다. 목이 움츠러들고 손이 떨릴 만큼 두려운데, 그만큼 치미는 적개심도 만만치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은 가끔 사람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나의 분노는 그렇게 집채만 하게 부풀었다.

    “개새끼라고요.”

    “…….”

    “나한테 할 말 없어요? 아니, 그간… 나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요?”

    하필이면.

    차무겸을 챙기는 그의 아버지의 전화를 어쩌다가 엿듣게 되어 속상한 마음이 배가됐다. 비단 차무겸의 아버지뿐일까. 문태욱의 아버지도 아들 사랑으로 유명했으니 오늘, 아주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을 떨며 녀석이 입원한 병원으로 갔을 테다. 하다못해 그런 양아치놈도 있는 멀쩡한 아빠가 왜 내게는 없는 걸까. 나는 전생에 그렇게나 큰 죄를 지은 건가? 이렇게 변변찮은 집구석에 부모조차 책임감이 없는 이들을 만난 걸 보면….

    난 내게로 뚜벅뚜벅 다가오는 아빠의 얼굴에서 악마를 보았다. 인간성이 술에 먹혔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다. 그것이 감정의 궤도를 분노보다 두려움이 더 커지게끔 바꿔놓는 순간, 위로 쳐들린 손바닥이 보였다.

    아빠의 손은 늘 두 가지의 태도만을 보였다. 술병 혹은 돈을 쥐거나 아니면… 나와 엄마를 때리거나.

    자비 없이 뺨을 내려치는 손길에 몸이 휘청, 무너졌다.

    “개새끼? 이 싸가지 없는 년이 어디 애비한테….”

    이 와중에도 혹여나 돈을 떨어뜨리기라도 할까 걱정이 됐는지 아빠는 점퍼를 벗었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옷자락의 소리가 환멸을 부추긴다. 고작 한 대로 벌겋게 부은 뺨을 감싸 쥐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아빠의 노여움을 한껏 부풀렸는지 머지않아 머리채가 잡혔다. 소파에 누운 차무겸이 언젠가 내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한 말이 떠올랐다. 사은아, 너 머릿결 되게 좋다. 그 말이 꼭 꿈을 꾸는 양 거푸 반복됐다.

    어둑어둑하게 잠긴 하늘, 덩달아 칙칙해진 집구석에서는 폭력이 비처럼 쏟아졌다. 발버둥을 치다가 찰나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집을 뛰쳐나왔다. 대문까지 가기 전에 머리채가 다시금 잡혔다. 두피가 찢어질 듯한 따가운 통증이 몰아치며 아빠를 밀쳤다. 입가가 터졌는지 꼴깍 삼키는 침에 비린 피 맛이 배겼다. 나는 거의 기다시피 하여 대문을 열고 나섰다. 바닥에 맺힌 웅덩이를 철퍽철퍽 지나느라 행색은 보지 않아도 엉망이 되었을 게 빤했다.

    “거기 안 서! 이 썅년이!”

    아빠의 고함과 함께 고개를 들었을 때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

    왜, 차무겸이 여기에….

    배웅을 마치고 진즉 보낸 차무겸은 애초에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 집 대문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조잡한 낙서가 새겨진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로 나를 응시하는 눈빛이 짙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르륵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머리채가 재차 붙잡혔다.

    “아!”

    반사적으로 신음이 터졌다. 차무겸을 정면에서 보는 방향으로, 내 비천하고도 저급한 밑바닥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아빠의 손이 허공을 향해 치들리는 것보다 더 마음이 심약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당장 안 들어… 저건 또 뭐야?”

    씩씩대던 김규태가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눈길을 줬다가 멈칫했다. 우천 속, 홀로 고고하게 선 차무겸은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그는 이 좁아터지고 더러운 공간과 몹시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이 끔찍한 상황을 관망하던 차무겸은 우산을 고쳐 쥐며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나와 아빠가 엉겨 붙은 대문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빗금 속에서 보이는 차무겸의 얼굴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때, 내가 깡패들에게 쫓기다가 하는 수 없이 붉은 저택을 도피처로 삼아 도망갔을 때.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던 녀석과 마주쳤을 때와 흡사한 표정이다. 그러니까… 꼭 손을 뻗으면 아량을 베풀어 한번 잡아주기는 해줄 법한….

    나는 힘 빠진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야, 너 뭐야? 뭘 꼬나보는데. 어? 너도 씨발, 내가 우스워?!”

    아빠의 시비가 차무겸에게 불똥처럼 튀었다. 당장 달려들 기세인 아빠를 온몸 던져 말리며 외쳤다.

    “가!”

    물 위를 휘젓는 백조처럼 우아하게 거닐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나의 목소리는 비로 인한 물기인지 울음기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으로 푹 젖어 있었다. 아빠의 어깨를 붙잡아 대문 안으로 밀며 세상 다급하게 뇌까렸다.

    “가, 어서 가….”

    우리의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다. 내가 그곳을 넘을 수도 없고, 차무겸이 이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다. 섞이지 못할 물과 기름처럼 함께 있다고 한들 층은 명확했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로 깨달은 건 꽤나 잔혹한 현실이었다. 이 이상 차무겸이 나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이상 이런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음침한 밑바닥. 미천한 꼬락서니. 차무겸이 딱 질색인 것처럼 반응했던 이 구질구질한 모습을.

    나 괜찮으니까….

    대문이 닫히기 직전 벙긋거리는 나의 입 모양이 부디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쿵, 내 발로 뛰쳐나갔다가 결국 내 발로 기어들어 온 지옥문이 닫혔다. 눈앞에 드리운 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이었다.

    * * *

    가장 먼저 인지한 건 입꼬리의 따가움이었다.

    입술이 바짝 말라 본능적으로 혀를 내어 축이자 눈살을 기어코 찌푸리게 하는 따끔함이 흐리멍덩한 정신을 깨웠다. 가까스로 뜬 눈에 빛줄기가 애매하게 걸려 있었다. 비가 그쳤는지 바깥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변이 한낮처럼 밝지는 않았다. 저녁쯤인가…? 깜박거리느라 자꾸만 점멸하기 바쁜 시야에 고작 한 평 되는 너절한 화장실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모로 누운 상태임을 자각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됐더라? 기억이 뜨문뜨문 이어졌다. 축 늘어뜨리고 있던 상체를 일으키자 왼쪽 머리가 견딜 수 없이 쑤셨다. 기이한 자세로 누워 있던 탓에 저린 팔을 들어 그 부분을 만졌다가 떼어냈다. 축축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싶더라니, 손가락 끝에 붉은 피가 묻어났다.

    아, 아빠가….

    손을 내리고서 두리번거렸다. 고작 고개 한 번 돌리는 것만으로 눈에 다 담을 수 있는 협소한 집에는 나 홀로 덩그러니였다. 폭우와 함께 들이닥친 미치광이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도 떠나간 그 품에는….

    엉금엉금 기어 옷장으로 다가갔다. 엉망으로 널브러진 이불 틈새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흩트렸다. 그러나 아무리 헤집어도 내가 원하는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꾹꾹 삼키던 눈물이 그 순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결국 가져갔어, 개새끼, 개새끼, 씨발새끼, 그거 내 돈 아닌데, 차무겸 돈인데…. 닭똥 같은 눈물이 툭툭 떨어져 손등을 두드렸다.

    말없이 눈물만 흘리자니 머리가 또다시 핑글 돌았다. 돈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사소하게 움튼 기력마저 수챗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물처럼 사라져버렸다. 나는 힘없이 옆으로 기우뚱거리다가 풀썩, 이불 위로 넘어졌다. 넋 없이 깜박대는 눈꺼풀 밑으로 그친 비가 대신 흘렀다.

    몇 시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꽤 오래 흐른 건 인지했다.

    복부를 걷어차이는 순간 까무룩 기절했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아빠는 여전히 나를 후려 패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가 깨어난 건 띠리리, 단조로운 집 전화의 벨소리가 울릴 때였다. 새벽즈음 엄마의 그리움이 나를 깨웠다. 그때도 집은 지금처럼 조용했었다.

    그 이후로 또다시 눈을 감았다가….

    모르겠다. 헝클어진 이불에 뺨을 비볐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하는 걸 아는데 망가진 기계처럼 몸이 뇌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아, 핸드폰. 나는 눈알을 굴렸다. 아빠를 말리려고 뛰어가기 전 벗어 던진 가방이 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핸드폰, 저기 있을 텐데…. 손을 쭉 뻗었다. 하지만 의식은 지금의 수준으로 붙들고 있는 것조차 힘겨운 일이었다는 듯 서서히 흐려졌다.

    정신을 차리기에는 큰 바위라도 얹어진 것처럼 전신이 욱신거려 힘들었다. 의지가 금세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뻗다가 만 손이 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눈을 감기 전, 빗속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차무겸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실로 색다른 지옥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몰려온 잠기를 깨운 건 짹짹거리는 새의 지저귐이었다.

    사선의 빛줄기가 다소 뚜렷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아침이 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정신을 놓기 전보다는 의식이 선명했다. 어물어물 몸을 일으키는데 복부 쪽이 심각하게 뻐근했다. 옷을 들추자 새까만 멍이 져 있었다. 손바닥으로 쓸자 어릿어릿한 고통이 느껴져서 절로 허리가 말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처참한 꼴이었다. 입꼬리에는 검붉은 피딱지가 앉아 있었고 왼쪽 눈두덩이에는 미약한 멍이 들어 있었다. 아마 내일쯤 되면 시퍼렇게 물들 게 분명했다.

    “읏….”

    눈가를 만지려고 손을 드는 순간 두피 쪽에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피가 났었던 것 같은데. 머리칼을 살짝 쥐어 그 부분을 확인했다.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 하는 사이 말라붙은 건지 핏물이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응고된 채였다.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호전되었다면, 단순히 살갗이 찢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간신히 세수를 하고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부재중 3통]

    알림을 눌렀다.

    차무겸에게서 온 한 통과 담임에게서 온 두 통의 전화였다. 차무겸은 그렇다 치고, 담임은 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날짜를 보고 멈칫했다. 차무겸이 문태욱을 죽사발 만들어놓은 게 화요일이었는데, 핸드폰 액정에는 목요일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하루가 생으로 날아갔다. 의식이 좀 자주 끊어졌다가 들어왔다가 한 건 인지했는데, 설마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그런 줄은 몰랐다.

    피로한 마음에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다가 실수로 다친 입가를 건드리는 바람에 씁,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병원부터 들러야 했다. 암영 마을에 있는 병원이라고는 허름한 진료소가 전부였다. 늦었다가는 일찍부터 와 죽치고 앉아 있을 노인들을 마주할 게 분명하니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는 게 나았다.

    ‘아, 근데 돈이….’

    가방을 뒤져 지갑을 꺼내 들었다. 엄마가 어릴 적 떠준 걸 아직까지 사용하는 동전 지갑에는 만 원짜리 지폐 두셋이 꾸깃꾸깃 담겨 있었다. 안도하다가, 이런 와중에도 돈 하나에 쩔쩔매는 내 처지가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어 실소가 샜다. 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소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했다.

    노인들이 많아 일찍 열고 일찍 닫는 게 습관이 된 진료소는 다행히 문을 연 상태였다. 간단히 응급처치를 하며 의사에게 상처는 방치하면 안 된다고 한 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찢어진 수준이 경미하여 다섯 바늘 정도 꿰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몸 여기저기 깃든 멍은 약보다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거라서 마땅히 조치할 게 없었다.

    솔직히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나에게 걸려온 담임의 전화를 떠올렸을 때 후환이 두려웠다. 모쪼록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해야 대학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에 영향을 줄 담임에게 밉보이는 짓은 최대한 하지 않아야만 했다.

    진료소에 들렀다가 가는 바람에 등교 시간이 지나 바로 교무실로 향했다. 나를 맞닥뜨린 담임은 한바탕 잔소리를 하려다가 엉망으로 불어터진 내 얼굴을 보고는 관두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머리통에는 허연 거즈를 붙이고 있고, 눈두덩이는 푸르스름한 멍에, 입가는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찢어진 상태이니. 쯔즛, 하고 혀를 차는 태도에는 평소에 비치던 경멸보다도 안쓰러움이 더 진하게 묻어났다.

    “자꾸 결석하면 버릇도 되고 출결에도 안 좋으니까 조퇴하지 말고 양호실에서 쉬어라.”

    그나마 이런 배려라도 해준 것에 고마움을 느껴야 했다. 담임이 특별히 말을 해준 덕분에 교실에 가방만 내려두고 온종일 양호실에서 머물 수 있었다. 잠시 들른 교실은 묘하게 소란스러웠다.

    “…어? 전예슬 얼굴에….”

    “어젯밤에…. 웬 치한이…. 완전 큰 흉터… 래?”

    “오늘 결석도… 래서 그런 거 아니야?”

    전예슬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귓전을 스쳤다. 나는 그 소란 속에 던져진 또 하나의 먹잇감일 뿐이었다. 하루를 통으로 결석하고 다음 날도 늦게 등교한 나를 본 아이들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었으나, 그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여간 피로한 게 아니었다.

    양호실 속 딱딱한 매트리스 위에 누우니 차무겸의 집에서 머리를 대고 누웠던 침대가 떠올랐다. 넘실넘실대는 물가에 누운 듯 편안함에 온 신경이 사르르 풀어지던….

    그러고 보니 차무겸, 아. 어떡하지.

    차무겸이라는 단어 하나로 온갖 상념이 내게로 쏟아져 내렸다. 차무겸의 돈, 지난날 폭우 속 대문 앞에 서 있던 차무겸, 그리고 한 통의 전화. 그 한 통은 ‘고작 한 번’이라는 아쉬운 인상을 남기기도 했고 재발신하기 꺼려질 만큼의 불길함을 낳기도 했다.

    진통제로 인해 통증이 옅어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양호 선생님이 이만 집으로 갈 시간이라고 깨우지 않았다면 하루를 꼬박 이곳에서 보냈을지도 모를 만큼.

    잠기운이 다 떨어져 나가지 않아 몽롱한 머리를 매만지며 교실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여 교무실, 교실, 양호실을 차례로 오가는 동안 숱하게 마주했던 다른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거운 몸을 끌고 교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책상에 걸터앉은 누군가를 발견했다. 텅 비어 있으리라 예상한 공간을 제 것인 양 점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차무겸이었다.

    단단한 어깨, 떡 벌어진 가슴팍을 보니 당장 몸을 돌려 저 지평선 너머까지 달아나고 싶다는 아찔한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문은 반쯤 열렸고, 그리고…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차무겸의 시선 역시 내게 닿았다.

    “…….”

    “…….”

    함께 보낸 두 달간의 시간이 희부옇게 지워지는 듯한 침묵이었다.

    나는 녀석을 외면하려 애쓰고 차무겸은 유달리 살갑게 나를 대했던 시절. 태연함을 가장한 오만함이 나에게 동정과 적선으로 다가와 심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뭉기던 때로.

    상대방을 앞에 두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 복잡한 심경. 적어도 차무겸과의 사이에서는 나아진 줄 알았던 고질적인 습관은 어느덧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

    입술만 덧없이 벙긋거리다가 그가 걸터앉은 책상으로 다가갔다. 교실의 풍경이 새빨갰다. 뻥 뚫린 창가로부터 너울처럼 밀려드는 석양의 횡포였다.

    “사은아.”

    팔짱을 끼고서 나를 지켜보던 차무겸이 입을 열었을 때 걸음이 멈췄다. 차무겸의 눈가가 얇게 저민 것처럼 섬세히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이 그게 뭐야.”

    그 까칠한 담임마저도 잔소리를 접게 한 얼굴이었다. 볼품없고 형편없을 게 분명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런데 남들은 어떻겠어. 쏟아지는 빗속에서 차무겸을 마주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간신히 서 있는 것도 버거워 무너지기 바쁘던 그때, 튼튼한 두 다리로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서 있던 차무겸…. 무릎이 진흙탕에 빠져 그 더러운 바닥을 구르기 바쁘던 나와 달리 차무겸은 우산을 쓴 채로 가느다란 비를 쉽게도 피하고 있었다. 모든 게 쉬운 그와 모든 게 어려운 나의 거리는 고작 그 한 장면으로 설명되었다.

    “네가 준 돈 잃어버렸어.”

    간신히 잇새를 비집고 나온 음성이 사포를 가져다 대 비빈 것처럼 까칠했다.

    “돈?”

    “처음에 준 돈…. 계단에서.”

    차무겸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치마 옆에 내려둔 손을 꾹 움켜쥐었다.

    “갚을 거야. 그거는, 꼭 갚을 테니까….”

    정작 그 돈의 주인인 차무겸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 외려 내가 안달복달했다. 대체 그 삼백만 원이 뭐라고 이렇게 전전긍긍하게 되는 걸까. 어쩌면, 그게 차무겸을 떠나보내기 위한 나의 준비여서 그런 걸지도 몰라. 그걸 돌려주는 것이 마음을 다잡는 수단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떻게 갚을 건데?”

    “…….”

    “나 당장 다음 주에 서울로 돌아가는데.”

    지은 죄를 아는 양 바닥을 향해 수그러져 있던 고개가 퍼뜩 치켜 올라갔다. 차무겸은 반짝거리는 핸드폰으로 제 볼가를 누르며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금 찾아온 적막은 기습이었다. 그 시기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랐고 또, 근본적으로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머릿속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대책도 없이 사고를 친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나랑 갈래?”

    차무겸의 역할은 늘 이랬다. 어린애처럼 방황하는 나를 앞에 두고 너무도 쉽게 손을 뻗어주었다. 잡으면 어딘가로 끌려들어 갈 것 같고, 잡지 않으면 그마저의 도움도 받지 못해 추락할 것 같다. 결국, 나락행은 똑같다. 그럼에도….

    “나랑 가.”

    저 눈빛 속에 나의 대항을 받아줄 여지는 없었다.

    “사은아, 나랑 가는 거야. 알겠지?”

    아니면, 대항의 의지가 아예 없었던 걸지도.

    비는 그쳤으나 우리의 발목까지 차오른 물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물은 노을의 붉은빛으로 번져 있어서, 마치 시체가 떠돌아다니는 피바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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