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1화 (1/24)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1

-작중 등장하는 ‘암영’은 허구적인 배경과 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종종 과거의 꿈을 꾸고는 했다.

시기도 계절도 모든 게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회상 속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것이 있다면, 나를 보고 웃는 차무겸의 미소뿐. 희끄무레한 기억 속에서까지 나를 시궁창 속으로 처박을 궁리만 그득그득 품고 있는 악스러운 미소.

“나랑 갈래?”

그가 손에 쥔 핸드폰으로 자기 볼을 꾸욱 짓눌렀다. 영 장난스러운 태도는 사탕발림 같은 제안을 건네는 악마라기에는 다소 괴리감이 있었다. 그것보다는 마치 하교 후 친구가 제집에 와 밥이나 먹고 갈래? 하는 느낌과 유사했다. 그만큼 가볍고 별 뜻이 없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차무겸을 알게 된 이래 그는 언제나 태도가 저랬다. 뜻밖의 조우로 호기심에 불을 지폈을 때에도, 알 수 없는 꿍꿍이를 파헤치지 못해 관망할 때에도, 또… 바닥을 뚫을 기세의 빗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들켰을 때에도.

내게 알쏭달쏭한 손을 뻗는 와중에도 녀석의 핸드폰 액정은 쉴 새 없이 번쩍거렸다. 이곳으로 전학 오기 전 다니던 서울 학교에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눈보다 더 빠르게 손을 놀려 SNS를 뒤진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얼굴이 무슨 연예인 지망생처럼 예쁘다고 했다. 그럼에도 차무겸의 축복받은 얼굴은 그가 더 아깝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품게 했다.

아마도 그 여자친구의 연락일 것이다. 지금 쉴 새 없이 차무겸의 핸드폰을 부르르 진동시키는 건.

평소라면 나를 앞에 두고서 핸드폰이나 툭툭 두드렸을 놈이 지금은 그걸 완전히 뒷전으로 미뤄둔 채 내게 온 신경을 꽂고 있었다.

“사은아, 왜 대답이 없어.”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이 꼭 남을 부르는 것처럼 어색하게 귀를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더 정신을 놓고 있었더라면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고 기어이 뒤를 보았을지도. 그게 정말 낯설어서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부정하고 싶어서인지는….

언뜻 들으면 나긋한 인상이 봄바람을 연상시키는 제안이다. 하지만 도통 정의할 수 없는 차무겸의 눈을 보면 그 생각은 흐지부지 흐려지고 만다.

“내가 묻잖아.”

전신을 피범벅처럼 물들이는 석양을 배경으로 삼은 채 입 다물고 있는 내가 언짢았는지 차무겸의 어조가 한층 낮아졌다. 차무겸은 늘 내게 저런 인상이었다. 등장부터 새빨간 느낌을 각인시켰고, 종지부인지 새로운 시발점인지 모를 그것을 찍는 지금마저도.

위압적인 속삭임이 목 뒤를 차게 식혔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쭈뼛 일어났다.

“나랑 가.”

책상 위에 반쯤 걸터앉은 몸을 바로 세운 차무겸이 잇따라 말했다. 제안은 고작 대화 한 턴 만에 명령으로 둔갑했다. 아직 풋내가 가시지 않았음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우아한 낯짝은 전자보다야 후자가 지극히 더 어울리는 바였다.

사근사근한 제안보다도, 고압적인 명령이.

아직도 차무겸의 핸드폰은 징하게 울리는 중이었다. 짧게 끊어지던 진동은 어느새 기나긴 형식으로 갈음됐다. 메시지를 보지 않자 골이 났는지 아예 전화를 건 것이다. 연인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애달픈 안달이 내 목구멍 속에 가시를 깊숙이 처박는 심정이었다. 나는 차무겸과 그 무엇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연인이 이토록 초조하게 굴 만큼 몹쓸 짓을 벌인 것만 같았다.

맥없이 굴고 있자니 턱이 꽉 붙잡혔다. 우악스러운 차무겸의 손바닥은 매우 커서 나의 양 뺨이 잡히고도 남았다.

“사은아.”

녀석은 꼭 사슬로 친친 옭아맨 개에게 먹이 한 알 적선하듯 가증스러운 어조로 속살거렸다. 깊이 침전한 눈동자 저변은 그 의도를 읽어볼 수가 없었다. 비가 쏟아지는 그날에 그랬듯이, 나를 고고하게 내려다보던 눈길 속에서 진작에 느꼈듯이.

“나랑 가는 거야. 알겠지?”

짙은 노을의 핏빛으로 물든 동공이 나를 쑤시듯이 훑어보고 있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오감을 다 짜릿하게 만든 그 시선이 오직 나만 담아냈다.

차무겸은 손길만큼이나 그악스러운 눈발로 나를 위협했다. 첫째는 회유, 둘째는 강압, 셋째는….

이쯤 되니 나는 차무겸이 나를 반드시 서울로 데려갈 것임을 짐작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부드럽게 접혀 나의 입가를 쑤셨다. 상처가 다 낫지 않은 곳을 헤집는 행동에는 조금도 자비를 찾아볼 수 없었다. 미약하게 신음하자 차무겸의 눈가가 미세히 구겨졌다. 그게 속에서부터 기어오르는 난잡한 희열처럼 느껴지는 건 왜인지.

어떠한 대답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나를 들여다보며 천천히 입술을 축였다. 담배나 사탕을 곧잘 빨던 척척한 혓바닥이 선을 따라 면적을 뒤덮는 장면은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녀석은 제안했고 나는 침묵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싫다고 쳐내기에는 차무겸이 내미는 유혹이 실로 거대했다. 그건 아주 크고 넓게 몰아친 파도였고 난 아무리 봐도 그 코를 찌르는 짠 내에 빠져 죽을 운명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모르는 척 몸을 실어버리고 싶은 걸지도.

나는 차무겸을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암영에 남게 된 나의 미래는 흐르지 못해 고여 썩어들어갈 것이 자명했으므로.

그리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결심을 쓸모없어진 종잇장처럼 와그작 구겨 저 멀리 흐르는 냇가에 던져버리고야 말리라.

1장.

암영 마을.

치우쳐진 변토, 평생을 바퀴벌레 떼처럼 다닥다닥 붙어살아온 주민뿐인 이곳에 웬 파동이 일었다.

때아닌 시절에 나타난 전학생으로 인해서였다.

얼핏 보면 수도권의 으슥한 구석을 책임지는 달동네, 그러니까 재개발이 시급한 구역과 흡사한 이곳 암영 마을에는 다소 난데없는 감이 있는 이방인이었다.

암영 마을에 더 이상 외지인은 들어오지 않았다.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수도권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며 새로운 문화시설을 숨 가쁘게 도입해 나갔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신문물이 자리를 잡는 형국이었다. 그나마 번영을 이룬 소지역의 사람들조차도 창창하게 그려놓은 청사진을 위하여 수도권으로 거처를 옮기는 시대였다.

그러니만큼 이런 촌구석으로 오는 자는 그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역행하는 기묘한 특성을 지녔다고 한들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름 석 자 차무겸.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이 벌이는 소란으로 머릿속에 새겨진 이름을 느릿느릿 곱씹었다.

차무겸의 등장이 떠들썩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어지간한 사연이 아니라면 이곳으로 이사 올 일이 없는 외인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학우들의 노골적인 흥미와 눈길을 끌어낼 만큼 잘난 외모가 두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앞선 두 가지를 제치고, 나는 그 무엇보다 예사롭지 않은 세 번째 이유로 녀석을 확실히 각인했다.

차무겸.

그는 내가 버티듯이, 짓눌리듯이 살아온 이 동네 속 언덕 위 붉은 동백나무 저택의 주인이었다.

암영 마을은 기거하는 거주자의 수가 변하지 않고 일정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을 주민들 중 언덕 위의 동백나무 저택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완만한 비탈길 위, 다홍의 꽃잎은 언제나 암영 마을의 늦겨울부터 초봄까지를 장식했다.

폭풍이 치면 녹슨 지붕이 기울고 조잡한 전봇대가 하릴없이 쓰러지며 엉망이 될 허름한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호화스러운 건물이었다. 단순히 집이 아닌 ‘저택’으로 칭하는 이유는 건물 규모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던 그것은 나처럼 이곳에 뿌리를 둔 아버지도, 혹은 무료할 때마다 마을 평상에 앉아 노가리를 까는 노인들조차도 유래를 알지 못했다.

그네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이곳을 지키던 저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붉은 저택이 바로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무생물체인 만큼 그 유래를 몸소 떠벌거려 줄 존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고릿적 시절의 정치인 중 누군가가 사비를 들여 지은 휴양 별장이라고 하였다.

구차한 향촌이라지만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개발과 거리가 먼 지역이니만큼 암영 마을의 밤하늘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경향이 있었다. 촘촘히 여문 밤하늘에 누군가 손으로 일일이 찍어놓은 듯한 은하수가 짙푸르게 펼쳐졌다. 그 아름다움의 정도는, 공익광고의 한 장면으로 발탁된 전적이 있다는 걸로 증명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이야 시골 마을이지, 몇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곳 역시 수도권에 뒤처지지 않았을 영화로운 시절이 존재할지 몰랐다.

또 누군가는 국내외 할 것 없이 저명한 건축가가 땅을 사 제 실력을 맘껏 발휘한 건물일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이는 주장과 동시에 늘 반론이 제기되는 가설이었는데, 이유는 건축가가 대두될 만큼 건물의 조형미가 아름답지는 못해서였다. 규모가 크고 광대할 뿐, 조형미가 운운되기에는 영 거리가 먼 모양새였다.

아니, 일단은….

그 외양을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지대에 지어졌는데 이에 더해 본 건물의 주변에는 일정 반경을 두고 -아마도 정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회색의 담벼락이 빼곡히 둘러져 있었다.

담벼락은 다른 세상이라 선을 긋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기에 어르신들이 호기심을 품고 펄쩍펄쩍 뛰어도 내부를 살펴보기란 턱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암영 마을 사람들이 엿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는 빼죽 튀어나온 건물의 상단부뿐이었다. 그 상단부로나마 추측할 수 있는 건 건물이 네모난 직사각형 모양에 가깝다는 것. 마치 학교에나 있을 법한 체육 창고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수수께끼로만 남은 건조물이었다.

그런데도 ‘붉다’와 ‘동백나무’라는 단어로 특정 지을 수 있는 건 담장 너머로나마 살펴볼 수 있는 특성 때문이었다. 모서리처럼 삐죽 튀어나온 건물의 상단부는 빨간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햇살을 머금으면 새붉게 보이고 밤빛을 머금으면 와인색으로 보이는 그것. 붉은 벽돌은 직선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 사람이 만든 것처럼 아주 반듯하고 고르게 나열된 상태였다.

그리고 담벼락 주변에는 늦겨울부터 피기 시작하는 동백나무가 수두룩하게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 시기가 되면 나도 모르게 언덕 아래를 거닐다가 잠시 멈춰 서서 그 저택을 올려다보는 빈도수가 늘어나고는 했다. 별 볼 일 없는 대문을 꾸미는 동백꽃을 직접 보고서야 어느새 계절이 또 저만큼 지났구나, 하고 실감했다. 강렬하리만치 아름다우면서, 왠지 모르게 꺼림칙함을 떠안기는 색깔이 망막을 물들일 때가 되어서야.

그런 저택에 누군가가 온 것이다.

나에게는 18년 만일지 모르나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지내온 이에게 18년은 우스운 수준일 테다. 특히나 연세가 들어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지팡이만 딱딱 짚고 다니는 마을의 꼬장꼬장한 어르신들에겐.

그걸 증명하듯, 요즈음 그네들의 관심사가 언덕 위의 집인 것을 누차 목격하였다. 예전에는 지나갈 때마다 손가락질을 하며 어디를 헐뜯어야 내가 무력하게 쓰러질지 공격할 태세만 갖추던 노인네들의 관심이 좀 틀어진 덕분에, 요즈음은 앞을 지나가는 데에 숨통 정도는 트였다.

차무겸은 전학과 동시에 온갖 잡다한 파동을 그려냈다.

호수의 깊은 면처럼 고요하거나, 잠잠하거나, 아주 소소한 물보라만 일어나던 이 암영의 심층 속에서.

차무겸과 다른 반이었는데도 전학을 온 순간부터 녀석의 얘기가 귀에서 좀처럼 떨어지지가 않아서 나는 혹시 우리가 같은 반이라도 됐나 싶은 터무니없는 착각이 일 지경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차무겸이 있다는 3반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리고 종이 치기 전 아슬아슬하게 돌아와서는 그 애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기를 반복했다.

대체로 잘생겼다,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 엄청난 부자다 등등.

이 빽빽하게 짜여진 심층에서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가는 노골적인 단어들이 주요 포인트였다.

그래서 별 관심이 없는 정도를 넘어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녀석에 관한 정보가 차곡차곡 축적됐다. 가령 키가 185센티에 가깝다는 것이나 차고 오는 시계가 하루걸러 하루 바뀐다는 것, 더하여 그 시계의 브랜드가 상상도 못 할 만큼 값비싸다는 것, 등하교를 할 때 이용하는 차종도 범상치 않다는 것….

나에게는 쓱 지나가는 바람 소리처럼 시시콜콜한 종류의 것들뿐이었다.

차무겸은 생각보다 암영고에 잘 녹아들었다. 정확히는 이곳의 아이들이 녀석을 가만 놓아두지 않는 쪽이었다.

암영고에서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우리 반 전예슬이 녀석에게 찰싹 달라붙었다는 이야기가 왼쪽 귀를 찌르는가 하면, 대다수 비슷비슷한 가정형편 속에서 유일하게 양옥집에 사는 처지쯤 되는, 그로 인해 우위를 선점한 3반 양아치 문태욱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는 얘기가 오른쪽 귀를 점령했다.

이 학교의 실세나 다름없는 둘이 붙었다는 건 차무겸 역시도 그 정도의 입지에 우뚝 올라섰다는 거나 진배없었다.

녀석은 금세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갑부에다가 아이들이 절로 기를 죽이게 되는 실세들과 한편을 먹었으니. 집단의 크기가 작다 하더라도 사회는 모름지기 사회였다. 그리고 어리면 어릴수록 보이고 드러나는 것에 집착하기 마련이었다.

내가 차무겸을 실제로 보게 된 건 그가 전학을 온 지 한 달 만이었다.

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여 담임의 수업 시간에 졸았다. 하필이면 그 모습을 들켜 아직 3일이나 남은 전 주번의 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교실 구석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이었다. 하늘처럼 파란 빛깔의 쓰레기통을 들고 교내 뒤편 소각장으로 향했다.

“어?”

나를 보고 알은체를 한 건 문태욱이었다.

세월의 흔적처럼 거무스름한 때를 입은 벽에 기대서 있던 녀석의 손에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담배가 꽂혀 있었다. 망할. 나의 입에서 차마 튀어나오지 못한 말이 혀 위를 벌처럼 빙글빙글 맴돌았다.

놀라움은 잠시였다. 다음 순간 문태욱의 비틀린 입매에 떠오른 건 내리쬐는 햇살만큼이나 또렷한 악의성이었다.

“노름쟁이 딸이네.”

문태욱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완전히 등져버린 행위를 들킨 것치고는 담담했다. 오히려 보란 듯이 필터를 쭉 빨아 내 쪽으로 연기를 후 뱉었다. 공기 속에 섞여든 매캐한 내음이 속을 불쾌하게 긁었다.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바람결에 실려오는 탓에 눈가가 아릿아릿, 따가웠다. 모여든 문태욱의 친구들이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가 나를 보며 킬킬댔다.

타이밍이 영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돌아가기에는 소각장에 너무 깊숙이 들어온 상태였다. 지금에 와 등을 보여 봐야 도망가는 비굴한 꼴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속으로 쓰레기를 태우는 곳인 만큼 녀석이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을 찾아왔다며 조금쯤 비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쓰레기통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서 녀석의 앞을 보란 듯이 지나갔다.

지나가려고 했다.

대뜸 몸을 바로 세운 문태욱이 다가와 내 손에 들린 쓰레기통을 발로 차지만 않았더라면.

텅, 소리와 함께 손이 비틀리고 쓰레기통이 포물선으로 날아가며 오늘 하루 반 아이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쑤셔 넣은 쓰레기가 눈처럼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내가 손으로 직접 주워야만 하는 더러운 눈송이였다.

한숨을 내쉬고 문태욱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것처럼 일자의 눈썹산을 꿈틀거렸다.

엮이느니 피하지.

고등학교에 올라온 이후로 수십 번도 넘게 곱씹은 생각을 되새김질하며 쓰레기를 향해 상체를 수그렸다. 그러나 뭉친 종이의 끝을 잡기도 전에 삼선 슬리퍼가 종이를 꾸욱 짓밟았다. 자칫했다가는 손등이 저 아래에 깔릴 뻔했다.

쭈그려 앉은 상태로 고개를 들었다. 문태욱이 볼이 홀쭉해질 만큼 담배를 깊이 빨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삐딱한 시선은 물 위에 동동 떠다니는 기름처럼 거북한 느낌을 한껏 끼쳤다. 햇살에 가려져 번들대는 안광이 비열하기 짝이 없었다.

“태욱아.”

미묘한 신경전과 관전이 벌어지는 사이로 누군가 대뜸 끼어들었다.

나와 문태욱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그제야 한 마을에서 부대끼며 성장해 그나마 익숙한 얼굴 틈으로, 난생처음 보는 이를 발견했다. 시야에 가득 담기는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원치 않아도 그간 나의 머릿속에 첩첩이 쌓여온 정보가 제멋대로 정체를 유추하게 했다.

차무겸.

“여자애한테 왜 그래.”

녀석도 다른 남자애들처럼 입에 하얀 막대를 물고 있었다. 처음에는 담배인가 했으나 벌어지는 붉은 입술 사이로 짙은 운무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한 박자 후에야 그게 막대 사탕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렇게 덩치가 큰데 조금 전에는 어떻게 발견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나처럼 쭈그려 앉아 있던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듣던 대로 키는 185에 가까우리만치 커 보였고 얼굴은… 그래, 그건 인정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미모이기는 했다.

문태욱도 어디 가서 뒤지지는 않는 훤칠한 외양인 편인데, 녀석조차 일순 병풍으로 만드는 실로 반반한 낯짝이었다. 반듯하고 정갈하면서도 이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도회적인 구석이 곳곳에 묻어났다. 잘생긴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다고 여기는 전예슬이 눈 돌아가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처럼 굴기에 지당한 외양이란 말이었다.

“야, 무겸아. 네가 얘를 몰라서 그래.”

문태욱이 억울하다는 듯 쓰레기를 밟은 발에 힘을 주며 읊조렸다. 나는 정신이 다른 데 팔린 틈을 타 녀석의 다리를 퍽 밀어버렸다. 문태욱은 꼴사납게 넘어지는 대신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며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아까워라.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녀석의 형형한 눈길이 내리꽂히듯 돌아왔다.

“이게 미쳤나.”

으름장을 무시하고 주변에 늘어진 쓰레기를 주웠다. 오른손에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끼고서 늘어진 쓰레기를 하나하나 담고 있으니 나 역시도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듯했다. 도처에 낭자하게 깔린 이목이 나를 조금 더 우스운 처지로 만들고 있기도 했다.

새삼스레 낙망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니까. 그래서 부러 눈을 내리깔고 쓰레기를 줍는 데에만 집중했다. 빨리 치우고, 빨리 버리고,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진을 빼는 건 딱 질색이었다. 매일매일이 그랬지만 이건 익숙해질 날 없이 지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무언가 내가 안고 있던 쓰레기통으로 휙 날아왔다. 통통 소리를 내며 정확히 쓰레기통 안에 안착했다.

외면보다 무시에 가까운 태세로 임하던 나의 고개가 자연스레 들렸을 때 문태욱의 옆으로 걔가 다가와 있었다. 차무겸. 서울에서 전학을 온 남자애.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 하나를 몰아세우는 건 좀.”

차무겸의 목소리는 바닥에 깔리는 안개를 연상시켰다. 낮고, 잔잔하다. 울림통이 넓어서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절로 박혀 드는 그런 목소리. 조급함을 전혀 모른다는 듯 태생적인 여유가 배어 나오기도 했다.

“없어 보인다.”

문태욱에게 간결하게 퉁을 놓은 차무겸이 다리를 굽혀 쓰레기를 하나 더 주워주었다.

내 손에 건네주는 대신 다시 쓰레기통 속으로 쏙 집어넣는다. 그러고서야 시선을 맞췄다. 정면에서 마주한 얼굴은 멀리서 얼핏 볼 때의 인상을 깡그리 지웠다. 거리를 달리하여 마주칠 때마다 색다르게 준수함을 각인시키는 상판이었다.

“안녕.”

무언가 터질 듯, 끊어질 듯 조마조마한 기류 속에서 차무겸은 내게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했다. 검은 머리칼과 결을 함께하는 순흑빛의 눈동자 속으로 내가 오롯이 비쳤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눈이었다.

“…고마워.”

대충 대꾸하고는 남은 쓰레기를 마저 주웠다. 차무겸이 웃으며 근처에 떨어진 쓰레기를 몇 개 더 주워주었다. 그가 내게 호의적으로 굴자 문태욱은 무안한지 목 뒤를 주무르며 한 발 물러났다.

그러자 차무겸이 고개를 모로 틀어 녀석을 보았다.

“왜 안 주워?”

“어?”

“네가 발로 찼잖아.”

“아니… 야, 차무겸.”

문태욱은 어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선뜻 대들지는 못했다. 그게 뭐랄까, 굉장히 진기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이 학교에서 저 녀석을 이겨 먹는 놈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호랑이가 없는 굴에서는 여우가 대장 노릇을 한다고 하는 건가. 차무겸의 앞에서 문태욱은 그저 꺼드럭거리며 수염을 늘이기나 할 줄 아는 여우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종이 쳤다. 짧은 일탈 시간을 맺음 짓는 소리. 교실로 돌아오라는 하나의 주문이었다. 문태욱은 기다리던 타이밍이라는 것처럼 차무겸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이만 가자. 다음 담임 시간이다.”

차무겸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바닥을 향해 있던 시선이 한 번의 움직임에 내게로 꽂혔다.

“나머지는 알아서 주워야겠다.”

“아… 그래.”

얼떨떨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대답이 나왔다.

차무겸은 만개한 봄에 어울리는 미소를 짓고는 으쌰, 하고 다리를 일으켰다. 그 미소가 마치 언덕 위 동백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드높은 담벼락마저도 무럭무럭 깔고 자라난 붉은빛의 꽃잎.

차무겸이 내게서 떨어지기만 기다리던 문태욱은 거리가 가까워지자 녀석에게 냉큼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교실이 있는 방향으로 끌며 무어라 빠르게 뇌까렸다. 담배를 피울 때보다 더 분주히 노니는 주둥아리를 보니 나에 대하여 입방아를 찧고 있을 게 뻔했다.

“왜, 예쁘게 생겼는데.”

차무겸이 문태욱의 푸념을 들어주다가 말했다.

나의 고개가 다시 그리로 향했다가 무관심을 표하듯 돌아갔다. 분주히 움직여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를 다 줍고 허리를 폈을 때 소각장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다.

쓰레기통을 들고 걸음을 내디디는 머리가 멍했다. 중학교 이후로는 이 마을에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호의여서 그런지 여운이 짙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임을 안다. 문태욱에게 내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 나서주고, 언제 쓰레기를 함께 주워줬느냐는 듯 돌아설 게 뻔했다. 앞으로 돌아오는 건 길고 곧은, 그러면서도 남자다운 면모가 내비치는 손이 아니라 문태욱보다 더 넓고 탄탄한 등판이 되겠지.

기대는 사치. 기대는 금물.

암영 마을에서 내가 배운 건 이따위의 뼈아픈 정론밖에 없었다. 치미는 한숨을 참지 않았다. 봄에 걸맞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머리칼을 넘기고 올려다본 하늘은 여느 때처럼 맑았다.

* * *

내게 가족이라고는 아빠가 유일했다.

둘이었던 때를 지나 이제는 단 하나. 유일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단일 존재.

아빠…. 생각만 해도 짜증과 울화가 먼저 떠오르는 호칭이 아닐 수가 없다.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리하여 바깥에서 술을 처먹고 돌아오면 엄마를 복날 개 잡듯 패기 일쑤였다. 쏟아지는 폭력을 참지 못한 엄마는 내가 8살이 되었을 즈음 새벽에 도망을 가버렸다. 구질구질한 이 집구석에 나 혼자 남겨두고.

아빠는 엄마가 다른 남자랑 정분이 나 도망간 거라며 오만 난리를 피웠다. 화통을 구워삶은 듯한 목소리로 몇 날 며칠 난동을 부린 탓에 나의 저급한 가정사는 이 암영 마을에 알아서 까발려졌다. 개가 듣는 소리도 결국에는 알음알음 다 퍼지는 이곳에서 그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는 곡소리를 대체 어떻게 막을 수가 있을까.

언제나 그랬지만, 우리 가족을 향한 웅성거림은 그날을 기점으로 조금 더 몸집을 부풀렸다.

술에 취한 아빠는 언제나 화풀이 대상을 필요로 했다. 그건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는 어느 날 사라졌다. 자연스레 다음 대상은 내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마를 툭툭 미는 정도에 그쳤다면 다음으로는 체벌이라는 명목하에 두꺼비 같은 손이 몸 어딘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접촉 후에 후끈하게 이는 통증이 이곳이 지옥임을 입증하는 하나의 증거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빠가 사라졌다.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사라졌던 어린 날처럼.

내가 중학생일 적의 일이었다.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닷새가 된 날, 저 건너 건너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다음 날에는 조촐한 이발소를 운영하는 아저씨가 나를 찾아왔다. 건네진 질문은 같았고 이 역시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다음 날엔 중학교 친구인 수지의 어머니가, 또 다음 날에는 평상에서 곧잘 보이고는 하던 나이 여든 먹은 할머니가 찾아왔다.

이들이 아빠를 왜 이렇게 찾는지 몰랐다. 그걸 알게 된 건 아빠가 실종된 지 한 달은 족히 지나고 나서였다.

‘아이고, 세상에.’

아빠는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쳤다. 사라지기 전 그들에게 무슨 투자라는 명목으로 돈을 야금야금 뜯어내 그것을 바리바리 챙겨 그대로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빈궁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삶을 완전히 너절하게 만드는 직격타였다.

아빠의 도주 이후 나는 암영 마을의 공공연한 적이 되었다. 연좌제가 지금 시대에도 잔류하여 적용되는지 미처 몰랐다. 아빠의 죗값은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무엇 하나 잘못한 게 없는데 죄가 끈끈한 점액질처럼 달라붙어 나를 뜯어먹었다.

마을 사람들도 우스웠다. 대체 술주정뱅이 아빠의 무얼 믿고 돈을 내어준 거지? 그들의 기억 속에는 실직자이자 술주정뱅이가 되기 전, 양복을 차려입고 마을 안팎을 오가던 그럴싸한 샐러리맨일 적 김규태의 모습이 생생히 살아 있던 모양이다. 그도 아니면 유년 시절부터 봐온 애틋한 꼬맹이일 적의 모습이라든지.

아빠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래, 이곳 암영의 역사와 함께 자라난 인물이었다. 한번 생긴 연고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끊어지지 않는다. 곧 세상을 하직할 마을의 노인네들이 술만 처먹고 다니던 아빠에게 애정 어린 타박을 하던 것처럼.

그물처럼 짙고 빽빽한 지연은 때로 독이 되기도 했다. 그건 딱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마을 사람들의 푸근한 인정을 개코로 안 아빠가 그들의 뒤통수나 후려치는 이런 때.

샐러리맨일 적에 세운 이미지는 망가졌을지 몰라도 오랜 기간 영업부에 임했던 아빠의 말솜씨는 유창한 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옆집 장독대 사정까지 다 아는 이곳에서 돈을 쉽게 내어줬을 리가. 더군다나 한 사람이 슬쩍 내어준다면 저 혼자 손해를 볼 수는 없다는 위기감에 너도나도 손을 내미는 건 협소하게 고립된 마을 특유의 습성이었다.

이후 나는 알지도 못한 부친의 소식을, 돈 뜯긴 이웃들로부터 어렴풋이 전해 들었다.

‘듣자 하니 김 씨 요즈음 노름판 전전한대.’

‘하이고, 우리한테 뜯어간 돈을 다 도박에 쓴 거야, 그럼?’

‘다 잃었다더구만! 그거 찾지도 못해!’

개중에서도 사기당한 액수가 큰 누군가가 아빠를 찾은 모양인데, 이미 아빠는 그 돈을 다 잃어버린 직후였다. 모두가 얼추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탄식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이 찾던 건 아빠가 아니라 아빠가 훔쳐 간 돈이었다. 그러니 돈을 탕진했다는 소식에는 모두가 바닥을 쳤으나 그를 기꺼이 잡아끌고 오는 자는 없었다. 아빠를 잡으려고 혈안이던 눈동자 속에 남은 건 무겁게 가라앉은 원망과 분개심뿐이었다.

그리고 그 표독스러운 감정은 모두 나를 겨냥했다. 우리 집안은 어느새 사기꾼 집안이 되어버렸다.

집집마다 액수가 다양한 만큼, 피해자도 많았다.

개중에는 문태욱의 부모님 또한 있었다. 문태욱과 나는 나름의 연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그래도 정답게 지내던 한때가 존재했다. 내가 그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학교에서 한 주름 잡던 문태욱이 나를 지켜준 덕분이었다.

문태욱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적에 키가 부쩍 커서 중학교에 들어갈 때에는 다른 이들보다 머리통이 하나 더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다녔으며 장신을 따라 체격도 우람한 편이 되어 아이들이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풋내 나는 중학생이었음에도 녀석이 내게 마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자존심이 상한 걸지도 모른다. 치기 어린 사랑으로 지켜주려고 애쓴 대상이 고작 사기꾼 집안의 핏줄이었다는 게.

그날 이후로 문태욱은 백팔십도 돌변하여 사사건건 내게 시비를 걸었다. 마주칠 때마다 아빠를 입에 올리며 어떻게든 조롱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수가 적어 암영중, 암영고의 루트를 그대로 탔다. 당연하게도 문태욱이 쥐고 있던 실세 역시 그대로 이어졌고, 그 덕에 알음알음 시혜를 입던 나의 처지는 당연히 거꾸로 매달린 양 바닥으로 처박힐 수밖에.

암영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을 떠나고 싶었던 순간은 숨을 쉬는 것보다 잦았다. 엄마가 도망갔을 때는 10초에 한 번, 아빠가 도망갔을 때는 5초에 한 번…. 매일매일 나의 머릿속에서는 이곳을 박차고 달아나는 상념만이 되풀이됐다.

발바닥에 땀이 찰 정도로 도망 또 도망.

그래 봐야 눈을 뜨면 보이는 건 초라한 현실이다. 우스꽝스러운 정도를 넘어 사치스러운 생각의 향연이었다. 그걸 실행에 옮길 능력도 용기도 없기 때문에. 돈도, 지위도, 그 외 가진 것 하나 전무했다. 꼴랑 연필이나 쥘 줄 아는 학생인 나는 이곳에서 주홍 글씨를 달고 꾸역꾸역 살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적어도 성년이 되면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작 내 맘대로 꾸며내고 직직 그려내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렇다 보니 나는 가장 먼저 모아야 할 것으로 돈을 꼽았다.

그러나 처지가 이러니…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곳이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아니, 사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외진 마을로부터 거리가 꽤 되는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번화가는 그나마 상점이 있다지만 아직 학생이기도 했고, 거주하는 곳과 거리가 멀다 보니 나를 꺼려 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피도 마르지 않은 고등학생 따위, 사장의 눈에는 성실하기보다는 힘든 일을 시키면 금세 관두고 안 나올 못 미더운 일꾼에 가깝게 비쳤을 것이다.

그러다가 간신히 구한 게 바로 번화가 모퉁이에 위치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였다.

물론 과정이 물 흐르듯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나를 채용하는 조건으로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적은 금액을 받게 되었고, 시간도 극악에 가까운 밤 시간대를 맡게 되었다.

그래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거라도 해야 그나마 돈을 손에 쥐어볼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을 했지만 장장 3개월간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은 덕분인지 이제 시급은 최저의 수준에 맞춰졌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조건일지 몰라도 나로서는 감지덕지한 심정이었다.

물론 이 황금 같은 일자리도 언제 잃게 될지 모를 형국이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문태욱을 포함한 녀석의 친구들이 이쪽까지 얼굴을 들이민 적은 없었다.

당연했다. 평일 밤에만 일하기도 했고 암영 마을은 아주 깊숙한 내지에 위치해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번화가인 이곳까지 나오려거든 버스 정거장을 족히 15곳은 지나야 했고, 걸어서 경보로는 1시간 30분, 느리게는 2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평일 저녁에 그 수고를 하여 여기까지 올 마을 사람은 없었다.

녀석들을 맞닥뜨리는 즉시 별의별 소동을 피울 게 뻔하므로 언제나 모자와 마스크를 챙겨 다녔다. 모자는 일을 하는 동안 꼬박꼬박 쓰고 있는 편이었다. 굳이 편의점에 들르지 않아도 행여나 지나가다가 발견하게 되면 낭패였으니.

잘못은 아빠가 저질렀는데 갖은 도망자 행색은 내가 다 내고 있는 현실이 씁쓸했다.

손님이 없는 밤.

엉덩이를 움직일 때마다 끼이익, 끼익 귀를 긁는 소음을 내는 낡은 철제 의자에 앉아 영어 단어장을 보고 있었다. 커가는 내내 나를 둘러싼 상황이 이토록 개판이 되어 가도 공부는 쉬이 놓을 수 없었다. 엄마가 어릴 적마다 나를 붙들고 한 말이 가슴 안짝을 옭아매고 있는 탓이었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 해. 사은아.’

엄마는 내게 무얼 말하고자 했던 걸까. 한 번씩 의문이 들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사회에서 인정받는 어엿한 어른이 되라고? 아니면… 구역질 나는 집구석과 이 마을을 떠날 기회를 잡으라고? 엄마가 도망가지 않았다면 전자라고 짐작했겠지만, 엄마가 도망갔기에 후자가 더욱 뚜렷하게 와닿았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돈과 공부. 내가 매달릴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두 개뿐이었다.

이제 수능까지 2년 정도가 남았다. 그 전에 돈을 모아야만 했다. 그래야 어딘들 대학을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여기가 아니라면 다 좋았다. 수중에 대학 등록금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만 최소한의 준비를 마쳤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가만 손 놓고 있다 보면 어른이 되는 순간은 순식간에 다가올 테니까.

딸랑.

투명한 유리문에 달린 벨이 청아하게 소리를 냈다. 손님이었다. 단어장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쓰고 있는 넓은 모자챙의 그림자가 계산대 위로 둥글게 졌다.

“어서 오세요.”

내가 고개를 들기도 전에 들어선 인기척이 편의점 안쪽으로 향했다. 물이나 음료수가 진열되어 있는 코너였다. 판매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인영을 흘끗 보고는 다시 단어장에 코를 박았다. clerical 사무직의. occupation 직업. 두 칸으로 나누어 한쪽에 쓴 영어를 가리고 다른 쪽에 써진 뜻을 반복적으로 헤아리며 영 어색한 단어를 억지로 머릿속에 꾸역꾸역 새기던 차였다.

탁, 하고 계산대 위에 길쭉한 소주병이 놓였다.

이제 막 냉장고에서 꺼낸 겉면에는 습기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바코드 리더기를 쥐며 고개를 들던 나는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얘가 왜 여기 있지?’

차무겸이었다.

복도에서 가끔 지나치다가 보는 교복의 차림새가 아니라 깔끔한 사복이었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있던 탓에 녀석은 아직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늘 낮에 누군가가 촉새처럼 물고 온 정보를 복기했다. 차무겸은 오늘 결석을 했다고 했다. 학교 대신 늦은 밤 편의점에 디밀어진 녀석의 얼굴엔 피로한 기운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내가 손에 쥔 물건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신분증 있으세요?”

머뭇거리다가 묻자 목 뒤를 주무르던 차무겸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대답 대신 눈썹을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곧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모자에 가려진 나의 얼굴이 조금 더 잘 보이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어라.”

뜻밖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아차 싶었다. 얘 문태욱하고 친구잖아. 내가 여기서 알바하는 걸 말하면 어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 수는 없었다. 문태욱과 그 무리들은 미성년자임에도 술과 담배를 곧잘 구했다. 마을의 아는 슈퍼를 뚫어놓기라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에서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긴 내가 간신히 구한 일터였다. 행여나 문제가 생겨 쫓겨나면 낭패였다. 이제 겨우 3개월 모은 월급은 등록금은커녕 푼돈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꼬여버린 생각 속 어쩌지를 못하고 있는 사이 차무겸이 상체를 세우고 나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저번에는 쪼그려 앉아서 시선이 일직선으로 맞닿았지만, 바로 선 오늘은 키 차이 때문인지 눈길이 사선으로 미끄러졌다.

“안녕.”

잠시 후, 차무겸이 인사를 건넸다.

매끄럽게 휘어진 입꼬리가 시야를 장악했다. 돌아온 반응에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소각장에서 마주쳤던 지난날 이후로 말이 오가는 건 처음이었다.

그 후로 간간이 학교 복도에서 마주친 적이 있지만 눈을 내리깔고 녀석을 외면했다. 이미 문태욱을 통해 나의 추접하다 못해 꼴사나운 가정사를 다 들었을 테니까. 첫 기억이 호의인 만큼 행여나 시선을 마주쳤을 때 돌아오는 게 지난번과 다른 경멸과 멸시라면 조금 싫은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이미 검은 때 같은 오욕으로 얼룩진 인생이다. 그러니 이 이상 더러워져 봤자 무엇 하나 문제 될 게 없음에도 그냥, 기분이 그랬다. 한낱 외지인인 그에게조차 조롱을 받고 싶지는 않다는.

그런 차무겸이 뜻밖에 조우한 곳에서 내게 태평하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 알바하나 보네.”

“…….”

“아, 신분증….”

“…….”

“한 번만 봐주면 안 돼?”

묘하게 나른한 목소리가 대꾸 없는 나를 감돌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얘 혹시 지금 나 협박하는 건가? 말투가 차분해서 그렇지, 지금 넘어가 주지 않으면 당장 문태욱에게 내가 여기서 일한다는 사실을 꼰지른다거나….

슬쩍 고개를 들었다. 모르겠다. 그런 꿍꿍이를 내포하고 있다기엔 차무겸은 심상한 얼굴로 눈가를 샐그러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단순히 곤혹스러운 일을 맞닥뜨린 사람처럼.

머지않아 아, 하고 탄성한 차무겸은 문가로 향했다. 녀석이 보일 태도가 예상이 안 돼서 내 시선이 그 뒤태를 따라 주르륵 미끄러졌다. 차무겸은 딸랑거리는 문에 기대서서 바깥의 누군가에게 무어라고 말했다. 중간에 형, 어쩌고 하는 게 들렸다.

어두컴컴한 바깥, 편의점 도로 앞에 주차되어 있던 세단의 운전석에서 슈트를 입은 누군가가 내렸다.

“나 신분증 달라는데. 형이 계산 좀 해줘.”

차무겸과 비슷비슷한 덩치의 남자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와 계산대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품에서 자연스럽게 지갑을 꺼내 ‘얼마죠?’ 하고 묻는다.

어찌할 겨를도 없이 펼쳐진 상황 가운데 잠시 멍해졌다. 이걸 팔아도 되나? 계산하는 사람만 달라지는 거지, 아무리 봐도 술을 마실 사람은 차무겸이 명확해 보이는데….

하지만 고민은 잠깐이었다. 곧 생각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어쨌든 계산은 성인이 하는데 내가 그것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 나는 아까보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신분증을 확인한 뒤 바코드를 찍었다.

구입한 술병을 쥐고 고개를 돌리는 남자의 귓바퀴에는 경호원이나 쓸 법한 하얀색의 인이어 무전기가 칭칭 감겨 있었다. 한 점 흐트러지지 않은 슈트에 저런 범상치 않은 물건. 언젠가 학생 중 한 명이 떠들던 말이 떠올랐다. 차무겸이 국내 재벌기업 자식이라는 둥 어쩐다는 둥…. 시계부터 시작해서 지금 눈앞에 나타난 남자를 보아하니 애초에 신분부터가 범상치 않은 게 틀림없었다.

“저, 그리고 이거.”

차무겸이 마실 술을 챙기던 남자가 지갑을 넣으려다가 말고 대뜸 그 안에 있던 종이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한 박자 후에야 의중을 묻듯 고개를 슬쩍 들었다.

“앞으로도 찾아오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작 한마디에 앞으로 내밀어진 봉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돈봉투구나. 그보다 저걸 평소에도 얼마나 쓰길래 저렇게 지갑에 따로 넣고 다니는 거지….

어찌 됐든 의도는 노골적이었다. 앞으로 오늘과 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시 조용히 계산해주고 넘어가라는 뇌물이었다. 남자는 덩치가 매우 컸고 그래서 지금 가게 구석에 자리한 CCTV에 이 상황이 교묘히 가려질 듯했다. 얼핏 보기에도 봉투는 두툼했다. 저기에는 내가 석 달 치 밤잠과 피로를 바꿔가며 번 돈보다 더 많은 액수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기요.”

봉투를 쥔 사내의 손을 쓱 밀었다. 계산대 근처에 놓인 알록달록한 사탕을 툭툭 건드리던 차무겸의 눈길이 내게로 와닿는 게 느껴졌다.

“저 쟤랑 같은 학교예요.”

봉투를 쥔 남자의 손에 얕게 힘이 들어갔다. 그 말만으로도 남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했다. 같은 미성년자임을 알면서도 뻔뻔히 넘어갈 만큼 얼굴이 두껍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지금 이렇게 거절하는 게 차후에 나쁜 영향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저걸 받아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듯했다. 그럴 바에야 괜히 오해의 소지가 나지 않을 방향으로 선택을 내리고 싶었다.

인생 속에서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그때마다 차악이 아닌 최악을 골라 자진하여 구렁으로 나가떨어진 자를 잘 알고 있었다. 나의 혈육 말이다.

그러니만큼 나는 은밀하게 주어지는 선택의 갈래에서 조금이나마 덜 나쁜 차악을 고르고 싶었다.

턱을 슬쩍 돌렸다. 모자챙 아래로 펼쳐지는 좁아진 시야에 차무겸이 비쳤다. 녀석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래도….”

“됐어, 형. 무슨 돈을 주고 그래. 그리고 사은이 말이 맞지. 나 학생이잖아.”

남자가 다시금 강권하려는 찰나 차무겸이 끼어들었다. 순간 조금 벙쪘다. 쟤가 왜 내 이름을 부르지…. 호명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어떠한 감흥을 느낄 새도 없었다.

남자는 차무겸의 말에 주저하더니 이내 마지못한 얼굴로 봉투를 거두어들였다. 이후 차무겸이 눈짓하자 남자는 군더더기 없는 모습으로 편의점을 나섰다. 그 장면은 고도의 훈련을 받아 주인의 말을 철석같이 알아듣는 훈련견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사람을 종처럼 부리는 차무겸의 행동은 그토록 당연스러워 미약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미안. 놀랐어?”

“…아니. 나 어차피 저런 거 못 받아. 여기서 잘리면 안 되거든.”

내가 이걸 얘한테 왜 말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입이 멋대로 벌어져 주절거렸다.

형용할 수 없는 무안함이 목 뒤를 덮쳐왔다. 어차피 얘는 내 사정 뻔히 알 텐데, 고작 이 알바 자리 하나 지키겠다고 고고한 자존심을 내세운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쓸데없는 생각임을 아는데, 가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떼어내기 어려운 게 바로 그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사람의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도는 구 할이 무용한 생각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차무겸은 흡사 인간을 굽어살피는 자애로운 신을 연기하듯 계산대에 기대서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시선은 집요하게 모자챙에 숨겨진 내 얼굴을 맴돌았다. 그 눈길이 조금쯤 부담스럽게 다가온 시점에서야 내 입이 다물렸다.

배턴을 터치하듯 내가 입을 다무니 차무겸이 입을 열었다.

“넌 교복이 더 잘 어울린다.”

뜬금없는 감이 있는 칭찬이었다. 나는 차무겸이 쳐다보고 있는 곳을 향해 얼굴을 숙였다. 지금도 교복을 입은 상태지만, 아르바이트 특성상 입어야만 하는 색깔이 쨍한 조끼를 걸치고 있어서 단정한 네이비색 교복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자니 시야각을 좁히는 모자가 대뜸 들어 올려졌다. 나도 모르게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퍼뜩 치들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넓어진 눈앞에 차무겸이 가득 찼다.

모자챙을 쥐고 있던 손이 스르르 미끄러져 나의 턱을 그러쥐었다. 그러고는 흡사 물건 품평하듯 제 시야에 맞추어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리고 모자도 안 어울려.”

“…….”

“얼굴 가려지잖아.”

턱이라고 해야 할지 뺨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경계선을 한 손으로 틀어쥐고 주물럭대던 차무겸이 읊조렸다.

“얼굴 되게 작네.”

까만 동공이 챙 아래로 드러나는 나의 얼굴 곳곳을 들쑤시듯 훑어보았다.

나는 내 턱을 움킨 차무겸의 팔을 쳐내고 모자챙을 다시 깊숙이 눌러썼다. 매섭게 취조하는 형사를 앞에 둔 범죄자처럼 머뭇머뭇 물었다.

“문태욱한테 내 얘기 안 들었어?”

“들었어.”

“…근데 왜.”

“뭐가 왜?”

차무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히려 내가 왜 그런 걸 묻는지 몰라 하는 기색이었다. 그건, 뇌리를 갈라놓은 수많은 상상 중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 반응이었다. 녀석이 이 외지로 스며들어온 이방인인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정말 외계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내가 너한테 말 거는 게 이상해?”

“넌 문태욱 친구니까.”

차무겸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상체를 숙였다. 분명 나와 그의 사이에는 너른 계산대가 있는데도 거리는 가림막 하나 없는 것처럼 자꾸만 밀접해졌다.

“내가 걔랑 친구로 보여?”

은밀한 어조가 귓바퀴를 핥았다.

친구로 보이냐니.

태욱아, 하고 다정하게 말을 붙이고. 또 문태욱이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도 하지 않았던가…. 차무겸의 질문은 내게 던져진 수수께끼였다. 짐작할 수 없는 속내를 어렵사리 헤아리며 우두커니 서 있자니 차무겸이 허리를 일자로 폈다. 가까워진 거리가 조금은 벌어지고서야 내가 여태껏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일 보자, 사은아.”

혼잡하게 꼬이는 내 머릿속과 달리 차무겸은 그림 같은 미소를 입가에 건 채로 문을 열고 나섰다.

녀석은 아직까지 앞에 주차되어 있던 번지르르한 차에 올라탔다. 그러기 전 어느새 운전석에서 내린 조금 전의 남자가 차무겸에게 뒷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저런 건 드라마에서나 보았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밤을 빨아먹은 것처럼 새까만 차가 멀어질 때까지 그 자취를 찾아 헤매듯 한참이나 시선을 꽂았다. 조악한 가로등 아래, 밤거리에 남겨진 건 자동차가 남기고 간 매연이 전부였다.

치명적인 실수를 깨달은 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버스비조차 아까워 운동 겸 걸어 다니는 길목은 이제 익숙했다. 그나마 번화가라고 볼 수 있는 상점가를 벗어나 점점 마을 안짝으로 들어갈 때마다 높은 산등성이를 거닐 듯 숨이 턱턱 막혀왔다. 내게는 아가리를 쩍 벌린 지옥의 문처럼 보이는 익숙한 지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증상도 더욱 극심해진다.

그래도 오늘은 사소한 걱정으로 가득 차서, 목이 조이는 질식을 한발 뒤로 보낼 수 있었다.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차무겸의 입단속을 시키는 걸 깜빡 잊어버렸다.

너무나 갑자기 나타났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차무겸이 떠나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부지런히 걷다 보니 회색빛의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늦어진 시각, 달이 뜨기 시작하면 잠자리에 들기 바쁜 동네는 기분 나쁠 만큼 고요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진 전봇대로부터 길게 길게 이어지는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내려앉았다. 그다음으로는 물을 주지 않아 바짝 마른 화분들이, 잇따라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는 텅 빈 페인트통과 막걸리 병들, 아이들이 붙여놓은 껌과 낙서가 잔뜩 난 허름한 공중전화박스….

보지 않아도 그릴 수 있는 낯익은 장면들을 스쳐 지나가고, 마침내 허름한 집에 도착했다.

발로 한 번 차면 텅 소리를 내며 쓰러질 대문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닫았는데도,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음으로 이 밤의 정적을 깨부쉈다. 낡아빠진 구멍 속에 열쇠를 밀어 넣어 돌렸다. 열쇠가 낡은 건지 녹이 슨 건지 누군가 나를 비웃는 듯 끽끽대는 소음이 한차례 들린 이후에야 문을 열 수 있었다.

봄과 여름의 사이였다. 낮에는 따듯할지언정 아직 밤은 쌀쌀한 편이었다. 새벽의 공기를 뚫고 돌아온 집은 실외와 다를 바가 없이 냉랭했다. 누구 하나 없는 텅 빈 집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은 이럴 때에 불쑥 몰아쳤다.

고작 세 평쯤 되는 집 안에 서서 가방을 내려놓는 찰나였다.

간결한 벨소리가 울렸다.

교복 치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빠가 예전에 쓰다가 버리고 간, 인터넷조차 안 되는 낡은 핸드폰은 고요했다.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집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처박힌 전화기가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

핸드폰 폴더를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몇 번 떨군 탓에 액정이 잘게 갈라진 화면 속에 새벽 2시라는 숫자가 비쳤다. 나는 어둠 속에 침잠하는 것처럼 가만 서 있다가 전화기를 향해 다가갔다. 수화기를 들고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집 안에는 시계가 없는데 째각째각, 초침이 고막을 간지럽히는 환청이 일었다. 내 심장 박동과 유사한 박자였다. 유선 너머에서는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귀를 조금 더 기울여보면 발견할 수 있는 건 아주 미약한 숨소리. 내 말을 듣고 있기라도 하단 증거처럼.

그렇게 10초. 심장이 열 번 정도 뛴 후에 통화는 맥없이 끊겼다. 뚜뚜, 소리가 나는 수화기를 찬찬히 내렸다. 제자리에 꽂아 넣자 손가락 두 개를 이어붙인 크기의 화면 속에 낯익은 번호 11자리가 떴다. 오늘도 한 번, 그 번호를 덧그리기만 할 뿐이었다.

좁아터진 화장실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와 이부자리를 폈다. 낡은 먼지 냄새가 나는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몸이 꼭 물먹은 솜처럼 축축 늘어졌다. 전신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피로감에 기진한데도 정신은 이상하게 말똥말똥했다. 어디선가 너무나 피곤하면 오히려 머릿속은 각성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언뜻 지나가다가 본 게 다라서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만.

느리게 눈을 끔벅거렸다.

새벽 2시쯤 걸려오는 전화. 하루의 일과처럼 매일같이 행해지는 짓도 벌써 10년이 지나도록 이어지는 쳇바퀴였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라서 화도 내보고 짜증도 부려보았다. 전화선을 빼놓아도 그때 잠깐뿐, 연결해두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으면 이어지는 건 단 10초. 마치 내 숨소리라도 듣고 싶은 것처럼 가만 귀를 기울이다가 뚝 끊어져 버린다.

간혹 깨달음은 파도처럼 생각지도 못한 겨를에 밀려왔다.

‘엄마야?’

문득 물었을 때 통화는 처음으로 10초를 이어가지 못하고 끊겼다.

나의 판단이 쳇바퀴를 깼다. 하지만 부서진 채로도 쳇바퀴는 계속해서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털거덕털거덕거리면서라도. 그날의 사소한 소요가 마음속에 확신을 불렀다. 아빠가 없는 집, 엄마도 없는 집. 유일하게 나 혼자 이곳에 버려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그 전화 한 통을 위안으로 삼고는 했다.

곱게 감긴 시야 너머로 생각의 나래가 펼쳐졌다. 누가 툭 치면 그대로 쓰러질 듯 피곤한데도 왜 잠이 안 오는지. 일어나 물이라도 데워 마실까 하다가 생수가 다 떨어졌다는 걸 상기했다.

집에 있는 게 없네. 새삼스러울 게 전혀 없는 사실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뒤척거리다가 벽을 보고 누웠다. 빛이 바래 누렇게 변색된 벽지 위로 곰팡이가 야금야금 증식해 있었다. 그것을 멍하니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내일, 학교에서 말해야겠지?

그보다 벌써 문태욱에게 말했으면 어떡하지?

문태욱이라면 그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편의점으로 찾아와 난동을 부릴 게 뻔하다. 쓰레기통을 발로 차던 그 고약한 심보가 어디 가겠나. 아직 문제를 야기하지 않아서 그런지 점장은 내게 별다른 사감이 없었다. 문태욱이 일으킬 문제는 아마 그 사감을 확고히 만들어낼 테고 나는 두고 볼 것 없이 잘릴 테다.

걔 입부터 봉해야 해.

근데 어떻게 말을 하지. 대놓고 찾아가면 눈에 띌 테고, 그렇다고 몰래 불러낼 수도 없고.

생각이 끝맺음을 짓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튈 무렵 눈이 스르르 감겼다. 구석에 간신히 난, 사람 머리통만 한 창 너머로 비치는 달빛이 유달리 환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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