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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아무것도 없었다.
불모지라고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던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물론이고, 사람을 죽이는 악질 적인 것 또한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이었다. 굳이 이 공간을 부르자면 빛도, 어둠조차 없는 태초의 세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공간이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이런 장소는, 공간의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이은 이후로 이런 세계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중세계라 불리는 패러랠 월드조차 아니다.
뭔가가 다르다.
뚜벅, 뚜벅.
"놀랐나?"
걸음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검은 옷의 여자가 무의 공간을 헤치고 눈 앞까지 당도했다. 이 세계의 진의를 파악하려던 붉은 머리의 그녀, 소야는 해석을 중지하고 거리를 벌렸다.
이상하게 탈력적인 얼굴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상대방은 자신과 동렬. 혹은 그 이상의 힘을 가졌다는 불사였다. 한순간의 방심은 전세의 악화를 부를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다. 한방이라도 잘못 허용한다면 숨통이 끊어진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불사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조소가 섞인 그 표정이 향하는 곳은 물어볼 것도 없아 소야였다.
"그렇게 겁이 많아선.... 금세 죽을거란다."
"너가 말이지?"
"너."
휘익!
순식간에 소야의 눈앞까지 도달한 불사의 주먹이 피하기 힘든 궤도를 그리며 내려찍었다. 산이라도 뭉개버릴 것 같은 풍압을 일으키는 강맹한 일격에 소야는 피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상외로 강력한 힘에, 경악한 소야다. 겨우 일격만으로도 격의 차이를 느낀 그녀로서는 몸을 조심스럽게 가누었다. 그러던 도중,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그 대해(大海)와도 같았던 마력이 온데간데 없었다. 무한히 넘치던 소야의 전력이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있던 것이다. 소야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불사만을 주시했다.
세계의 조각이라고 불리는 힘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라졌다는 것은, 그에 비견가는 힘의 영향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힘을 지닌 사람은 세상에서 자신과, 방주. 그리고 불사 밖에 없었다.
"그런 이상한 얼굴 하지마. 내 탓이 아니야. 나도 잃었는걸."
장난스럽게 말하는 불사에게서, 소야는 어떠한 진실성도 느낄 수 없었다.
"개소리."
"진짜래두."
소야는 방심하지 않았다. 불사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관찰해가면서, 심지어 눈썹 하나가 움직이는 것도 놓치지 않고 확인해갔다.
설령 불사의 말대로 불사의 탓이 아니더라도 불사는 강했다. 한달음만에 십여미터를 줄일만한 도약력이라는 건 놀라운 것이다. 현재 세계의 조각이 없는 소야에게 그것을 충당할만한 힘이 있을 턱이 없었다.
"흐음~ 그렇다면, 좋아. 가르쳐주도록 할까. 이렇게 아무렇게나 싸우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몸에서 힘을 뺐다.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한 자세였다. 소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방은 현 상태로는 자신보다 강했다. 사정을 봐준다던가, 싸움의 예를 취한다던가 할 여유는 없었다. 먼저 쳐서 상대방을 죽여버려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사가 힘을 잃었다는 것 정도일까, 그저 믿기에는 위험도가 컸지만 지금은 그것을 믿지 않으면 승산은 없었다.
"불패. 이곳, 어디일까?"
"내 알게 뭐야."
"궁금하잖아? 여기. 알아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을텐데?"
소야는 침묵을 지켰다. 더이상의 대답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 같은 태도에 불사는 괴롭히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이건 세계야. '세계의 알'이지."
"알....?"
"그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기다리는 알. 다만, 이건 세계라는 것일 뿐."
"무슨 의미냐."
소야가 으르렁거리며 묻자 불사는 쿡쿡 웃었다.
"별 의미는 없어. 그냥 만들어졌을뿐이니까."
"만들어져....? 설마!"
소야는 짚히는 것이 있었다. 가능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불가능하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빅뱅이론이다. 세상은 태초에 굉장한 폭발로 생성되었다는 그 이론. 지금 불사와 자신이 있는 이 공간도 그것과 일맥상통한다는 이야기였다.
방주 위에서 최후의 일격을 교환했을 때, 두개로 갈라졌던 세계의 힘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어야 했다. 하지만 그 힘마저 엮이게 되어 세계를 만들었다. 본디 세계의 힘이었던 그것이니만큼 그렇게 되기에는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불사와 자신의 힘은 모조리 빨아먹혀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것이 소야가 예측한 이 공간과 힘을 잃어버린 진의. 그것을 불패가 알아채기라도 했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칭찬했다.
"멋져. 완벽한데? 감탄스러울정도야."
혹시나 했는데 확실히 읽혔다.
하긴, 세계의 조각만 없으면 거의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 없는 자신이다. 읽어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건, 궁금증은 풀리셨나?"
"제대로."
애초에 그리 신경 쓰지도 않았다. 적이 눈 앞에 있는데 그런 것에 정신을 팔 정도로 소야는 정신줄이 굵지 못 했다.
그런 것보다도, 문제는 따로 있었다.
승산. 그것이 있느냐다. 세계의 힘을 둘 다 잃었다고는 하지만 상대방은 본디 신이라 불리던 지상 최강의 생명체였고 자신은 그저 인간이다. 인간이 아무리 천재라고는 해도 생명체의 한계를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피이잉!
피아노선을 흔드는 것만 같은 음색, 소야의 돌격과 동시에 몇백년을 쌓아온 무리(武理)가 녹아든 일격을 터뜨렸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일격이 불사의 몸을 저 멀리로 튕겨내 버렸다.
세계의 조각이 없어도 소야에게는 스승에게서 받은 공간의 마력이 있었다. 중첩을 늘리고 늘리다보면 불사를 상대할 힘 정도는 되었다.
"헤에? 의외인데."
슈웃!
불사였던 시절보다도 더욱 빠른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그녀다. 소야의 대응이 따라가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파바바바박!
순식간에 근거리로 거리를 좁히고 연타를 날려온다. 근접공격 일색의 상황에 소야는 그저 뒤로 물러났다. 원거리 공격으로 대응할 생각,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아아아앙!
"커, 허억...!"
복부에 틀어박히는 일격이었다. 술식장벽에 공간계의 중첩변화로 타격을 몇 천분의 일로 줄였는데도 배가 뜯겨나갈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술식장벽과 중첩변화의 방패는 불사의 공격을 막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진행되는 공세다. 하지만 공수의 교체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일방적인 싸움. 이렇게까지 패색이 짙은 싸움을 겪어본 적이 없는 소야에게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탁, 파바박!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 흘려내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소맷부리가 부서져 나가고 원거리와 근거리를 적절하게 배합한 공격이 소야의 눈 앞을 메운다.
"불패라는 이름 값은 되는건가? 힘을 잃었음에도 여기까지 버티다니."
이번에는 거리를 두는 소야다. 소야의 전방위에 마력의 구체가 떠올랐다. 지금 껏 원거리를 지배했던 마력탄에 열배를 넘는 질량,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끝이야."
불사는 승리를 자신했다. 세계의 조각이 없으면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 없다. 세계의 조각이 있었던 몸이라는 능력치에 공간계 마법정도는 있겠지만, 그것이 한계다. 겨우 인간의 마력인 것이다. 견뎌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화아아아아아악!
불길이 바람을 타고 영역을 순식간에 넓혀가는 것처럼, 거대한 마력파가 주변을 휩쓸고 불사에게로 당도했다.
"크윽...!?"
예상치 못한 마력량, 밀도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불패 때만큼의 마력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힘이라면 불사의 힘을 잃은 불사라도 상대하기가 난해했다.
"잊고 있었어.... 스승님이 가르쳐준건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소야는 자조하듯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불패 때의 마력을 회복하기라도 한 것만 같은 패기가 피부를 타고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나 말이야, 딱 한번 무승부였던 적이 있어. 패하지는 않았지만, 이기지도 못 했던 때가 있었거든? 아, 물론 계속했다면 이겼겠지만 시간제한이 있었고 여러 핸디캡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기지 못 했어. 어째설까?"
손을 들어올렸다. 입자화 된 마력이 그 끝을 모르고 모여들었다.
"패러랠을 이용한 마력의 응집이야. 스승님의 경우에는 워낙 본판이 나빠서 효율이 낮았지만 단발성으론 꽤 쓸만했지."
하지만 소야는 다르다. 지금 끌어모으고 있는 마력량 같은 사소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조각을 몸 안에 품어두고 있었다.
마력에 대한 기본적인 적성의 격이, 다른 것이다. 위력은 불패 때에 미치지는 못 하지만 다다르지 미치는 질은 양으로 때우면 된다.
"날 있는 힘껏 얕본 죄야. 날아가버려."
투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새롭게 태어난 세상에, 종말을 고하는 일격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