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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거참, 목청도 좋은 녀석."
그렇게 말하는 운천의 모습이, 돌연 꺼졌다. 마치 한 장면에서 운천이 있는 곳만 도려내 채운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다.
마력의 노도가 애꿎은 땅만을 부숴버린다.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끼게 하는 절세의 위력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순식간에 뱀의 앞까지 도달한 운천, 제천검이 승천하는 용처럼 솟구쳤다. 머리를 노리는 일격필살의 공격에 뱀이 정확하게 검이 닿지 않을 영역 밖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운천의 무기는 제천검만이 아니었다.
우우웅!!!
"뭣....!?"
운천의 허리춤에서 솟아오르는 창날이다. 뱀의 술식장벽을 헤집어놓는 기습적인 창격은 굉장히 절묘해서 뱀의 행동을 막기에는 최적의 일격이었다.
보이지도 않던 무기의 출현. 뱀은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상기하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운천은 검사가 아니었다. 검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사실 운천에게 무기란 별로 의미가 없는, 그저 들면 좀 더 위력이 나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좀 더 다양한 공격법을 사용하기 위해 여러가지 물건을 들고 다녔다.
그것이 운천이다. 핵미사일을 술법결계 안에 숨겨두고 사용할지도 모르는 남자가, 바로 그였다.
쩌저저저정!!
두번째로 창을 빼어든 뒤로, 다섯번의 참격이 오갔다. 이해가 가능한 영역을 이미 넘어선, 찰나의 공방.
완전한 하이페이스의 전투였다.
"광섬."
오른손에 쥐어진 창날이 빛으로 변한다. 인두처럼 달궈진 창이 뱀의 목젖을 노리며 공기를 갈라버렸다.
타아아앙!!
"크윽...."
겨우겨우 막아내는 뱀, 하지만 그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천검."
하늘을 깨부수는 검의 일격이 뱀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뱀이라 해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진 일격이 아슬아슬하게 뱀을 비껴나갔다. 그것을 확인하자 운천은 강맹한 기운을 품은 검을 그대로 놓아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뽑아드는 시퍼런 빛의 도. 측면을 깎아버리는 듯한 일격이다. 굉장한 속도로 날아드는 공격의 향연에 뱀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다.
보조를 맞추던 창이 어느센가 소검으로 바뀌어 있고, 도 또한 대검으로 바뀌어 있다.
챙, 쩌정! 카가가가가각! 타다당!!
무기가 일사불란하게 변화하고, 공격법 또한 변화한다. 소검이 빠른 검세를 취하는가 하면, 어느센가 배틀해머가 육중한 일격을 가한다. 심지어 전기톱, 총화기까지 빼어들며 공세로 몰아가자 뱀의 얼굴이 검붉게 변했다.
"이, 이게에에에에!!!!"
돌연 아래에서 솟는 마력의 송곳, 운천이 뒤로 물러났다. 잠시 틈을 벌었다고 생각한 뱀이 안도하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딸랑...
방울이, 뱀의 얼굴 앞에 있었다.
"견딜 수 없다면, 사라져버리는 것도 좋겠지."
운천의 담담한 발언에 뱀이 외치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게도 엄청난 폭염에 살라먹혀 사라져 버렸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폭염과 섬광을 뒤따르는 폭음이다. 압도적인 실력차를 자랑하는 운천, 그의 부하로 있는 루카마저 경악하고 말았다.
격이 다르다. 운천의 뒤를 따르겠다고 맹세한 숭례문들의 결심이 퇴색될 정도로 달랐다.
압도적이었다. 최강이었다. 무적이었다.
자신이라면 피할 수 있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일격들이 눈 앞을 오가는데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했다.
이것이, 운천이다.
한국에 존재하는 삼가 중 하나를 이끌고 있는 늙은 괴물. 육왕이 자랑하는 삼검주라 해도 쉽사리 넘볼 수 없는 무의 현신.
"아아아."
감탄하고, 기뻤다.
저런 자가 자신의 앞에 있다. 고든은 저 남자를 위해서 사라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껏 겪어왔던 모든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이, 자식이...!"
폭연이 걷어지고, 모습이 드러나는 뱀이다. 이곳저곳에 상처와 먼지 같은 것을 뒤집어쓴 그가 반쯤 쓰러진 자세로 운천을 올려다본다.
완전히 패배자나 다름 없는 모습, 루카는 승리를 장담했다.
저만한 타격에, 공세다. 이기질 못할 이유는 없고 질 이유는 더더욱 없다. 이 싸움, 압도적인 승리다.
광진의 패널티만 어떻게든 처리한다면....
"라고 말하면 상황을 좀 왜곡할 수 있으려나?"
슈우우웃!!
아래, 그리고 위. 좌측과 우측이다.
전후좌우의 모든 방위를 점하는 마력의 송곳들이 줄기처럼 뻗어나갔다. 과거의 유해를 다루던 것과는 사뭇 다른 위력, 운천의 안색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공세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콰과과과과!!
송곳들의 비가 쉴틈없이 몰아치자, 운천은 양손의 무기를 완전히 놓아버리고 방패를 꺼내들었다. 태양과 달이 각각 그려져 있는 두개의 방패가 송곳의 비를 차단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물량에 급소는 아니지만 공격을 허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하하하하!!!! 설마 내가 당한 줄 알았나아? 미안하지만 지금의 난 팔대간부 전원이 덤벼도 이길 수 없어!! 크하하하핫!!!"
점점 더 상처가 늘어간다. 동방삭에 필적한다고 자랑한 것이, 틀리지는 않은 위용에 운천은 그저 담담한 안색을 했다.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옛날에도 했었고, 지금은 그저 현실로 나타났을뿐이다.
진다면 별 수 없다. 최대치로 전개한 힘, 광진의 마력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느낀다. 더이상의 사용은 불가능하고 이 이상 싸우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그 찰나를, 루카는 보았다.
그것은 체념. 루카와 그 동료들이 운천을 보면서 언제나 느꼈던 그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안돼, 문주...!"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외침뿐이다. 그의 힘으로는 저런 공방속에 뛰어들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방해가 되면 되었지, 득이 될리는 없다.
[포기할 셈이야?]
그것은 목소리였다.
[언제부터 루카가 그런 녀석이었어?]
아련한, 옛부터 들어왔던 그 목소리. 눈물이 흐르게 하는 목소리였다.
[넌 왜 문주와 같이 있었냐?]
문주와 같이 있던 이유는, 그를 살리기 위하여. 죽음이 예정된 운명을 뒤바꾼다는 최대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알면, 가야지.]
하지만 힘이 없었다. 루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운천의 방패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운으로 뒤바뀔 수준의 격차가 아니다.
[혼자서 안되면 '둘'으로 가자.]
두사람이 내뿜는 경력으로 짓눌렸던 팔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원상태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아니, 움직이기는 했으나 원상태는 아니었다.
망가진 그대로다. 하지만, 움직였다. 이해할 수 없는 괴사다.
DS를 빠르게 기동시켰다. 폭발하는 듯한 연료의 연소가 일격을 준비한다. 마치 생명체와도 같은 기동, 남은 힘을 한순간과 한곳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목소리의 정체 같은 건 아주 사소한 일이다. 심지어 알고 있다면 더더욱.
키이이이잉!!!!
DS의 다리에 붙어 있는 휠이 고속으로 회전한다. 이족보행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기동의 극치가 루카의 조종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응? 쓸데없는 짓을...."
운천을 마음대로 요리하던 뱀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강하지도 않은 존재가, 눈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음?"
거리가 지척이 되었을 때, 뱀은 깨달았다.
콕핏에 있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지만 둘이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문주님에게서 떨어져라!!!!!!]"
겹쳐들리는 외침이다. 마력의 다발을 운용하던 뱀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DS의 위력을 얕보고 있던 뱀이 순간적으로 뒤로 튕겨나갔다.
위이이이잉!!
회전을 계속하는 DS다. 초근거리 사출용 블레이드를 발현하려는 자세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팔 한쪽이 없는 DS의 특공이라고 하기에는 엄청난 위압감을 발했다.
뱀이 자세를 바로했다. 갑작스런 기습에 뜻밖의 파괴력이지만 대응하지 못할 것은 아닌 바, 수많은 마력의 장벽이 아래에서 솟아올랐다.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반응, 루카는 그저 돌격했다.
"가자!"
[오오!]
대답하는 목소리, 아마 자신에게만 들리는 것일 터이다.
강령이었다. 죽은 자의 혼을 자신에게 씌우는 기술. 아니, 자의가 아니라는 것에선 빙의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콰광!!!
거대한 마력의 팔에 왼쪽 다리가 뜯겨나갔다. 겨우 겨우 균형을 잡지만, 금세 오른쪽 다리도 튕겨나갔다. 이미 지척에 이른 거리, 에너지 블레이드를 뱀에게 내려꽂는다.
우우웅!!
"거참, 저녀석만큼이나 착각이 심한 녀석이로군!!!"
한손으로 튕겨나가는 에너지 블레이드다. 반탄력으로 블레이드가 완전히 부숴져 나가고, 잔해 밖에 남지 않는 에너지 블레이드가 뒤집히면서 사출식 블레이드가 드러났다.
영(0)거리 사출.
이것이라면, 데미지는 확실하다.
투콰아아아아아앙!!!!!!
쇠심지 같은 것이 뱀의 배에 박히고, 방 끝까지 날아간다. 벽에 처박히는 뱀, 의문에 휩싸인 위력에 눈을 치뜬다.
죽이지는 못 했다.
치명상. 그것이 한계다. 동방삭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도 에너지체인 뱀이 그만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을리가 없다.
"이, 새끼들이이이이이!!!!!"
마력이 퍼져나간다. 섬광탄과도 같은 마력이 쏘아지면서 DS가 완전히 파괴된다. 콕핏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마력이 루카의 눈 앞에 당도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할만큼은 했고, 이 상태라면 문주는 살 수 있다.
만족했다.
"포기하지마! 아직이다!!!"
슈우우우우우우우웅!!!!!
루카의 눈 앞에서 마력을 가르는 장검.
제천검이다. 하늘의 의지를 반하겠다는 것이 표명된 이름. 루카는 그 검을 잡았다. 아니, 루카뿐만이 아니다.
고든도 함께다.
[우리는 항상 함께지, 안 그래?]
"글쎄다. 하지만....."
전신에 있는 마력을 모두 제천검에 쏟는다. 루카의 몸이 빛이 되어 뱀에게 쏘아지고, 시공간을 무시하는 일격이 뱀의 머리를 비집고 들어섰다.
"[이 순간만큼은 함께다!!!!]"
빛무리가 사라져감과 동시에 뱀의 몸이 점점 물질화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미 사라져버렸어야 할 존재가 그 모습을 지워가고 있었다.
뱀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그의 얼굴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우, 웃기, 지마....! 져, 졌다, 고? 마마마마, 말, 도 안.....돼..! 그렇다, 면!!!!!"
망집.
승리에 대한 갈망도, 운천들을 향한 증오도 아니다.
그저 생을 향한 갈구와 욕망. 본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살아가는 것을 동경하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기에 그는 살아 있었다. 살아있지는 않았지만, 살아있었다. 그랬는데... 허무하게 깨져나간다.
뱀이, 포기할리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최소한 이 무덤을 폭발시켜서라도......!!!!"
뱀의 에너지가 기묘한 파장을 띄었다. 다친 몸으로 걸어오는 운천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루카도, 고든도 더이상 도망칠 힘은 없었다. 설혹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무덤이 폭발한다면 어지간한 영역은 초토화될 것이 불보듯 뻔한 일.
방법은 하나다.
"루카, 떨어져라."
"문주...?"
"이녀석의 폭주를 막겠다."
'목숨을 던져서' 라는 말이 생략된 말이었다. 그것을 루카가 모를리가 없었다. 숭례문과 함께 가장 가까이서 보았다. 그의 얼굴, 행동, 마음은 모르지 않는다.
"문주, 그래선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이곳에 살아서 싸운 이유가 어째서인지...!"
"...미안하다."
그 말을 끝으로 운천은 뱀의 머리에 박힌 제천검을 쥐었다. 마력의 파동이 검을 타고 전해져 운천의 팔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킥, 킥, 킥, 킥, 킥, 너, 론.... 안, 돼! 큭,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아무리 잘나봤자, 죽는거다! 다 함께에에!!!"
뱀의 광기가 섞인 외침을 들으며, 운천은 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밀어넣었다. 생명을 담보로 한 마력이 그곳으로 흘러들면서 광대한 기염을 토했다.
그 탓인지, 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거, 뭐....!? 서, 설마아아아아아아앗!!!!!!!!!"
뱀의 발악에 운천조차 당황하고 말았다. 새하얀 기염을 토하던 검이, 어느샌가 '칠흑'과도 같은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걸, 운천은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의 힘인지를 깨달은 것 또한 아니었다.
육왕? 아니다.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다. 엄청나게 쌓여온 세월을, 육왕이라고는 하나 흉내낼 수 있을리가 없다.
압도적인 마력이 운천을 압도하고, 운천의 몸을 수복해간다.
이해할 수 없는 괴사. 천천히 치유된 몸을 보던 운천이 고개를 갸웃한다.
"뭐가... 어떻게 된거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운천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 전쟁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