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327화 (32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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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알 수 없는 세계다. 순식간에 하늘이 검붉게 덮혀버리고 공간의 곳곳에 균열이 보인다는 건, 듣도 보도 못 했다. 땅바닥에 시체들이 바다를 이룬다는 건, 소설에서의 과장 묘사 정도에서나 본 적이 있었다.

현재 호지는, 그런 알 수 없는 세계에 발을 딛고 있었다.

"뭐야....?"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다. 아무리 살이 벗겨지고, 불태워지고, 도려내지고, 찢어져 있고, 우그러져 있고, 부어있고, 얼려져 있어도 호지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

그것이 마(魔)라는 존재다. 마라는 것자체가 '죽음이라 불리는 최대의 신비'와 가장 가깝고, 원시적인 싸움판에 또한 가깝다. 이런 혈해(血海)를 본다고 하더라도 충격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 그녀의 아버지인 요만 없다면.

"뭐가 어떻게 됬더라?"

호지가 기억하는 건 아수라왕의 존재감이 부풀어오른다고 생각했을 때. 그 다음 시커먼 무언가가 공간을 휩쓸어버리는 것까지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아니, 그 이후가 바로 이 공간일지도 몰랐다.

순간, 바닥이 일그러졌다.

촤아아악!!

일그러진 곳을 기점으로 시체들이 솟아올랐다. 호지를 노리고 솟아오르는 육편, 호지의 손에서 나온 불꽃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든다.

싱겁게 사라져가는 파편에 호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거랑 싸울 시간은 없단 말야! 아빠, 아빠, 아빠아!!!"

거의 울부짖는 것이나 다름 없는 호지의 외침에 화답하듯 시야의 끝자락에서 아수라왕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기억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모습, 호지가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마력을 다리에 쑤셔넣었다.

투아아앙!!!

돌격. 이미 음속을 가볍게 넘어서는 속도다. 모습이 길게 늘어나며 호지의 몸이 순식간에 아수라왕의 앞까지 당도한다.

피하는 것은 무리다.

"꽤 힘이 세군. '그만한 양을 어깨에 지고도 달려오다니'. 왕의 그릇은 얼마나 많은 존재를 어깨에 질 수 있느냐인가?"

"뭐....?"

쿠웅!

주먹이 닿으려는 찰나, 호지의 몸이 가라 앉았다. 속도의 여파로 몰랐는데, 수없이 많은 손과 다리, 몸통, 머리가 호지를 엮고 있었다.

혈해를 이루는 시신의 잔해다.

"이미 썩어문드러진 주제에에에!!!!"

호지를 중심으로 터져나가는 폭발에 육편들이 터져나간다. 하지만, 일부는 남아있었다. 시체 중에서도 특색이 있는 것들.

이름 있는 마수나 용사의 일부다. 이미 잊혀져버린 과거의 잔재가 호지를 괴롭히고 속박했다. 이미 쇠사슬처럼 굳어버리는 시신 조각들 속에 잠겨가는 호지를 보며 아수라왕이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아수라왕은, 이런 장면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수도 없이 이겨왔기에, 패배를 허락한 적이 없기에 어떠한 감흥도 없었다.

불사의 존재를 알고 대적했을 때 처참하게 당했다. 하지만, 그 때조차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강한 존재라는 것은 피부로 느꼈으나, 너무나도 높이 있었다. 너무 높은 이상을 가지고, 세월을 가졌다.

지루하다. 싸움이란 모조리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카타스트로피에 붙은 이유도,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고 였다.

비슷한 부하들과, 같은 불꽃을 다루는 자로서 호지는 아수라왕 그 자신을 태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죽는다면 이런 녀석에게, 라는 느낌으로.

하지만 실망해버렸다.

결국 이 정도였던거다.

"이 공간의 이름은 '아수라장'. 우리를 적대한 수많은 시신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그것은 역사, 그것은 투쟁의 세월이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알게 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아수라왕이 안고 있는 업이다.

"너도, 수많은 시신에 묻혀서 사라져라. 이 공간의 일부가 되어라."

아수라장의 공간에 쌓인 시체가 하늘로 솟구치고, 호지의 위로 떨어져내렸다. 시신의 산들이 쌓여가는 가운데, 아수라왕은 고개를 돌렸다.

더이상 볼 것도 없다. 유다 수준의 괴물이 아닌 이상, 저것에는 벗어나지 못 한다.

도깨비들의 여왕은, 그들의 은거를 종식시킨 여자는 끝나버렸다. 아마 도깨비들도 와해되어 사라질 터, 진격을 막는 자는 없을 것이다.

"역시, 이래서 안된다니까."

지루하게까지 들리는 소리에 아수라왕이 뒤돌았다. 알 수 없는 시신의 산이 기묘한 타격음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신의 산이 무너진 순간.

세계, 공간은 반전했다. 아니, 시간마저 반전하고 말았다.

"도깨비들이 어떻게 카타스트로피의 손을 피해 '은거'가 가능했는지 알아?"

카타스트로피의 손은 그야말로 전역에 뻗어 있었다. 인간, 마수 할 것 없이 그것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호지가 몸 담고 있던 치우회 또한 그것에 닿아있었다. 그런데도 도깨비들만큼은 발견할 수 없었다.

어째서?

쿠르르르....

시신의 산이 무너지고 드러나는 호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고통과는 다른, 짜증이 어려 있는 얼굴이었다. 겉모습과 너무나도 어울려서, 도리어 아수라왕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오로지 장난을 위해 마법을 탄생시킨 도깨비들이 어째서 침묵을 지켰을까? 어째서 남의 앞에 나서지 않았지? 은밀하게 장난을 걸지도 않은 이유는 뭘까나?"

호지의 오른손이 뻗는다.

쥐여지는 것은 갈색의 감투. 하지만 이미 감투라고 보기에는 힘든 모습, 가면과도 흡사한 모습이었다.

"너 따위는, 상대가 안돼."

촤아아악!

시커멓게 물들었던 공간이 순식간에 색채를 갖는다. 마블링되었던 물감이 마치 생명처럼 꿈틀거리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성곽. 성채다.

그 누구의 접근도 용인치 않으며, 그 누구의 간섭도 불허한다.

절대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고대의 최종병기가 그곳에 있었다. 손이 닿을 곳에, 하지만 절대로 손이 닿지 않을 곳에 그런 것이 있었다. 넘보는 것을 넘어서 경외심마저 갖게 한다.

아수라왕은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있었던 이유는 이것을 보기 위해서라는 걸. 자신들이 도달하지 못한 도달점이 눈앞에 있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그것은, 처음의 마음. 처음 아수라왕이라 칭해지고 가졌던 목표. 세월이 지나면서 땅바닥 속에 묻혀버렸던 그것이다.

자신은 지키고자 했다. 가장 강한 자로서, 옆에 있는 동지들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찾아들어온 격전은 그 마음마저, 긍지마저 잊게 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죽지 않는자로서 죽기 위해 살았다.

눈 앞에 있는, '수호의 이상형'을 위해.

그들은 그저 편안히 살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것을 얻지 못 하고 망가져버렸기에, 지금부터 얻는다 해도 의미는 없었다.

"하하하..... 너무, 늦어버렸지 않나. 응?"

성채의 포문이 일제히 아수라왕을 겨냥한다. 빗나가지 않는 절세의 포구가 아수라왕에게 겨누어진 것이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할 생각도 없었다.

이제는 쉴 때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이 때에 싸움을 지속해봤자 의미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기 전에 자신의 이상형을 보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나도, 너희들의 곁으로..........."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세는 것자체가 어리석은 포격의 숫자가 아수라왕을 불살라 먹었다. 처참하게 터져나가는 아수라왕의 몸체를 보며 호지는 그것을 등졌다.

공간이 깨어져 나가고, 전의를 격화되어가는 아수라들과 도깨비들의 싸움을 무시했다. 그것을 지켜볼 의향은, 호지에게는 없었다.

"여왕."

"아아~ 몰라. 난 바빠. 가온이 알아서 처리해. 어차피 잡병, 시간 낭비야."

그렇게 말하며 사라져버리는 호지다. 가온은 침묵을 지키더니, 잿더미나 다름 없는 아수라왕을 내려다보았다.

움찔움찔 거리는 그 몸체는 애처로울 정도로 생을 갈구하고 있었다.

"얌전히 죽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군, 아수라왕."

"그런.....모양이다. 이미.... 살 의지는 없....다. 죽여다....오."

"그럴 수는 없다."

가온의 부정. 아수라왕의 눈이 의아함을 띈다. 상대팀 현 최강의 전력을 살려주겠다는 가온의 말을 쉽사리 믿을만큼, 아수라왕은 쉽게 살아오지 않았다.

"살았다면 살아라. 어차피 너의 과거는 이것으로 종결되어 졌을 터이다. 이 이상 내가 손을 대봤자, 무의미한 일일테지."

불사의 이능을 가진 이들을 이끄는 자다. 벌써 몸만큼은 10분지 1을 회복한 아수라왕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과거가 매듭지어졌다면.... 죽어야만 한다. 이미 생명에 의미가 없어."

"그 생명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네가 아니다. 하늘도... 아니지."

"알 수가 없다. 넌 무엇을 말하고자 하지?"

가온이 도깨비들의 무리를 자신의 곁으로 모았다. 만마의 행진, 백귀야행의 진신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온의 흑점 같은 눈이 아수라왕을 향했다. 불꽃 때문에 표정을 알 수 없을텐데도, 아수라왕은 그의 얼굴이 매우 슬퍼보인다고 생각했다.

".... 이 자리는 너의 자리가 아니다. 너의 영겁과도 같은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의 유희

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나."

아수라왕의 물음에 가온은 침묵했다. 고요하고,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이 길어질 때, 가온은 마침내 그 입을 열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100년으로 한정된 도깨비의 삶이 만년이 넘게 연명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가온은 살아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뒤따르고 싶어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때를 기다리면서.

아수라왕은 묵비했다.

그리고, 조용히 방주 위의 전쟁터에서 종적을 감췄다.

호지 vs 아수라왕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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