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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요연이 든 것은 평범한 동양의 철검. 유달리 특별한 장식이 있는 것도, 사신검에 필적하는 신비로움이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검이다. 요즘 시대에 검을 쓰는 곳이 별로 없어서 찾기 힘들지는 몰라도 막상 구하려고 하면 꽤 구하기 쉬울 법한, 평범한 재질의 검이었다.
사신검의 날카로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검을, 요연은 들어올렸다. 그녀가 다다른 검의 경지는 이미 검의 날카로움을 따지지 않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것이 평범함을 넘어서 오히려 싸구려로 보이는 철검과, 검들 중에서는 정점에 달했다고 할만한 사신검과 비교한다면 더더욱.
"...뭐지? 그 검은."
"제가 만든 검입니다. 몇개나 부숴서 만든 저만의 검이지요. 이름은... 파천이라 합니다."
언젠가 요가 방주에 데리고 왔던 도공(刀功). 그에게서 배운 대장장이의 기술로 요연은 자신의 검을 하나 단조해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요연이 들고 있는 '파천(破天)'.
크기는 양수검이라고 할 수 있는 백호검과 청룡검보다도 크고 넓이는 현무검의 폭보다 조금 좁은 수준이다. 검첨은 주작검의 모습처럼 조금 휘어져 있어 그저 검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파천. 사신검의 모습을 한 가운데 모은 외형을 지닌 검이었다.
오로지 요연만을 위해 탄생된 '요연의 검'. 요연에게 있어서는 그 어떠한 신검보다도 우위에 있었다.
"그런 둔검(鈍劍)으로 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요연?"
"예. 그렇습니다. 이 검은 제가 쥐었을 때만큼은 사신검 이상의 위용을 같습니다. 내구도는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위력면에서는 아까 이상의 모습을 보실 수 있겠죠."
"멋진데."
"허나... 이것만으로 할아버지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아해 하는 케이슨을 두고 요연은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여러가지 색, 여러가지 재질의 조각을 합쳐서 만든 것만 같은 가면, 사신검주의 가면이 그곳에 있었다. 그것을 뒤집어 쓰는 요연의 손짓에는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힘이 끌어올랐다. 가슴에 한 일 자로 그어져 있던 참격의 상처는 이미 통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잃어버렸던 용기를 되돌려 받는 듯한 기분에 요연은 파천을 꽉 움켜쥐었다.
할 수 있다. 사신검을 잃어버린 상태로 싸우는 것도,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논리적으로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사신검의 마수들은 전부 황룡의 제자였던 몸, 기예를 파훼 당하기가 쉽다. 황룡검을 끝끝내 꺼내지 않고 내부의 힘으로 돌린 것도 그 때문이다.
아니, 그런 사정은 이제 됬다. 지금은 그저 자신을 위한, 자신만의 검인 파천으로 싸우면 그만이었다.
"사신검주 요연.... 아니, 이제 파천검주라고 불러야 하나? 정말이지, 사심이 잔뜩 깃든 이름이로구나."
파천(破天). 그 이름은 곧 '하늘을 부순다'. 하늘이 내려준 천명을 부수어버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겠다고 맹세한 이름이다.
무엇보다도, 그 검에는 요의 운명을 뒤바꾸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게 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파천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하늘이라도 무너뜨려 보이겠다는 신념의 표상이 바로 그 검, 파천이었다.
"갑니다."
선공을 취하는 요연이다. 파천이 케이슨의 앞으로 휘둘러지면서 대기를 분해한다. 하지만, 케이슨의 속도는 그렇게 느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요연의 뒤로 돌아선 케이슨의 검이 그대로 하강한다.
"컥...?"
케이슨이 검을 맞고 날아간다. 예상치 못한 일격, 완전히 방심한 상태에서 맞은 일격이었던지라 타격이 꽤나 컸다.
깊게 잘려나간 가슴을 움켜쥐고 케이슨은 눈으로 요연이 뻗은 검을 인식했다. 아까보다도 얇아진 검이 두개, 아까의 대검과 장검의 중간적인 모습이 두개로 쪼개진 형태였다.
"요연답지 않아. 이런 사기를 치는 여자가 아니었을텐데?"
"요애는 항상 자존심을 최하위로 두었습니다. 가끔씩 뒤바꾸는 일도 있었지만, 그건 그래도 이래되 된다 싶을 때만 그러셨죠. 치사하고 뭐고... 전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두개로 갈라진 두 장검을 가볍게 놀리면서 요연이 도약한다. 이번에도 선공, 케이슨은 검의 영역이 닿지 않는 곳으로 물러난다. 압도적인 스피드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려는 듯, 케이슨의 검이 뻗어나간다.
파츠츠츠츠....
회피를 무시하려는 듯, 무형검의 번개가 순식간에 부풀어오르면서 검끝이 향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이것이라면 요연도 위험할 것이다.
쩌엉!
돌연 터져나가는 폭음, 케이슨이 뒤로 물러난다. 아까 날렸던 번개의 참격을, 요연은 공격으로 맞대응해 받아낸 것이다. 절대적인 위력을 갖고 있다 생각했던 케이슨의 몸에 조그마한 틈이 생겨버렸다.
"칫...!"
인지를 벗어난 움직임, 광진의 극치를 보인다. 확실하게 상대방의 맥을 찌르는 공격인데도 그 놀라운 속도로 가볍게 피해냈다. 요연이 혀를 차면서 들고 있는 쌍검을 다시 하나로 모아 대검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었다.
"빠르군요. 감탄했습니다. 가면으로 강화한 저인데도 따라 잡지 못하는군요."
"장난은 마라, 요연. 한번이라도 맞으면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걸 잘도 집어넣었으면서...."
"그야 그렇지요. 적이니까."
요연의 말에 케이슨은 더이상 대답할 수가 없는지 잠시 한발자국 뒤로 물렸다. 사박하는 소리가 적막한 전장을 새롭게 메꿨다.
한보를 뒤로 미루지만, 후퇴는 아니었다. 그저 큰 것을 준비하기 위한 자세, 아까 요연의 삼검벽과 주작검의 남천을 상대하던 그 포격이다.
혈문신 포의 형.
그것을 준비하는 케이슨의 눈에서 뇌광이 번뜩인다. 아니, 눈뿐만이 아니라 전신의 피부에서 용과 같은 형태로 뇌기(雷氣)가 치솟았다.
일격에 승부를 보려는 것일까, 요연 또한 자신의 검을 들어 내놓을 수 있는 최종비기를 검에 담았다.
오색의 일렁거림이 검날에 집중되고, 서서히 검의 형태를 바꿔나간다. 이미 검의 형태라고 보기 힘든, 포격의 포대.
포(砲) 대 포(砲)
단순한 위력에서는 어느쪽이 강할지 미지수다.
"가라.....!"
"흐아아아아압!!!"
케이슨의 목소리와 요연의 기합이 섞여들면서 동시에 두개의 포격이 맞부딫혔다. 소리를 무시하는 힘의 파동이 땅뿐만이 아니라 공간마저도 일그러뜨렸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뒤따라오는 난폭한 폭음이었다. 그 힘의 격돌의 성세를 짐작케 하는 폭력의 포격, 이미 팽팽한 상태다. 어느쪽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차츰 요연이 내놓은 오색의 탄포가 케이슨이 만든 금색의 탄포를 점점 갉아먹고 있었다.
마침내 종국, 케이슨의 포격이 꿰뚫렸다. 삼검벽을 날려버리고 남천마저 꺼내게 한 그 무적의 파괴력도 요연의 포에는 무의미 했다.
대지를 헤집고 날아가는 포격을 보며 요연은 잠시 방심했다.
그 탓에,
쯩.
파천이 부러져나간다.
촤아아아악!!!
그것의 다음으로 요연의 몸이 잘려나갔다.
남천을 부숴버리고 사신검을 파괴했던 케이슨의 최종비기, 순천명(純天命). 그것이 뇌신의 역사를 품고 요연을 베어냈다.
케이슨이 슬픈 얼굴로 짤막하게 읊조렸다.
"넋을 놓으면 안된다. 아니.... 이미 의미는 없겠지만."
뒤로 돌며 관제탑으로 향해가는 케이슨이다. 최강의 장벽이라도 거침없이 지나갈 것 같은 그의 발이, 돌연 멈춰섰다.
"그렇겠죠. 가르치는 당사자가 그 말을 어겨서야 받아들이고 싶어도 불가능할 겁니다."
"...!?"
그는 놀랐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순식간에 대응으로 들어간 케이슨이 양 손에 쥐어져 있을 무형검을 뻗었다. 아니, '뻗었다고 생각했다'.
없었다. 그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며 사신검을 부러뜨렸던 명검이,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그 검은... '당신의 힘으로 만들어낸 검'이었죠. 역시 요애입니다. 확실하게 상대방의 패를 묶어두었군요."
"너....!"
"요애 가라사데, 케이슨의 힘은 황룡의 힘. 그 힘을 역산하기 위해서는 사신검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상대방 시야의 밖으로 빼내야 한다.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케이슨이 그렇게 약하지 않다면."
사신검을 부러뜨린 것도, 파천을 꺼낸 것도 전부 예측된 것. 다른 누구도 아닌 육왕에게 예측되었던 것이다.
요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최종적으로 케이슨을 묶어둘 수 있는 비의, 대룡마법진. 사실상 황룡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심장을 버린 이상 그 또한 평범한 용족. 통하지 않을리가 없다. 통하지 않는다면 세번째 계책....이라고 하셨지만 결국 통하는군요."
황룡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대룡마법진, 그것이 최종적으로 만든 당사자인 케이슨을 옭아매고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케이슨이 물었다.
"그렇다해도.... 어떻게 피해냈지? 분명히 순천명을 맞았을텐데."
"공간계 대마법사의 제자였던 몸입니다. 그런 건 쉽지 않습니까?"
공격이 다가올 부위만 공간계의 힘으로 다른 곳에 전송하면 그만. 거대한 힘을 다루는 만큼 손끝의 감각은 무뎌져 있을테고 속이는 것은 간단하다.
하물며 상대의 무기가 무형검이라면 더더욱.
"안녕히 가십시오, 할아버지."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부러져나간 파천이 단말마를 내놓는다. 마치 비명과도 같은 마력의 울림이 파검(破劍), 파천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압도적인 경력, 단숨에 케이슨의 몸을 두쪽으로 갈라놓았다. 처참하게 갈려 사라져가는 케이슨의 모습을 보며 요연은 파천을 놓는다. 마치, 묘비와도 같다.
옛날에 자신을 키워줬던 은혜에 답하는 마지막이다.
요연 vs 케이슨전(戰)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