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319화 (319/340)

0319 / 0340 ----------------------------------------------

최종편!

"웃기지마라아아!!!!!"

쩌저정!

붉은 단심검이 단숨에 수복되어 자신의 몸을 짓누르려는 철구를 받아냈다. 검과 철구가 만들어내는 충격파가 주변의 땅을 전복시킨다. 압도적인 패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챠이의 방어에 프리아가가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 뿐.

우직, 우지지직!

한번 부러져버린 검은 아무리 다시 부활해도 쉽사리 부러진다. 무엇보다도 단심검은 마음의 심지가 굳을 때만이 불파(不破)의 성질을 발한다.

오기로 베어올린 검이, 프리아가의 철구를 버틸리가 없었다.

쩌억!

"큭...!"

검이 부러져나갔다. 과연 오기로 만든 검은 소용이 없었는지, 몇초 버티지도 못하고 단숨에 부러져 나가고 말았다. 냉기 섞인 철구가 지척에 다다랐다. 머리가 깨져나가고 뇌수가 흩뿌려질 것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챠이 자신도 이미 포기한 상태다. 모두들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이 있다. 도우러 올 사람 따위는 없었다. 설혹 이기고 오더라도 프리아가의 힘을 받아낼정도로 힘이 남지는 않았으리라.

파바바바바방!!!!!

그러한 상황에서 강대한 힘이 챠이를 감싸며 솟아올랐다. 마력의 기파, 거대한 힘의 채찍 같은 것이 그물망처럼 둘러지며 프리아가의 일격을 튕겨냈다.

형태는 뱀. 아니, 용이다. 평소 능파가 보이는 모습처럼 작지만 그것은 분명히 용이었다. 다만, 얼굴은 인간 노인의 것.

인면룡(人面龍), 동방대제 복희다. 먼 옛날에 존재했던 오방대제 중 하나가, 챠이를 지키며 힘을 발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을...!"

프리아가가 철구를 거뒀다. 대신 대기의 수분을 끌어모아 거대한 창을 만든다.

압도적인 중량, 아까의 일격은 비교도 되지 않는 공격이었다. 그에 대응하듯 복희의 입에서 새파란 불꽃을 토했다.

하지만 프리아가의 진심이 담은 일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 그래도 챠이는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 영역의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복희가 사라지고, 빙산의 일각 같은 창은 눈앞에 떨궈져 몸체를 부숴내렸다.

쿠구구구구......

아까의 공격에 닿은 곳이 그대로 얼어간다. 맞았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지는 공격이다. 챠이는 숨을 고르면서, 다시 검을 빼들었다.

부러져버린 검, 다시 생성시킨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오기만은 아니었다.

"왕은...그래, 자신만의 배역을 주었다."

챠이에게는 프리아가를 막는다는 배역이 있었다. 자신을 믿고 있다는 증명이 그것외에 뭐가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왕은 직접 챠이에게 말했다.

'부탁한다'고. 그 한마디를 했다. 더이상의 믿음은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은 왕을 지키고, 왕과 함께하면 된다. 단심검주의 이름, 그것이 갖는 의미는 바로,

"'왕의 의지를 행하는 자'. 그것이 나..... 잊을 뻔 했어."

상대방이 강하다는 것에 눌려 잊어버릴 뻔 했다. 그것만이 이제 자신에게 남은 삶의 이유 였는데 잠시나마 망각하다니.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 허나, 마지막 명령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물러날 수 없다.

반드시 막는다. 프리아가만큼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막아내야만 한다. 설혹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헌데, 누구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프리아가의 공격을 막아냈다. 뚫리기는 했으나 시간은 벌었으니 다행이지만,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기뻐하기에는 챠이의 신경이 그렇게 굵지 않았다.

"나지~."

터벅터벅.

흥겨운 발소리가 울렸다. 경박하게까지 느껴지는 발소리에 육중한 쇳소리가 섞여 기묘한 화음을 내고 있었다.

"이햐아~ 역시 간만에 입는 갑옷은 불편하지 않노. 입어보고 놀랐다카이. 조금 헐렁했던 갑옷이 딱맞으니 말이데이. 감각을 새로 하는데 힘들었제."

목소리에도 전혀 긴장감이 없다. 마치 어딘가로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챠이는 그 목소리에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이 자리에 없어야 할 여자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에는 흑창을 매고, 앞으로는 인면룡의 모습으로 된 손잡이의 도(刀)를 잡고 있다. 전신에 두른 묵색의 철갑은 입고 있는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중장비건만, 행동자체는 굉장히 날렵하다.

운. 치우회의 배신자였으며, 챠이의 왕이 역공작을 걸기 위해 남겨두었던 여자기도 했다.

지금은 분명히 연금되어 있었을텐데 어떻게 밖으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이런 최악의 상황에.

"흑기사단 제 1기사단 단주 '로이나 프리메니'인가....."

챠이의 눈이 더욱 험악해졌다. 프리아가가 입에 담는 흑기사단은 챠이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사막에서 왕을 만나기 전까지 챠이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던 기사단으로, 케이슨의 사설무장병력이었다. 그들의 실력은 그렇게 강한 것이 아니지만 기사단의 단주들이 가지고 있던 특수능력은 챠이를 괴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에 붙었던 2기사단 단주의 경우에는 '자폭'.

일회용이나 다름 없는 능력이지만, 그걸 정면으로 쳐맞은 챠이로서는 죽음에 거의 근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앤트로아를 만나지 못 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헌데 1기사단의 단주란다. 2기사단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죽을 뻔 했는데, 프리아가만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1기사단의 단주가 참가하면 얄짤 없이 죽을 것이다.

"큭.....상관없다. 싸우면 그만."

승산 따위는 잊었다. 왕을 위해 살아가면 그 뿐인 생명이었다. 적이 둘로 늘었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었다.

적이라면 벤다.

그 뿐이다.

"간만에 뵙소이다 프리아가. 헌데 시간 좀 내주이소."

"...그러지."

프리아가가 물러난다. 육중한 거체와 함께 철구도 뒤로 물러났다. 그 대신 운이 챠이에게로 걸어온다. 위협적이지도, 상대방을 위축시키는 발걸음도 아니었다.

그저 걷는 것이다. 하지만 챠이에게는 무엇보다도 위협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붉은 빛이 번뜩인다. 거대함을 그대로 깎아낸 것 같은 크기의 대검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운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째애앵!!!

복희도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챠이의 단심검을 쳐냈다. 완벽한 기습이었음에도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막아냈다.

실패했다. 이래서는 왕에게 한 맹세를 지킬 수 없다.

'폐하....!'

"이햐아~ 역시 요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데이."

운이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챠이는 뇌가 녹아내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 생각하지 못 했을까. 운이 탈출했다면 노릴 자는 자신이 아니라 왕인 것이 분명하다. 자기 같은 말단 가신보다는 왕을 칠 터.

"네놈,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운!!!!!!!!!!"

"거차암. 대사도 똑같고마."

단심검을 두개의 장도로 바꾼 챠이가 운의 앞으로 도약했다. 이족보행의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은 도약, 하지만 운은 침착하게 발차기를 찔러넣었다.

뻐어억!!

타격부위, 각도, 힘. 무엇하나 나무랄데 없는 일격에 챠이가 뒤로 넘어간다. 하지만, 챠이는 다시금 달려들었다.

"적당히, 하라고!!!"

뻐억!

두번째 특공을 걸어오는 챠이의 머리에 쵸핑 라이트를 꽂아넣었다. 맞은 부위가 잘못된 것인지 챠이의 돌격이 멈추고, 비틀거렸다. 칼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챠이지만 싸울 수 있는 상태는 절대로 아니었다.

"어떻게 대사나 행동이나 요의 말이랑 하나도 틀린 것이 없노?"

"네년....! 폐하를, 어떻게 한거냐!"

"이것 역시 같고.... 정말이지 창의성은 없는 놈이구마."

그렇게 말하며 운은 챠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예상외의 행동이었기에, 챠이는 몸이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충격인 건 따로 있었다.

프리아가다. 지금까지 챠이를 두들겼지만, 지금 행동은 분명히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생각이냐, 로이나."

"뭔 생각이냐꼬 물으신다면....."

등에 매인 창을 뽑아 그대로 프리아가를 향해 투척, 기이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드는 창을 맨손으로 깨부수는 프리아가다. 노기가 충천한 프리아가의 얼굴이 점점 더 얼어붙어간다.

"이럴 생각입니다...꼬 말하면 될까나. 굳이 말하자면 배반이겠지예. 음, 좋은 울림이고나."

"진심이냐... 다른 누구도 아닌 흑기사단의 네놈이!"

"뭐, 케이슨님에게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키워주고, 먹여주고, 훈련도 시켜주셨지요.... 그 은혜를 부정할 생각은 없심더. 다만,"

단서를 붙이는 운이다.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떠올랐다.

"날 키운 건 당신이 아니니까 말이제. 그리고..... 뭐, 케이스님의 목적도 본디 이런 것이니까 말이야. 케이슨 당사자가 오더라도 칼을 겨누겠지, 나는."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프리아가는 한 때 로이나라고 불렸던 흑색의 기사가, 가짜 사투리를 구사하는 치우회의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자에게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몇번이나 느낀 프리아가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애병인 철구를 앞으로 내미면서 전투자세를 취했다. 아군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상대에게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지금은 묻지 않겠어, 운."

몸을 가누기 힘든 몸일텐데도 챠이는 일어서서 운의 옆에 섰다. 주변의 공기만으로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운과 팀을 짜서 싸운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때' 왕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테니까'라는 그 한마디다. 그 당시에 왕은 어떻게 행동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분명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 같은 건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남자가, 바로 자신의 왕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