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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육왕의 가면. 다른 열개의 가면 중에서 삼왕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가면과 어깨를 견주는 황금색의 가면이다.
마치 자연이 남겨놓은 최후의 미와 같은 아름다운 곡선, 누군가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는 유능한 재단사에게 맞춘 것처럼 능파의 얼굴에 착 달라붙었다.
이 아이를 위해 탄생한 것처럼 너무 꼭 들어맞았다. 이래서는 안되는데도, 너무나도 잘 맞아서 땔 수가 없었다. 가면과 얼굴의 틈세에 접착제라도 바른 것일까. 손가락이 들어갈 틈바구니도 보이지 않는다.
땔 수가 없다.
"젠....장.....!"
"후후, 괜찮아요 할아버지."
능파는 웃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웃음이 절대로 평범한 미소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괜찮을리가 없다. 자신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참고 있을뿐이다. 너무나도 슬픈 감정은 마음의 한구석에 밀어넣고, 날 걱정시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니, 그런 것이 의미가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 능파이니 뜻은 분명히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날 사랑하기에.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말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어느 때도 아닌 '지금의 능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미안해... 능파.....난, 이럴 생각으로 그 말을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육왕이 아니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육왕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단지 난 가면을 쓰려고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거부 당했다. 폭주할 뻔한 날 말리는 능파가 가면을 잡았고, 벗겨냈다. 간단한 사실들의 나열이지만 그것에 꼬리표처럼 달려 있는 것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가면을 쓸 수 있는 것은 예언에 선택 받은 자들뿐이다. 벗길 수 있는 사람도, 물론 선택 받은 자들뿐이다. 그것은 이미 바다에서 아쥴 덕분에 확인했다.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육왕으로서 선택 '받았던' 나만이 다른 가면도 쓸 수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내가 육왕이기에 그 가면을 쓸 수 있었다. 틀리지 않을 터인데, 난 육왕의 가면을 쓸 수 없었다.
내가 아닌, 능파가 쓸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른다. 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은 있다.
'능파가 내 대신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 짚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 밖에 없다.
내가 런던파괴 때 2대째라는 이름을 물려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울지 말아요. 할아버지 때문이 아니에요. 단지... 모두가 몰랐던 것 뿐이죠. 아마 누구도 눈치채지 못 했을 거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아니야... 난 너무 안일했던 거야. 패를 너무 아껴뒀어. 최소한 그라드와 싸울 때 가면을 썼어야 했다. 그랬다면 어떻게든 수를 낼 수 있었을텐데...."
쓸 때는 써야만 했다. 너무 아끼다보니 이런 변화조차 알아차리지 못 했다. 진정으로 무서운 적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을텐데.
능파가 작은 팔로 날 끌어안았다. 내 머리가 능파의 가슴에 닿는다. 구도의 이상, 어느샌가 난 바닥에 반쯤 주저앉은 상태였다.
시야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반쯤 쓰러진 상태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누구도 아닌 능파가, 그 꼴이 될지도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날 위하여.
"울지 말아요."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하는 능파에게서 떨어져 능파를 보았다. 얼굴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난 모른다.
"능파야. 가면.... 잠시 벗어주겠니?"
내 힘으로는 땔 수 없으니까. 뒷말을 삼키며 그렇게 묻자 능파는 더듬거리는 손짓으로 가면을 벗었다. 눈물이 흐른 자국이 볼과 눈에 남아 있었다.
"아아, 싫어요. 이런 모습.... 최소한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괜찮아, 그래도. 예쁘니까."
능파가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눈물이 조금씩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얼굴과 겹쳐져서 더욱 슬퍼보이는 얼굴이 된다. 양손을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았다.
"후후, 평소보다 대담한 말을 하네요. 기뻐요."
"물론이지. 그럴 수 밖에."
생각 밖의 말인지 능파의 고개가 슬쩍 옆으로 누웠다.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날 보는 능파를 향해 시선을 맞춘다. 평소랑 다르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는 능파다.
카타스트로피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에,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춰왔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오히려 말해야 할 때다.
바닥을 보는 능파의 얼굴을 엄지손가락으로 튕기듯이 밀어올렸다.
"아팟.. 읏...!?"
턱끝의 아픔을 느끼는 능파의 입술을 그대로 내 입으로 막아버렸다. 조금 거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지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놀란 능파의 팔이 등을 감아올리고, 능파의 등을 눌러 가슴팍으로 끌어들인다. 키스는 멈추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그저 서로를 원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에서 가볍게 끝났어야 하는 시간, 짧지만 길고 긴 키스로 대신했다.
"너무하네요, 할아버지. 무드도 뭣도 없어."
"그런 걸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지."
난생처음으로 해보는 말이라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영상매체나 활자매체로 자주 봐왔는데도 역시 실전은 달랐다.
"좋아해, 능파."
"....."
대답이 없다. 너무나도 조용한 침묵, 불안해지는 가슴을 누르며 대답을 기다렸다. 능파가 내 옷깃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용 특유의 근력에 대비가 없던 나는 그대로 끌려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너무하잖아요? 이런 순간에 와서야 그런 말을.... 최악이에요, 할아버지."
"알아. 그렇기에 한 말이야."
숨을 한번 들이키고 다시 말했다.
"죽지마. 널 좋아하는 날 위해 살아남아. 머리만 남든 다리만 남든 어떻게 해서든 돌아와. 반신이 날아가 있으면 나머지 반신을 찾아주고, 안되면 내가 그 반신이 되어줄께."
"망가지는 게 전제라니, 마음에 안들어요. 하지만....좋아요. 반드시, 살아남을께요."
능파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액체의 감촉에 난 능파를 끌어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능파의 어깨는 여렸다. 이 여린 어깨에 죽음의 운명이라는 무서운 것을 지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무력함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능파가 내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떨어졌다.
"사랑해요, 할아버지. 옛날이나, 지금이나요.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어요. 죽지 말아요."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매어서 제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뻐끔뻐끔 거리는 입을 다물고 다시 능파의 입에 내 입술을 맞추었다. 기습적인 것이 아니라 능파도 부드럽게 날 받아들였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키스. 1초처럼도, 1년처럼도 느껴지는 한순간 속에서 능파와 지냈던 옛날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들. 위험했던 그 순간조차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웃었던 기억, 슬펐던 기억, 괴로웠던 기억. 좋은 기억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능파와 나를 있게 했다.
능파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능파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은 아니었지만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능파보다도 더 잘.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고 꿈 같은 시간이 지났다. 입술이 떨어지고 아쉬운 얼굴의 능파가 보인다. 다시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이 전쟁이 다 끝나면..... 뭘 할까?"
시간은 촉박했다. 초단위로 전세가 바뀌어가지만 능파와 단 둘이 있는 그 순간은 버리고 싶지 않았다. 능파 또한 같은 마음인지, 놓을 생각이 없는 듯 손을 다부지게 꼭 부여잡았다.
따뜻한 체온에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글쎄요....할아버지가 하고 싶은건요?"
"음, 우선 능파를 침대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랄까."
평소에도 같이 잤지만, 그런 의미랑은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능파가 아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중량이 갑자기 늘어난다. 온도가 100도 가까이 치솟은 것처럼 손이 뜨거웠다. 하지만 기분 나쁜 것과는 다른, 행복한 감정.
능파가 내게 몸을 맡겨온다. 가슴에 느껴지는 중량감이 사랑의 무게 같아서 한시도 때어놀 수 없었다.
"기대할께요. 대신.... 리드해 줘야해요? 저 처음이니까."
"푸하핫, 나도 처음이야."
웃으면서 반박하자 능파가 정말로 놀란 것처럼 뒤로 물러났다.
"어라, 학교에서 슈라던가 요연이라던가와 에로한 상황을 전혀 연출하지 않으셨다구요? 자기를 좋아한다고 말한 사람들한테?"
난 지금까지 무슨 삶을 살아온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했다. 내가 그렇게 성적으로 문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능파가 빙글, 돌면서 웃었다.
"거짓말. 거짓말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순간 오싹했어."
그렇게 말하며 잠시 웃고, 우리는 서로에게 등을 보였다. 더이상 나눌 대화는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제 해야할 의무뿐.
자박, 자박.
동시에 한발자국씩 걸으면서 서로와 거리를 두었다. 하고 싶은 말, 행동을 전부 발소리에 담았다. 미쳐 나누지 못 했던 사담들이 메마른 공간만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