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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
길게 뻗은 수정을 바다에 살짝 걸쳐두었던 거대한 무덤이 부상한다. 그저 솟아오르는 것뿐인데도 주변을 위협하고, 생명체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다. 인간, 인외(人外)를 가릴 것 없이 작은 나라 하나를 세워둔 것 같은 그 크기와 육중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와 경외심을 유발하는 힘이 있었다.
마주 보듯이 선 방주가 천천히 뒤로 움직였다. 기류를 일그러뜨리는 움직임에 주변을 움직이던 전투기와 DS의 움직임이 흐트러졌다.
거대한 소라껍질을 방주의 아랫부분에서 빌딩만한 포구가 튀어나온다. 결전의 종이 울리는 순간 작렬할 위협적인 포격은 아직 울리지 않고 있었지만 그 위력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무덤을 호위하는 것처럼 날고 있는 날개 달린 레플리카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진형을 빠르게 바꾸어간다.
방어를 위한 원진, 돌격을 위한 삼각진. 지치지도 않는 것인지 빠르게 무덤주위를 선회하는 레플리카들에게는 무덤이나 방주와도 다른 초현실적인 부분이 있었다. 너무나도 인위적이어서 오히려 그런 것을 알 수 없는 듯한 느낌.
해상에서는 전국가적인 함대를 볼 수 있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심지어 해적선까지 참가한 전함들은 무서운 위용을 뽐낸다.
해저는 어떠한가. 잠수함만 1200기. 게다가 섬 하나 정도의 크기를 가진 마수, 최후의 귀수산인 아쥴과 서쪽에서 상당히 유명한 해룡공 리바이어던과 지역불문의 인어까지 그곳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패배라는 두글자는, 이 앞에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얼굴에 길게 흉터를 그려놓은 남자가 방주 근처에서 부유하는 DS의 콕핏에서 숨을 길게 빼냈다. 미군 출신의 대령, 발터다.
"장난이 아니군."
간단히 말로 표현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승산과 적과 아군의 숫자 같은 것을 제외해도, 놀랄만한 것이었다.
발터는 물론이고 그와 함께 참가한 중대의 인원들 중 스무명이 DS에 탔다. 훈련기간은 겨우 두달이지만 익히기는 쉬웠고 전쟁광인 동료들은 '부서지지 않는다면 가져가도 좋다'는 말에 환호를 질렀다. 발터 또한 그러기는 했지만, 그런만큼 그는 알고 있었다. 적들은 그쪽이 피해보는 것을 감수할만큼 강하다는 것을.
저기서 날아다니는 레플리카는 문제가 아니라고 들었다. 그도, 저런 것을 상대로 질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본대라는 것은 상당한 요주의의 것으로, 상당히 강력하다는 것 같다.
저런 것들과 매일 같이 싸워온 그들이 직접, 패색이 짙은 얼굴로 그리 말했다.
발터의 손에 쥐어진 손잡이에 가볍게 힘을 주어 밀었다. 그가 타고 있는 기체, 빅토리가 손을 들어올리면서 쥐고 있는 DS용 라이플을 들어올렸다.
[오오, 대령님도 근질근질하신가~~?]
오픈채널로 말을 걸어오는 같은 중대의 부하, 갈릭이다. 용병출신이었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직업군인으로 들어온 케이스였다.
그가 탄 이족 역각의 붉은 기체가 빠른 속도로 선회하면서 퍼포먼스를 부린다. 근처에 있는 DS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자 갈릭의 기체가 더욱 화려하게 움직였다.
"갈릭, 아직 싸움전이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마."
[히히힛, 바보 같은 소리말라구 대령님. 탄약과 미사일을 제외한 기체의 에너지는 무한이라구. 레이저포가 어째서 무한이 될 수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건 써보지 않으면 안되지.]
애처럼 웃으면서 주변을 빙글빙글거리는 갈릭을 보며 발터는 한숨을 지었지만 딱히 제재는 가하지 않았다. 발터 또한, 현재 DS가 방주에 있는 '무한동력시스템'의 백업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령님, 그거 알아? DS에 탄 녀석들 중에 '사일런스'라던가 '비마'가 있어]
"그 유명한?"
[그 유명한.]
상관을 향한 예는 전혀 없지만, 발터는 그저 가볍게 받아들이며 정보만을 읽어들였다. 놀랐다면 놀란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사일런스, 비마. 그리고 그 외의 몇몇 용병부대는 미군은 물론이고 각국의 골칫거리였다. 무언가 이상한 일(인간이 벌이기 힘든 일. 즉, 마법)이 일어났으면 십중팔구는 그곳에 그 용병부대가 있었다.
명백한 주권영역의 침범이지만, 그들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어느 호수가 갑자기 범람했을 때도,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난 사일런스가 나타나 경찰과 군인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몇시간동안 점령, 순식간에 사라졌다. 덧붙이자면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부턴 이상한 일은 사라진 상태였다.
각국 정부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뭔가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것이 뭔지 도통알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당당한 권리를 행사하면 무력으로 제압하고 자신들의 할 일을 처리하니,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성가신 것은 그들이 소수인데도, 각자가 백명 이상의 경찰과 군인을 상대한다는 것이었다.
개인이 들기에는 무리일 것이 분명한 화력병기를 당당히 들고 다니면서 갈기지를 않나, 잠수장비도 없이 물 아래에서 며칠간 버티지를 않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전부 마법사였을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을 그들은 너무 많이 벌였다.
[저번에는 허망하게 졌지만, 지금은 달라. 이 전쟁이 끝나면 한대 갈겨줘야지. 안 그래, 대령니이임~?]
갈릭의 말에 발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어린애의 투정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그나마 하나인 것을 다행히 여기는 발터였다.
"너만 붙었다가 나가 떨어진거다. 네 스스로 처리해. 내가 언제까지 네 뒷처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거냐."
발터가 갈릭에게 여러가지로 이야기를 하고 있을무렵, 해상전함 중 한 곳에서는 리토의 새된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전함들이 가지고 있는 비장의 무기인 대뢰의 포신을 만지작거리는 리토의 얼굴에는 짜증이 한가득 어려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간을 뜯어먹을 기세에 주변에 있는 선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으으으으으, 짜증나아앗! 내가 왜 해전이냐고! DS가 타고 싶단 말이야!"
선원들은 그에게서 눈을 돌렸음에도, 묘하게 동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딱히 입 밖에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용병, 군인들에게 맡겨진 DS는 정확히 1000기다. 위력적인 병기이니만큼 그에 걸맞는 사람이 써야 하는데 리토는 그 시험에서 떨어졌다. 무참할정도로 재능이 없단 소리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역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에게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에 화가난 것도 맞고, DS에 타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성향 또한 DS에 어울린다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리토의 특기는 다양하다. 일본재일의 기재란 이름답게 마법사로서의 질은 상(上)에 속한다. 경험이 조금 한정적인 곳이 있지만, 그건 고칠 수 있는 부분이다.
스스로가 그런 자신의 실력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리토는 새로운 힘을 찾는 것에 열중했다.
점술이라도 일본에만 얽매이지 않고 사주에 주역, 팔괘와 사상을 익히기까지. 타롯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그는 요가 놀랄만큼 많은 기술들을 익히고 있었고, 가히 천재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였다. 다른 사람은 그저 일찍 '질리기'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그런 능력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 할 것이다.
그랬기에 리토는 DS를 타고 싶어했다.
"흐흠. 너무 그러지 마시오. 이쪽은 항상 추운 물속에 있어야 하지 않소?"
목소리가 나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배의 난간에 배를 걸치고 올라온 청색피부의 남자가 있었다. 목에 칼자국 같은 아가미가 보이는 것을 보아선 인어다.
자신보다 윗줄의, 그것도 마수를 만난 것에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물을 주로 다루는 그에게 있어서 인어와 같은 해양 마수는 좋은 스승이었다.
리토는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꾸었다.
"소요...님."
"그렇게 부를 것 없소. 일본어가 일천한 나에게 한국어인 것은 감사하다만. DS에 관한 건, 나중에 위에 말씀드려 볼 터이니 너무 상심하지는 마오."
"저, 정말이십니까!?"
"음. 이런 걸로 거짓말은 하지 않소. 다만, 전후(戰後)라 좋은 것을 부탁할 수 있을지는...."
리토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양질의 DS가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자체가 중요했다.
성격이 좋은 소요로서는 리토가 안쓰러운 것인지 자꾸 말을 걸며 말벗이 되어주었다. 그러던 중, 잠시 그를 달랠만한 좋은 화제가 생각이 났다. 가까이서 대화를 주고 받고 하던 탓에 그가 어떤 인물인지, 원하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는 대충이나마 짐작이 가능했다.
"혹시 괜찮다면 마법이라도 한수 가르쳐드리올까? 내 종족이 이래서 물에 한정하겠지만서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없는 것보단 나을테지."
"물론입니다.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리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그에게 대답했다. 한국어로 이만한 존대를 하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에(정확히는 전에 삼가에게 쫓겨난 일로 포기했기 때문에) 조금 말이 어눌해졌다.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을 형용하려는데, 바다에서 거대한 나무줄기가 뻗어나와 소요의 목을 조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