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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96화 (296/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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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사람에게 평안감을 주고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 태어난 곳을 말하자면 집이다. 하지만 집은 대개 가족의 소유로 개인이 그렇게 여기기에는 좀 넓다. 그렇기에 범위를 좀더 축소시키자면 '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방은 평안감과 프라이버시는 커녕 음습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 휴식의 용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항상 단정한 옷차림을 고수하던 요연은 폭탄 속으로 돌격이라도 했는지 머리가 구불구불하게 꼬여있었다. 게다가 옷도 시커멓게 타 있는 것이, 여간 구질구질한 것이 아니었다.

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옷을 입은체 호수에 뛰어든 것처럼 폭삭 젖어있다.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배운 옅은 화장은 망가질데로 망가져 예술가도 놀랄만큼 그녀의 분노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나마 능파의 옆에서 식도락을 즐기고 있던 호지만이 멀쩡했는데, 그것을 보고도 그녀들 자신이 겪은 일들이 누구 탓인지 모를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 '누군가'에게는 전과도 있었다. 다른 누구를 뽑을리가 없다.

"능파! 또 이딴 장난질을...!"

"능파야, 그러면 안된다고 했는데."

각자의 성격을 반영하는 호된 질책이 날아들었으나 능파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호지가 쿠키를 집어먹으며 둘을 번갈아 보았지만 알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여유로움의 화신인 능파는 누워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때 아닌 방문객을 보았다. 평소보다 진지한 눈의 능파에 요연과 슈의 반응이 잠시 둔해졌다.

"제 부름(버스터 콜)에 제대로 왔네요. 그리고 애초에 제 말을 무시하고 나간 것은 그쪽이면서 불만은."

확실히 아침에 능파는 요연과 슈, 호지를 붙잡고 나중에 보자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슈와 요연은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재빨리 밖으로 튀었다. 호지만이 남아서 능파가 만들어오는 음식들을 먹었으니, 차별은 당연했다.

안 왔다는 이유만으로 방주의 시스템을 이용해 포격을 먹여댄 것은 과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능파가 언제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아이던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능파가 하는 일. 그렇게 불길하게 말해놓고 도대체 무슨 협력을 바라는겁니까. 전 머리는 그리 좋지 않지만, 감각은 좋습니다. 무슨 짓을 시키려는지는 몰라도 쉽게 부려지지는 않을 겁니다."

의외로 단호하게 나오는 요연이다. 능파가 혀를 찼지만, 그저 버릇. 요연을 구워삶을만한 계책은 차고도 넘쳤다.

능파의 입가가 비릿한 웃음을 띈다. 요연의 등골을 자극하는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피부가 곤두섰다. 마치 단두대의 위에 올라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무슨 제안을 하던 간에 요연은 듣지 않겠다, 그 말이죠?"

"그, 그렇습니다."

엄습하는 불안감을 애써 떨쳐내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능파는 더이상 말을 붙이지 않겠다는 듯이 돌아서 슈와 호지를 보았다. 아까와는 다른 평범한 소녀의 얼굴을 한 능파가 주머니에서 종이조각을 하나 뽑아들어 단숨에 둘로 찢어버렸다. 깜짝 놀랐지만 능파가 팔을 움직여 순식간에 종이에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것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뭔가 복잡하게 쓰는 것 같았다. 마법에 필요한 수식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팔이 움직이는 궤도가 불특정했다.

그저 글이다. 단순히 말로 하면 될 검은 것을 빠르게, 빼곡하게 종이 안에 새겨넣고 있었다. 검은 것이 흰 것과의 비율이 같아졌을 때 슈와 호지가 검은 것들만 읽어들였다.

어딘가의 지방이 적혀 있는 고기, 척보기에도 비싸보이는 듯한 야채. 도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는 건지 궁금한 수준의 식료품들이 가득한 게 적혀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의외로 구하기 쉬운 목재, 소품등이 적혀 있었는데, 양은 식료품들보다 많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물건들에 갸웃하는 호지와 슈를 향해 능파가 말했다.

"할아버지 생일파티의 준비물들이에요. 엄마하고 슈가 쪽지에 써 있는 것을 구해주셨으면 해요."

"""에에엑!?"""

능파가 말한 사람은 호지와 슈뿐이었지만 터져나온 비명은 요연의 것이 더해져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능파는 요연의 그런 반응을 일절 무시했다.

슈가 다급히 물었다.

"새, 생일 선물? 요, 생일이 이번 주였어?"

"아니요. 그럴리가 없잖아요."

너무나도 간단한 부정에 물었던 슈의 입이 막히고 말았다.

능파의 말대로, 지금은 요의 생일이 아니었다. 다음주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요의 생일은 5월 9일로 유다가 죽기 전에 이미 지나가버린지 오래다. 오늘이 9월 16일이니 생일파티를 하기에는 좀 많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능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개인적인 탐문조사로 인해 요의 절친한 친구 J모군은 절친하다는 칭호를 붙였음에도 요의 생일을 챙겨준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도 본인조차 번번히 잊어버리기 때문이라는데, J모군은 생각날 때 챙겨주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능파는 겨우 여유가 난 지금 생일 파티를 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비밀이기에, 눈치가 빠른 할아버지니 빠른 행동이 필요했다.

그러한 이유를 입에 담은 능파가 식료품쪽을 호지에게, 슈에게는 소품쪽을 내밀었다. 여부가 있을까,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자... 그럼 요리 준비를......... 뭐죠?"

"으음. 저도 무언가 할 일이 없습니까?"

"어라, 뭐가 됬던간에 하지 않겠다고 하신분은 누구죠?"

물론 요연입니다.

"크..."

"....라고 말할 생각이었지만, 그랬다간 할아버지도 썩 좋아하지는 않겠죠."

미리 준비해둔 듯, 종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아까 호지와 슈에게 건네줬던 것처럼 무언가를 적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적혀 있는 것이었다.

소품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특이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극양의 기운이 담긴 털이라던가, 무언가의 재료 같다.

"할아버지가 요즘 '내 방'이라 불리는 수련방에서 싸우느라 잔기술을 만들 때 들어가는 비약이 좀 많거든요. 여기 있는 건 물량이 많은데 방주 특성상 초고대의 물건이 많아서요. 대용으로 쓸 수는 있겠지만 역시 익숙한 것이 좋을테죠."

"간단히 말해서 선물 같은 겁니까. 알겠습니다. 최단 시간내로 구해오지요."

가벼운 손짓, 허공에 그어진 직선이 벌어지고 요연이 그곳에 한발짝 딛었다.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져버리려는 요연을 능파가 말로서 붙잡았다.

"아, 자신이 줄 선물은 따로 구해오도록 해요."

"알겠습니다만.... 호지와 슈에게는 말하지 않았잖습니까."

"어라, 남 걱정?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설마 그 둘이 따로 구해오지 않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거든요. 요연이야 조금 고지식한 부분이 있으니까."

요연은 잠시 고민해보았다.

슈는 물렁한 외모와 다르게 의외로 적극적인 면이 있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는 것의 실체랄까. 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대놓고 준비할 것이다.

나름대로 납득할 답을 내놓은 요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요연이 완전히 사라지자 능파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속에 담긴 것은 분명 '안도', 그리고.... '희열'.

"자, 저도 이제 할아버지를 위한 요리를 준비해볼까요?"

누구에게 말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이 방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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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가자마자 폭죽이 터졌다. 슈가 얼굴을 붉히며 부르러 왔을 때 대략 예상한 바이지만, 역시 생일 파티였던 모양이었다. 날짜가 지났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의미는 없을테니 딱히 입에 담지 않았다.

"해피 뉴 이어!"

"호지야, 그건 새해에 하는 거란다."

"웅?"

전혀 이해를 못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한다. 더이상 지적해주기도 그렇고 해서 식탁 근처의 의자 하나를 집어 앉았다.

평소에도 음식은 호화롭게 먹는 편이었지만, 생일 파티라는 명목상인지 음식자체는 눈이 돌아갈 수준의 물건들 뿐이었다.

"후후후. 이날을 위해 준비한 필살 요리. 기대하셔도 좋아요."

"....필살이라. 어떤 독맛인지 기대가 되는데."

그렇게 말하며 얇게 썰린 고기를 한점 집어먹었다. 입안으로 퍼지는 육즙과 풍미는, 이제 껏 먹어왔던 음식에 비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지금 내 입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표현할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정말로 중독될 것만 같은 맛이었다.

다시금 고기를 하나 집어먹었다.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인데 풍미가 다르다. 향긋하게 퍼지는 음식맛이지만, 아까의 것은 희미하게 단맛이 있었는데 지금 것은 오히려 쓴맛이 났다. 그 쓴맛도 맛있다의 범주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이 또 놀라웠다.

"증조 할아버지께 배운 초특급 요리랍니다. 게다가 방주 안의 요리서는 모조리 다 읽었으니, 세계제일이라고 부르셔도 되요."

사악하게 웃는 능파. 하지만 그 아이의 말에 반론을 제기할 힘은, 혀를 이정도로 빼앗겼는데 반론의 여지가 있을리가 없었다.

요연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또 뭔가가 남은건가 싶어서 젓가락을 내려놓고 보니 요연이 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내 옆에 내려놓는 종이박스, 열리자 먹을 때 보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것들이 한가득 있었다.

"이건.... 마법재료로군. 그것도 평소에 내가 쓰던것들만."

"예. 요애에게 따로 드리는 선물 같은 것이지요.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물론이지. 잘 쓸께."

"아빠아! 그럼 이것도!"

내 목덜미를 붙잡으면서 내 시야에 주먹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폈다. 그 작달막한 손에 어떻게 들어간건지 의심스러운 금색 비녀가 한개 들려 있었다.

호지가 쓰는 금삼비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확실히 다르다. 마력의 배열, 수식. 그저 수호부인 것 같았다.

"...고맙다."

"요, 요. 이것도...."

우물거리는 슈가 오른편에서 파란색 귀걸이를 내밀었다. 귀는 뚫은 적이 없어서 싫다, 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였다. 귀걸이가 아니라 귀찌였다.

"저주받은 보석들을 개조해서 만들어놓은거야."

귀에 걸려던 손을 잠시 멈추게 할만큼 강력한 대사였다. 그래도 참고 귀에 걸자 요연이 옆에서 주먹만한 단약을 내밀었다.

"전 손재주가 없어서 비약 하나를 구했습니다. 아마.. 도움이 될테죠. 나중에 드십시오."

"아아. 기쁘게 받을께."

난생 처음 겪어보는 생일 파티였다. 인원은 조촐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파티는 세상에 더 없을 거다. 친구들이 초대했을 때는 가끔씩 가서 얻어먹기는 했지만, 나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줄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영원히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조차 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능파가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손을 들어보이는 것이 손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왼손잡이 답게 왼손을 내밀자 능파가 웃었다.

"다행이에요, 할아버지가 왼손이라서. 보통은 오른손을 내밀거든요."

내 왼손을 감싸는 듯한 손짓, 왼손의 약지에 금빛 반지가 하나 걸렸다. 작은 다이아몬드가 하나 박혀 있는 것이, 누가 봐도 약혼반지로 보였다.

"......후후훗. 이제 자타공인의 약혼녀에요."

"""능파아아앗!!!"""

정정하겠다. 나는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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