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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刀工)
사람을 거북하게 만드는 공기를 만드는 법을 아는 것일까, 정말로 심각한 얼굴로 한숨을 쉰다. 보는 사람이 미안해질정도의 지금 분위기는 솔직히 견디기 힘들었다.
뭔가 위로는 해야 될 것 같은데 아는 것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짧게 '힘내세요'라는 말을 할만한 분위기도 아닌 것이, '내가 말하기 전에 입을 열면 안된다'는 오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내 옆에 앉은 능파를 쏘아봤지만 통할리가 없다. 능파는 "흥!" 하고 삐친 듯이 고개를 돌리며 도공의 말을 기다렸다.
도공이 잔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벨렛타라는 용병을 혹시 알고 있나?"
"예, 항간에 떠도는 소문정도로는."
일본에서 극심한 상처를 얻고 병원에서 요양 중일 무렵, 당시 숭례문의 하위조직인 사일런스가 내게 문병을 온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일단 내가 고용주이기도 해서 여러가지 계산등을 하느라 온 것이기도 했는데 그 때 루카가 벨렛타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숭례문과는 관련이 없는 용병이지만, 그에 버금가는 꽤나 실력파의 용병으로 고든과 승부를 해서 이겼다고 했다. 저격총을 주로 다루며 시간만 주어준다면 1개 대대를 단신으로도 상대 할 수도 있다고 하던가.
요컨데 강하다는 것이다. 그의 실력은.
도공은 잠시 침묵하다가 커튼 안쪽을 가리켰다. 검 하나를 가리키는데, 굉장한 크기의 대검이다. 비늘처럼 보이도록 검신에 무늬를 내놓고 있는데 마치 상류가 폭주하는 듯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마법적인 처리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검 자체의 위력은 어지간한 마법검보다 나을 것 같았다. 아니, 마법검 이상의 보검이다.
"저것, 내가 만든거야."
"그, 그렇군요."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도공(刀工)이라고 불리고 있는 그다. 능파가 손수 찾아갈정도니 제작능력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도공이 덧붙였다.
"벨렛타란 놈이 전 주인이었지, 저 검. 그런데... 다시 돌려주고 가버렸어."
내가 아는 벨렛타는 스나이퍼. 검과는 인연이 없었다. 검을 썼다는 이야기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아니, 그 이전에 용병이 검을 사용할 턱이 없잖은가.
동료들이 워낙 근접계 무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건 본인들의 스펙이 무기의 격차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미안하지만 쓰는 무기도 여기 있는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이고.
도공이 땅을 크게 발로 찍었다. 형용하지 못할 위압감이 땅을 진동시킨다.
"그녀석.... 도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 검을 가져간지 사흘만에 돌아와서 돌려줬다! '역시 총에게는 이길 수 없지~'라며! 내 울분이 얼마나 큰 지 알겠... 어, 더 듣지 않고 뭐해?"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뭔가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잘 듣고 있었는데 저딴 식이면 오히려 열 받는다.
본래 목적대로 검을 찾으러 커텐 안쪽에 있는 무기고로 들어갔다. 화려한 무기라기보다는 실용적인 미만을 살린 무기가 널려 있었다. 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하나 같이 나쁘지 않은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 힘이 느껴진다. 마력도 마력이지만, 검자체가 만들어내는 예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사람의 손에 쥐어주면 분명 피바람이 불 것 같은 힘을 가진, 요연이 갖고 있는 사신검에 밀리지 않는 병기다.
게다가 이곳에 그런 물건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듬성듬성, 적긴 하지만 확실히 여럿 신병(神兵)이라 부를만한 것이 있었다.
붉은 색의 검갑을 가진 검을 벽걸이에서 하나 뽑아들었다. 야구배트의 1.5배정도 크기에 가드부분이 상당히 장식적이다. 손잡이를 잡으니 마치 손잡이와 손이 연결된 것 같은 일체감이 느껴졌다. 마력의 움직임이 몸에 있는 것보다 더욱 원활하다. 사용자의 마력을 끌어내는 것만 같은 전도율. 게다가....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광진과도 잘 융합하고 있다.
마치 날 위해 만든 것만 같은 물건.
"제천검(濟天劍)을 골랐군. 그 검은 사람을 상당히 가리지. '왕'의 자격을 가지지 못 했다면 뽑지 못 한다고 하는 물건이다."
"..도공이 만든게 아닌가요?"
"난 도공(刀工)이지만 도공(刀功)이니까. 검을 수집하는 취미도 있는 법이지. 대부분이 쓰지도 못 하지만 말이야."
아쉽다는 듯이 말한 도공이 다른 검을 권하려는 듯,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난 제천검이라 불리는 검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제천. 하늘을 건너기 위한 검이다. 운명을 뒤집는다는 의미로는 이 검 외에는 나에게 어울리는 무기는 없을 것 같았다.
제천검을 수평으로 들어올렸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왼손으로 검갑을 밀어내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당긴다. 공기를 튕겨내는 것인지 소리 없이 뽑히는 검날이, 보고 있는 눈을 유린한다.
은백색의 검날, 단순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 강한 것도 없을 것 같다.
내 팔을 얽어오는 느낌, 능파가 웃었다.
"왕의 자격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네요."
"그럴지도."
"뽀, 뽑았나 그걸?"
도공이 놀라 다가오면서 검을 살핀다. 손잡이 부분을 그에게로 내밀자 도공이 손을 저었다. 황송하단 반응이라기보다는 모종의 이유로 만질 수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제천검은 주인 외에는 집을 수 없어. 이전까지는 주인이 없어서 들고 다니는 건 괜찮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해. 그건 그렇고.... 왕의 자격이라. 유운이란 녀석이나 고요란 놈에게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만. 뭐, 다른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는 법이겠지. 가져가도 좋아. 주인과 검을 떼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시 침묵을 지키고 능파를 보았다. 능파는 고개를 돌린체 뱀을 부를 기세로 휘파람을 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능파는 자신에 대해서나 나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진과 사인을 줬다는 것자체도 굉장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는 단서를 덧붙이자 도공의 마음 씀씀이에 더욱 놀라게 된다.
그래도 받은 사람이니 도공에게 내 이름이 뭔지는 가르쳐주기로 했다.
"저, 도공?"
"으음. 으으응? 뭔가 더 필요한 거라도 있나?"
"제 이름, 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혹시 무기 때문이라면 신경 쓸 필요 없어. 곧 죽을 인생이다. 내 자식 같은 녀석들을 무덤까지 끌고 갈 수는 없으니까."
도공으로서의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기에 조금 제대로 말해주기로 했다.
"제 이름, 고요 랍니다. 도공이 말한 왕의 자격을 가진 인간 중 하나에요."
"....거짓말. 그녀석은 방주라 불리는 곳에 있다고 들었어."
"내려오면 안됩니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는 도공에게 제천검을 디밀었다. 내가 육왕임을 증명하는데 그것만큼 좋은 물건이 없었다.
도공은 그제서야 겨우 믿어주는 눈치였다.
여러가지 질문을 날려오는 도공이 겨우 진정하자 나는 종이쪽지를 하나 내밀었다. 내가 육왕이란 것을 알고도 아까와 다름 없는 반응을 보이던 그가 그것에 써 있는걸 읽기 시작했다.
"여자가 쓸만한 병기? 쓰면 쓰는거지 왜 이렇게 제한이 많아?"
"하하, 무기를 다뤄봤을지 의심스러운 녀석에게 주는거니까요. 없나요?"
"있다마는.... 글쎄,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천검 다음으로 가장 무서운거라."
도공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커튼 뒤의 어딘가에서 도를 하나 집어들었다. 세련된 청색 검갑에 원판 같은 금색 날밑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날밑이 인간의 머리를 가진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날밑이 가진 형태,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복희(宓犧)...?"
동방 복희. 오방대제 중 하나로 동쪽을 다루던 신으로, 봄을 주관했던 구망을 부관으로 다뤘던 강력한 신이다. 뇌택(雷澤)을 아버지로 둔 그는 인류와 친숙한 신이었기에 인간에게 사냥법을 가르키고 팔괘를 만들었다.
서방 소호 이후의 동방신으로서, 강력함은 다른 오방대제에 꿇리지 않을 것이다.
"잘 아는 군. 이 복희도는 봄의 힘을 품어 부드럽다. 하지만 역시 제어하기 힘든 검임에는 틀림없어. 가져갈테냐?"
순간 고민 했지만, 결국 가져가기로 마음 먹었다.
복희수준의 검이라면 다루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안된다면 별 수 없다. 이쪽도 최대전력을 준비하느라 뼛골이 휠지경인데 그런 것까지 신경 써주다간 싸우지 못 한다. 사용하지 못 한다면, 겨우 그뿐인 여자라는 것. 별 수 없는 것이다.
제천검을 허리뒷춤에 가로로 매고 복희도를 등에 걸치자 꽤나 그럴 듯한 모습이 된다. 내가 돌아갈 의사를 능파에게 보이자 능파는 가방을 도공에게 넘겼다. 가방 안의 물건이 궁금하던 차기에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뭐냐, 꼬마 용."
"당신이 기뻐할만한 물건이요. 후훗."
가방의 잠금을 풀었다. 빵빵한 가방이 순식간에 홀쭉해지면서 거대한 직육면체가 쏟아져내렸다. 검은 빛을 띄는 것도 있었고 황금빛을, 은빛을 띄는 것도 있었다.
괴(塊)다. 철괴, 은괴, 금괴. 게다가 정체모를 재질의 것도 수십가지. 가방의 무게감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양이지만, 놀랍기 그지 없었다.
도공으로서는 당연하겠지만,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철을 구할만한 곳이 근래에는 없을테니 별 수 없으리라.
"이거, 보답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받은 건 이쪽이 더 크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징수할 건 해야죠."
내 말에 초를 치는 능파를 쏘아보자 능파가 웃어보인다. 사악하지만, 그에 비견갈 순수함 또한 깃들어 있었다.
"방주로 가지 않겠어요? 검 같은 건 얼마든지 만들게 해주죠."
방주에서 내릴 때는 둘이었지만, 올라갈 때는 셋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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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분이 끝났습니다.
완결이군요.
첫키스에 집중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