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289화 (289/340)

0289 / 0340 ----------------------------------------------

특별편 -맞선-

앗! 당신이 그러고도......."

[갈(喝)!]

불도(佛道)를 닦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일까, 엄청난 목소리로 포효한다. 그것으로 발언을 막힌 경홍이 여러모로 고초를 당하는 것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경홍은 컬러나이츠의 블랙으로, 가장 늦은 시간에 우리의 팀원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들어왔는지조차 내가 잘 모를정도이니, 상당히 갑작스러웠을 것이다. 경홍의 아버지(혹은 친족)들에게 상담할 시간 따위는 없었을 것이고, 스스로 결정했을 터. 가족들로서는 어떠한 연유던 간에 인정할 수 없으리라.

나의 어머니도, 그렇게나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누님이 괴물이라는 건 어머니가 더 잘 알고 있을텐데도. 물론 사망 플래그 때문에 그런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란건 다 같은 것 아니겠는가.

몇분에 걸친 전화기 속의 호통이 끝나자 경홍은 푸욱 한숨을 쉰다. 반항끼와는 인연이 없어보이는 경홍이지만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면 열 받는 모양이었다.

"여어."

먼저 손을 들어 인사해보이자 경홍도 날 발견했는지 억지로나마 웃어보였다. 괴로운 미소지만 힘 내고 있었다.

"안녀엉. 훈련하다가 돌아오는 중?"

"응. 여전히 쳐맞고만 있지."

쓸데없이 화제를 꺼내고 싶지 않은건지 내 안부부터 묻는 그녀의 말에 능숙하게 대답했다. 그녀 스스로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는, 아무래도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기에 딱히 캐묻지 않았다.

경홍은 자신이 들고 있는 핸드폰을 보더니 버튼 몇개를 누르고 냅다 내 쪽으로 던졌다. 부자답다고나 할까, 수량 한정 최신 핸드폰을 막 던진다. 하지만 버려지는 것도 아까우니 어렵사리 받아내자 경홍이 나에게 던진 폴더식 핸드폰의 커버를 열어보라는 듯, 손짓했다. 뭔가 해서 열어보니 아까 전에 전화했던 사람의 명칭이 쓰여 있었다.

'개새끼'. 누군지는 몰라도 이름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참 재밌는 이름이네. 나라면 절대로 안 지어줄거야, 이런 이름."

"네가 그런 녀석인 건 알지만, 지금은 참아줘."

"미안."

"...거기 써 있는 건... 누구일 것 같아?"

내가 핸드폰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는 것을 전제로 물어보는 질문, 이미 알고 있다면 이쪽도 대응하기는 쉽다.

"아버지. 혹은 친족 중의 누군가겠지. 일단 여자는 아닐테고."

지름 30미터정도로 굵은 목소리가 여자라면 그건 그것대로 슬픈 일이다. 내가 친히 수술을 집도해줄 용의도 있다.

경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 현대의 여고생 답게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 능숙하게 무언가를 열고 내게 다시 넘겼다.

받아든 그곳에 있는 것은, 매우 익숙한 남성의 얼굴이 두개 보인다........ 근데, 이건 내 얼굴과 유운의 얼굴이다. 경홍이 직접 찍은 것은 아니었고 졸업사진에서나 쓸법한, 정돈되었으면서도 사람에 대해 잘 알게 하는 사진이었다.

"내가 이런 걸 찍은 적이 있던가. 학교 행사로 찍은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게다가 얼굴만 줌인 되어 있어서 배경을 알 수가 없으니 더 모르겠다. 이런 표정은 항상 짓고 다니는 거니까 더더욱.

경홍이 한숨을 내쉬면서 사진의 진실을 말했다.

"....선보래."

"......선?"

무슨 선일까. 곡선, 직선.... 어쩌면 '선분'처럼 선이 뒤에 있어도 될지 모르니 선지자, 선공, 선도, 선술(?)일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젠장."

현실도피는 그만하기로 했다.

보통 선을 보라면 '맞선' 밖에 없다. 게다가 사진에 있는 사람은 나와 유운이니, 상대는 분명히 나와 유운. 분명 선을 보는 대상은 경홍이니, 나나 유운이 경홍과 선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경홍도 물론 알고 있기 때문에 전화통화를 할 때 그렇게 외친 것이리라.

골 때리는 상황이 되었다. 아니, 어째서 난데없이 이런 상황이 온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나에게는 '선'은 커녕 전화 한통 오지 않았다. 애초에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능파에게는 쥐어주었다. 뭔가 있다면 연락이 왔을 것이다.

"어째서? 아니, 뭐가 어떻게 된 일이야? 난 모른다고."

"하아.... 그게 말이지, 내가 '블랙'이 되었잖아?"

컬러나이츠의 공석을 메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알고 있는 바이기에 연계되는 뒷말을 기다렸다.

경홍은 자신의 무기, 흑응조(黑鷹爪)를 돌연 꺼내더니 허공을 향해 쉭쉭 그어보였다.

"그러는 도중에 아빠도 구했단 말이지. 추궁도 무지 당했지만 유운녀석이 이제는 상관 없습니다, 라고 단언하는 통에 모조리 불어버렸단 말이야."

모조리 불었다는 이야기에 흠칫했지만 이내 안도했다.

경홍. 그녀는 우리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비밀이 없다. 경홍이 아는 비밀이라고 할만한 것은 전부 공중파 방송으로 뻗어나간데다가 나와 능파, 유운을 제외하면 비밀에 근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점에서는 안심해도 좋으리라. 그러니 그것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지금 정말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뭣 때문에 일어난 건지도 모르는 이 맞선 소동을 재빨리 가라앉히는 것.

"경홍, 이거에 대해서 뭐 짐작가는 거 없어?"

"개새끼가 대상이니 짐작가는 건 하도 많아서 오히려 모르겠는데?"

저렇게 말하는 경홍이다, 솔직히 나도 짐작가는 것이 하도 많아서 어느것을 콕 찝어 말할 수 없기에 물어본 것인데 저런 대답이니.

경홍네 집은 굉장한 부자로, 유다전 때의 통신기는 물론이고 일전에 최신형 mp3(지금은 구형. 그래도 쓰고 있다)도 얻은 적이 있었다. 딱히 헤프게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서민인 나는 생각할 수도 없는 양을 가볍게 다루는 걸 보면 보통 부자가 아닐 것이다.

돈이 많다는 건, 그만큼의 판단력이 있다는 것. 세상의 격변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금세 살아남을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딸이 그곳에 깊게 관여 되어 있다면? 게다가 그 딸이 리더격으로 보이는 두 남자와 친하다고 한다.

놓칠 수 없는 먹잇감. 그의 눈에 우리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뭐, 지금 당장은 그것보다 더 무서운게 있는데 말이지...."

"뭔데?"

경홍과는 다른 목소리.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분명한 등에 시베리아의 눈덩이를 골고루 펴바른 것 같은 오싹함이 느껴졌다.

"욧."

하여. 지금쯤이면 아직 선생님과의 대련이 끝나지 않았을 시간,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늘은 민초 오빠랑 붙었는데 말야, 조루치곤 굉장하더라고."

여자애가 입에 담기에는 야릇한 말이지만 여고생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은 없고 하여에 대해서도 비교적 잘 알기에 큰 타격은 없었다.

"놀래키지마. 어쨌건, 들었으면 알지? 그녀석들에게는 말하면 안돼."

"아, 그거 무린데."

"단박에 부정!? 조금은 생각도 좀 해!"

"아니, 그것도 불가능한 걸."

"어째서?"

하여는 말 없이 손가락을 내 뒷쪽을 가리켰다. 그제야 나는 느끼고 말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오한의 정체를. 갑자기 끼어든 하여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홍의 일에 관한 것도, 전부 다 말이다.

타박타박.

한사람의 발소리가 아니다. 단련된 나의 청각에 의하면 약 넷. 내가 예상한대로의 사람이라면 전부다.

"헤에. 할아버지는 우리만으로도 부족한 건가요?"

"가끔씩은, 요애와의 대련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요 바보."

"요연, 내가 먼저할거야!"

식인풍습이 남아있는 원주민이 다리를 먼저 먹고 싶다고 싸우는 것만 같다. 이러니 내가 제명에 못 죽지.

꽈아악.

사지가 그녀들에게 잡혔다. 다리건 팔이건 고정기로 꽈악 누른 것만 같은 통각이다. 빠져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도망쳤을 경우에 보일 반응을 생각하면 차라리 잡아먹히는 쪽이 몇 배는 나았다.

"불쌍하니까 그만해 주지 않겠습니까?"

"유운....풋."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봤지만, 저도 모르게 비웃고 말았다. 날 도우려고 한 사람에게 하는 행동으로는 무례했지만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오른쪽 뺨이 고양이의 발로 긁힌 것처럼 붉은 선이 3개가 주욱 그어져 있다. 게다가 한쪽 눈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고 이마에는 'NO 바람!'이라는 문구가 친절히 유성펜으로 적혀 있었다. 아마 유운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리라.

유운이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팔로 뺨을 문질렀다.

"흐음. 제 핸드폰은 소화에게 맡겨둬서 말입니다. 어쩌다보니 선을 보란 쪽지가 왔는데 그걸 그녀가 본 터라...."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와 그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대로 묶여 있어 그가 삼킨 말은 알 수 있었다. 뼛속 깊이 이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유운은 뒷머릴 긁으며 웃었다.

"뭐, 당사자의 앞에 가서 깽판쳤으니 괜찮을 겁니다."

"설마 내 쪽은 가만 냅둔 건 아니지?"

유운이라면 짖궂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기우였는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야기는 제대로 해두었습니다. 내 쪽은 이정도로 끝나지만 그를 건드리면 악마 네명이 강림한다... 그렇게."

악마 네명이 누군지는 일단 묵비하도록 하자. 뒤에서 느껴지는 감각만으로도 이미 끝장날 것만 같으니까.

============================================

사실상 없어도 무방한 편이라서 그냥 올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