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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86화 (286/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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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편 -수련-

호지와 요연, 슈에게서 고민은 되도록 빨리 상담해주기로 약속하고 약 열흘. 난 여전히 느긋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까 할 것도 없고 기술단련은 아무리 해도 늘지를 않는데다가 여러가지 물품들은 밤에 짬내서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재료도 부족하기는 커녕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방주의 이곳저곳에 한가득. 말로만 언급되는 유토피아나 무릉도원 같은 곳은 이곳을 보고 만든 말 같았다.

게다가 요즘은 능파의 요리실력과 레시피가 부쩍 늘어서 아침 점심 저녁이 맛있는 것으로 가득하다. 더불어 최종전을 대비해서 방주 위에 설치하는 기물들은 알아서 짓는데다가 내가 끼어들면 오히려 망가진다.

내가 방주 위에서 하는 일이라곤 노는 것 밖에 없었다. 게을러지는 것은 절대로 나의 탓이 아니다. 세계의 탓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자기보호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지금의 나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지라 변화를 추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난 움직이지 않는다. 딱히 명령을 내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방주의 일들은 너무 잘 돌아갔다. 나의 필요성은 거의 전무하다. 문제는 그로 인해 생겨나는 나의 행동패턴이다.

난 움직일 필요가 없다. 자연스레 게을러진다. 이 두마디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이 상태로 가다간 일년내에 사람이 얼마나 폐인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서 수면은 다섯시간, 비물조합 네시간, 무술단련 세시간으로 평소처럼 단련을 시작했는데,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학생시절에 가장 많이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 뭘까? 당연히 학교. 내가 있는 수상고는 야자가 없어서 그렇지 보통 학교라면 하루의 5분지 4는 잡아먹는 곳이 학교다. 그런데 나는 그런 곳을 다니지 않으니 시간이 넘쳐 흘렀다.

호지라던가, 요연이라던가, 슈라던가, 능파라던가. 각자 나와 남는 시간을 함께 해주고 있지만 역시 조금씩 게을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수련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으려나. 한 두배정도로."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재밌는 것이 떠올랐다. 너무 가까운데 있어서 잊고 있었던, 아주 간단한 것이 말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항상 누워있는 옥상에서 발을 살짝 굴렀다. 바닥에서 허리춤까지 작달막한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 위로 손을 올리자 녹색의 전자판자가 수십개가 생겨났다.

한국어로 여러가지가 쓰여있지만 전문용어가 가득한 것이 외국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뭔 대수냐, 나는 검색창에 빠르게 '수련 장소'라고 쳤다. 여러 글자가 촤르륵 내려오지만 하나의 단어가 먼저 눈에 띄었다.

'내 방'. 아주 간략하기 그지 없다. 실재로 여러가지 설명이 곁들어져 있었지만 그것은 완전히 무시하기로 했다.

이런 재밌는 걸 놓칠 수는 없잖은가.

빠르게 그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블랙홀마냥 시커먼 공간이 보였다. 안에 생겨난 시커먼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타박, 하고 땅을 밟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밟은 것은 땅이 아니었다. 그냥 검은 어둠뿐이다. 거리감도 잡히지 않는 공간에서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력으로 연 감각에도 잡히지 않는 것을 보아선 그냥 평지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았다.

"괜찮은 걸. 기운이 충만해."

수련용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는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전력을 다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설정되어 있었다.

타박, 타박.

조용한 발소리가 울리면서 무언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단조롭고 간소해서, 오히려 짜증나는 발소리였다. 하지만 굉장한 기시감을 일으키는 것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도 듣고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 기억을 되짚자마자 이해 하고 말았다. 저 발소리의 정체를

"하핫, 그래서 '내 방'이었군?"

어둠이라는 거대한 장막을 넘기며 걸어오는 모습은 분명히 나의 모습이었다. 건장한 체격, 어디를 가도 꿇리지'는' 않는 이목구비, 적당히 짧은 머리카락. 자랑할만한 외견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나의 것.

"빼앗길 수는 없다구?"

광진을 사식까지 끌어올렸다. 배 부근에서 전신으로 뇌력이 줄기줄기 뻗어나간다. 숨통이 트이는 것과 비슷한 감각, 전신의 자유도가 높아진다. 시야가 밝아지고, 더더욱 앞서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가짜도 나처럼 마력을 개방한다. 광진을 쓴다기보단 그냥 광진의 효과를 내도록 여러가지 마법을 중첩시킨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긴, 광진의 힘은 인간 외에는 사용할 수가 없다. 케이슨의 경우에는 뭔가 편법을 쓴 모양이지만 가짜마저 그럴 능력은 없으리라.

빙글, 도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발차기를 날려왔다. 광진 사식에 걸맞는 스피드와 위력이 죽지 않고 일직선으로 뻗어나왔다.

퍼어엉!

발차기가 맞는 것일까 싶은 폭음이, 허공을 박차는 것만으로 울린다. 살인적인 위력, 감탄할 틈 따위는 없었다.

차올리는 일격, 미쳐 거둬드리지 못한 발차기에 찔러넣었다. 둔탁한 소리가 나지만 정타를 먹인 것이 아니었다. 빠르게 머리를 뒤로 젖혔다. 불안전한 자세에서 나오는 주먹치곤 굉장한 위력이 안면을 지나쳐간다.

쌔애앵!

마치 트럭이 눈 앞을 지나간 것 같다. 위력을 논하기 전에 속도가 나와 비등하니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다.

"단련이 되겠구나! 덤벼라 가짜아앗!"

축발을 튕기며 다리로 목덜미를 가격한다. 손등으로 막아낸 그의 손이 명검조차 베어버릴 날카로움을 발했다.

내가 쓰는 것과는 다르지만, 분명 '검의 형'이다. 날카로운 참격에 맞대응하기 위해 추의 형을 팔꿈치에 시전해 맞부딫혔다.

쩌어엉!

쇠가 터지는 소리다. 서로 튕겨나가 거리를 벌렸다.

스피드도, 기술도 같다. 싸울 때는 항상 나보다 강한 자들이었는데 이렇게 동렬의 실력자를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바닥을 박차고, 손바닥와 정강이가 작렬한다. 일격 일격이 상대방의 숨통을 끊기 위해 날아들었다. 손과 발, 무릎, 어깨, 발꿈치, 손등, 머리까지. 쓰지 않는 부위가 없다. 상대방의 급소와 가장 가까운 부위라면 무기로 바꾸어 날려버린다.

그것이 나와 가짜의 싸움. 방심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흐앗차아아!"

발을 그대로 내려찍었다. 날아들던 왼손이 전추의 기세를 품고 튕겨낸다. 익의 형, 가벼움의 형식으로 거리를 벌리고 순식간에 뛰쳐나가 각법(脚法)을 펼쳤다.

빠악, 빠가각, 퍼버버벙!

몇 초 사이에 수백에 달하는 일격이 교환된다. 수십번의 특공(特攻)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도 한순간, 특공이 아니라면 막을 수 없다.

떠엉, 터어엉!

팔꿈치에 맞은 어깨가 튕겨나가고 발도처럼 솟아오르는 발차기가 무릎과 만난다. 부딫인 곳에 남은 타격이 아려온다.

강하지만 짧은 단위의 공격이 눈 앞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대응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느껴지는 통각, 보통이 아니다. 그라드의 일격에는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얻어맞았다간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것 같다.

"이거 이거, 상대하기 껄끄러운데. 나와는 상성이 안맞아."

누가 들으면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 전투법은, 상당히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상대방과 나는 분명히 차이가 나지만 이쪽이 상대방을 압도하는 곳도 분명히 있다(대부분이 스피드). 그 부분만을 확실하게 노려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나의 전투법. 하지만 수련장소의 특성상 모든 능력이 나와 같으니 상대할 수가 없었다.

우위를 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먼저 데미지를 입히는 것.

"무뢰포(無雷砲)."

손에 휘감은 포격의 마력이 일그러진다. 반발로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이 그곳에 집약되고 거대한 에너지가 된다.

콰지직!

가짜 또한 나와 같은 포의 형을 준비한다. 강력한 힘, 나와 같은 것이다. 손 안에 응축시킨 힘을 그대로 모은체 나에게 돌격해왔다.

정면승부. 그 단어를 상기시킨 건 그리 틀린 것이 아니리라.

대기를 태우는 일격이 일순 커지면서 내 앞에서 터져나온다. 포의 형만으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크기, 고(鼓)의 형이다.

북을 울릴 때마다 터져나오는 소리가 전역을 뒤덮듯 포의 형이 시야를 명멸하며 이쪽을 휩쓸어온다.

이쪽도 고의 형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래서는 이길 수 있을리가 없다. 이기려면 그만한 리스크를 감소해야 한다.

포의 형 중첩, 추의 형. 일점집중의 파괴력이 포의 형에 함께 하고 고의 형과 맞부딫인다. 거대한 포격을 뚫고 지나가는 전추의 일격, 몸의 곳곳이 미쳐 흘려내지 못한 힘에 타들어가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우오오오오오오!!!"

일격을 모조리 뚫고 가짜의 앞에 당도한다. 피할 틈 따위는 남겨주지 않았다. 남아있는 여력 그대로 주먹을 가짜의 얼굴에 찔러넣었다.

휘잉.

"어...?"

최후의 최후에, 가짜의 몸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일격을 피해낸다. 그리고 목을 찌르는 것처럼 겨누어지는 수도(手刀). 목 끝에서 멈췄다.

싱긋.

웃으면서 가루가 되어 사라져간다. 수련장소의 힘이 다했는지 검기만 하던 공간은 다른 방과 같은 흰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허망한 패배. 실재라고 생각하면 무섭기까지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내 수를 한수 더 읽어냈다. 내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격이기도 했다.

내가 게을러지려면 아직 시간이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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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끝까지 못 이깁니다.

예, 아이젠입니다.

수련편은 단편이라서 한번만 냅니다. 다음편부터는 여러편 연계라서 한꺼번에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저번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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