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283화 (28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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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편 -능파vs 요연, 호지, 슈-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온 슈였지만, 정작 할 일이 없는 잉여인간으로서 그녀는 망연히 방주 안을 걸어다녔다. 벽이 재밌는 소재가 있다고 손짓하는 것 같지만 한숨을 내쉬면서 그 환영을 무시하고 말았다.

태생부터가 마법사인 그녀에게 방주는 엄청난 연구재료다. 하지만 '방주'라는 병기는 연구고 뭐고 할 수가 없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해가 불가능했다. 복잡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보자마자 신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원인은 알고 있었기에 대비는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한계다. 그 이상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규격'이 다른 것이다.

옛날에 1m를 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가? 규격을 다르게 해서 월급을 깎는 나

쁜 방법까지 있었다. 규격의 통일은 의외로 많은데 영향을 주고 있다. 다르다면 아마 분명히 세계는 삐걱거리게 될 것이다.

그것과 같다. 아무리 해석을 해도 방주 자체가 제대로 된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탓에 그 시대의 규격을 따르고 있었다. 이 시대의 미터법이라던가와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런 걸로 포기할 슈가 아니어서 그 시절의 규격을 이 시대의 규격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허나 대패(大敗). 도대체가 규격의 대부분이 0.1111... 같은 무리수로 나누어지니 도저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힐끗.

슈의 눈이 아쉽다는 듯이 벽을 향한다. 벽은 그 눈빛을 '길로 가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였는지 '종유동으로 된 길'을 마련했다.

"아아. 읏, 아까워...."

자주 보는 거지만, 너무 놀랍다. 이만한 기술이 이전 세대에 존재했었다니, 직접 눈으로 보고 사용도 해봤지만 믿기지 않는다.

"이게... 그들과 우리의 격차."

이 세상에 마법이 존재하는 이유를 아는가? 보통 그런 말은 마법사에게 물어도 잘 모른다. 간혹 무책임하게 '있으니까'라고 말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이유가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지 못 하기 때문에. 그것이 제대로 된 이유다. 그 중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예로 '언어'가 있다.

옛날에는 쓰였지만,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 어째서 그런 것이 생기는 것일까? 바로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와의 세력 싸움에서 패한 것이다. 아무리 원조라 하더라도 사용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그렇게 단어는 하나씩, 하나씩 몰락하고, 언어는 성장해간다. 그러면서 결국 최초의 단어는 안 쓰기에 이르는데, 그것은 '문화'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마법도, 과학도 결국 하나의 문화다. 똑같이 세계를 주름잡는 문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느 한쪽도 무너지지 않았다. 이것은 놀라운 경우다. 이만큼이나 오래되었는데 아직까지 두 문화가 공존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이상.

냉전체제가 들어간 이유를 기억하는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이겼지만 그마저도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 혼합경제체계를 보인다.

결국, 문화도 하나가 쓰러지거나 둘로 합쳐져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너무 오랜 기간을 끌어왔다. '환경'이라는 문제와 '운명'이라는 문제가 얽혀서 세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현대'. 그것이 지금이다. 하지만 카타스트로피의 힘은 '완벽한 과거'다. 그 강력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방주 이상의 힘을 가지고 이곳에 돌격해오게 된다. 그것이 세계가 내려준 '시험', 통과할 수 밖에 없다는, 같은 점수로 합격할 수 밖에 없다는 결과를 내놓은 말도 안되는 시험이다.

"너무 거창한 생각인가? 우웅, 하지만.... 요만큼은..."

요에게는 너무나도 큰 짐을 지게 하고 말았다.

유다의 죽음. 신경 쓰지 않고 나아가겠다, 그런 의지가 눈에 보일 정도다. 자신이 '왕의 적을 베어내는 자'로서의 직무를 유기시키지만 않았다면 유다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너무, 바보였고 어렸던 것이다.

미움받아도 되돌릴 수 있는데,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사랑이 너무 앞서서 일을 그르치고 만 것이다.

"이대로 괜찮을까....?"

요연이나 호지, 능파까지. 전부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자신처럼 어렸을 적에 사심이 끼어든 적은 많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요를 좋아하도록 교육받았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 때문이 아닐싸 싶었다. 자신의 마음은 순수하지 못 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지, 두려워지고 말았다. 어쩌면 지금 카타스트로피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 속을 매운다.

"어떡해.... 나, 요를 볼 수 없어...!"

이런 마음, 당사자에게 말할 수는 없다. 아주 근소한 차이라고는 해도 애정도 순으로 일위에 도착했는데 알게 된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흐응. 생리라도 하는건가요?"

"그런 핀포인트로 현실적인건.... 에?"

혼잣말에 끼어드는 장난끼 가득한 개구장이의 목소리, 문득 방에서 능파의 약점을 찾자며 열을 내고 있을 두 사람(한사람은 권태기)을 상기했다.

능파다. 두사람을 골려먹고 뒤에서 웃음 짓는 모사가 이곳에 있었다.

"아, 능파구나. 여기는 무슨 일이야?"

"쿡쿡, 전세를 낸 건 아니잖아요? 혹시 궁금하세요? 여기 있는 이유."

능파의 저런 웃음, 슈는 직감했다. 지금 여기서 궁금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자기보호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아니, 별로 그런건 아니야."

슈가 도망치듯이 옆으로 스텝을 밟았다. 권투와 각종 무예로 단련된 걸음, 무인으로서는 하급에 속하는 능파가 잡을 수 있을리가 없다.

턱.

가벼운 소리, 벽에 어깨가 부딫혔다. 분명히 지금까지 앞에 있었던 벽이 어느샌가 눈 앞에 돌아서 있었다.

이해 할 수 없다. 자신의 보법(步法)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 믿을 수 없다.

능파가 보법의 진로를 가로막고 선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머리가 좋은 능파니까, 이미 걷는 방향정도는 깨우치고 앞서 나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벽이 가로막는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무에 대해서 눈물만큼도 모르는 능파가, 슈의 방향감각을 흐트러 놓았다. 헷갈리게 하고 만 것이다.

"욱.... 핫!"

터엉!

진각을 밟았다. 맑은 소리가 바닥을 타고 뻗어나가면 위압감을 조성한다. 능파의 몸이 엉거주춤하게 변했다. 그것에 연결되는 레프트 스트레이트. 맞출 생각은 없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비껴서 위협할 생각이었다.

"어!?"

왼손을 빠르게 거둬들이고 사이드 스텝으로 빠져나왔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정면으로 쭉 뻗어있는 평범한 복도다.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슈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뻗어나갈 때. 눈 앞에 벽이 보였다. 능파와 슈를 가로막는 것만 같은 복도의 벽. 하지만 사이드 스텝으로 빠져나왔을 때는 벽이 있어야 할 곳에 아무것도 없었다.

환각은 아니다. 그정도는 눈치챌 수 있다.

"쿡쿡. 왜 그렇게 도망치려고 해요? 궁금하잖아요?"

"미안해. 나, 별로 궁금하지 않아."

교수대의 길로틴 앞으로 목을 디미는 느낌의 대화가 어찌 궁금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자신의 안전을 수호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뒷걸음질 쳤다. 어째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능파에게는 '일반적인 것'은 통하지 않는다. 자리를 피하는 것이 최선책인 것이다.

툭.

"말도 안돼...!?"

분명히 뒤로 뻗어있을 길인데, 어느샌가 다시 벽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능파의 기묘한 이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능파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슈의 힘은 넘을 수 없다. 호지는 물론이고 요연도 마찬가지다. 그 벽을 겨우 며칠만에 넘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단 하나, 방법이 있다.

'무기'를 쓰면 된다. 같은 능력치의 인간이 싸울 때 강한자는 무기를 든 자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기사세력의 몰락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기사세력이 몰락해 갔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총 때문이다. 상대방의 기존 능력이 아무리 우월해도 그것을 커버할만한 무기가 생겼다면, 도태 될 수 밖에 없는 것. 능파도 그런 것과 같다.

방주. 그것의 힘을, 지금 능파는 자유자제로 다루고 있었다. 아마 이 탑 안에서 한정된 것이겠지만 성가신 것은 분명하다.

"미, 미안. 먼저 갈께...."

폭.

아까와는 다른 감촉에 슈가 고개를 들었다. 졸린 얼굴로 서 있는 사람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요, 요?"

"아아아. 슈구나. 여전히 귀엽네."

놀려먹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행동이지만 슈를 끌어안는 행동에 단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사랑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던 슈이지만 지금은 단지 요의 감촉에 취해 눈을 감았다.

그런 포근한 순간도 잠시다. 행복을 깨뜨리는 마녀의 웃음이 사악하게 복도를 메웠다. 하지만 요가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 슈, 걱정이 많은 것 같은데 보듬어주세요."

의외의 발언. 놀랄 틈도 없이 요의 걱정어린 질문공세에 빠져들었다.

분명 능파라면 짖궂은 장난이나 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능파는 남의 마음을 생각할 줄 아는, 착한아이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은 걸 꾹 참고 최대한 요의 품에 안겨서 질문을 피했다. 역시 말하기에는 아직 조금 꺼렸다.

"슈가 할아버지랑 야한 짓 하는 꿈을 꿨다니까, 할아버지 밖에 안될거에요?"

쩌적, 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부서졌다. 남은 것은 카오스 밖에 없다. 슈를 부드럽게 껴안던 요는 붉은 얼굴로 슈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쿡쿡쿡, 하고 능파가 복도의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능파아아아!"

슈는 난생처음 절규하듯이 능파의 뒤를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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