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1 / 0340 ----------------------------------------------
특별편 -능파vs 요연, 호지, 슈-
쾅!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작고 은밀한,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담긴 소리에 가까웠다. 그러한데도, 그녀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소리로 귓전을 울렸다.
떨리는 몸을 뒤로 뺐다. 등에는 차가운 무기질의 감촉, 벽이 있었다. 인생 최초로 회피불능의 상황에 빠진 그녀는 약간 분한 얼굴로 상대방을 노려보지만 이내 가까이에 머리를 디미는 그를, 요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더이상은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 쳐내고 싶지만, 몸에 붕대가 보이는 것이 유리인형처럼 가볍게 치는 것만으로도 부서질 것만 같다.
그래도, 그녀는 가만히 잡힐 수 없기에 요의 가슴을 밀었다. 가볍게 밀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굳건히 버틴다. 놀란 그녀는 밀어버린 반동으로 오히려 벽에 밀착되고, 도망칠 곳도 잃고 말았다.
"윽..... 요애...... 어째서..?"
소리내어 그의 이름을 부르자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꿈결속에서 보는 것만 같은 행동, 이해 할 수 없었다.
만남을 끝내고 분명히, 분명히 각자의 방(소요나 우라던가)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기억이 끊겨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되어 있다.
믿을 수 없는 전개이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무서울정도로 적극적인 요를 볼 수 있었다. 요연으로서는 기쁜 일이었지만, 이렇게 서두도 없이 벌이는 어택은 조금 거북했다.
요애는, 이런 남자가 아닌데. 무슨 이상한 마법에 조종당하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빠르게 손을 복부쪽으로 내질렀다. 용의 근력이 실렸다. 요로서는 피할 수 없다.
슈웅!
큰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주먹이 빗나간다.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요연의 얼굴이 당황의 빛을 띄었다.
요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 설사 했더라도, 적중한 것을 튕겨냈다면 모를까 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광진을 쓴다면 확실히 죽일 각오로 덤벼야 맞출 수 있겠지만 그것은 피부 위로 사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게다가 광진은 그 특유의 능력 탓에 상당히 발각되기가 쉬웠다. 썼다면,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다.
"너무하잖아....요연."
비음(鼻音)소리가 강하게 울리는 목소리다. 카리스마라고 할만한 것이 넘치는 평소와는 명백히 다른 목소리에 요연은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 새디스트처럼 강압적으로 눌러서 놀려먹는 식의 유혹과는 다르다. '놀려먹는다'는 개념을 완전히 배재한, 유혹하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존재다.
저 모습, 떠오르는 단어는 단 하나뿐이었다.
"미, 미인계인겁니까...?"
보통은 여자가 남자에게 하던 것 같았는데, 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이미 코 끝까지 가까워진 그의 얼굴에 목을 훑는 것만 같은 숨결은 요연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미인계....? 그럴리가. 그냥, 가까이 있는 것뿐이야."
"거, 거짓말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신을 뒤흔들어놓는 것만 같다. 견디기 힘든 유혹, 당장이라도 품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안기기도 힘들다. 그렇기에 알아야만 했다.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자신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도 알아낼 이유는 충분하다. 더이상 저런 어택을 받으면 완전히....
고개를 붕붕 저었다. 더이상은 생각해서도 안되는 말이다. 요가 그런 것을 바라는 남자도 아니지 않은가? 장난으로 '예'라는 선택지를 고르기는 하겠지만...
콱.
돌연 요의 손이 요연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러곤 벽에 밀어붙이는 것이, 여간 실력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한테 한겁니까! 라고 되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눈빛은 요연을 부끄럽게 할만한 힘이 있었다.
고개를 숙인 요연의 턱을 기술좋게 팔로 들어올렸다. 놀란 눈빛의 요연, 입술에 돌연 요의 입술이 맞닿는다. 인두를 가져다 댄 것도 아닐텐데 화끈하고 불타오르는 것 같은 감각이 입술을 관통하고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단순한 키스, 저번에도 여러번 한 적이 있었건만 평소보다도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더이상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저항의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강제로 들어올려진 얼굴을 치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요연은 내가 싫어...?"
"..!? 아닙니다! 전, 요애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슬픈 듯이 물어오기에 요연은 저도 모르게 한껏 진심을 쏟아냈다. 예전에도 했던 고백인데, 지금도 여전히 부끄러웠다.
요가 웃었다. 평소에는 잘 보여주지 않는, 멋진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더더욱 부끄러워하는 요연의 입에 키스를 하려는 듯 얼굴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입술에 닿은 것은 입술이 아니라 손가락이다. 요연은 스스로가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에 깜짝 놀라면서도 요를 쳐다보았다.
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계속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검은, 머리카락 뿐이다. 요의 시야 자체가 아래로 가 있는 듯,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려간다.
쪽.
"히약?!"
돌연 키스. 하지만 입술이 아닌 목이다. 처음이라 굉장히 놀란 요연이 답지 않은 비명을 지른다. 요는 그런 요연을 올려보다가 가슴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 잠깐!!! 요애, 도대체 무슨 짓을!?"
"요연은 내가 상대면 싫은건가?"
"아니오... 기쁩니다만, 그, 이렇게 갑자기... 저.. 늦었기도 하고..."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요가 무슨 연유로 이렇게 되었고,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판단 또한 잊는다. 기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점점 이성적인 판단을 잃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녹아드는 것처럼. 도저히 거부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까의 거부도, 상투적인 말에 불과하다.
손을 잡혔던 것이 어느틈엔가 풀려 있었지만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요의 허리를 감아 끌어안았다.
"요....애......."
"요연..."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요의 손길이 완전히 아래까지 가 있었다. 이미 다 풀려버린 웃옷의 단추다. 이미 거부할 마음은 없었지만 역시 부끄러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백색의 속옷이 드러나고, 요의 얼굴이 그곳에 파묻힌다. 부끄러운 감촉이지만 기쁜 마음이 그것을 더욱 앞섰다.
"요애.... 사모하고 있습니다."
"아아, 나도 그래. 좋아한다, 요연."
직접 말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기쁨에 정신은 이미 이성을 완전히 배재해버린 상태로, 지금은 감정에 완전히 몸을 맡겼다.
뜨거운 기운이 물씬 흔들려간다........
--------------------------------------------------
"허엇. 흐음..... 전 무슨 생각을 한겁니까...."
정신을 차렸다. 어느틈에 요의 옆에서 팔 하나를 차지 한체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요연은 쓰게 탄식했다.
자신은 변태라고, 생각했다. 요애는 이런 상황(여자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애로한 상황)에서조차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데도, 자신은 이런 꿈이나 꾸고 만 것이다.
책임감이 강하기 짝이 없는 요연으로는 부끄러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이다.
자신이 욕구불만이 아닌가를 생각할 무렵, 목에 감겨오는 기이한 감촉이 느껴졌다. 자신이 용신화를 했을 때의 손과 같은 감촉... 용의 비늘 감촉이다.
"후후후. 무슨 생각한걸까요, 요연?"
"큭, 능파...!"
가장 성가신 인물(용물?)에게 걸리고 말았다. 저 성격 나쁜 백룡에게 걸린 이상 두고 두고 우려먹힐 것이 뻔하다.
능파라면, 당연한 일이다.
"후훗. 야한 꿈, 꿨죠?"
순식간에 마음을 관통 당한다. 압도적인 스펙의 차이로 알아볼 수 없을텐데도 순식간에 읽혀져버리고 말았다. 요애가 자신의 '두번째'라고 여길만한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
...하지만 제발 이런 때에만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요연은 최대한 평정을 가장했다. 무의 길을 걷는 자로써, 평상심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전사로서의 얼굴을 갖췄다.
하지만.....
"전장이랑 평소랑은 다르거든요?"
능파쪽이 더 고단수였다.
요연의 방어는 가볍게 뚫어버리고 능파의 웃음만이 조용한 방을 자아낸다. 능파와 시선을 마주친체 굳어버린 요연은 어떠한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메두사라는 것이 눈 앞에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사악한 능파의 얼굴이 귀신이 되었다가, 소녀가 되었다가 하면서 점점 요연의 마음을 죄어온다. 쇠사슬에 감기는 것만 같은 느낌이 피부를 얽고, 마음조차 얽혀간다.
무서웠다. 능파라는 존재가 저렇게 무서울 줄은.
"후후훗, 할아버지~~~? 여기 요여언이 말이죠....."
"으으음! 능파아아아아아아아아......!"
".....나 졸려어어어어어.... 나중에 해."
어린애 같이 우는 것처럼 대답하고는 다시 골아떨어지는 요의 모습에 안심한 요연은 능파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약한 몸으로 강적들 앞에 서 본 적이 있는 능파에게 그런 눈빛은 무의미 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해도 되는걸까요?"
악마의 웃음소리가 아침의 여명에 섞여 더욱 깊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