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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 상륙!
어느샌가 찾아온 밤 덕분에 불사와 그의 동행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제대로 된 윤곽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야를 최대한으로 늘리면 보일 거리. 시야를 넓히려는 순간에 새된 비명이 그 행동을 만류했다.
"저, 저건...."
슈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져 있었다. 공포스럽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째서 저 사람이 저런 곳에 있느냐, 그런 표정이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시야를 그대로 내버려둔체 다가오는 불사의 모습을 관전하기로 했다. 정말로 누님이라도 되는 양 바닷물을 땅바닥처럼 밟으며 다가오는 불사의 모습은 역시나 초현실적이었다.
그 옆의 동행인 또한 그렇게 걸어오고 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리에 발 아래에 서핑보드 같은 판이 있어서 그것의 추진력으로 이곳에 오고 있을 뿐이었다.
밤바다의 색과 아주 잘 어울리는 칠흑의 갑주, 언젠가 요연이 맞붙었던 마인들이 만들어놓은 기사단의 단복이다. 아주 단단해 보이는 겉모습과 비례하는 방어력을 가졌다는 건 이쪽도 어렴풋이 알만한 것.
케이슨. 내 예상대로 카타스트로피의 외주가 불사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 있음에도 케이슨을 알아본 것은 서로의 모습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알아채고 만 것이다.
어째서 슈가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어찌하여 나는 '그녀'에게 졌는지. 그 비정상적인 강함과, 어째서 누님을 이길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하, 하하. 이거... 설마 그럴 줄은...."
설마 그녀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그녀가 적이었을 줄은, 불사였을 상상도 못 했다. 만났던 시간이 짧기도 했거니와 그 당시에는 불사의 힘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최근에서야 불안전해졌기 때문이기 때문인가.
어이가 없는 상황에 혀를 찼다. 저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지만 단 하나 알고 있는 사실을 상기했다.
"어렸을 적 체스대회 때 날 완전히 물먹였던 여자....!"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모두의 비명이 한마음이 되어 울려퍼지고, 그녀가 방주의 위에 발을 딛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옷차림이 아닌, 검은 고딕 드레스. 중세 시대에서 백작부인쯤 되면 입을만한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이다.
일견 무술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그런 것은 알 수 없다. 누님만 해도 그런 단련의 티는 전혀 나지 않았는데도 무지막지 했다. 게다가 이 기백, 전혀 얕볼 수가 없었다.
타고 오던 서핑보드를 바다 안으로 밀어넣고 케이슨도 방주의 위에 올랐다. 이쪽의 공격으로 상당히 야위었으면 좋았을 것을 케이슨은 상당히 멀쩡해보였다.
"간만이로군요, 육왕."
"아아. 시계탑이 박살난 충격은 어떠신지?"
"....그 때는 정말로 놀랐습니다...만, 이쪽도 대비책정도는 세워 놨으니까요."
"거짓말마라."
"거짓말 같습니까?"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겠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짐작해둔 것이 있었다. 카타스트로피에게 붙잡혀 있을 때 들었던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무덤'. 뭔지는 몰라도, 새로 개설해둔 비밀지부쯤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방주의 시스템을 응용해서 만든 이동식 거대병기. 아마 그쪽에 더 가까울 터. 예언에 따라 행동하는 케이슨이니 최종전은 분명 방주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라는 걸 짐작했을테니.
방주에서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적인 케이슨은 상당히 귀찮아진다. 방주자체의 공격성능도 물론 그렇지만, 방주에는 침입을 불허하는 결계가 쳐져 있다. 동방삭처럼 뚫고 들어올 수는 있으나 그래봤자 소수. 숫자에는 장사없다.
불사의 힘? 아무리 차이가 난다고는 해도 이쪽에는 불패가 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무덤이라 불리는 병기로 싸움을 걸겠지.
뭐, 그것도 여기서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최후의 심판관'으로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묵직한 중갑을 찬 것치고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허리를 숙였다. 불사도 드레스의 양끝을 잡아보이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저 케이슨과 불사는 지금부로 당신들이 미래를 향할 자격이 있는지 판단. 즉, 죽이겠습니다."
"그거 참 일방적인 통보로군. 머리를 갈겨도 되나?"
"실력이 된다면."
일촉즉발의 상황, 나도 케이슨도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 전투가 최후, 물러날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도우러 올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다'.
콰아아아아앙!
검붉은 뇌전의 다발. 그것이 포격이 되어 바다를 가르고 방주의 위로 직격을 노리고 쏘아져 온다. 불사와 케이슨의 직격코스, 불사의 손등에 튕겨서 무위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알고 있던 것.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지금 일격에서 중요한 건 공격이 통했느냐가 아닌, '혼자가 아니라는 것'. 사기를 돋우는데 숫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여어어어! 괜찮냐!?"
기종이 다른 두척의 전함. 앤트로아가 타고 있는 세종대왕함과 리토가 타고 있는 금강이다. 언젠가 유운이 리토에게 넘겨주었던 대포 '뇌광'을 장착한 마법과 과학의 융합이 이루어진 진정한 진화의 모습이었다.
추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두번째 포격이 다시금 불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신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대포, 본디 신이던 불사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힐끗, 불사의 손목이 움직인 것이 보였다.
"호지, 슈, 요연!"
이름을 호명하는 즉시 그녀들이 움직였다. 각자의 무기가 불사의 몸을 세방향에서 가격하고 떨어진다.
포격의 영향이 있을텐데도 무시하고 달려드는 그녀들의 모습은 분명 강자의 모습. 하지만 불사의 힘은 더욱 강하다. 시간벌이도 채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신검이 빠르게 불사의 전신을 베어내리고 슈의 주먹이 턱에 작렬한다. 질풍과 폭탄이 순식간에 불사의 몸을 훑는 것만 같다. 그 위로 거대한 화염의 손이, 호지의 일격이 내려꽂힌다. 땅바닥까지 화인(火印)을 남기는 공격, 파괴력은 혀를 내두를정도다. 하지만 그런 것이 통할리가 없을 터, 빠른 속도로 명을 내렸다.
"돌아와!"
미련조차 남기지 않고 돌아오는 그녀들, 리토의 포격인 뇌광을 떨쳐내고 있는 불사의 안색이 굳는다.
너무 쉽게 빠진 것이 이상한 것일까, 하지만 이쪽도 대비는 해뒀다. 불사를 상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 누누히 말해왔던 바이고.
돌아온 슈에게 들고 있던 칠흑의 검과 가면을 넘겨주었다.
칠흑검주를 상징하는 쌍병(雙兵)을 받아든 슈의 눈이 내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슈에게 웃어보였다.
"칠흑검주는 너니까, 보여줘. 지켜줘. 그거면 돼."
"....응."
칠흑의 가면을 쓰자 슈의 푸른 눈이 기광을 토한다. 칠흑성검 마왕도 본 주인을 만난 것에 기뻐하며 힘껏 검명을 떨치고 있다.
가면을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붉은 가면. 단심검주의 가면을 하늘높이 들어보였다. 밤이기 때문인지 붉은 빛은 더욱 돋보인다.
사람의 눈을 매혹하는 가면을, 하늘로 던졌다. 부메랑처럼 빙글빙글 돌며 하늘에 부유한다. 하지만 곧 떨어질 것이다. 그가, 나의 단심검주가 오지 않는다면 분명히 바닥에 볼품없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리토의 금강에서 돌연 번쩍하고 무언가가 바다를 가르고 방주에 발을 딛었다. 쓰레기장에서 적당히 주워 두른 것인지 꼬질꼬질한 먼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누더기 망토를 두른 누군가가 이쪽으로 날아오면서 가면을 낚아채고, 바닥에 섰다.
펄럭.
"이 챠이, 이곳에 돌아왔습니다."
더러운 망토에 비해 깔끔하게 정돈된 붉은 코트의 주인, 챠이 우르카가 한손에 충의의 적색을 들고 내 앞에 섰다.
"돌아왔느냐."
"예, 폐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뭐, 신경 쓰지마라. 늦은 건 너뿐만이 아니니까."
이걸로, 이걸로 다 모였다.
단심검주 챠이, 사신검주 요연, 칠흑검주 슈. 나, 육왕 고요를 따르는 삼검주가 드디어 방주에 와서 본 모습을 찾는다.
딱히 누구랄 것도 없이 입을 벌린채로 챠이를 보았다. 가슴팍에 구멍이 난 코트를 그대로 걸치고 있는 그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긴, 챠이는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 취급 받았으니까 이런 주목을 받아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어, 어째서 살아있는 겁니까, 우르카!"
케이슨의 목소리가 허공을 울린다. 챠이는 그저 웃으며 내 옆에 섰다. 챠이를 대신해 내가 입을 열었다.
"영생자는 심장이 뚫린 것 가지고 죽지 않으니까. 확인사살을 하지 않은 그라드를 탓 해야지."
유다 때는 힘을 다해서 죽었지만 챠이는 다르다. 옴팔로스를 죽였다고는 하나 아직 여력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힘 자체가 많이 깎여있는 기레와 그라드를 상대했다. 쉽사리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의 가장 큰 예가 운천 아저씨다. 그 사람은 유해의 뱀에게 심장을 뚫렸음에도 확실하게 살아남아 국내의 배신마수를 처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영생자는,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
케이슨이 이를 갈았다. 그 또한 여기서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하다면, 이쪽도 전력으로 눌러버리면 그만. 불사!"
불사가 가장 앞에 나섰다. 무적의 힘을 가진 괴물이 손을 들어올렸다. 밤과 본질적으로 다른 시커먼 힘이 반항의 여지도 없이 우리의 앞에 떨어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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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회 전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