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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 상륙!
적의 수좌인 동방삭은 바다와 접견하는 곳에서 왔기 때문에 유다와 동방삭이 싸운 장소는 바다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동방삭이 타고 온 듯해 보이는 배. 완두콩껍질을 반쯤 까놓은 것 같이 생긴 카누다.
그곳에 모래먼지가 된 동방삭의 것을 살짝 뿌려서 정처없이 흘려보냈다. 목적지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자그마한 배는 쓸쓸하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요애..."
몸을 추스린 건지 요연이 뒤에서 날 불렀다. 힘이 없는 목소리,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입을 열었다간 그녀에게 유다의 죽음에 대해 추궁할 것 같아서, 침묵만을 고수했다. 요연 또한 쓰러져 있던 동안의 일을 알고 있는 건지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껴안았다.
등에서 따뜻한 눈물이 두방울 떨어진다. 슬픔의 감정이 녹아있는 눈물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기에 적당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요애... 이번에도 우리는 너무 늦고, 말았습니다....!"
내 등을 으스러지게 껴안는 요연이다. 등에 얼굴을 파묻은 요연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기에, 나는 울 수 없었다. 우는 건 유다가 죽었을 때면 충분했다. 지금은 유다가 남겨준 이 기회를 살려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러지 못 한다면 난 후일 죽어서 유다를 볼 면목이 없다.
내가 거동을 보이자 요연이 등에서 떨어졌다. 요연을 마주 보고, 웃었다. 슬픔을 감추기 위한 것이지만,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요연 또한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미소지으며 고개 숙였다.
"요애, 어쩌겠습니까?"
"당연히, 동료들을 데리고 가야지. 심하게 다친 녀석들도 있으니 치료도 해야하고."
호지들이라면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죽지는 않겠지만 상대측에서 자연치료가 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카타스트로피의 팔대간부 중 다섯명이 사망하거나 배신을 하고 말았다.
다음 전투에서 그들도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동방삭도 범접하지 못 하는 불사가 온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전력이라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터.
최대한 전력을 끌어모을 필요가 있었다.
요연이 빨리 사람들을 깨운 탓인지 슈를 제외한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인간인 슈는 상대적으로 채력이 딸리는 것일까, 조금 단련해둘 필요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 미안해, 나 아무것도..."
내 다리를 껴안고 사과하는 호지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날 올려다보는 호지의 시선을 막았다. 지금 내 얼굴은 너무나도 꼴사나울 것 같아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런 것이다.
아무리 한심한 모습을 보여도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웃을 수 없는 모습은 이질감만 심어주게 된다. 유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상기한 나의 얼굴을 보고 호지가 떨어진다는 것도 나에게는 큰 슬픔이었다.
퍼억.
난데없이 정강이를 차였다. 뼈를 조각내는 것 같은 통각에 기억이 송두리째 빼앗길 것만 같다. 호지가 놀라서 으르렁거렸다.
리바이어던. 따로 레비아탄이라고도 부르는 바다의 괴수가 장난끼가 가득한 소년의 모습을 하고 수평선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다쪽에서 이상한게 오는데."
"....이상한 것? 추가병력인가요?"
리바이어던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저었다. 아무래도 판단내리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리바이어던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추가병력이 '둘'인 건 좀 웃긴가?"
둘. 있을 수 없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에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불사'. 절대의 강력함을 가진 그것이 온다는 증거다.
불사는 거의 반 폭주에 가까운 상태다. 그렇기에 제어를 주관할만한 자, 케이슨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두명. 그런 상태라고는 해도 불사의 무력을 막아낼만한 자는 이곳에 없었다. 하물며 다친 상태의 이들에게 그것을 상대하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
누님. 누님이 없으면 이곳에서 싸워봤자 이길 가능성이 없다. 최소한 세계의 핵을 동력으로 삼는 방주가 가동만 한다면 어떻게 도망이라도 쳐보겠는데 그럴 낌세조차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를 갈면서도 동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원 전투준비! 불사가, 불사가 온다아아아!"
모두의 움직임이 불사라는 단어 하나에 굳었다. 동방삭의 일격을 맞고, 그것도 시바가 몸을 던져서 위력을 완화시켰기 때문에 그나마 살아남았던 이들이 그 이상의 존재가 온다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 했을리가 없다.
그저 두려운 것이다. 동방삭과의 싸움에서 손도 써보지 못 하고 당했다.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일 것이다.
솔직히,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전투가 설마 최종전이라면 여기서 난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사라는 존재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누님만 있다면 상황을 호전 시킬 수 있다? 그것 또한 불가능하다. 누님의 힘으로는 절대로 불사를 이길 수 없다. 같은 힘이니까 승부는 운에 달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에 불과했다.
누님은 분명 신의 힘으로 신대의 영역에 들어선 자였다. 강함은, 물론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사와는 기본 스펙이 다르다.
아무리 강해도 누님은 인간. 그에 반해 불사는 태어날 때부터 세계를 지배했던 '신'이다. 세계의 핵이 같다면, 남는 것은 그 차이 뿐.
메울 수 없다. 하다못해 동료들이 멀쩡하다면 불사에게 전부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대응하면 끝나겠지만 지원군도 한명이 더 있다. 아마도 그것은, 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케이슨 밖에 없을 것이다.
광진의 힘으로 철암장군과 풍백을 단신으로 상대했다. 그의 무력은 팔대간부 이상. 최소한 둘은 붙여놔야 무리가 없다.
방법, 그것이 없다. 전력이 부족하다. 이길 수 없다.
진다. 져버린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질 수는 없다.
현실과 상반하는 감정이 머리를 터질 것처럼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그 현실은 나에게 쉴틈을 주지 않았다.
숨이 막혀오는 것 같은 느낌. 기압이 변한 것도 아닐텐데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불사다. 누님과 같은, 존재한다는 것자체가 사람을 위협하는 힘이 그곳에 있다. 개인의 힘으로는 절대로 범접할 수 없다. 닿을 수 없다. 하지만, 닿아선 안된다는 감정까지 주는 신성함 또한 있다.
머리가 뱅글뱅글 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도 크게 취해버린 것만 같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다. 누님과 비슷하지만 최소한 누님은 내게 적의는 같지 않았다. 부드럽게 포용하던 그 힘이 지금은 날 죽이는 칼날이 되어 있다.
"후, 후하하하하하."
웃었다.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불사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 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했다.
"좋아,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지!? 난 육왕이다. 불패를 쓰러트렸던 무적의 존재란 말야.... 불사라고 질까보냐."
무너지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삶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앞으로 나아갈 길 또한 아름답기 짝이 없을 것이다.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밝아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만큼 멋진 세상이 그곳에 있을텐데, 그걸 눈 뜨고 버릴 수는 없다.
가능성? 버렸다. 난 그런 구질구질한 것에 얽매이지 않을거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믿고 싸워왔지만 이제부터는 0%를 뒤집기 위한 싸움이 계속 될 것이다.
"헤헷, 아빠다워."
내 다리에 붙어있던 호지가 떨어졌다. 금삼비녀가 엮여 새로운 형태를 드러낸다. 알 수 없는 마수의 머리가 세개나 달린 금색 지팡이. 여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것은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요애의 판단이 그러하다면, 저도 물러설 수는 없지요."
요연이 사신검을 허공에 부유시킨체 내 옆에 선다. 몸이 많이 아플텐데도 의외로 굳건히 서 있었다. 내 뒤로 부드러운 손의 감촉이 닿았다.
"요가 간다면... 나도 갈께."
가장 많이 다쳤을 슈가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짙어졌던 불안감이 조금씩이지만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질텐데도, 분명히 그것이 진실일텐데. 가슴속에서는 어째선지 필승의 자신감이 떠오르고 있었다. 옛날에 느꼈던 그 감각, 그 말. 기억해냈다.
약자에게는 약자만의 싸움이 있었다. 강자에게 꿇린다면 약자도 못 된다. 내가 강자라는 사실에 포기 했었다면 난 누님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 했을 것이다. 그것이 체스라고는 하나 분명히 난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겼다.
포기하면 끝이다.
"이것 참, 어린놈들은 이래서 재밌어. 안 그런가?"
"핫핫핫. 틀리지 않은걸? 그래도 마음에 들었어. 기왕 죽을거라면 확실하게 몸을 불살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쥴이 왼편에, 레비아탄이 오른편에 선다. 두 남녀가 웃으면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한다. 바다가 몰아치면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보였다.
밤하늘과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지는 밤바다의 색. 파도를 치며 나를 위협한다. 지금의 너로는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수평선의 끝자락에서 두명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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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드디어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