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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63화 (26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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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드

바람이 불었다. 사막처럼 메마른 공기가 잔디로 가득한 바닥을 어루만졌다. 바람과 정기(正氣)로 가득한 대지에 사이(邪異)한 분위기를 풍기는 은발의 남자가 몸에 착 달라붙는 갈색의 가죽 옷을 입고 선다.

팍, 카가각.

전진을 위한 진각(디딤발)이 땅거죽을 뚫고 파고 든다. 땅의 살을 애는 다리가 발목까지 깊숙히 땅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러곤 손을 합장하듯이 모으고 평범하게 늘어뜨렸다.

쓸데없는 동작.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딱히 예의를 갖추는 것도 아니고 무력시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행동. 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농담이라도 걸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왕과 왕의 대면.

서로가 마주치기에는 너무나도 일그러진 나와 그라드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바로 왕이라는 직책이다. 그 직책의 맞물림은 나에게 기묘한 감정을 선사했다.

감정이라는 것이 본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지만 지금 껏은 더욱 설명하기 힘들다. 아니, 생각났다. 그라드와 나의 관계를 설명할만한 단어.

대적자(代敵者).

우선 농담으로 그라드의 주위를 환기시켰다.

"여어, 그라드. 남정네에게 러브콜을 보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아?"

그라드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갔다. 그의 눈이 시뻘겋게 빛나며 인간을 압도하는 광기를 뿜어낸다. 사람의 자기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기백에 어깨를 부여잡았다.

런던에서 보았던 그라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것이, 마치 '그라드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라드이기는 한데 무언가를 첨가해 믹서기 안에서 섞어버린 듯한 위화감이 있었다. 그 이질적인 것은 어째선지 그라드의 본질마저도 뒤 바꾼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상황을 포함한 모든 것이 이상했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았다.

[그라드가 일 대 일 승부를 걸어왔어요.]

능파와 통신을 하면서 가장 먼저 신호에 대해 한 말이 그것이었다. 남의 앞마당에서 승부를 걸어오는 미친 짓을 할만한 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존재가 그런 것을 걸어왔다.

수상하다. 하지만, 남자로서 이 승부를 마다하기에는 나의 자존심이 가만히 있지를 못 한다. 승부라면, 받아주면 그만.

[할아버지에게 자존심이 있었던가요? 있지도 않은 자존심은 무시하고 요격준비나 해요.]

...라는 능파의 말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자존심 말고도 그와 맞승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기에 무시하고 그라드가 부른 장소로 왔다.

그라드가 초대한 장소는 방주 내에서는 보기 힘든 평야지대로, 이곳이라면 가진 바 실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

"남자에게 러브콜이라니, 나도 웃기지."

"아아. 듣자마자 웃어버렸다구? 거짓말이지만."

"하하하하하하하! 거짓말인가, 그래 그렇지. 하지만 나는 꼭 그렇지 않은데?"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그렇게 저 변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참을 수 없다.

내 반응에 그라드가 손을 젓는다. 당황한 것이, 꽤나 어울렸다.

"아, 아니야 임마! 난 이성애자다! 젠장, 하여간 내가 널 부른 이유는 일 대 일이다. 신호는 보내놨으니 알거라 생각하지만."

"아아. 그 승부, 받아들이기 위해 이곳에 온 거야."

"의외인걸? 난 너라면 받아들이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너무하는데."

나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일 대 일 승부를 걸어왔으니 대적해주고 싶은 충동도 있다. 하지만, 다른 녀석이었다면 그런 자존심은 무시했을 것이다. 나는 고요이며, 육왕이다.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라드는, '월야의 마수'가 상대인 이상은 다르다.

챠이는 날 지키기 위해 그라드와 기레와 싸웠고, 런던의 지하에 암매장 당했다. 그녀석들도 도망치느라 급급했을테니 시체는 온전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조차 회수하지 못 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 있다.

이 싸움은 진혼곡(레퀴엠)이다. 챠이가 못 다한 싸움을, 내가 종결지어야만 한다. 난 그의 왕이고, 친구니까.

"얕보지 않는 것이 좋아. 일명 최약이라 불리는 나지만, 이래뵈도 싸움에는 이골이 났으니까."

"기대하도록 할까나. 하지만 말이야..."

그라드의 몸이 부풀어올랐다. 몸에 찰싹 붙은 가죽옷은 고무줄도 놀랄만한 신축성을 보이며 커지는 그라드의 몸을 견뎌냈다.

약 2미터까지 솟아오른 그라드가 은빛의 갈기를 바람에 휘날리며 이를 드러낸다. 마치 분노를 참는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이쪽도 잃을만큼 잃었다. 더이상 물러날 곳은 없어. 설사, 네놈의 싸움이 미래를 여는 길이라 하더라도!"

크아아아아아아앙!

그라드의 포효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인간은 견디기 힘든 맹수의 위압이 피부를 짓누르고, 공포를 선사한다. 많은 전장을 겪어왔다고 자신할 수 있는 나이지만, 저런 그라드를 보니 공포가 샘솟았다.

허나, 물러설 수는 없다. 나에게는 남자로서의 자존심 이전에 왕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지켜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 있다.

"와라. 내가 누군지 알고 덤비는거냐! 내가 바로, 육왕 고요다아아아아아아아!!!!"

내부에서 외부로 관통하는 뇌전이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거대한 충격파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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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의 방주 공격이 있기 나흘전.

일본 최고의 기재라 평가받는 리토는 현재 승선하는 인간들의 명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왜 내가 이런 일을!'이라며 포효하기는 했지만 배 내에서는 이만한 일을 할 인원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아 그 밖에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이라고는 해도 승리로 귀결된다면 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도 인지하고는 있다. 하지만 짜증이 솟았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일을 해야하는가 하는 의문(알고는 있지만)에 짜증을 느끼던 것도 잠시다. 배에 오르는 사람이 이백을 넘어가서부터는 마법 수련 때도 느껴본 적이 없는 무아지경의 경지를 맛보고 있었다.

마침내 우주의 끝에 도달해 진리의 끝자락을 움켜쥐는 순간,

푸른 기운, 시린 감촉이 뺨에 닿았다.

"으앗차거!?"

만화처럼 눈을 가위표로 만들며 펄쩍 뛰어오르는 리토를 보며 츠카사는 웃었다. 자신이 한 행동이라지만 반응이 너무 과했디.

볼에 가져다 댔던 음료수를 리토에게 건넸다.

"자, 이거 받..."

"미친 형님새끼야아아아아아!!!!! 뭐 하는 짓이야!!!"

무아지경으로 인해 마법사로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저 멍청한 형님 덕분에 날려버린 리토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리토의 발차기가 츠카사의 턱을 노리고 솟아올랐다. 당황한 츠카사, 하지만 근접 격투에서는 신장도 월등한 그가 유리하다.

피잉!

바람을 가르는 킥을 피해내고 반격할 틈을 찾았지만 츠카사는 물러났다. 본성이 착한 그로서는 동생을 공격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잠깐, 갑자기 왜 그러니.... 으앗!?"

영문 모를 목숨의 위협. 동생이니 차마 반격은 할 수 없고 반격한다 치더라도 종합적인 전투력은 리토가 우세하다. 츠카사의 근접능력으로 찍어누르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에는 그가 너무 착하다.

"드디어, 드디어 한발짝이었는데~~~~!!!!"

최고위 마법사의 반열에 들려던 자신을 방해한 남자를 두들겨 패기 위해, 리토가 주먹을 날리려던 순간.

팍.

뻗은 주먹이 수없이 많은 칼집이 새겨진 손에 가로막힌다. 허름한 수준이 아니라 바닥에 버려진 천쪼가리를 대충 주워서 걸친 것 같은 누더기 천의 인간이다.

그가 리토의 손을 막은 것이다. 리토는 접수원이라는 자신의 현실을 상기하곤 접수종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사무적인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이름과 국적등등. 자신에 대한 것을 최대한 자세하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본어. 자신의 말이 여러국가 언어로 해석되어 있는 종이를 들어서 남자(같았다. 외모는 볼 수 없다)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종이를 가져가고 빠르게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츠카사는 그 모습을 엿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강하다. 겉으로만 보이는 능력도 인간으로서 넘보기 힘든 능력이다. 이런 자들이 계속 왔다갔다면 리토의 그런 반응도 이해할 수 있다.

츠카사가 그런 오해를 하고 있을쯤, 누더기 남자가 종이를 리토에게 건넸다. 받아든 리토가 인상을 찌푸렸다.

"... 왜 당신이 여기 있어?"

".... 네가 신경 쓸 것 아니다."

그렇게 말하며 리토에게서 종이를 빼앗아든 남자는 그것을 먼지만한 크기로 찢어버린다. 갑작스레 일어난 행동이지만, 리토는 놀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고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나에 대한 것은 필요하지 않겠지."

"물론. 짐칸에라도 숨어있던가."

훅.

귓밥을 분다. 이제는 대놓고 무시하는 기색. 누더기의 남자는 한대 패버릴까 했지만 일을 벌이면 곤란해지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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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나타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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