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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57화 (25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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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숲을 느긋한 마음으로 걸었다. 생각해보았자 유운이 있을 곳으로의 도약은 불가능하니 일단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호지가 말했던 피크닉 이야기에 정말로 그래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실행은 하지 못 하더라도 잠시 느긋해지기로 한 것이다.

말없이, 하지만 무겁지 않은 침묵 속에서 도시의 냄새나 전쟁의 냄새 같은 것은 모조리 잊었다.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가슴 속에서 푸른 향기가 모여들었다.

기분 좋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감각이 충만하다. 신이란 존재들은 어쩌면 위협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세계를 노리고 이것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휘이잉, 턱.

자연의 아름다움을 방해하는 시커먼 힘의 소유자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백색의 코트지만 순결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남자, 유다가 우리의 앞에 선다.

"너무하는군. 날 두고 가지마라."

"하핫, 미안. 잊었어. 그래도 네가 어디 맞고 올 녀석은 아니잖아?"

상대방이 누님이 아닌 이상에야 유다는 누구에게 맞을 녀석이 아니다. 자신의 텐션을 높이기 위해 맞는 경우는 있지만 그마저도 데미지를 입지는 않는다. 유다보다 더 센 녀석이 있더라도 도망치는 것은 가능하리라.

유다는 고개를 젓는다.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은 넓고, 강자는 산재해 있지."

의외의 겸손이랄까, 저만한 힘을 가진 사람에게서 보기는 힘든 반응이다. 하지만 유다이니까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다.

유다는 누가 뭐래도 그 동방삭과 싸워보았다는 녀석이다. 아마 세상이 넓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녀석일 것이다.

외로움(?)에 못 이겨 우리를 따라나선 유다를 데리고 걷기를 한참, 주변의 경관이 바뀌었다. 산새들이 울던 숲속과는 확연하게 다른 배경이 시야에 비쳐들었다.

'도로'가 정돈되어 있었다. 잘 깎아놓은 돌을 흙바닥에 굳혀넣은 것이 아닌, 재질 불명의 하얀 것이 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 이 방주의 아래를 받치고 있던 것과 같은 재질로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펼쳐져 있는 집들.

그야말로 도시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고 지금도 큰 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고층빌딩'들이 높게 뻗어있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하얀색 자태를 베이스 여러 부가물을 덧 달아놓은 '도시'.

'도로', '고층빌딩', '도시'. 눈 앞의 것들을 설명하려면 이 단어 밖에 없었다. 그 앞에 두 글자를 붙이면 더욱 정확해진다.

미래도시. 그것만큼 이곳에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었다.

"저... 방주라고 하길래 무릉도원 같은 곳을 상상했었습니다만..."

"으음. 저도 마찬가지네요. 설마 이런 곳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어요."

"와아! 집 걱정은 없겠다."

....다른 의미로 놀라는 사람(도깨비)가 이곳에 한명. 호지를 들어 목마를 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걸어온 쪽을 생각해보면 변방일텐데도 상당한 기술력이 느껴진다. 중심부로 갈 수록 더욱 굉장해지는 것일까.

가슴이 뛴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인지 어린애처럼 흥분되었다. 하지만 흥분이건 무엇이건 간에 지금은 아니다.

우선은 이동방법이 중요하다.

"어쨌든, 수색하자. 구경도 하고, 뭔가 알아낸 것이 있으면 부르고. 팀은...."

거기까지 말하자 시선이 맹렬해진다. 목마를 태워준 호지 때문인지 정수리쪽도 상당히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전 사랑받고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건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 지금은 맹렬한 시선에 맹렬히 고민해야 한다.

슈, 요연, 능파, 호지. 누구 하나 꿀리는 사람이 없다. 마음이 혼란스런 상태에서 아무나 잡는 것은 좋지 못 하다. 어디선가 보았던 나이스 보트의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이들의 무력을 생각해보면 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장 무난한 건 능파. 일단 누님 때문에 애정도 최하위라는 것이 드러났고 평소에도 많이 상담했던 아이다. '여자들' 사이에선 무난하다.

허나.

"나와 유다가 1팀. 능파와 슈가 2팀. 호지와 요연이 3팀. 이렇게 나뉘자."

운좋게도 X로 길이 나 있다. 세팀으로 나뉘기에 적당한 상황. 여자들(호지만)은 분개 했지만 크게 따지고 들지 않았다.

역시 여자가 아니라는 것에서 안도한 것일까, 모두들 빠르게 흩어졌다. 나는 유다를 데리고 오른쪽 길로 걸었다.

따박따박 하는 경박한 발소리가 나를 뒤 따랐다.

"왕. 팔은.... 괜찮나?"

난데없이 나온 유다의 말, 고개를 갸웃하지만 이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깨달았다.

어머니의 양수처럼 부드러운 바람에 나부끼는 왼쪽 소매. 그곳에는 응당 있어야 할 팔이 없었다. 다시 가나안의 전 주신을 달아놓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유다는 내 왼팔을 베었던 자는 아니다. 내가 직접 벴다. 하지만 유다는 그것에 책임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본성은 착한 유다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나는 새삼 부끄러워져서 팔을 유다에게 보이지 않도록 숨겼다. 뒤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발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미안, 하다."

"어라라, 유다. 사과도 배웠구나?"

장난스럽게 웃었다. 유다는 애절하기까지 한 얼굴로 소리친다.

"왕! 난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나도 진심인데?"

"...."

넋이 나갈정도로 간단한 대답이지만 유다라면 분명히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읽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유다는 입술을 깨물었다.

"넌... 왕에 어울리는 남자다. 난 그렇게 믿는다."

난데없이 꺼낸 말이지만 내가 했던 말과 같이 진심이 느껴졌다. 평소의 탁한 눈빛은 존재하지 않는 그가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한순간이지만 난 널 죽이려했다. 자신을 죽이려한 사람을 자신의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건 왕의 자격이 있는자...겠지. 설사 이용하기 위해서라 하더라도."

"아니. 하나 더 있어."

덧붙이는 나. 유다의 호수처럼 깊은 세월을 담은 맑은 눈동자가 나의 세월을 담았다. 시공이 멈춘 것처럼, 잠시간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무슨 말을 해도 상관 없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군이 된 녀석이 둘도 없는 바보라거나.... 말이지."

"너무하는군. 하지만... 틀리지 않다. 너무나도 옳은 말이야. 어째서 몰랐을까, 어째서 조금 더 강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잘 알고 있잖아. 그런 생각을 하니까 바보인거야."

"아아. 지금은 안다. 그렇기에 생각하지 않아."

"등신이군."

"...?"

어떻게 보아도 폭언인데, 마음의 성장이 있었던 탓인지 유다는 화내지 않았다. 나는 잠시 웃어주고 그에게서 눈을 돌렸다.

유다는 아직 '알'을 다 깨지 못 했다. 좀 더 자신이 있던 세상을 깨부수고 이곳으로 나와줄 필요가 있다. 그곳에 아직도 나왔다는 '착각'을 하고 있으면 그저 멍청한 녀석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해. 생각하고 생각해. 너의 과거에서 무엇 하나 헛된 것은 없었어. 나쁜 일도, 좋은 일도 결국 나와 만나기 위해 있었던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도록 해. 아니면..."

자주 받아보았던 능파의 시선을 생각하며 유다를 쏘아보았다. 유치원의 개구장이 같은 기운은 빼놓지 않았다.

"나와 만난 일이 헛된 일이었단 거냐?"

"그렇지..않다. 과연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군."

기분 좋게 웃어보이는 유다다. 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즐겁게 웃고 있자니 유다가 기묘한 반응을 보였다. 가볍게 뛰어가는 모습에 나도 슬쩍 뒤 따랐다.

타닥.

유다가 멈췄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터,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무슨 자판기 같은 물체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곳에는 이상한 녹색 판 형태의 홀로그램이 떠올라 푸른 글자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으음, 모르겠군."

"이쪽도. 언어학에는 도통 재능이 없어서. 국어는 못해도 80점이었지만."

단한번도 본 적이 없는 글자에 우리는 모두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사막은 분쟁이 많다는 특성상 용병들이 많다. 용병들은 곧 다국적 집단. 다른 나라의 언어를 접할 기회는 많았을 것이다. 그런 유다가 모른다는데 내가 알 수 있을리가 없다.

유다가 옆으로 물러나기에 난 그 자판기 같은 것의 앞에 서보았다. 입체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떠 있는 녹색 판 형태의 홀로그램을 자세히 보았다. 방주의 기술력 외에는 별로 특징적인 것은 없었다. 기계 자체에도 이것을 나타내기 위한 광원 외에는....

있다. 무언가 카드를 넣으면 들어갈 것 같은 입구가.

"흐음. 혹시 모르니까."

버스 카드를 집어넣어 보았다.

콰직.

장난치지 말라는 것처럼 부서져서 나왔다.

"우오오옷!? 아직 이만원이나 남은건데! .... 돌아가자. 더이상 얻을 것도 없겠고."

"회복이 빠르군.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유다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헤어졌던 길목으로 돌아가자 호지와 요연이 먼저 그곳에 있었다. 소득이 있는 것인지 상당히 얼굴이 밝았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다른 길에서 능파와 슈가 보인다. 슈가 하나를 무언가 하나를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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