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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모두(참고로 슈도. 방에서 멍하니 있는 슈를 섹시하게 속삭여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를 선상으로 데리고 나갔다. 솔직히 나도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듣기만해서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몰랐다. 앤트로아도 나에게 직접 보란 말 밖에 하지 않으니 궁금해 미칠 지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다 특유의 짠 냄새가 가득한 공기에 안겼다. 코끝을 간질이는 소금 내음이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그 내음 사이로 희미한 청량감이 파고들었다.
뭐랄까, 바다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마치 유운의 작업장이 있던 산에서나 느낄 법한 향기였다.
"마, 맙소사."
비단, 그것은 내 마음 속의 말은 아닐 것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부터 설명하자면 컸다. 마치 산. 아니, 그 이상의 거대한 것이 눈 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 사람의 가슴에 위압감을 새겨주기에는 충분했다. 시야를 완벽하게 가리는 그것은 바다에 둥실둥실 떠 있어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
거대한 그것의 위에는 이곳이 바다가 맞는지 돌이켜봐야 할만큼 넓은 녹음이 펼쳐져 있다. 아마 식물도감에도 없을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동물도감에도 없을 산새, 동물들이 그곳에 서식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름답고, 그 자체로도 균형을 이루는 모습에 그 어느것도 더할 것이 없어보였다.
그러한 자연적인 풍모의 바로 아래에는 기이하게도 백색으로 된 기계였다. 하지만 그것은 기계라기보단 공예품으로 보일정도로 흰색의 매끈한 표면이 존재했다. 간간히 안쪽에서 보이는 불빛과 톱니바퀴가 아니라면 그것이 기계인지조차 의심했을 것이다.
놀랍고, 또 놀랍다. 이러한 물건이 인세에 존재해도 되는 것인가가 의심스러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물건에 흙발을 딛어도 되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방주. 누님과 불사와 함께 신의 힘을 가졌다고 하는 국가 크기의 병기였다.
"요, 이런 곳에 가야하는 거야? 그... 크기도 보통이 아닐 것 같고 저런 거라면 보호방벽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마력도 제한하고 있고."
걱정이 가득한 슈의 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제가 잘못되었다.
"괜찮아. 유운이 먼저 들어가서 처리해놓는다고 했으니까. 넓다는 면에서는.... 따로 할 말은 없지만. 마력도."
유운이 먼저 이곳에 가서 자잘한 일은 끝내놓는다고 했다. 아마 이곳의 방어 시스템이 우리를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넓이와 마력제한. 아니, 마력제한이다.
사실 마력제한만 아니라면 넓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연의 텔레포트라면 한달음에 유운이 있는 곳으로 도약할 수 있다.
마법을 아예 못 쓰는 건 아니지만 초장거리 도약은 불가능 할 터. 그것은 다른 누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 일단 가요."
"아, 그럴까? 앤트로아!"
소리높여 부르자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졌다. 금속제로 된 몸이 굉장한 속도로 내려왔는데도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앤트로아. 나 네 위에 타 봐도 되냐?"
뻐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냅다 얼굴에 주먹을 맞았다. 마치 매콤한 고추를 갈아서 얼굴에 뿌린다음 뜨거운 물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다.
요연이다. 자주 바뀌지 않는 표정은 붉게 달아올라서 척보기에도 흥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태였다.
요연이 숨소리를 고르면서 말했다.
"요, 애. 아무, 리 그래도, 기계, 는 안되잖, 습, 니까."
숨이 매우 거칠어져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기억속에 남아있는 단어로 겨우 겨우 말 뜻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이쪽이 (열받아서) 흥분할 뻔 했다. 아니, 흥분해서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아니, 난 인간이다! 아무리 특이한 취향을 가져도 무생물을 좋아하진 않는다구!? 그냥 앤트로아의 비행에 동참할 수 있냐고 물은 거야!"
"아? 아하~?"
능파가 나와 요연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장난스러운 얼굴이 어딘가에서 상당히 사악한 오라를 뿜고 있다. 사람의 자기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미소는 나뿐만이 아니라 요연마저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요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으, 윽. 벼, 별로..."
"어머, 정말? 쿡쿡쿡. 아니,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능파의 흑심이 가득한 말에 쩔쩔매는 요연에게서 시선을 돌려 앤트로아를 보았다. 다행히도 순진한 앤트로아는 인간들의 그러한 개념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앤트로아의 머리가 까딱였다.
"주인, 기계취향이었습니까?"
"아니라니까!? 너까지 왜 그래?"
정정. 관심은 없어도 지식은 있는 모양이었다.
'농담입니다'라고 짤막하게 덧붙이며 자신을 부른 이유를 물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는 우선 질문을 건넸다.
"영국에서 포획한 요정들은 어쨌지?"
내가 독방에 처박혀 있는 동안 다른 일은 거의 신경을 안 썼다. 죽여버리려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기왕 데리고 온 거, 쓸만한 거주처정도는 알아봐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 저정도 거주지면 요정들도 싫어하지는, 오히려 기뻐하면서 받아들일테지.
이만한 자연경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치우회의 본거지라는 괴물 같은 장소 이상의 조건인데 기뻐하면 기뻐했지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부 배 안에 있습니다."
"이 '배' 안에다가 적당히 풀어줘. 적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장치를 해놔도 좋아."
"알겠습니다."
위이잉, 철컥.
기계음을 내며 돌아서는 앤트로아. 그녀에게 덧붙여 물었다.
"운은... 어떻지."
지금까지 활달하게 있었지만, 역시나 현재 내 생각의 대부분을 메우고 있는 것은 운이었다. 악의냐, 선의냐를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다.
솔직히, 조금 심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슬픈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챠이가 리타이어해서 가장 슬픈 것은 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데도 그렇게 운을 몰아붙이고 말았다. 조금 더 상냥한 방법이 있을텐데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을텐데도 나는 그렇게 하고 만 것이다. 겨우 손 안에 들어올 정도의 상냥함.
그것이 나에게 부족했다. 조금만 더 상냥했어도 그녀는 슬퍼하는 것에 전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나름의 상냥함이죠, 그건."
"...능파냐. 멋대로 내 마음 읽지마라."
"안 읽었어요. 눈에 보일뿐이죠."
앤트로아의 어깨를 밟고 선 능파의 청바지 위로 윗옷에 가려지지 않은 배가 살짝 보인다. 매끈하게 빠진 허리가 돋보인다.
"할아버지는 그저 운이 '슬퍼하지 않도록' 몰아붙였을뿐이죠.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스스로고 너무 몰입해버렸단 것이 문제랄까."
앤트로아의 한쪽 어깨에 걸터앉은 능파가 재미없다는 듯이 말한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핵심을 찔러오는 능파의 말에 지금까지 무게잡고 있던 것이 미안해질정도다.
능파가 바닥에 내려섰다. 소리도 없이 사뿐히 내려선 능파는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이쪽을 봤다.
"하지만 기대되요. 할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가. 개인적으로는 밝히지 않고 써먹을 수 있는데까지 써먹는 쪽이지만... 사용할 수 없는 패에 더이상의 기대는 무리겠죠. 그래도 할아버지니까 한두번쯤 사용방법은 생각해뒀겠죠?"
사용방법. 잔인한 말이지만 확실히 그 말이 정답이었다.
운은 배신자다. 최대한 이용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쪽도 배신해주는 것이 도리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불의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쓰고, 불필요하면 친다. 이것이 진리다.
죽지않기 위해서라면, 독해져야 한다.
"...앤트로아에게 맡겨두겠어. 생각이 날 때까지. 앤트로아. 운을 관리할 때는 최대한 연락이 불가능하도록 관리를."
"알겠습니다."
앤트로아의 거구가 선실로 사라졌다.
그렇게 배에 남은 자들의 처분을 하고 우선 방주에 내렸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겉보기만 보면 완전한 대륙, 이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
녹음이 짙은 이곳에 풀벌레소리가 메아리치고, 자연의 정기가 흘러나온다. 산업화의 표본인 도시 영국(마법사들의 도시쪽이기는 했지만)과는 정반대의 장소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손대서는 안될 것에 손을 댄 느낌. 아담과 이브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악과에 손을 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아, 그런가. 이곳은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마수조차 초월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곳에 올라서는 안된다.
이곳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무런 보증도 없이 그런 것이 느껴졌다. 설사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라 하더라도 그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멋지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터져나온 탄성, 모두의 마음을 대변한다.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다른 신비로움이 시야를 가득히 채워갔다.
"아빠, 여기서 피크닉하자."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안돼. 우리는 바빠. 시간이 남으면 몇년이고 해줄께. 그래, 몇년이고 말이야."
원한다면 매일이 피크닉이어도 좋다. 그 때까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내가, 운명에 지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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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탑승.
앞으로 이곳에서 내릴 일은 없습니다. 딱 한번 특별편에서 내리기는 하지만, 그건 예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