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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52화 (25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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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

안개로 가득한 공터. 멋들어지게 핀 잔디와 석수장이가 힘껏 깎아놓은 돌들이 이리저리 널려있고 커다란 정자 하나가 중심에 놓여있다. 안개 때문에 습기가 가득하건만 불쾌감을 주지 않는 특이한 공간.

그야말로 성지라는 것이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곳은 속세와 동 떨어진 분위기였다.

똑.

풀에 맺힌 이슬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텐데도 부드럽게 갈려진 흙 위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생명력을 머금은 물방울이 흙에 안기고, 바닥에 힘차게 풀들이 솟아올랐다.

인세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 속세의 인간인 루카는 혀를 내둘렀다.

"문주님은?"

숭례문의 하위 조직, 사일런스의 대장인 루카가 옆에 있는 부하에게 물었다. 부하는 대장을 대하는 예 따위는 갖추지 않고 어깨만 으쓱했다. 화를 낼만도 하건만, 루카는 화내지 않았다. 그럴 생각이 없었고,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다.

숭례문에 있어서 '대장'이란 것은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강한자와 연락병. 루카는 그 중에서 두쪽 다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능력면에서나 그런거지 실재로 직책의 조건은 아니다.

원래는 그냥 제비를 뽑으니까.

"도대체 육왕전하는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아직 부상으로 쉽사리 거동을 할 수 없는 운천은 무가의 가주는 이 신비로운 공간의 정자에 누워 요양을 하고 있었다. 움직인다면 못 할 것 없다고 본인은 말했지만 상처란 것은 덧나기 쉬운데다가 육왕과 영왕이 '반드시' 이곳에서 치료를 계속하라고 말했기 때문에 남아있었다.

반드시란 말을 강조했다. 마치 이곳에 남아서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처럼. 문주님은 이 꼴의 내가 할 일이 있다면 기쁘게 하지! 라며 좋아했지만 역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왠지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기를 바라는 듯한 눈이었다. '일어날테지만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것'

루카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는 알고 있었다.

"문주님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겠지."

반드시라고 말하던 그 둘은 '준비하라'라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준비'가 어떤 것의 준비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전투.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공간에서 전투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까운 일이지만, 불가항력이란 말이 어울리는 이 상황에 불평할 수는 없다.

"준비는?"

"일단 모두 끝내놨어. 폭약도 충분하고... 문주님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쉽게 돌파 당하지는 않을거다."

"아직 부족해."

"하아? 무슨 소릴..."

부하는 루카가 지금 머리가 살짝 돌은 것이 아닌가 심도 있게 고심해보았다.

문주님은 사일런스뿐만이 아니라 숭례문 최강의 괴물이다. 그 강력함은 몇년간 문주보좌로 일해온 적이 있는 루카가 가장 잘 안다.

강력한 검기(劍技)에 만병주(萬兵主)라는 칭호가 있을정도로 가리는 무기가 없다. 덧붙여 엄청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 문주님에게는 있었다. 그것을 모를 루카가 아니다. 아니, 숭례문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거냐? 문주님은 팔대간부 하나와 거의 공멸했고 다른 팀들도 거의 도망만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게 뭐?"

"문주님정도의 실력이 어디까지 먹힐거냐고 묻는거다."

"그야 팔대간부급까지 먹히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그 말은 상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상당히 제대로 짚어낸 부하를 향해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팔대간부급의 적은 몇이나 될 것 같나?"

되묻는 루카의 말에 부하는 입을 다물었다. 딱히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팔대간부급이라고 하면 적은 것 같지만, 숫자는 의외로 꽤 된다. 물론 팔대간부와 싸우면 이기지는 못 하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실력은 된다는 소리였다. 팔대간부 하나와 문주님을 동률로 보았을 때 버금가는 실력자가 둘만 와도 위험하다.

루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리 신경이 곤두 서 있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걸리는 것이 있었다.

문주님의 앞으로 내려진 '죽음의 예언'. 그것을 받은자는 꽤나 많았지만 루카는, 동료들은 지금까지 그리 크게 인식하지 못 했다. 하지만 위험이란 것이 가까워지고 피부로 느낄 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오늘이 고비라는 것을.

"...방법은?"

"일단 탈출로를 확보해. 거의 대부분의 마수들이 최종전쟁을 준비하느라 이 나라에 없어. 도움은.. 아마 받을 수 없을테지. 장기전이 될 수록 이쪽이 불리해지니 농성은 할 수 없다. 게다가 원군 또한 바랄 수 없어. 돌파해야만 해."

"어떻게?"

"글쎄.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

루카가 이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이상 내놓을 계책이 없다는 뜻.

위험하다. 자칫하다간 문주님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목숨도 날아갈 판이었다.

쿵, 쿠르르르르!!!

절벽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산사태의 소리에 정자 주변에서 대비하고 있던 부하들이 각자의 무기들을 들고 소리의 근원지를 보았다. 안개를 밀어내는 자욱한 먼지가 그곳을 장막처럼 가리고 있었다.

"선고오오옹!!!"

루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부하들의 총탄이 빗발치면서 먼지속을 가격했다. 짧고 강렬한 쇳소리가 연달아 울리면서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총탄이 조금씩 먼지를 걷어내자 루카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하게 변해갔다.

하나는 사람과 거의 같은 모양인데, 옷을 별로 입고 있지 않고, 다섯 색깔의 알록달록한 비늘이 온 몸에 나 있다.

용연용신

또 다른 하나는 흙바닥에서 그냥 퍼낸 돌 같은 것에 사방으로 뻗은 네 개의 사람 같은 머리가 있다.

지중사방불

세번째로 다리와 부리가 길고 깃털이 마치 사람이 짠 것처럼 아름다운 새였다. 날갯짓 한번에 바람이 휘몰아친다.

비우내포.

마지막 괴물은 사람과 비슷한 형상인데 온몸이 불덩어리로 되어 있어서 사방을 불태우고 다닌다. 신비로움을 아낄 줄 모르는 것 같지만 그 자체가 그야말로 신비였다.

지귀심화.

"용연용신에 지중사방불, 비우내포, 지귀심화.... 미친, 설마설마 했지만 이정도의 괴물들이 나올줄은....!"

하나 같이 약한 자가 없다. 이나라를 수호하는 대마수들로 강함은 팔대간부에 못 미치지만 약하다고 할 것은 아니었다. 본 상태의 문주님이라도 두명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을 루카는 모르지 않았다.

"제길, 후퇴한다아아아!!! 이곳은 버리고 탈출루트 B-3로...!"

위이잉!

공간이 뒤집힌다. 반전되어버린 세상의 색체에 루카가 입을 다물었다.

당했다. 이 공간 자체를 폐쇄시켜서 누구도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이래선 도망도 여의치 않다. 그렇다고 싸우면 필패일 것이 불보 듯 뻔하고.

이길 수 없다,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한 패색이 짙어지는 순간.

"으랏차아아아!! 아직 안 늦었...우와왓!?"

거대한 대검을 한손에 쥐고 사람의 반신을 가릴 것 같은 은빛의 방패를 든 소녀가 반전된 세계를 가르며 등장하더니 꼴 사납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금빛의 두꺼비가 빠르게 소녀의 아래로 뛰어가 받아냈다.

"아, 땡큐. 지금은 바쁘니까 빨리 끝내자 얘들아."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일어난 소녀는 얼굴에 청동색의 사자탈을 씌웠다. 그제야 그녀가 누구인지, 루카는 알았다.

영왕의 애인이자 최대의 조력자인 군신 소화. 그녀의 능력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유다전 때의 무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딸려온 작지만 기기묘묘한 마수들.

가능하다. 도망뿐만이 아니라 승리조차도.

가녀린 팔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검이 오색으로 빛나는 비늘을 베어낸다. 종이처럼 얇은 팔에서 나온 것치고는 강맹한 기운이 철처럼 단단한 용의 비늘을 가볍게 잘라내며 용연용신을 튕겨냈다. 적을 떨쳐낸 그 찰나, 지중사방불의 거대한 몸체가 그녀에게로 접근했다.

터어엉!

폭탄이 터진 것이 아닐까 싶은 소리가 방패에서 뛰쳐나오고 그녀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바닥에 아슬아슬한 자세로 착지한 소화의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쉬이잇!

뱀의 목소리 같은 검기의 파동이 물결쳤다. 지중사방불의 몸이 크게 뒤흔들렸다. 가까스로 소화의 공세를 막아내는 지중사방불의 뒤로 용연용신의 손톱이 솟아오른다.

저 둘은 그녀에게 맡겨둬도 될 듯하다. 게다가 마수들이 힘을 합쳐 비우내포를 막아내고 있으니 남은 것은 지귀심화뿐.

불타오르는 거구의 괴물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애매한 목소리로 사일런스의 앞에 걸어왔다.

"흐흐흐...어딨니, 내 사랑...?"

...좀 미친게 아닐까 싶었다. 마수들 중에서는 저러한 성향을 가진 괴물들도 여럿 있다고 들었지만 눈 앞에서 보니 미쳤다는 말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허나, 방심은 하지 않았다. 어떠한 적이건간에 방심하면 목이 달아난다. 그것은 십수년의 용병생활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방심은 하지마라."

"누구한테 하는 소리야?"

부하들과 짧게, 하지만 마음을 담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총기를 지귀심화에게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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