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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붕괴
시선이 향하는 그라드의 뒤로 스파크가 불규칙하게 터져간다. 날카롭지만 정련되지 않은 마력의 반발, 칼로 베어버리는 듯한 섬뜩한 기세를 내뿜는다.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케이슨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무리 광진을 사용하지 않는 상태라지만 살계조차 인식하지 못 하는 빠르기. 풍백의 몸이 크게 뉘여졌다.
키잉!
깃발처럼 펄럭이는 장포 안의 전갑(戰甲)을 스치는 검광이 번뜩인다. 번개 같이 하늘로 치솟은 케이슨의 위로 운사의 손바닥이 강(强)의 기세를 품고 덮쳐들지만 그마저도 케이슨은 빠른 속도로 피해냈다.
"오오. 케이슨이 저걸 쓰는 건 간만인데. 뭐, 덕분에 나와 기레는 널 잡는데 전력을 다할 수 있겠어."
그라드와 기레가 차츰 조여온다. 시바의 몸이 희미하게 움직이며 도망칠 구석을 찾지만 그들이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다.
예상하지 못 했다. 설마 케이슨이 광진을 사용할 수 있을거라곤 짐작도 하지 못 했다.
처음 케이슨이 누군가를 생각할 때는 분명히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케이슨이 황룡이라는 것에 생각이 닿은 순간, 그 점은 잊었다.
광진은 인간을 위한 비술, 마수인 자는 쓸 수 없다. 그런데 케이슨은 스위치식(불완전과 완전형의 2식 뿐인 것)이기는 하지만 사용하고 있다.
저 위력, 위세, 무엇보다도 속도. 확실히 광진의 증거다.
'인간이 된 건가...? 그건 아마도 황룡의 심장이 요연에게 가버렸기 때문이려나.. 제길, 위험이 너무 커..!'
운사를 포함한 현계자들 셋이 프리아가와 케이슨 둘을 상대하고 그라드와 기레는 마이너스 상태(나..)의 시바를 공격한다.
말로도, 상황상으로도 간단하지만 최악의 형태.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석을 찾아서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육왕 전하~? 도망치지 말라구. 재미없잖아?"
"내 얼굴에 폭약을 먹였던 빚, 갚아주지."
그라드와 기레를 뚫고 나아갈 방법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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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 아니, 그 말로는 지금 런던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 감각이 가슴을 직격했다.
하늘을 날고 있기 때문에 다행히도 영향은 받지 않은 상태지만 땅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져 있었다. 마치 거품내는 기계를 쳐박고 회전시킨 것처럼 집들은 불타오르고, 부서진 상태이다.
게다가 그 위로 부자연스러운 싸이클론이 수백의 집, 차등의 물건들을 솟게 하고, 파괴한다. 마력 현상은 아니지만 그 현상의 진실을, 능파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요. 그녀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존재다.
아마도 풍백을 위험할 정도로 증폭시켜서 일으켰음이 분명하리라. 불타오르는 것이야 설치를 부탁했던 폭약일테고.
"할아버지를 구해야 할 때니까, 다들 힘내. 할아버지가 죽어 있는 꼴을 보기 싫으면."
능파가 몸을 더욱 가속시키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그 독려 아닌 독려를 받는 동료 쪽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능파앗! 그러다가 진짜로 아빠가 그렇게 되면 어쩌려구!"
"되면 별 수 없는거죠."
"능파 너 진짜...."
분개하기 일보 직전의 호지를 등 뒤에 있던 요연이 붙잡았다. 호지가 죽일 것처럼 쏘아보자 요연도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떨쳐내곤 손가락으로 능파를 가리켰다. 호지는 반사적으로 그 손가락이 닿은 곳을 보고 갸웃했지만, 이내 알았다.
능파는 떨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능파는 절대로 남을 독려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면 하는데로, 못 하면 못 하는데로 계획을 진행시킨다. 그것이 능파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답지 않게 남을 독려했다. 게다가 평소보다 말 수도 더 많아졌다.
아마 능파도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음? 능파, 앞에 뭔가가 옵니다."
요연의 경고, 능파의 시선이 더욱 매서워졌다.
폭염으로 인한 재 덕분에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시커먼 것들이 한 가득있다. 게다가 하나 하나가 가진 '힘'이 기이하다.
강하냐 약하냐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힘으로 따지자면 확실히 그것들은 강한 축에 속하지만 그녀들의 가로막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기이했다.
그 외에는 설명할 말이 없었다.
능파는 대응책을 알 수 없는 상황에 혀를 찼다. 힘으로 밀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요를 구할 쯤에는 팔대간부 전원과 맞붙어야 할 가능성이 있었다.
힘을 쓸데없이 낭비하기는 힘든 상황.
능파는 결단을 내렸다.
"챠이, 유다. 먼저 가서 할아버지를.... 어라?"
"유다는 모르지만 챠이는 탑이 무너지자마자 뛰쳐나갔습니다."
유다와 챠이의 실종에 갸웃하자마자 요연의 보충설명이 들어왔다. 그 설명에 능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다가 어디로 갔는지는 짐작가지 않는다. 아마 팔대간부를 치러 갔을 확률이 가장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그것으로 충분. 설사 아니더라 하더래도 할아버지를 지키는 최고의 충신이 달려 나갔으니 생존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챠이라면 분명,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할아버지를 구해낼테니까.
"그럼... 저것들이 문젠데....."
더욱 더욱 검은 것들이 가까워진다. 그저 검은 점에 불과하던 것들이 서서히 윤곽선을 덧그리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보였다.
간단히 그것들을 표현하자면, 검은 인간이었다. 다만 인간과 다른 점이라면 팔, 다리, 눈, 코, 입, 귀, 머리카락. 모두가 엉뚱한데 붙어있다는 것.
얼굴에 코 대신 손가락이 박혀 있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다리가 있을 곳에 눈이 달린 녀석이 있다. 그렇게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존재들.
아수라. 재해, 겁난을 부르는 무리들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이끄는 붉은 피부의 금빛의 관을 쓴 자.
아수라왕.
수많은 손으로 합장을 하는 것 같은 자세로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미끄러져 온다.
기괴하기까지 한 행동에 모두가 태세를 갖췄다.
"과연, 빠르도다. 이 나와 싸우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뿐."
"이쪽의 전력은 그쪽을 압도하고 있어요. 설사 뒤에 있는 놈들이 덤비더라도 우리를 이길 수는 없죠. 그런데도 덤빌 생각?"
아수라왕은 요연과 호지가 둘이서 상대하고 나머지 잡병들은 도깨비들이 상대하면 그만이다. 아수라왕이 생각외로 강하지만 않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다.
그는 웃었다. 입꼬리가 길쭉하게 말아올려가는 것이 여간 비웃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기는 것만이 싸움의 능사는 아니지."
"시간이라도 벌어볼 셈이라면, 관두는 게 좋아."
정곡을 찌른 듯, 아수라왕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주변을 훑는 것 같은 시선이 끝나고 그는 혀를 찼다.
"우르카와 유다가 없군...!"
"정답. 당신이 하는 짓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달았어?"
"...확실히. 허나, 나는 해야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자가 아니다."
거대한 산 같은, 그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의지를 입에 담는다. 능파는 그 의지에 이를 갈며 파고들 틈을 물색했다.
어떻게 한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저 팔대간부를 상대로 압도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른다.
아무리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아니, 할아버지니만큼 내놓을 수 있는 패는 한정되어 있다. 최후의 최후까지 몰린 상황이 되기전에 가야만 한다.
"요연은 아수라왕을. 엄마는 도깨비들과 함께 잡병들을 상대해줘요."
요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수라왕과 직선상의 거리에 섰다. 사신(四神)의 의지를 가진 검들이 허공을 춤춘다. 그 중심에서 어떠한 검도 잡지 않고 아수라왕과의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호오, 나쁘지 않은 기도. 어검(馭劍)의 소유자인가."
"그렇게 부를 수준은 아닙니다. 검사로서 나보다 뛰어난 자는.... 몇 더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뇌리에 금빛의 호랑이가 새겨진 도를 들고 있던 한 여성의 실루엣이 스쳐지나갔다.
욱신.
언젠가 대련이랍시고 도전했다가 베였던 옆구리가 시큰거린다.
쓰디 쓴 과거이지만,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때 그 대련이 아니었다면 다섯번째 검을 꺼내짇도 못 했을 것이다.
이 자의 앞에서, 무인이랍시고 검을 뽑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휘리릭.
푸른색 검신이 곧게 뻗은 양수검, 청룡검이 그녀의 왼손 안에 들어왔다. 검날의 날카로운 예기는 그 어느 것도 베지 않았음에도 느껴지는 듯 했다.
"믿겨지지 않는군. 그대만한 자가 검에서 지는 자가 있다니."
아수라왕.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수라장을 거쳐 왕이 된 몸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일까, 요연의 검기(劍技)가 범상치 않을 것임을 느끼고 있었다.
아수라왕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인간의 앞에는 아직 미래로의 길이 닫히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어."
"... 뭐라 그러셨습니까?"
"아니, 별 일 아니다. 우리는 적, 나눌 대화는 무기로 충분하지 않나?"
수많은 손이 개별적으로 자세를 취하며 내밀어진다. 천수관음상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 강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강자다.
그녀는 많은 강자를 보아왔다.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최강의 모습을 자랑하는 소야에서부터, 인간의 몸으로 섭리를 거역하는 유다까지. 전설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괴물들과 싸워보았다. 하지만 아수라왕의 강함은 그들의 강함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소야는 강대한 재능의 힘.
유다는 한결 같은 의지의 힘.
허나 아수라왕은 길고 긴, 억겁의 세월 속에서 길러온 경험과 수행의 힘.
그것은 요연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힘. 그녀의 이상이 눈 앞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오른손으로 백색의 영광을 흩뿌리는 검, 백호검이 쥐어졌다. 검으로서 가장 균형 잡혀져 있다 불리우는 두 검을 양손에 쥐고 하늘을 보았다.
'요애, 이 감각을 즐겨도 괜찮겠지요.'
그 물음이 헛된 것임을 요연은 모르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요라면 분명히 아주 장난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할 것임이 분명하다.
"즐기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긴다...잖아? 상관없어."
정말로 요가 말한 것 같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맴돌았다. 요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새겨졌다.
얼음보다도 더욱 창백한 청광과 검날보다도 날카로운 백광이 적광과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