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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26화 (226/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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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전야

모두가 잠들어버린 고요한 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그곳에 누워있는 세 여성. 호지, 요연, 슈를 보았다. 원래부터 출중한 미색이 어둠에 가려졌음에도 아름답기 짝이 없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준 사람들이다. 나를 무능하지 않다고 말해준 사람들이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 제대로 해준 것이 없다. 사랑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주지도 못 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조금 더 잘해주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손등으로 그녀들의 볼을 한번씩 보듬었다.

"뭐, 이번 전쟁이 끝나면 뭐든 해보자. 그러면 되는거야."

살아날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지는 스스로 알고 있지만, 뒤집을 수 없는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이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 깨지지 않는, 아주 미약한 소리만이 대기를 흔들었다.

손잡이에서 손을 때고 뒤로 돌자 그곳에는 검은 그림자 하나가 이쪽을 향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라 손을 들어 태세를 갖추자니 그곳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 어머니의 남편. 즉, 나의 아빠다.

부드럽기 짝이 없는 성격의 아빠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디 가니?"

"예... 좀."

여전히 부드러운 물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 거북했다. 딱히 그렇게 느낄 필요가 없는데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보통 이런 분위기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만날때는 전부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때 뿐이었다.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어머니를 이해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난 그런 이야기가 싫었다. 이해하기 싫단 이야기와는 조금 달랐다.

아빠가 그런 말을 할 때는 항상 약한 모습이셨다. 그렇기에 말을 할 때마다 울었던 것이 태반이었다. 아마 나는 누님 때처럼 부모님들에게도 '강함'을 바래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내 어깨를 잡았다.

"강해졌구나. 어렸을 때와는 성격도 많이... 바뀌었어."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하하, 그래도 다행이야. 그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어서. 하지만... 조금 아쉽구나."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조금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시야가 아래로 떨어져 더이상 아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너의 엄마가 말하지 않았을테니, 말해줄께."

아빠는 말을 끊었다. 숨을 참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껴 보려고 했지만 누르는 손의 힘 때문에 볼 수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아빠는, 아버지는 항상 남을 생각해주는 이상적인 남자였다.

"다녀오렴."

그 한마디가 너무 기뻐서, 너무 슬펐다. 눈물이 흘러내리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러 참았다. 남자로서, 아버지의 앞에서 울어재낄 수는 없다.

강한 모습으로 사라져, 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어머니가 잠들어계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등을 돌렸다. 그곳을 주시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거실 끄트머리로 다가갔다. 우리집에서 머물고 있는 챠이와 유다, 길리안이 거실에서 자고 있었는데 전부 신장이 큰 사람들이라 여간 조용히 넘어가기 힘들었다.

밖이 보이는 곳까지 도달한 나는 가볍게 발로 창문 끝을 찼다. 딱, 하는 둔한 소리가 나기는 커녕 창문은 내 발을 끌어들였다.

휘이익!

바람이 나를 휘감았다. 밤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쌀쌀한 추위가 느껴졌다. 내가 있던 곳과 다른 곳이란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멋진걸."

내가 선 곳은 상당히 높은 탑. 어딘지는 모르지만 야경이 멋들어지게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마치 왕 같은 기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타박타박하고 가벼운 발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었다. 이런 발소리라면 전에도 한번 들어봤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역시 있었구나."

"물론이죠. 이런데서 혼자 뭘 하시려는 줄 알구요?"

하늘색 잠옷차림에 붉은 천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능파가 짜증난다는 얼굴로 내 말에 대답한다. 짜증이 겉에 나와 있지만 속 뜻은 정반대였기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능파는 삐친 듯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귀여운 아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하늘을 보았다. 검고 탁한 도시의 향취에 묻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유달리 강한 별빛은 희미하게 보였다.

능파를 보지 않은체, 나는 입을 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고향의 땅을 보고 싶었어. 별로 다른 생각은 없지."

이렇게 감상적인 말을 하는 것은 나답지 않지만, 누구도 믿지 않을테지만, 그것은 일말의 가감도 없는 사실이었다.

유다와의 문답에서 나는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런 광경들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능파는 혀를 찼다. 한심하다던가 하는 느낌이 아닌, 관여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질책이다. 능파는 그런 행동으로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나를 불렀다.

"할아버지."

"왜 그리 조심스럽게 불러? 능파 답지 않은걸?"

최대한 장난끼가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묻자 능파는 눈을 치켜떴지만 이내 눈을 감았다. 무언가 반응이 이상했지만 능파의 말을 기다렸다.

내 분위기를 살피는 것 같은 능파의 목소리가 내 귓바퀴를 휘돌며 들어왔다.

"세현의 회복.... '800년'은 걸린다고 영왕에게서 소식이 왔어요."

"그... 래? 그렇구나."

능파는 내가 충격이라도 받은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그렇게 말한 듯 했지만, 나는 이미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둔 상태였다. 놀라지는 않았다.

처음 누님에게 세현을 맡겼을 때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살아나더래도 이 시대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선고를 들은 상태였다.

누님은 나에게 있어서 신과도 같은 존재. 그 이상의 절대자나 다름 없는 분이 나의 누님이다. 그런데 그런 누님이 불가능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불가능 한 것이다. 슬퍼하는 것은 그 때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늘을 보았다. 검푸른 바다 같은 밤하늘의 색을 보다가 능파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능파야."

"왜요 할아버지?"

아까의 화제에서 내가 담담했던 탓인지 능파는 의외로 가벼운 말투로 반문해 왔다. 능파는 내 팔에 붙으려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우리의 목적지가 어딘줄 아니?"

"짐작하는 곳은 있지요."

답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능파다운 말이었다. 나는 안개처럼 희미하게 웃으며 눈빛으로 능파가 내놓은 답을 물었다.

능파는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국이겠죠. 유다가 말한 사람, 어째선지 찾을 수 없는 본단, 미묘하게 알력이 강한 마법협회와의 관계... 그곳 밖에 없어요."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파의 말에 감탄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능파의 말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카타스트로피는 마법협회가 있는 영국에 몸을 숨기며 인간을 부려왔다고 하면 모든 아귀가 맞는다.

처음 소누를 습격했던 협회 소속의 마법사의 등장. 이것도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상한 것에 속했다.

소누는 확실히 마법사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두고 볼만한 수준을 넘어선 것 또한 사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국의 마수가 갖는 세계의 위상은 절대적이라 불릴만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이름 좀 있는 마수 하나만 나타나면 영국은 초토화된다. 물론 소누를 도우리란 보장은, 그 당시에는 없었겠지만 소누의 행동을 보면 마수들의 앞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한국의 마수들은 마법사에 대해 상당한 색안경을 끼고 있다. 들어오는 족족 쳐죽여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그들이 모를리가 없다.

그런데도 공격해왔다. '뭔가 목적이 있는 행동'이란 소리다. 그 이유는, 여전히 짐작뿐이라 입에 담기에는 뭐하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있다.

능파가 이쪽을 뾰루퉁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갑자기 느껴지는 살의에 깜짝 놀라 적이라도 나온 것인가 싶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도 없었다. 카타스트로피라고 해도 그만한 물량을 썼으니 휴식기는 필요할 것이다.

살의가 향하는 대상인 나는 말을 더듬으며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느, 능파야? 왜...."

"장난은 사양이에요."

"장난이라니 갑자기 무슨 소릴..."

"처음에 날 불렀을 때, 그런 소리나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잖아요?"

정곡을 관통하는 능파의 말에 몸이 딱, 하고 굳는 것이 느껴졌다. 눈치가 너무 좋은 것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확실히 능파의 말은 정답이었다. 너무 정확해서 도리어 화가 날 정도로.

내가 하려는 말은 아마 능파에게는 좋은 말이고 나에게는 조금 슬픈 말이었다. 만일 그것을 몰랐다면 아마 어머니께 연을 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나는 정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이것 좀 볼래?"

그렇게 말하고 단추를 풀어 가슴팍을 보이자 능파의 발차기가 정강이에 작렬했다.

"변태."

"아니, 그런게 아니라. 이거 말이야, 이거."

가뜩이나 유다와의 대담 때 나온 말들로 변태가 되어가는데 당사자에게도 변태소릴 듣는 것이 왠지 한심해졌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해서 손가락으로 가슴팍을 가리켜보자 능파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그곳을 보았다.

붉었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마치 리트머스 종이같다.

"그건... 설마 마인화(魔人化)....?"

마인화. 인간이 마의 영향을 받아서 인외의 존재로 진화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보통 그런 경우는 마와의 합체가 했을 때, 예를 들자면 요연과 비슷한 상태여야 가능하다. 일반 인간이 갑자기 마인이 되는 경우는 없다.

광진의 영향. 본디 극초기의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비술이었던 광진의 힘이다. 진화의 가능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인지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이 가슴팍의 피부가 돌처럼 굳어지고 변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쩐지... 할아버지가 증조 할머니께 그리 말한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어요.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보통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텐데."

"그렇지. 어차피 전쟁이 시작되면 죽을지도 모르고, 이미 인간도 아니고. 그러니 차라리 연을 끊어버리자고 생각하기도 했지."

나는 슬픈 빛을 감추기 위해 난처하게 웃어보였다.

"결국에는 못 했지만 말이지."

"하아... 진짜, 할아버진."

나 못지 않은 난처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능파의 모습이 야경의 빛을 받아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능파는 겨우 30평 남짓한 바닥을 빙글빙글 돌았다. 어깨에 걸친 천이 날개처럼 보였다.

그렇게 돌던 능파가 잠시 내게로 다가왔다. 붉어진 얼굴이 어두운 밤에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할아버지. 아직 데이트는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시죠?"

그러고보니 능파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아직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에 남는 최후의 밤. 능파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분위기와 배경은 상당히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파가 부끄러움에 시선을 마주치지 못 한다.

"눈은, 감을 필요는 없지만... 역시 부끄럽네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능파가 내 목덜미를 잡아채 끌어내렸다. 흔들린 무게중심에 아랑곳 않고 능파의 입술이 내 입술에 포개졌다.

그러고보면 능파와는 단한번도 키스를 한 적이 없었.... 지....!?

혀가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다. 마치 뱀처럼. 그렇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혀가 꿈틀거릴 때마다 오히려 매혹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오면서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위 프렌치 키스, 딥키스라고도 부르는 것을 능파와 나는 하고 있었다.

내 혀가 통제를 벗어나 능파의 혀를 휘감았다. 열심히 키스에 전념하던 능파가 눈을 크게 떴다. 내 혀는 기세를 몰아 능파의 입 안까지 침투해 이곳저곳을 범했다.

힘이 빠지는 것인지 내 몸을 잡아당기는 능파의 힘이 약해졌다. 거기에 다리까지 풀린 것인지 후들거리고 있었다.

다리를 조금 틀어 능파를 바치곤, 눈을 감아 능파와의 키스가 주는 감촉에 점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와 능파의 입술이 떨어졌다. 내 품에 안겨있는 능파가 손으로 툭, 내 배를 쳤다.

"벼, 변태. 그, 첫키스였는데 그렇게...."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나도, 좋았달까. 멈추기 힘들어서."

솔직히 감정에 휩쓸린 면이 없잖아 있지만.

내 품에서 잠드려는 듯, 능파는 더욱 몸을 맡겨왔다.

"할아버지. 이대로.... 해볼래요?"

뭘?... 이라고 묻지는 않았다. 뭘 말하는지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알 거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쩍 거리고 있자니 능파가 배를 밀치며 뒤로 물러났다.

"쿡쿡, 장난~."

장난스럽게 돌아서는 능파의 등을 보며 머리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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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능파야. 난 너를 그렇게 안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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