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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나는 유운의 인도로 유다를 파티에 넣고 승승장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뒤에서 들리던 사람들의 환호성을 만끽하며 집에 돌아오고 우리는 가볍게 축배{그렇다고 술은 마시지 않았다. 슈왈, 주충(길리안 랑페르제. 국내의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었다)이 등장해서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슈의 가드로 취할정도까지 마시지 않을 수 있었다}를 들고 하루를 보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덕분에 잠시동안 전쟁을 잊고 평범하게(조금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지낼 수가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날. 즉, 오늘 일어났다.
난 안이했던 것이다. 그런 퍼포먼스를 벌이고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건 너무나도 큰 착각이었다.
눈물이 또르륵, 볼을 타고 내려왔다.
"할아버지. 적당히 안 하면 주먹이 꽂힐거에요?"
이불을 겹겹히 덮어쓰고 누워있는 나에게 능파는 흰색의 용비늘이 찬란하게 빛나는 손을 들어보이며 위협했다. 이불속에 들어와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있는 호지가 훌쩍거렸고 슈도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능파의 옆에 선 요연이 침통하게 말했다.
"요애정도 되는 분이 '감기'라니..."
"우윽, 우우우우....."
요연의 말에 참고 있던 서러움이 눈에서 흘러내렸다. 내 반응에 호지와 슈가 요연을 매몰차게 쏘아봤고 요연은 손을 휘저으며 당황하다가 방의 구석에서 깡통마냥 찌그러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느꼈다.
이것이 텃세구나, 하고. 실질적인 텃세는 조금 다른 곳에 있었지만 지금 내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으니 일단 논외.
나는 내가 감기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호지를 보았다. 호지는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거머리(비유가 나쁘지만)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호지야. 난 감기에 걸렸으니 조금 떨어지는게 좋을 것 같구나. 네가 감기에 걸리면..."
"허접한 인간의 내구도랑은 다르니까 괜찮아."
허접한 인간의 표본인 나는 속으로만 피눈물을 흘리면서 호지를 밀어내는 것을 그만두었다.
호지 말마따나 인간인 나와 도깨비인 호지의 면역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혈통상으로 가온의 딸인 호지는 특성상 겁화를 다룬다. 피대신 화염이 흐르는 것이 아닐까 싶은 호지의 몸은 독, 질병에 대해서만큼은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내 몸은 허접하기 그지 없었다.
내 능력의 주축인 광진은 유다 때의 전투로 많이 소진한 상태였던데다가 왼쪽에 새로운 팔을 달아놓는 바람에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그런고로 현재 나는 마력운용이 필요없는 삼신기외의 힘은 전혀 쓸 수 없었다. 그래도 주변녀석들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감기같은 잔질병은 간단히 처리할 수 있겠지만 누님의,
"그런 병은 혼자서 나아야지. 안 그러면 강해질 수 없어."
라는 주장에 의해 나는 침대에 처박혀 골골거리는 것외엔 도리가 없었다.
제기랄, 평소에는 과보호나 다름 없으면서 이런 때만 강함에 대해서 논하다니!
"뭐, 이해 하는 바이지만."
"에?"
옆에 붙어 있는 호지가 나의 혼잣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팔을 들어 껴안는 것으로 호지의 관심을 끊어버리곤 시선을 능파쪽으로 주었다.
누님의 강압으로 약조차 먹을 수 없는 것 때문에 그저 지그시 날 바라보는 능파의 눈 근처 핏줄이 솟았다. 능파의 피부위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프렛셔가 내 어깨를 짓누르면서 시선을 때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호지가 붙어 있어선가, 화났구나 능파야.
찰칵.
잠금쇠가 풀리면서 문밖에서 붉은 코트의 남자와 흰코트의 남자가 들어왔다.
유다와 챠이. 진정한 텃세의 모습이 지금 드러나려 하고 있었다.
"왕."
담담하게 부르는 유다의 목소리에 모두가 시선을 던졌다. 요연과 챠이, 호지는 대번에 얼굴을 구기면서 으르렁거렸다.
유다는 적이었다. 게다가 모두를 전부 쓰러트릴만한 실력자. 지금 당장 칼끝을 내게 향한다면 도망치는 것이외에는 도리가 없다. 그래선지 능파도 한쪽 눈으로 힐끗 시선을 주면서 조금씩 경계의 단계를 차츰 늘리고 있었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다는 대뜸 말했다.
"단둘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람들을 물려주었으면 좋겠어."
"""기각!!!"""
호지, 챠이, 요연의 한마음 한뜻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유다는 아랑곳않고 나를 보았다. 그녀들의 의지는 전혀 상관 없다는 투다. 그리고 번개가 지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는 찰나, 힐끗 누군가를 보곤 시선을 거뒀다.
그것은 물리적인 행동이라기보다 심리적인 것. 나나 능파가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 했을만한 것이다.
상당히 중요한 것임을 깨닫고 나는 모두에게 나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아빠!"
역시나 가장 옆에 붙어 있는 호지가 크게 반발했다. 스스럼없이 내 위로 올라탄 호지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가볍게 입술을 겹쳐주자 눈이 흐려진 호지를 옆으로 밀어 슈의 품에 안기게 하곤 나가라 손짓했다. 슈도 못 마땅한 얼굴을 했지만 결국 그녀를 들고 나가버리자 요연이 혀를 차며 날 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유다를 향했다.
"요애. 이건 그저 전략으로 이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호위가...."
"괜찮아. 날 믿어."
"하지만!"
말을 하려다 목이 조금 안좋아진 것을 느끼며 손짓으로 요연을 불렀다. 목을 쓰다듬은 탓인지 요연은 놀라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솔직히 요연도 반은 인간이라 해도 될지 망설였지만 용의 힘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닐테지.
한 팔로 요연의 목을 감아 내 쪽으로 끌어들였다. 강함과는 반대되는 부드러운 살의 감촉이 팔에 느껴졌다.
소리없이 닿은 입술을 때자 요연은 얼굴을 가리면서 안절부절하더니 내 얼굴에 약하게 춉을 먹이곤 밖으로 뛰쳐나갔다.
".... 은근히 슈 이상으로 부끄러움을 잘타는 녀석이라니까. 어쨌든, 이걸로 된거지?"
"둘이 남아있지 않나."
확실히 유다의 말대로 방에는 두명이 남아있었다.
여자들이 나가자 어부지리로 내 옆을 차지한 능파와 지금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유다의 등짝을 그어버릴 것만 같은 챠이.
그 둘을 유다는 불편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챠이는 일그러진 미소를 입가에 그리면서 유다의 시선에 맞섰다.
"네놈이 폐하를 배신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폐하께서 명령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나가긴 하겠지만."
덧붙이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애처롭기 그지 없어서 나는 웃었다. 그 웃음을 그대로 유지한체 유다에게 시선을 주었다. 챠이의 텃세를 어제까지 계속 받아온 유다는 상당히 스트레스가 쌓인 듯 했다.
난 챠이에게 그만하라는 눈짓을 하면서 유다에게 말했다.
"딱히 널 의심할 생각은 아니야. 하지만 네가 아니라도 지금은 대비해야할 일이 많으니까. 게다가 능파는 나 이상으로 뛰어난 곳이 있거든."
호오, 하고 유다가 감탄했다.
"이미 알고 있었나, '그녀'를?"
능파의 눈이 먹이를 매의 눈빛처럼 매섭게 빛났다. 챠이 또한 보통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처럼 보였다.
유다가 말하는 '그녀'. 그것은 나와 능파가 지금까지 알아낸 '배신자'와 다를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짐작했던 배신자는 이 방에 없었다. 그런데 유다의 눈이 이곳에서 날카롭게 빛났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최소한 나와 능파, 챠이(우리들이 남아있음에도 이야기를 진행시켰으니)를 제외한 모두가 배신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호지, 요연, 슈. 솔직히 짚이는 것이 있어서 더욱 괴로운 말이지만, 나는 계속해보라고 턱짓했다.
"이 세상에는 혹시라고 하는 것이 있으니 일단 '그녀'라 칭하겠다. 그녀는 전 카타스트로피의 중역.. 쯤 되는 존재다. 그 때와 모습이 상당히 달라진지라 몰랐지만, 이 집에 오고 나서 확신했다."
충격 그 이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쯤?"
유다는 아무리 협박 당한 처지라고는 하지만 카타스트로피에 있었다. 상하체계정도를 모르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쯤'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다.
기억을 해내려는 것처럼 유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조금 시간이 된 이야기라 설명하기 어렵군. 여하튼 상당히 강했다. 당시에 트러블이 있어서 나와 싸웠었지."
"싸워!? 그런데도 살아남은 건가요?"
능파의 비명과도 같은 물음에 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단순한 트러블이기도 했고, 그날 이후로 볼 수 없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팔대간부가 지랄을 해댔지만 귀를 막으니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더군."
애들 싸움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말이라 조금 웃음이 나왔지만 속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처음부터 배신자로 확신하고 있던 그녀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가능성이 있던 정도. 하지만 이런 물증들이 나온다면...
큭, 하고 혀를 깨물며 물었다.
"그... 이상으로 아는건?"
"내가 아는 것은 그것으로 끝이다. 반드시 그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은 있지."
하아, 하고 숨을 뱉어냈다. 불길한 상상이 머리를 엄습하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싫다, 나. 겨우 애정도의 차이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아니길 바라다니. 이래서야 '최악의 상황을 예상으로 움직인다'는 나의 모토가 망기져 버릴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길 바라는 것은...
"왕. 참고로 용건은 하나 더 있다."
생각을 끊고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유다의 말에 각성했다. 유다는 철과 바위로 만들어진 팔찌를 내게 건네주었다.
장식조차 없는 단순한 골동품으로 보일만한 물건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현기라고 부를만한 에너지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난, 이것과 비슷한 물건을 알고 있다. 아니, 가지고 있다.
그것의 답은 능파에게서 나왔다.
"철암장군? 어째서 그것이 유다에게...."
"케이슨이 주더군. 허나 나에게는 있으나마나한 것. 왕이 가지고 있는다면 좋겠지."
내게 넘겨주는 철암장군을 받아들곤 사고를 집중시켰다. 역시나 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것은 분명히 내가 가진 풍백, 운사, 우사를 필두로 하는 삼신기와 같은 성질을 가진 물건이다. 아마 삼신기와도 유동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지.
능파는 그것을 만지며 덧붙였다.
"철암장군은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삼신기와 짝을 이루는 물건이에요. 철과 암석을 다루는 그 힘은 필시 유용할테죠. 조금쯤은 다루는 법을 생각해두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그런 것이 왜 역사에 남아있지 않을까?"
능파가 마치 비웃는 것처럼 웃었다.
"그야 수도에서 왕을 보필하던 세명과 최전선에서 적이랑 싸우던 장군님과 한묶음처리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묘하게 이해가는 능파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내 머리가 아래로 향했을 때, 능파의 입가가 내 귀로 다가왔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눈치챈 케이슨의 정체도 알았어요."
감탄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보통은 별 것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며 지나칠 일을 확실하게 연결지어 생각해냈다. 감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띵동.
난데없이 끼어든 벨소리에 집주인인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능파가 내 어깨를 붙잡고 넘어뜨려 눕혔다.
"할아버지는 아픈 몸이니까 누워계세요."
"아, 그럴께. 그런데 덮치다니, 묘하게 매혹적이구나 능파야."
능글맞은 대답에 능파는 보기 드물게 얼굴을 붉히더니 요연처럼 얼굴에 주먹을 먹이곤 밖으로 씩씩 거리며 나가버렸다.
이러다가 정말로 처첩을 거느리는 후레자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것에 대해서 챠이에게 물어봤다.
"예? 처첩 같은 것이야 폐하에겐 당연한 일 아닙니까. 모름지기 왕이시니까요. 전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아, 혹시 여자가 부족한 건가요? 그럼 제가 괜찮은 것들로 보쌈...."
"아니, 됬다."
이녀석, 우리집에서 책을 읽어대더니 보쌈이란 말까지 배웠어. 게다가 영웅호색을 당연하게 여기다니. 개인적으로 챠이의 말에 혹하기는 했지만....
"요, 위험해!"
"위험할 것 같데이. 빨랑 튀는 것이 좋지 않컷나?"
내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에는 푸른 나비 두마리를 머리 주변에 빙글빙글 돌리는 하여와 헉헉 거리는 운이 보였다. 두 여자들이 무슨 이유로 이리 급하게 찾아왔는지는, 운의 입에서 나오려 했다.
"오, 운과 하여로군. 운은 근래에 자주 보는걸?"
먼저 선수를 친 탓인지 운이 분개했다.
"그딴 게 문제가 아니지 않노!?"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운은 낭랑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니 부모님이 왔데이."
올 것이 왔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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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이젠입니다.
전편의 코멘으로 연참~. 그래도 아직 비축분은 40편이나 있으니 괜찮은 작가입니다.
여러모로 기대되는 다음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