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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바라본 주인공
사건이라는 것은 예고를 하지 않는다. 만일 예고가 있었다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악업의 반. 아니, 그 이상이 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보고, 모든 것을 예측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생각했다.
"할아버지, 안 드셔요?"
묘하게 부드러운. 아니,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말하며 엉겨붙는 능파에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하고 그녀가 내미는 숟가락의 음식을 받아먹었다. 양 옆은 물론이고 정면까지 살의가 가득한 눈초리가 날 찔러댔다. 유일하게 아무런 상관도 없는 누님은 여전히 아저씨처럼 호탕하게 웃어재끼고 있었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오른팔이 작살난 것은 내가 자초한 일이니 그렇다치더라도 회복이 늦어진다는 것은 말이 안됬다. 호지도 돌아왔으니 손뼈가 부러진 것쯤은 하루 이틀이면 충분한 것이다.
서, 설마 능파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건가!
"크윽..."
시선을 누님에게로 던졌다.
오늘이 되기 전까진 누님이 나에게 밥을 떠줬었다. 연적이 아닌 사람이니 다들 납득했고, 며칠 간은 가볍게 넘어갔다. 그런데 설마 능파가 누님도 꼬셨을 줄이야.
내 등에 찰싹 달라붙어서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등에서 느껴지는 체온과, 앞에서 느껴지는 냉혹한 추위에 나는 감기가 들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 맛 없나요....?"
"아니, 무지 맛있어."
마치 버림받는 강아지 같은 얼굴로 말하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대답해버렸다. 완전히 자신의 노림수에 넘어온 것이 기쁜듯,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숟가락을 내밀었다.
빌어먹을, 맛있긴 진짜로 맛있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빠!"
드디어, 이 순간이 온건가.
"엄마. 할아버지는 지금 아침을 드시고 힘을 보충해야 한다구요?"
호지의 부름에 대답하려한 나였지만 능파의 빠른 선공에 가로막혀버렸다. 능파의 반박에 나로 향하던 호지의 도끼눈이 능파에게로 향했다.
"너너너너, 너도 마찬가지야! 어, 어째서 이, 이런 상황이!"
기가막혀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호지를 향해 능파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내가 보기에는 흑심이 가득한)으로 대답했다.
"그야 저도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호지는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호지는 능파를 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고마운 조언자정도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리적 제재를 가할 턱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어, 어째서!? 아빠는 얼굴도 별로고, 약하고, 매일 같이 쓰러져서 마음 고생만 시키는데!?"
날카로운 말들은 그대로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힌다. 정작 그 말을 받는 당사자는 멀쩡한 것이 왠지 분했다.
능파는 그 때 내가 능파에게 했던 말의 대답을 똑같이 입에 올렸다.
"그렇기만 한 사람이라면 엄마도, 다른 사람들도 할아버지를 좋아할리가 없잖아요?"
호지가 침묵했다. 여기서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간 자신의 마음조차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호지도 알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감각이 어긋나는 왼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입을 열었다.
"능파야, 이제 적당히...."
쑥.
숟가락이 지체없이 내 입술을 파고 들어 목구멍에 처박힌다. 목젖을 강타당한 나는 그야말로 소리없이 아우성을 질렀다. 그런 나를 능파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버려둔체 호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향하는 눈빛이 아닌, 적을 향한 눈빛. 아니, 그것과도 조금은 달랐다.
마치 짜증나는 어린애를 바라보는 것 같은 눈이다.
"저, 솔직히 엄마가 짜증나요."
폭탄선언. 심지어 웃고만 있던 누님조차도 웃음을 삼키고 눈동자를 굴렸다.
느, 능파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나는 침만을 삼키는 수 밖에 없었다.
능파가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궁의 마음을 풀어냈을 때 그녀는 그다지 증오하지는 않는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것은 확실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텐데 저런 말을 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짐작가는 것이 없다.
대답을 못하는 호지를 향해 능파는 먼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건, 이해해야 되요.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매력이 있죠. 그러니까 좋아해도 별 수 없어요.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요연이나 슈도 이해하고 있는 바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혈투가 일어나도 한참 전에 일어났을걸요?"
당사자로서는 상당히 부끄러운 말이었지만 능파의 말에는 동감하는 바였다. 서로 좋아한다고 모임까지 가졌다는 것 같던데 싸움이 안난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그리고, 나는 능파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챘다.
"하지만 엄마는요? 차라리 자궁의 마음에 속박 되었을 때가 더 어른스러웠어요. 마치 애처럼 자신의 마음만을 강요하고, 강요해서. 사막에서 할아버지를 죽을 뻔하게 만들었던 건 엄마가 아니었나요?"
검과도 같은 날카로움을 가진 말이 호지의 가슴을 꿰뚫었다.
"아, 아니야..! 아빠는, 그 때 어쩔 수 없이....!"
"아니요. 당시의 할아버지는 엄마의 질투로 제대로 사고할 수 없었죠. 아마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광진 육식을 쓰는 일은 없었겠죠."
아주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는 말이기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했다. 호지 또한, 대답하지 못 했다.
"물론, 질투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것이 존재함으로서 보통은 사랑을 자각하죠.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나요? 연적에게라면 모를까, 사랑의 대상에게 그런다는 건 웃기는 일이죠."
호지는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걸려 지금 당장이라도 뚝뚝 흘러내릴 것 같다. 능파는 그런 호지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직시하면서도 날카로운 말을 서슴지 않고 계속했다.
"예, 뭐, 거기까진 어쩔 수 없었다고 하죠. 전화위복이랄까 힘도 강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 전에 빙룡성에서, 착각이라고는 하지만 슈와 맺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그 때의 엄마가 한 생각이 지금의 여기에 있는 모두의 생각과 같나요?"
"으.... 알아. 알지만..... 싫은걸.
"그런 말보다 할아버지에게 해야할 말이 있지 않나요?"
호지가 고개를 들어 날 본다. 어린애의 티가 조금 벗겨져서인지 옛날과 그리 다르지 않은 얼굴임에도 성숙한 분위기가 묻어나왔다. 그런 호지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를 굽혀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미안해, 아빠. 그 때의 일은.... 나도 어떻게 된 것 같아서...."
우물거리고 있었지만 호지가 하고자 하는 말은 충분히 나에게 전해졌다. 나는 아직도 입에 물려있는 숟가락을 테이블에 뱉어내고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단다, 호지야. 그것으로도 충분해."
나는 시선을 돌려 뒤에 메달린 능파를 보았다.
"너도 만족했지?"
능파는 내 등에서 떨어져 용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호지의 목에 감겼다. 그리고 입을 벌려 호지의 코를 콱 물었다.
그 행동이 공격이라기보다는 그저 애정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이자리에는 없었다.
"저도 미안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린 아니었지만 심하게 말했으니까요."
"아, 응, 괜찮아."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의 토대가 드디어 만들어졌어요."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고, 나도 의문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전에 계획이 되어있었던 것 같은 누님만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물을 마시고 있었다.
능파가 이런 결과를 원했다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그 외에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전혀 짐작하지 못 했다. 이것은 분명히 나에게 내키지 않는 일일것이다.
내 사고에는 조금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변덕'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전장 같이 극도의 이성으로 제어되는 공간이라면 모를까, 사적인 일에서의 사건은 사고속도가 조금 더디게 되는 것이다.
나는 침을 삼키며 뒤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모두가 동의하리라 생각하는 계획이라 입 다물고 있어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했어요. 일단 양해를 구하죠."
"궁금하니 빨리 해보십시오, 능파."
재촉하는 요연의 말에 능파는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이름하여, 데이트계획. 내용은 이곳의 여성 전부가 할아버지와 1일 데이트를 즐기는 거죠. 물론, 엿보는 것과 도청 같은 것들은 일체 금지.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것이랍니다."
능파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내일부터 하루씩 내 시간을 매매하겠다는 소리다.
물론, 싫다는 것은 아니고.
"에, 하루동안, 마음껏?"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슈가 되묻자 능파는 만면에 미소를 띄운체 고개를 끄덕인다.
"예, 마음껏요. 어차피 곧 우리는 이 나라를 떠나게 되요. 아마, 그 때부턴 사랑을 나눈다던가 하는 일도 힘들어지겠죠. 굳이 말하자면 오늘은 그렇게 되기 전에 모두가 즐기자는 취지에요."
나에게 힐끗 시선을 주는 능파의 말에 나는 난처하게 웃었다.
능파녀석, 내가 이 나라를 뜰 생각인 걸 어떻게 안 거지?
"어쨌든.... 그러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남았어요."
"...중요한 거? 뭔데?"
목에 감긴 능파를 풀며 호지가 묻자 능파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올라갔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능파에게서 검은 오라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순서죠. 데이트 순서. 아마 할아버지의 애정도 순위를 알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일 것 같지 않나요?"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슈는 물론이고 모두가 서로를 견제하며 날 한쪽 눈으로 힐끗 거린다. 나는 고민했다.
애정도 순으로 내가 정할 턱이 없다. 그것은 능파도 알 것이다. 단지 능파는 이 데이트 계획에 날 옭아맬 생각인 것뿐일 것이다.
꽈아악.
의수라는 특성상 아프지는 않았지만 왼손에서 심상치 않은 압력이 느껴졌다.
"요, 누구야?"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빠져나갈 구석을 마련하는데 애를 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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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이젠입니다.
다음부터는 데이트편..... 이 아니라 과거편. 특별편은 아니고 '그녀'가 옛날 이야기를 조금 읊을 뿐이지요.
그리고 현재 비축분이 역습편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내가 쓴 부분을 보신다면 여러분은 "어!?" 하고 얼이 빠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그랬으면 좋겠군요. 다음에 또 봅시다.
추신. 시험기간에도 올릴 수 있는 기적의 소산, 비축분에 찬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