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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혼잡스러운 지상의 모습을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 상태라 하더라도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발 아래의 정경을 간섭하지 않고 구경만하면서 레플리카들과 병사들의 상황등을 열심히 살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레플리카들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는데 그들의 움직임은 역시나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나 할아버지의 생각대로네요.]
"그래. 이것으로 하나의 의문점과 중요한 것 하나가 처리 됐어."
귀에 부착한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능파의 목소리에 나는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한번 레플리카를 내려다보았다.
레플리카들은 확실하게 건물 같은 것들에 공격하는 것을 피하면서 병사들에게 대응하고 있었다. 오히려 유운의 병사들이 부순 기물들이 더 많을 것 같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가까운 곳에 있는 인간보다도 병사에게 공격을 집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레플리카들이 '강한 자를 우선시해서 파괴하라'라는 명령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다. 그리고 그것은,
['애초에 이 전쟁에서 이길 생각이 없다'는 거죠?]
"뭐... 그렇지."
내 생각을 앞질러가는 능파의 말에 나는 쓰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능파는 기분 나쁜 것처럼 혀를 찼다.
[이유는 짐작가지만, 그건 할아버지의 죽음이 동반되어야 하는 거니까 안되죠.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일이에요.]
능파의 말에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능파의 말대로, 아마 카타스트로피는 '전쟁에서 이길 생각이 없을 것이다'. 아니, 카타스트로피의 대부분이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차라리 고개 숙이고 치우회에 들어가는 편이 몇 배는 더 낫다.
아마도 카타스트로피에서 일부, 케이슨(따로 더 있을지도 모른다)이 전쟁에서 반드시 지고 싶어하는 인간일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정보가 모두 옳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냥 그렇다고 넘기기에는 불안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애초에 어째서 한쪽이 무너져야할 필요성이 있는 거지? 양쪽의 누가 우위에 서야 하느냐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아. 그랬다면 인간말살 같은 주장을 내놓지 않았겠지.
...인간말살? ...인간?
"잠깐, 뭔가 떠오르려고 했는데..."
중요한 키워드, '인간'. 그것이 내 머릿속을 맴돌면서 이정도도 모르냐고 비웃는다. 나는 열을 올리면서 답을 쫓지만, 가까이 가면 갈 수록 점점 흐릿해지기만 한다.
"크윽...!"
조금만 더하면...!
[그런데 정말이지 인간말살이라니, 참 웃기는 표어 아닌가요? 아무리 미사일 같은 강력화기가 있어도 인간은 '매우 약한데' 말이에요.]
"아아아!"
[...할아버지? 에휴, 또 시작이네.]
되물어오는 능파의 말조차 무시한체, 나는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깨달았다. 모든 조각들은 한군데 모여서 답을 만들었다. 이것으로 단 하나의 의문을 제외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내가 모르는 것. 즉, '이유'를 모르겠다.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좀 더 파고들다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치지직... 치직.
전자음이 귓가를 어지럽히면서 머리를 흔든다. 새롭게 떠오른 의문에 대응하는 것처럼 통신기에서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 오빠?]
"소누냐? 뭔 일 있어?"
[그게.....]
그녀의 말을 들은 즉시, 나는 게으름 피우는 몸을 일으켜 그녀가 있는 장소로 쏘아져 날아갔다.
광진의 패널티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소누가 있는 장소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어간 나는 가면을 쓴 체로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이고 있는 세현을 볼 수 있었다. 세현은 왼쪽 눈이 완벽하게 부서진 체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세현, 세현은 어떻게 된 거지?"
여신의 모습이 음각된 가면을 뒤집어 쓴 소누에게 물었다. 소누는 마치 가망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대답을 하라고 추궁하려는 나에게, 대답은 그 옆에 있는 외소한 소녀에게서 나왔다.
"날, 지키려다가 저렇게.... 미안해."
난 시선에 분노를 담아 죽일 듯이 그녀를 노려보았다가, 이내 머리를 쳤다.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린. 아마도 세현은 내가 부탁했던대로 린을 설득하려고 쫓아다니다가 이런 일을 당했으리라.
남의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탓.
"제길.... 어째서 이렇게....! 이녀석은 그저...!"
내 부탁을 들어주려고 왔을 뿐인데.
남자로서의 체면이고 뭐고 간에 눈물이 솟아올랐다. 위험도가 낮은 일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맡긴 일이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라는 안일한 내 생각에 저주를 퍼부었다.
"고...요..?"
갑작스레 불린 이름에 나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냈다. 세현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쓸쓸한 눈으로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래... 왔..어? 하하하, 미안해. 나, 아무 것도 하지 못 했어..."
나는 세현의 옆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는다. 따듯해야할 그 손이 마치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다.
"아니, 아니야. 넌 잘해주었어. 그러니까... 죽지마."
내 말에 세현은 '거짓말'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하면서 그 다운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난 말이야... 처음에 네가 살인자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솔직히 기뻤...어. 나와 같은, 죄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차가운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때... 강도 덕분에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신 적이 있었어.. 그 때 갓난아이였던 동생과 함께 옷장에 숨었지... 그 때, 아버지는 나에게 '동생을 지켜주렴'이라고 말하면서... 죽었어."
그의 오른 쪽 눈에서 물방울 하나가 도르륵 소리를 내면서 볼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들켰어. 그리고... 칼이 날아왔는...데, 난 동생을 방패로 삼아 상처 없이 살아났지. 그 때도....! 지금도....! 난 아무도 지켜내지 못 했어..!"
과거의 트라우마를 읊으면서 꺼져가는 세현의 생명의 빛. 나는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그의 손을 꽉 쥐었다.
"아니야, 넌 지켜냈어. 아무런 잘못도 없어. 그렇게...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어."
"하, 하하하... 넌 정말로 좋은 녀석이야. 처음에는 정말 대책 없는 살....인마라서 날 죽여주길 바래기도 했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추하게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세현은 고독하게 말한다.
"요. 난.... 죽는걸까?"
"아니, 넌 반드시 살 수 있어. 그런 소리는 하지마."
"하하하.... 역시 넌, 거짓말쟁이야."
세현이 허공으로 팔을 뻗는다. 그의 손에 닿는 것은 공기 뿐인데도 그는 마치 무언가라도 잡은 것
같은 행동을 해보였다.
"요, 내가 죽으면... 우리 할아버지를 부탁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분이니까 귀찮지는 않을거야."
"멍청한 녀석, 넌 안죽는다니까? 네가 직접 부양해."
"아니야, 난 죽어. 의사를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니라 묘하지만 알 수 있어."
점점 목소리가 뚜렷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손에서 느껴지는 생기의 빛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는 쓸쓸한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부탁...할 께."
그리고 눈을 감는다. 들어올린 손도 힘 없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나는 잠시만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누를 보았다.
"살아날 수 있겠지?"
"...힘들어요. 눈의 신경을 타고 독이 들어간지라 뇌에 직접 타격을 받았죠. 가면까지 써서 버티기는 하고 있지만 아마 곧...."
"그럼 버텨."
"길어봐야 하루인데도요?"
짧다. 이 전투는 족히 사흘은 갈만한 전투다. 마지막 날은 잡병들의 처리니 뺀다고 쳐도 이틀. 회복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 뇌의학에 대해서도 능통한 사람을 구해야 하는 데 그 전에 세현이 죽은 거라는 건 당연한 사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다. 나에게는 최고, 최대의 패가 남아있다.
"그럼 그 동안 버텨. 운 녀석을 부르면 어떻게든 되겠지."
나와 우를 포함한 소꿉친구 삼인방 중 그녀석만큼은 전투능력이 없었지만 정신 조작이라는 능력이 있었다. 아마 뇌쪽에도 유능할 것이다.
친구의 모습을 뒤로하며, 나는 빠르게 그들이 있는 건물을 빠져 나왔다. 통신기에서 치직하는 잡음과 함께 능파의 말이 전달됬다.
[...어쩌실 생각이에요?]
아마 통신기가 계속 연결되어 있었던 듯, 능파가 짤막하게 묻는다.
"리스크를 감수하겠어."
[리스크? 설...]
나는 단 한마디를 입에 올리곤 귀에 있는 통신기를 땠다. 능파가 뭐라 말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계속 들었다간 결심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었다.
콰직.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고 부숴버린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 쪽지 하나를 꺼내들어 옆에 있는 리토에게 건네줬다.
"...뭐야?"
"이것대로 행동해."
리토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다짜고짜 명령질...."
"들어주면 우리나라의 마법을 배울 수 있도록 주선해보지. 이래뵈도 왕이니, 불가능하지는 않을테고. 물론, 성과가 있을 경우지만."
쳇, 하고 리토는 혀를 찼지만 딱히 거부감 없이 받아드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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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등장~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군요.
재밌길 빌겠습니다.
그런데, 세현이 '누구'인지 아신분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