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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197화 (19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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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투두두두두두!

빗발치는 탄환의 목소리가 레플리카들이 부숴지는 소리와 비명과 합쳐져 기묘한 음색을 허공에 흩뿌렸다.

자신이 싸울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속도로 섬멸되어가는 레플리카들을 보면서 하여는 그야말로 멍하게 그 광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안 맞았다고는 하지만 레플리카가 그리 약한 것은 아니었다. 방어력만큼은 타격시에 걸리는 느낌으로 얼마나 단단한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 은빛의 탄환은 그저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상당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실력을 가진 사람은 도대체...?

"간만에 보는 군요, 라고 말해도 제가 누군지 기억하시나요?"

CEO들의 회의에서 빠져나오기라도 한 것 같은 깔끔한 정장차림새의 남자는 오른 손에 들고 있는 은빛의 총신을 어깨에 걸치면서 그렇게 물었다. 하여는 은빛 탄환으로 일으켜진 모래바람을  걷어내고 자세히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확실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까지는 기억해냈다. 하지만 딱히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인물이 아니었던지라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여가 자신의 이마를 누르며 기억을 상기 시키고 있을 때, 남자는 '휴우'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민초입니다. 교주님의 명령으로 처음 요씨를 불렀을 때 마중 나갔지요."

"맞다, 백성 오빠구나!"

"배, 백성...."

민초(백성)는 하여의 친애가 들어간 부름에 난처한 얼굴로 뺨을 긁었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별명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키지 않는 별명이었다. 딱히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내기에도 애매한지라 민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

"오빠, 뒤에!"

하여의 외침에 민초는 뒤로 시선을 줬다. 그의 뒤에는 지금까지 죽여왔던 레플리카보다 진한색을 가진 것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소용없어."

투다다다다닷!

고동색의 레플리카가 전신에서 피를 쏟으면서 바닥에 허물어진다. 총소리, 시신에 남아있는 수십개의 구멍. 그 두가지로 하여는 레플리카가 총을 맞고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초는 단 한번도 손에 들고 있는 총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물론, 방아쇠 또한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레플리카는 전방위에서 총이라도 맞은 것 같은 상처와 함께 쓰러졌다.

이해 할 수 없는 현상. 그것의 대답은 민초에게서 나왔다.

"일단은 말해두도록 하죠."

그가 하여가 있는 곳까지 발을 물린다. 그리고 어깨에 걸친 제작사를 알 수 없는 라이플을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늘어뜨렸다. 하여는 그 총신에 새겨진 무늬를 보고 입에 담았다.

"까마귀...?"

싱긋, 하고 민초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맞습니다. 제 총의 이름은, 은오포(銀烏砲). 컬러나이츠의 8번째, 실버입니다."

"컬러...나이츠으으으~~~!?"

끽해야 유운천의 숭례문 소속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신과 같은 소속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하여가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처럼 입을 열자 민초는 웃음을 지우고 끝 없이 밀려들어오는 적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힘을, 비축해 두십시오."

그의 장점은 압도적인 공격력과 속도다. 언뜻보면 완벽해 보이는 장점이지만, 그것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다수는 물론이고 일 대 일의 적을 상대할 때도 유용한 그의 유일한 단점은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장난스러운 컬러나이츠의 '그린'이 말하기를, '조루'. 즉, 오래가지 않는 단발성 능력이란 이야기다.

아마 길면 3분으로 더이상의 공격은 불가능 할테지. 하지만 그런 사정을 하여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고(저 말주변이 없는 여아는 조루 오빠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말할 시간도 없었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가는 탄환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한계에 봉착해 간다는 것을 느낀 민초가 하여에게 눈짓했다.

"엑, 설마... 얼마 못 쓰는 거에요?"

"뭐.... 그렇지요."

아픈 곳을 찔러오는 말에 민초가 쓰게 대답했다. 하여는 날카롭게 한마디를 날렸다.

"조루."

푸욱, 하고 칼이라도 꽂힌 것 같은 소리가 민초의 귓가를 울렸다. 충격을 받은 민초에게서 시선을 땐 하여가 한숨을 내쉬며 레플리카에게 맞았던 배를 쓰다듬었다.

"이 상태로 싸우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백성 오빠가 다시 싸울 수 있을 때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그리 큰 상처가 아니니 싸움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밀리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 그리 오래 버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가만히 서 있을 수만은 없는 지라 싸우기 위해 하여가 일어섰다. 그 때, 민초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더이상 나설 필요는 없어진 것 같습니다."

"...? 무슨 소리에요?"

"보면 압니다."

민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길쭉한 것이 떨어져 내리면서 레플리카들의 수를 차근차근 줄여나간다. 민초의 탄환보다는 느리고 위력도 없는 '화살'이라서 그런지 많은 수의 레플리카들이 맞고도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레플리카들도 이내 초록빛으로 일렁이는 두개의 발광체에 얻어맞고 바닥에 몸을 뉘인다.

익히 알고 있는 한 사람과, 일면식도 없는 또 다른 한 사람. 그 중에 하여가 부른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쪽이었다.

"춘운...언니?"

"간만이에요. 저번에 아가씨의 쇼핑에 수행 갔을 때 이후로 처음이네요."

자신이 귀에 꽂고 있는 통신기의 제공자, 경홍의 메이드인 가춘운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하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열심히 주먹으로 레플리카들을 두들겨 패던 남자도 어깨를 으쓱하면서 다가왔다.

"아, 하여는 모르죠? 일단 소개부터 할께요."

크흠, 하고 춘운이 목소리를 고르게 하곤 손으로 먼저 자신을 가리켰다.

"컬러나이츠의 두번째, 주황학궁(朱黃鶴弓). 오렌지랍니다. 그리고 이쪽은..."

자신을 가리키던 손을 옮겨서 춘운과 비교적으로 상당히 늙어보이는 남자를 가리켰다.

"이쪽은 컬러나이츠의 네번째, 녹서권(綠犀拳). 그린, 공위민이죠. 겉이 늙기는 했지만, 분명히 저와 동갑이랍니다."

"겉 늙었다니. 최소한 연륜이 있어보인다고 해 줘."

춘운이 20대 초반이란 것을 알고 있는 하여는 입을 벌렸다.

위민은 겉보기에는 대략 40대다. 조금 적게 잡아도 30대 후반. 그런데 실재나이는 20대 초반. 겉 늙은 것도 정도 껏이지, 완전 조로증 수준이다.

하여는 놀란 입을 억지로 다물게 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에,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이곳에 4명이나 몰려 있어도 괜찮은 거에요? 자칫하면 사상자가..."

"그쪽은 신경 쓸 것 없어 보이던데."

위민이 하여의 말을 잘라먹으면서 대답하곤 엄지손가락으로 학교 밖의 하늘을 가리켰다. 그곳은 '환상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은빛의 용이 불을 뿜으면서 지상의 괴물들을 토벌하고 있었다. 게다가 영왕이 불러낸 병사들이 사용하는 마법들로 인해 숫자는 착실히 줄어들어간다.

"소유에 채봉까지. 컬러나이츠 전원이 집결 한데다가 저 유령병사들은 그리 약하지 않아. 숫자에서 밀려가지고 지금 이렇게 됬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가 유리해지겠지."

위민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자 춘운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바보. 블랙은, 돌아가셨잖아."

"아아. 원래 선생님은 '대역'이였으니까."

하여가 이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레플리카들을 처리해가는 위민과 춘운. 벽에 등을 기댄체 숨을 고르던 민초가 하여의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말했다.

"초대 블랙은 본래 채봉 누나, 그러니까 윤 누나의 양아버지 였습니다."

그러고보니 담임 선생님은 양녀였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라는 대답에 민초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예, 맞습니다. 누나는 양녀였죠. 아, 그렇다고 그 사람이 딱히 특이한 사람이었다던가 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일의 발단은 소유였죠."

"소유가요? 어째서?"

사귀는 사이라더니 담임 선생님과 사고를 쳤군요?...하는 뒷말을 뭉텅 잘라먹었으나 하여가 묻고자 한 것은 제대로 전달된 듯, 민초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고등학생일 때, 소유는 우리를 '후인계획'이란 이름 하에 포섭했습니다. 그것이 '1기' 컬러나이츠들."

"...1기, 라는 건..."

언젠가 요가 말했다. 컬러나이츠라는 것은, 사망자가 있을 것이라고. 솔직히 지나가는 이야기로 한 것이었고 당시에는 하여 스스로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터라 느끼지 못 했지만 민초의 말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컬러나이츠는 알 수 없는 사건을 겪었다고.

"컬러나이츠에서 물갈이를 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건 즉, 사망자를 나타내죠. 당시 돌아가신 분들은 세명. 한분은 채봉 누나의 아버지, 다른 한분은 당시 금호도의 사용자인 담임 선생님, 또 다른 사람은 제 누님이었지요."

"...어째서, 돌아가신거에요?"

"카타스트로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싸움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 때만의 '적'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 세분의 희생으로, 우리는 이길 수 있었지요."

아무 것도 되묻지 못 하는 하여를 향해, 민초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두분이 돌아가시고, 컬러나이츠에게는 대역이 필요했습니다. 그 적은 컬러나이츠의 본 기능과는 전혀 관련없는 적이었으니, 충원이 필요했던거죠. 하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던지라 일단 공석을 메울만한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우리가 다녔던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습니다. 그분은 사정을 알고 있었거든요."

슬플만한 이야기임이 분명한데도 담담하게 사실만을 나열하는 민초에게서 하여는 어렴풋이 공포를 느꼈다.

눈 앞의 대상은 마치 감정이 없는 기계를 상대하는 것 느낌이었다. 진짜 기계인 앤트로아와 만났을 때보다도 더. 게다가 자신의 혈육이 죽었다는 소리를 할 때도 일말의 분노는 물론이고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분이 전선에 서지는 않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일보직전이었던 분이기도 했고, 당시에는 삼왕도 모이지 않았으니까요. 지금 둘이 하는 이야기는 그것입니다. 근래에 선생님이 돌아가셨거든요. 물론, 천수를 누리시다가."

민초는 난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것에서도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여는 민초에게서 시선을 돌려 전투가 한창인 곳을 바라보았다.

"...이기죠, 백성 오빠."

"예에.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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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누 구출작전 이후로 존재감이 없던 민초의 등장입니다.

친구도 물어보길래 말하는 것입니다만, 민초가 센 건 컬러나이츠 한정.

검주 최약인 챠이에 비할바도 안됩니다.

여하튼, 컬러나이츠 편(?)이라고 할만한 부분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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