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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195화 (19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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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높은 건물과 길가에 길게 뻗어 있는 가로수를 타 넘으며 레플리카를 한마리씩 처리하다보니 하여의 몸은 어느새 선수고에 닿아있었다.

이름 없는 동네 뒷산에 맞 닿아 있는 학교의 특성 탓에 길가에서 학교로 향하는 길목은 경사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분투하고 있는 영왕의 병력들 덕분에 학교에는 아직 레플리카의 군세가 아직 닿지 못한 상태였다.

레플리카들이 침범한 영역에 선 하여는 옆에서 달겨드는 레플리카를 오른손의 청접륜으로 파리라도 쫓는 것처럼 사선으로 양분하고는 그 륜의 날끝으로 이마를 긁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살이 벗겨졌겠지만 하여는 보통 인간이 아닌데다가 적절하게 완급을 주어 살이 벗겨지는 것을 피하고 가려운 곳만을 정확하게 긁었다.

"이거 우짜지...."

나른한 한숨과 나오는 말과는 다르게 하여의 팔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레플리카들을 베어냈지만, 하여는 고심했다.

레플리카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움직이는 샌드백'에 지나지 않았다. 요가 말했던대로 '시간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임을, 아주 잠깐의 전투였지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플리카가 몇백마리가 덤벼들어도 이길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기가 갖는 특성과 지금까지 싸워온 방식이었다.

하여는 간단히 말해서 '돌격조'다. 지키는 싸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녀가 팔을 휘두르면 적을 분쇄할 수는 있지만 적이 밀고 들어오면 자신이 지키는 것은 부서질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이렇게 비대한 수호물이래서야.

"비장의 무기까지 전부 꺼내도 될까 말까...."

하여는 천천히 자신이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률을 생각하다가 자신의 뺨을 찰싹하고 약하게 쳤다.

"내가 요도 아니고 이런 생각해서 뭐해."

자신은 그저, 할 수 있는데까지 싸우면 그만인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하여의 발놀림에는, 망설임은 남아있지 않았다.

빠르게 발돋움하자 다리는 용수철처럼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빠르게 학교까지 몸을 날려보냈다. 하여는 자연스러운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하곤 뒤에 있는 학교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수업은 이미 중지하고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병사와 레플리카들의 전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일부(일부라고 하기에는 많은 수지만)는 자신에게 시선이 향해 있는 것을 느낀 하여는 망토의 깃을 세웠다.

낯을 별로 가리지 않는 하여이지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기술을 사용하고 사람들에게 내보인다는 것은 역시 조금 부끄러웠다.

"...여...!"

부끄러움을 감출 요량으로 등을 돌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레플리카를 마주보던 하여는 자신의 등 뒤로 날아드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 뭐지?"

무슨 소리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 '소리'. 아니, '부름'에는 보지 않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는 자신이 있는 곳까지 들릴만큼 큰 소리로 말한 탓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을 보았다.

그리고 이해했다. '그녀'가 뭐라고 했는지를.

하여의 몸이 바닥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솟구쳐올라 자신에게 말한 여학생이 있는 난간으로 뛰어들었다. 창에 모인 학생들이 깜짝 놀라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이야아~ 간만이야. 문자로는 그저께까지 만났지만, 얼굴을 마주 보는 건 한 반년만인가?"

익살스럽게 말하는 하여의 무릎을, 마주 선 여학생이 쿡 찌른다. 하여가 순간 균형을 잃어 팔을 파닥거리다가 창틀을 잡고는 자세를 바로했다. 그렇게 하여가 조용해지자 그녀는 하여를 향해 말했다.

"이이이이,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 그 복장은 또 뭐고? 영화 촬영은... 아니겠지."

어린애 같은 현실도피는 그만두겠다는 것처럼, 그녀는 말했다. 하여는 익살스럽게 웃음을 띄운 얼굴에서 '익살'을 지웠다.

간만에 보는 친구의 혼란스러운 얼굴에 장난스럽게 대하고 싶지는 않았을 뿐더러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장난으로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뭐어... 그렇지."

"너무해. 이런 일은 살짝 말해 줄 수도 있었을텐데."

"하핫, 미안 미안. 그런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설사 말했다 하더래도 보여주기 전까지 미친놈 취급이나 당하지 않았을까.

친구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하여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여와 그녀의 친구만의 말소리만이 오가는 가운데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하여의 친구는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이거 어떻게 되가는거야?"

친구의 질문에 가볍게 대답하려던 하여는 잠시 멈칫했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현재 상황을 말해도 되는지의 여부다.

이 전투가 확정되고 난 뒤, 요는 '자신이 받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각자의 판단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견 간단해 보이는 말이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 봉착해서야 하여는 선택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냥 말해버릴까 싶기도 하지만 뒤에 요나 유운 같은 수뇌가 어떻게 처리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말하기에는 조금 그랬다.

곰곰히 생각해보던 하여는 손뼉을 짝 소리가 나도록치곤, 알아도 상관 없는 선까지 말하기로 마음 먹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서... 괴물들과 마법사들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

하여의 말을 들은 그녀에게서 순간 의심이 빛이 번뜩였지만 이내 잦아들었다.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았더래도 지금 이 상황을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의심하고 믿지 못 할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이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라 지금 교실에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 모두 같으리라.

그녀는 새롭게 질문을 던졌다.

"네 쪽이 마법사고?"

"물론. 그런데 너 무지 침착하다?"

묘하게 침착한 그녀를 향해 하여가 되묻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하반신을 가리켰다. 하여가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자 폭풍 때의 풍향계만큼이나 떨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상반신이 굳어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자신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친구가 재차 물어왔다. 하지만, 하여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함으로서 대답을 회피했다.

거짓말으로라도 반드시 지킬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현재 상황과 자신의 능력 상성을 따져보면 그런 거짓말조차 용납하지 못 할만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답을 하지 못한 하여는 등을 돌려 바닥에 사뿐히 내려섰다. 바닥에 발이 닿아도 먼지 하나 흩뿌려지지 않았다. 하여는 오른손에 들린 청접륜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에게 보내는 필승의 신호처럼 보이기도 했고, 벌써 교문까지 들어닥친 레플리카에게 향하는 위협으로도 보였다. 그것은 친구의 질문과 적의 돌격에 동시에 답하는 하여만의 방식이었다.

"지지 않아."

질리가 없었다. 그녀의 전력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입에 그 사실을 올리는 것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친구와 대화하면서, 친구의 불안을 느끼면서. 더더욱 불안감은 커지기만 한다. 그것을 밀어내기 위한 방법. 그것을, 하여는 알고 있었다.

"컬러나이츠의 다섯번째, 블루이자 괴력을 내는 강소의 주인이며 망령의(亡靈衣)의 주인인..."

그것은 모두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들.

"소하여다. 너희들 모두, 여기서 베어주겠어."

담담하게 자기를 소개하는 하여의 륜이 번개조차 갈라버릴 것처럼 번쩍 거리자 좁은 교문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온 레플리카들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아니, 의미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비명을 높이 소리질렀다.

하여의 목을 감싸며 뒤로 긴흑발처럼 뻗어내린 망토가 레플리카들의 기세에 강풍을 만난 것처럼 크게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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