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86화 (186/340)

0186 / 0340 ----------------------------------------------

정체

요즘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아무리 내가 생각하고 생각해서 답을 도출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답안지를 보지 않고 이것이 정답이라고 확신 할 수 있는 수험생따위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답을 알기 위해선 나 스스로가 탈락(죽음)이라는 답에 가장 가까이 가야만 한다. 그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내가 나아가는 길은 그런 것. 너무나도 위험한 길이다. 하지만, 그런 길에 변수들이 널리게 된다는 것은 솔직히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변수는....

따악.

단단한 것이 내 정수리에 떨어지는 것을 인식한 나는 머리를 싸맸다.

"너, 창밖의 뭘 보고 있니?"

슬쩍 시선을 돌리자 교재를 몽둥이처럼 둘둘 말아서 어깨에 걸치고 있는 생물 전공의 여선생님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수업중이었지."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바깥에 시선을 주고 있었으니 맞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물러나자니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조금 걸린다.

슬쩍, 입꼬리를 말아올림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르켰다.

"앗, 저기 통닭이 날아간다!!"

적절한 침묵. 그리고 잠시 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한 보충의 마지막 교시가 끝난 후, 슈가 내 곁으로 다가와서 쿡쿡하고 귀엽게 웃었다. 4교시가 끝나기 직전에 벌인 나의 기행이 어지간히도 웃겼던 모양이었다. 나는 참지 못 하고 계속 웃는 슈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슈는 맞은 것도 기분 좋은지 헤헤하고 웃다가 손뼉을 치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요. 요연은 어디 있어? 안 보이던데."

요연은 기본적으로 흥미가 없어서 보충수업 시간표를 나와 똑같이 설정해 두었다. 슈도 나랑 시간표가 비슷(이유는 다르지만). 슈로서는 내가 학교에 있는데 요연이 빠진 것이 의아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요연이 학교에 온 것은 2교시 때부터 였다. 능파와의 말싸움에서 패배해서 씩씩거리는 요연에게 나는 명령을 내렸다.

'한세현의 동태를 살피고 보충수업이 끝나면 포위하라'라는 것. 금와는 아직 능파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나 관련 일로 말걸 순서가 아니었단다)에 능파에게 보냈다.

그 사실들과 세현의 이상한 점을 토대로 적절하게 설명하자 슈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세현이... 마법사? 그렇지는 않을텐데... 요, 잘못된 건 아니야?"

"가능성은 있지만..."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글을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간만에 돌아온 나의 얼굴을 보면서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것도 며칠이나 나에 관한 글을 지워 왔으면서. 보통 인간이라면 최소한 꺼리는 기색도 조금씩 있어야 했다.

그러니 마법사. 혹은 그에 필적하는 무언가일 것이다라는 예상. 이레귤러일 가능성은 한 없이 낮으니 거의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믿기지 않는데..."

살짝 삐진 것처럼 중얼거리는 슈의 목소리에 나는 작게 웃음보가 터졌다.

슈는 나 같은 급조된 마법사가 아니다. 혈통서까지 딸린 강력한 마법사다. 그런데 내 말은 그런 슈가 지금까지 못 느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니 조금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인 나의 주장을 누를만한 말도 없으니 소리없이 삐친 것이리라.

슬며시 손을 뻗어 슈의 허리를 감았다. 갑작스런 접촉에 슈가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싱긋 웃어주자 슈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아 진짜. 중독될 것 같아.

"으음. 개인적으로 내키는 광경은 아니로군요."

슈와 내 사이를 가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에 슈와 나는 황급히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시선을 돌려보니 창가에 모색심명이 경복궁의 해태상처럼 앉아있었다.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전혀 모이지 않는 것을 보아선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랐잖아. 어쨌거나, 능파는 뭐라든?"

"아가씨께서는 이미 포위를 끝 마쳤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참고 삼아 말씀 드리자면 지금 요연이 세현이란 소년을 학교 뒷뜰로 끌어냈습니다."

능파 답게 전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해냈다. 그런데 요연은 무슨 학교폭력이라도 행사하려는걸까.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표의 등을 팡팡쳤다. 인식장애가 펼쳐져 있는 탓인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내 안면 두께는 국어사전을 넘어서는 수준이라 어렵지 않게 무시할 수 있었다.

"자, 안내 부탁한다."

"예."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는 모색심명을 따라 학교 뒷뜰까지 발을 옮기자 뒷모습을 보이는 세현과 세현의 목에 백색의 아름다운 검신을 디밀고 있는 요연이 보였다. 나는 예상외로 급진적인 요연의 대응에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세현이 마(魔)의 관련자일 것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짐작이다. 일반인일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란 소리다. 그런데 칼을 꺼냈다. 그렇다면 세현도 검이 허공에서 뽑혀지는 광경을 봤을 터. 설사 보지 않았다 하더래도 최소한 요연이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현이 마술입니다란 소리로 넘어갈만큼 어수룩하지는 않을 터.

혀가 바싹 타들어갔다.

"손을 들어올리십시오. 천천히, 유치원생도 위협이라 느끼지 않도록."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손을 들어올릴뻔 했다. 내가 그런 공포심을 느꼈을 정도. 세현도 별로 저항하는 기색도 없이 팔을 들어올렸다. 마치 경찰과 그에 붙잡혀버린 도둑같은 광경이 되었다.

"첫번째 질문입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한세현. 한국이란 나라에 살고 있는 평범한 남고생이..."

카가가가가아앙!

백호검이 두자루로 변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검의 잔상이 세현의 목에서 빠져나와 바닥을 긁었다. 바닥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제가 묻는 건 당신의 진짜 정체. 요애께 방해가 되는 당신의 진짜 정체를 묻는 겁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베어버릴 것만 같은 살벌한 기세에 지금 나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세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난.... 정말로 평범한 남고생이야. 이 말에 거짓은 없다고, 맹세할께."

"맹세 따위는 가볍게 무너지는 겁니다. 믿을 가치가 못 됩니다."

나는 고개를 보이지 않도록 끄덕임으로서 요연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맹세는 언제라도 부서질 수 있고, 부숴버릴 수 있다. 신화에서 나오는 강제력을 가진 맹세라면 모를까 인간이 가볍게 입에 담는 맹세는 종잇장만도 못 하다.

세현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런 세현에게 더욱 더 윽박지르려는 요연의 어깨를 붙잡았다. 요연이 왜 방해하냐는 듯이 돌아보았다.

내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

욥.

솔직히 지금부터 몇편까지는 그리 재밌다고 하기에 무리가 있는 편이로군요.

어쨌든 열심히 즐겨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