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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182화 (18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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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자

리바이어던. 따로는 레비아탄이라고도 부르는 바다의 마수로 내가 사막에서 교전했던 적이 있는(직접 친 적은 없지만) 베헤모스와 짝이 되는 괴물. 루그로가 말하는 어투를 보아서는 팔대간부는 아니지만 카타스트로피의 일원인 것은 확실해보였던 마수이기도 했다.

그런 마수가 바다를 건너 남해에. 그것도 모종의 상처로 전력이 많이 삭감한 아쥴한테 찾아온 것이다.

지금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것인지 유운이 벌떡 일어나면서 허공을 손으로 찢어버렸다. 우리가 있는 고풍스러운 방의 모습과 바다가 언뜻 보이는 산호의 벽들이 보이는 모습이 이리저리 섞였다.

"갑시다. 지금 저만으로는 적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나도 와서 의도를 파혜쳐달라. 유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거절할 수도,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능숙히 머리를 끄덕이며 공간의 틈새로 발을 딛는 유운을 따라 나섰다.

여름에 보고 처음보는 아쥴의 용궁에 들어선 나는 왠지 모를 향수를 느끼며 주변을 샅샅히 살피면서 마력을 탐지했다.

당연하게도 아쥴 외에 강력한 마력이 감지되었다. 하지만 주변의 분위기, 상황, 용궁의 상태가 수상했다.

리바이어던이 습격했다면 최소한 용궁의 어딘가는 부서졌을 것이다. 분위기도 고무 되어 있을 것이고 주변에는 투기들이 산재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이상하네요. 일반적인 경계의 마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크라켄이 습격했던 것과 비슷한 수준 밖에 되지 않아요. 의도적으로 바꾼 것 같지는 않은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능파가 갑자기 나를 뒤로 밀쳐내면서 앞으로 유운을 밀어버렸다. 내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치채지 못 하고 두리번 거리고 있는 것도 잠시, 보이지 않는 복도의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

이윽고 발소리가 멎자, 거기에는 나도 잘 아는 한 꼬마아이가 있었다.

"....아쥴?"

"막 전화로 대화한 녀석에게 하는 말로 어울리지는 않지만 일단 '간만'이다. 리바이어던의 일로 찾아온 것이겠지?"

유운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자 아쥴은 손을 까딱하면서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자, 그녀는 먼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리바이어던이 찾아왔다....만, 상황이 이상해."

"어떻게 이상한 것인지 아시는지요."

아쥴은 자신도 확신하기 힘든 듯, 우물거리더니 툭 말을 내뱉었다.

"우리쪽에, 그러니까 치우회에 투항을 해왔다. 우호의 표시로 내 흉터를 가라앉히겠다더군. 솔직히 구미가 당기는 일이라 냉큼 승낙했더니 바로 치료해 줬어."

"....그거, 치료하고 싶다고 치료가 되는 상처였던가요."

일전에 소유와 아쥴의 대화를 들었을 때, 그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투의 뉘앙스가 있었다. 그런데 리바이어던이 찾아왔다고 대뜸 치료하다니.

우리나라의 마법 중 치유술은 발달하지 않았던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심하고 있을 때, 아쥴은 말하기 싫은 것처럼 혀를 찼다.

"내게 그 상처를 입힌 대상이 바로 리바이어던이다."

단호하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 나는 무리없이 이해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루그로도 리바이어던이 옛 전투 때문에 세가 많이 약해졌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아쥴과 리바이어던은 공멸했던 것이리라.

그렇게 내가 이해하고 넘어갈 쯤, 우리는 전에 아쥴과 처음 만났던 공간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곳에는, 보는 것이 불쌍할 정도로 처참하게 난도질 되어있는 용과 상어의 중간형태를 한 마수가 전신에 주문이 새겨진 쇠사슬을 감고 누워 있었다.

저것이 리바이어던이라고, 나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 쇠사슬 장식의 의미 또한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아쥴도 바보는 아니다. 이쪽을 낚으려고 강태공(케이슨)이 보낸 미끼(리바이어던)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푸른 피부의 상어머리에 녹용처럼 뒤로 뻗어있는 일각(一角)이 하늘로 치솟았다. 단순히 고개를 든 것이다.

"네가... 육왕?"

'저게 어딜 봐서 팔대간부를 패퇴시킨 왕이냐'하는 구체적인 사념이 담긴 목소리에 이마에 핏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능파도 그 기미를 느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리바이어던은 우리의 반응을 눈치챘는지 입을 열었다.

"실망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처지가 아니니 별 수 없으려나."

조금쯤은 사과의 말이 나오기를 바란 것은 내 잘못일까. 나오는 것은 직설적이고 단순한 비하뿐이었다.

나는 지금 리바이어던에게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일단 스스로 투항했고 저런 상처를 입을정도(짐작이지만)로 노력 했으니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광진 육식(즉, 내가 죽을 각오로 싸울 경우)이 아닌 이상에야 그의 말이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그러한 생각들로 그의 비하를 깡끄리 무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인사는 생략. 투항이유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자에 대한 예의가 없군."

그렇게 투덜거린 리바이어던은 말을 잇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인우(人牛) 프리아가가 들어오기 전에 존재했던 팔대간부 중 하나였다. 나름 실력에 자부심도 있지."

역시나 짐작한데로 리바이어던은 팔대간부 '였던' 모양이었다. 짐작이 들어맞기 시작 했으니 아마도 내가 예상한 스토리가 나열되리라.

"하지만 내가 약해지고, 강등되고 나서부터는 조금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종종 하극상을 벌이지 않나...."

기타등등 자신이 겪었던 수모를 입에 담는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언뜻 거짓말로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방은 오랜 경험을 쌓아온 자들이다. 쓸데없는 방심은 할 수 없다.

몇 분에 걸쳐 이야기하던 불평을 끝나자 리바이어던은 숨이 찬지 잠시 켁켁 거렸다. 이윽고 진정된 그가 말을 이었다.

"그, 그래도 카타스트로피는 전력이 굉장했거든. 어디서 만들어오는지는 모르지만 '레플리카'도 전력이 되고."

"레플리카는 뭐지?"

말을 자르며 그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는,

"인공생명체야. 사막에 5백기정도 데리고 갔다니까 알텐데."

그러고보니, 내가 호지들을 구하러 갔을 때 이상하게 생긴 괴물들이 나를 가로 막고 있었다. 광진 상태로 가볍게 쓸어버리기는 했지만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리바이어던이 화두를 본제로 바꿨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나올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육왕이 팔대간부 중 일곱명과 외주 케이슨까지 작살을 냈다길래 휙하고 빠져나왔지."

내가 예상한데로의 이야기가 나오자 흥미를 잃고 돌아가(유운에게 맡기면 알아서 할테지)려는 순간, 리바이어던이 덧붙였다.

"케이슨이 이번에 계획한 일도 마음에 들지 않고."

"....? 뭔데?"

리바이어던이 크으윽하는 신음소릴 흘리면서 말했다.

"한국의 공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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