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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그 두번째
찌르륵.
매미의 울음소리처럼 마력이 요동치면서 허공에 기이한 파문을 만들어냈다. 그 파문은 찰나에 수백미터나 뻗어나가 이 일대를 뒤덮었다.
파문의 근원은 공간을 뒤틀어 모습을 감추는 신기루. 빛과 열로 인해 생겨나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환상계통의 마법이 특기인 뱀파이어들이 만들어낸 것. 어지간한 마법사는 물론이고 용이라도 쉽사리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소유가 있었다.
그의 정체는 환룡이라고도 불리며 정신적인 것을 먹는 용종 중에서도 특이한 종이다. 자신의 먹잇감이기도 한 환술이 통할리도 만무하다.
"자, 들어가지."
소유가 껄끄러운 마음을 마음 깊은 곳으로 밀어넣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뒤를 힐끗했다. 자신외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상황을 직접 목도한 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로 오면서 말을 꺼낸 사람은 소유 한명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을 꺼낼 때마다 요연은 눈을 감고 무시했으며 슈는 자신이 지참한 이것저것들로 연구를 하면서 이동하느라 말을 꺼낼 틈이 없었다. 게다가 호지는 평소와 달리 굉장한 저기압이라 말을 거는 것조차 불가능했고 능파는 그런 호지의 눈치를 보고 있어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었다.
만일 그가, 요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으리라. 요연은 귀를 쫑긋 세울 것이고 슈는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그를 바라볼 것이며 호지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소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고를 전환했다.
생각해보면 호지가 한국에 있을 무렵에는 못 붙어서 안달인 둘이었다. 하지만 이곳 빙룡성에 와서는 그런 모습은 물론이고 둘이 같이 있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었다. 모두 별 말 없이 넘어가는 지라 별로 신경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명백한 이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상에도 소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상의 근원은 요다. 그리고 이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 또한 요다. 자신이 나서보았자 죽도 밥도 안될 것이다.
그것까지 알고 있는 소유였지만 지금의 이런 침묵은 그로선 견디기 힘든 것. 결국 참다 못 해 소유는 조금 소재를 입에 담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요는...."
가볍게 입을 열었을 뿐인데, 요의 이름을 입에 올렸을 뿐인데 요연과 슈의 시선이 소유에게로 꽂혔다. 순간적으로 공포를 느낀 소유였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요는 무슨 생각으로 팀을 이렇게 나눈 것 같나? 개인적으로 라이칸스로프와는 교전한 적이 없어서 말이다."
자기 스스로가 입에 올린 화제였지만 그로서도 궁금한 화제였기 때문에 표정을 평소처럼 유지할 수 있었다.
요연은 청룡검을 빼어들어 수건으로 가볍게 손질하면서,
"글쎄요. 요님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요. 약하시지만, 그것을 스스로도 잘 인지하고 계신분입니다. 방법이 없으면 나서지 않을테지요."
"요연은 별로 요가 걱정되지 않는거야?"
실험하던 것은 끝난건지 슈는 각종 기구들을 커다란 스포츠 백에 집어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도발과도 같은 그 발언에 요연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걱정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신뢰하고 있지요. 요님이 자신감을 갖고 벌인 행동에 틀린 것이 있었던 기억은 없으니까요."
"그건 또 그렇네."
동조하던 슈가 어느샌가 도달한 뱀파이어들의 기지인 백색건물의 벽에 황급히 붙었다. 따라 붙은 요연들은 각자의 무기를 빼어든 체, 앞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시선이 닿는 그곳엔 사막에 있어도 될까 싶을정도로 창백한 피부의 두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이잇.
창백한 피부에 어울리는 백호검이 허공을 가르며 쏜살같이 두 남자의 목을 꼬치처럼 꿰어버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호하고도 효율적인 그 행동에 슈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굉장해! 정말로 굉장해 요연. 아침 단련 때보다 더욱 세진 것 같아."
개미의 허리길이만큼이기는 했지만 요연과의 대련이라면 항상 슈 였으니 알 수 있었다. 요연 안의 무엇인가가 변했다는 것을.
요연은 두 구의 시체에서 백호검을 염력으로 끌어들여 검갑에 집어넣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었다.
"너무 비행기 태울 것 없습니다. 당신 또한 요애에게 고백했던 그날부터 이상할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에, 그랬나? 으으음... 그러고보니 그랬던 것도 같고."
고백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지내는 것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으로 지내왔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누군가가 요를 노린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집에서조차 맹렬하게 연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던 슈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말로 직접 그랬던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부끄러워진 것이다.
여러가지 마법적 장치를 해제한 소유는 가볍게 풀어진 팀의 분위기를 확인하고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손을 가볍게 돌렸다.
"문지기나 그런 것들은 더이상 없는 것 같으니 이만 가지."
소유의 말에 대화를 중단한 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나가는 소유를 뒤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사막이란 지형과는 다르게 모래알갱이 하나 없이 깔끔했다.
백색 대리석으로 된 바닥은 매 시간마다 닦고 있는지 윤이 흐르고 있었고 벽에는 척보기에도 비싸보이는 액자들이 수십장이나 걸려 있었다.
그런 것을 주욱 훑어보던 능파는 모조리 다 때 버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소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짓을 하다간 적들에게 들킨다."
벽에 항상 걸려 있는 액자가 한 순간에 사라져 있으면 의심하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능파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액자를 챙기면서,
"이미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야. 사라진 액자를 보는 것보다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이 더 빨라."
담담한 능파의 대답에 소유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능파는 소유의 한심함에 진저리를 쳤다.
"아까 그 두 뱀파이어, 거기에 계속 서 있던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온 거였어. 아마 '신기루'를 뚫는 반동을 느껴서 이상이 있나 싶어서 찾아온 것이겠지."
"내 '관통'은 뱀파이어 따위에게 들킬정도로 허접하지 않다!"
"...아니면 평소에 돌리던 경비일거야. 경비라면, 그것도 고정식이 아닌 이동식이라면 들킬 가능성이 커."
경비를 하나만 세울리가 없다. 그렇다면 여럿. 그런데 그 여럿을 한곳에만 쓸리가 없다. 분명 다른 영역에도 쓸테고 분명 '그 영역끼리 겹치는 부분'이 있을 터. 겹치는 곳에 도달할 때 한명이라도 부족하다면 분명 엄청난 소란이 일 것이다.
보통 일정 영역을 두고 경비원을 이동시키는 경우엔 보통 방법으로 들키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도 하는 살인멸구로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는 죽은 자만의 방법으로 말한다는 것.
그것을 알아들은 요연과 슈의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졌다. 요연이 주작검을 꺼내들면서 말했다.
"별 수 없지요. 단번에 몰살시키도록 하지요. 빨리 처리하고 요애께...."
"뭣하러?"
요연의 의견에 부정하는 한마디가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의 정체 덕분에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곳에는, 호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