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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157화 (15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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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림

호지에게 뺨을 맞은 그 다음날. 호지와 능파를 뺀 나머지 모두의 방에 직접 찾아가 자비나타가 있는 방으로 모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자비나타의 방으로 향하려는 순간, 성 안의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능파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모두를 모았네요? 왜 우린... 아니, 나오기를 기다린건가요?"

역시나 능파. 호지와 나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오늘 일에 대해서 넘겨짚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자 능파는 얼굴을 찌푸렸다. 능파가 나에게 이런 표정을 할 때는 9할이 호지에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등을 돌려 능파의 나오지도 않은 질책을 묵살했다. 능파는 내 반응이 의외인 것인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질풍처럼 외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잘 못 한 일이 없을 거라는 건, 이성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엄마는 완전히 애라구요. 할아버지가 어른 답게 어르지 않는다면 엄마와 할아버지는 정말로 틀어지고 말아요!"

그런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어제 뺨 맞은 그 순간부터, 그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심히 고찰해 본 나다. 그 점을 모를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어젯밤에는 영겁이 찰나로 느껴질정도로 오랫동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대답을 알아내고 말았다.

언젠가 경홍이 말했던 반항기도 아니고, 당시 나에게 삐진 것을 지금까지 끌고 온 것 또한 아니다. 바로 슈가 나에게 키스했던 그것 때문이다.

사실 그것뿐만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호지라면 몇 번 분개하고 끝났을 터.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적으로 호지가 삐졌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데다가 남이 볼 경우 '내가 슈를 끌어당겨 키스 했다'는 생각이 들 상황이기 때문에 호지가 저런 반응인 것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능파의 일갈에 대답했다.

"알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는 거야. 내가 다가가 봤자, 호지는 도망칠테고 그렇게 되면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해지지. 그래서 상황을 바꿀거야."

"...상황?"

되묻는 능파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바꾸면 돼.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호지가 날 때렸던 그 순간의 반응을, 당시의 나는 인식하지 못 했지만 내 잘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되돌아 볼 때 기억해냈다.

호지가 날 때린 후, 호지는 잠시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지 못 한 것처럼 굳어있었다. 날 완전히 싫어하게 되었다면 그럴리가 없을 터.

가능성은 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 마음을 묵혀두려고요? 할아버지가 상처가 곪게 내버려둘리는 없으니 방법은 있겠지요."

비꼬는 것처럼 말하는 능파에게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나는 능파의 표정이 예상되는 한마디를 날렸다.

"오늘 안으로 모든 것을 끝낸다. 그러기 위해서 모은거야."

내가 말을 내뱉는 즉시, 능파의 표정은 염라대왕도 한수 접어줄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너무나도 기괴한 그 표정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것이 기분 나쁜지 능파는 열을 올리면서,

"이익! 할아버지, 하루만에 끝내는 건 불가능해요. 가능하더라도 큰 상처를 입고 말겠죠. 그래서 이번 의뢰는 게릴라전으로 나선다고 했고, 할아버지도 동의 하셨잖아요?"

이곳에 처음 왔을 무렵, 능파와 나는 이번 일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답이 히트 앤 런을 주축으로 한 게릴라전.

일단 개인 능력만 따지면 우리를 이길 곳은 없으니 치고 튀면 누구도 잡지 못 한다. 게다가 라이칸스로프들이나 뱀파이어들의 강력화기들은 소모품. 그들이 아무리 잘났어도 한계는 있을테니 더이상 공수해오지 못 할 터.

그런 이유들로 나와 능파가 답을 결정했는데 갑자기 내 마음대로 일을 바꿔버렸으니 능파가 분개하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래. 그래서 팀을 나누어 단번에 일망타진할 생각이야."

"일망타진..? 미쳤어요? 만일 타이거 전차정도의 전차가 마법을 잔뜩 담은 대포 한발만 쏴도 저 정도의 용 하나는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거에요. 그런 상황에서 적들을 일망타진? 불가능해요! 우리는 안전해도 할아버지가 위험하다구요."

확실히 나 같은 인간은 마력 담은 포탄에 짓이겨져 살점밖에 안 남을테지.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이길 방법이.

능파는 내 대답 따위는 듣지도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게다가 할아버지 말마따나 일망타진이라는 걸 봐선 우리를 두 팀으로 만들 생각인 거 같은데,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세요?"

적의 강력화기들이 마법처리가 됬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우리가 두 팀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생존확률을 두배 이상으로 떨군다는 소리나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도 물론 아주 잘 생각해둔 상태였다. 이미 모든 구도는 잡혀 있었고, 라이칸스로프들과 뱀파이어는 전멸을 피하지 못 할 것이다. 그것은 정해진 순리이며 지구의 대의지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나의 확신이라 할 수 있었다.

내 자신감의 찬 얼굴을 들여다 본 능파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 좀 더 설명할 필요성을 느낀 것처럼 말을 이었다.

"만일 할아버지 말대로 팀을 나눈다고 쳐도, 어떻게 나누실 건데요? 제 우둔한 머리로는 우리들 중 누구 하나 상처입지 않고 이길 수 있는 결과 따위는 보이지 않는데요."

자존심을 건드린 것일까, 능파는 어린애답지 않게 쏘아보면서 '어디 한번 말 해 보아라! 단점을 조목조목 건드려주지!'라는 문구를 등 뒤의 허공에 새겨보였다.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능파를 보며 나는 입술을 달싹여 팀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가르쳐주었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능파가 거품을 무는 신기한 광경을 눈에 새길 수 있었다.

내가 감탄해서 손뼉을 치고 있는데 어느샌가 제정신으로 되돌아온 능파가 내 멱살을 붙잡고 뒤흔들기 시작했다.

"미미미미미미미, 미쳤어요!? 그런 것이 될 턱이 없잖아요! 설사 내가 허락해도 모두가 반대할 거라구요!"

"하하하하, 부모님에게도 잡혀본 적이 없는 멱살을 여기서 잡히니까 왠지 신선한 느낌이 드는 걸? 이것이 빙룡성의 힘...!"

적당히 농담으로 넘겨버리려는 나에게 능파는 눈에 보이는 것은 평소 얼음 같은 진지함이 아니라 열화와 같은 분노였다.

능파는 나의 멱살을 뒤흔들던 속도를 더욱 가속화 시키면서,

"캬아앗! 말 돌리지 말아요!"

"말은 타라고 있는 거란다 능파야."

"쓸데없는 개그도 하지 말아요!"

하하하하하. 그렇게 웃으며 나는 무거웠던 분위기를 일소하곤 능파의 손에서 생각에 잠겼다.

능파의 말대로 내가 나눈 팀은 너무 위험했다. 한쪽은 멀쩡하지만 다른 한쪽은 살아남을 수 없는, 일반적으로는 몰살 당할 미끼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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