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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
당당하게 고룡을 상처없이 멸할 수 있다. 그렇게 선언하는 나를 보는 자비나타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분명 자비나타는 지금까지의 내 당당함을 허장성세라고 생각했을 터. 하지만 나의 필살선언은 그의 생각을 돌려놓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할 수는 있으리라.
애초에 죽일 수 있는 방도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험으로서 존재해야한다. 비장의 수는 그래야만 의미가 있다.
자비나타의 고개가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일단 생물이기는 하지만 무생물과 결합해서인지 호흡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 날 몰아붙이려 하는 거지? 원하는 것이 뭐냐."
과연 고룡이 될 정도로 나이를 먹어서인지 생각하는 능력은 상당히 있는 것 같다.
나는 기대한만큼의 결과가 나온 것 같자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만일 다짜고짜 덤벼들었다면 교섭은 결렬, 자비나타를 죽였을 것이다.
"소유에게 듣기로는 두번째 때 카타스트로피는 물론이고 우리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족속들이 있다더군."
간단히 말하자면 중립인 것이다. 어느쪽에 가입하지도 않고 전쟁을 방관하는 자들. 그런 자들이 두번째 때도 존재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번째는 남겨둘 생각이 없다.
"자비나타 당신도 그 중립이었고 당시의 많은 마수들도 그랬지. 만일 내가 두번째에 태어났다면 중립은 완전히 배제하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 당신만 다른 것이 아니란 소리지."
"...? 사정이 어떻게 다른 거지? 현재 두 조직의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만."
비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것 같자 나는 왠지 한숨이 나왔다.
애초에 여기까지 말한 것으로 깨닫기를 바란 적은 없지만 고룡이라길래 혹시나하면서 기대했는데 역시 불가능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온 자비나타의 머리를 혹시나 반격할까 조마조마한 심정(이길 수는 있지만 시간이 걸리)니까으로 손가락을 아주 가볍게 튕겼다.
"카타스트로피의 목적이 인간말살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전세계의 인간을 적으로 삼은거야. '왜'라는 명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목적이 사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지. 한마디로 말하고 싶은 것은... 뭐라 해야될까, 조금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노림수..라고나 할까."
"노림수?"
자비나타가 내가 입에 올린 단어를 다시 읊었들 때가 되어서야 나는 제대로 된 그것의 대체 단어를 기억해냈다.
"아니, 어부지리라는 말이 옳겠지. 의도하지 않았건, 노렸건."
현재 지구는 심각할정도로 살아갈 장소가 부족했다. 땅위는 인간들의 세상이고 바닷속은 아직 수압을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곧 인간의 차지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지구의 땅은 전부 인간의 차지라고 해도 좋다는 것이다. 아니, 지구의 모든 땅은 물론이고 인간의 손은 하늘을 넘어서 우주의 영역까지 퍼져있다. 반론은 불필요하다.
인간들의 관점에서 마수를 보면 어떨까? 당연하지만 인간들에게 있어서 마수는 아무런 댓가없이 자리를 차지하는 무쓸모의 표본일 것이다. 실제로는 인간들이 마수들의 터전에 들어온 것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인간들이 지구상에서 말끔히 사라진다. 자신들의 집에 쳐들어와 주인행세를 하던 인간들이 멸절된다. 각종 생명체를 가둬놓고 볼거리로 격하시키는 인간이 멸종한다. 그것은 마수로서 참기 힘든 유혹이 될 것이다.
만일 카타스트로피가 그런 점을 대놓고 광고하게 된다면 전세계의 모든 중립파 마수들은 인간들의 적으로 돌아설 터. 강압적이긴 해도 지금과 같은 행동이 필요했다.
"....하게 되겠지. 뭐 그런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들을 병렬적으로 무성의하게 입밖으로 내놓은 나는 긴 이야기의 패널티로 숨이 조금 차서 잠시 말을 멈췄다. 살아남기 위한 개인적인 여러가지 운동으로 폐활량이 극대화 된 나의 몸은 금방 나의 호흡을 정상으로 되돌렸다.
"카타스트로피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모든 마수들에게 득이 되지. 하지만 나는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은 주제에 그런 이득을 얻는 녀석이 싫다."
일단 인간이 사라지면 마수들이 살아갈 장소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혼란을 막기위해 사용하던 마력을 자신에게 쓸 수 있다. 인간들과 친한 마수들을 제외하면 '중립도 득을 본다.'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사양이다.
"그러니 중립 같은 재미없는 선택지를 내 손으로 부숴버린거야. 하지만 카타스트로피를 선택하면 내 손에 죽겠지. 죽음이냐, 동료냐. 간단한 양자택일이지."
얼음으로 된 그의 머리를 만지던 손을 주먹으로 바꾸고 마력을 흘려넣었다. 가장 기초적인 강화가 펼쳐지면서 얼음의 머릴 압박했다.
"난 개인적으로는 죽어줬으면 좋겠어. 네가 죽은 사이에 돈은 우리가 가져가면 그만인데다가 시간도 절약되지. 게다가 널 데리고 가면 다른 용들에게 핍박 받을 가능성이 무지무지 크거든. 하지만 말이지....."
주먹 쥔 손을 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에게로 온다면 육왕의 이름을 걸고 널 반드시 인정시켜 보이지. 황룡 구소처럼 보호하는 것이 아니야. 널 자신의 발로 설 수 있게 만들겠어."
자비나타는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사념에 빠지자 얼음의 궁전을 매섭게 공격하던 눈보라도 약해진 것처럼 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자비나타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자 궁전 밖의 눈보라가 완전히 멎어버렸다.
"...좋다. 너는 마음에 안들지만,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표정은 완전한 승낙이었다.
"좋았어. 도와주겠어....라고는 했지만 우리도 여기까지 오는데 조금 힘들었으니 오늘은 쉬어도 되겠지?"
"...별 수 없지. 이곳은 넓으니 아무방이나 써도 좋다. 단, 내가 있는 이 층의 방들을 빼고. 거기에는 너희가 원하는 재보들이 들어 있거든."
나는 오케이라고 적당히 말해주고는 친구들의 등을 떠밀며 자비나타가 있는 방을 나왔다. 그가 있는 방의 문이 닫히자,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어, 어엇.."
툭.
얼음이지만 전혀 차갑지 않은 문에 기댄체 쓰러진 나는 '하하'하고 건조한 웃음 밖에 뱉어내지 못했다.
"하하하,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보다."
"으앙."
휘이익.
바람소리와 함께 슈가 날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내가 고룡과 일 대 일로 대면했던 것이 상당히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머리가 다가왔을 때 요가 먹히는 줄 알았어...."
"미안미안. 착하지, 울지마."
그녀의 등을 끌어안는 것처럼 토닥여주자 그녀는 안겼던 몸을 일으키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난 애 아니야, 요."
그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나는 그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슈가 귀여울 뿐. 이전에는 호지도 아무런 꺼리낌없이 내 품에 안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의 뇌리에는 슬픔이란 감정이 용천수처럼 솟아오르고 눈가에는 눈물리 핑도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갈대 같고 이미 이리저리 두들겨져 너덜너덜한 나의 자존심으로 간신히 눈을 틀어막아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막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울면 매우 얼굴이 팔릴 것이다. 이 상황에서 눈물. 누가 호지 때문이라 생각하겠는가.
나는 슬픔을 잊을 생각으로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섰다.
"자자! 자잘한 이야기는 저녁을 먹을 때 하자고. 지금은 피로를 풀고 싶어."
나의 말에 모두들 묻고 싶은 것은 굴뚝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시선을 돌려 앞으로 묵을 방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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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편입니다.
특집? 뭐 그런건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