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7 / 0340 ----------------------------------------------
등장
태양이 있음으로서 세상은 따뜻하고 원활하게 돌아간다. 게다가 인간들이 소비한 자원을 대신할 새로운 자원이기도 하며, 조금 오컬트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태양이 없으면 쓸 수 없는 마법들도 많다.
한마디로 태양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하는 것이란 말이다. 태양이 하루만 없어져도 몇개의 나라는 존속조차 위험해질테지.
그런데도 이러한 태양의 은총을 거부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허억, 크으으.... 젠장, 태양 따위..."
"리토... 아마테라스(일본의 태양신)의 신도이기도 하면서 그런 소릴..."
하나의 말에 리토는 태양에 대해 내뱉는 불평을 없앴지만 원망어린 숨소리는 그칠지 몰랐다.
하늘에서는 해가 연중무휴로 햇빛을 우리가 있는 사막에 내리쬐면서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런 태양의 시선도 무시하고 조금 편하게 유령선을 타고 빙룡성으로 가고 있었겠지만 거리 때문인지 유령들의 사이렌이 울리면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빙룡성을 향해서 걷고 있는 것이었다.
체력이 떨어지는 리토는 걷고 있는 우리들 중 가장 후위에서 걸어오는 중이다. 그런 리토가 변태 같은 숨소리를 계속해서 입 밖으로 내면서 말했다.
"그런데, 너희는...! 어째서 멀쩡한거야....!"
리토의 말대로 우리는 멀쩡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유가 있다.
능파, 요연, 소유, 호지는 인간이 아니니까 패스. 그들에게 있어서 주변 상황의 기온 같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나의 경우에는 삼신기 중 흐름을 관장하는 운사의 힘으로 기온을 한국수준으로 맞춰두고 있으니 멀쩡하고 슈는 손에 여왕의 증표라는 소유가 준 냉기의 무구를 들고 있으니 온도에 영향을 받을리가 없다.
그런 사유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리토는 입을 열어 말을 거칠게. 하지만 힘 빠진 것처럼 외쳤다.
"아니, 한국의 마....법사인 너희들이.....야 괴물들이니 상관....없겠지! 그런데, 어째서! 하나에게는 온도방어의 도구를 줬으면서 나에게는 안 주냔말이야!"
분노의 힘일까, 막판에는 늘이는 일 없이 말을 끝낸 리토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평소에 입는 청바지차림의 위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직물로 만들어진 화려한 천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저것은 내가 준 것이다. 유령선을 타기 전에 유운과 함께 내 물건들로 최종무기를 만들었는데 그 중 남은 것을 걸쳐준 것이다. 애초에 방어용이었기 때문에 온도에 대한 유지도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넘겨주었는데 내 생각대로 쓸만한 모양이었다.
뭐, 나나 슈가 쓰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런 것보다... 정말 힘든걸. 사막이란건."
태양의 가호를 운사의 힘으로 거부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힘들었다.
사막을 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빛은 의외로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축적되면 리토처럼 될지도 모르겠지만 빛을 쬐고 있는 것만이라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문제인 것은 바로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축복인 바닥. 즉, 모래다.
발이 푹푹 꺼지면서 신발 밖에 있던 모래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몇 백그램 밖에 안되는 신발의 중량을 높이고 있다. 게다가 진흙처럼 들러붙는 것은 아니었지만 발이 모래 안으로 빠지고 빼낼 때의 체력소비란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었다.
리토는 죽을 상을 하고 날 노려봤다.
"네가, 내 기분이 되어,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냐!?"
히스테리가 되어가는 리토의 혈압을 무시하며 선두 그룹에 포함되어 있는 호지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호지는 능파랑 같이 선두를 걸어가면서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저 반응을 보아하니 완전히 미움 받은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약간 가벼워졌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 반응상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손에 꼽을정도.
나에게 사과하고 싶다던가, 다른 사람이랑 있는 것이 거슬린다던가다. 그외에도 더 있겠지만 그것이 가장 확률이 컸다.
호지에게 다가갔다. 호지는 나와 시선이 마주칠까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유, 귀여운 것. 이건 이것대로....
"아니, 아니지. 지금은 관계의 개선이 더 중요해."
츤데레에 빠졌다간 화목한 부녀사이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심해져서 '너무 좋아해서 서로 죽이고 싶어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사양이다.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낼까 생각하다가 호지에게 느끼하게 말했다.
"마이 도터(daughter:딸)? 발걸음이 힘들어보이는데 업어줄까?"
"....필요없어요."
단칼에 거절당했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강력하고 빠르게 대답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충격이 조금 컸다.
모래에 손이 잡아먹히는 것처럼 빨려들어가는 것도 잊고 나는 절망에 빠졌다. 그런 나를 보며 능파가 어이없다는 듯이,
"....할아버지, 바보?"
이제는 딸뿐만이 아니라 손녀에게도 바보취급 받았다.
그냥 죽어버릴까.
그런 광경을 바라보던 슈가 다가와서 내 몸을 가볍게 들어올려 자신의 어깨에 걸치더니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나갔다.
너무나도 대담한 그 행동에 말을 더듬었다.
"자자자자자, 잠깐 슈우우!?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에, 역시 조금 부끄러워?"
조금이 아니라 엄청...이라고 대답하지는 않고 그냥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슈는 헤헤헤하고 실없이 웃으며 나를 모래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온 소유가 노크하는 것처럼 내 어깨를 치더니,
"평소답지 않군. 이전이라면 서로 달라붙지 못 해 안달일텐데. 싸우기라도 한....."
나는 그렇게 말하는 소유의 멱살을 붙잡고 울면서 흔들어댔다. 누가봐도 웃어른께 하기에는 부적절한 행동이라 판단하겠지만 소유는 난생처음보는 나의 눈물에 눌려 아무말도 없이 흔들렸다.
나는 광신도처럼 중얼거렸다.
"싸운거아냐 싸운거아냐 싸운거아냐 싸운거아냐 싸운거아냐 싸운거아냐 싸운거아냐....."
"아, 알았으니 제발 놓아다오!"
내가 일방적으로 소유의 목덜미에 울분을 풀어대기를 몇 분. 어느샌가 폴짝 뛰어서 내 등에 매달린 능파가 나를 제지했다.
"그만해요 할아버지. 이제 목적지에 다 도착한 것 같으니까."
"응?"
능파의 말에 진정된 나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돌아봤다. 하지만 주변에는 돌과 각종 물건들이 가득한 모래들 뿐. 빙룡이 살고 있을 법한 지역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눈을 감고 마력을 뻗어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여기는 사막. 일반적인 상식으로 빙룡성이 존재할리가 없다. 그것은 즉, 마법적인 힘으로 숨겨져 있단 소리.
내 예상대로 이 일대의 마력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다.
"크, 큼. 내가 하도록 하지. 그나마 안면이 있는 쪽은 내 쪽이니까."
내 손을 털어낸 소유는 우리의 최전방에 서면서 하늘로 손가락을 뻗었다. 마치 외계인과의 친목을 다지기 위한 자세로 보이는 그의 손가락이, 하늘에서부터 바닥으로 그어졌다.
징.
마치 핸드폰의 진동소리 같은 음파가 허공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커다란 탄성과 함께 주변의 세계에 현실감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