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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137화 (13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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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연

"흐음...."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콧소리를 냈다.

솔직히, 지금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앞에서 이미 날 좋아한다고 했으니 나에게 사랑 받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 할 터.

하지만 요연은 내 생각을 들여다 보았는지 아니면 아까의 심심한 반응으로 생각을 유추한 것인이 나의 생각을 부정했다.

"사랑하고 있기에 사랑 받고 싶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요, 저는 그저 제 목적을 위해 당신의 사랑을 필요로 했던 겁니다."

여기까지 오니 요연이 하고자 하는 말이 대충 어떤건지 눈치챘다.

그 당시의 목적과 지금 하는 말. 그녀가 원한 것은 나라는 존재를 이용해서 누님을 사살하거나 날 죽여서 그 이상의 고통을 주는 것.

요연은 내가 거기까지 생각을 진행시켰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전 현 대마법사인 소야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을 죽이기보다 살려두는 것이 더 편하리라고 생각했지요. 그녀의 '동생사랑'은 일반적인 우애에 몇 배나 되는 감정. 저의 생각은 완벽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확실히 누님과 나는 일반적인 우애라고는 생각되지 않을만큼 좋다고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어렸을 때 싸우기도 했지(정확히는 나만 시비를 걸었지)만 그 덕에 더욱 서로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도 조금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 미운정이라도 박힌 거겠지. 확실히 그런면에서는 그 생각이 정확했다.

"그래서 계속 당신을 자극하고, 함께 했습니다만... 요님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그녀의 한마디에 난 조금이지만 헛웃음이 나왔다.

그야 당연히 불가능하다. 학교에는 정말로 좋아하는 슈가 철통같이 날 지켰고(나중에는 친해졌지만) 집에서는 호지가 손짓으로 훠이훠이 쫓아내기 일쑤였다. 게다가 여름방학 초에는 슈가 좋아한다고까지 했으니.

그리고 그 이전에 날 꼬시려는 노력을 했는지도 의아한 나였지만 나름 심각하게 말하고 있는 요연에게 그런 것을 말할 배짱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요연은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텐션이 오른건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서... 한 때는 요님을 죽이자고 생각했습니다만, 당시의 전 그러지 못 했죠. 아마 시간상으로는.... 방학 중 이었을 겁니다."

방학이라고하니 기억이 났다. 분명 루그로를 이기고 난 지 며칠째 되는 날에 능파가 요연을 조심하라면서 말해주었다.

'방학 때, 그것도 하교하는 시각에만 나의 기척이 사라졌다.'

아마 그 때가 날 죽이려 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요연은... 결국 눈물마저 흘렸다.

"하지만 죽일 수 없었어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능파에게서 당신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왔죠. 저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죽일 수 없다면 남이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저는 당신을 구하고 말았죠.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아, 난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하고."

"잠깐만. 그럼 그걸로 됬잖아? 생각뿐이었다고. 미수에 그쳤단 말이야. 죄책감 따위를 느낄 필요는 없어!"

착각은 자유라고들 한다. 보통은 비꼬는 말로 쓰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적용되는 말이었다.

생각마저 죄일 수는 없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나 또한 누구(예를 들면 누님이라던가)를 죽이고자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다. 그런 것으로 죄가 성립된다면 사람이 살아갈 세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능파에게 미움 받아도, 제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은 당신이었으니 견딜 수 있었지요."

있었다. 지금은 아니란 소리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요연이 자조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기억.... 하시겠지요. 당신이 죽는다고 예언됬다는 것을 알고 나오던 때. 저는... 죄송하게도 기뻤습니다. 당신을 지키면서 속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죠."

그녀의 말을 가로채는 것처럼 내가 입을 열었다.

"'반드시 살아남을 자신이 있느냐'였지."

씁쓸한 표정으로 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물었고 요님은 '그렇다'고 답했지요. 저는 절망했습니다. 난 필요 없는 것인가...하고 말입니다."

내가 '그렇지 않아'라고 외치기 직전, 요연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도 바보는 아니었지요. 제가 있었기에 당신이 그런 자신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저는 엿듣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엿들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광진이 서서히 잦아들면서 머리가 굳는건지 사고가 느려지면서 기억이 불가능했다.

요연은 그런 나를 위해서 말하는 것처럼 설명했다.

"예언이 예정된 것은 요님이 아니다... 였지요."

깨달았다. 취기가 가신것처럼 확하고 정신이 번쩍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생각났다. 능파와 했던 대화들. 그 때 오갔던 이야기들을.

과연. 이것은, 지금 이 상황은 요연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부추긴 나와 능파의 잘못이라 이건가..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것을 느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나를 보면서 요연은 고개를 숙였다.

"사신검주 따위는 갈아치우면 된다는 말에, 나를 대신 할 존재는 얼마든지 있다는 그녀의 말에. 저는 그 때까지 묻어둔 죄책감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데이트의 방향을 바꾸었지요."

"자결.....로?"

감정표현이 서툰 요연은 아까까지의 격한 감정을 쏟아내면서 더이상 내놓을 감정이 없는 것처럼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예.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당신의 손에 죽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저에게 남아있는 힘을 요님에게 넘길 생각이었죠. 그렇다면 의미 없는 저의 존재조차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보냐."

정말로 바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점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입을 열었다.

"한마디만 할께."

이걸로 요연의 자결을 막을 수 있을거라고 보장은 못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이윽고 나는 그 말을 입에 올렸다.

"세상에 의미없는 존재는 없다, 요연."

요연이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맑은 그녀의 눈망울과 내 눈동자가 마주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요연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으...으으윽, 아아아..."

신음하는 것처럼, 매우 괴로운 것처럼. 그녀가 오열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내 가슴께로 끌어들이면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난 네가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내 말을 시작으로 요연은 붉은 하늘조차 파랗게 될 때까지 길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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